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509화

Author: 꽃길
내가 그렇게 말하자 함소은은 손을 들어 내 말을 막았고 은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은서는 정말 운이 좋은 아이였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고개를 갸웃했고 함소은은 나의 당황한 표정을 보고는 곧바로 눈치를 챘다.

“지원 씨, 지금 많이 혼란스럽죠?”

“네, 조금 혼란스러워요.”

함소은은 가볍게 웃으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용진표와 그의 아내는 한 번 큰 교통사고를 당했었어요. 그때 용진표는 거의 죽을 뻔했고 용진표의 아내는 의식을 잃었죠. 한 열흘이나 보름 정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고 모두가 용진표의 아내가 다시는 깨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기적처럼 깨어난 거예요.”

“그 여자가 깨어났을 때 꿈에서 어떤 한 소녀를 봤다고 말했어요. 소녀는 자신이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님을 따라다니는 동녀라고 했고 용진표의 아내에게 신령스러운 약을 주면서 이 약을 먹으면 다시 깨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함소은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덧붙였다.

“듣고 보면 좀 어이가 없죠?”

“그러면 그 후엔 어떻게 되었나요?”

나는 몹시 궁금했다.

“그 여자가 깨어난 바로 그날에 제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때 용진표의 아내는 용진표에게 나를 데리고 가서 피검사를 하게 했죠. 만약 아기가 딸이면 그대로 두고 아들일 경우에는 낙태시키라고 했어요.”

함소은은 잠시 침묵하며 용은서를 바라보았다.

“그 여자에게 은서는 꿈에서 나타난 동녀 같은 존재였어요. 그래서 은서가 이 세상에 올 수 있었던 거죠.”

그 말을 듣고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럼 용진표의 아내는 은서를 신처럼 모셔야 할 텐데요.”

“그렇죠. 사실 사고 후로 그 여자는 건강이 줄곧 안 좋아서 은서를 해치지 못한 거죠.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은서는 벌써 그 여자에게 빼앗겼을지도 몰라요.”

함소은은 술잔을 들려 했지만 나는 손을 내밀어 그녀를 막았다.

“그렇게 이 아이를 지키고 싶다면 방법이 있어요. 지금 이러는 행동은 사실 스스로 아이를 포기하는 셈이죠.”

나는 차분히 말했다.

“방법? 어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10화

    함소은이 말한 사고는 바로 내 부모님의 사고 아니야?그렇다면 용진표가 진정우의 아버지한테 돈을 주고 매수했다는 말이야?그 사실에 나는 충격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고 나는 함소은을 바라보았다.“그 말은 누가 했나요? 근거가 있나요?”함소은은 내 불안한 감정을 눈치채지 못한 채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그건 모르겠어요. 어쨌든 그런 말이 떠돌고 있었어요. 모두 몰래 이야기하는 거죠. 용진표의 주변 사람들은 용진표를 두려워해서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게 되면 다 죽을 수도 있죠.”“그러면 그 말을 들은 적이 있는 사람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내 말에 함소은은 나를 돌아보았다.그녀는 뭔가 불안한 기운을 느낀 듯 웃으며 물었다.“왜 그 일에 그렇게 관심이 가는 거죠?”나는 그녀의 어두운 얼굴을 바라보며 결국 진실을 말하기로 했다.“사고를 당했던 그 부부가 제 부모님이고 운전기사는 제... 전 남자 친구의 아버지였어요.”함소은은 깜짝 놀라며 눈이 휘둥그레졌고 나는 그녀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그래서 그 일이 사실인지 알아야 해요. 증거가 필요해요.”그녀는 속눈썹을 살짝 떨며 물었다.“제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인가요?”내가 그녀에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건 사실 꽤 민망한 일이었다. 그녀가 한때 내 친구가 되고 싶어 했으나 나는 거절했다.지금은 내가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거라 조금은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이었다.하지만 그녀는 용진표를 미워하는 사람인 만큼 이 정보도 그녀가 직접 들었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고 그만큼 소문을 낸 사람을 더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이런 소문이 나오는 데는 분명히 별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그래서 나는 내 자존심이 상하든 말든 그저 내가 뭔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해도 절대 주저하지 않을 생각이었다.“소은 씨, 제발 도와주세요.”함소은은 잠시 멈칫하다가 웃으며 말했다.“우리는 친구도 아니니까 저도 거절할 수 있죠?”여자들은 자주 그 작은 앙금을 마음속에 품고 사는 법이다. 그녀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11화

