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두 발자국도 못 가서 눈앞이 캄캄하고 몸이 나른해져 쓰러졌다. 의식을 잃기 전에 엄혜정은 엄마가 놀라서 소리 지르는 것을 들었다. 엄혜정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달아, 어때?” 조영순은 걱정스럽게 물었다. “엄마…….” 엄혜정은 그렇게 허약하지는 않았다. 고개를 돌리자 불쾌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있는 염민우를 보았다. 순간 엄혜정은 가슴이 조여왔다. ‘혹시 내가 큰 병에 걸린 건 아니겠지?’ “너도 참. 임신한 줄도 모르면 어떡해? 엄마 놀랐잖아.” 조영순이 웃으며 말했다. “임신이라고요? 그럴 순 없어요. 난 임신할 수 없어요.” “왜 임신할 수 없어?” 조영순이 물었다. “설마 너희 피임 조치한 거야?” 이때, 병실 문이 열리자 육성현이 들어왔다. 그리고 육성현의 뒤엔 염정은이 있었다. ‘저 두 사람이 왜 같이 오지? 같이 있었던 게 아니라면 염정은이 나 보러 올 리가 없어.’ “왜 그래?” 육성현은 엄혜정의 손을 잡고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디가 아픈 거야? 의사 선생님은 뭐래?” 엄혜정은 어리둥절해서 옆에 있던 조영순이 말했다. “성현아, 너 아빠 됐어.” 육성현은 엄혜정을 잡고 있던 손이 떨렸다. 육성현도 이런 의외의 사고에 약간 멍해진 것 같았다. 염정은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엄혜정이 오랫동안 임신하지 않아서 낳을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하고 기회를 봐서 비웃어주려고 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이건 육씨 가문이나 염씨 가문에게 있어서 아주 큰 경사일 텐데…….’ “그럴 리가 없어. 의사가 헷갈린 거 아니야?” 육성현이 단호하게 말했다. “너 왜 달이와 똑같은 말을 하는 거야?”조영순은 의혹스러워서 물었다. “설마 너희들 결혼한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도 피임하니?” “나 결찰수술받았어요.” 육성현이 말했다. “너…….” 조영순은 의아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염민우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결찰수술은 왜 해?”
염정은은 명문가의 체면을 고려하는 것처럼 말했다.하지만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했는지는 염정은 자신만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뻔한 일인데 거절할 게 뭐가 있어? 육성현이 정말로 아무 생각도 없을 리가 없잖아.’조영순과 염민우는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엄혜정에게 상처가 될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반드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해…….’“난 널 믿어.”육성현이 말했다.엄혜정은 멍하니 육성현을 바라보았다.이때 염정은이 조급해서 말했다.“성현 씨, 결찰 수술까지 받아 놓고 결과가 뻔한 일인데 왜 자신을 속이는 거야?”“의사 불러와.”육성현이 뒤에 있는 양석에게 말했다.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가 왔다.육성현이 말하기도 전에 염정은이 먼저 물었다.“남자가 결찰 수술을 받았는데 여자가 임신할 수 있을까요? 수술이 실패하지 않는 한 그럴 리는 없겠죠?”염정은이 이렇게 묻는 이유는 의사가 임신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병원의 기술을 부인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었다. ‘자기 입으로 병원을 간판을 부수지는 않겠지!’“수술을 하기 전에 제가 육 대표님께 말씀드렸어요. 결찰 수술을 받는다고 해도 100% 피임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요. 내가 의사로 수년간 일하면서 피임약을 먹고도, 피임조치를 해도, 결찰 수술을 받아도 임신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어요. 그래서 개인 체질의 차이라고 봅니다.”의사가 말했다.“그러니까 제 딸이 임신할 가능성은 있다는 거죠?”조영순이 물었다.“네, 맞습니다.의사가 대답했다.조영순은 육성현을 보며 물었다.“자네는 어떻게 생각해?”“그럼 아무 문제없어. 엄혜정이 임신한 건 내 아이야.”육성현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더 이상 의심하고 허튼소리 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가만 두지 않을 거야.” 그 말을 들은 염정은은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성현 씨만 후회하지 않는다면 낳아 그럼.” 염정은은 조영순을 보며 말했다. “숙모, 난 일 있어서 나중에 다시 보러 갈게요.” 말을
