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넌 조금도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그래, 네가 죽게 되더라도 넌 후회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박시준의 표정이 갈수록 붉으락푸르락해졌다.시은의 말을 거들어야 마땅했지만, 진아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지금 시은은 박시준의 감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고 있었다.박시준은 지금까지 그녀를 보호하고 보살펴 왔다. 그런 그가, 제 발로 죽을 길을 찾아가는 그녀를 어떻게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있겠는가?그건 마치 스스로 칼을 심장에 꽂아 넣는 것과 비슷한 기분일 것이다."오빠, 난 이 아이를 잘 낳을 수 있을 거야. 보다시피 지금까지 별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잖아. 나도 이제 다른 사람들과 별로 다를 바 없어." 시은은 도박을 해보고 싶었다.사실 그녀가 이런 도박을 고집하는 건, 아이를 향한 자신의 집념이 아닌, 위정의 아이를 낳아달라는 위정 어머니의 부탁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얘기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녀는 다른 사람과의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는 사람이다.그렇지 않으면 양심에 걸려 마음이 불편한 사람이다."도대체 네 어디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다는 거야? 넌 아직 보통 사람들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 박시준은 지금까지 그녀에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화를 내지 않고 넘어간다면 시은이 고집대로 행동할 것이 분명했다. "보통 사람들에겐 생각이란 게 있어, 하지만 지금 널 봐! 생각을 하기는 하는 거야? 일부러 죽으려 드는 사람은 없어, 그런데 지금 넌 어떠냐고!""그만 하세요!" 더는 듣고 있기 힘들어진 위정이 화가 난 목소리로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잘 대처하지 못한 탓이에요. 시은이는 아무 잘못 없어요!"위정의 이마에 솟아오른 핏대가 진아연의 눈에 들어왔다.이렇게 화를 내는 그의 모습은 처음 보았다."시준 씨, 위정 선배가 시은 씨를 잘 설득할 거예요. 우린 우선 가요! 두
"우리 어머니였구나... 너한테 아이를 낳으라고 한 게... 너한테 콘돔에 구멍을 뚫으라고 가르쳐준 게 바로 우리 어머니였어... 너한테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한 게 우리 어머니였다니..."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위정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자기도 모르게 현관을 향해 걸어갔다.그는 지금 당장 어머니를 만나러 가야 했다!정말로 어머니께서 시은에게 그런 압박을 하신 거라면, 그는 주저 없이 어머니와의 관계를 끊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시은이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을 막을 것이다."위정아." 시은이 곧바로 그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어머니를 찾아가면 안 돼... 어머니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야. 너에게 아이를 안겨주고 싶다는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야... 그저 너한테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 나 혼자 벌인 일이야...""네 보답 같은 거 바라지 않아!" 위정이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해버렸다. "나한테 뭘 보답하려고 나와 결혼한 거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이혼해!""싫어... 이혼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시은이 또다시 그를 껴안고 울기 시작했다. "위정아, 누구나 자기만의 소원이나 꿈이 있잖아. 나도 마찬가지야! 내 소원과 꿈은 바로 너의 아이를 낳는 거야. 그걸 이루지 못한다면 난 아마 평생 마음에 걸릴 거야..."진아연과 박시준은 위정의 집에서 나와 차에 올랐다.그의 냉정하고 단호한 얼굴과, 동시에 그의 눈에 어렴풋이 비낀 눈물을 바라보며, 진아연은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시준 씨, 너무 속상해하지 말아요. 내가 시은 씨를 잘 설득해 볼게요." 그녀는 그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시은이는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거야. 시은이가 한번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누구도 말릴 수 없어." 박시준이 잔뜩 쉰 목소리로 대답하며 차에 시동을 걸어 길을 나섰다. "집에 데려다줄게""당신은요?" 그녀가 물었다."회사에 일이 있어. 오늘 좀 늦을 거야." 사실 오늘 그는 매우 바빴다. 그런데도 위정의 전화에 열 일을 제치고 급히
