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뚱보가 갑판 위에 선 데이비 렌지에게 다가갔다."보스.""남강훈한테 딸이 내 손에 있으니까 알아서 잘 선택하라고 해."데이비 렌지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말했다.그 말을 들은 뚱보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남우는 침대 위에 앉아 손을 묶은 줄을 풀어내려고 노력했다. 그녀의 손은 거친 줄 때문에 이미 상처가 가득했다.눈이 여전히 아프긴 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빛을 마주하기는 힘들었다.남우는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침대 위로 누웠다."강 옆에서 자주 걸어도 신발이 젖을 수 있는 거네."남우가 자조적으로 웃으며 중얼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 그녀가 있는 곳으로 들어왔다.그 남자는 음식을 테이블 위로 던지다시피 올려놓고 말했다,"아가씨, 배고프면 혼자 알아서 먹어. 여기는 아가씨 시중 들어줄 사람 없으니까!"곧바로 그 남자는 문을 열고 나갔다.침대에서 일어난 남우는 눈이 빛에 적응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테이블 앞으로 다가갔다. 테이블 위에는 양식이 있었지만 포크와 나이프 대신 젓가락이 놓여있었다.남우에게 포크와 나이프를 줬다가 그녀가 그것을 무기로 사용할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야! 손을 풀어줘야 뭘 먹을 거 아니야!"그때 남우가 갑자기 문 앞으로 다가가 문을 걷어차며 말했다.그러자 문밖에 서 있던 사람이 대답했다."알아서 먹으라고 했잖아요, 여긴 아가씨 시중 들어줄 사람 없다고!""개밥을 주지 그래, 개밥은 손으로 안 먹어도 되잖아. 그럴 거 아니면 손 풀어줘, 아니면 나 굶어 죽을 거야, 내가 죽으면 너희들도 곤란해질 거잖아."남우의 말을 들은 사람이 침묵하더니 결국 문을 열었다."풀어줘, 아무것도 안 보이는 사람이 뭐 눈 감고 어디 가겠어?!"남우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말했다.하지만 두 남자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데이비 렌지의 명령 없이 남우를 풀어줄 수 없었다. 남 씨 집안사람은 교활하기로 소문이 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죄송합니다, 아가씨. 데이비
고개를 숙인 남우가 한참이 지나자 어깨를 떨기 시작했다.남자가 의아해하기도 잠시, 남우가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남자는 그 웃음을 보고 있자니 무섭기도 했지만 왠지 그녀가 자신을 비웃고 있는 것 같아 다시 남우의 머리채를 잡았다."왜 웃는 거야!"그의 말을 듣자 남우가 눈을 떠 차가운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봤다."그거 알아? 내 앞에서 이렇게 나대는 놈들 결과가 좋지 않다는거."남우의 말을 들은 남자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 남우가 바로 손을 묶고 있던 줄을 풀고 그 줄로 남자의 목을 단단하게 졸랐다.순간 남자는 질식할 것 느낌에 빨개진 얼굴로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그 모습을 본 다른 한 남자가 남우 뒤로 가 그녀의 목에 헤드락을 걸어 그녀를 떼어내려고 했지만 남우가 그의 손가락을 잡고 꺾었다. 남자가 고통에 손을 놓은 그때, 남우가 그의 팔을 잡고 탈구시켰다.목을 졸린 남자가 금방 안정을 되찾았을 때, 남우가 그의 머리를 밟았다. 남자의 얼굴이 음식 범벅이 되었을 때, 남우가 그를 내려다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개처럼 밥 먹는 거 참 잘하네."그때,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자 남우가 문을 닫고 안에서 걸어 잠그더니 남자를 돌아봤다.남자는 두려운 얼굴로 연신 뒤로 물러섰다."저 죽이지 말세요, 제발…"곧이어 노크 소리가 들려오자 남우가 의자를 들고 창문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결국 유리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졌고 남우가 창문을 통해 도망갔다."그년이 도망갔어!"갑판 위에서 누군가 남우를 따라오며 소리쳤다.남우가 파이프 위로 올라갔지만 맨 위의 갑판 위에도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곤 숨을 참더니 망설임 없이 바다로 뛰어들었다.물보라가 그녀를 감쌌고 차가운 바닷물이 그녀의 몸으로 침투했다.마치 모든 소리가 사라진 듯했다.남우는 위로 올라가려고 했지만 갑자기 발에 쥐가 나는 바람에 입이 벌려져 바닷물을 먹게 되었다.이렇게나 재수가 없다니..!남우가 허우적거렸지만 몸은 점점 밑으로 내려앉기 시작했다.의식은 점점 희미해졌
