이에 라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아빠는 동생을 데리고 엄마와 만나면 안 된다고 한 적이 없어요. 동생이 엄마와 만나기를 원하지 않았던 거예요. 아무래도 부끄러움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진아연은 라엘이의 말에 마음이 복잡했다.귀국 후, 진아연은 지성이를 B국으로 보내 그녀와 만날 수 없게 만든 사람이 줄곧 박시준이라 생각했었지만, 지성이의 생각일 줄 예상 못 했다."엄마, 저는 아빠가 싫지만, 그래도 제 말은 잘 들어줘요." 라엘이는 일부러 아빠 편을 든 게 아니었지만 전달하려는 의미는 분명했다.물론 진아연도 박시준이 아이를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두 사람의 관계가 아무리 나빠도 아이는 결국 그의 친자식이고 그 또한 어찌 자기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까?"라엘아, 아빠가 싫지 않으면 왜 방금 아빠 앞에서 그런 말을 한 거야?" 진아연은 라엘이 아빠가 싫다는 말할 때 박시준의 슬픈 표정을 기억하고 있었다."저는 그냥 아빠를 열받게 하고 싶었어요. 엄마, 저 왠지 반항기에 들어선 것 같아요." 라엘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라엘아, 그래도 아빠를 화나게 하면 안 돼요!" 진아연은 차분하게 아이를 타일렀다."왜요? 저와 동생한테 잘해주지 않을까 봐 걱정이에요?""아니. 네 아빠도 이제 나이가 많은데 만약 네 말 때문에 몸이 아프면 어떡해?" 진아연 붉어진 얼굴로 말했고라엘이는 엄마의 말에 멍했다.라엘이 마음속 아빠의 이미지는 항상 같은 모습이었다. 아빠는 항상 위대하고 산처럼 듬직한 모습이었기에 엄마가 아빠도 늙었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 라엘이는 아마 아빠의 나이를 전혀 생각헤 본적이 없었을 것이다.사람은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아이지만, 엄마와 아빠도 늙을 거라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라엘아, 왜 그래?" 진아연은 갑자기 우울해진 딸의 모습에 바로 위로했다. "혹시 엄마가 한 말 때문에 놀란 거야?"이에 라엘이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 저는 엄마와 아빠가 늙지 않았으면 해요.""사람은 누구나
"라엘아, 여동생이 있었으면 좋겠어?"라엘: "왜요? 엄마가 하나 낳아주려고요? 아니면 아빠가?"진아연이 계속해서 물었다. "만약 이 세상에 라엘이 너와 아주 닮은 여자애가 있는데, 그게 네 여동생이라면 어떨 것 같니??""아, 현이 말씀이세요?" 라엘이는 현이의 사진을 본 적 있었다.갓 태어났을 때의 자기 사진과 지금 현이의 사진을 함께 두면, 누가 누군지 분간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라엘아, 사실 현이는 네 여동생이야." 진아연이 망설임 끝에 딸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엄마가 이번에 돌아온 건, 그 아이를 찾기 위해서란다.""엄마!" 라엘이가 고개를 돌려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진아연에게 말했다. "걔는 아빠랑 김영아의 딸이잖아요! 전 그런 여동생 없어요!""라엘아, 현이가 김영아의 딸이라면, 어떻게 너하고 그렇게 똑 닮았겠니?" 진아연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현이는 엄마 아빠의 아이야. 중간에 오해가 있었단다.""아! 현이가 엄마 아빠의 아이였어요?" 라엘이가 곧바로 의자에서 뛰어 내려와 잔뜩 신이나 소리치며 온 방 안을 뛰어다녔다. "그럼 제 친동생이네요? 내 친동생이었다니! 와아!""맞아, 라엘아. 현이는 네 친동생이란다." 진아연이 딸을 다시 의자에 데려와 앉히고는 머리카락을 빗겨주며 말했다. "오빠한테는 아직 얘기하지 않았어. 오빠가 요즘 많이 바쁘거든.""그럼, 제가 이따가 오빠한테 영상 통화로 알려줄래요!" 라엘이는 한껏 들떠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엉덩이를 들썩였다. "엄마, 아빠도 알고 있어요? 현이가 김영아 그 나쁜 아줌마의 딸이 아니라면, 그럼, 엄마랑 아빠가...""엄마가 아빠랑 이혼한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단다." 진아연이 딸에게 머리를 묶어준 다음, 화장실에서 데리고 나왔다. "지금 엄마한테 가장 중요한 문제는 현이를 찾아내는 거야. 정말로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포기할 순 없어.""아빠하고 오빠한테도 같이 찾아보자고 해요!" 라엘이가 조그만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현이는