“그럼 임신해버린 걸 어떡해?” 엄혜정도 고민이었다. ‘결찰 수술을 했으니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임신이라니.’ 육성현은 너무 기뻐서 앞으로 가 엄혜정을 품에 안고 말했다. “그럼 낳자! 내가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할게.” 엄혜정은 자신이 누군가의 계산에 의해 임신되었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 육성현은 엄혜정을 데려간 후 거의 안고 다닐 만큼 조심했다. 회사도 안 가고 집에서 엄혜정과 함께 있었고, 주방에 분부해서 매일 다른 음식을 만들게 했다. 엄혜정이 지금 입덧 때문에 많이 먹으면 토해서 최대한 담백하고 영양이 있게 먹어야 했다. 조영순과 염민우, 그리고 염군은 번갈아 가며 엄혜정을 보러 왔다. 각종 유아용품들은 물론이고 아기방까지 다 꾸며 놨다. “엄마 아빠, 그리고 민우, 이제 그만 사세요. 육성현이 이미 많이 샀어요. 언젠가 쓸모 있다고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용품을 다 샀어요. 이제 한 달밖에 안되었는데 너무 급한 거 아니에요?” 엄혜정은 어쩔 수 없이 말했다. “너 앉아 있어.” 조영순은 엄혜정을 소파 위로 끌고 앉았다. “나 그렇게 연약하지 않아요.” 엄혜정은 웃으며 말했다. “넌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어서 몰라. 3개월 전에는 침대에 누워있는 게 가장 좋아. 그런데 넌 계속 돌아다니잖아.” 조영순이 말했다. 엄혜정과 육성현은 눈을 마주치더니 다시 시선을 떨구었다. 엄혜정은 가족들에게 김하준과 아이가 있었다는 걸 말하지 않았다. 엄혜정은 아직도 그 고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배를 가렸다. “어머니, 내가 엄혜정을 지킬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육성현이 말했다. 조영순은 엄혜정의 손을 만지며 말했다. “달아, 엄마는 정말 너무 기뻐. 널 찾은 것도 행복한데 이제 곧 외할머니가 되다니.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거야.” 그러자 염군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맞는 말이야. 네 엄마 지금 매일 저녁 나 자지도 못하게 하고 얘기하자고 하는데 전부
최광영은 방의 위치를 더듬으며 가볍게 문을 열었다. 최광영의 헤드셋은 이소군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양쪽에서 나는 동정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방 안의 시설은 간단했다. 그리고 침대 위의 이불속에는 사람이 문을 등지고 자고 있었다. 최광영은 침대로 접근하며 칼을 꺼내 잽싸게 침대 위에 있는 사람의 목을 향해 찔렀다. 그러자 자던 사람이 피하며 푹하는 소리와 함께 칼이 베개에 꽂혔다. 최광영은 놀라서 빠르게 다시 찔렀다. 하지만 침대 위의 사람은 최광영보다 반응이 더 빠르고 몸놀림이 깔끔해서 최광영 손의 칼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최광영은 손목을 공격당해 아파서 신음소리를 냈다. 밖에 있던 이소군은 이상을 알아차리고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야?” 최광영은 헤드셋에서 전해오는 이소군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몸집을 봐서는 남자로 보이는 눈앞의 사람에게 물었다. “당신 누구야?” 최광영이 묻자마자 방 안의 불이 켜졌다. 진선우는 침대 위에 서서 최광영과 마주했다. “너 나간 거 아니었어?” 최광영은 음흉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간 사람은 다른 사람이고, 난 계속 여기에서 너희들을 기다렸어.” 진선우는 눈빛이 차갑고 살기가 배어 있었다. “널 보낸 사람이 누구야?” 진선우는 육성현의 부하들을 본 적이 없어서 육성현과 관련 있을 것이라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 이소군은 비록 진선우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대충 누구인지 짐작이 갔다. “광영아, 빨리 나와!” 하지만 최광영은 자신의 얼굴을 보았으니 눈앞의 사람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광영은 다시 달려들어 진선우와 맞붙었다. 최광영은 처음엔 진선우와 맞섰지만 점점 힘들어지더니 결국은 진선우에게 발로 차여 뒤집혔다. 최광영이 유리 탁자 위에 떨어지자 산산조각이 났다. 진선우가 눈시울을 붉히며 최광영의 급소를 찌를 준비를 하자 뒤에서 의자가 날아왔다.진선우는 이상을 감지하고 재빨리 몸을 돌렸다. 그러자 의자가 쾅하고 바닥에 내팽개쳐졌다.이소군은 최광