    “언니, 지금 도서관에 올 수 있어요? 할 얘기가 있어요.”진소영이 전화로 물었지만 나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다음에 보자. 오늘은 좀 피곤해서.”나는 그녀의 부탁을 거절했고 진소영은 아무 말 없이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런데도 나는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나는 물었다.“그렇게 중요한 일이야?”“네. 정말 중요해요.”진소영이 잠깐 망설이다가 이어서 말했다.“언니, 아니면 제가 언니한테 갈게요.”나는 진소영이 나를 꼭 만나겠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진정우와의 일 때문에 괴로워하는 걸 알고 나를 위로하려는 계획일 수도 있었다.“소영아...”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언니, 주소만 보내줘요. 택시 타고 갈게요.”진소영이 말하는 동안 책을 정리하는 소리가 들렸다.창밖을 보니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있었고 지금 택시를 타기엔 힘들 것 같았다. 거기다 그녀는 최근에 수술을 받았고 면역력이 낮은 상태여서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었다.비록 진정우와 헤어졌지만 나는 여전히 진소영을 걱정하고 있었다. 적어도 진정우가 그녀에게 맞는 사람을 찾을 때까지는 내가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결국 그녀의 고집에 내가 양보했다.“아니야, 내가 너한테 갈게.”“정말요? 그럼 기다릴게요. 언니!”진소영의 목소리가 한층 밝아진 것 같았다.전화를 끊고 나는 기사에게 도서관 주소를 말해주었고 그는 방향을 틀어 나를 그곳으로 데려갔다.비 때문인지 도서관엔 사람이 많지 않았고 나는 한눈에 진소영을 발견했다. 그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책은 덮어두고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고 분명히 뭔가 고민이 있는 모양이었다.내 발소리를 들었는지 진소영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는 반갑게 손을 흔들며 내게 다가왔다.“언니, 비 맞지 않았죠? 정말 비가 많이 오네요.”진소영이 나를 살펴보며 물었다.“괜찮아.”나는 자리에 앉으며 그녀가 펼쳐놓은 책들을 보았다. 모두 덮어놓은 상태였다.저번에 이곳에서 소지훈과 마주쳤을 때 나는 그가 진소영과 친밀한 사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12화

    그러자 진소영은 눈이 갑자기 붉어졌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어린 소녀 같았고 그녀와는 달리 나는 이미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 속에서 연애하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자신의 사랑과 원망을 직설적으로 드러냈지만 진소영은 갈팡질팡하며 마음을 숨기고 있었다.그녀의 상처받은 표정을 보고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소지훈이 뭐라고 했기에 그래?”진소영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대답했다.“거절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고백한 후 소지훈이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았어요.”그것도 결국 거절인 셈이었다. 소지훈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유희연의 자리가 큰 것 같았다.“며칠이 지났어?”나는 손가락으로 책상 위를 가볍게 두드리며 물었다.“3일이요.”진소영은 눈을 비비면서 말했다.“사실 후회하고 있어요. 제가 먼저 고백하지 말아야 했어요.”나는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네 감정에 확신이 없었던 거야?”“그건 아니에요.”진소영은 코끝까지 빨개져서 말했다.“좋아하는 건 맞아요. 후회하는 건 제가 고백한 후에 소지훈이 저를 피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진소영은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책의 모서리를 계속해서 움켜잡으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이럴 줄 알았다면 고백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예요. 그저 친구로라도 소지훈을 볼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고백한 후로 소지훈은 저를 피하는 것 같아서 너무 힘들어요.”진소영의 말속에서 그녀가 소지훈에게 얼마나 깊이 빠져 있는지 알 수 있었다.“그러면 3일 내내 소지훈을 기다린 거야?”나는 왜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그녀가 도서관에 앉아 있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네.”진소영은 정말 순진한 아이였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렇게 기다리기만 할 거야? 전화라도 해보지.”그러자 진소영은 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이미 꺼놨어요.”“그러면 카톡은?”“답장이 없어요.”진소영은 입술을 내밀며 대답했다.전화도 꺼져 있고 카톡도 답하지 않는다면 그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었다. 소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13화

    그러자 진소영의 눈에 당황한 기색이 비쳤고 그녀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오늘 고개만 줄곧 젓네.’나는 의아한 마음을 억누르며 물었다.“소지훈이 너를 안거나 키스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너를 사랑한다고 확신해?”진소영은 얼굴이 조금 붉어진 채로 눈을 내리깔았다.“소지훈이... 한 번... 정말 거의 저에게 키스하려 했어요.”“거의?”나는 소지훈의 모습을 떠올리며 물었다.“술 마셨어?”술 때문에 남자들은 예전 사랑을 떠올리며 현재의 사람을 잘못 인식할 수 있다.진소영은 이번엔 고개를 흔들지 않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솔직히 털어놓았다.“지난주 소지훈이 기분이 안 좋다고 술을 마셨고 제가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이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요. 그 선생님은 100일 전에 돌아가셨고 선생님이 그리워서 너무 힘들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저를 바라보더니 키스하려고 했어요.”진소영이 이 말을 꺼내자 나는 잠시 멍해졌다. 나는 유희연이라는 사람이 이미 세상을 떠난 지 100일이 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소지훈은 그 당시 진소영을 유희연으로 착각했다.“그렇다면... 소지훈이 결국에는 너한테 키스는 못 했다는 거지? 네가 거절한 거야? 아니면 소지훈이 스스로 멈췄다는 거야?”그러자 진소영은 얼굴이 더 붉어지며 말했다.“소지훈이 멈췄어요. 그리고 저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어요.”“그러면 그 말만으로 소지훈이 너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거야?”나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너... 사랑 소설을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그것뿐이 아니에요. 그 외에도 소지훈은 저한테 너무 잘해주고 도서관에 있는 사람들도 우리 둘이 연애 중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때로는 우리한테 커플이 아니냐고 장난도 쳤지만 소지훈은 변명도 하지 않았어요.”진소영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리고 소지훈이 늦게 왔을 때 다른 남자가 제 맞은쪽에 앉거나 제가 다른 남자랑 얘기하면 질투도 했어요.”그녀가 말한 내용들은 사실이었다. 소지훈이 그랬다면 진소영은 충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14화

