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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1화

Aвтор: 꽃길
“왜 그러는 거예요?”

나는 목이 멘 듯한 목소리로 겨우 물었다.

“응?”

헤르나는 내가 뭘 묻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했고 나는 그의 깊고 어두운 눈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왜 저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건데요?”

말을 끝내자 나는 목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헤르나 씨, 당신이 저한테 잘해주는 건 솔직히 좀 이상해요. 우리는 친하지도 않고 저는 당신이 다른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 이용하는 도구일 뿐이잖아요...”

그러자 헤르나가 피식 웃었다.

“그래서 내가 너한테 잘해주는 게 문제야?”

“네, 그래서 더 불안해요.”

나는 직설적으로 말했다. 세상에 아무 이유 없이 사랑이나 증오를 품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자 헤르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쓸모가 있으니까.”

“쓸모라니, 무슨 쓸모요?”

나는 가슴이 조여드는 느낌이었지만 헤르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끈질기게 묻는구나. 뭐든 끝까지 캐내는 타입이야, 너는.”

그의 태도가 여전히 여유롭고 가벼울수록, 내 긴장감은 더욱 커졌다.

“헤르나 씨, 제발 솔직히 말해줘요. 더는 돌려 말하지 말고요.”

그의 미소가 조금씩 사라졌고 손을 들어 내 뺨에 살짝 닿았다. 손끝이 뺨을 스치자 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마치 차가운 뱀이 몸을 감싸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한 발 물러서 그의 손길을 피했고 그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가 어떤 쓸모가 있는지는, 그날이 오면 알게 될 거야.”

끝까지 답을 주지 않는 그의 태도에 나는 손을 꽉 쥔 채 답답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자, 이제 가자.”

그는 손짓으로 나를 재촉했지만 내가 움직이지 않자 그가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여긴 마치 호랑이 굴 같은 곳이야. 정말로 안 나갈 거야?”

이대로 여기에 남았다가는 분명 브라운에게 어떤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헤르나가 오늘 나를 이곳에 데리고 온 이유가 브라운을 경고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알겠지만 동시에 브라운의 분노를 나에게 집중시키려는 의도도 느껴졌다.

다른 선택이 없다는 걸 깨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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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움은 있지만 원망이 더 크다.하지만 내 사랑과 미움이 이 여인과 무슨 상관이 있겠나. 용설아는 나를 경계하는 마음에 물어보았고 혹시라도 내가 진정우와 다시 얽히는 것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나는 담담히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용설아 씨, 우리 서로 잘 알지도 못하잖아요. 내가 누굴 사랑하든, 누굴 미워하든 그쪽이 알 바는 아닌 것 같은데요. 그리고 내가 진정우를 미워하든 말든, 그건 본인이 가장 잘 알겠죠.”“정우 씨는 알겠죠. 하지만 난 모르잖아요.”용설아는 뜻밖에도 집요하게 물었다.나는 그녀의 강단 있는 태도를 보며 가만히 말했다.“용설아 씨, 설마 내가 다시 진정우랑 엮일까 봐 걱정하는 거라면 안심해도 돼요. 설령 그가 무릎 꿇고 나한테 애원한다고 해도, 더는 돌아보지 않을 거예요.”“지원 씨는 정말 냉정하시네요.”용설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약간의 조롱 섞인 어조로 말했다.나도 입가를 비틀며 웃음을 흘렸다.“그럼요. 아니면 뭐, 용설아 씨가 나랑 경쟁이라도 하고 싶어요?”내 말을 듣고 그녀가 대답하기 전에, 나는 말을 덧붙였다.“그럴 기회, 아마 평생 없을 거예요.”그렇게 말을 남기고 돌아서는데 어느새 다가와 있던 진정우와 눈이 마주쳤다.그는 거기 서서 어두운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가 이미 내 말을 분명 다 들었을 것이고 나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내가 그를 사랑했을 땐 그는 내 전부였지만 이제 그가 나를 버린 이상, 그는 내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란 걸 알려주고 싶었다.잠시 눈을 마주치고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들어 지나쳤다.하지만 복도 끝에서 한 발짝도 더 내디딜 수 없었다. 가슴 한구석이 답답하게 조여 와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내가 그를 찌를 때 나 자신도 깊이 상처 입고 있었다.“기분이 이상해?”뒤에서 들려온 용설아의 목소리가 내 생각을 끊었다. 그녀와 진정우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고 나는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아 몸을 한쪽 구석으로 숨겼다.진정우의 대답은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73화

