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전화는 계속 울렸다. 그녀는 짜증을 내며 전화를 받았다.“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했잖아.”“너무 보고 싶어. 우리 만나면 안 될까? 저 여자와 이혼하고 너와 결혼할게.”그녀의 눈빛에는 실증이 가득했다.“내연녀란 말을 듣고 싶지 않으니 이혼하면 다시 연락해.”그녀는 전화를 끊었다.그 꼴을 하고도 자신과 결혼을 꿈꾼다고?그저 그녀에게 돈을 잘 써서 재미 좀 본 것뿐인데 진지하게 받아들이다니 웃음만 나왔다.그녀는 결혼하게 된다면 무조건 재벌가에 시집갈 것이다.그중의 제일 마음에 드는 상대가 반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었다. 약혼녀가 있어도 상관없다. 결혼한 것이 아니고 아이도 없으니, 그녀에게도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반년이란 시간 동안 그들에 대해 많은 것을 파악했다. 둘 사이에 진연서라는 걸림돌이 있었고 이 아이를 공략하면 아주 완벽한 작전이었다.그 여자를 밀어내고 그녀가 반재신의 곁에서 어려움을 이겨내며 천천히 그녀를 받아들이게 할 신심이 있었다.점심, 반재신은 병원에 있는 진예은을 보러 갔다. 진예은은 여전히 꿈나라였다. 임신한 지난 몇 달 동안 심하게 붓지 않았지만 대신 심하게 잠만 자고 있다.그는 코트를 의자에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다가가 앉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는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그의 손길에 그녀가 눈을 떴다.“왔어?”반재신이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돼지 같아.”진예은이 몸을 일으키며 발끈했다.“누굴 말하는 거야?”그는 볼록 튀어나온 그녀의 배를 가리키며 말을 돌렸다.“여기, 확실히 돼지야.”그의 말에 진예은은 빵 터지고 말았다. 그러다 짧은 비명을 질렀다.긴장한 반재신이 다급하게 물었다.“왜 그래? 배가 아파?”진예은 본인도 놀란 모양이다.“이놈이 나를 발로 찼어.”이렇게 심한 움직임은 그녀도 처음이었다. 배속에 작은 생명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너무 마법 같은 일인 것 같았다.반재신은 그녀의 배를 감싸며 귀를 기울였다.“그래? 나도 들어볼래
멈칫하던 그가 되물었다.“왜 그렇게 묻는 거야?”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그 의사를 믿어?”반재신은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심경을 알아챈 듯한 그는 손을 뻗어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무슨 상상을 하는 거야? 내가 믿는 것은 직업 때문이지 다른 게 아니야.”말을 마친 반재신도 순간 얼어붙었다.‘방금 구구절절 설명한 건가?’“그게...”“난 당신 믿어.”갑자기 진예은이 그의 말을 낚아챘다. 그리고 또박또박 다시 덧붙였다.“반재신, 난 당신 믿어.”그녀가 너무 많은 생각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지금 상황에서 한쪽의 이야기만 듣고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될 것 같기도 했다. 심지어 아무런 증거도 없는데 심윤의를 의심하는 건 억지다.이틀 후, 반재신은 진예은과 함께 빈해로 돌아왔다. 가는 길에 진연서도 데려갔다. 진연서는 전보다 더 말이 없었다.집에 돌아와서도 항상 방에만 있었다.진예은과 반재신이 그녀의 방문 앞에 서 있었다. 진예은이 문을 두드렸다.“연서야, 고모 들어가도 돼?”그녀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반재신은 들어가지 않았다. 진연서는 그를 신뢰하지 않았기에 그가 옆에 있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침대에 앉아 있는 진연서는 진예은이 다가오는데도 무관심했다.진예은이 그녀 옆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고모랑 얘기 좀 할까?”진연서는 조금 흔들리는 듯했지만,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진예은은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네가 뭘 무서워하고 있는지 알아. 고모가 널 버릴까 봐 두려운 거지? 그런데 고모는 영원히 연서랑 함께할 거야. 아기가 태어난다고 해서 연서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야. 고모에게 연서는 하나뿐이고 세상에서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야.”그러자 진연서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빛에서 아무런 생기도 찾을 수 없었다.“고모, 나 치료받고 싶지 않아요.”진예은은 멈칫했다.“왜 그래?”진연서는 울먹이기 시작했다.“약 먹기 싫어요.