현이는 그와 진아연의 딸이었다.어젯밤 진아연의 반응에 그는 이 결과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당시 그가 진실을 알고 있었다면, 그와 진아연은 결코 이혼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그는 한동안 마음 아플 일 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그를 온종일 마음 아프게 했다.업무 보고를 위해 사무실에 들어온 조지운이 그의 책상에 놓인 커피잔을 보고는 그의 안색을 살폈다."대표님, 어젯밤에 잘 못 쉬셨어요?" 빨갛게 충혈된 그의 눈을 보고 조지운이 물었다. "댁에 돌아가셔서 좀 쉬시는 게 어떠세요?""집에는 가고 싶지 않아." 그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집으로 돌아가면, 진아연과 함께한 모든 순간이 떠오를 것 같았다.그건 마치 형체 없는 고문과도 같았다."지운 씨, 현이가 나랑 진아연의 딸이었어." 박시준이 밤새도록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이유를 털어놓았다. "진아연이 이번에 돌아온 것도, 현이를 찾기 위해서야."조지운이 너무 놀라 횡설수설하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마이크도 별말 없었는데... 전 그저 아연 씨가 박사 학위를 마치고 아이들을 보려고 돌아오신 줄 알았어요...""어젯밤에 아연이를 만났어." 박시준이 그의 얇은 입술을 오므리며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미간을 문질렀다. "현이 일이 아니었으면 그녀가 돌아오는 일도 없었을 거야." "예전에 마이크에게 물어본 적 있어요. 마이크 말로는 진아연 씨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말을 한 적은 없었다고 했어요." 조지운이 여기까지 말하고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이었다. "대표님, 진아연 씨를 다시 만나니 기분이 어떠셨어요?""내 기분이 어땠어야 하는데?" 박시준이 조지운에게 되물었다."이를테면, 더 예뻐진 것 같다거나 그런 것 있잖아요... 제가 보기엔 갈수록 더 우아해지시는 것 같아요." 조지운이 진아연을 칭찬했다."그건 파마를 해서 그런 걸걸.""아..." 조지운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현이가 두 분의 아이라는 게 밝혀졌으니 그러면 이제 두 분은...""그 부
하물며 조지운마저도 한때 그를 나쁜 놈이라 생각했던 날들이 있었다.하지만 2년이 넘는 지난 시간 동안, 대표님의 일상에는 오직 일과 아이들뿐이었다. 나쁜 놈 같은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조지운의 마음은 또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그걸 들어서 뭐 하려고?" 박시준은 그런 사적인 것까지 공개하고 싶지는 않았다."확인하고 싶어서요. 지금까지 대표님을 믿고 의지한 저의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요." 조지운은 그가 이렇게 사적인 부분을 공개하길 난처해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대표님께서 아연 씨에게 매정하지 않으셨다는 거 전 믿어요.""하지만 진아연은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걸." 박시준은 이혼하던 날 차가웠던 진아연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 "지운이 너는 나를 믿는데, 진아연은 왜 나를 믿지 못하는 거지?""대표님께 앞이 보이지 않게 된 걸 말했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일부러 대표님을 욕되게 하려는 건 아닐 거예요. 아연 씨는 라엘이와 지성이의 양육권까지 포기했잖아요. 분명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을 텐데도 그런 결정을 한 걸 보면 말이에요." 조지운은 박시준이 매정한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진아연이 남편과 아이들을 버린 나쁜 여자라고는 더욱 생각하지 않았다.박시준이 서랍을 열어 서랍 안에서 USB를 꺼내 조지운에게 건넸다."녹음 파일은 그 안에 있어. 다 듣고 나면 돌려줘."조지운이 기쁜 듯 얼떨떨해하며 즉시 USB를 건네받았다. "네. 절대 새나갈 일 없도록 할게요."조지운은 USB를 들고 자기 사무실로 돌아갔다.사무실 문을 꼭 닫은 후, 조지운은 USB를 노트북에 연결해 드라이브를 클릭했다. 안에는 오디오 파일 하나뿐이었다. 바로 당시 통화 녹음 파일이었다.조지운이 이어폰을 끼고 재생 버튼을 클릭했다.조지운의 머릿속에 3년 전 공항의 장면이 생생하게 펼쳐졌다.잠시 후, 조지운이 USB를 박시준에게 돌려주었다."대표님, 다 들었어요. 그런데 뒷부분에는 왜 아연 씨의 목소리가
