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374화

Author: 꽃길
식사는 평화롭게 끝났다. 진수로는 전혀 거만한 태도가 없었고 모두가 편안하게 느낄 정도로 친근하게 행동했다.

진정우는 식사 내내 내게 음식을 덜어주거나 물을 마실지 묻는 것 외에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무뚝뚝함이 마치 그가 진짜 대표인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식사가 끝난 뒤, 진수로는 조용히 마이바흐를 타고 떠났다.

허진호는 술을 마셔 대리운전을 불렀다. 대리운전을 기다리는 동안 그는 진정우의 어깨에 팔을 얹으며 말을 걸었다.

“정우 씨, 오늘 자리 어땠어? 괜찮았어?”

진정우는 그의 손을 툭 치워내며 말했다.

“술 너무 많이 드셨네요.”

“에이, 많이 마신 것도 아니야. 네가 내가 헛소리할까 봐 걱정하는 건 알겠는데 걱정하지 마. 나도 선은 지켜.”

허진호는 다시 그의 어깨를 치려 했지만 이번엔 진정우가 그의 손목을 꽉 잡았다.

“대표님, 어깨 치는 건 별로 안 좋아합니다. 다른 사람 어깨도 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진정우는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 어깨에는 운이 담겨 있다는 말이 있잖아요. 괜히 잘못 건드리면 좋은 운을 다 날려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나는 이 말을 듣고 웃음을 참느라 고개를 돌렸다. 진정우가 이런 미신을 믿을 줄은 몰랐다. 허진호도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곧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정우 씨, 언제부터 그렇게 꼰대 같은 말을 하기 시작했어요? 예전엔 안 그랬잖아요.”

“대리기사 도착했습니다.”

진정우는 그의 말을 끊으며 대리기사의 도착을 알렸다. 허진호는 대리기사와 인사를 나누려 했지만 진정우는 내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이제 갈게요.”

“정우 씨! 내가 아직 할 말이 남았는데 이렇게 그냥 가면 어쩌자는 거예요?”

허진호가 소리쳤지만 진정우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차로 걸어갔다. 길 내내 나는 말없이 걸었고 진정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나는 차 옆에 기대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오늘 본 진수로 대표님, 대기업 대표 같았어?”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왜, 너는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375화

    순간, 온몸에 묘한 열기가 퍼지며 모든 감각이 깨어난 듯했다. 스스로도 놀라울 만큼의 강렬한 감정이 밀려들었다.이런 나 자신이 어쩐지 부끄러웠다. 마치 내가 아닌 것 같았다.예전에 강유형과 사귈 때는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심지어 그와 옷을 벗고도 내게 남은 건 어색함과 긴장뿐이었다.그런데 진정우와 함께한 뒤로는 내가 달라진 것 같았다. 자유로워지고 본능적으로 솔직해졌다.나는 참지 못하고 진정우의 입술을 찾으려 했지만 그는 피했다.나는 그의 목을 감아 끌어당기며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정우야...”내 목소리는 마치 울먹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이런 소리를 내다니, 스스로도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 끌림을 더는 억누를 수 없었다.진정우 앞에서는 항상 내가 가장 솔직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정우야...”나는 다시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얼굴을 더듬었다.그는 손으로 내 목덜미를 감싸며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잠깐만... 우리 집에 가자.”하지만 나는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이 감정은 순간적인 것이기에 놓치면 다시 느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여기 주차장이었다. 누군가 지나가면 우리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결국 이성이 본능을 억누르기 시작했다. 나는 강렬한 감정을 억누르며 그의 목을 살짝 물고는 몸을 멈췄다. 그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내 허리를 단단히 감싼 채로 가만히 있었다.잠시 후, 그는 내 몸을 살짝 떼어내더니 조용히 차 문을 열어 나를 태웠다.그 순간, 내 마음에 남은 건 부끄러움뿐이었다. 어둠 속에서 창피함이 가려지니, 이런 상황이 이해되기도 했다.나는 몸을 웅크리며 눈을 감고 엔진을 켰다. 그런데 출발하기 전, 진정우가 내게로 몸을 기울이며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잘못했어.”그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그는 덧붙였다.“너를 괜히 자극했어.”그 말을 듣자 더욱 부끄러워졌다. 나는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운전하니까 말 걸지 마.”그는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376화

