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495화

Author: 꽃길
그는 매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돕느라 정작 동생의 심장 이식 수술비조차 마련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강유형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에게 피를 주지 않았다면 그건 그를 죽게 내버려둔 거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진정우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속마음을 알 수 없고 나도 더 이상 모른 척하고 싶지 않아 눈을 번쩍 떴다. 그의 관심과 사랑을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그러자 내 얼굴을 어루만지던 그의 손이 순간 멈췄고 눈에 담긴 따뜻함과 안쓰러움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잠시 후 그는 손을 거두려 했고 나는 재빠르게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진정우,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나를 이렇게 아끼고 사랑하면서 왜 날 이렇게 괴롭히는 건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왜 이렇게 자주 우는지 모르겠다.

항상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눈물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나왔다.

‘그래, 울고 싶으면 울어. 진정우 앞에서 우는 거라면 괜찮아.’

이 눈물을 통해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아파하는지 보여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까는 자는 척하는 내 눈물 자국조차 닦아주던 사람이, 지금은 눈앞에서 내가 우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 무언의 태도가 나를 더 미치게 했다.

“진정우, 대체 뭐가 문제야? 왜 날 사랑하면서도 이렇게 밀어내는 거냐고! 대답 좀 해!”

내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감정이 폭발하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미 말했잖아.”

그의 낮은 목소리는 차갑게 들렸고 나는 고개를 흔들며 외쳤다.

“말도 안 돼! 너는 그런 속 좁은 사람이 아니잖아. 그리고 너도 나랑 헤어지고 힘들어하잖아! 그렇지 않고서야 왜 밤마다 허진호 끌고 야근하고 몰래 담배를 피우겠어?”

그와 스쳐 지날 때마다 느껴졌던 담배 냄새가 떠올랐다.

그러자 그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그래, 나도 힘들어. 사랑하는데 헤어졌으니까 당연히 힘들지.”

그 말은 내 가슴을 후벼팠다.

“그럼 왜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Comments (1)
goodnovel comment avatar
3skl
남자가 후회할때까지 떠났으면 하네요.
VIEW ALL COMMENTS

Related chapters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496화

    진정우가 말없이 나를 바라보자 내 심장은 점점 빠르게 뛰었다. 마치 죄를 지은 사람이 판결을 기다리듯 숨이 막히고 긴장감이 몰려왔다.오랜 침묵 끝에 그는 마침내 손을 들어 내 손목을 붙잡고 말했다.“손 놔.”그 한마디가 날 무너뜨렸다.심연 속으로 떨어지는 듯한 절망감이 가슴을 짓눌렀다.이토록 쓰라린 순간에도 나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그를 붙잡았지만 그는 여전히 날 외면했다.그는 정말 마음을 굳힌 게 분명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함께할 수 없다는 그의 고집에 분노와 원망, 그리고 절망이 뒤섞여 결국 나는 이성을 잃고 그의 어깨를 덥석 물었다.있는 힘껏 이를 악물었고 그의 얕은 신음이 들렸지만 그는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그저 묵묵히 물리면서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분이 풀리지 않아 더 세게 물며 생각했다.‘이렇게라도 아프게 해야 정신을 차릴 거야.’하지만 내 턱이 아플 정도로 힘을 줘도 그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마치 나무처럼 단단하고 움직임도 없었다.나는 그에게 모든 말을 쏟아냈고 약속도 했고 이렇게까지 절박하게 붙잡았는데도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계속 매달려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걸 깨닫고 결국 그를 밀치며 말했다.“가. 나가. 그리고 다시는 날 찾지 마.”진정우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결국 병실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참아왔던 눈물이 터졌다. 나는 베개를 끌어안고 소리 없이 울었다.안리영이 병실로 찾아왔을 때, 나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고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껍데기처럼 누워 있을 뿐이었다. 강유형에게 배신당했을 때조차 이렇게까지 공허하지 않았다.“난 네가 빈혈로 쓰러진 줄 알았는데 혼까지 빠져나간 줄은 몰랐네.”안리영은 날카롭게 내뱉으며 병실로 들어왔다. 나는 힘없이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어떻게 온 거야? 직위 해제 끝났어?”“내가 안 왔으면 너 여기서 굶어 죽어도 아무도 몰랐을걸.”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497화