저녁.조지운은 한 와이너리를 지나던 중, 좋은 와인 하나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집에 도착한 후 그는 마이크에게 전화해 얼른 술을 마시러 오라며 마이크를 불렀다.애주가인 마이크에게 술을 마시자고 부르는 친구는 언제나 거절하기 어려운 상대였다.30분 뒤, 마이크가 조지운의 집에 도착했다."오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요? 먼저 술을 다 먹자고 부르고!" 마이크가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보통 먼저 술을 마시자는 말을 꺼내는 건 마이크 쪽이었다. 조지운이 먼저 술 얘기를 꺼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나한테는 좋은 일이긴 한데, 마이크한테도 좋은 일일지는 모르겠네요." 조지운이 그에게 의자를 빼주고는, 단도직입적으로 입을 열었다. "줄곧 우리 대표님이 나쁜 놈이라고 했었죠? 하마터면 당신 말에 넘어가 나도 대표님이 나쁜 놈이라 생각할 뻔했어요. 그런데 오늘 우리 대표님이 증거를 들고 오셨어요!""무슨 증거요?" 마이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마이크가 진지한 표정으로 그에게 손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보여줘 봐요.""먼저 내기 하나 하죠." 조지운이 식탁 의자에 앉아 마이크에게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예전에 나한테 그런 말을 했었죠. 우리 대표님이 현이를 찾아 Y국에 갔을 때, 아연 씨가 대표님한테 전화로 자기 눈이 안 보이게 되었다는 걸 분명히 얘기했다고요.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마이크가 와인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며 대답했다. "그랬었죠.""현이는 우리 대표님과 아연 씨의 친딸이었어요.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죠?" 여기까지 말하자, 조지운의 표정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어요?""여보세요, 조지운 씨. 이게 당신이 말한 증거예요?" 마이크가 와인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이게 무슨 증거예요? 아연이도 최근에서야 현이가 자기 친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요!""내가 말한 증거는 이게 아니에요!" 조지운도 와인잔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이런 여우 같은 사람! 난 뭐든 제일 먼저 당신한테 말하는데, 당신은 머릿속에
마이크는 박시준이 무슨 헛소리를 해도 조지운은 그저 좋게만 받아들일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조지운이 휴대폰을 꺼내 녹음 파일을 열었다...."왜 뒷부분에는 아연이의 목소리가 안 들리는 거죠?" 녹음 파일을 다 들은 뒤 마이크가 물었다."저도 이상해서 대표님한테 물어봤어요. 대표님 말씀으론 당시 아연 씨가 통화를 듣고 있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 하셨어요.""당신 대표 말만 듣고 판단할 순 없어요. 나한테 그 녹음 파일 좀 보내줘요. 나중에 아연이한테 들려주고 수정된 부분이 있는지 물어봐야겠어요." 마이크가 말했다.조지운이 망설이며 대답했다. "사실 이것도 몰래 복사해 온 거예요. 대표님은 다른 사람이 이 녹음 파일을 듣는 걸 원치 않으셨거든요."조지운의 대답에 마이크가 삐죽거리며 말했다. "녹음 파일에 문제가 없으면, 다른 사람한테 공개하는 걸 꺼릴 이유가 어디 있어요? 이 녹음 파일이 진짜고, 정말 뒷부분의 아연이 말을 삭제한 게 아니라면, 아연이도 박시준을 그렇게까지 원망하진 않을 거예요."마이크의 말은 조지운의 충동심을 불러일으켰다.그가 녹음 파일을 마이크에게 전송했다."내일 아연 씨한테 가서 들려줘요. 난 우리 대표님이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니까.""내 생각에 당신 대표는 지금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뒷부분에 아연이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잖아요, 그건 말이 안 되죠!" 마이크가 반박했다."대표님은 당시 통화 상황 자체가 그랬다고 하셨어요!""당신 대표 말이면 무조건 다 맞아요?" 마이크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자기 주관을 좀 가질 순 없어요?""이 얘기는 이쯤 해두죠." 조지운이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먹으며 말을 이었다. "일단 녹음 파일을 아연 씨한테 들려줘요. 아연 씨가 뭐라고 말하는지 보자고요.""알았어요.""그나저나 이번에 돌아온 게, 그 아이를 찾으려고 온 거였어요? 다른 계획은 없어요?" 조지운이 물었다. "아이를 찾는 데 굳이 두 사람이 직접 발로 뛸 필요는 없잖아요. 돈 들여