    그 말에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쳤다.나도 진소영을 끌어당기며 사람들과 함께 높은 곳으로 달려갔다.하지만 홍수의 속도는 우리가 달리는 것보다 훨씬 빨랐고 우리가 높은 곳에 도달하기도 전에 홍수가 이미 우리를 덮쳤다.“언니, 언니...”깜짝 놀란 진소영이 나를 부르며 소리쳤고 나 역시 무서웠지만 지금은 두려워한다고 뭐가 달라질 게 없었다. 나는 가까운 곳에 기둥이 보였고 진소영을 잡고 그곳으로 달려갔다.그러나 내가 진소영을 기둥 위로 올리자마자 홍수가 이미 내 앞에 밀려왔고 나는 더 이상 올라갈 시간이 없었고 강한 물살에 휘말려 떠내려갔다.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물에 휘말려 너무 멀리 가지 않았고 나는 무언가를 잡고 몸을 버텼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것을 움켜잡고 물 위에 머리가 떠 있도록 애썼다.“언니, 언니...”진소영은 너무 놀라서 기둥을 붙잡고 울고 있었다. 홍수에 떠내려오는 쓰레기와 파도가 내 몸을 휩쓸었고 그 순간 나는 통증도 물의 차가움도 느낄 수 없었고 다만 끝없는 두려움만이 가득했다.인생에 정말 예기치 않은 일이 있다는 말이 진짜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나는 지금까지 이런 홍수를 겪을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언니, 언니!”진소영이 계속해서 나를 부르고 있었지만 나는 그녀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곳에서 내가 손을 놓지 않으면 구조가 올 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구하는 게 우선이었다.주변은 모두 물에 잠겼고 물이 퍼지는 속도도 굉장히 빨랐다. 이전의 도로는 이미 모두 바다처럼 변해 있었다.“오빠, 언니를 구해줘... 언니가 물에 떠내려가고 있어!” 어렴풋이 진소영의 목소리가 들렸고 아마 진정우가 그녀에게 전화했을 것이다. 정말로 때마침 걸려 온 전화였다. 진정우가 오면 나는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지금 나는 그와 이미 헤어졌다는 사실을 떠올릴 겨를도 없었고 그저 그가 빨리 와주기를 바랄 뿐이었다.그러나 진정우는 구조대보다 더 늦었고 나는 구조되어 올라갔고 진소영도 기둥에서 구조되어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15화

    진정우의 행동을 본 내 마음은 조금 더 차갑게 식었다.병원에서 두 시간 동안 모든 검사를 마친 후에 나는 진소영과 진정우를 만났다.진소영은 나를 붙잡고 물었다.“언니, 괜찮아요? 어디 불편한 데 없어요?”“괜찮아. 의사 선생님이 내가 복이 많다고 하셨어. 심지어 큰 부상도 없다고 했어.”나는 거짓말을 했다. 사실 내 몸에는 여러 군데 상처가 있었지만 진소영에게는 알리지 않기로 했다. 진소영이라면 분명히 내가 그녀를 구하려다 물에 휩쓸려 갔으니 내심 많이 자책하고 있을 거다.진소영이 자책하면 반드시 진정우를 시켜서 나한테 더 잘해주라고 할 것 같았지만 지금 그는 이미 나를 포기한 상태였다.“언니 말을 못 믿겠어요. 언니, 제가 한번 봐도 돼요?”진소영은 그렇게 말하며 나한테 다가오려 했고 나는 그녀의 손을 누르면서 말렸다.“소영아, 좀 피곤해서 잠시 자고 싶어. 정말 괜찮으니까 먼저 돌아가.”“언니, 저는 안 갈 거예요. 여기서 언니랑 같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오빠도요.”진소영은 진정우를 불렀고 그가 다가왔다. 그의 시선은 내 얼굴에 머물렀지만 나는 그를 피하고 고개를 돌렸다.“먼저 나가자.”진정우가 진소영에게 말했다.드디어 진정우의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그들이 밖으로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오빠, 언니랑 무슨 일 있어? 싸웠어? 아무리 싸웠다고 해도 그렇지. 언니는 나를 구하려다가 목숨까지 잃을 뻔했어. 그런 언니에게 왜 이렇게 차갑게 대하는 거야?”진소영의 말에 난 마음이 더 아팠고 나는 그 아픔을 주체할 수 없어서 눈물이 흘렀고 고개를 돌려 눈물을 베개에 닦았다.“우리 일은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그리고 오늘 아침에 나도 너에게 말했잖아. 폭우가 내리니까 도서관에 가지 말라고. 왜 내 말을 듣지 않았어?”진정우는 진소영을 꾸짖었지만 진소영은 아무런 대답하지 않았고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그리고 윤지원은 왜 도서관에 있었던 거야? 너만 내 말을 잘 들었으면 이런 일이 안 생겼을 거야.”진정우의 말은 점점 더 차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16화