    “그건 경기가 끝난 후에 이야기하자.”헤르나는 흥미롭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는 누구와도 농담을 주고받는 것을 즐기는 사람 같았다.“자, 우리 앉을 자리나 찾아볼까?”그는 나를 데리고 자리로 향했다. 그런데 우리가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이번에는 진정우가 용설아와 함께 나타나 바로 우리 앞줄에 앉았다. 진정우와 용설아 옆에는 강유형도 함께 있었다.이 배치는 강유형이 일부러 이렇게 정리한 것이 분명했다. 나는 얼마 전에 진소영과 소지훈에게 줬던 입장권이 떠올랐지만 경기가 곧 시작될 시간이 다가왔음에도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갑자기 걱정이 밀려왔는데 핸드폰이 고장 나서 진소영에게 연락할 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진정우에게 부탁해 보는 것이 가장 빠르겠지만 나는 그에게 먼저 말을 걸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다행히 나는 진소영의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었다. 그래서 전화를 빌릴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경기장을 나왔다.“윤지원 씨!”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용설아가 서 있었다. 나는 그녀와 직접 만난 적이 없었는데 그녀는 내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아마도 나와 진정우의 과거를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무슨 일이신가요, 용설아 씨?”나는 최대한 무표정하게 대답했다.“정우 씨가 왜 여동생이 안 보이느냐고 걱정해서요.”그녀의 말에 내 가슴이 답답해졌다.“자기 여동생을 찾으려면 본인이 직접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나는 불쾌함을 숨기지 않고 대꾸했지만 그녀는 나의 반응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그러게요. 그런데 지원 씨가 여동생을 돌봐준다고 믿고 있나 봐요. 그래서 지원 씨에게 물어보라고 했어요.”그녀의 말투는 여유롭고 차분했지만 나는 너무 불쾌하고 화가 났다.“저도 몰라요. 그래서 지금 전화를 빌려 물어보려고 하던 참이었어요.”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그녀는 약간 놀란 듯 보였지만 여전히 웃음을 띠며 말했다.“핸드폰이 없으세요?”그녀의 물음에 마음이 또다시 쓰라렸다. 그녀가 모른다면 진정우 역시 모른다는 뜻일 것이다. 결국,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72화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마침 그 순간, 진정우도 고개를 들어 이쪽을 보았다. 비록 차창 너머로 서로를 보고 있었지만 마치 그의 시선이 내게 닿은 것 같았고 가슴은 순간적으로 날카로운 비수에 찔린 듯 아팠다. 하지만 그 시선은 오래 가지 않았다. 옆에 있던 용설아가 그의 주의를 끌었고 차창을 통해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정우야, 우리 안으로 들어가자.”그는 내 쪽에서 시선을 거두고는 용설아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그 광경에 가슴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는지 나는 즉시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발이 땅에 닿자, 헤르나도 내 뒤를 따라 차에서 내리며 물었다.“가서 인사라도 하고 싶어?”나는 그의 반응을 보고 싶었다. 다른 여자를 데리고 나를 지나칠 때 그가 과연 미안함을 느낄지, 아니면 그동안 내게 했던 말들을 기억이나 할지 궁금했다.사실, 이것은 미련의 문제가 아니었고 내가 보고 싶은 건 단지 그의 진심이었다.“진!”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헤르나는 이미 내 마음을 읽은 듯 진정우를 불렀다.그리고 내 손을 잡고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진정우는 멈춰 섰고 용설아와 함께 이쪽을 바라보았다. 내 심장은 긴장과 혼란으로 빠르게 뛰었고 그 속에는 그에게 일말의 복수를 원하는 감정도 섞여 있었다.‘나를 버렸다고? 그래도 나는 멀쩡히 잘 살고 있어. 더구나 내가 누구에게 보호받고 있는지 똑똑히 보여줄 거야.’헤르나는 나를 데리고 진정우와 용설아 앞으로 가 먼저 입을 열었다.“진, 또 만났군.”진정우가 그를 다치게 했고 그의 자존심을 짓밟은 적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 헤르나의 말투에서는 그런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정말 강단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그저 겉으로만 그렇게 보이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진정우는 변함없는 차가운 얼굴로 대답했다.“당신은 내가 보고 싶지 않을 텐데.”헤르나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난 널 다시 보길 기대했어.”그는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맞지, 꼬마야?”진정우의 눈에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71화

