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은 다른 사람이 있을 줄 몰랐다. “그쪽은 누구세요?” 서정의 표정은 마치 안미옥이 불청객 같았다. “난 이 아이의 시어머니인데, 당신은 누구예요.” 안미옥은 궁금해서 물었다. 엄혜정이 말하기도 전에 서정이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난 얘 아빠의 여자친구예요.” “아, 그렇군요.” 안미옥은 상황을 이해했다는 듯 말했다. 안미옥은 부정하려는 엄혜정을 끌고 가서 말했다. “너 한참 동안 안 올라와서 내려와 봤어. 과자는 좀 더 있어야 하니까 너 먼저 위층에 올라가서 쉬고 있어, 손님은 내가 대접할 게.” “그런 거 아니…….” “괜찮으니까 걱정 말고 나한테 맡겨!” 안미옥은 말하고 옆에 있는 정부에게 분부했다. “사모님 모시고 올라가서 쉬게 해.” 엄혜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서정을 힐끗 보았다. 확실히 이 사람과 말하고 싶지 않았다. 엄혜정은 위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안미옥에게 말했다. “접대할 필요 없어요. 그냥 쫓아내면 돼요.” “알았으니까 빨리 올라가서 쉬어!” 엄혜정은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반쯤 기대어 핸드폰을 들고 뒤적거렸다. 잠시 후 밖이 어두워지더니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 아무도 와서 날 부르지 않지? 설마 서정이 아직 안 간 건 아니겠지? 무슨 일 있나?’ 엄혜정은 침대에서 내려 베란다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이 방의 베란다는 저택 뒤의 푸른 산과 물을 마주하고 있었다. 맑은 강가에서 누군가가 우산도 쓰지 않은 채 괭이를 들고…… 땅을 파고 있었다. 끊임없이 내리는 비 때문에 누구인지 보이지 않았다.엄혜정이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서정과 안미옥이 모두 보이지 않았다. 가정부에게 물어보니 가정부도 모른다고 했다. 엄혜정은 왠지 이상한 것 같아 가정부에게 우산을 가져다 달라고 하고 바로 뛰어나가 강가로 갔다. 가까워질수록 그 그림자가 더욱 선명해졌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안미옥이었다. 아까는 구덩이를 팠는데 지금은 묻고 있었다. 엄혜정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때 번개가
엄혜정은 육성현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구원자를 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왜냐하면 엄혜정도 어떻게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성현이 왔어?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잘 됐다. 내가 과자를 새로 구웠는데 먹어봐.”안미옥은 아들을 보고 기뻐서 말했다.육성현은 엄혜정의 기색을 한 눈 보고 안미옥을 보며 말했다.“내가 엄혜정과 같이 있어주라고 했는데 무슨 일 있었어요?”“일은 무슨, 아무 일도 없었는데?”안미옥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못 믿겠으면 혜정이한테 물어봐.”옆에 앉아있는 엄혜정은 말해야 하는지 말하지 말아야 하는지 몰랐다.“병원에 설명하기 어려우니까 일단 먼저 돌아가세요.”육성현이 말했다.안미옥은 조금 서운했지만 아들이 그렇게 말하자 억울해도 떠날 수밖에 없었다.안미옥이 떠나자 엄혜정은 오늘 일어난 일을 모두 말했다.“어머님이…… 서정을 죽이고 연못가에 묻었어.”“서정이 누군데?”육성현은 음험한 눈빛으로 물었다.“지난번에 병원에서 꽃으로 날 때리던 여자…….”엄혜정은 하던 말을 멈추고 물끄러미 육성현을 바라보며 머릿속에 의심스러운 점이 스쳐 지나갔다.육성현은 병원에서 서정이 한 짓을 목격했었다. 엄혜정을 의아하게 만든 건 육성현이 즉석에서 화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그래서 엄혜정은 육성현이 뒤에서 이 일을 조종한 건 아닌지 의심했다.“무슨 생각해?”육성현은 내색하지 않고 엄혜정을 바라보았다.엄혜정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네가 한 거야?”“뭐가?”“안미옥과 서정이 동시에 여기에 왔어. 안미옥이 들어온 건 이해해. 그런데 서정은 어떻게 들어온 거야? 다른 이유 찾을 생각하지 마. 네가 들여보내지 않으면 서정은 절대로 들어올 수 없어!” 육성현은 소파에 기대앉아 다리를 꼬고 승인하지도 부인하지도 않고 말했다. “계속 말해봐.” “넌 안미옥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일부러 두 사람이 만나게 한 거야. 안미옥이 사람을 죽이면 너랑은 상관없는 일이니까.” 육성현은 손을 들어 자신의 깨끗한 손톱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잘