    하지만 나도 계속 숨고 다닐 수는 없었다.힘든 상황일수록 도망쳐서는 안 되었다.나는 손을 놓자 강진혁은 이불을 걷어내며 나를 바라봤다.“네가 홍수에 휩쓸렸다는 소리를 듣고 놀라 죽는 줄 알았어.”그는 자신이 여기 온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었고 나는 힘없이 웃으며 물었다.“그래서 내가 뉴스에라도 난 거야?”지금은 네티즌 시대였기에 아무리 작은 일도 온라인에 퍼지기 일쑤였으니 오늘처럼 큰 홍수가 있으면 사람들은 사람을 구하는 것보다 영상을 찍기에 바쁠 것이다.“그래. 마치 작은 불쌍한 아이처럼 찍혔어.”강진혁은 말하며 손을 뻗었다.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틀자 그는 당황하지 않고 가볍게 웃었다.“그냥 헝클어진 네 머리 좀 고쳐주려고 했을 뿐이야. 놀라기는.”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강진혁은 내 옆에 앉으며 물었다.“어때? 몸은 괜찮아?”“괜찮아. 검사 다 받았는데 별문제 없대.”“그래도 너 많이 놀랐던 것 같아. 울었어?”내가 울어서 눈이 붉어져 있다는 걸 그는 눈치챘다.강진혁은 내가 그저 놀라서 운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겠지만 그는 내 당황스러운 기분을 덜어주려고 그렇게 말해주었고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오빠는 요즘 말도 참 이쁘게 하네요. 거짓말까지 하면서 나를 달래는 거예요.”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렇지 않으면 네가 나한테 점점 더 멀어질까 봐.”강진혁은 내가 대답하기 어려운 말을 던졌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지원아, 나는 네가 요즘 날 피하는 거 다 알아. 내가 너한테 고백해서 그런 거야? 맞지?”그가 직접 말을 꺼내자 나도 거리낌 없이 말하려고 했다.“사실 나도 많이 후회하고 있어. 친오빠와 친동생으로도 지내지 못할까 봐 두려웠어. 하지만 나도 꼭 말해야 했어. 너한테 진심으로 마음이 갔기 때문이지. 그런데 그 와중에 난 네가 어쩌면 날 좋아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 나한테도 어쩌면 기회가 있을 줄 알았지.”강진혁은 오히려 지금 진심 어린 말투로 사실을 나한테 말하고 있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17화

    옆에 있던 강진혁은 눈빛이 어두워졌다. 방금 그가 내가 머리를 만져준다고 했을 때 난 바로 피했고 강유형이 나를 만졌을 땐 나는 거부하지 않았기에 그는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다. 나라고 해도 그 상황이면 서운했을 것이다.하지만 우리가 그동안 얘기를 나누었고 강진혁은 별다른 표정을 지어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그를 볼 때 그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농담을 던졌다.“넌 아직도 강유형의 친밀한 행동에 익숙한 거 같아.”“......”“그건 당연한 소리지. 지원이는 거의 내 아내가 될 뻔했으니까.”“......”“맞아. 거의였지.”강유형은 강진혁을 바라보며 미소를 띠었고 그의 얼굴에는 장난기 어린 표정이 가득했다.“아무래도 이마가 좀 뜨거운 것 같아.”강유형은 말을 끝내며 지나가는 간호사를 불렀다.“체온계 좀 줘봐요.”“괜찮아. 아마도...”내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강유형이 끊었다.“괜찮은 건지는 그건 네가 스스로 판단할 일이 아니야.”강유형의 말에 간호사는 바로 체온계를 가져와 내 이마에 대었다.“37.7도입니다.”그러자 강유형은 간호사에게 말했다.“의사에게 상황을 좀 전해주세요. 그리고 혈액 검사 결과가 나왔나요? 감염인지 아니면 그냥 물에 젖어서 감기가 온 건지 확인해 주세요.”강유형은 정말 전문가처럼 말을 이어갔다.‘모르는 사람이 보면 의사인 줄 알겠네.’간호사는 대답하고는 떠났고 강진혁은 나에게 따뜻한 물을 부어줬다.“따뜻한 물이라도 마셔. 아마 그냥 몸이 얼어서 그런 거 같아.”두 형제가 이렇게 나를 챙겨주는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지만 그만큼 부담도 컸다.나는 그들이 그만 가줬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강유형은 이미 먼저 말했다.“형, 아니면 먼저 돌아가. 내일 선보러 간다고 했잖아? 너무 늦게까지 있으면 피부에 안 좋아.”“오빠, 선보는 거예요? 방금 왜 말을 안 했어요?”나는 조금 놀랐고 강진혁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말할 새도 없이 강유형이 와서 방해했으니까.”이 말의 의미는 강유형이 우리 둘 사이