    진정우는 내 말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이내 내가 “아무것도 아니야. 올라가자.”라고 말하자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어두운 복도를 지나며, 차 옆에서 본 그 사람이 떠올랐다.여기가 곧 철거될 곳이라 그는 내가 이곳에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그런데도 찾아왔다니, 그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지금 와서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진정우는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문 열어.”진정우는 가벼운 숨을 몰아쉬며 그는 말했고 나는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문을 열자마자 그는 나를 신발장 위에 올려두었다.그리고 어둠 속에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마치 깊고도 어두운 밤바다 같았다.그 눈에 빠져드는 느낌에, 나는 본능적으로 침을 삼켰다. 내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의 입술이 나를 덮쳤다.“지금은 너에게 달려 있어. 원하는 대로 해봐.”그는 속삭이며 자신의 외투를 벗고 셔츠의 목깃을 풀었다. 차 옆에서 내가 그를 얼마나 강렬히 원했는지를 알았는지, 이번에는 그가 더 적극적이었다.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순간의 열망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때의 감정을 되살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그는 내가 반응이 없다는 걸 알아차린 듯, 움직임을 멈추고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우리 둘 다 아무 말 없이 그 자세로 멈춰 있었다.한참 뒤, 그는 호흡을 가다듬더니 내게서 조금 떨어졌다. 하지만 내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정우야...”그는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모든 것을 꿰뚫는 듯한 깊이를 가지고 있었다.혹시 진정우도 내가 아래에서 본 그 사람을 알아차렸던 걸까?그리고 내 반응이 그와 관련 있다고 오해하고 있는 걸까?“나... 아직 생리 중이야.”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응.”그는 짧게 대답했고 그 안에 담긴 실망과 차가움이 느껴졌다.“정우야, 그런 거 아니야. 오해하지 마.”나는 서둘러 해명하려 했다.“아니야.”그는 고개를 저으며 내 손을 가볍게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377화

    진정우의 말이 맞았다. 분명히 내가 잘못한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내가 억울해서 우는 것 같은 걸까?진정우는 돌아와 눈물에 젖은 나를 보더니 조심스레 안아주었다.“내가 잘못했어. 말을 너무 심하게 했네. 앞으로는 안 그럴게.”그의 사과에 내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나는 손으로 그의 가슴을 치며 말했다.“네가 뭘 잘못했는데. 잘못한 건 나야!”“아니야. 너는 잘못 없어. 내가 잘못했어. 내 욕심이 지나쳤던 거야. 그래서 이상한 말을 했어.”그는 다시 모든 잘못을 자기 탓으로 돌렸다.그런 그의 모습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나는 그의 가슴을 한 번, 또 한 번 세게 때렸다. 그러다가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그의 어깨를 꽉 물어버렸다.“아야, 아파.”그가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소리를 들은 건 처음이었다.나는 깜짝 놀라 입을 떼며 눈물을 가득 머금고 그를 바라봤다.그러자 그는 내 얼굴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물었으면 이제 울지 마. 내일 눈 부으면 보기 안 좋잖아.”“다 네 탓이잖아!”나는 다시 투덜댔다.“응, 내 잘못이야. 앞으로는 안 그럴게.”그는 부드럽게 눈물을 닦아주었다. 하지만 그가 잘못한 건 없었다.나는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눈물로 젖은 내 얼굴을 그의 가슴에 묻었다.“네가 날 이렇게 버릇없게 만들었어.”“맞아. 내 잘못이야. 그래서 네가 나한테 이러는 것도 내가 감수해야 해. 그러니까 한 번 더 물래?”그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는 그의 가슴을 치며 웃었다. 그러자 그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그렇게 우습고도 진지한 다툼이 짧은 시간에 끝났다. 하지만 그 어색함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나 우유 마시고 싶어.”나는 어색함을 덜기 위해 말했다.“알았어. 데워 올게. 넌 가서 씻어.”그는 나를 욕실로 밀어 넣으며 문을 닫아주었다.“정우야,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 안 그럴게.”나는 문을 사이에 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넌 잘못한 적 없어.”그가 남긴 말이 문 너머로 들려왔다. 그 말을 들으며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378화

    “진소영, 수술할 수 있대! 이틀 안으로 가능하다고 해!”안리영의 목소리가 스피커폰을 통해 들려왔다.진정우가 즉시 나를 바라봤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쁜 소식을 전했다.“심장 기증자를 찾았어요?” 진정우가 물었다. 안리영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 시간에 정우 씨가 지원의 집에 있는 건 무슨 이유일까요?”그녀의 농담을 받아줄 상황이 아니어서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그만 놀리고 중요한 얘기부터 해.”안리영이 가볍게 웃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새로운 기증자를 찾은 건 아니고 전에 기증을 거부했던 가족이 마음을 바꿨어.”“구 교수님은 뭐래요?”진정우가 재차 물었다.“소영이 상태가 너무 좋아서 특별한 문제가 없거나 감염 같은 일이 생기지만 않으면, 3일 안에 수술 가능하대요.”안리영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묻어났다.나와 진정우는 둘 다 긴장 속에서도 약간 들뜬 상태였다. 그의 이마에 힘줄이 도드라지는 게 보였다. 나는 그의 손을 꼭 잡으며 진정시키려 했다.“우리가 준비해야 할 건 없어요?” 진정우가 물었다.“특별한 건 없는데… 아, 하나! 수술비용은 미리 준비해 둬야 할걸요?”나는 진정우를 바라보며 재빠르게 대답했다.“걱정 마. 돈은 충분히 준비했어. 병원비는 문제없어.”“오케이, 그럼 이만 끊을게.”안리영이 전화를 끊으려는 듯했지만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정우 씨, 지원 씨가 생리 중이라면서요? 절제하세요.”그녀의 농담에 나는 순간 말을 잃었고 진정우는 어깨를 살짝 으쓱하며 묵묵히 받아들였다. 진소영의 수술 소식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지만 동시에 긴장감도 밀려왔다.그날 밤, 우리 둘 다 좀처럼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아직 동도 트지 않은 이른 새벽, 진정우가 먼저 일어나 주방에서 프라이팬을 다루는 소리가 들렸다.그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아마도 오늘 준비한 아침 식사에는 진소영을 위한 것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다가 휴대폰을 집어 들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379화