"현이야, 빨리 여기 보렴! 너희 아빠란다!" 김영아가 침대에서 현이를 안아 들고는 카메라를 전면 카메라로 바꾸어 자신과 아이를 비췄다. "현이야, 아빠 모습을 잘 기억해 둬! 너희 아빠는 아주 대단하고 훌륭한 사람이란다..."그런 김영아의 말이 박시준의 귀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그의 시선은 오로지 김영아의 품에 안긴 아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지금 현이는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저 천진난만한 현이의 조그만 얼굴이 그의 차갑고 굳게 닫힌 문을 벌컥 열어버렸다.그는 라엘이가 막 태어났을 때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현이의 얼굴에서 분명히 라엘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시준 씨, 우리 딸은 아주 착해요. 태어난 직후에 몸이 약해서 폐렴에 걸렸었어요. 일주일이 다 되도록 의사가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죠. 그런데 의사가 저한테 그러더군요. 우리 현이는 정말 순해서 별로 울지도 않는다고요, 그래서 회복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고요."여기까지 말하고는 김영아가 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우리 현이는 정말 착하고 순해요... 시준 씨, 저도 시준 씨가 현이를 만나러 올 수 없다는 것 잘 알아요. 그렇지만 가끔씩 영상 통화로라도 현이가 당신을 볼 수 있도록 해주면 안 될까요""안 돼." 박시준은 생각도 하지 않고 그녀의 말을 단칼에 거절했다."그래요... 저도 다 알아요... 성빈 씨가 말해줬어요. 진아연이 당신이 저는 물론 현이도 만나지 못하게 한다고요. 당신이 이렇게 하도록 진아연이 시킨 거라고요..."김영아의 눈물이 아이의 얼굴에 떨어졌다. 그러자 아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시준 씨, 전 강요하지 않을게요. 성빈 씨도 저한테 괜히 A국에 가서 당신을 귀찮게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건 그저 당신을 곤란하게만 할 뿐이라고요. 그러니 제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찾아가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박시준의 표정은 차갑고 진지했다. "아연이는 나한테 그런 강요한 적 없어. 모든 것은 내 결
게다가 박시준은 아직까지도 영상 통화를 끊지 않았다.그녀는 더욱 확신했다. 박시준은 분명 현이에게 마음이 끌린다고. 그것도 아주 깊은 마음이 말이다.핏줄이 당기는 건 누구도 막을 수 없다."시준 씨, 방금은 고의가 아니었어요. 또다시 지금처럼 자제력을 잃는 일은 없을 거예요. 전 현이를 잘 돌볼 거고, 잘 키워낼 거예요." 김영아가 그에게 약속했다."늦었어, 얼른 가서 아이 재워!" 박시준은 이 말을 끝으로 영상 통화를 끊었다.그는 복잡한 마음에 휴대폰을 꽉 쥐었다.예전에 사진으로만 보았을 땐, 이 정도의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영상 통화 속 현이의 행동 하나하나는 그의 시선과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아 버렸다.이성이 막아서지 않았다면, 방금 엉엉 우는 현이를 본 순간 그는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현이 곁으로 가, 현이를 데리고 와버렸을 것이다.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가 현실로 돌아왔다.조지운이 문을 열고 들어와 커피 한 잔을 그의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대표님, 괜찮으십니까?"아까 회의 중, 그는 갑자기 전화를 받자마자 자리를 떠나 버렸다.급한 일이 아니었다면, 그가 그렇게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나버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시은이가 임신했어." 그가 커피잔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대답했다. "그런데 아이를 지우지 않고 기어코 낳겠다는군."그의 말에 조지운의 얼굴이 굳어졌다. "시은 씨는 왜 그런 짓을 하겠대요? 위정 씨는 또 어떻고요... 왜 그렇게 조심하지 않은 거죠?"박시준이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위정은 시은이 말이라면 모두 다 들어주니까!""... 그건 그렇죠. 위정 씨가 그렇게 잘해주지 않았다면, 시은 씨가 대표님 곁을 떠날 생각도 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조지운이 한숨을 크게 내쉬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정말로 아이를 낳도록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지금 시은이는 내 말이 귀에 들리지 않아."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평범한 사람으로 대해달라던 시은을 떠올리자, 박시준은 마음이 아려 왔다. "그래서