Latest chapter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92화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삐 소리 이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법운사로 향하는 길에 나는 강유형에게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기나긴 연결음 끝의 자동응답뿐이었다.가슴이 점점 무겁게 내려앉았다. 요즘 그가 법운사에 머물고 있었기에 더더욱 불안했다. 연락도 되지 않으니 머릿속은 온통 나쁜 상상으로 가득 찼다.그에게 전화를 건 건 단순히 걱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부상자나 사망자가 있는지 그의 입을 통해 직접 듣고 싶었다.하지만 그에게 건 전화는 끝내 연결되지 못했다.나는 액셀을 밟으며 용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그의 어머니가 바로 그 절에 계셨으니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 역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이번엔 아예 거절당했다. 불안은 더 깊어졌다.‘혹시 김지영까지 무슨 일이 생긴 걸까?’그간 수많은 일을 겪어왔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강유형과 김지영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다치거나 희생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랐다.복잡한 심경 속에서 차를 운전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멀쩡하던 절에 왜 불이 난 걸까? 단순한 사고였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의도한 일이었을까? 혹시 나를 노린 불은 아니었을까?’만약 안리영이 나를 데리고 조경태의 생신 잔치에 가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그 절에 있었을 것이다. 죽었을 수도, 심하게 다쳤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내 손에 누군가가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걸 얻지 못하면 나를 없애버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말 그들이 저지른 일이라면 그건 너무 비인간적이었다. 죄 없는 사람들까지 희생시켜서는 안 됐다.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이 나는 어느덧 산기슭에 도착했다. 들이마시는 공기 속엔 타버린 재 냄새가 가득했고 멀리 보이는 산 위엔 아직도 연기가 자욱했다.산을 절반쯤 오르자 경찰이 차량을 막아섰다. 나는 차에서 내리며 이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91화

    난처한 상황이었다. 도무지 어찌할지 몰라 법까지 들먹이고 말았다.“법이 어떤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서른이 넘도록 연애도 안 하고 결혼도 안 하는 건 정상이 아니야. 어느 날 갑자기 남자 며느리라도 데려오면 내가 무슨 낯으로 사람들을 보겠냐?”조경태는 누가 뭐라 해도 듣지 않겠다는 태도였다.“그럼 제가 하나 약속드릴게요. 절대 남자를 며느리로 데려오는 일은 없을 거예요.”조시언은 능청스럽게 받아쳤다.조경태는 씩씩 대며 화를 냈다. 그러자 안리영이 급히 나서며 말했다.“할아버지, 삼촌 좀 그만 괴롭히세요. 안 좋아하는데 억지로 떠민다고 행복해지겠어요?”“이 계집애는 왜 또 얘 편을 드는 거야?”할아버지는 안리영을 흘겨보았다.내가 얼른 말을 이었다.“오늘 온 아가씨들, 저랑 리영이 다 지켜봤어요. 삼촌이랑 어울릴 만한 사람은 한 명도 없더라고요.”지금 이 순간 나도 안리영을 따라 조시언을 삼촌이라 부르고 있었다.“난 못 믿겠는걸.”조경태는 콧방귀를 뀌었다.안리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정말이에요, 할아버지. 그 여자들, 남 얘기하길 좋아해서 뒤에서 험담이나 하는 사람들이에요. 아까도 삼촌 뒷담 까고 있었어요.”조시언은 그녀를 바라보았고 조경태도 흥미를 보이며 물었다.“그래? 뭐라고 험담하던?”“삼촌이 나이가 꽤 됐는데도 아직 결혼 안 한 걸 말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삼촌을 차지해서 조씨 가문 며느리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수작 부릴 생각들만 하고 있었어요.”안리영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오늘 그 여자들이 조시언을 노리고 온 건 분명했으니 말이다.“그건 좋은 일이잖니.”조경태는 오히려 기뻐하며 말했다.“할아버지는 수작 부리는 여자가 좋으세요?”안리영은 조경태가 싫어하는 걸 정확히 알고 있었다.조경태는 말이 없었다. 속이 시커먼 여자한테 크게 당할 뻔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안리영은 나를 향해 눈짓을 보냈고 나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삼촌 짝 찾는 일은 저랑 리영이에게 맡겨주세요.”내 말에 안리영이 눈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90화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 안리영과 나는 방 안의 두 사람을 볼 수 있었다.서로 마주 본 채 각자의 소파에 앉은 모습이었다. 한 사람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젊고 준수한 청년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나이 차가 너무나 뚜렷해 그들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분명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일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부자 관계였다.안리영은 조시언이 입양된 아들이라고 내게 말해준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의아했다. 당시 나이로 치면 조경태는 조시언을 손자처럼 키워도 이상할 게 없었을 텐데 왜 굳이 아들로 삼은 건지 궁금했다.“시언아, 너 이제 나이도 어린 게 아니잖니. 결혼 안 하겠다는 건 그렇다 쳐도 여자 친구조차 없다니. 밖에서 사람들이 너를 두고 뭐라고 수군대는지 너도 알지?”조경태는 수군대다 같은 말도 자연스럽게 썼다.하지만 조시언은 묵묵히 앉아 있을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머리 위에서 내려오는 조명이 그의 얼굴과 콧대를 선명하게 나누듯 비췄다.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면서 그의 이목구비는 더욱 또렷하게 도드라졌다. 깊은 눈썹뼈는 날카로운 선을 연출해 냈다.“사람들이 네가 남자를 좋아한다고 하더라!”조경태는 말을 끝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이런 이상한 소문이 퍼지는 건 우리 조씨 가문의 체면을 망치는 일이다. 우린 그런 망신 못 당한다!”조시언은 그 말에도 여전히 동요하지 않았다. 그의 평온한 표정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고요했다.“남의 입은 막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떠들어대는 건 그들 사정일 뿐, 우린 신경 쓰지 않으면 됩니다.”“넌 신경 안 쓴다지만, 이 늙은이는 창피해서 못 살겠다!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지금 당장 사람 하나 데리고 오든가, 아니면 내가 직접 찾아줄 거다. 결혼 안 해도 좋다. 그냥 네 옆에 여자 하나 세워놔라. 사람들이 널 정상으로 보게 말이다!”그 말에 안리영과 나는 동시에 서로의 팔을 꼬집었다. 안 그러면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이 노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89화