    진정우가 내 시선을 따라 물었다.“가볼래?”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지금은 혼자 있고 싶을 거야.”진정우는 더 묻지 않았고 나는 몇 초 뒤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가자.”차가 멀리 달렸지만 백미러에 비친 소지훈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꾹꾹 눌러둔 슬픔을 애써 삼키는 그의 모습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병원으로 가는 길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진정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병실에 들어가기 전 내 손을 조용히 잡았다.그의 손이 내 손가락을 꽉 감싸는 순간, 나는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살짝 미소를 띠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소영이 앞에서는 괜찮아 보일 거야.”“신경 쓰지 말고 밥이나 잘 먹어.”그는 내 손을 가볍게 쥐며 덧붙였다.“누구나 자신의 슬픔을 극복해야 해. 남이 대신할 수 없는 일이잖아.”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병실 문을 열었다.진소영은 책을 읽고 있다가 우리를 보자 책을 던지듯 내려놓고 환하게 웃으며 달려왔다.“오빠! 언니!”그녀는 예전보다 훨씬 밝고 활기찼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혹시 맛있는 거 가져온 거예요?”진소영은 내 팔을 꼭 붙잡고 진정우가 들고 있는 도시락 가방을 바라봤다.“맛있는 거 주러 온 게 아니라 같이 먹으러 온 거야.”내 말에 진소영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그럼 나는 오늘 한 개 더 먹어야겠다!”“기름진 음식은 금지야. 네 상태엔 담백한 식단이 필요해.”진정우의 말에 진소영은 입술을 삐죽였다.“나 지금 스님 되는 중인가요? 나 고기 먹고 싶단 말이에요.”진소영은 아이처럼 투덜댔다. 진정우는 도시락을 내려놓고 그녀의 이마를 톡 치며 말했다.“비슷하지, 뭐.”“언니, 오빠 좀 보세요!”진소영이 내게 투덜댔고 나는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수술 끝나면 오빠가 매 끼니 고기반찬을 해줄 거야.”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소영아, 이제 3일 뒤면 수술이야.”진소영은 놀란 눈으로 나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380화

    ‘그렇게 하실 건가요?’그렇게 하다니, 대체 무슨 뜻일까? 유희연을 포기한다는 의미일까?나는 문 앞에 서서 소지훈을 바라보았다.그의 얼굴은 이미 창백했고 손은 꼭 쥔 채 긴장감이 맴돌았다.“소지훈, 말을 못 알아들어? 당장 나가, 나가라고!”유희연의 어머니는 갑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치며 소지훈을 밀쳤다.소지훈은 밀려 비틀거리며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힘겹게 자세를 바로 세우며 간신히 말했다.“마지막까지 곁에 있을 수 있게 해주세요.”“우리 희연이가 다 너 때문이야! 네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어! 우리 딸을 돌려놔, 우리 희연이를 돌려달라고!”유희연의 어머니는 소지훈을 때리며 울분을 토했다.그 장면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본능적으로 다가가 그녀를 말리고 싶었다.그러나 내가 움직이기도 전에 유희연의 아버지가 그녀를 붙잡으며 말했다.“그만해. 희연이가 마지막 순간만큼은 편안히 떠날 수 있게 해 줘야지.”“희연아, 우리 희연아...”어머니의 울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아버지는 그녀를 감싸안고 병실 밖으로 이끌었다.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들 부부가 병실 밖으로 나오며 나와 눈을 마주쳤을 때야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아저씨, 아주머니.”그러나 유희연의 어머니는 흥분하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그녀가 나를 딸로 착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유희연의 아버지는 조금 더 차분한 모습으로 아내를 붙잡았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놀라움과 혼란으로 가득했다.“당신은... 누구세요?”“저는 윤지원이라고 합니다.”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윤지원...?”어머니는 내 이름을 되뇌며 고개를 저었다.그런 뒤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다.“희연이 아빠, 이건... 이건...”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아내를 다독였다.“희연이 엄마, 이 사람은 희연이가 아니야. 그냥 우리 희연이랑 조금 닮은 사람일 뿐이야.”어머니는 다시 한번 나를 유심히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381화

