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설은 아직도 얘기하고 있었지만 김신걸은 옆에 있던 핸드폰을 잡았다. 그 핸드폰은 김신걸의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원유희의 것이었다.잠금을 해제한 후 김신걸은 윤설에게 스크린을 보여주며 물었다.“네가 보냈어?”차 안의 분위기는 갑자기 썰렁해졌고 애써 외면 외면하고 있던 것들이 선명해져 윤설을 억압했고 윤설의 목을 졸랐다.윤설은 스크린에 있는 사진을 보고 한참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그건 윤설이 드래곤 그룹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원유희한테 보낸 셀카였고 배경은 드래곤 그룹 건물이었다.‘핸드폰이 왜 김신걸 손에 있지? 원유희 지금 어전원에서 쫓겨난 거 아니야?’“날…… 이거 물으려고 날 차에 태운 거야? 신걸 씨, 원유희한테 보여주려고 찍은 거야. 걔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 자기 옆에 있는 건데? 자기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나라고. 신걸 씨, 자기한테 마음도 없는 여자를 곁에 둘 거야?”김신걸은 검은 좌석에 기대어 포악한 기운을 뿜으며 윤설을 쏘아보았다.윤설은 몸을 웅크리고 앉아 손을 김신걸의 허벅지에 얹고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슬픈 눈빛으로 김신걸이랑 얘기했다.“신걸 씨, 나 자기 옆에 있으면 안 될까? 뭘 잘해주기를 바라지 않아, 그저 매일 당신이랑 만나고 싶어. 유희랑 뭐 뺏고 싶은 생각도 없어 당신이 뭘 하든지 묻지 않을게. 예전처럼, 응?”윤설은 엄청 비굴하게 말했다. 하지만 김신걸의 마음을 돌릴 수만 있다면 윤설은 얼마든지 자존심을 버릴 수 있었다.이번이 윤설의 기회였다.하지만 김신걸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고 손가락으로 차창을 두드렸다. “내려.”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윤설은 마음이 급해졌다.“신걸 씨, 날 이용해서 유희를 질투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걔한테 알려줘야지, 자기는 유희가 꼭 필요한 게 아니라고, 걔가 위기감을 느껴야지 아니면 당신을 안중에 두지 않을 거야…….”“꺼져!”김신걸은 조급한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고 핸드폰을 쥐고 있는 손에 핏줄까지 불끈 튀어나왔다.“신걸 씨, 나한테 이러지 마, 난 자기
윤설은 이전에 원유희와 김신걸이 동시에 연락이 끊겼던 일이 생각났다.‘설마 그곳에?’윤설은 남의 눈을 피하기 위해 다른 차로 갈아타고 먼저 키를 가지고 아파트로 갔다.문에 들어섰을 때 아파트 경비는 윤설을 막았고 윤설은 바로 원유희의 이름을 댔다.신원을 체크한 경비는 윤설을 들여보냈다.윤설은 익숙하게 엘리베이터에 올라 김신걸의 아파트를 지날 때 발걸음을 늦추고 안에 인기척이 있는지 들었다.원유희는 순간 착각인가 싶었다.이 건물에는 두 가구밖에 없었는데 하나는 민이령의 아파트였고 하나는 원유희의 것이었다.원유희는 소파에 오랫동안 앉아 있다가 일어서서 몸을 움직이었다. 베란다에 가서 멀리 바라보았다.원유희는 마치 자신이 새장에 갇힌 날개를 잘린 새처럼 느껴졌다. 하늘은 눈앞에 있었지만 어디에도 도망가지 못했다.“원유희!”원유희는 흠칫 놀랐고 고개를 돌아 보이 윤설이 자기 집 베란다에 서 있었다. 그리고 원유희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표정으로 이쪽을 쏘아보았다.“역시 여기에 있었군!”윤설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원유희는 덤덤하게 윤설을 바라보았고 앞으로 더 걸어가 이를 갈고 있는 윤설의 모습을 똑똑히 보려고 했다.“신걸 씨가 널 어전원에서 쫓아내 버린 거 아냐? 왜 여기에 있어? 이곳에 네가 있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 역겨워 정말!”이 아파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윤설은 곧바로 조사했는데 이곳이 김신걸 모친의 아파트였고 계속 그대로 보존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원수정이 민이령을 죽였는데 원수정의 딸인 원유희가 어떻게 이곳에 있을 수가 있어? 이건 모독이야!’“그럼 넌 왜 내 집에 있는 건데?”원유희는 차갑게 따졌다.“우리 아빠를 죽인 것도 모자라 우리 아빠가 나한테 사준 집에 들어가? 너보다 더 역겨운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까? 얼른 꺼져!”“네가 꺼지라고 하면 내가 꺼져야 해? 웃기고 자빠졌네! 네가 뭔데? 똑똑히 얘기해줄게, 나 방금까지 신걸 씨랑 같이 있었고 롤스로이스에서 얘기하고 왔어. 분위기 얼마나 좋았는지 넌