엄혜정은 가드레일에 서서 아래의 경찰들이 시체를 파내 부대에 넣고 육성현과 소통하고 있었다. 들리지 않아도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모든 죄명을 안미옥의 머리에 덮어 씌우겠지. 하긴, 확실히 안미옥이 죽인 것이긴 하지.’ 육성현이 고개를 돌려 2층을 보자 엄혜정은 시선을 거두고 몸을 돌려 침실로 돌아가 소파에 넋을 잃고 앉아있었다. 지금 엄혜정보다 더 우울하고 초조한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엄혜정은 정말 잠시도 여기에 있기 싫었다. 잠시 후 방문이 열리자 육성현이 침실로 들어가 엄혜정의 곁에 앉아 엄혜정의 어깨를 안고 자기에게로 당겼다. “왜 그래? 다 처리했어?” “안미옥이 감당하면 돼. 걱정 마, 안미옥은 괜찮을 테니까. 기껏해야 병원에서 좀 더 신경 써서 지키겠지.” 엄혜정은 참지 못하고 육성현이 이런 말을 할 때 무슨 표정인지 보았다. 하지만 마치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 말하듯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엄혜정은 육성현이 너무 무섭게 느껴졌다. ‘육성현은 존재해서는 안 될 악마보도 더 무서운 괴물이야.’ 엄혜정은 고개를 숙이고 가볍게 머리를 육성현의 어깨에 기댔다. “그럼 됐어.” 육성현이 샤워하는 틈을 타서 엄혜정은 조영순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정이 죽었어요. 안미옥이 육성현의 저택에서 죽인 거예요.” “뭐라고?” 조영순은 놀라서 말했다. “안미옥은 정신병 환자인데 서정이 듣기 거북한 말을 하자 죽였나 봐요.” 엄혜정은 반만 사실대로 말했다. ‘이 일은 반드시 엄마에게 말해야 해. 그래야 어떤 상황이 생겨도 대책을 마련할 수 있지. 아빠가 따진다면…… 과연 따질까?’ 다음날 엄혜정은 염씨 저택에 가서 네 식구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조영순은 엄혜정을 서재에 끌고 가서 물었다. “너 엄마한테 사실대로 말해. 정말 그렇게 간단한 거야?” 엄혜정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엄마는 왜 이렇게 똑똑해요? 정말 엄마한테 아무것도 못 속이겠어요.”조영순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서정이 육성현의 저택
이때 한 남성복장 가게가 엄혜정의 주의를 끌었다. 엄혜정은 운전기사에게 차를 멈추게 하고 차에서 내려 남성복장 가게로 갔다. 가게 안에는 모두 남성용 사치품들이었는데 양말 한 켤레에 몇십만 원씩 해서 마침 육성현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엄혜정은 한 바퀴 돌더니 결국 자기의 2000만 원으로 넥타이 두 개를 골랐다. ‘이래야 성의를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넥타이를 산 후 엄혜정은 계속 앞으로 쇼핑을 했다. 엄혜정은 기사가 따라다니는 게 싫어서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한 액세서리 가게 앞에 도착하자마자 뒤에서 누군가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혹시 엄혜정이세요?” 엄혜정이 고개를 돌리자마자 착한 소리와 함께 물안개가 얼굴에 뿜어졌고 코를 찌르는 듯한 냄새가 호흡기로 들어갔다. “당신은…….” 엄혜정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앞이 어지러워져 어둠 속으로 빠졌다. 기사가 찾으러 왔을 땐 바닥에 넥타이만 떨어져 있었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엄혜정이 깨어났을 땐 낯선 방안이었다. 방안은 초라하고 낡았는데 공기 속에 축축한 곰팡이 냄새가 가득했다. 이 냄새는 오래 전의 기억같이 익숙했다. 엄혜정은 일어서려고 했지만 손과 발이 모두 묶여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때 문이 열리더니 한 중년남자가 들어왔다. 그 남자는 들어오자마자 증오의 눈빛으로 엄혜정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엄혜정의 머릿속에 이 사람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위험을 느낀 엄혜정은 몸을 뒤로 움직이며 말했다. “당신 누구야? 납치는 불법인 거 몰라?” “그럼 살인이 남치보다 더 큰 죄인 건 알아?” 남자가 물었다. 엄혜정은 그 남자의 말속의 뜻을 분석했다. ‘살인? 나를 죽인다는 건가? 이 사람은 겁도 없나?’ “난 서정의 애인이야.” 남자는 엄혜정이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을 짓자 직접 알려줬다. 그 말을 들은 엄혜정은 바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았다. “그건 사고였어. 범인은 정신병 환자야. 그리고 지금은 이미 통제 받았고.” 엄혜정이 말했다. “그