    유희연이 떠난 후의 장례 문제 때문일까?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그 답은 소지훈만 알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나중에 기회가 생긴다면 물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기회조차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소지훈과 나는 병원에서 두 번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다. 유희연이 세상을 떠난다면, 소지훈이 더 이상 이곳에 나타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마주칠 일도 없을 것이다.나는 병실의 침대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한 번 더 바라보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했다.“희연 씨, 편히 쉬어요.”그렇게 병실을 나와 안리영을 찾으러 갔지만 그녀는 또다시 수술 중이었다. 나는 바로 병실로 돌아가지 않고 병원 바깥에 있는 정원으로 향했다.“지원 씨.”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돌아보니 유희연의 아버지가 서 있었다. 그는 혼자였고 급하게 달려왔는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가 나를 찾아온 것이 전혀 놀랍지 않았다.“아저씨.”“지원 씨, 정말 죄송합니다. 유희연 엄마가 워낙 충격을 받아서 그랬어요.”그는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괜찮아요, 아저씨. 이해합니다.”나는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유희연의 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우리에게는 딸이 하나뿐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그 아이가 떠나면 우리는 딸이 없게 되는 거죠.”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절망이 묻어 있었다. 그를 바라보니, 겨우 쉰 살 정도로 보였지만 머리는 이미 희끗희끗해져 있었다.유희연이 사고를 당한 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그녀는 살아 있지만 부모님과 대화를 나눌 수도 없고 "엄마, 아빠"라고 부를 수도 없다. 그런 침묵 속의 고통이 그들에게도 계속해서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그제야 나는 그들이 유희연을 보내기로 한 이유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유희연은 깨어날 수 없는 상태였다.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은 그녀를 편히 쉬지 못하게 만들 뿐 아니라 부모님의 마음도 갉아먹고 있었다.“지원 씨.”유희연의 아버지는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부모님이 누구신지 여쭤봐도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382화

    그 말을 들으니 내가 휴가를 너무 오래 썼나 싶었다.어젯밤까지만 해도 허진호가 이렇게까지 내 출근을 관대하게 봐주는 이유가 진정우가 그의 뒤에 있는 대주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은...내심 어색함을 느끼며 허진호에게 대답했다.“혹시 고객이신가요? 지금 바로...”“고객이 아니라 여자입니다. 화려하게 꾸미고 마치 아내가 첩을 잡으러 온 것처럼 기세가 대단하더군요.”허진호는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으로 말을 이어갔다.“윤 부장님, 제가 부장님과 정우 씨의 관계를 아는 만큼 오해는 없어요. 그냥 혹시 엮이신 분이 있나 해서 미리 알려드리는 겁니다.”순간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평정심을 유지하며 물었다.“그 여자의 이름은요?”“이름은 모르겠고 성이 함씨라고 하더군요. 근데 딱 봐도 꽤 까다로운 사람 같았어요.”허진호는 마치 그 여자의 분위기에 기가 눌린 듯했다.‘함씨?’아무리 생각해도 ‘함씨 성을 가진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하지만 꺼림칙한 일을 하지 않았기에 불안감은 없었다. 나는 오히려 태연하게 말했다.“저 지금 병원이에요. 그분이 정말 저를 만나고 싶다면 병원으로 오라고 하세요.”“네?”허진호가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만약 오기 싫다면 그냥 알아서 돌아가게 하세요.”머릿속으로 허진호가 당황하는 모습이 그려졌다.“그건 좀 그렇지 않나요?”나는 웃으며 말했다.“허 대표님께서 그 여자를 잘 모시고 싶으시면 마음껏 하셔도 돼요. 저는 오늘 회사에 못 갈 것 같네요. 내일 출근할게요.”진소영이 곧 수술을 앞두고 있어 내가 있어도 딱히 할 일은 없었다. 검사나 준비는 진정우가 곁에서 충분히 도울 수 있을 테니까.“서두르지 않으셔도 돼요. 가족 먼저 챙기세요. 회사엔 별일 없어요. 게다가 마케팅팀 직원들이 워낙 잘해서 윤 부장님이 계시든 안 계시든 문제없습니다.”허진호는 내게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정말요? 그렇다면 제가 굳이 필요 없겠네요. 부장 자리 없어도 되지 않을까요?”나는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했다.“그건 안