    안리영이 떠나버리면 정말로 나와 이야기할 친구 하나도 남지 않겠지.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란 결국 만나고 헤어짐의 반복이라지만 부모나 친구는 물론, 심지어 부부 사이라도 그렇다지만 안리영만은 내 곁에 남아주었으면 했다.“아니야, 난 그냥 좀 더 쉴 생각이야. 그만두라면 그만두는 그런 쉬운 사람이 아니거든.”안리영의 말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오, 안 과장님 드디어 반항하시네? 이제 좀 단단히 한 방 먹이겠다는 거야?”“맞아. 안 그러면 다음번에 무슨 일이 터져도 제일 먼저 나를 버리려 할 거 아니야.”역시 안리영다웠다. 직장에서도, 연애에서도 그녀는 늘 현실적이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었다.“근데 너무 세게 나가다가 망하면 어떡해?”내가 장난스럽게 묻자 안리영은 물컵을 따라 내밀며 어깨를 으쓱했다.“여기서 날 놓치면 날 데려가겠다는 병원이 줄을 설걸?”그녀는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자신 있게 말했다.“나 같은 사람이 갈 데가 없을 것 같아?”그녀의 자신감은 늘 확고했다.안리영의 능력을 알기에 이 병원이 그녀를 놓친다면 그녀를 영입하려는 병원이 줄을 설 게 뻔했다. 실제로 그런 제안을 받은 적도 있었지만 그녀는 늘 거절했었다.“한 곳에서 날 외면하면 더 좋은 곳으로 가면 그만이지”라는 안리영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넌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데?”안리영은은 진지하게 진정우와 나 사이의 일을 물었다. 그러자 나는 물 한 모금을 마시고 그녀의 말을 따라 웃으며 대답했다.“그 사람과는 길이 안 맞더라고. 그냥 나랑 맞는 사람을 찾아보려고. 나도 선택지가 없는 사람은 아니니까.”안리영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다.“이게 바로 내가 아는 윤지원이지. 우리가 직장이든 남자든 거기에 기대지 않아도 돼. 그들은 단지 우리 삶에 즐거움을 더해줄 뿐이지, 없어도 우리는 여전히 빛나.”그녀의 말은 내 마음속의 무거운 짐을 조금 덜어주는 듯했다. 안리령은 내 퇴원 절차를 도왔고 우리는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그날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498화

    나는 핸드폰을 쥔 채 잠시 망설였다. 강유형이 나를 왜 찾는 걸까?안리영은 턱짓으로 받으라는 신호를 보냈다.“지원아.”강유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이야?”나는 여전히 차가운 태도로 대답했다. 진정우와의 관계가 끝난 지금이라 해도 강유형과 다시 잘될 가능성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나를 찾을 때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벽을 치게 되었다.“나 돌아왔어.”그는 무슨 큰일을 겪고 돌아온 사람처럼 말했다.“알아. 강진혁한테 들었어.”내 말에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덧붙였다.“우리 만날 수 있을까? 네가 나랑 단둘이 만나는 게 싫다면 우리 집에 와도 돼. 부모님이 너를 많이 보고 싶어 하셔.”순간, 공항에서 나를 맞이하던 강유형의 부모님 모습이 떠올랐고 그들이 나를 걱정했던 건 사실이었다.“할 말이 있어. 신지태와 관련된 일이기도 하고... 진정우와도 관련 있어.”그 말에 나는 잠시 멍해졌다. 진정우와 나는 이제 아무 관계도 아닌데 그와 관련된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일까? 이런 생각이 스쳤지만 결국 나는 본능적으로 대답하고 말았다.“알았어. 이따 갈게.”“좋아. 엄마한테 말해둘게. 너 오면 만두 해준다고 계속 기다리셨거든.”그의 목소리엔 약간의 기대감이 묻어 있었다. 전화를 끊자 안리영이 한마디 했다.“전 남친 참 열심이네.”나는 그녀의 농담에 대꾸하지 않고 말했다.“진정우와 관련된 일이 있다고 했어.”“그건 그냥 미끼야. 지원아, 너랑 진정우는 이미 끝난 거잖아.”안리영은 날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그녀의 의도를 알았지만 애써 부정하며 말했다.“진정우 때문이 아니라 강유형 부모님 때문에 가는 거야. 만두도 먹으러 가는 거고.”안리영은 비웃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만두 한 끼가 아니라 강유형 집 재산의 3분의 1을 줘도 모자랄걸? 너 그 사람 목숨 살려줬잖아.”그 말에 나는 지난 일이 떠올랐다. 강유형의 부모님이 모든 걸 솔직히 설명했고 내가 그것에 의심을 품는 건 내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일 뿐이었다.“너랑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499화

