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 일부러?"육성현의 표정은 온통 먹구름 속에 덮여 있는 것처럼 어두웠다.“쫄았어?”“저…….”이소군은 바삐 일어서서 그를 밀었다.“어서 주우러 가지 않고 뭐해, 정말 형님을 화나게 할 거야?”최광영는 이소군의 눈빛을 받고 이를 악물고 울분을 참으며 걸어가 바닥에 있는 종이를 주웠다. 그리고 위의 내용을 보자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더니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읽었다.“이 자리에 있는 남자 중에서 하나를 골라 입을 맞대고 술을 먹여주기.”이소군은 흠칫 놀랐다.‘저걸 읽는다고?’이소군은 최광영이 줄곧 충동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머리가 없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보아하니 오늘 밤에 나타난 엄혜정은 최광영을 자극한 것 같았다. 육성현의 표정은 이미 엄청 안 좋아졌다.엄혜정은 마치 이 점을 눈치채지 못한 듯 진지하고 차갑게 최광영에게 물었다.“어느 사람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해요?”최광영를 그곳에 경직시켜 아무 말도 못했다.‘형님 빼고 또 누굴 고를 수 있어?’최광영은 육성현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 고의로 엄혜정을 괴롭혔다.“쪽지의 내용인데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형님을 선택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이 게임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었나 봐.”엄혜정은 얼굴을 돌려 육성현을 쳐다보았다.“그죠?”줄곧 나른하게 소파 등에 기대어 있던 육성현이 일어섰다.“나랑도 상관없는 일이야.”다른 부하들은 여자랑 해명하는 육성현의 모습을 보고 믿기지 않았다. 그들은 육성현의 신분으론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졌으니까 벌칙을 따라야죠.”엄혜정은 육성현의 잔을 들고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두 손으로 그의 가슴을 누르고 키스했다술이 엄혜정 입에서 육성현의 입속으로 술술 넘어갔다. 육성현은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술맛을 느끼기 시작했다.이소군은 코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숙였다. 최광영는 얼굴을 돌려 자신이 더 화가 나지 않도록 보지 않았다.다른 동생들은 더 무서워서 볼 엄두가 나지 않았고 술잔을 들고 술을
최광영은 참을 수 없었다.“형님, 너무 뻔하잖아요?”그가 이렇게 말을 마치자 엄혜정은 화투를 만지작거리더니 냈다."확실해?”최광영는 확실하지 않았고 망설이기 시작했다.다시 엄혜정의 차례가 되었을 때 엄혜정은 조금 전처럼 같은 전술을 썼다.그리고 한 바퀴 돌았을 때 최광영은 엄혜정 손에 보다 많이 남은 장수를 보고 망설이던 패를 던졌고 엄혜정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패를 먹었다.최광영은 바보처럼 옆에서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에이, 설마 저 여자 원하는 패가 나오겠어? 뻥이겠지?”“운이 이렇게 좋은 사람이었어요?”최광영는 엄혜정을 업신여겼다.“실망하시겠는데요.”엄혜정은 번진 패를 보여주더니 마침 엄혜정이 원하는 패였다.“최광영, 너 대체 놀 줄 아는 거야 모르는 거야!’이소군은 지금 최광영을 때리고 싶을 만큼 화났고 최광영의 표정도 엄청 좋지 않았다.육성현은 웃으며 손에 든 화투를 버렸다.“돈 내야지!”연거푸 네 판을 놀았는데, 모두 엄혜정이 이겼다. 이소군은 참느라 말하지 않았지만 최광영은 참을 수 없었다.“형님, 이러시는 게 어딨어요?”육성현은 일어나면서 옆에 있던 부하에게 손을 흔들며 얘기했다.“그럼 사람을 바꿔보지 뭐. 네가 와서 해.”그 부하는 명령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육성현은 아예 엄혜정의 옆에 앉아 엄혜정이 노는 것을 지켜보았다.엄혜정은 몸을 곧게 펴고 앉았고 육성현이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를 앉아있음을 느꼈다. 육성현의 뜨거운 숨은 엄혜정의 목덜미에 닿았다.육성현이 없으니 엄혜정은 전처럼 순조롭게 놀 순 없었다. 그러다가 아예 같이 죽는 것을 선택했다.다음 판에도 엄혜정의 패는 엉망이었다.다만 패가 잘 나와서 엉망은 패를 손에 들고도 잘할 수 있게 되었다.가끔은 손에 좋은 패를 두면 오히려 이기지 못하고 졌다.마지막에 엄혜정이 가장 필요한 패는 마침 최광영의 손에 있었고 최광영이 그 패를 버리게 하려면 우선 먼저 최광영에게 점수를 줘야만 했다.그래서 엄혜정은 일부러 최광영이 원하는 패를 버렸고 최