Latest chapter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4화

    강유형이 여태껏 안 보이던 이유가 드디어 밝혀졌다. 강진혁이 그를 가둬둔 것이다.안리영의 말이 딱 맞아떨어졌다. 그는 정말로 아버지의 장례식에서까지 수작을 부렸다.용준호는 이미 처리됐고 강유형마저 가둬두었으니 이제 남은 건 강진혁, 그 혼자뿐이었다. 모든 결정권이 그의 손에 넘어갔다.사람들은 말한다. 사내는 독해야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말이다. 언제나 점잖고 다정하기만 했던 그가 지금은 혈육도 모르는 체하는 악마가 되어 있었다.“지원아, 그이를 구할 사람, 너밖에 없어...”김희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더욱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그녀는 이런 방식으로 내게 몰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자신도 강진혁한테 잡혀 갇힐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는 눈을 감고 못 본 척해야만 했다. 이렇게 간접적으로 내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자식에게 두려움을 느껴서라기보다는 그녀에게 아직 다하지 못한 소원이 있었기 때문이다.강두식은 그녀가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고 가장 의지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남자가 먼저 떠났으니 그녀에게 삶은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그저 가장 사랑했던 이의 곁을 지키고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고 싶을 뿐이었다.나는 그녀를 달래고는 조용히 안리영 곁으로 다가가 속삭였다.“내가 강진혁을 붙잡고 있을게. 넌 지하 주차장으로 가서 강유형을 구해.”안리영이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내가?”지금껏 메스만 들어본 그녀였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구하는 일은 해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이곳엔 우리 둘뿐이었고 그녀 외엔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 없었다.망설임도 잠시 안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김희연은 몸을 휘청이더니 그대로 쓰러져 정신을 잃은 척했다.강진혁은 얼른 그녀를 안아 침실로 옮겼고 안리영은 의사라는 이유로 당연히 함께 불려 들어갔다.나와 안리영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역할을 바꿨다. 그녀가 강진혁을 붙잡아두는 사이, 나는 강유형을 구하러 나섰다.“혈압이 너무 높아요. 혹시 혈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3화

    “의료사고는 병원이나 의사의 책임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고 도 선생님도 복직하셨어. 다만...”안리영은 말을 잠시 멈췄다.“다른 병원으로 전근 가셨어.”며칠 동안 병원에 머물면서 그녀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이번 사고 때문에 전근 가신 거야?”“응. 조사 결과 산모의 죽음은 도 선생님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밝혀졌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냥 그녀 손에 죽었다는 사실만 보고 이 모든 게 그녀의 책임이라고 여기는 거지.”안리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씁쓸히 말했다.“사람들의 입이 제일 무서워. 가볍게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다들 몰라.”그 말의 뜻은 도 선생님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기도 했다. 그녀도 지난 세월 동안 유가족들에게 오해받고 괴로워한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우리 리영이, 마음고생 많았겠네.”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맞는 말이었다. 누구나 자신의 삶이 가장 고달프다고 느끼지만 정작 우리가 겪는 고통은 이 세상 온갖 아픔 중의 아주 작은 한 조각일지도 모른다.출관하는 날, 하늘에선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치 하늘조차 이 아픔을 가엾게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나는 안리영과 함께 강씨 가문에 도착했다. 저 멀리 길 양쪽으로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강두식은 평생을 업계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그를 애도하러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강씨댁 대문 앞엔 흰 보가 드리워져 있었고 양옆에는 추모의 글귀가 붙어 있었다. 문 앞에 서기만 해도 가슴 속으로 서늘한 기운이 파고들었다.“조금 있다가 아주머니 뵙게 될 텐데 감정 조절 잘 해야 해. 흥분하면 안 돼.”안리영이 걱정된다는 듯이 당부했다.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잘 알고 있었다. 감정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조절되는 거라면 이 세상엔 그렇게 많은 희로애락도 없었을 것이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2화

    강유형은 들고 있던 휴대폰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온몸에 힘이 빠진 듯했다.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입술을 살짝 떨며 말을 꺼냈다.“엄마가 그러는데, 아빠가... 돌아가셨대.”강진혁은 이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는지 별다른 반응도, 놀라움도 없었다.둘은 말없이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강진혁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가자.”그때 마침 강유형이 전화를 걸어왔고 나는 잠결에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다. 나는 어지럽고 복잡한 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헤매고 있었다.그 전화는 마치 구명줄처럼 나를 그 혼란스러운 꿈에서 깨어나게 해주었다. 하지만 꿈에서 너무 많은 힘을 빼버려서 그런지 목소리가 흐물거렸다.“여보세요...”“지원아.”강유형은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불렀고 그 뒤로 말이 없었다.“무슨 일이야?”나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흐물거리며 물었다.“아빠... 오늘 가셨대.”강유형의 목소리는 깊고도 낮았다. 하지만 내게는 그 소리가 너무 크고 너무 선명하게 들렸다.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주 짧은 찰나였지만 시간조차 멈춘 듯한 기분이 들었다.강두식은 내 부모님의 죽음과 관련된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원망했었다. 하지만 지난 세월 동안 그는 나를 친딸처럼 아껴주었고 그로 인해 나는 더 이상 그를 미워할 수 없게 되었다.그 애매한 감정은 늘 내 마음을 갉아먹었다. 그래서 김희연이 나더러 집에 한번 들르라고 부탁했을 때, 그러겠다고 했지만 결국엔 가지 못했다.이제 강두식은 세상을 떠났다. 더는 그를 볼 수도, 마주할 수도 없게 되었다.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흐느끼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다. 그 틈 사이로 강유형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이제 난 아버지가 없어.”이런 영원한 상실이라는 감정은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나는 안다. 우리 부모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때의 나는 너무나도 어렸지만 그날 느낀 망연자실한 공포는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 깊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1화