    “아까 누가 문 두드렸어?”안리영이 내 기분을 살피며 화제를 돌렸다.“조나연. 지난번에 나한테 협력하자고 하더니 이번엔 얘기 좀 하자고 찾아왔어. 무시했지.”나는 커튼을 열어 밖을 바라보았더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그 애, 한 달 뒤면 아이가 퇴원할 거래. 아이 상태도 괜찮다고 하더라. 그런데 단 한 번도 병문안에 가지 않았다네.”안리영이 조나연의 아이 이야기를 꺼냈다. 나도 한 번 본 적 있는 그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그 여자는 돈밖에 몰라. 만약 강유형이 아이를 데려간다면 바로 따라붙을걸.”“근데 도대체 무슨 협력을 하자고 한 걸까?”안리영이 의아해하며 물었다.“모르겠어. 어차피 좋은 일은 아니겠지. 그런 사람은 처음부터 엮이면 안 돼. 문제만 생길 테니까.”나는 단호하게 말했다.“맞아. 그런 사람은 멀리하는 게 상책이지. 근데 그런 끈질긴 성격에 한두 번 거절했다고 포기할까?”안리영은 비웃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나는 휴대폰을 열어 아침으로 먹을 음식을 주문했다.아침 식사를 끝낸 뒤, 안리영은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강씨 집안으로 향했다.강유형과 강진혁이 모두 있었고 아줌마는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 내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얼굴이 왜 이렇게 상했니? 빈혈 때문이구나. 피를 너무 많이 써서 그래.”강유형 어머니의 눈가가 빨갛게 물들었다.“지원아, 우리 집에서 지내며 몸 좀 추스르자. 기운 차릴 때까지 같이 있자.”“그건 좀...”나는 애써 웃으며 거절했다. 이제 와서 다시 그 집으로 들어가는 건 불가능했다.삼촌은 나의 난처한 표정을 눈치채고는 부드럽게 말했다.“일단 앉아서 얘기하자꾸나. 계속 서 있으면 힘들잖니.”“제가 너무 걱정만 했네.”강유형 어머니는 나를 소파로 이끌며 앉히고는 부엌으로 가서 죽을 가져왔다.“요즘 왜 이렇게 말랐어? 몸 때문이야? 아니면 다른 문제가 있어?”삼촌은 내 상태를 금방 알아챘지만 나는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몸 때문이라고 하면 그들이 미안해할 테고 진정우와의 문제라고 하면 더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00화

    “비가 오는데 무슨 말을 꼭 밖에서 해?”아줌마가 잔소리를 늘어놓자 삼촌이 눈치를 줬다.“엄마, 아까 만두 빚어야 한다면서요. 제가 도와드릴게요.”그동안 말없이 있던 강진혁이 어머니를 자연스럽게 부엌으로 이끌었다.나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강유형을 따라 밖으로 나갔고 그는 문 앞에서 우산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솔직히 말하면 집 안에서도 충분히 조용히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은데 굳이 비를 맞으며 밖으로 나갈 필요는 없었다.하지만 그가 이렇게까지 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 같아 나는 따지지 않았다.“춥지 않아? 옷 가져올까?”그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헤어진 후로 그는 예전보다 훨씬 다정해진 것 같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괜찮아.”나는 그의 손에서 우산을 받아 들고 빗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그는 묵묵히 내 곁을 지키며 말했다.“우리 마지막으로 이렇게 비 속에서 걸었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1년 전이었다. 그때 며칠간 폭우가 계속 내려 도시 곳곳이 침수되고 차로 이동이 불가능했다.내가 걸어서 집에 가자고 내가 제안했을 때, 그는 헬리콥터를 부르겠다고 했다.“너는 헬리콥터를 타고 갈 수 있겠지만, 직원들은? 회사 대표가 혼자만 빠져나간다면 직원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어?”내가 그렇게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결국 그는 헬리콥터를 부르지 않고 직원들과 함께 우산을 쓰고 걸어갔다.처음에는 서로 바짓단을 젖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걷다가, 결국 물에 젖고 말았다.그때 나는 일부러 물웅덩이를 세게 밟아 그에게 물을 튀겼고 그도 화가 나서 나에게 물을 튀기며 맞받아쳤다.그렇게 물싸움을 하다 보니 화가 풀리고 웃음이 터졌다. 침수 지역을 벗어났을 때 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더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즐거운 시간이었다.지금 그가 그때 일을 다시 꺼내는 이유를 나는 알 것 같지만 과거의 아름다웠던 기억은 그저 지나간 추억일 뿐이었다.그의 의도를 알면서도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기억 안 나.”그는 씁쓸한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01화