그녀는 그의 가슴에 이마를 대고 몸을 기울였다. 순간 반재신이 멈칫했다. 긴장된 그녀의 몸을 그가 꼭 껴안으며 물었다.“왜 그러는 건데?”“정신과 의사를 바꾸면 안 돼?”그녀는 오랫동안 망설였다. 하지만 오늘은 꼭 말을 꺼내야겠다고 생각했다.진연서의 상태는 심각했다. 반년이란 시간에도 치료에는 차도가 없었고 도리어 상태가 더 악화하였다. ‘그 이유는 뭘까?’진연서가 이유도 없이 치료를 거부하고 약을 거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약물 복용 후 나타난 불면증, 두통, 악몽까지 동반하였다. 그녀는 반년 전에 진연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단순한 아이는 거짓말을 하더라도 남에게 덮어씌우는 법이 없다. 타인이 하라는 대로 할 뿐이다. 생각이 아주 단순해서 그 외의 것들은 신경 쓰지 못한다.‘외부의 강요가 없었다면 어떻게 그런 방법을 생각할 수 있을까?’반재신은 눈을 가늘게 떴다.“병이 악화한 게 의사 때문이라는 거야?”반재신의 반응에 진예은은 흠칫 놀랐다.“만약에 말이야.”“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치료를 거부하는 것이 의사 책임이라고? 반년을 미뤘고 의사 선생을 물기까지 했어. 정신과 의사가 필요 없다면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해?”진예은은 깜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그래서 연서가 문제라는 거야?”반재신은 인내심을 잃을 뻔했다.“그럼 아니야?”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진연서가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그녀도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반재신은 협조하지 않은 이유가 의사가 아닌 오직 진연서의 문제라고 여기고 있다.진연서가 했던 행동들은 이미 그의 신뢰를 잃었을 수도 있다.거부하는 이유도 단지 치료받고 싶지 않아서이고 내키지 않아서 일 뿐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고 확신했다.가까스로 진정을 되찾은 반재신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연서를 걱정하는 당신의 마음 알아.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녀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를 받게 하는 거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된
반재신은 그녀의 얼굴을 감싸며 그녀의 눈물에 입을 맞췄다.“잘못된 김에 끝까지 가 볼 수밖에 없어. 진예은, 난 사람을 바꾸는 법을 몰라. 그러니 너도 못 바꿔.”안정을 되찾은 그녀가 잠이 든 후, 반재신은 의사를 불렀다. 방을 나서며 의사가 말했다.“임산부는 감정 기복이 심하면 안 돼요. 적당하게 주의를 돌리세요.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감정 기복이 심하면 산후 우울증을 유발하기 쉬워요.”반재신의 주먹에 힘이 들어가다 느슨해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겠습니다.”의사가 떠난 후, 반재신의 시선이 침실로 향했다. 그는 문뜩 형이 한 말이 떠올랐다. 진연서는 둘 사이를 방해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받아들이기로 했으니, 진연서는 둘을 갈라놓는 존재가 아니다.그는 얼굴을 감쌌다. 이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다음날, 심윤의는 빈해에 도착했다. 도우미가 그녀를 접대했고 진예은도 거실로 내려갔다. 소파에 앉아 있는 여자는 단발머리에 하이넥을 입고 블랙 미니 스커트로 마무리한 옷차림이었다. 메이크업 솜씨도 정교한 것 같았다.도우미가 다가와 소개하려는데 진예은이 웃으며 말했다.“알고 있어요. 이분은 윤의 씨고 연서의 의사 선생님이죠.”몸을 일으킨 심윤의도 다가가 진예은을 훑어 보았다. 그러고는 웃으며 인사했다.“연서를 치료하러 온 거예요. 그럼, 연서 보러 가도 될까요?”진예은은 움직이지 않았다.그때 도우미가 웃으며 말했다.“제가 안내해 드릴게요.”고개를 끄덕인 심윤의는 진예은을 힐끗 보고는 도우미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녀를 본 진연서는 황급히 방안으로 몸을 숨겼다. 진연서의 얼굴빛이 순간에 변했다.도우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 언제 올라왔는지 모를 진예은이 방문 앞에 기대 있었다.“볼일 보세요.”그녀가 도우미에게 말했다.“네.”도우미도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갔다.심윤의는 침대에 앉으며 이불을 조심스럽게 끌어당겼다.“연서가 치료를 원하지 않는
