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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6화

Author: 꽃길
나는 이번에 눈물도 나지 않았다. 이미 흘려야 할 눈물은 다 흘린 것 같았고 그 이유는 내 마음에 있는 깊은 상처 때문이었다.

나는 이제 진정우와 갈라서야 한다는 사실을 차분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돌아가는 도중에 비는 점점 더 거세졌다. 마치 장마가 시작된 것처럼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방심했는지 아니면 비로 인한 도로 상태가 미끄러워서였는지 브레이크를 제대로 밟지 못하고 앞차를 들이받았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차에서 내릴 수도 없었고 결국 우리는 차 안에서 경찰에 신고하기로 했다.

경찰과 보험회사가 도착했을 때 비는 조금 줄어들었고 우리는 차에서 내려 서로를 마주했다. 그 순간 우리는 모두가 깜짝 놀랐다.

“진작에 사고를 낸 사람이 지원 씨라는 걸 알았으면 경찰 안 불렀죠.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말이죠.”

함소은이 짖궂게 웃으며 말하자 옆에 있던 20대 초반의 경찰은 얼굴에 미소를 숨기며 입술을 씰룩였다.

“혹시 두 분 아는 사이세요? 이거 사적으로 처리할 건지 아니면 공식 처리할 건지 스스로 결정하세요.”

경찰과 보험회사가 물었다.

“공식 처리요.”

“사적으로 처리할게요.”

우리는 동시에 대답했다.

경찰은 우리를 한 번 쳐다본 후 말했다.

“일단 둘이 먼저 합의해 보세요. 아니면 제가 사고 처리해야 해요.”

“공식 처리할 거예요. 보험도 있으니까요.”

나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런데 공식 처리하면 차도 끌고 가야 하고 그럼 불편할 거예요. 이런 작은 사고로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요?”

함소은이 그렇게 말하자 나도 그녀가 한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비가 계속 내리고 있는데 차 없이 나가는 것도 불편할 테니까.

하지만 함소은은 차가 없을 일은 없을 거고 단지 귀찮아서 사적으로 처리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도 나는 공식 처리로 밀어붙였고 경찰과 보험회사에 현장에서 사고를 조사해 주기를 요청했다.

그때, 갑자기 용은서가 나를 부르며 달려왔다.

“언니, 언니!”

나는 은서의 그 귀여운 얼굴을 보고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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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쳤다.나도 진소영을 끌어당기며 사람들과 함께 높은 곳으로 달려갔다.하지만 홍수의 속도는 우리가 달리는 것보다 훨씬 빨랐고 우리가 높은 곳에 도달하기도 전에 홍수가 이미 우리를 덮쳤다.“언니, 언니...”깜짝 놀란 진소영이 나를 부르며 소리쳤고 나 역시 무서웠지만 지금은 두려워한다고 뭐가 달라질 게 없었다. 나는 가까운 곳에 기둥이 보였고 진소영을 잡고 그곳으로 달려갔다.그러나 내가 진소영을 기둥 위로 올리자마자 홍수가 이미 내 앞에 밀려왔고 나는 더 이상 올라갈 시간이 없었고 강한 물살에 휘말려 떠내려갔다.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물에 휘말려 너무 멀리 가지 않았고 나는 무언가를 잡고 몸을 버텼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것을 움켜잡고 물 위에 머리가 떠 있도록 애썼다.“언니, 언니...”진소영은 너무 놀라서 기둥을 붙잡고 울고 있었다. 홍수에 떠내려오는 쓰레기와 파도가 내 몸을 휩쓸었고 그 순간 나는 통증도 물의 차가움도 느낄 수 없었고 다만 끝없는 두려움만이 가득했다.인생에 정말 예기치 않은 일이 있다는 말이 진짜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나는 지금까지 이런 홍수를 겪을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언니, 언니!”진소영이 계속해서 나를 부르고 있었지만 나는 그녀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곳에서 내가 손을 놓지 않으면 구조가 올 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구하는 게 우선이었다.주변은 모두 물에 잠겼고 물이 퍼지는 속도도 굉장히 빨랐다. 이전의 도로는 이미 모두 바다처럼 변해 있었다.“오빠, 언니를 구해줘... 언니가 물에 떠내려가고 있어!” 어렴풋이 진소영의 목소리가 들렸고 아마 진정우가 그녀에게 전화했을 것이다. 정말로 때마침 걸려 온 전화였다. 진정우가 오면 나는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지금 나는 그와 이미 헤어졌다는 사실을 떠올릴 겨를도 없었고 그저 그가 빨리 와주기를 바랄 뿐이었다.그러나 진정우는 구조대보다 더 늦었고 나는 구조되어 올라갔고 진소영도 기둥에서 구조되어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13화

