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는 싸늘한 화원에 앉아 멍을 때렸고 날은 점점 어두워졌지만 그는 시간의 흐름을 눈치채지 못한 듯 조각상처럼 그곳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차가네 유일하게 남겨진 하인 복이는 일상 순시를 하다 여기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고 눈여겨보고 나서야 그 사람이 은수라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일하는 요 몇 년 동안 은수는 줄곧 복이가 이곳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처음에 그녀는 왜 은수처럼 돈이 많은 사람이 직접 화원을 가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야 그녀는 이것이 그가 한 사람을 그리워하는 특유의 방식이라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도련님, 날도 이미 늦었고 도련님께서는 아직 식사를 하지 않으셨잖아요. 밖은 추우니까 이만 돌아가세요. 남은 일은 제가 다 할게요."은수는 그녀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복이는 자신이 소 귀에 경 읽기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쉬며 나갔다.그러나 은수의 상태가 좀 이상한 것을 보고 복이는 그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육무진 도련님, 오늘 은수 도련님의 기분이 엄청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상태가 좀 이상한 것 같네요. 이곳에 와서 도련님 좀 말려 주셨으면 해서요."무진은 또 어떻게 요 몇 년 동안의 은수의 상황을 몰랐을까. 그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승낙했다."그래, 알았어."......수현은 택시를 타고 회사에 가서 먼저 보도를 했다.수현이 외국에서 돌아왔다는 것을 알고, 회사의 상사는 즉시 그녀에게 일을 안배하지 않고, 그녀에게 3일의 시간을 주며 먼저 잘 휴식한 뒤 출근하러 오라고 말했다.수현은 회사가 통일적으로 배치한 호텔을 거절하고 직접 가연에게 연락했다.수현은 돌아오기 전에 이미 가연에게 잠시 그녀의 집에서 묵겠다고 말했다.이렇게 여러 해 동안 만나지 못했으니 그녀들도 제대로 한 번 모이고 싶었다.수현은 회사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가연의 집으로 갔다.택시에 앉은 수현은 창밖의 풍경을 보면서 이 도시 전체가 그녀가 떠난 후 많이
수현은 짐을 끌고 차에 타며 가연이 사는 곳에 도착했다.차 문을 열자마자 가연은 얼른 달려들어 그녀와 포옹을 했다.두 사람은 그동안 한 번도 연락을 끊은 적이 없었지만 만나지 못하고 그냥 이렇게 전화로 연락할 수밖에 없었으니 이번에 만날 수 있어서 너무나도 기뻤다.두 사람은 밖에서 잠시 얘기를 나눈 뒤 수현은 가연에게 자신의 스케줄을 말했다.수현이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연은 무척 기뻐했다. 잠시 후, 가연은 옆에 놓여 있는 트렁크를 보았다."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너무 기뻐서 널 안으로 데려가는 것도 깜박했네."가연은 얼른 가서 트렁크를 끌고 수현을 집으로 데려갔다.그녀는 깨끗이 정리된 방 하나를 가리켰다."수현아, 넌 이 방에서 지내면 돼. 안의 장식은 마음에 들어?"수현이 온다는 것을 듣고 가연은 특별히 방을 미리 치우며 모두 수현이 평소에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로 장식했다."고마워, 가연아, 난 너무 좋은 걸."이렇게 열심히 꾸민 방을 보며 수현은 감동을 엄청 받았으니 어떻게 싫어할 수 있겠는가.가연은 그녀의 대답을 듣고 방긋 웃었다."마음에 들면 돼. 오늘 오랫동안 비행기를 탔으니 피곤하지? 일단 가서 좀 쉬어. 저녁에 내가 축하하는 의미로 네가 전에 가장 좋아했던 그 레스토랑에 데리고 갈게."이 말을 듣자 수현은 오히려 좀 쑥스러웠다. 그녀는 이번에 돌아오며 가연의 집에서 지내는 데다 또 가연더러 한 턱 내라고 하다니."수현아, 거절할 생각하지 마. 나더러 한 턱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네가 나를 친구로 여기지 않는 거야."가연이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수현도 더 이상 흥을 깨고 싶지 않아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가연은 한 편으로 약간 실망했다."이번에 유담이도 데려올 줄 알았는데, 난 유담이가 엄청 보고 싶었다고. 심지어 용돈까지 엄청 준비했는걸."가연은 평소 매우 바빴기 때문에 시간을 내서 외국에 가서 그녀의 귀여운 양아들을 직접 보지 못하고 수시로 영상을 볼 수밖에 없었다.그 녀석은 사진