"다 제 명인 거야."집사는 그 말을 들으며 남우의 작은 어깨를 감쌌다."도련님…"하지만 남우는 울지도 않았고 창백한 얼굴에서 그 어떤 감정도 보아낼 수 없었다. 마치 감정 없는 몸만 그곳에 남겨진 듯했다.곧이어 어디에서 나온 용기인지 남우가 빗속으로 달려들었다."도련님!"남우가 빗속을 뚫고 남강훈 앞으로 다가왔지만, 그는 고개만 숙인 채 감히 아이의 눈을 바라보지도 못했다. "엄마는요?"남우가 남강훈의 손을 잡고 물었다.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엄마가 제 선물 사서 온다고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왜 안 온 거예요? 왜 나한테 거짓말했어요? 엄마 저 버리고 간 거예요?"남우가 남강훈의 손을 잡고 흔들며 눈물을 떨궜다.남강훈은 그 말을 들으며 점점 무기력해졌다. 얼굴 위를 적시고 있는 것이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 그가 꼭 잡고 있던 선물을 남우에게 건네줬다.선물상자를 받은 남우가 더욱 크게 소리 내어 울었고 남우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남우야, 아빠 잘못이야. 아빠가 엄마 혼자 배에 남겨두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미안해."남우는 바다를 보면 엄마가 생각났기에 그곳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와 아버지는 여전히 사방이 바다로 둘러싼 섬에 살고 있었다.그녀는 나쁜 사람들이 싫었기에 강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그 어느 누구도 자기 곁의 사람들을 해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지고 싶었다.남우는 아버지의 잘못 때문에 어머니께서 죽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비즈니스 때문에 어머니를 배 위에 혼자 남겨두지 않았다면 어머니께서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리고 머지않아 남강훈이 남우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여자아이를 남우 앞으로 데리고 왔다."남우야, 이 아이 이름은 시월이야. 너희 엄마가 구해준 아이."처음 시월이를 만났을 때, 아이는 비쩍 마른 데다가 온몸에 상처를 달고 있었다.어머니께서 시월이를 살리려다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남우는 시월이를 무척 싫어했었다. 남강훈이 남우에게 시월이는 동남아에 유괴되
"그렇게 될 거예요."시월이가 웃으며 말했다.그 기억을 마지막으로 남우가 갑자기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이 병원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녀가 깨어난 모습을 본 남강훈과 시월이가 남우에게 다가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남우야, 괜찮아?""아가씨, 드디어 깨셨네요, 제가 의사 불러올게요!"머지않아 의사가 병실로 들어섰다."열이 좀 나는 것 외에는 큰 문제는 없습니다.""감사합니다.""아가씨, 몸은 좀 어떠세요?"시월이가 침대 옆에 앉으며 다정하게 물었다.하지만 남우는 천장만 바라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남강훈은 남우가 깨어난 것을 마음을 놓았지만 다시 화가 난다는 듯 말했다."데이비 렌지가 너를 납치한다고 해도 아무 짓도 못 할 거라는 거 알면 가만히 우리가 구해주러 가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지 왜 쓸데없는 짓을 한 거야? 재언이가 너를 살려주지 않았으면 내가 먼저 너를 보낼 뻔했어."남강훈이 말을 하다가 갑자기 누그러진 말투로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너한테 무슨 일이 생겼으면 나 죽어서도 네 엄마 얼굴 보러 못 가.""저 봤어요.""뭐?"남우의 말을 들은 남강훈이 멍청하게 물었다.그러자 남우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말했다. 꿈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머리가 무거웠다."엄마 만났어요.."그 말을 들은 시월이가 입술을 깨물었다."죄송합니다, 아가씨. 제가 아가씨를 따라갔어야 하는 건데.. 아가씨한테 정말 무슨 일이 생겼다가는 저…""시월이 네 잘못 아니야, 나 지금 아무 일도 없잖아."남우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하다 갑자기 반재언을 찾았다."반재언은요?""이제 재언이 생각이 난 거야?"남강훈의 말을 들은 남우가 괜히 찔리는 듯 눈알을 굴리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남우가 바다에서 본 것이 환각이 아니라면 반재언이 그녀를 살렸다는 건데 그는 왜 그런 행동을 한 것일까?그때 마침 강유이와 반재언이 병실로 들어섰다. "남우씨, 깨어나서 너무 다행이에요."강유이가 신난 얼굴로 말