박시준은 그의 상상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도대체 네 머릿속에 뭐가 든 거야? 성빈이 그렇게 여자에 굶주린 사람처럼 보여?"조지운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김영아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줄곧 무시무시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김영아는 대표님과 막 결혼을 한 순간부터 몰래 아이를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자기 아버지를 죽이기로 결심하기도 했죠. 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짓을 꾸밀 엄두도 내지 못할 겁니다. 김영아는 분명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사람이에요.""그래서, 성빈이 김영아에게 넘어가 내게 맞서기라도 할까 걱정이다, 이 말이야?""대표님께 맞서는 게 아니라, 대표님을 유혹하려 하겠죠." 조지운이 말했다. "김영아는 지금껏 대표님을 향한 마음을 숨긴 적이 없지 않습니까."박시준이 커피잔을 들어 천천히 한 모금 마시며 대답했다: "성빈이 나를 배신할 일은 없어.""맞습니다. 제 쓸데없는 걱정이죠. 사실 김영아가 대표님의 아이를 데리고 있는 생각에 항상 어딘가 불안했거든요. 아이의 양육권을 가질 수 있다면 마음이 좀 놓일 텐데 말이죠." 조지운이 말했다. "하지만 대표님의 입장도 잘 압니다. 대표님은 분명 그 아이를 원하지 않으시겠죠."오늘까지만 해도, 정말로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더구나 확고하게 믿고 있기도 했다. 자기가 그 아이를 원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그러나 김영아와의 영상 통화에서 두 눈으로 직접 그 아이를 보게 되자, 그의 결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김영아가 그 아이를 잘 돌보지 않으면, 내가 그 아이를 빼앗아 올지도 모르지." 박시준이 그의 생각을 밝혔다.조지운이 콧대 위의 안경을 밀어 올리며, 자기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귀를 의심했다."대표님, 정말로 그 아이를 빼앗아 오기라도 하시면... 아이는 누가 키우고요?""유모를 찾아야겠지." 그가 대답했다. "내 곁에 둘 순 없어.""대표님, 바른 말씀 한마디만 드리겠습니다. 아연 씨는 이번에 대표님을 정말 너
"미안요해요, 난 그렇게 관대하신 부모님을 가져본 적이 없거든요. 부모님의 사랑을 받은 적도 없고. 그러니 지금 내 눈에 박시준의 행동은 그저 역겨울 뿐이에요. 지금 박시준의 행동이 양다리를 걸치는 것과 다를 게 뭐죠?" 마이크가 잔에 와인을 따라 한 모금 마시더니, 술잔을 쾅 하고 내려놓고 말을 이었다. "내가 박시준을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김영아에게 본때를 보여줄 순 있죠!"조지운이 깜짝 놀라 말했다. "죽고 싶어서 그래요? Y국은 김영아의 구역이야...""김형문은 이미 죽고 없는걸요! 그러니 Y국은 더 이상 김씨 일가의 구역이 아닌지 오래라고요!" 마이크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김씨 일가의 시대는 끝났어요!""그렇다고 해도, 괜히 가서 김영아를 괴롭힐 것 없잖아요! 지금 김영아는 혼자가 아니예요, 막 태어난 아이도 있다고요. 그들의 일은 그들이 알아서 하게 둬요! 우리 대표님이 정말로 그 아이를 빼앗아 오겠다고 결심하면, 분명 그걸 진아연 씨에게 숨길 수 없을 거예요. 그때 진아연 씨가 스스로 결단을 내리겠죠!""젠장! 왜 항상 아연이만 괴로워야 하죠! 도대체 왜?!" 마이크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조지운은 그가 난동이라도 부릴까, 곧바로 그를 다시 의자에 앉혔다."마이크,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마요. 내가 한 말들을 진아연 씨한테 전해서 두 사람을 헤어지게 하면, 우리한테 좋을 게 뭐가 있어요? 더구나 대표님이 정말로 그 아이를 데리고 온 것도 아니잖아요. 대표님 말은 김영아가 그 아이를 학대하거나, 잘 돌보지 못한다면 데리고 오겠다는 뜻이었어요... 그 아이는 김영아의 혈육이기도 해요. 그러니 김영아도 그런 잔인한 일을 하진 못할 거예요."조지운이 그를 진정시켰다.마이크는 손가락으로 미간을 문지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박시준의 별장.오후 8시.검은색 롤스로이스가 천천히 별장 정원에 들어섰다.박시준이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 방을 지나가던 순간, 진아연이 라엘이를 재우는 소리가 들렸다.그래서 그는 우선 방으로 돌아가 샤워했다.