    그러자 진소영의 눈에 당황한 기색이 비쳤고 그녀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오늘 고개만 줄곧 젓네.’나는 의아한 마음을 억누르며 물었다.“소지훈이 너를 안거나 키스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너를 사랑한다고 확신해?”진소영은 얼굴이 조금 붉어진 채로 눈을 내리깔았다.“소지훈이... 한 번... 정말 거의 저에게 키스하려 했어요.”“거의?”나는 소지훈의 모습을 떠올리며 물었다.“술 마셨어?”술 때문에 남자들은 예전 사랑을 떠올리며 현재의 사람을 잘못 인식할 수 있다.진소영은 이번엔 고개를 흔들지 않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솔직히 털어놓았다.“지난주 소지훈이 기분이 안 좋다고 술을 마셨고 제가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이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요. 그 선생님은 100일 전에 돌아가셨고 선생님이 그리워서 너무 힘들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저를 바라보더니 키스하려고 했어요.”진소영이 이 말을 꺼내자 나는 잠시 멍해졌다. 나는 유희연이라는 사람이 이미 세상을 떠난 지 100일이 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소지훈은 그 당시 진소영을 유희연으로 착각했다.“그렇다면... 소지훈이 결국에는 너한테 키스는 못 했다는 거지? 네가 거절한 거야? 아니면 소지훈이 스스로 멈췄다는 거야?”그러자 진소영은 얼굴이 더 붉어지며 말했다.“소지훈이 멈췄어요. 그리고 저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어요.”“그러면 그 말만으로 소지훈이 너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거야?”나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너... 사랑 소설을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그것뿐이 아니에요. 그 외에도 소지훈은 저한테 너무 잘해주고 도서관에 있는 사람들도 우리 둘이 연애 중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때로는 우리한테 커플이 아니냐고 장난도 쳤지만 소지훈은 변명도 하지 않았어요.”진소영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리고 소지훈이 늦게 왔을 때 다른 남자가 제 맞은쪽에 앉거나 제가 다른 남자랑 얘기하면 질투도 했어요.”그녀가 말한 내용들은 사실이었다. 소지훈이 그랬다면 진소영은 충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12화

    그러자 진소영은 눈이 갑자기 붉어졌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어린 소녀 같았고 그녀와는 달리 나는 이미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 속에서 연애하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자신의 사랑과 원망을 직설적으로 드러냈지만 진소영은 갈팡질팡하며 마음을 숨기고 있었다.그녀의 상처받은 표정을 보고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소지훈이 뭐라고 했기에 그래?”진소영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대답했다.“거절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고백한 후 소지훈이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았어요.”그것도 결국 거절인 셈이었다. 소지훈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유희연의 자리가 큰 것 같았다.“며칠이 지났어?”나는 손가락으로 책상 위를 가볍게 두드리며 물었다.“3일이요.”진소영은 눈을 비비면서 말했다.“사실 후회하고 있어요. 제가 먼저 고백하지 말아야 했어요.”나는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네 감정에 확신이 없었던 거야?”“그건 아니에요.”진소영은 코끝까지 빨개져서 말했다.“좋아하는 건 맞아요. 후회하는 건 제가 고백한 후에 소지훈이 저를 피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진소영은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책의 모서리를 계속해서 움켜잡으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이럴 줄 알았다면 고백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예요. 그저 친구로라도 소지훈을 볼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고백한 후로 소지훈은 저를 피하는 것 같아서 너무 힘들어요.”진소영의 말속에서 그녀가 소지훈에게 얼마나 깊이 빠져 있는지 알 수 있었다.“그러면 3일 내내 소지훈을 기다린 거야?”나는 왜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그녀가 도서관에 앉아 있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네.”진소영은 정말 순진한 아이였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렇게 기다리기만 할 거야? 전화라도 해보지.”그러자 진소영은 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이미 꺼놨어요.”“그러면 카톡은?”“답장이 없어요.”진소영은 입술을 내밀며 대답했다.전화도 꺼져 있고 카톡도 답하지 않는다면 그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었다. 소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11화