    “넌 안 그럴 거야, 맞지?”안리영은 계속 나를 놀리면서도 언제나 내 편이었다.우리는 함께 연회장으로 들어섰다.조경태는 자줏빛과 금색이 어우러진 긴 도포를 입고 활짝 웃으며 손님들의 축하 선물을 받고 있었다.그는 내가 가져온 선물을 보곤 눈을 반짝였다.“특별한 선물이구나. 아주 마음에 들어.”그 말에 나는 괜히 민망해졌다.강유형의 어머니도 비슷한 걸 선물했는데 어째서 내 것을 특별하다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역시 세상을 오래 산 사람은 달랐다. 누구보다도 말솜씨가 뛰어났다. 받는 사람도 기쁘고 주는 사람도 흐뭇하게 만드는 한마디였다.“리영아, 구 교수는 어디 갔니? 오늘은 왜 같이 안 왔어?”조경태가 슬며시 물었다.안리영은 내 옆구리를 몰래 콕 찔렀다.“그냥 따로 말 안 했어요. 오늘은 그냥 제가 단순히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온 거거든요.”그러나 이 정도 지긋한 나이가 되면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오늘 같은 잔칫날에 인원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고 왔다 해서 구안석이 못 오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는 안리영을 힐끔 바라보다 두어 번 웃고는 더 묻지 않았다.“할아버지, 그럼 선물마저 받으시고요. 저는 지원이랑 가서 뭐 좀 먹고 올게요.”안리영은 핑계를 대며 빠져나가려 했다. 또 무슨 질문이 나올까 봐 걱정된 눈치였다.“그래, 다녀오거라. 다만 너무 멀리 가지는 마. 좀 있다 너희 둘 도움 좀 받아야겠구나.”그 말에 우리 둘은 눈빛을 주고받았다.“혹시 케이크 자르실 때 저희한테 맡기시려는 거 아니에요?”안리영이 농담처럼 물었다.조경태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이마를 콕 찔렀다.“이놈의 계집애, 지금 누굴 놀리는 거냐. 케이크 칼 정도는 들 수 있다고! 그게 아니고, 너희 둘한테 자문 좀 구하고 싶어서 그래.”“자문이요? 혹시 애인이라도 골라달라는 거예요?”안리영은 정말 무서울 정도로 겁 없이 농을 던졌다. 외할머니가 들으면 바로 이마 한 대는 맞았을 거다.“점점 대담해지는구나.”조경태가 다시 한번 그녀를 가리키며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88화

    안리영과 조시언 사이에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성준수는 그 분위기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안리영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하긴 이렇게나 예쁜데 조시언이 마음 줄 만도 하지... 아야, 아파! 조시언, 너 왜 그래?!”성준수는 조시언에게 뒷덜미를 잡힌 채 끌려 나갔고 안리영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정신 나갔네.”“조시언네 리영이?”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장난스럽게 되물었다.안리영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너까지 말썽이야, 얼른 가자. 외할아버지께 선물 드려야지.”그녀는 내 손을 잡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빨갛게 물든 귓바퀴가 그녀의 부끄러움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아까 조시언과의 어색한 분위기를 떠올리다 나도 모르게 장난을 쳤다.“리영아, 너랑 외삼촌 피가 섞인 것도 아니잖아. 내가 보기엔 한번 고려해 볼 만도 해. 잘생겼지, 돈 많지, 만약 네가 저 사람 잡으면 적어도 밖으로 새는 물은 없을 거 아니야.”안리영은 눈을 부릅떴다.“윤지원, 너 또 그런 소리 하면 진짜 절교할 거야.”“어머, 발끈하네?”나는 계속해서 놀렸다.“그만하라고 했지!”안리영은 나를 쫓아와 때리려 했다.나는 그녀를 피해 도망치다가 무언가에 부딪혔다.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익숙한 향이 먼저 스며들었다.고개를 들자 강유형이 서 있었다.요즘 그와 자주 마주쳤다. 절에서도 마주쳤고 조씨 가문에서도 마주쳤으니 말이다.“강 대표님, 이제 가시려고요?”안리영의 말투엔 노골적으로 쫓아내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나는 이미 다 털어냈다 하더라도 안리영은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네.”강유형은 나를 살짝 놓아주며 내 발을 내려다봤다. 다친 데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했다.“조경태 씨 생신 축하하러 왔어요.”그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는 볼 거 다 보고 별일 다 겪은 사이였다. 나는 담담하게 물었다.“저녁 식사는 안 하고 가?”“응, 그게...”그는 말을 잠시 멈추었다.“집에 가봐야 해서.”그 말에 문득 김희연이 내게 건넨 말과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87화