    나는 강유형이 빗속에서 걷는 모습을 보며 물었다.“그럼 진정우는?”강유형은 우산을 살짝 들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몰라, 아무도 몰라.”그는 내 눈을 바라보며 덧붙였다.“내가 뭘 알 거라고 생각한 거야? 그래서 나한테 물어보려고?”내 날카로운 시선에 강유형은 잠시 멈칫하고는 말했다.“너도 모르겠지.”그는 다시 앞을 보며 걸음을 재촉했다.“진정우가 일부러 숨기고 있는 거야. 그런데 내가 들은 얘기가 있어.”“무슨 얘기?”“Q 클럽에서 그들의 보스가 뭔가에 연루됐다는 소문이 돌아. 그런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아.”강유형은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나에게 전했고 나는 그 의도가 대충 짐작이 갔다.“진정우가 한 일이라 생각해?”강유형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그럴 수도 있지만 또 아닐 수도 있어. Q 클럽은 휴링턴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진 조직이니까, 그들의 보스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야.”나는 강유형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알았다. 아마 그가 Q 클럽의 보스를 만나려 했으나, 결국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진정우가 어떻게 신지태를 도왔는지는 나도 몰라. 사실... 그는 내게 그 기회조차 주지 않았어“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한숨을 쉬었다. 그 순간 바람이 불며 빗방울 하나가 내 얼굴을 스쳤다. 그 차가운 느낌은 마치 진정우에게 밀려났을 때 흘렸던 눈물 같았다.“진정우는 네 설명도 듣지 않았어?”강유형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들었지, 하지만 나를 용서하지 않았어. 그는 내가 다른 남자를 위해 목숨 바치는 행동을 하는 걸 원치 않았다고 했어.”나는 우산을 높이 들고 강유형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사실, 진정우는 오해한 거야. 나는 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어도 똑같이 수혈했을 거야. 단지 그 사람이 네가 되었고 과거 우리는 또 연인이었으니 진정우가 오해할 수 있는 것도 당연해. 그건... 마치...”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마치 네가 나와 함께 있을 때 조나연과의 행동이 오해하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02화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신정훈 형사였다. 우리는 전에 이미 약속했었고 지금 날짜를 잡으려고 전화한 것 같다.한때는 부모님의 사고 진실을 알기 위해 신정훈을 빨리 만나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마음이 점점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마치 고향에 가까워질수록 낯설게 느껴지는 그런 기분이었다.강유형은 눈치 빠르게 옆으로 한 발짝 물러섰고 나도 조금 더 거리를 두고서야 전화를 받았다.“신정훈 형사님.”“지원 씨, 지금 시간 되세요?”점점 더 거세지는 비를 보며 이런 악천후에도 만나자는 건 분명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쉬고 나서 대답했다.“네, 주소 알려 주세요.”내가 아줌마가 만든 만두를 않자 아줌마는 서운한 듯한 표정을 지었고 그 모습에 나도 마음이 아팠다.“다음에 시간 나면 또 와. 아줌마가 또 만두 만들어줄게.” 아줌마는 나갈 때 계속 그렇게 말했다.“네, 다음에 다시 올게요.”빗속을 뚫고 나는 차를 몰고 나왔다. 삼촌은 왜 이렇게 급하게 가야 하냐고 물었지만 나는 중요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만 대답했다.신정훈이 약속한 장소는 부모님의 산소였다. 순간 예전 산소에 놓인 꽃들을 떠올리니, 대체 누가 보냈을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그는 부모님의 묘비 앞에서 검은 우산을 들고 서 있었다. 신정훈 쪽으로 걸어갈수록 내 마음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나는 그의 옆에 다가갔지만 우산에 가져져 나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신정훈 형사님, 맞으시죠?”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그의 우산이 살짝 흔들리며 얼굴을 드러냈다. 순간, 나는 그가 맞다는 걸 확신했다.“안녕하세요, 지원 씨.” 그는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 순간, 신정훈 형사가 부모님의 사망 신고를 접수했던 장면이 떠올랐고 왜 그때 내 연락처를 물어본 건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형사님, 여길 자주 찾아오셨죠?” 나는 부모님 산소 앞에 놓인 꽃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몇 번 왔었죠.” 그의 목소리는 매우 무겁고 차분했다.그는 아무리 봐도 친근하기보다는 조금은 다가가기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03화

    “고인은 이제 떠났으니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깁시다.”신정훈의 말을 듣고 나는 더 불안해졌다. 부모님의 사고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죽은 사람 때문에 살아 있는 사람을 원망하지 말고 소중히 여기라고 나를 타이르는 것 같았다.“형사님, 그건 저도 알죠. 그리고 이 며칠 동안 많은 생각을 했어요.” 나는 내 태도를 분명히 밝혔다. 그가 내 말을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저 결과를 알고 싶어서 말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노트북에서 계약서를 발견한 후로 수많은 추측과 고민을 했고 많은 일들을 이제는 이해하게 됐다.내가 신정훈을 만난 이후, 그는 주기적으로 나에게 정보를 주었지만 결코 답을 주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된 것 같다.신정훈이 말을 마친 뒤, 또 다른 손을 주머니에 넣더니 한 장의 봉투를 꺼냈다.하지만 그는 바로 그 봉투를 나에게 주지 않고 대신 이렇게 말했다.“진정우라는 사람을 알고 있죠?”나는 진정우가 아버지의 죽음을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진정우도 형사님을 찾아왔었나요?”“네, 같은 일로요.”신정훈의 말에 나는 숨이 가빠졌다.“그럼... 진정우도 알게 된 건가요?”신정훈이 고개를 살짝 젓자 나는 더 불안해졌고 그가 들고 있던 봉투를 보며 물었다. “형사님, 진정우에게도 이걸 주실 생각인가요?”내 말이 끝나자마자,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우산을 든 진정우가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내 심장은 마치 거센 폭풍에 휘말린 것처럼 뛰기 시작했다.이 답답한 기분은 진정우와의 과거 때문이기도 하고 그와 함께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었다.그 죽음이 단순한 사고였을지, 아니면 더 복잡한 이유가 있을지…진정우는 결국 계단을 두 단계 올라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우산 너머로 내게 향했지만 곧 신정훈에게로 돌아갔다.“안녕하세요.”신정훈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정우는 그 후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묘비 앞에