“연서를 걱정하시는 건 알지만, 의사인 저도 확신이 없이 환자를 치료하지 않아요.”그녀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제가 약을 준 건 맞지만, 그것들은 불면증과 두통에 효과가 좋은 것들이고 절대 그것 때문에 유발된 증상이 아니에요. 약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장담할 수 있어요. 믿지 못하시겠다면 감정해 봐도 돼요.”말을 마친 그녀는 가방에서 수면치료 효과가 있는 약통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진예은은 받지 않았다. 잠시 침묵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믿어요.”심윤의는 약들을 도로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그림을 보며 말했다.“사실 연서가 치료를 거부하는 원인은 고모에게 있어요.”진예은은 의아해하며 물었다.“나 때문이라고요?”“만약 치유된다면 고모가 자신을 버릴까 봐 치료를 거부하는 거예요.”심윤의는 그녀를 바라보며 덧붙였다.“특히 임신한 고모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연서에게는 위협이나 다름없죠.”진예은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그러자 심윤의는 미소를 지으며 태도를 고쳤다.“물론 저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에요. 심리 치료에는 적절한 약이 필요해서 뭘 제일 두려워하고 뭘 직면하기 어려워하는지 저보다는 고모가 더 잘 알 것 같아요.”좀 더 얘기를 나누고 심윤의는 약통을 건네고 돌아가기 전 진예은에게 물었다.“연서 보러 자주 와도 될까요?”그녀를 바라보던 진예은이 대답했다.“육시준에게 물어보세요.”심윤의는 웃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대표님은 큰일을 하는 분이셔서 일로도 바쁘신데 귀찮게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남자들은 이런 문제들을 시끄러워하잖아요.”진예은은 차에 타는 그녀를 배웅했다.백미러를 보던 심윤의는 입꼬리를 올렸다. 얼마나 대단한 여자인지 보려고 했는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그 소녀를 소중히 여기는 걸 봐선 그녀를 위해 ‘희생’할 수 있을 것 같았다.거실로 돌아온 진예은은 손에 쥐어진 약통을 도우미에게 건넸다.“감정 맡겨보세요.”도우미는 의아해하며 물었다.“이 약에 문제가 있나요?”“
남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당황스러워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그건 내가 빚을 져서 봐주는 거야.”그의 입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는 그녀의 입술을 만지며 말했다.“명색의 스카이섬 도련님이 빚을 졌다고 봐 준다고?”남우는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다. 하지만 반재언이 그녀를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움직이면 나도 어떻게 할지 몰라?”그녀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얼굴은 점점 더 빨개졌다.“그러면 고자로 만들 거야.”반재언은 가볍게 코웃음 쳤다.“그럼 넌 어떡하려고?”뜨거운 열기가 그녀의 온몸을 덮쳤다. 잘 돌아가던 머리마저 회전되지 않았다. 이미 고장 나버린 것 같다.그녀는 감정에 서툴렀지만 남자들 속에 섞여 있었던 터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남자로 위장했을 때에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큰일 날 수도 있다.반재언의 기다란 손가락이 그녀의 코를 살짝 건드리며 말했다.“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 좀 해봐야겠어.”그녀가 깊게 심호흡했다.“컨셉 유지가 그렇게 어려운 거야?”반재언은 이마에 손을 올렸다.“내가 어떤 컨셉인데?”“성숙하고 듬직하며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 도도함.”처음 만났을 때 그는 이런 망나니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반재언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누가 여자에 관심 없다고 했어?”그녀는 아니꼽게 그를 흘겨 보았다.“치지연과 정민희를 여자로 봤다?”“아니.”반재언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입술을 살짝 건드렸다.“너의 미모에만 관심 있지.”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남우는 두 손 두 발 모두 들고 그대로 그의 품에 안겼다.“투항할게.”얌전한 고양이처럼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남우를 보던 반재신은 입꼬리를 올렸다. “무슨 일로 날 찾은 거야?”그러자 남우는 그의 품에서 빠져나갔다.“현재 빈털터리고 아빠가 카드까지 동결시켰어. 그래서 월급 받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반재언이 웃음을 터뜨렸다.“개인 비서 어때?”그녀가 의아해하며 물었다.“뭘