무진은 그가 마침내 자신을 학대하는 행위를 그만둔 것을 보고 재빨리 그에게 깨끗한 옷을 갈아입으라고 재촉하고서야 차를 몰고 수현이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레스토랑에 갔다.은수는 이 일을 알게 된 후, 밥을 먹으러 나오면 반드시 이곳에 와야 했다. 그래서 무진도 차차 이 가게의 단골손님으로 되였다.무진은 은수를 태우고 익숙한 목적지를 향해 달려갔다.......수현은 방에서 잠시 잠을 자고 일어난 다음 또 샤워를 한 후 정신이 들었다.그녀는 시간이 다 된 것을 보고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가연은 벌써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냥 수현이 자는 것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푹 쉰 것 같아 가연은 기쁘게 입을 열었다."가자, 이미 예약해 놨어."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연과 함께 차를 타고 레스토랑에 갔다.룸에 앉자 수현은 다시 인테리어를 한 이 레스토랑을 보며 추억에 잠겼다.예전에 혜정이 아직 아프지 않았을 때, 매년 기념일에 그녀들은 이곳에 와서 축하하곤 했다.수현은 이곳에서 수많은 아름다운 추억을 남겼으니 그녀는 들어오자 익숙하면서도 친절함을 느꼈다.가연은 수현이 즐거운 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입을 열어 그녀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의 입맛은 자신이 잘 알고 있었으니까.가연은 수현이 좋아하는 요리 몇 개를 주문한 뒤 또 새로운 요리 몇 개를 주문했다.얼마 기다리지 않아 음식은 차츰 올라오기 시작했다.음식 냄새를 맡은 수현은 정신을 차렸다."화장실에 가서 손 좀 씻고 올게."가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빨리 가라고 했다.수현은 화장실에 가서 손을 깨끗이 씻고 나가려던 참에 은서가 보낸 문자를 받았다. 그는 자신에게 가연의 집에 잘 찾아갔는지, 돌아가면서 어디 불편한 곳은 없는지에 대해 물었다.은서가 최근 매우 바쁘다는 것을 알고 수현은 그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걸으면서 답장을 보냈다."이미 가연 집에 도착해서 지금은 밖에 나와서 밥 먹는 중이야. 난 별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타자를 마친 수현은 문
수현은 남자의 말을 듣고 다소 뻘쭘하다고 느꼈지만 방금 확실히 자신이 조심하지 않아서 그와 부딪쳤기에 그녀는 재빨리 손을 놓았다."미안해요, 방금 조심하지 못해서 그쪽과 부딪쳤네요. 정말 미안해요."수현은 고개를 숙이고 진심으로 사과했지만 남자는 그녀가 사과한 후에도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수현은 더욱 난처해졌다. ‘이 남자 뭐지, 이게 그렇게 화날 일인가?’그녀는 계속 설명을 하려고 고개를 들자,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며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지금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온은수였다!수현은 멈칫했다. 그녀는 뜻밖에도 이렇게 공교롭게 여기서 이 남자를 만날 줄은 전혀 몰랐다.은수는 예전 그대로였다. 얼굴은 조각처럼 완벽해 흠잡을 데가 없었지만 5년 전보다 더 음울해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런 음울함은 그의 잘생김에 손색을 주지 않았고 오히려 우울한 기질을 더해줘 사람들로 하여금 시선을 뗄 수 없게 했다.수현은 잠시 멍하니 있다 마침내 정신을 차렸고, 바로 두 걸음 뒤로 물러나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은수는 그녀의 동작을 알아차리며 바로 수현의 허리를 꽉 잡아 그녀가 도망갈 수 없게 했다.그녀의 온도를 느끼며 은수는 비로소 약간의 실감이 났다.이 모든 것은 그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었다.돌아간 지 5년이 됐어야 할 이 여자가 이렇게 생생하게 그의 앞에 나타났다!은수는 눈 한 번도 깜빡이지 않고 이렇게 뚫어지게 그녀를 쳐다보았다.5년이 지났지만 세월은 수현의 얼굴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에게 성숙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아름다움을 더해주었다.늘 걱정이 많았던 예전의 수현에 비해 지금의 그녀는 무척 밝았다.은수의 마음은 무엇인가에 찔린 것 같았고, 짧은 놀라움 후,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가 밀려왔다.그가 고통과 절망에 빠지며 심지어 그녀와 같이 죽으려고 할 때, 수현은 오히려 매우 순조로운 삶을 지내고 있었다.그녀의 모습을 보니, 요 몇 년 동안 그녀는