Latest chapter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92화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삐 소리 이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법운사로 향하는 길에 나는 강유형에게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기나긴 연결음 끝의 자동응답뿐이었다.가슴이 점점 무겁게 내려앉았다. 요즘 그가 법운사에 머물고 있었기에 더더욱 불안했다. 연락도 되지 않으니 머릿속은 온통 나쁜 상상으로 가득 찼다.그에게 전화를 건 건 단순히 걱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부상자나 사망자가 있는지 그의 입을 통해 직접 듣고 싶었다.하지만 그에게 건 전화는 끝내 연결되지 못했다.나는 액셀을 밟으며 용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그의 어머니가 바로 그 절에 계셨으니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 역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이번엔 아예 거절당했다. 불안은 더 깊어졌다.‘혹시 김지영까지 무슨 일이 생긴 걸까?’그간 수많은 일을 겪어왔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강유형과 김지영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다치거나 희생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랐다.복잡한 심경 속에서 차를 운전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멀쩡하던 절에 왜 불이 난 걸까? 단순한 사고였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의도한 일이었을까? 혹시 나를 노린 불은 아니었을까?’만약 안리영이 나를 데리고 조경태의 생신 잔치에 가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그 절에 있었을 것이다. 죽었을 수도, 심하게 다쳤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내 손에 누군가가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걸 얻지 못하면 나를 없애버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말 그들이 저지른 일이라면 그건 너무 비인간적이었다. 죄 없는 사람들까지 희생시켜서는 안 됐다.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이 나는 어느덧 산기슭에 도착했다. 들이마시는 공기 속엔 타버린 재 냄새가 가득했고 멀리 보이는 산 위엔 아직도 연기가 자욱했다.산을 절반쯤 오르자 경찰이 차량을 막아섰다. 나는 차에서 내리며 이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91화

    난처한 상황이었다. 도무지 어찌할지 몰라 법까지 들먹이고 말았다.“법이 어떤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서른이 넘도록 연애도 안 하고 결혼도 안 하는 건 정상이 아니야. 어느 날 갑자기 남자 며느리라도 데려오면 내가 무슨 낯으로 사람들을 보겠냐?”조경태는 누가 뭐라 해도 듣지 않겠다는 태도였다.“그럼 제가 하나 약속드릴게요. 절대 남자를 며느리로 데려오는 일은 없을 거예요.”조시언은 능청스럽게 받아쳤다.조경태는 씩씩 대며 화를 냈다. 그러자 안리영이 급히 나서며 말했다.“할아버지, 삼촌 좀 그만 괴롭히세요. 안 좋아하는데 억지로 떠민다고 행복해지겠어요?”“이 계집애는 왜 또 얘 편을 드는 거야?”할아버지는 안리영을 흘겨보았다.내가 얼른 말을 이었다.“오늘 온 아가씨들, 저랑 리영이 다 지켜봤어요. 삼촌이랑 어울릴 만한 사람은 한 명도 없더라고요.”지금 이 순간 나도 안리영을 따라 조시언을 삼촌이라 부르고 있었다.“난 못 믿겠는걸.”조경태는 콧방귀를 뀌었다.안리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정말이에요, 할아버지. 그 여자들, 남 얘기하길 좋아해서 뒤에서 험담이나 하는 사람들이에요. 아까도 삼촌 뒷담 까고 있었어요.”조시언은 그녀를 바라보았고 조경태도 흥미를 보이며 물었다.“그래? 뭐라고 험담하던?”“삼촌이 나이가 꽤 됐는데도 아직 결혼 안 한 걸 말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삼촌을 차지해서 조씨 가문 며느리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수작 부릴 생각들만 하고 있었어요.”안리영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오늘 그 여자들이 조시언을 노리고 온 건 분명했으니 말이다.“그건 좋은 일이잖니.”조경태는 오히려 기뻐하며 말했다.“할아버지는 수작 부리는 여자가 좋으세요?”안리영은 조경태가 싫어하는 걸 정확히 알고 있었다.조경태는 말이 없었다. 속이 시커먼 여자한테 크게 당할 뻔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안리영은 나를 향해 눈짓을 보냈고 나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삼촌 짝 찾는 일은 저랑 리영이에게 맡겨주세요.”내 말에 안리영이 눈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90화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 안리영과 나는 방 안의 두 사람을 볼 수 있었다.서로 마주 본 채 각자의 소파에 앉은 모습이었다. 한 사람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젊고 준수한 청년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나이 차가 너무나 뚜렷해 그들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분명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일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부자 관계였다.안리영은 조시언이 입양된 아들이라고 내게 말해준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의아했다. 당시 나이로 치면 조경태는 조시언을 손자처럼 키워도 이상할 게 없었을 텐데 왜 굳이 아들로 삼은 건지 궁금했다.“시언아, 너 이제 나이도 어린 게 아니잖니. 결혼 안 하겠다는 건 그렇다 쳐도 여자 친구조차 없다니. 밖에서 사람들이 너를 두고 뭐라고 수군대는지 너도 알지?”조경태는 수군대다 같은 말도 자연스럽게 썼다.하지만 조시언은 묵묵히 앉아 있을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머리 위에서 내려오는 조명이 그의 얼굴과 콧대를 선명하게 나누듯 비췄다.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면서 그의 이목구비는 더욱 또렷하게 도드라졌다. 깊은 눈썹뼈는 날카로운 선을 연출해 냈다.“사람들이 네가 남자를 좋아한다고 하더라!”조경태는 말을 끝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이런 이상한 소문이 퍼지는 건 우리 조씨 가문의 체면을 망치는 일이다. 우린 그런 망신 못 당한다!”조시언은 그 말에도 여전히 동요하지 않았다. 그의 평온한 표정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고요했다.“남의 입은 막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떠들어대는 건 그들 사정일 뿐, 우린 신경 쓰지 않으면 됩니다.”“넌 신경 안 쓴다지만, 이 늙은이는 창피해서 못 살겠다!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지금 당장 사람 하나 데리고 오든가, 아니면 내가 직접 찾아줄 거다. 결혼 안 해도 좋다. 그냥 네 옆에 여자 하나 세워놔라. 사람들이 널 정상으로 보게 말이다!”그 말에 안리영과 나는 동시에 서로의 팔을 꼬집었다. 안 그러면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이 노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89화