    김희연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이내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래... 약속한 거야...”나는 인터넷에서 용준호가 폭행을 당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진과 영상도 함께 올라왔고 댓글에는 속 시원하다는 반응이 줄을 지었다. 조직 연루설도 떠돌고 있었다.하지만 나는 안다. 그건 강유형이 사람을 시켜 한 짓이었다.나만 아는 것도 아니었다. 눈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강진혁은 그 일로 그를 찾아왔다.“네가 용준호를 건드렸지? 살 만큼 살았다는 거야? 죽고 싶은 거냐고.”그는 날 선 질책을 던졌다.“그런가 봐. 불 속에서도 살아남았으니 말이야.”강유형은 비웃는 듯한 말투로 빈정거렸다.강진혁은 그 말속의 숨은 뜻을 알아챈 듯했다. 하지만 따로 더 설명하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은신처 마련해줄게. 용진표가 널 가만두지 않을 게 분명해.”“오라고 해.”강유형은 무심하게 어깨를 으쓱였다.“허.”강진혁은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넌 아직도 우리 아버지가 예전 그 모습인 줄 아는 거야? 지금 어떤 상황인지 너도 잘 알잖아. 용진표는 더 이상 우리 아버지를 봐주지 않을 거라고.”강유형은 소파에 늘어져 앉아 다리를 탁자 위에 올렸다. 두 다리를 교차한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셔츠 단추도 몇 개 풀어진 상태였다. 그야말로 태평한 모습이었다.“내가 언제 아버지 힘을 빌린 적이 있었나?”그는 입술을 살짝 내밀며 말했다.“형, 형은 늘 부모님이 나를 더 사랑하고 유산도 나한테 물려준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형이 모르는 게 있어. 내가 넘겨받은 건 용씨 가문에 다 털리고 껍데기만 남은 KS 그룹이었어. 내가 하나하나 다시 살을 붙이고 키워서 지금처럼 만들어낸 거야. 결국엔 용씨 가문을 내 발밑에서 기어다니게 만들었지.”강진혁의 길고 가는 눈이 안경 너머로 조소를 띠며 번뜩였다.“지금 그 말은 모든 걸 네 실력으로 해냈다고 자랑하는 거야? 부모님이 KS를 너한테 물려준 게 네가 나보다 더 유능해서라고 주장하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0화

    “아무 일도 아니야”안리영은 휴대폰을 끄며 말했다.저 말의 뜻은 대개 무슨 일이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기에 나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아마 구안석과 관련된 일일 것이다.연이 끊겼어도 실처럼 미련이 남는 건 아주 흔한 일이다. 나도 강유형과 헤어진 지 꽤 되었고 이미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그와 완전히 끝맺지 못한 채 이리저리 얽히고 있었다. 사랑이 아니더라도 그 외의 다른 끈들이 남아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임신한 사실을 김희연이 알게 되었고 그녀는 보양식을 한가득 들고 나를 찾아왔다.“참 잘됐다. 지원이도 이제 엄마가 되는구나.”“지원아, 병원은 아무래도 환경이 좋지 않고 먹는 것도 부실하잖니. 집으로 돌아가렴. 아줌마가 돌봐줄게.”...그녀의 얼굴은 기쁨과 감격으로 흘러넘쳤다. 내 아이가 강씨 가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난 더 이상 그녀의 며느리가 아니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녀가 키운 딸이나 마찬가지인 것에서 비롯된 기쁨이었다.비록 우리 부모님의 죽음에 강씨 가문의 책임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강씨 가문에서 보낸 10년 동안 나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해 준 것만은 진심이었다. 그게 죄책감에서 비롯된 감정일지라도 나는 그 사랑을 절실히 느꼈고 실감하며 받아들였다.“아줌마, 삼촌도 돌보셔야 하잖아요. 저까지 돌보시면 너무 힘드실 거예요. 그리고 아무래도 병원에 있는 게 더 안전할 거예요. 무슨 일이 생기면 의사 선생님이 바로 달려올 수 있으니까요.”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원한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두 아들과 나 사이의 미묘한 관계 때문이었다.강유형은 나를 향한 마음을 다 떨쳐내지 못했고 강진혁은 나를 노리는 듯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다시 저 곳으로 들어간다는 건 그야말로 스스로 불길에 뛰어드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게다가 어떤 일들은 내려놓았다 해도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다다르면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99화