“넌 여기서 죽어도 억울하지 않아.”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당신이 날 죽이려고 했다면 여기까지 데려오지 않았겠지. 대체 뭘 하려는 거야?”엄예정이 물었다.“너 참 똑똑하구나. 나는 육성현이 너를 구하러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너희 둘을 모두 죽일 거야!”엄혜정은 눈앞의 남자가 택도 없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남자가 육성현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엄혜정도 이곳에 대해 잘 알고 있는데 육성현은 더 말할 것 없었다. 왜냐하면 여긴 육성현의 지역이라 눈을 감고도 어디로 가는 길인지 알고 있었다.여기서 이 남자를 죽이는 게 다른 곳보다 더 은밀했다.엄혜정은 눈앞의 남자가 이런 통제불능의 일을 저지른 것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서 호의로 충고했다.“책임을 따지지 않을 테니까 어서 가! 육성현이 오면 당신은 갈 수 없을 거야. 그리고 함께 죽는 건 더 불가능한 일이고.”“뭐라고?”남자는 자극을 받아 엄혜정에게 다가가 뺨을 후려쳤다.“…….”엄혜정의 얼굴은 맞아서 화끈거렸다.“나는 서정을 사랑한다고! 너희가 내 애인을 죽였으니 난 너희를 가만 두지 않을 거야.”엄혜정은 얼굴을 들어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그건 아닌 것 같은데. 당신이 정말로 서정을 사랑한다면 그런 일들을 할 때 막지 않을 리가 없잖아?”남자는 비통해서 말했다.“맞아, 내가 잘못했어. 막았어야 하는데…… 그러니까 죽어도 너희 둘을 먼저 죽일 거야.”엄혜정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이 사람은 이미 극단적인 길을 걷고 있어.’“육성현에게 전화해.” 남자가 엄혜정에게 핸드폰을 주었다. 엄혜정은 어이가 없는 말투로 말했다. “당신이 전화하지 않아도 육성현은 이곳을 찾을 수 있어. 왜냐하면 당신이 날 납치한 곳이 그렇게 은밀하지 않거든.” “전화하라고 하면 해.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남자는 엄혜정의 다리를 걷어차며 말했다. 엄혜정도 좋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날 묶고 있는데 어떻게 전화해?” 남자는 잠깐
남자는 엄혜정을 들고 연못 구석으로 걸어갔다.연못 바닥에 콘크리트 벽에 물을 주입하는 쇠파이프가 하나 있다.밧줄로 엄혜정의 손과 쇠파이프를 감아 단단히 묶었다.“당신 뭐해? 육성현은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엄혜정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발버둥치고 있다.그러나 밧줄은 꽉 조여 쇠파이프에 묶여 꼼짝 도 하지 않고 오히려 엄혜정의 살갗이 가늘고 부드러운 손목을 조여 아프게 했다.엄혜정은 아예 움직이지 않았다.실제로 엄혜정의 저항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그렇지 않으면 엄혜정의 발에 있는 밧줄을 풀 때 이 남자를 걷어차서 날려버릴 것이다.엄혜정도 육성현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어떤 스토리가 펼쳐질지 궁금하다.육성현은 엄혜정을 위해 목숨을 걸지 않을 것인가?만약 그렇다면, 육성현은 그 동영상과 사진을 공개하는 것을 아까워할 것인가?엄혜정은 부인하지 않았다. 엄혜정의 마음속에는 계략으로 가득 차 있었다.다른 사람이라면 엄혜정은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이다.그러나 육성현에 대해서는 없을 뿐만 아니라 원한을 풀기에는 부족하다고 느꼈다!괴물에게 인자한 것은 자신에게 잔인한 것이다!남자는 엄혜정을 잘 묶어서 목 위만 물 밖에 있게 한 다음 옆에 있는 물밸브를 열었다.연못의 수위는 천천히 올라갈 것이다.“당신의 머리 위로 물이 덮이기 전에 육성현이 제때에 나타나 당신을 구할 수 있는지 궁금하네.”남자는 자신의 계략과 걸작에 매우 만족했다.“하지만 나는 그 사람이 늦을 것이라고 생각되네. 필경 빈민굴에는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CCTV도 없지. 그 사람이 한칸씩 이곳을 찾아올 때 너는 이미 죽었어.”말을 마치고 연못에서 올라가서 떠날 준비를 했다.“그냥 간다고? 우리 랑 같이 죽는다고 하지 않았나?” 엄혜정이 물었다.“죽더라도 너희 둘이 먼저 죽어 가는 걸 지켜봐야 지!”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몸을 돌려 달아났다.연못의 수위가 올라가고 있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엄혜정은 수위가 조금씩 엄혜정의 얼굴로 올라가는 것을 선