    “넌 안 그럴 거야, 맞지?”안리영은 계속 나를 놀리면서도 언제나 내 편이었다.우리는 함께 연회장으로 들어섰다.조경태는 자줏빛과 금색이 어우러진 긴 도포를 입고 활짝 웃으며 손님들의 축하 선물을 받고 있었다.그는 내가 가져온 선물을 보곤 눈을 반짝였다.“특별한 선물이구나. 아주 마음에 들어.”그 말에 나는 괜히 민망해졌다.강유형의 어머니도 비슷한 걸 선물했는데 어째서 내 것을 특별하다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역시 세상을 오래 산 사람은 달랐다. 누구보다도 말솜씨가 뛰어났다. 받는 사람도 기쁘고 주는 사람도 흐뭇하게 만드는 한마디였다.“리영아, 구 교수는 어디 갔니? 오늘은 왜 같이 안 왔어?”조경태가 슬며시 물었다.안리영은 내 옆구리를 몰래 콕 찔렀다.“그냥 따로 말 안 했어요. 오늘은 그냥 제가 단순히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온 거거든요.”그러나 이 정도 지긋한 나이가 되면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오늘 같은 잔칫날에 인원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고 왔다 해서 구안석이 못 오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는 안리영을 힐끔 바라보다 두어 번 웃고는 더 묻지 않았다.“할아버지, 그럼 선물마저 받으시고요. 저는 지원이랑 가서 뭐 좀 먹고 올게요.”안리영은 핑계를 대며 빠져나가려 했다. 또 무슨 질문이 나올까 봐 걱정된 눈치였다.“그래, 다녀오거라. 다만 너무 멀리 가지는 마. 좀 있다 너희 둘 도움 좀 받아야겠구나.”그 말에 우리 둘은 눈빛을 주고받았다.“혹시 케이크 자르실 때 저희한테 맡기시려는 거 아니에요?”안리영이 농담처럼 물었다.조경태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이마를 콕 찔렀다.“이놈의 계집애, 지금 누굴 놀리는 거냐. 케이크 칼 정도는 들 수 있다고! 그게 아니고, 너희 둘한테 자문 좀 구하고 싶어서 그래.”“자문이요? 혹시 애인이라도 골라달라는 거예요?”안리영은 정말 무서울 정도로 겁 없이 농을 던졌다. 외할머니가 들으면 바로 이마 한 대는 맞았을 거다.“점점 대담해지는구나.”조경태가 다시 한번 그녀를 가리키며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88화

    안리영과 조시언 사이에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성준수는 그 분위기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안리영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하긴 이렇게나 예쁜데 조시언이 마음 줄 만도 하지... 아야, 아파! 조시언, 너 왜 그래?!”성준수는 조시언에게 뒷덜미를 잡힌 채 끌려 나갔고 안리영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정신 나갔네.”“조시언네 리영이?”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장난스럽게 되물었다.안리영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너까지 말썽이야, 얼른 가자. 외할아버지께 선물 드려야지.”그녀는 내 손을 잡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빨갛게 물든 귓바퀴가 그녀의 부끄러움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아까 조시언과의 어색한 분위기를 떠올리다 나도 모르게 장난을 쳤다.“리영아, 너랑 외삼촌 피가 섞인 것도 아니잖아. 내가 보기엔 한번 고려해 볼 만도 해. 잘생겼지, 돈 많지, 만약 네가 저 사람 잡으면 적어도 밖으로 새는 물은 없을 거 아니야.”안리영은 눈을 부릅떴다.“윤지원, 너 또 그런 소리 하면 진짜 절교할 거야.”“어머, 발끈하네?”나는 계속해서 놀렸다.“그만하라고 했지!”안리영은 나를 쫓아와 때리려 했다.나는 그녀를 피해 도망치다가 무언가에 부딪혔다.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익숙한 향이 먼저 스며들었다.고개를 들자 강유형이 서 있었다.요즘 그와 자주 마주쳤다. 절에서도 마주쳤고 조씨 가문에서도 마주쳤으니 말이다.“강 대표님, 이제 가시려고요?”안리영의 말투엔 노골적으로 쫓아내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나는 이미 다 털어냈다 하더라도 안리영은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네.”강유형은 나를 살짝 놓아주며 내 발을 내려다봤다. 다친 데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했다.“조경태 씨 생신 축하하러 왔어요.”그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는 볼 거 다 보고 별일 다 겪은 사이였다. 나는 담담하게 물었다.“저녁 식사는 안 하고 가?”“응, 그게...”그는 말을 잠시 멈추었다.“집에 가봐야 해서.”그 말에 문득 김희연이 내게 건넨 말과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87화