박시준은 마음이 좀 홀가분해졌다.두 사람은 침대에 누웠고 진아연은 불을 껐다.그녀는 눈을 뜬 채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박시준도 분명 잠에 들지 못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있었다.오늘 오후, 진아연은 시은이를 설득하지 못했다. 위정은 그녀를 배송할 때 시은이가 이렇게까지 된 이유는 다 자신의 어머니 때문이라고 말했다.그녀의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비록 위정이 어머니를 찾아가 시은이를 설득하라고 하겠지만 진아연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게다가 그녀는 박시준에게 감히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었다.박시준에게 사실대로 얘기한다면, 박시준이 위정 어머니를 찾아가 일을 번거롭게 만들 수도 있다. 이렇게 일이 커지면 점점 더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아연아, 무슨 생각하고 있어?" 그는 창밖의 달빛을 빌어 그녀가 눈을 뜨고있는 것을 보았다.그녀가 이렇게 눈을 뜨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이런 저런 생각들 하다보니... 머릿속이 복잡하네요." 그녀는 그를 향해 몸을 돌리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전에 어렸을 때는 모든 걸 다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불과 10년이란 짧은 시간 안에 마음가짐이 이렇게 하늘과 땅처럼 뒤바뀔 줄은 몰랐어요.""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그는 위로해 주었다."비관적인 게 아니라,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원래는 의학 공부를 하면 제 어머니를 잘 챙겨드릴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어머니가 오래오래 제 곁에 있을 줄 알았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저를 떠났어요. 소정이도 평생 온실 속의 공주처럼 행복하게 살 줄 알았는데, 운명은 그녀에게 보통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었어요. 시은이도 구사일생으로 남은 인생은 평화롭고 행복할 줄 알았는데..."그녀가 머리맡에서 속삭이는 얘기를 들으며 그의 기분은 유난히 무겁고 우울해졌다.그녀는 박시준이 아무 얘기라도 할 줄 알았지만 그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갑작스러운 침묵에 그녀의
부재중 전화도, 읽지 않은 메시지도 없었다.국내에서 그를 연락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는 약간의 상실감과 함께 조금 슬펐다.그가 Y국에 온 지 이미 하루가 지났는데, 박시준은 그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단 말인가? 자신은 신경 쓰지 않는다 해도 현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그는 욕실에 들어가 세수를 하고 방에서 나왔다.김영아는 거실에서 아기와 놀고 있었다.현이는 아기침대에 누워 말똥말똥 눈을 깜빡였다, 김영아는 작은 장난감을 가지고 아기의 눈 앞에서 아른거렸다.매우 훈훈한 그림이였다."성빈 오빠, 일어나셨어요?" 김영아는 성빈이를 보고 바로 장난감을 내려놓았다. "아주머니한테 시원한 국 끓이라고 했어요, 일단 따뜻한 국 좀 드세요!""봉민이는?" 성빈이는 아기침대 옆으로 걸어가 현이를 힐끗 보았다.현이는 어제와 같이 여전히 인형처럼 귀엽고, 천진난만하고 말랑말랑한 솜뭉치 같았다. 몸에서 풍기는 술 냄새만 아니었어도 성빈이는 분명히 아기를 품에 안았을 것이다."어젯 밤에 기사님에게 봉민 씨 데려다 주라고 부탁했어요." 김영아가 답했다. "그가 여기에 사는 것도 아니구요.""음... 사실 봉민이랑 결혼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그 녀석 너 많이 좋아한다며.""성빈 오빠, 혹시 시준 씨가 오라고 했어요? 비록 오빠는 아니라고 했지만 전 이미 느꼈어요." 김영아는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제 저더러 아이의 성을 제 성으로 바꾸라고 하고 A국에 데려가지 말라고 하신 거 저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요. 근데 오늘은 아침도 드시기 전에 저더러 봉민 씨에게 시집가라고 설득하시는 거예요."성빈이는 당황해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진짜 시준이가 오라고 한 거 아니야. 아이 보려고 온 거야.""아기가 보고 싶으면 보여드릴게요. 오빠도 저 봉민 씨에게 시집가라고 설득하실 필요 없어요. 자꾸 그러시면 제가 시집도 못 가는 거 같잖아요.""김영아, 그런 뜻이 아니야. 네가 원한다면 다른 남자와 결혼해도 괜찮아. 난 단지 네가 아까운 청춘을 시준이한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