수현은 이 뺨을 매우 세게 때렸고, 은수는 심지어 반응하지 못했다. 그의 얼굴은 아예 다른 한쪽으로 돌려졌다."당신은 무슨 자격으로 나를 질문하는 거죠? 왜요? 또 한 번 날 죽이려고요?"여자의 원한으로 가득 찬 말에 은수는 수현을 잡고 있던 손을 자신도 모르게 놓았다.수현의 손은 여전히 저렸고 몸은 분노로 부들부들 떨렸다.그녀는 자신이 은수를 때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지만, 화가 치밀어 오르자 통제력을 잃었다.그녀는 마음속으로 또 이 남자에게 보복당할까 봐 걱정했기에 은수가 맞아서 멍해지며 반응이 없는 틈을 타 수현은 몸을 돌려 바로 도망쳤다.은수는 방금 수현의 한으로 가득 찬 눈빛을 생각했다. 그는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으며 한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고 수현은 이 기회를 틈타 이미 종적을 감추었다.이때, 룸에서 밥 먹길 기다리던 무진은 은수가 한참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 주동적으로 사람을 찾으러 나왔다.그는 한 바퀴 찾다가 은수가 한쪽에 멍하니 서 있는 것을 보았다.무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겨우 몇십 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는 왜 또 이러는 것일까?무진은 다가가서야 은수의 얼굴에 빨간 손바닥 자국이 있는 것을 보고 등골이 오싹해졌다.이렇게 큰 도시에서 누가 은수의 신분을 모르겠는가. 그가 바로 이 도시의 왕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누군가가 감히 그를 때리다니...... 그것도 뺨을.도대체 누가 이렇게 겁이 없는 것일까? 미친 거 아니야?"은수야, 괜찮아?" 무진은 잠시 생각했지만 결국 입을 열어 누군지 물어보지 못했다.은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들어 무진을 쳐다보았고 그의 어깨에 한방 날렸다. 무진은 그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라 미처 피하지 못했고 팔을 감싸며 물었다."왜 그래? 아파 죽겠어.""아파? 그럼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는 거지.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니라 그녀가 정말 돌아온 거야."무진이 아프다고 했지만 은수는 그를 아랑곳하지 않고 재빨리 나가서 수현을 찾으려고 했다.그는 그녀
수현이 이미 떠났다는 말에 은수는 약간 실망했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그럼 CCTV 확인 좀 부탁할게요."레스토랑의 CCTV는 일반적으로 외부인에게 함부로 보여주지 않지만, 요구하는 사람은 은수였으니 사장님도 감히 거절하지 못하고 그가 말한 대로 CCTV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은수는 감시실에서 수현이 나오는 화면을 찾고 있었다.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수현이 찍힌 화면을 찾았다.수현이 작은 스크린에 나타나는 것을 본 은수는 처음으로 이렇게 간단한 화면이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설레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그는 홀린 듯 화면에 비친 여자를 쳐다보며 시선 떼기조차 아까워했다.무진은 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5년이나 지난 오늘, 수현에 대한 은수의 집착이 시간에 따라 점차 사라질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은수는 그 여자를 마음속의 집념으로 만들었다니.무진은 수현이 다시 나타난 일이 좋은지 나쁜지조차 몰랐다."은수야, 진정해. 넌 그녀가 지난 5년 동안 어디에 있는지, 또 누구와 함께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녀는 돌아왔다고 해서 너를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겠어?"무진은 은수를 걱정해하며 이성적으로 분석했다.그는 은수가 5년 전처럼 더 이상 고집을 부리며 큰 잘못을 저지르게 하고 싶지 않았다.만약 수현이 이미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면, 두 사람은 차라리 이대로 헤어지고 각자 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무진의 말에 은수는 서서히 냉정해졌다.그는 수현을 보자마자 너무 흥분해서 심지어 그날 수술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생각하지 않았다.지금 생각해 보면 수술실에서 있었던 일들은 허점 투성이였다.어쩌면 그녀는 죽은 척하고 자신에게서 도망쳤을지도.그럼 요 몇 년 동안 그녀는 은서와 외국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단 말인가?은수의 안색은 점차 어두워졌다. 사실 앞에서 그는 자신이 그때 누군가한테 단단히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그는 매일 고통스럽게 하루하루를 지내왔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자신이