육성현이 술집에 도착하자 최광영은 과다출혈로 인해 사망했다. 함께 동고동락했던 부하들의 분위기가 유난히 무거웠다. 사이가 가장 좋았던 이소군이 슬퍼하지 않는다는 건 거짓이었다. 육성현은 최광영의 시체를 보며 침묵했다. 이소군은 일어난 일들을 모두 말했다. “…… 내가 광영이보고 나오라고 했는데 나오지 않고 진선우와 계속 싸웠습니다. 내가 조금만 늦게 갔더라면 생포될 뻔했습니다.” “내가 말했잖아. 광영의 성질이 언젠가는 자신을 해칠 것이라고.” 육성현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이소군도 사석에서는 최광영을 많이 설득했다. 하지만 최광영은 성격이 욱해서 일을 할 때 너무 감정적이었다. “형님, 우린 반드시 광영의 복수를 해줘야 해요!” 그중 한 부하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말했다. “맞아요. 복수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안중에도 두지 않을 거예요.” 그러자 이소군은 눈빛으로 매섭게 쓸더니 말했다. “경거망동하지 마. 광영의 길을 갈 수 있으니까.” “형님이 세인시에서 가장 권세 있는 사람인데 우리가 그들을 무서워하겠어요?” “형님께선 당연히 두려워하지 않지.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양쪽이 모두 손해 보는 건 무모한 행동이야.” 육성현은 앞을 바라보며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내 허락 없이 함부로 복수하는 사람이 있거나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이 있다면 세인시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할 줄 알아. 광영의 죽음은 내가 기억하고 있을 테니 소군, 넌 가서 뒤처리나 잘해.” “네.” 육성현은 더 이상 머물지 않고 몸을 돌려 떠났다. 집에 돌아가보니 엄혜정은 여전히 침실의 큰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육성현은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워 엄혜정을 가볍게 품에 안았다. 엄혜정은 움직이더니 편한 자세를 찾아 계속 잤다. 이튿날 아침, 육성현은 엄혜정과 함께 아침식사를 했다. 아침식사는 푸짐하고 영양이 충분했다. “계란찜 먹어.” 육성현은 엄혜정에게로 밀며 말했다. “나 배불러서 못 먹겠어.” “한 입만 먹어.”
육성현은 핸드폰을 받고 화면 속의 사람을 보고 사색하더니 말했다. “이게 누군데? 네가 조사하는 일과 관련이 있어?” “어제 두 사람이 피해자를 죽이려 하다가 나한테 당했어요. 다른 한 사람은 가면을 쓰고 있어서 한 사람의 얼굴만 찍혔고요.” “김신걸한테는 말했어?” “네.” “이 일은 나한테 맡겨. 아직 세인시에 있다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거야.” “육 대표님 말씀은 그 사람이 세인시에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그건 장담할 수 없지만 죄를 지은 사람들은 대부분 김명화처럼 숨거든. 이 사람을 찾으면 김명화의 종적도 발견할 수 있을 거야.” 육성현은 일부러 최광영을 김명화와 연관시켰다. 진선우는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말을 마친 진선우는 나가버렸다. 방금 차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다른 쪽 차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들어왔다. 진선우가 들어온 사람을 보니 엄혜정이었다. “사모님, 무슨 일이 있습니까?” “육성현에게 무슨 일로 왔어요? 전의 일은 단서가 있나요?” 엄혜정이 물었다. “어떤 사람이 피해자를 살해하려고 했는데 나한테 잡혀서 육 대표님께 조사 부탁드리러 왔어요.” 엄혜정을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어떤 사람인데요? 사진 있죠? 좀 보여줄 수 있나요?” “왜 육 대표님께 물어보지 않는 거죠? 내가 육 대표님에게 사진 줬어요. 사모님은 임신 중이니 이런 건 신경 쓰지 마세요.” 엄혜정은 당연히 육성현에게 물어볼 리가 없었다. ‘임신해서 예민한 것일 수도 있는데, 왠지 육성현이 나에게 감추는 일이 있는 것 같아.’ “육성현은 육성현이고 나는 나예요. 그쪽도 우리 친정의 실력을 알고 있죠? 나에게 사진만 보여주면 돼요. 힘을 보태서 하루빨리 범인을 찾으면 좋잖아요?” 진선우가 세인시에 온 지 꽤 오래되었는데 아직 아무 진전이 없었다. 겨우 또 한 명의 중독자를 발견했는데 놀라서 제정신이 아니었고, 함정을 만들었는데 사람이 도망갔다. ‘설마 또 기다려야 하는 건가? 김 대표님께선 인내심이 별로 없