이소군이 아래에서 그를 한 발 차고서야 최광영은 참고 발끈하지 않았다.옆에 있던 육성현은 부하에게 주스를 가져오라고 말하였고 빨대까지 직접 꽂아주고 엄혜정의 입가에 가져다주었다.엄혜정은 멍해져서 빨대를 물고 주스를 들이마셨다.최광영은 눈알이 떨어지려고 했고 이소군과 눈을 마주치자 모두 상대방의 눈에서 경이로운 기색을 보았다.또 화투를 놀다가 재미가 없게 된 엄혜정이 물었다."돌아가도 돼요?육성현은 주스 컵을 내려놓고 말했다.“그만 치자.”“형님, 벌써 가시게요? 얼마 놀지 않았잖아요.”“그니깐요 형님, 모처럼 놀러 나왔고 또 소군의 생일이기도 하는데 한밤중까지 노셔야죠!”최광영는 흥이 깨졌다.“네 형수가 임신해서 늦게 자면 안 돼. 다음에 또 놀면 되지.”육성현은 말을 마치고 엄혜정과 룸을 떠났다.“젠장!”최광영는 화가 나서 의자를 걷어찼고 방금 화투 판을 엎으려는 것을 꾹 참았다.“엄혜정이 임신해서 지금 형님 엄혜정이 뭐라고 하면 다 들어주는 거야?”이소군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최광영는 자기 귀를 만졌는데 그 작은 상처는 아직 남아있었고 그우의 혈흔은 이미 말랐다. 하지만 아직도 통증이 있었다.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고 심지어 엄혜정에게 손을 댈 수 없으니 화가 더 났다.‘평생 이렇게 억울한 적이 없었어!’최광영은 엄혜정이 재수 없게 되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다.엄혜정과 육성현은 술집 홀을 지나가려고 할 때 의외라는 듯이 엄헤정을 부르는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엄혜정 씨?”엄혜정은 고개를 돌려 염민우를 발견하였고 옆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염민우의 친구 같아 보였지만 엄혜정은 다 몰랐다.염민우가 다가와서 말했다.“정말 혜정씨 맞네요?”염민우는 옆에 있던 육성현을 바라보고 말했다.“형님, 어떻게 여기서 다 만나죠.”이곳은 로얄그룹이 아니므로 염민우는 자연히 육성현을 사장님이라고 부를 필요가 없었다.회사의 상사와 직원인 관계를 빼도 워낙 두 가문이 가까웠고 지금은 정략결혼까지 하려고 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팔꿈치가 밖으로 꺾여? 세인시에서 육씨 집안 빼고 염씨 집안이랑 걸맞은 가문이 있어? 육성현은 육씨 집안의 유일한 후계자고 전도가 양양해. 얼마나 많은 가문들이 탐내고 있는지 몰라? 너만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조영순은 말을 이어갔다.“물론 우리 염씨 집안도 나쁘지 않아. 제일 걸맞은 두 집안이란 말이야.”“암튼 전 이 일을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육성현은 틀림없이 그 아이를 가질 거잖아요. 염정은도 세 살짜리 애도 아닌데, 이 정도 처리 능력도 없겠어요?”염민우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이런 일은 친정 사람이 해줘야 하는 거야, 몰라? 가서 잠이나 자, 온몸이 다 담배 냄새고 술 냄새야!”조영순는 사람을 내쫓았다.염민우는 그의 엄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조영순은 염정은을 자기 딸로 생각하고 걱정하고 있다.아버지의 얘기론 그때 누나를 잃어버린 후 어머니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온종일 눈물로 세수하며 매일 저녁에 수면제를 먹어야만 눈을 감을 수 있다고 했다.오랫동안 그랬다. 후에 염정은에게 위로 받는 법을 찾고서야 수면제를 천천히 끊었다.“너무 늦지 말고 일찍 자요.”염민우는 방으로 돌아갔다.목욕을 마치고 염민우는 윗몸을 벗고 복근 6개를 드러낸 채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들고 엄혜정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볼까 말까 망설였다.이리저리 생각하다가 엄혜정에게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우리 엄마가 혜정 씨 임신했다고 했는데, 정말이에요?”]육성현은 목욕을 하고 있었다. 먼저 목욕을 한 엄혜정은 침대 머리에 기대어 핸드폰을 가지러 가려던 참에 핸드폰이 울렸다.염민우가 보낸 문자였고 문자 내용을 보자 엄혜정은 멍해졌다. 그리곤 빠르게 한 글자로 답장했다.[네.]염민우는 좀 짜증이 났다.[정말 육성현이랑 영원히 함께 있으려고요? 그 사람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니에요.]엄혜정은 아주 유머러스하게 대답했다.[사람 볼 줄 아는군요, 앞으로 여자 친구 찾을 때도 이런 안목이 있길 바라요.][여자