    “언니, 지금 도서관에 올 수 있어요? 할 얘기가 있어요.”진소영이 전화로 물었지만 나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다음에 보자. 오늘은 좀 피곤해서.”나는 그녀의 부탁을 거절했고 진소영은 아무 말 없이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런데도 나는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나는 물었다.“그렇게 중요한 일이야?”“네. 정말 중요해요.”진소영이 잠깐 망설이다가 이어서 말했다.“언니, 아니면 제가 언니한테 갈게요.”나는 진소영이 나를 꼭 만나겠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진정우와의 일 때문에 괴로워하는 걸 알고 나를 위로하려는 계획일 수도 있었다.“소영아...”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언니, 주소만 보내줘요. 택시 타고 갈게요.”진소영이 말하는 동안 책을 정리하는 소리가 들렸다.창밖을 보니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있었고 지금 택시를 타기엔 힘들 것 같았다. 거기다 그녀는 최근에 수술을 받았고 면역력이 낮은 상태여서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었다.비록 진정우와 헤어졌지만 나는 여전히 진소영을 걱정하고 있었다. 적어도 진정우가 그녀에게 맞는 사람을 찾을 때까지는 내가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결국 그녀의 고집에 내가 양보했다.“아니야, 내가 너한테 갈게.”“정말요? 그럼 기다릴게요. 언니!”진소영의 목소리가 한층 밝아진 것 같았다.전화를 끊고 나는 기사에게 도서관 주소를 말해주었고 그는 방향을 틀어 나를 그곳으로 데려갔다.비 때문인지 도서관엔 사람이 많지 않았고 나는 한눈에 진소영을 발견했다. 그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책은 덮어두고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고 분명히 뭔가 고민이 있는 모양이었다.내 발소리를 들었는지 진소영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는 반갑게 손을 흔들며 내게 다가왔다.“언니, 비 맞지 않았죠? 정말 비가 많이 오네요.”진소영이 나를 살펴보며 물었다.“괜찮아.”나는 자리에 앉으며 그녀가 펼쳐놓은 책들을 보았다. 모두 덮어놓은 상태였다.저번에 이곳에서 소지훈과 마주쳤을 때 나는 그가 진소영과 친밀한 사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10화