    “왜 그러는 거예요?”나는 목이 멘 듯한 목소리로 겨우 물었다.“응?”헤르나는 내가 뭘 묻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했고 나는 그의 깊고 어두운 눈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왜 저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건데요?”말을 끝내자 나는 목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헤르나 씨, 당신이 저한테 잘해주는 건 솔직히 좀 이상해요. 우리는 친하지도 않고 저는 당신이 다른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 이용하는 도구일 뿐이잖아요...”그러자 헤르나가 피식 웃었다.“그래서 내가 너한테 잘해주는 게 문제야?”“네, 그래서 더 불안해요.”나는 직설적으로 말했다. 세상에 아무 이유 없이 사랑이나 증오를 품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자 헤르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쓸모가 있으니까.”“쓸모라니, 무슨 쓸모요?”나는 가슴이 조여드는 느낌이었지만 헤르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정말 끈질기게 묻는구나. 뭐든 끝까지 캐내는 타입이야, 너는.”그의 태도가 여전히 여유롭고 가벼울수록, 내 긴장감은 더욱 커졌다.“헤르나 씨, 제발 솔직히 말해줘요. 더는 돌려 말하지 말고요.”그의 미소가 조금씩 사라졌고 손을 들어 내 뺨에 살짝 닿았다. 손끝이 뺨을 스치자 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마치 차가운 뱀이 몸을 감싸는 듯한 기분이었다.나는 한 발 물러서 그의 손길을 피했고 그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네가 어떤 쓸모가 있는지는, 그날이 오면 알게 될 거야.”끝까지 답을 주지 않는 그의 태도에 나는 손을 꽉 쥔 채 답답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자, 이제 가자.”그는 손짓으로 나를 재촉했지만 내가 움직이지 않자 그가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여긴 마치 호랑이 굴 같은 곳이야. 정말로 안 나갈 거야?”이대로 여기에 남았다가는 분명 브라운에게 어떤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헤르나가 오늘 나를 이곳에 데리고 온 이유가 브라운을 경고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알겠지만 동시에 브라운의 분노를 나에게 집중시키려는 의도도 느껴졌다.다른 선택이 없다는 걸 깨닫고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70화