반재신은 손에 들린 외투를 그녀에게 입혔다. 멈칫하던 그녀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그는 따뜻하게 그녀를 감싸주며 말했다.“요즘 기온 차가 심한데 옷을 왜 이렇게 얇게 입은 거야? 감기 들면 어떡해?”진예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오늘 의사 선생님께서 오셨어.”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알고 있어.”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침실로 향했다. 방으로 들어가자 진예은이 그의 팔을 잡으며 물었다.“나한테 물어볼 거 없어?”그녀의 손을 잡은 그는 진예은을 지그시 바라보았다.“네가 하는 일에는 이유가 있을 텐데 내가 그것 때문에 의심할 거로 생각했던 거야?”진예은은 시선을 내리깔았다.“미안.”반재신은 그녀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다시는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지 마. 억울한 것이 있으면 내게 풀어.”그는 의사의 감정을 자극하지 말라는 지시를 항시 명심하고 있었다. 약을 의심해서 검증하려는 사소한 문제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할 수 있게 밀어주기로 했다.진예은은 그의 품속을 파고들었다.“반재신.”진예은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너무 졸려. 나 좀 재워줘.”멈칫하던 반재신은 그녀를 번쩍 안아 들다 하마터면 놓칠뻔했다.그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너무 무거워.”진예은은 그의 가슴에 기대며 대답했다.“내가 아니라 너의 아들이 무거운 거야.”조심스럽게 그녀를 침대에 내려놓고 슬리퍼를 벗겼다.“그래, 결국 두 사람이니까.”그녀를 침대에 눕힌 그도 옆자리에 나란히 누웠다.그는 그녀의 손을 어루만졌다.“자.”눈을 감은 진예은은 그의 고르로운 숨소리와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점점 꿈나라로 빠져들어 갔다.그렇게 시간은 지나 저녁 8시가 되었다.잠에서 깬 진예은은 반재신이 보이지 않자, 방을 나섰다. 아래층으로 내려온 그녀는 주방에서 분주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진예은은 식탁으로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인기척 소리에 고개를 돌린 반재신이 말했다.“깼어?”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심윤의가 몰래 반재신의 표정을 살펴보다 그가 미간을 찌푸린 것을 보곤 다시 말했다."예은 씨가 왜 저를 그렇게 경계하는 건지 저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제가 연서를 해치려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예은 씨 연서 많이 아끼고 있는 것 같아요.""연서가 예은이 친조카니까 아끼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반재신의 말을 들은 심윤의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그렇네요, 하지만 지금 아이도 가지고 있는데 아무리 연서가 걱정된다고 해도 자기랑 배 속의 아이도 생각해야죠."그 말을 들은 반재신은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재신 씨, 예은 씨가 연서를 이렇게 걱정하고 있는데 연서가 정말 치료를 안 받으려고 하면 어떡하죠? 저 정말 연서가 너무 걱정돼요."생각에 잠겼던 반재신은 그 말을 듣곤 멈칫하더니 심윤의에게 눈길을 돌렸다."그건 심 선생님께서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연서 잘 치료해 주기만 하면 되니까. 저는 회의가 있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반재신은 말을 마치자마자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심윤의는 멀어지는 반재신의 뒷모습을 보며 걱정에 휩싸였다. 조금 전 그의 태도는 누가 봐도 언짢았다, 그녀는 자신이 말을 잘못한 건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했다.한편, 진예은은 진연서와 함께 마당에서 밭을 가꾸고 있었다. 진연서는 화단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작은 삽을 들고 아주머니를 따라 제법 능숙하게 움직이고 있었다.아이는 예전처럼 밝지 않았지만 적어도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 흥취를 잃지 않았다. "연서 잘하네, 이렇게 빨리 배우고."진예은이 옆에서 진연서를 칭찬했다."우리 연서 아가씨 확실히 똑똑한 것 같아요."아주머니께서도 웃으며 말했다.그때, 고급 외제 차 한 대가 대문 밖에 멈춰 섰고 진예은은 차 안에서 내리는 이를 보곤 조금 놀랐다."큰 도련님."아주머니께서 반재언을 보곤 일어서서 반갑게 인사했다."나는 안 들어가면 안 돼? 나 좀 그런데."그때 남우가 고개를 내밀고 마당을 한 번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반재언은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