그러나 가연은 그녀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고 손을 내밀어 수현의 이마를 만졌다. 온도는 정상이었지만 수현은 여전히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수현아, 너한테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야? 안색이 안 좋은데."방금 레스토랑에 있을 때, 가연은 수현이 엄청 조급해하는 것을 보고 이유를 묻지 않았지만 지금은 집에 돌아왔으니 당연히 똑똑히 물어봐야 했다.수현은 입술을 오므리고 눈빛은 막막했다."나 온은수 만났어, 바로 그 레스토랑에서!"수현은 자신이 화장실 갔을 때 일어난 일을 모두 가연에게 말했다.가연은 그녀가 뜻밖에도 은수를 만났다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S시는 한국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로서 사람도 너무 많아 서로 마주치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그들은 공교롭게도 이렇게 부딪쳤다.이것은 정말 우연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가연조차도 감탄했다. 이 두 사람이 이렇게 얽히는 것은 도대체 인연일까 아니면 악연일까?가연은 요 몇 년 동안 가끔 수현의 “묘비”에 가서 제사를 지내곤 했는데, 그녀는 은수가 수현이 좋아하는 것을 가득 사와 하루 종일 묘비 앞에 앉아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시간이 오래되자 가연도 은수를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다. 필경 그는 시종일관 이렇게 찾아오는 것을 견지할 수 있었으니 그도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니었다.그때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오해가 있었는지도.그러나 가연도 수현 앞에서 주동적으로 이런 일들을 꺼내지 않았다.그녀는 수현의 절친으로서 당연히 수현의 각도에서 출발해야 했다."그럼 기분은 어때? 이런 느낌이 싫으면 그냥 돌아가고."가연은 수현을 위로했고 수현은 고개를 저었다.회사 쪽에서 이미 안배를 마쳤으니 그녀가 이대로 가버리면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데다가, 그녀는 이번에 돌아오면서 아직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 제사를 올리지 않았으니 이대로 가기엔 너무 아쉬웠다.방금 레스토랑에서 은수를 보았을 때, 수현의 마음속에는 분노 말고 두려움이 있었다.그날 은수의 독단적인 잔인한 행위는 그녀의 마음속에 트라
말하면서 수현은 눈빛이 차가워졌다.외국에서 지내는 동안, 그녀는 수업 듣고, 출근하는 것 외에 특별히 여자 킥복싱 코치를 찾아 몇 년 동안 호신술을 배웠다.그녀의 실력은 일반 남자들은 그녀를 가까이할 수 없고, 심지어 그녀의 반격에 머리를 안고 도망갈 정도였다.은수를 만나기만 하면 자꾸 이렇게 도망가는 이유는 그녀가 완전히 당황해서 머리가 새하얘지며 모든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그렇지 않으면, 오늘 그녀는 은서에게 간단한 뺨 한 대 때리는 게 아니라 기필코 그를 몇 번 더 두들겨 패며 매운맛을 보여줬을 것이다.가연은 원래 수현이 이 일로 기분이 가라앉고 놀라고 두려워할까 봐 걱정했다.그러나 수현의 이 확고한 모습을 보고 그녀는 안심했다.보아하니, 이 5년 동안 수현은 헛되이 보내지 않았고 그녀는 이미 그때의 그 연약하고 누구나 괴롭힐 수 있는 그런 약한 여자가 아니었다."그래, 네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상 두려워할 것도 없지. 온은수도 너무 지나친 일을 하지 못할 거야."가연은 수현을 위로한 다음 또 얼른 그녀더러 쉬라고 재촉했다.수현은 거절하지 않고 욕실에 들어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그녀는 이미 내일의 스케줄을 정했고 유담이를 데리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에게 제사를 올리려면 일찍 자야 정신이 날 수 있었다.샤워를 한 뒤 수현은 머리를 닦으면서 유담에게 영상 전화를 걸었다.그녀는 떠나기 전에 매일 그에게 굿나이트를 하겠다고 약속했으니 비록 오늘은 다른 일 때문에 시간이 좀 늦었지만 아이에게 한 말은 반드시 지켜야 했다.통화가 연결되자 유담의 작은 얼굴을 보며 수현의 원래 초조한 마음은 많이 차분해졌다.유담은 수현이 피곤해하는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엄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아요."수현은 기분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유담은 예민한 아이라서 늘 섬세한 것들을 주의하곤 했다."아니, 그럴 리가. 엄마는 그냥 여기로 오느라 좀 피곤해서 그래. 그리고 우리 유담이도 너무 보고 싶고."수현은 멈칫하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