    ‘결벽증 있다더니 이게 무슨 행동이야?’헤르나는 안았다가 이제는 손까지 잡고 있었다.나는 손을 뿌리치려다 병실 안을 보고 움직임을 멈췄다.침대에 누운 사람은 진정우가 아니었고 그는 나를 보자마자 얼굴을 찌푸리며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왜 저 여자를 데리고 온 거야?”헤르나는 내 손을 꼭 잡은 채 천천히 걸어가 소파에 앉았다.“경기 데려가기 전에 들른 거야. 그런데 상태는 좀 어때?”그 말에 브라운의 얼굴은 한순간에 창백해졌다. 헤르나는 일부러 그의 상처를 그것도 가장 굴욕적인 상처 들춰내고 있었다.브라운이 다쳤다는 이야기를 떠올리자, 나는 본능적으로 그 부위를 떠올렸고 솔직히 조금 민망했다.“복수는커녕, 이 여자를 데리고 와서 날 조롱하려고? 도대체 무슨 꿍꿍이야?”브라운의 분노가 병실에 울려 퍼졌지만 헤르나는 태연히 대답했다.“그냥 알리러 온 거야.”그는 내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이제 이 사람은 내 사람이니까 건들지 마.”브라운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그럼 난 괜히 당한 거야?”“네가 당한 건 네가 자초한 일이야. 이 사람과는 아무 상관 없어. 그리고 널 다치게 한 사람도 얘가 아니야.”헤르나는 단호하게 말했고 그제야 나는 헤르나가 나를 이곳에 데려온 이유를 깨달았다.“하지만 모든 게 저 여자 때문이었잖아.”브라운은 여전히 적대적인 시선으로 나를 쏘아보며 말했다.“그건 네가 먼저 건드렸기 때문이지.”헤르나는 냉정하게 말했고 그의 말에 브라운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브라운은 입술을 꾹 다문 채 푸른 눈동자로 나를 쏘아보았다.“그래도 저년이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거야. 도대체 왜 신지태의 문제에 얽히려 한 거야?”그의 말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지.’나는 단순히 신지태가 걱정돼서 관여했을 뿐이었는데 이런 상황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러다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혹시 강유형이 일부러 날 이런 상황에 끌어들인 건 아닐까?’그 생각은 스쳐 갔지만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69화

    나는 헤르나의 말을 듣고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진정우가 용설아와 함께 온 건가? 이제 이렇게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된 걸까? 항상 붙어 다니는 거야?’헤르나는 내 표정이 잠시 멍해진 것을 보고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역시 네 눈이 네 입보다 솔직하네.”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병원 입구 쪽으로 걸어갔고 나는 숨 막히는 답답함을 삼키고 그의 뒤를 따랐다.내가 이곳에 올 때는 헤르나에게 기절당한 채 끌려왔지만 이제는 그의 고급 차량에 앉아 창밖 풍경을 감상하며 이동하고 있었다.하지만 창밖의 풍경은 또렷이 기억나는데 내 마음속은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차가 멈추자 나는 옆에 앉은 헤르나를 바라보며 물었다.“여기 병원에 왜 온 거죠?”“한 사람을 만나러.” 헤르나는 내 긴장한 모습을 흘깃 보며 말했다.“누구를요?” 내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가까이 다가와, 깊고 어두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이렇게 긴장하는 걸 보니, 진정우를 생각하고 있는가 봐?”나는 진정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긴장하고 있었다.“이미 헤어졌잖아. 미워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왜 그를 신경 써?”헤르나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고 나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지만 억지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대답했다.“헤어졌다고 해서 신경을 안 쓴다는 법은 없잖아요.”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시 동안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마치 내 마음속까지 꿰뚫어 보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잠시 후, 그는 차에서 내렸다.“그게 진정우인지 아닌지는 네가 가서 보면 알겠지.”나는 차 안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만약 진정우라면 난 가지 않을 거예요.”“왜?” 헤르나가 웃으며 물었다.“그 사람에게는 약혼자가 있잖아요. 내가 전 연인으로 찾아가면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까요.”헤르나는 입가를 살짝 핥으며 웃었다.“선을 잘 지키네. 하지만…… 넌 가야 해.”“가지 않으면요?” 나는 그와 대립하듯 대꾸했다.“그럼 내가 널 안고 갈 거야.”나는 눈이 커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68화