반재언의 말을 들은 남우가 잠시 침묵했다.사실 그녀도 자신이 왜 뛰어든 건지 알지 못했다.그녀는 바다를 싫어했지만 여전히 섬에서 살면서 매일 바다를 마주했다. 바다를 마주할 때의 그녀는 생각보다 무덤덤했다.매번 바다로 나가 비즈니스를 할 때마다 그녀는 방 안에 있는 것을 선택했다. 일이 없을 때에는 절대 갑판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바다에서 한태군을 발견했을 때에도 부하에게 내려가 그를 구해오라고 했었다.사실 그녀는 한태군을 살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다른 이의 생사는 그녀와 아무 연관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어머니께서도 차가운 바닷속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뒤흔든 걸 까.그녀는 도대체 왜 그때 뛰어내리는 것을 선택했을까.어쩌면 그저 데이비 렌지에게 잡혀 남 씨 집안에 귀찮은 상황을 가져다주지 않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그런 생각을 하며 반재언의 손에 잡힌 인형을 본 남우가 말했다."나이가 몇인데 유치하게.""남우씨 주는 거예요.""네?"반재언이 말하자 남우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아이들이나 놀법한 못생긴 인형을 자신에게 주겠다니?!"이 인형.. 남우 씨랑 많이 닮아서요."반재언이 인형의 분홍색 치마를 만지며 말했다."눈 검사 좀 해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저 인형이 어딜 봐서 자신이랑 닮았다고 하는 건지."남우 씨 눈 지금도 부어있어요."반재언이 남우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그 말을 들은 남우가 저도 모르게 눈가를 만졌다."많이 부었어요?"그 모습을 본 반재언이 웃으며 인형을 그녀의 앞에 가져갔다."얘 눈도 부었고."그 말을 들은 남우가 인형을 확 빼앗아 오더니 침대에 누웠다. 그녀는 인형을 버리고 싶었지만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인형을 치웠을 뿐이었다.그때 반재언이 갑자기 그녀의 이마를 만졌다.차가운 반재언의 손이 닿자 남우는 잠깐 멈칫했지만 시원한 그 느낌이 좋았다.아니지, 반재언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이틀이나
그는 오늘 이 섬에서 푸조가 통제하고 있는 모든 구역을 집어삼킬 생각이었다. 그래야만 남 씨 집안과 싸울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알겠습니다."뚱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데이비 렌지가 서남 구역을 점령했다는 소식은 남 씨 집안에게도 전해졌다. 백제파가 폭력적으로 집행한 덕분에 서남의 수많은 활구는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폭동으로 혼란스러워진 덕분에 상가들은 전부 문을 닫고 피난하기에 바빴다. 심지어 행인들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적지 않은 여행객들은 호텔에 숨어 감히 문을 나서지 못했다.아람 빌리지, 남강훈과 반재언 등 사람들이 모여 대책을 모색하고 있었다. 시월이의 보고를 들은 연희승이 분노했다."데이비 렌지가 계속 이렇게 나왔다가는 스카이섬의 이름만 더럽힐 겁니다, 잘못했다가 남 씨 집안 비즈니스에도 영향을 줄지도 모르고요. 정말 푸조 구역을 장악했다고 해도 사람들의 환심을 사지 못할 겁니다.""데이비 렌지가 이렇게 나온다는 건 결과에 관심이 없다는 거 아닌가요? 푸조 구역을 차지하고 그 사람들만 자기 것으로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반재언의 말을 들은 남강훈이 고개를 끄덕였다."남우를 납치했으니 내가 찾아가서 따질까 봐 걱정하고 있겠지, 우리 남 씨 집안이 나선다면 데이비 렌지도 그에 맞설 생각인 거야."말을 마친 남강훈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창가로 다가갔다."그 누구도 필요 없는 희생을 하는 걸 원하지 않아. 더구나 곧 죽을 이런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서까지? 스카이섬에는 아직 무고한 여행객도 많고 비즈니스를 하러 온 상인들도 많으니 우리는 그들의 안전을 무조건 확보해야 해."그때 연희승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리고 상대방이 한 말을 들은 그가 웃었다."네, 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그가 다시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국제부의 경찰이 섬 밖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섬에 메트로폴리탄 사람도 있으니 충분할 것 같습니다.""잘됐네, 남 씨 집안사람들도 같이 원경릉이 약 상자를 꺼냈는데 보내도록 하