    “아이참, 엄마!”안리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오늘은 외할아버지 생신 잔치잖아, 내 맞선 자리가 아니고.”“뭐 어때?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잖니. 좀 있다가 잘 둘러보렴. 우리 딸처럼 예쁘고 똑똑한 애가 남자 친구 하나 못 찾겠어? 눈만 마주치면 끝이지.”조민영은 시원시원한 성격이었다.안리영은 체념한 듯 말했다.“알겠어. 엄마는 먼저 가서 볼일 봐. 난 지원이 찾으러 갈게. 외할아버지께 드릴 선물도 걔가 챙겨왔거든.”안리영은 그렇게 핑계를 대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난 그녀와 어머니의 대화를 이미 들은 터라 입가에 옅은 미소를 그리고 그녀에게 말했다.“아주머니 꽤 개방적이시네. 근데 나도 그 말 일리 있다고 봐. 예전에 네가 나한테 그랬잖아.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거라고.”“좋아. 마음에 드는 사람 있으면 바로 들이댈게.”그 순간 나는 조시언을 발견했다.그는 어두운 톤의 정장에 검은 셔츠를 받쳐 입고 있었다. 셔츠 단추는 몇 개 풀려있었고 그로 인해 허연 목덜미가 살짝 드러나 있었다. 그 하얀 피부와 검은 셔츠가 만들어내는 대비는 그를 더욱 차가워 보이게 만들었다. 어쩐지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도 자아냈다.“네 외삼촌, 진짜 잘생겼다.”나는 감탄했다.안리영도 내 시선을 따라가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여자들한테 인기 많았어. 예전에 내가 저 사람한테 온 러브레터를 얼마나 많이 대신 받아줬는지 몰라.”하긴 조시언 같은 사람이 인기가 없을 리가 없었다.“그럼 연애는 해봤대?”안리영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아니, 못 해봤을걸.”“그렇다면 마음에 담아둔 사람이 있다는 말이겠지.”내 말에 안리영이은 의외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내 가슴을 콕 찌르는 말을 꺼냈다.“아, 맞네. 너 연애 경험 많았지.”“나 약 올리는 거야? 그렇게 나오면 나도 너 도와줄 마음 싹 사라지는데?”우리가 대화를 나눌 동안 조시언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안리영은 어느새 자세를 바짝 고쳐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86화

    안리영은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 초 후 그냥 끊어버렸다.그토록 단호하고 주저 없는 태도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마 정말로 마음을 굳힌 모양이다.이런 부분에선 그녀가 나보다 훨씬 강했다. 질질 끌지도 않았고 미련도 없었다.사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강유형과 헤어진 건 헤어진 거고 가끔 연락을 하긴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을 때뿐이었다.안리영과 구안석이 여기까지 온 게 아쉽긴 해도 딱히 뭐라고 말할 순 없었다.감정의 온도는 결국 그 당사자만이 아는 법이니 말이다.우리가 함께 차를 마시며 점원의 포장 작업을 기다리는 동안 안리영의 휴대폰 화면이 다시 한번 반짝였다.새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떴다.구안석에게서 온 메시지였다.‘리영아, 나 이제 갈게.’나는 슬쩍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가 무슨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이따가 차단할 거야.”“직접 못 하겠으면 내가 대신 해줄까?”내가 농담처럼 말했다.안리영은 나에게 절친만이 보낼 수 있는 눈빛을 건넸다. 점원이 포장해 준 작품을 들고 매장을 나설 때까지 그녀는 끝내 구안석에게 답장하지 않았다.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그녀의 손가락이 구안석의 메신저 대화창에서 멈춘 걸 발견했다. 그녀는 그들이 나눈 대화를 처음부터 다시 훑어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나는 의아해 물었다.“왜 웃어?”안리영은 내게 휴대폰을 내밀며 말했다.“선배님이랑 나눈 대화 좀 봐봐.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합쳐도 겨우 몇십 개밖에 안 돼. 우리 과 단톡방에서 일주일에 올라오는 공지보다도 적어.”나는 보지도 않고 다시 그녀에게 휴대폰을 돌려주었다.“이미 헤어지기로 한 거잖아. 그런 거 봐서 뭐 하려고.”“지원아, 나 진짜로 연애한 게 맞긴 한 걸까?”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구안석을 차단했다.“공적인 일 있으면 어떡하려고 그래, 그럴 때도 연락 안 하게?”나는 애써 분위기를 풀어보려 장난을 던졌다.“그 사람은 흉부외과고 나는 산부인과야. 서로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85화