"하하하! 당신 정말 웃겨 죽겠네요!" 마이크는 그의 말에 진심으로 웃음이 터져, 탁자를 두드리면서 눈물을 훔치며 웃어댔다. "진명 그룹은 B국의 새 건물에 있어요. 예전 앤 테크놀로지가 있던 자리의 바로 건너편에요!"조지운이 민망함에 진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나도 알아요. 당시 강민 씨가 총 세 개의 건물을 선택했는데, 모두의 투표로 결정한 곳이 바로 지금의 건물이에요. 그곳 위치가 제일 좋았거든요.""지난 2년 동안 아연이가 받았던 자극이 작을 것 같아요? 아연이 걱정할 시간에 당신 대표님 걱정이나 해요." 마이크가 농담조로 말했다."우리 대표님을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조지운은 마이크의 사고 회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젯밤 만났던 진아연의 모습을 떠올리자, 진아연이 풍겼던 평온함과 여유로움은 이혼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사람 같아 보였다. "그나저나, 아연 씨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보여요.""맞아요! 그러니 아연이 걱정할 시간에 당신 대표 걱정이나 하라는 거죠." 마이크가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는 흥미진진해하며 말했다."우리 대표님 얘기는 그만하고, 당신 얘기나 좀 해요!" 조지운이 말했다. "정말 앞으로 더는 일을 안 할 생각이에요?""맞아요!" 마이크의 옅은 푸른빛의 눈에 미소가 넘실거렸다. "왜요, 나한테 일자리라도 마련해 주려고요?"조지운이 깊게 한숨 쉬며 울며 겨자 먹기로 대답했다. "이건 어때요, 저한테 매일 밥과 집안일을 해주면, 제가 매달 당신한테 월급을 줄게요."'푸흡' 하는 소리와 함께 마이크가 입 안의 와인을 거의 뿜을 뻔했다.“농담이에요, 뭘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요?” 마이크의 반응에 조지운은 웃음이 터졌다.마이크가 티슈로 입가를 닦으며 대답했다: "나도 장난이었어요.""뭐라고요?""될 대로 되라죠.""아, 그거 말곤 다른 계획이 없나 보죠?" 조지운이 물었다. "지난 2년 동안 뭐했어요? 내가 물어볼 때마다 당신은 아무 대답도 안 했죠. 뭐가 그렇게 비밀스러워요? 설마 예전에 하던 일을 다
아직 저녁을 먹지 않았으니, 위에 경련이 나는 것도 당연했다.그녀가 배를 움켜쥐고 방에서 나오자,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그녀가 현관으로 가 문을 열었다.여소정이 자신의 귀한 딸 지민이와 지성이를 데리고 왔다!"아연아, 네가 돌아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로 달려왔어!" 여소정이 두 아이를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온 다음 진아연을 살폈다. "넌 어쩜 이렇게 항상 날씬하니? 먹어도 찌지 않는 체질이라니 정말 너무 부럽다니까. 지금 머리 색은 지난번에 내가 추천했던 그 색이야?""지난번에 네가 추천했던 것과 다른 색이야. 하지만 크게 다르지는 않아." 기분이 좋아진 덕에 진아연은 위의 통증이 많이 가라앉았다."지금 색이 더 예쁘다." 여기까지 말하고 난 다음 여소정은 그제야 두 아이를 데리고 왔다는 것이 떠올랐다. "내가 지성이를 여기에 데리고 온 걸 이모님도 알고 계셔. 별말씀 없으셨고.""어젯밤에 시준 씨를 만났어." 진아연이 지성이와 지민이를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올 줄 진작 알았으면 내가 식사라도 제대로 차려 놓고 기다렸을 텐데.""우린 이미 저녁 먹었어! 그냥 너를 만나러 온 거야." 여기까지 말하고는 여소정이 화제를 돌렸다. "너 갑자기 왜 난데없이 염색을 한건지 나한테 얘기해주지 않았잖아!"여소정은 염색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해보지 않은 색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진아연은 달랐다.진아연은 머리에 손을 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기억하기에 그녀는 항상 검은 머리였다."어느 날 마이크가 내 머리에서 흰 머리를 발견했거든." 진아연이 솔직하게 말했다. "염색도 해본 적이 없는 내가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다니.""사실 흰머리가 나는 건 나이랑 별로 상관이 없어. 예전에 동창 중에 나이가 어린데도 백발인 친구가 있었는데, 완전 멋있어 보였어! 그리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심적으로 많이 긴장하면 흰머리가 나기도 한대." 여소정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준기 씨도 흰머리가 나거든. 나는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