“아니요.”육성현의 시선은 컴퓨터 화면에 계속 고정되었다.“앞에 레스토랑에서 밥 먹을 거니까 내려줘요.”“네.”육성현은 핸드폰을 들고 엄혜정에게 전화를 걸었다.“여기 바빠서 못 갈것 같아요. 밥 꼭 챙겨 먹어요.”“알았어요.”“뭐 해요?”“푸딩이 밥 주고 있어요.”“그 녀석을 엄청 신경 쓰네요.”“나랑 오랫동안 함께 한 녀석이니까 당연히 잘해줘야죠.”엄혜정은 담담하게 말했다.육성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그럼 저는요?”“이렇게 얘기하면 재미없죠.”엄혜정은 육성현이 이렇게 물어볼 줄은 몰랐다.“혜정 씨, 정말 마음이 독한 사람이네요.”엄혜정은 육성현이 도대체 화가 났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고, 추측할 수도 없었고, 추측할 기분도 없었다.“다른 일 더 있어요? 없으면 밥 먹으러 갈게요.”“내 아이를 가진 이상 어딜 도망칠 생각은 접어둬요.”엄혜정 쪽이 조용해지더니 전화를 끊었다.육성현은 실눈을 뜨고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벤틀리 차가 레스토랑 앞에서 멈추었다.멀리서 뒤따르던 차도 멈추었다. 염정은은 육성현이 혼자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혼자 레스토랑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레스토랑의 사람들은 그를 보고 공손하게 맞이했다.염정은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육성현이 혼자 이곳에 와서 밥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설마 엄혜정이랑 같이 먹으려고? 그럼 난 그 꼴을 못 보지!’들어가서 2층에 갔더니 창가에 혼자 앉아 있는 육성현이 보였다.염정은은 다가가서 말 걸었다.“성현 씨, 성현 씨도 여기서 식사하려고요?”메뉴를 보던 육성현은 염정은을 힐끗 쳐다보고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여기 아무도 없죠?”염정은이 물었다.“앉아요.”염정은은 웃으며 앉았고 손을 이쁜 얼굴에 댔다.“약혼한 후부터 계속 보지 못했잖아요. 그렇게 바빠요? 바쁜 사람이 여기서 여유롭게 밥을 먹는다고요? 저랑 얘기라도 해야죠. 우연히 만나야만 만날 수 있는 관계인가요 우리?”“당신이 시간 있는 줄 몰랐지. 당신 것도 시켜줘?”“좋죠!”염
염정은은 먼저 육성현을 제대로 잡고 언젠간 엄혜정 뱃속의 천한 녀석을 없애려고 했다.‘감히 나 염씨 집안 아가씨, 세인시에서 제일 귀한 염씨 집안 후계자랑 남자를 빼앗아?’염정은은 빈민가에서 나온 엄혜정과 같은 천한 노비는 시궁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벤틀리가 저택에서 멈추자 염정은은 육성현의 손을 잡고 로비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염정은은 몸을 돌려 육성현의 품에 뛰어들어 두 손으로 그 강한 허리를 안고 육성현의 귓가에 숨을 내쉬었다.“오늘 저녁, 날 보낼 거예요?”누구나 다 이 말속에 들어있는 뜻을 눈치챌 수 있었다. 염정은은 육성현이랑 잠자리를 가지고 싶었고 실질적인 관계를 맺고 싶었다.분위기가 이상해진 것을 보자 집사랑 메이드는 다 같이 사라졌다.육성현은 피하지 않고 심지어 약간 즐겼다.“전에 남자 많았나 봐요?”“네?”염정은은 육성현의 말에 어리둥절하여 곧 실소를 터뜨렸다.“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설마 그런 것을 신경 쓰는 건 아니겠죠? 근데 걱정하지 마요. 전 이미 당신 약혼녀이고 당신 빼고 다른 사람은 다 싫어요.”염정은은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육성현의 턱을 가볍게 터치했다. 도발하는 것 같았고 꼬시는 것 같기도 했다.육성현은 염정은의 손가락을 잡았고 호박색의 눈동자가 어두워지고 입꼬리가 약간 올라가더니 갑자기 염정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염정은을 바닥으로 밀었다.“아!”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염정은은 카펫에 심하게 넘어져 사지가 땅에 닿고 표정이 굳어졌다. 뭐라고 하기도 전에, 머리카락이 다시 잡아당겨지고, 뒤로 넘어지면서 고통스러운 얼굴을 드러냈다.“아! 성현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육성현은 대답하지 않았고, 이어서 염정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욕실로 끌고 갔다.“아 아파! 성현 씨 살살해…… 성현 씨…….”염정은은 자기 두피 전체가 벗겨지지 않도록 사지로 바닥에서 기었다. 욕실의 욕조에는 메이드가 미리 육성현을 위해 준비해 둔 목욕물이 있었다.염정은은 욕조 앞에 끌려가 숨도 고르기 전에 머리