    함소은이 말한 사고는 바로 내 부모님의 사고 아니야?그렇다면 용진표가 진정우의 아버지한테 돈을 주고 매수했다는 말이야?그 사실에 나는 충격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고 나는 함소은을 바라보았다.“그 말은 누가 했나요? 근거가 있나요?”함소은은 내 불안한 감정을 눈치채지 못한 채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그건 모르겠어요. 어쨌든 그런 말이 떠돌고 있었어요. 모두 몰래 이야기하는 거죠. 용진표의 주변 사람들은 용진표를 두려워해서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게 되면 다 죽을 수도 있죠.”“그러면 그 말을 들은 적이 있는 사람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내 말에 함소은은 나를 돌아보았다.그녀는 뭔가 불안한 기운을 느낀 듯 웃으며 물었다.“왜 그 일에 그렇게 관심이 가는 거죠?”나는 그녀의 어두운 얼굴을 바라보며 결국 진실을 말하기로 했다.“사고를 당했던 그 부부가 제 부모님이고 운전기사는 제... 전 남자 친구의 아버지였어요.”함소은은 깜짝 놀라며 눈이 휘둥그레졌고 나는 그녀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그래서 그 일이 사실인지 알아야 해요. 증거가 필요해요.”그녀는 속눈썹을 살짝 떨며 물었다.“제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인가요?”내가 그녀에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건 사실 꽤 민망한 일이었다. 그녀가 한때 내 친구가 되고 싶어 했으나 나는 거절했다.지금은 내가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거라 조금은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이었다.하지만 그녀는 용진표를 미워하는 사람인 만큼 이 정보도 그녀가 직접 들었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고 그만큼 소문을 낸 사람을 더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이런 소문이 나오는 데는 분명히 별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그래서 나는 내 자존심이 상하든 말든 그저 내가 뭔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해도 절대 주저하지 않을 생각이었다.“소은 씨, 제발 도와주세요.”함소은은 잠시 멈칫하다가 웃으며 말했다.“우리는 친구도 아니니까 저도 거절할 수 있죠?”여자들은 자주 그 작은 앙금을 마음속에 품고 사는 법이다. 그녀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09화

    내가 그렇게 말하자 함소은은 손을 들어 내 말을 막았고 은서를 가리키며 말했다.“은서는 정말 운이 좋은 아이였어요.”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고개를 갸웃했고 함소은은 나의 당황한 표정을 보고는 곧바로 눈치를 챘다.“지원 씨, 지금 많이 혼란스럽죠?”“네, 조금 혼란스러워요.”함소은은 가볍게 웃으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용진표와 그의 아내는 한 번 큰 교통사고를 당했었어요. 그때 용진표는 거의 죽을 뻔했고 용진표의 아내는 의식을 잃었죠. 한 열흘이나 보름 정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고 모두가 용진표의 아내가 다시는 깨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기적처럼 깨어난 거예요.”“그 여자가 깨어났을 때 꿈에서 어떤 한 소녀를 봤다고 말했어요. 소녀는 자신이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님을 따라다니는 동녀라고 했고 용진표의 아내에게 신령스러운 약을 주면서 이 약을 먹으면 다시 깨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하더라고요.”함소은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덧붙였다.“듣고 보면 좀 어이가 없죠?”“그러면 그 후엔 어떻게 되었나요?”나는 몹시 궁금했다.“그 여자가 깨어난 바로 그날에 제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때 용진표의 아내는 용진표에게 나를 데리고 가서 피검사를 하게 했죠. 만약 아기가 딸이면 그대로 두고 아들일 경우에는 낙태시키라고 했어요.”함소은은 잠시 침묵하며 용은서를 바라보았다.“그 여자에게 은서는 꿈에서 나타난 동녀 같은 존재였어요. 그래서 은서가 이 세상에 올 수 있었던 거죠.”그 말을 듣고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그럼 용진표의 아내는 은서를 신처럼 모셔야 할 텐데요.”“그렇죠. 사실 사고 후로 그 여자는 건강이 줄곧 안 좋아서 은서를 해치지 못한 거죠.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은서는 벌써 그 여자에게 빼앗겼을지도 몰라요.”함소은은 술잔을 들려 했지만 나는 손을 내밀어 그녀를 막았다.“그렇게 이 아이를 지키고 싶다면 방법이 있어요. 지금 이러는 행동은 사실 스스로 아이를 포기하는 셈이죠.”나는 차분히 말했다.“방법? 어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08화