    “이거 포장해 주세요. 선물할 거니까 선물 상자에 담아 주세요.”김희연은 점원에게 부탁을 마치고 돌아서다 나를 발견했다.“지원아!”그녀가 놀라움과 반가움이 섞인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아줌마.”나는 그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김희연은 나를 바라보며 눈가를 붉혔고 눈동자까지 촉촉하게 물들였다.“지원아...”그녀는 내 이름만을 부를 뿐 다른 말은 쉽사리 꺼내지 못했다. 마음속에 수많은 말들이 맴돌고 있을 게 분명했지만 끝내 꺼낼 용기가 나지 않는 듯했다.나도 그녀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몇 달 만에 마주한 모습이었다. 흰머리가 부쩍 늘었고 수척해진 인상이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눈빛에서 생기가 보이지 않았다.그녀가 요즘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강두식은 병상에 계시고 두 아들 사이엔 균열이 생겨 서로 등을 돌린 상태다.말 그대로 집안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모든 시작은 나와 강유형이 끝을 맺으면서부터였던 것 같다.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들이 잘 풀린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잘 지내니?”그녀가 한참 만에 힘들게 물었다.“네,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거면 됐다. 그거면 좋아.”나는 그녀에게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어떤 시간을 견뎌냈는지 이미 보아냈으니 말이다.“너도 혹시 작품 보러 왔니? 선물하려고?”그녀는 어색함을 덜기 위해 다시 말을 건넸다.“오늘 저희 외할아버지 생신이라서요. 지원이가 저희 외할아버지 드리려고 보고 있었어요.”안리영이 대신 대답했다.“지원이도 조씨 댁에 가는구나. 잘 됐다, 그분도 지원이를 참 좋아하시잖니. 예전에도 자주 얘기하셨지.”그녀는 말을 잇다가 목이 메인 듯 얼굴을 살짝 돌렸다.나는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가 그렇게 슬픔을 억누르는 모습이 안쓰러워 조용히 입을 열었다.“아줌마, 저 먼저 고르러 가볼게요.”“지원아.”그녀가 다시 나를 불러 세웠다.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 어렵게 말을 이었다.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84화

    “네가 헤어지자고 했는데 구안석이 아무 말도 안 했다고?”안리영의 말을 듣고 나도 좀 놀랐다.안리영은 살짝 웃었다.“아마 그 사람도 지쳤겠지. 차라리 혼자일 때가 더 편했을 거야. 뭘 하든 마음대로 할 수 있고 간섭받을 일도 없고 신경 쓸 일도 없으니까.”딱 봐도 감정 섞인 말이었다.“너, 혹시 이별하자는 말도 일부러 한 거 아니야? 화나서?”내가 조심스레 물었다.안리영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난 정말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야.”내가 코웃음을 쳤다. 안리영이 웃으며 말했다.“진짜라니까. 지난번에 내가 선배한테 귀국할 수 없냐고 물었을 때부터 쭉 고민해 왔어.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뭘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사실 사랑이든 결혼이든 여자들이 바라는 건 결국 하나잖아. 안정감, 그리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 근데 그 사람이 그걸 못 준다면 나 혼자서도 충분한데 굳이 그런 사랑을 붙잡을 필요가 있을까?”안리영은 낮게 물었다.나는 장난스럽게 말해봤다.“그럼 생리적 욕구 해결은?”안리영은 다시 웃었다.“남자를 그 이유 하나로만 찾는 거면 얼마나 쉬워.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되잖아. 게다가 종류도 다양하고 취향 바꾸는 것도 가능하고.”“하하하.”나는 그 말에 웃음이 터졌다.“리영이, 네 취향 은근히 세네?”장난처럼 말했지만 사실 그녀 말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리영아, 네가 어떤 결정을 해도 난 응원할 거야. 하지만 말이지... 이별이라는 건, 특히 진심이었을 때는 헤어지는 순간도 진짜 아프잖아. 힘들면 꼭 나한테 말해. 같이 술이라도 마셔주지.”“응, 필요하면 연락할게.”안리영은 내 이마에 자기 이마를 살짝 맞댔다.“그보다 지금 당장 네가 좀 도와줘야 하는 일이 하나 있어.”“뭔데?”“오늘 우리 외할아버지 생신이야. 이번엔 도저히 빠질 수가 없어.”안리영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녀의 부모님도 몇 번이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보고 싶어 하신다고 했는데 그녀는 그때마다 핑계를 대고 빠졌단다. 이번까지 거절하면 그녀의 어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