“김 사모님의 상황을 물었습니다.” “그걸 차에 타서 묻는다고?” 육성현은 의심했다. “실은 사모님께서 육 대표님이 밖에 다른 여자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진선우도 자기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몰랐다. 아마도 김 대표님 곁에 오래 있더니 자기도 모르게 말이 나왔나 보다. 육성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엄혜정이 왜 그렇게 생각하지? 임신 때문에 예민해서 그런가?’ 엄혜정은 침대에 누웠는데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엄혜정도 육성현을 두둔하고 싶었지만 육성현의 예전 악행들을 생각하면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설마 육성현이 원래부터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은 아니겠지?’ 물어도 인정하지 않을 걸 알기 때문에 엄혜정은 지금 아무것도 내색하기 싫었다. ‘일단 조사를 해서 증거가 나와야 따질 수 있어. 그때 따져야 할까?’ 엄혜정은 자신이 정말 무엇을 조사해낼까 봐 두려웠다. ‘정말 뭐라도 조사해 내면 뱃속의 아이는 어떡하지? 육성현, 제발 날 실망시키지 마. 나 너무 고통스러워. 설마 내가 예전에 겪었던 일을 다시 겪으라는 건 아니겠지? 아이는 죄가 없잖아.’ 진선우는 이쪽에서 일어난 일들을 모두 김신걸에게 보고했다. 김신걸은 한참 침묵하더니 말했다. “또 막혔군.” “김 대표님께서 의심하시는 게 뭐예요?” “누가 날 속이고 있는 것 같아.” 진선우는 김신걸이 자기를 말하는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아닌 것 같았다. “혹시…… 육성현 말입니까? 아 참, 내가 육성현의 거처에서 나온 후 육성현의 아내인 엄혜정이 내 차를 탔는데 육성현에게 들킬까 봐 두려워하며 나한테 왜 육성현을 찾아왔는지 물었어요. 그래서 내가 범인의 사진을 보여줬더니 한참을 말하지 않더라고요. 김 대표님, 엄혜정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받아.” “네.” 진선우는 전화를 끊지 않고 엄혜정의 전화를 받았다. “육 사모님, 무슨 일이세요?” “저…… 김신걸 씨와 통화할 수 있나요? 그쪽 핸드폰 안에 있는 범인, 내가 알아요.” 진선우
진선우가 룸에 들어가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섹시하고 매혹적인 차림을 한 여자가 들어왔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여자는 인사를 하고 자연스럽게 진선우의 곁에 앉아 술을 따랐다. 진선우는 술을 받아 원 샷 했다. “사장님 주량 참 좋으세요.” 여자가 칭찬했다. 그게 바로 여기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생존할 수 있는 방식이자 수법이었다. 진선우는 아무렇지 않게 지갑을 꺼내 안에 있는 십여 장의 지폐를 꺼내 여자에게 주며 말했다. “잘하면 더 있어.” 여자는 갑자기 눈앞이 밝아졌다. ‘돈이 많을수록 인색한데 이렇게 시원시원한 사장은 처음이야.’ “걱정 마세요. 사장님의 요구라면 내가 다 협조할게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많은 돈을 주는 걸 보면 요구만 만족시키면 더 많이 줄 거야.’ “사장님은 딱 봐도 부자 같아요.” “난 돈 없어. 하지만 결산할 수 있어.” “아…… 그래도 좋네요. 남의 돈을 쓰는 게 제일 기분 좋죠.” 진선우는 술을 몇 잔 마시고 물었다. “여기 장사 어때? 들어올 때 보니까 좋아 보이던데.” “그럼요, 장사가 안 좋은 적이 없어요.” “그럼 너는 여기에 장기적으로 있던 사람이야? 아님 잠깐 여기에 있는 거야?” “다른 술집보다 많이 벌 수 있으니까 계속 여기에 있었어요.” “이 술집에는 얼마동안 있었는데?” 진선우가 물었다. “그렇게 긴 것도 아니에요. 1년 좀 넘었어요. 하지만 1년 넘게 일하면서 집 한 채도 살 수 있을 만큼 벌었어요. 사장님처럼 통이 큰 사장님들 덕분에요.” 여자가 쉬지 않고 자신과 술집의 이야기를 하자 진선우는 인내심을 가지고 듣고 있었다. 진선우는 이 여자를 고른 것이 정확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여자는 무엇이든 다 떠벌리는 사람 같았기 때문이었다. “장사가 이렇게 잘 되는데 동업자들이 시비 걸지 않아?”진선우가 물었다. “금조술집의 사장님이 큰 백이 있어 아무도 감히 그러지 못해요.” “나도 세인시에 잘 아는데, 무슨 백인데 그렇게 대단해?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