육성현은 손바닥으로 염정은의 가슴을 힘껏 두 번 누르자 염정은은 기침을 하면서 물을 뱉고서야 의식이 돌아왔는데 또 기절했다.염정은은 꿈에서 놀라 깨여나 당황하여 자기 얼굴을 만졌는데 아직 온기가 느껴졌다.‘안 죽었어?’육성현에게욕 조에 눌려 죽음이 가까이 다가온 고통을 지금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얼굴색도 아직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다.낯선 방이었지만 아직 저택에 있는 것 같았다.얼굴의 무혈색도 회복되지 않았다.있는 방은 몰라도 저택에 있을 거야.염정은은 깨끗한 잠옷을 입고 그렇게 방을 나갔다. 육성현의 안방을 지날 때 숨이 막힌 것 같았다.“아가씨, 깨셨어요?”집사가 와서 물었다.염정은은 놀라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고, 자신의 추태를 깨닫고 서둘러 원래대로 돌아왔다.“…… 성현 씨는요?”“선생님은 서재에서 회사 일을 처리하고 계십니다.”염정은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서재 문밖에 서 있었다. 굳게 닫힌 서재 문은 그녀를 두려워하게 했다.염정은은 솔직히 정말로 놀랐다. 그렇다고 움츠러들진 않았다.‘나 염정은을 너무 우습게 봤어! 반드시 육성현을 갖고 말고야, 꼭!”염정은은 정 안되면 돌아간 후에 훈련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엄혜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데, 나라고 왜 안 돼? 내가 다른 여자한테 밀릴 일이 없잖아?’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낮게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고, 염정은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사무실 책상 뒤에 앉아 잠옷을 입고 반쯤 옷깃을 여민 섹시한 남자를 보고 염정은은 이전의 그 공포가 사라졌다.“미안해요, 내가 기절해 버렸어요.”염정은은 머리를 쓸어 올리고 그의 책상 가장자리에 요염한 자세로 기대어 말했다.“근데 이렇게 하면 내가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요, 성현 씨, 세인 시에서 나 염정은을 움츠러들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그래서 계속하려고요?”육성현이 물었다.염정은 얼굴에서 긴장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지만 곧 숨기려는 듯 웃었다.“너무 늦었어요. 이만 돌아가 봐야겠어요. 다음에 다시 봐요.”
육성현은 거친 한숨을 내쉬며 불을 끄고 잠을 잤다.사실 처음에 염정은은 육성현을 따라 엄혜정의 거처를 찾으려 했다. 엄혜정이 사는 곳을 찾지 못해도 적어도 육성현과 뜨거운 밤을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결과는 상상을 빗나갔다.집에 돌아온 염정은은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엄혜정이 임신한 일을 직접 육원산에게 찔렀다.“정은아, 정말이니? 성현이를 오해하면 안 돼, 성현이는 그런 사람 아니다.”육원산은 속으로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척했다.“아버님, 정말이에요. 확신할 수 없었다면 아예 찾아오지 않았을 거예요.”염정은은 억울해했다“아버님, 절 도와 해결해 주세요. 전 밖의 여자가 성현 씨 아이를 낳는 거 용납 못 해요. 염씨 집안이랑 육씨 집안의 정략결혼을 없던 일도 한다면 그러면 상관하지 않을게요.”“두 집안에서 신중하게 결정한 일이고 모든 매체가 앞다투어 보도하는 일이고 모르는 사람도 없다. 이렇게 큰일은 취소한다면 취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육씨 집안만 망신 당하는게 아니라 너희 집안도 마찬가지다. 정은아, 걱정하지 마. 난 네 편이니까 널 도와 엄혜정을 처리해 줄게.”염정은이 떠난 후 육원산은 집사에게 분부하였다“사람을 데리고 걔 집에 가서 찾아봐, 엄혜정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다 알고 있으니까. 육성현 이 자식, 정말 점점 더 나를 안중에 두지 않는군.“오후 무렵, 몇 대의 차가 육성현의 개인 별장을 향해 달려갔는데 대문에 접근하자마자 최광영 등 부하들에게 가로막혔다.집사가 차에서 내렸다. 집사가 데리고 온 사람은 많지 않지만 한눈에 봐도 백전백승의 그런 사람이다.“누구야? 여기가 개인 구역인 거 몰라? 얼른 꺼져!" 최광영의 말투에는 불량배의 기운을 띠고 있다. 집사는 최광영을 보면서 그나마 좋은 태도로 말했다.“도련님 부하죠? 엄혜정 씨 안에 있죠? 회장님이 한번 보시려고 해요.”최광영은 육성현을 도련님이라 부르는 것을 보고 바로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육씨 집안 쪽 사람이군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