육성현은 엄혜정이 눈을 뜨는 것을 보고 생명에 지장이 없어지자 팽팽하던 안색이 그제서야 풀려 입술을 그었다.“내가 있으면 너는 죽을 수 없다.”엄혜정은 그의 품에 주저앉아 숨을 헐떡였다. 비록 엄혜정은 죽을 수는 없었지만, 여전히 폐가 쑤시고 아팠다.“병원에 데려다 줄게.”육성현은 방금 말을 끝내자 그 도망간 남자는 붙잡혀 목욕탕에 던져졌고, 발 밑이 미끄러지면서 픽 바닥에 넘어졌다.육성현은 음침하고 무서운 눈빛으로 쓸어버리고 엄혜정을 품에 안아 천천히 일어났다.“여기를 던져 내 눈을 더럽혀? 아무데나 찾아 고통스러운 대로 해!”“네!”엄혜정은 육성현의 품에 안겨,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천천히 땅에서 일어나는 남자를 바라보며, 눈에는 한과 살의가 가득했다.갑자기 이상함을 느꼈다. 다음 숨간, 남자는 몸 옆의 부하를 세게 부딪쳐 앞으로 달려와 옷을 찢었다.남자 몸에는 직접 만든 화약이 잔뜩 묶여 있어 목욕탕 전체를 폭파할 수 있는 양이었다!엄혜정의 몸이 본능적으로 굳어졌다. 육성현은 걸음을 멈추고 안색이 음산하여 엄혜정의 손을 꼭 안았다.이 사람이 이렇게 지체없이 죽음을 자초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날 죽 일려고? 그럼 같이 죽자! 너희들 오지 마, 그렇지 않으면 내가 폭발 시킬 거야! 다 같이 죽어!” 남자는 손에 라이터를 들고 미친 표정을 지었다.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한 공멸이다.한 계책이 성공하지 못하면, 또 다른 계책이 있다.“당신은 뭘 원해?” 육성현의 목소리는 감정이 없고 한기가 넘쳤다. “무슨 조건이 있으면 말해봐.”“나…… 나는 너희들이 죽기를 원해!”남자는 육성현의 눈빛을 무서워했다. 마치 죽은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그도 고문당하고 죽은 그런 사람이다.이것은 남자의 마음을 더욱 두려워하게 하여, 마음을 걸고 몸에 있는 화약에 불을 붙였다.엄혜정은 육성현조차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사람이 이렇게 결단한 것을 의아하게 여겼다.목욕탕 밖에는 검은색 고급 차 여러 대가 주차되어 있었
침대 옆에 조영순이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작은 소리로 훌쩍거리고 있다.그리고 염군와 염민우도 모두 굳은 표정으로 거기에 서 있었다.“엄혜정, 깨어났어?” 눈을 뜨고 막막한 엄혜정을 염민우는 가장 먼저 발견했다.조영순과 염군은 바로 다가가 걱정스럽게 딸을 불렀다.“달이!”“아빠…… 엄마…….”엄혜정은 목소리가 좀 쉬었다.“빨리빨리, 의사 불러.”조영순은 당황하여 재촉했다.염민우는 이미 가장 먼저 벨 눌렀다.의사가 와서 검사했다.엄혜정은 의사로부터 팔에 약간의 찰과상만 있을 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가족들의 반응을 보니 심각한 줄 알았다.의사가 떠난 후, 조영순은 엄혜정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의사가 괜찮다고 검사했지만, 불편하면 말해야 돼, 알지?”엄혜정은 개인병실을 둘러보며 물었다.“육성현은?”염민우는 말했다.“예전 부하로서 그래도 보러 갔어. 내상 좀 있지만 큰 문제는 없어. 보름 정도 머물면 퇴원할 수 있어요.”엄혜정은 육성현이 가볍게 다치지 않을 줄 알았다.그래도 목숨이 달린 셈이지.그렇지 않으면 목욕탕이 그렇게 부서져서 벌써 죽었을 것이다.“나는 육성현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너를 보호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 그가 몸이 좋아지면 함께 염씨네 집에 돌아가 밥 먹자!”조영순은 이 일로 육성현에 대해 태도가 개변 되였다.엄혜정에게는 오히려 번거로웠다.엄혜정은 육성현과 엮일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마음을 접어야 할 때 접어야 된다.하지만 엄혜정은 듣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엄혜정은 가족이 없는 틈을 타서 육성현의 병실로 갔다.육성현은 침대에 반쯤 기대어 눈을 감고 있다. 눈이 좁고 길어 날카롭고 포악한 느낌을 준다.핸드폰을 침대 옆에 두고 언제든지 회사 일을 조종할 수 있을 것 같다. 엄혜정은 침대 옆으로 가서 꼼 짝도 하지 않는 육성현을 보고 물었다.“언제까지 자는 척해야 합니까?”육성현이 눈을 뜨자 호박 빛 눈동자는 깜짝하지 않고 엄혜정을 쳐다보았다.“알아봤어?”“그냥 보러 왔어.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