    헤르나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그는 약속한 경기 날이 다가올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날 진정우가 올 거라는 말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하지만 진정우가 오든 오지 않든, 이제는 더 이상 기대하지 않았다.아무리 깊은 사랑이라도 실망이 반복되면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걸, 강유형과 진정우를 통해 뼈저리게 깨달았다.셋째 날 아침, 헤르나가 돌아왔다. 나는 테라스의 흔들의자에 앉아 아침 햇살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는 아래에서 손을 흔들며 나를 불렀다.고개를 돌리니 연한 카키색 재킷과 흰색 캐주얼 팬츠를 입고 손에는 하얀 장미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190cm가 넘는 그의 키와 탄탄한 체격은 마치 톱 모델처럼 보였다.“내려와.”그가 나를 부르자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그는 꽃다발을 건네며 나를 가볍게 안으려 했다.그때 나는 그를 밀어내며 말했다.“친하지도 않은 남녀 사이에 이건 아닌 것 같네요. 함부로 그러지 마세요.”나는 순간 뭔가 깨달았다. 헤르나는 나에게 유난히 관대한 것 같았고 내가 반항적이고 제멋대로 굴수록 그는 오히려 나를 더 흥미롭게 대했다. 아마도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늘 남들의 복종에 익숙해져서, 가끔 말을 안 듣고 반항하는 사람을 만나면 신선하게 느끼는 모양이다.“하하, 참 쑥스러움이 많네.”그는 웃음 가득한 얼굴로 소파로 걸어갔다.나는 그를 따라가며 물었다.“경기 보러 언제 가요?”“서두를 필요 없어. 내가 없으면 시작도 못 할 테니까.”그는 자신의 영향력을 감추려 하지 않았고 이런 일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었다.스누커뿐 아니라 다른 스포츠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의 대답을 들으니, 얼마나 많은 선수가 이런 부당한 현실 속에서 희생되었을지 떠올라 분노가 치밀었다.“헤르나 씨, 이렇게 하면 양심에 찔리지는 않아요?”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처음엔 그랬지.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아무렇지도 않더라.”그는 정말 솔직했지만 그 솔직함이 오히려 화를 돋웠다.이틀 동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67화

    나는 강유형을 세게 밀치며 소리쳤다.“안 간다고 했잖아! 왜 자꾸 이래? 지금은 여기에 있고 싶어. 내가 늑대한테 잡아먹히든, 개한테 물리든 그게 네 일이야?”강유형의 얼굴이 굳어졌다.“지원아...”나는 단호하게 말했다.“강유형, 우린 이미 아무 사이도 아니야. 내 일에 간섭하지 마. 그리고 네가 신경 쓰는 것도 원하지 않아.”내 말에 강유형의 눈빛이 깊은 고통으로 일그러졌고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지원아, 이건 네 선택이야. 후회하지 마.”“내 선택에 후회한 적 없어.”나는 냉정하게 대답했다.그 말에 강유형은 입술을 꽉 깨물고 등을 돌렸지만 몇 걸음 걷다 멈춰 서서 손가락으로 헤르나를 가리키며 말했다.“경고야. 지원이한테 손대지 마. 네가 무슨 짓을 하든 가만두지 않을 거야.”그 말을 남기고 그는 다시 나를 한 번 쳐다본 후 떠났다.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내 마음 한구석에 묘한 익숙함이 스쳐 지나갔다.“그 자식 아직도 널 사랑하는 것 같아.”헤르나가 내 귀에 속삭이듯 말했고 나는 시선을 땅으로 떨구며 대답했다.“유통기한 지난 사랑은 아무리 좋아도 필요 없어요.”헤르나는 웃음을 터뜨렸다.“제법 똑똑한 소녀네.”그가 나를 칭찬한 건지, 아니면 내가 여기 남겠다고 한 선택이 현명하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내가 강유형과 함께 떠나겠다고 했더라면 그는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가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이었다.“가자. 뭐라도 먹어야지. 오늘 특별히 중국 요리사를 불러서 네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준비했어.”헤르나는 마치 소중한 손님을 대접하듯 말했다.이게 무슨 상황이지? 나는 그의 '인질'인데도, 그는 나를 VIP처럼 대했다.식탁에는 다양한 요리가 준비되어 있었고 특히 내가 좋아하는 만두까지 있었다.'이 사람, 철저히 나를 조사했구나.'내가 모르는 사이 누군가가 나를 관찰하고 정보를 수집했을 거라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왜 안 먹어?”그는 만두 하나를 내 접시에 놓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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