    그녀는 분노와 억눌린 감정 그리고 마치 폭발을 기다리는 듯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본 적 없던 함소은의 또 다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나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조금 긴장됐다.나는 목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그렇게까지 용진표를 미워하고 용진표가 한 짓을 다 알고 있으면서 왜 아직도...”내가 그 말을 끝내지 못한 건 그녀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잘 몰라서였다.그녀의 분노가 이렇게 극에 달한 상황에서 은서를 낳은 것은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가 있으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잖아?하지만 그녀는 아이를 낳았다.“왜 은서를 낳았냐고 묻는 거죠. 맞아요?”함소은은 내 마음을 정확히 읽고 말을 이었고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만약 두 사람 정말 갈라서게 되면 은서는 어떻게 돼요? 은서는 잘못한 게 없잖아요.”“저도 그 당시에 은서를 낳고 싶어서 낳았겠어요?”함소은은 고개를 젖히며 술잔을 비웠다.그녀가 고통스럽게 술을 삼키는 모습을 보고 내 마음도 무겁게 내려앉았다.함소은은 머리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처음 임신했을 때 용진표는 병원에 가서 내 피를 뽑게 하고 내가 임신한 아이가 딸이라는 걸 알자마자 여섯 명의 보모를 들였어요. 겉으로는 내 몸을 돌보는 척했지만, 사실은 저를 감시하고 있었어요.”나는 놀라서 물었다.“그때에는 별로 아이를 정말 원하지 않았던 거예요?”“용진표가 나를 그렇게 손에 넣은 마당에 제가 왜 용진표의 아이를 낳고 싶겠어요?” 함소은은 은서를 바라보며 대답했다.“알아요? 만약 은서가 아들이었으면 오늘 같은 날이 없었을 거예요.”그녀가 방금 말한 대로 용진표와 싸운 일이 떠오른 나는 갑자기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그럼... 이번에 또 임신한 거예요?”함소은은 나를 보고 엄지를 세웠다.“정답이네요.”그렇게 칭찬을 듣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그대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용진표가 이 아이를 원하지 않다고 하면서 낙태하라고 한 거죠?”“맞아요. 내일 아침에 사람들이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07화

    ‘작은 녀석이 참 잘도 사람을 다루네.’나는 용은서를 안고 함소은이 부른 차에 올라탔다.가는 길에 나는 용은서에게 선물을 하나 예약했다. 비록 그녀는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이 없지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함소은 모녀는 해동 최고의 개인 주택단지에 살고 있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온 집안이 풍선과 장식들로 가득했다.“이건 모두 진표 씨가 준비한 거예요.”함소은이 내게 슬리퍼를 건네며 설명했다.집 안 가득한 화려한 장식과 격식에 나는 무심코 말했다.“진표 씨가 정말 은서를 아끼네요.”“당연하죠. 하지만 은서가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예요. 게다가...”함소은이 용은서를 슬쩍 바라보며 내게 속삭였다.“이젠 은서도 자라서 진표 씨랑 함께 나가면 사람들이 진표 씨를 할아버지라고 불러요. 은서도 그게 좀 껄끄러운 거죠.”용진표가 할아버지 나이까지 됐으니 오해를 살 만도 했다. 하지만 이게 과연 누구 잘못일까? 만약 용진표가 그런 나이가 아니었다면 상황도 달라졌을 텐데 말이다.용은서는 내 손을 잡고 기쁜 얼굴로 나를 어린이 방으로 데려가면서 또 함께 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와 놀아주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만 더 버티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미 기운이 빠진 걸 느꼈다.그때 내가 주문한 선물이 도착했다.“은서야, 언니가 네 선물 가져왔어. 네가 마음에 들어 하면 좋겠네.”이 기회를 빌려 잠깐 쉬고 있는데 그제야 함소은이 떠올랐다. 집에 들어오고서부터 그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집사가 커피와 과일을 가져다주면서 나는 무심코 물었다.“함소은 씨는 어디 계세요?”집사는 잠시 위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아마... 위층에 계신 것 같아요.”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은서와 함께 선물을 풀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갑자기 위층에서 함소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카롭게 누구랑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아까 왠지 집사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아꼈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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