    “아이참, 엄마!”안리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오늘은 외할아버지 생신 잔치잖아, 내 맞선 자리가 아니고.”“뭐 어때?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잖니. 좀 있다가 잘 둘러보렴. 우리 딸처럼 예쁘고 똑똑한 애가 남자 친구 하나 못 찾겠어? 눈만 마주치면 끝이지.”조민영은 시원시원한 성격이었다.안리영은 체념한 듯 말했다.“알겠어. 엄마는 먼저 가서 볼일 봐. 난 지원이 찾으러 갈게. 외할아버지께 드릴 선물도 걔가 챙겨왔거든.”안리영은 그렇게 핑계를 대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난 그녀와 어머니의 대화를 이미 들은 터라 입가에 옅은 미소를 그리고 그녀에게 말했다.“아주머니 꽤 개방적이시네. 근데 나도 그 말 일리 있다고 봐. 예전에 네가 나한테 그랬잖아.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거라고.”“좋아. 마음에 드는 사람 있으면 바로 들이댈게.”그 순간 나는 조시언을 발견했다.그는 어두운 톤의 정장에 검은 셔츠를 받쳐 입고 있었다. 셔츠 단추는 몇 개 풀려있었고 그로 인해 허연 목덜미가 살짝 드러나 있었다. 그 하얀 피부와 검은 셔츠가 만들어내는 대비는 그를 더욱 차가워 보이게 만들었다. 어쩐지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도 자아냈다.“네 외삼촌, 진짜 잘생겼다.”나는 감탄했다.안리영도 내 시선을 따라가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여자들한테 인기 많았어. 예전에 내가 저 사람한테 온 러브레터를 얼마나 많이 대신 받아줬는지 몰라.”하긴 조시언 같은 사람이 인기가 없을 리가 없었다.“그럼 연애는 해봤대?”안리영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아니, 못 해봤을걸.”“그렇다면 마음에 담아둔 사람이 있다는 말이겠지.”내 말에 안리영이은 의외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내 가슴을 콕 찌르는 말을 꺼냈다.“아, 맞네. 너 연애 경험 많았지.”“나 약 올리는 거야? 그렇게 나오면 나도 너 도와줄 마음 싹 사라지는데?”우리가 대화를 나눌 동안 조시언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안리영은 어느새 자세를 바짝 고쳐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86화

    안리영은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 초 후 그냥 끊어버렸다.그토록 단호하고 주저 없는 태도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마 정말로 마음을 굳힌 모양이다.이런 부분에선 그녀가 나보다 훨씬 강했다. 질질 끌지도 않았고 미련도 없었다.사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강유형과 헤어진 건 헤어진 거고 가끔 연락을 하긴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을 때뿐이었다.안리영과 구안석이 여기까지 온 게 아쉽긴 해도 딱히 뭐라고 말할 순 없었다.감정의 온도는 결국 그 당사자만이 아는 법이니 말이다.우리가 함께 차를 마시며 점원의 포장 작업을 기다리는 동안 안리영의 휴대폰 화면이 다시 한번 반짝였다.새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떴다.구안석에게서 온 메시지였다.‘리영아, 나 이제 갈게.’나는 슬쩍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가 무슨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이따가 차단할 거야.”“직접 못 하겠으면 내가 대신 해줄까?”내가 농담처럼 말했다.안리영은 나에게 절친만이 보낼 수 있는 눈빛을 건넸다. 점원이 포장해 준 작품을 들고 매장을 나설 때까지 그녀는 끝내 구안석에게 답장하지 않았다.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그녀의 손가락이 구안석의 메신저 대화창에서 멈춘 걸 발견했다. 그녀는 그들이 나눈 대화를 처음부터 다시 훑어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나는 의아해 물었다.“왜 웃어?”안리영은 내게 휴대폰을 내밀며 말했다.“선배님이랑 나눈 대화 좀 봐봐.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합쳐도 겨우 몇십 개밖에 안 돼. 우리 과 단톡방에서 일주일에 올라오는 공지보다도 적어.”나는 보지도 않고 다시 그녀에게 휴대폰을 돌려주었다.“이미 헤어지기로 한 거잖아. 그런 거 봐서 뭐 하려고.”“지원아, 나 진짜로 연애한 게 맞긴 한 걸까?”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구안석을 차단했다.“공적인 일 있으면 어떡하려고 그래, 그럴 때도 연락 안 하게?”나는 애써 분위기를 풀어보려 장난을 던졌다.“그 사람은 흉부외과고 나는 산부인과야. 서로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85화