    나는 오직 그녀만을 믿었다.“괜찮아. 초음파 사진 봤어. 아기는 아주 건강해.”안리영의 곱고 단정한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저 그렇게 미묘하게 번진 웃음 하나가 내겐 믿음을 주는 보약처럼 느껴졌다.“리영아, 제발 이 아이만은 꼭 지킬 수 있게 도와줘.”나는 긴장과 초조함 속에서 그녀에게 매달리듯 말했다.“당연하지. 이건 너랑 정우 씨의 사랑의 결실이잖아.”안리영이 장난스럽게 받아쳤다.강유형은 고개를 돌렸다. 감춰지지 못한 외로움이 스쳐 지나갔다.그와의 관계에서 나는 이미 완전히 빠져나왔다. 그 역시 이별을 받아들였다고 하긴 했지만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듯했다.안리영 덕분에 나는 병실에, 그것도 VIP 병실에 입원할 수 있었다. 그녀의 당직실이 아니라 정식 병실이었다.아랫배의 통증도 가라앉았고 출혈도 점점 잦아들었다. 마음이 조금 놓이자 문득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그 강 선생님이라는 사람, 갑자기 부임한 거라면서? 어떻게 된 일이야?”안리영은 반 박자쯤 쉬었다가 입을 열었다.“소희연의 고모인가 이모인가 그래.”이 말을 듣고 나는 바로 눈치를 챘다. 슬쩍 그녀의 표정을 살폈지만 전과 다를 건 없었다. 다만 얼굴이 조금 더 야위어 보였다.그녀는 구안석과 헤어졌다. 게다가 먼저 끝내자고 한 것도 그녀였다. 실망이 극에 달해 내린 결정이었지만 그래도 구안석은 그녀가 오랜 세월 마음을 품었던 사람이었다. 그 오랜 감정을 끊어낸다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나는 그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그런 감정은 그 누구도 위로해 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위로하지 않았다. 그녀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저 무심히 말했다.“강유형이 병원장한테 얘기할 것 같아.”“고자질할 만하면 해야지.”안리영은 자비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가만히 당해줄 호구도 아니었다.나는 웃음이 터졌다.“의사 선생님답네. 칼 쥐고 돈 받는 직업이라 그런가 마음도 차갑기 그지없군.”“남한테 괜히 마음 써봤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셈이나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98화

    “유산 조짐이 있습니다.”그 말을 듣자 나는 마치 환청이라도 들은 듯 얼이 빠졌다.‘유산이라니?’“의사 선생님, 저 임신한 거예요?”놀라움과 기쁨이 한꺼번에 몰려와 나는 의사의 가운을 붙잡았다.“몰랐어요?”의사도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러고는 곧 못마땅하다는 듯 한마디 덧붙였다.“요즘 젊은이들은 쾌락만 즐기고 책임질 생각을 전혀 안 한다니까요.”의사는 나와 강유형을 연인으로 착각하고는 설교를 퍼부었다.하지만 지금은 그걸 해명할 정신도, 그의 핀잔에 대응할 여유도 없었다. 나는 재차 물었다.“선생님, 저 정말 임신한 거 맞죠?”“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유산 조짐이 보여요. 아이를 지킬 수 있을지는 아직 몰라요.”의사의 말에 나는 그의 가운을 더 꽉 움켜쥐었다.“제발 부탁드릴게요. 아이를 지켜 주세요.”흥분에 겨워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요즘 들어 이유 없이 아이가 갖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는데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선물처럼 안겨 오다니 꿈만 같은 소식이었다.그런데도 나는 멍청하게 지금까지 아무것도 몰랐었고 그로 인해 아이를 놀라게 하고 말았다.형언할 수 없는 죄책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왔다.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아가야, 아무 일 없어야 해. 꼭...’“우선은 보태부터 시작할게요.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화장실을 가는 것과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무조건 누워 있어야 해요. 일주일 정도 상태를 지켜본 후에 다시 판단할 겁니다. 계속 출혈이 있으면 아이는 지키기 힘들지도 몰라요.”의사는 이미 키보드를 두드리며 처방전을 작성하고 있었다.“선생님, 여기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받을 수 있을까요?”나는 지금 몸을 함부로 움직이기 두려웠고 그저 병원 안에 머무르고 싶었다.이 병원엔 안리영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산부인과 과장이기도 하다.지금은 또 수술에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내가 안정을 취할 수 있게 도와줬을 것이 분명했다.“지금은 남는 병상이 없어요. 일단 집에서 안정을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97화