모든건 그가 스카이섬으로 오기 전부터 계획했던 것이었다.하시호는 그의 첫 말이었다.데이비 렌지는 하시호의 믿음을 얻은 뒤, 하시호에게 몰래 삼활구의 돈을 자신에게 이체하라고 했고 그는 하시호를 도와주는 명의로 뒤에 숨어있었다.이것이 바로 아무것도 없던 탈주범이 스카이섬으로 와 잘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심지어 그는 백제파까지 몰래 사들였다."네 놈이 백제파랑 무슨 거래를 했다는 거야?!"푸조가 화가 나 소리쳤다.그러자 데이비 렌지가 자랑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내가 당신 자리를 빼앗은 뒤, 백제파에게 한 몫 나눠주겠다고 했지."데이비 렌지의 말을 들은 푸조가 멍청한 얼굴을 했다."당신 야망 있다는 거 인정해, 게다가 자기 세력을 유럽 쪽까지 넓히려고 외부 세력을 계속 끌어들이기까지 했잖아. 하지만 당신이 잊은 게 있어, 그 사람들이 아무리 당신한테 집어삼켜지고 머리를 조아린다고 해도 권력과 이익을 동등시하고 있다는 거. 내가 줄 수 있는 거 당신은 못 주잖아.""네가 걔들한테 뭘 줄 수 있다는 거야? 너도 걔들이 너한테 머리를 조아리길 기다리고 있는 거잖아. 그런 주제에 자기는 뭐 얼마나 고상한 것처럼 얘기하고 있어, 우리 모두 이익을 위해 이러고 있는 것뿐이야.""아니, 나는 이익만 보고 이러는 게 아니야."데이비 렌지가 무표정한 얼굴로 푸조를 보며 말을 이었다."나는 더 높은 목표를 가지고 있어. 난 유럽 지역의 건달 두목이 아니라 한 나라의 수령이 되려고 해."그 말을 들은 푸조가 데이비 렌지를 비웃었다."너 같은 탈주범이? 참 대단한 생각하네.""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건 당신이 지금 나에게 졌다는 거야."데이비 렌지가 푸조의 옷깃을 잡고 괴이하게 웃었다."푸조 씨, 당신 이미 졌어, 그것도 아주 철저하게. 하지만 걱정하지 마, 당신 뜻을 이어받아서 유럽까지 갈 거니까. 나도 나만의 권력과 지위를 거머쥘 거야."말을 마친 그가 푸조를 놓아주더니 그의 옷깃을 펴줬다."내
데이비 렌지는 사람무리를 뚫고 지나가며 총알을 피했고 뚱보와 두 명의 부하가 그를 보호했다.네 사람이 차에 올라탔을 때, 경찰이 별장에서 쫓아 나와 차를 향해 총을 쐈지만 차는 그곳을 떠났다.비는 점점 더 거세게 쏟아졌고 차는 비를 뚫고 달리기 시작했다.운전하던 부하 한 명이 앞에 차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곤 급히 브레이크를 밟더니 차를 돌려 다른 길로 도망가려 했다."젠장, 내가 푸조를 너무 얕잡아 봤어. 우리 이 섬을 떠나야 해."데이비 렌지가 이를 물고 말했다.국제 경찰은 그 때문에 스카이섬까지 온 것 같았다. 행적을 들킨 지금, 그는 더 이상 이곳에 남아있을 수 없었다.창밖으로 쏟아지는 비 때문에 시야가 점점 흐릿해졌다. 전방 말고는 주위의 환경을 아예 볼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그때 그는 차를 향해 다가오는 트럭 한 대를 발견한 것 같았다."젠장..!”데이비 렌지가 소리쳤다.그리고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차가 흔들리더니 갑자기 기울어져 뒤집어지고 말았다. 운전하던 이는 그저 차가 숲으로 들어가 나무에 부딪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그 충격에 나무가 끊어졌고 차 앞 유리가 깨져 운전하던 이는 의식을 잃었다.조수석에 앉아있던 뚱보가 차 문을 걷어차고 차에서 나오더니 피가 나는 이마를 부여잡고 뒷좌석으로 왔다."보스, 괜찮으세요?"데이비 렌지는 방금 전에 머리를 차 문에 부딪힌 덕분에 정신이 몽롱했다. 그가 차에서 내리자 뚱보가 그를 부축했다."방금 어떻게 된 거야?""비가 너무 세서 어떻게 된 일인지는 전혀 못 봤습니다."뚱보가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차 안에 있던 다른 한 부하도 절뚝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누군가 뒤에서 그를 내려쳤다.뚱보와 데이비 렌지가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자 빗속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 하나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남자는 가면을 쓴 채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뚱보는 남자를 보자마자 총을 꺼냈지만 가면을 쓴 이가 스패너를 그에게 던져 그의 총을 바닥으로 떨궜다.곧이어 트렁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