    “이거 포장해 주세요. 선물할 거니까 선물 상자에 담아 주세요.”김희연은 점원에게 부탁을 마치고 돌아서다 나를 발견했다.“지원아!”그녀가 놀라움과 반가움이 섞인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아줌마.”나는 그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김희연은 나를 바라보며 눈가를 붉혔고 눈동자까지 촉촉하게 물들였다.“지원아...”그녀는 내 이름만을 부를 뿐 다른 말은 쉽사리 꺼내지 못했다. 마음속에 수많은 말들이 맴돌고 있을 게 분명했지만 끝내 꺼낼 용기가 나지 않는 듯했다.나도 그녀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몇 달 만에 마주한 모습이었다. 흰머리가 부쩍 늘었고 수척해진 인상이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눈빛에서 생기가 보이지 않았다.그녀가 요즘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강두식은 병상에 계시고 두 아들 사이엔 균열이 생겨 서로 등을 돌린 상태다.말 그대로 집안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모든 시작은 나와 강유형이 끝을 맺으면서부터였던 것 같다.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들이 잘 풀린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잘 지내니?”그녀가 한참 만에 힘들게 물었다.“네,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거면 됐다. 그거면 좋아.”나는 그녀에게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어떤 시간을 견뎌냈는지 이미 보아냈으니 말이다.“너도 혹시 작품 보러 왔니? 선물하려고?”그녀는 어색함을 덜기 위해 다시 말을 건넸다.“오늘 저희 외할아버지 생신이라서요. 지원이가 저희 외할아버지 드리려고 보고 있었어요.”안리영이 대신 대답했다.“지원이도 조씨 댁에 가는구나. 잘 됐다, 그분도 지원이를 참 좋아하시잖니. 예전에도 자주 얘기하셨지.”그녀는 말을 잇다가 목이 메인 듯 얼굴을 살짝 돌렸다.나는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가 그렇게 슬픔을 억누르는 모습이 안쓰러워 조용히 입을 열었다.“아줌마, 저 먼저 고르러 가볼게요.”“지원아.”그녀가 다시 나를 불러 세웠다.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 어렵게 말을 이었다.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84화

    “네가 헤어지자고 했는데 구안석이 아무 말도 안 했다고?”안리영의 말을 듣고 나도 좀 놀랐다.안리영은 살짝 웃었다.“아마 그 사람도 지쳤겠지. 차라리 혼자일 때가 더 편했을 거야. 뭘 하든 마음대로 할 수 있고 간섭받을 일도 없고 신경 쓸 일도 없으니까.”딱 봐도 감정 섞인 말이었다.“너, 혹시 이별하자는 말도 일부러 한 거 아니야? 화나서?”내가 조심스레 물었다.안리영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난 정말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야.”내가 코웃음을 쳤다. 안리영이 웃으며 말했다.“진짜라니까. 지난번에 내가 선배한테 귀국할 수 없냐고 물었을 때부터 쭉 고민해 왔어.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뭘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사실 사랑이든 결혼이든 여자들이 바라는 건 결국 하나잖아. 안정감, 그리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 근데 그 사람이 그걸 못 준다면 나 혼자서도 충분한데 굳이 그런 사랑을 붙잡을 필요가 있을까?”안리영은 낮게 물었다.나는 장난스럽게 말해봤다.“그럼 생리적 욕구 해결은?”안리영은 다시 웃었다.“남자를 그 이유 하나로만 찾는 거면 얼마나 쉬워.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되잖아. 게다가 종류도 다양하고 취향 바꾸는 것도 가능하고.”“하하하.”나는 그 말에 웃음이 터졌다.“리영이, 네 취향 은근히 세네?”장난처럼 말했지만 사실 그녀 말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리영아, 네가 어떤 결정을 해도 난 응원할 거야. 하지만 말이지... 이별이라는 건, 특히 진심이었을 때는 헤어지는 순간도 진짜 아프잖아. 힘들면 꼭 나한테 말해. 같이 술이라도 마셔주지.”“응, 필요하면 연락할게.”안리영은 내 이마에 자기 이마를 살짝 맞댔다.“그보다 지금 당장 네가 좀 도와줘야 하는 일이 하나 있어.”“뭔데?”“오늘 우리 외할아버지 생신이야. 이번엔 도저히 빠질 수가 없어.”안리영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녀의 부모님도 몇 번이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보고 싶어 하신다고 했는데 그녀는 그때마다 핑계를 대고 빠졌단다. 이번까지 거절하면 그녀의 어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