    “이 난장판에 끼어들 생각은 없어요. 대단하신 지원 양이 알아서 해봐요.”함소은은 그렇게 말하며 용은서의 손을 잡아당겼다. “가자. 준호 오빠 지금 바쁜 거 안 보여? 너랑 놀아줄 틈 없어”“싫어요! 나랑 안 놀아줄 거면 저 언니를 내려놓으라고 해요! 언니가 나랑 놀아주면 되잖아요!”이 아이는 참으로 귀엽고 사랑스러웠다.“그래, 그럼 여기서 계속 붙잡고 있어. 난 먼저 간다.”함소은은 아이의 손을 놓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용준호에게 한마디 던졌다.“이번엔 너한테 맡긴다. 제대로 잘 봐. 잃어버리기만 해봐, 아주 그냥.”그러고는 정말로 가버렸다. 그것도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아주 태연하게 말이다.이 여자는 정말 대단했다. 아이는 그렇게 내버려둔 채로 신경도 안 쓰고 가버렸다.하긴 자신의 딸을 납치까지 했던 사람이니 용준호한테 애를 맡기는 건 별일도 아닐 게 분명했다.하지만 그녀의 행동이 내게는 도움이 됐다. 용은서가 용준호를 붙잡고 있는 덕분에 날 업고 도망가기는 어렵게 됐으니 말이다.함소은이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유형이 도착했다.코피는 이미 멈췄지만 낯빛은 아까보다 더 창백해져 있었다.“용준호, 윤지원 놓아줘. 아니면 오늘 나랑 끝을 보든지 해.”강유형은 단호하게 말했다.그는 용준호랑 한패도 아니었고 평소에 저렇게 거칠게 말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코피도 아직 덜 닦았구먼 왜 또 여기서 영웅 행세야?”용준호가 빈정거리듯 말했다.“오빠 피도 아직 안 말랐거든.”용준호가 날 어깨에 짊어지고 있어 답답하긴 했지만 한마디는 해야겠다 싶었다.용준호는 내 말을 완전히 무시한 채 강유형을 바라보며 말했다.“강유형, 이 여자는 이미 딴 남자랑 잤어. 이제 너랑은 아무 관계 없는 여자라고. 이제 와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남이 쓰던 걸 다시 쓰고 싶냐고.”‘이 자식이 지금 날 뭐라고 한 거야? 지금 붙잡혀 있지 않았다면 당장이라도 주먹을 날렸을 텐데.’“내려놓으라고 했어. 헛소리는 그만하지?”강유형은 더 이상 말다툼할 가치도 없다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796화

    사람들이 나에게 시선을 던졌지만 모두 의혹 가득한 눈으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멀찍이 서서 바라볼 뿐이었다.용준호는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어느 새끼가 감히 널 구하려는지 두고 보자고!”그는 너무나도 오만방자했다.“오빠!”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용준호가 걸음을 멈추었다. 뒤집힌 시야 속에서 만두 머리를 한 여자아이를 보았다.바로 용은서였다.내가 이 여자아이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전에 용준호는 콧방귀를 뀌었다.“저리 썩 꺼져.”살벌한 목소리에 평범한 아이였다면 벌써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하지만 용은서는 그의 혈육이었고 평소에도 늘 호통에 익숙했는지 전혀 겁내지 않고 당당하게 물었다.“왜 사람을 업고 있어? 강도 같아!”대담한 발언이었다.“꺼지라니까.”용준호는 음을 길게 끌며 말했다.“사람 말을 못 알아듣나? 집에서 안 가르쳐줬어?”용은서는 눈을 흘기며 받아쳤다.“오빤 맨날 이렇게 화내. 무슨 폭탄이라도 먹었어?”용준호가 다시 호통을 치려는 순간 용은서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오빠, 나 할 말 있어.”용은서는 정말 사랑스러웠다. 내가 제대로 서 있기만 했어도 당장 품에 안아서 볼에 뽀뽀를 해주고 싶을 정도였다.하지만 용준호는 여전히 사나웠다.“꺼지라고 했지. 말 안 들으면 발로 차버린다.”혈육에게 말이 너무 지나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머리를 후려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하지만 용은서는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고 오히려 그의 바지 끝을 움켜잡으며 나를 바라보았다.“은서야, 언니 구해줘!”나는 목소리를 냈지만 어린아이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것이 소꿉장난처럼 느껴져 부끄럽기 그지없었다.“윤지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애한테 도움을 청하다니. 부끄럽지도 않냐?” 용준호는 나에게도 으르렁댔다.지금의 그는 미친개처럼 닥치는 대로 물어뜯는 중이었다.“오빠, 왜 언니를 업고 있어? 다쳐서 걷지 못해?”용은서의 질문은 철없는 아이다운 순수함이 묻어났다.용준호의 인내심은 바닥을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