윤설의 손에는 칼이 쥐여있었고 동영상을 찍으면서 소파에 칼자국을 냈다. 가죽 소파는 칼에 찢겼다.그리곤 아직 성에 안차다는 듯이 다시 거실로 달려가 다른 것을 베려 했다.원유희는 급해서 몸을 돌려 거실을 지나 문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아무리 문을 열려고 해도 문은 계속 닫혀 있었고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원유희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베란다로 돌아갔다.“윤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그만둬! 윤설!”하지만 원유희가 아무리 불러도 윤설의 대답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탕탕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베란다에서 깨진 물건을 보자 원유희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았다.‘대체 어느 정도로 망친 거야? 어떻게 이럴 수가…….’“왜 불러? 소리 좀 낮춰. 듣고 있어. 나 엄청나게 바빴잖아. 봐봐, 여기저기 가꿔놓으니까 이쁘지?”윤설은 핸드폰 속의 영상을 확대했고 원유희가 혹시라도 못 볼까 봐 핸드폰을 가드레일 밖으로 힘껏 내밀었다.비록 거리가 좀 있지만, 원유희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영상은 칼로 처참해진 소파로 시작되었다. 소파 곳곳에는 칼자국으로 가득했다. 윤설은 심지어 소파 속의 거위 털을 빼냈는데 공중에서 휘날리는 거위 털을 하얀 눈과 같았고 윤설의 득의양양한 웃음소리는 멈추지 않았다.진열대 위에 놓인 술은 다 바닥에 떨어졌고 레드 와인은 깨진 병 밖으로 나왔다. 레드 와인인지 빨간 피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바닥에는 붉은 액체로 가득했다.불과 몇 분 만에 온 집안은 엉망진창으로 되었고 심지어 쓰레기통도 무사하지 못했다.원유희는 동영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눈물이 뚝 뚝 떨어졌고 가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팠다.‘아빠가 사준 집인데 왜 굳이 망치는 건데? 대체 왜?’“울어? 아이고 딱해라! 근데 어쩌지? 난 네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너무 좋은걸!”윤설은 원유희가 이곳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느낀 불쾌함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왜 울고만 있어, 날 때리고 싶지 않아? 아, 맞다. 너 지금 못 나오지? 불
송욱은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누워있는 원유희를 보았고 깜짝 놀라 다급하게 가서 원유희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원유희가 숨을 쉬는 것을 발견하고 한숨을 돌렸다.하지만 곧 원유희의 손가락에 난 상처를 보았고 다섯 손가락 중 세 손가락의 손톱이 다 깨졌고 피가 나고 있었다.송욱이 원유희의 손가락을 살짝 건드리지 원유희는 눈을 천천히 떴고 아무런 표정도 없이 송욱을 바라보았다.“손가락은 왜 이래요?”원유희의 눈은 빛을 잃었다.“매일 올 필요 없는데요. 제 얼굴은 이미 다 나았어요.”송욱은 원유희의 얼굴은 다 나아도 다른 곳은 계속 아프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원유희가 예전에 자기 몸에 상처를 낸 일이 떠올랐다.“또 자해했어요?”원유희는 자기 손가락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얘기했다.“네, 빨갛고 예쁘죠?”“원유희 씨 다른 해결 방법을 찾을 수도 있어요. 자기 몸에 상처를 내는 게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고요!”송욱은 눈살을 찌푸렸고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송욱은 원유희가 이렇게 되길 바라지 않았다.모든 정신적인 상처가 다 완치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알려줘요, 네?”“김 선생님에게 연락한 적이 있어요?”원유희는 시선을 떨구고 말하지 않았다.“전화해서 잘못을 인정하는 게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가요? 평생 여기에 갇혀 살고 싶어요?”원유희는 피로 물든 손가락을 보며 말했다.“나쁘지 않죠. 적어도 그 사람을 볼 필요는 없잖아요…….”송욱은 입을 열었다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얘기했다.“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죠. 애들은 어떡해요? 애들은 엄마를 못 본 지 오래됐잖아요? 애들을 생각해야죠.”“전 항상 아이들을 생각하고 있죠, 근데 김신걸은요? 아버지가 돼서 애들을 위해 생각한 적이 있었나요?”아이 얘기를 듣자 흥분한 원유희는 벌떡 일어서서 얘기했다.“제가 사과하고 잘못을 인정한다고 얘기하면 다 해결될 것 같아요? 전 제가 싫어하는 사람이랑 같이 못 살아요! 떠날 거라고요! 이혼할 거예요! 숨 막혀
바깥 하늘은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황혼이 사라지고 화려한 불빛이 하나하나 켜지기 시작했다. 저승의 문이 열리는 것 같은 분위기는 원유희를 모골이 송연하게 했다.송욱이 떠난 후부터 원유희는 줄곧 여기에 멍하니 앉아 저녁도 먹지 않았다. 송욱이 김신걸에게 무슨 얘기를 할 까 계속 생각해보았는데 손가락이 다친 일빼곤 없는 것 같았다.‘다쳤다고 날 놔줄까? 이미 날 다치게 한 적도 있는데 이런 이유로 과연 날 풀어줄까…….’원유희는 움직이지 않았고 두 눈으로 거실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문이 보이지 않았지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원유희는 갑자기 수상함을 느꼈다. 원유희가 영원히 잊지 못할, 가장 익숙한 차가운 압박감이었다.원유희의 손가락은 소파 가장자리를 꽉 잡고 있었고 손가락이 다친 일을 깜빡한 듯 아픔을 느끼는 것으로 억지로 정신을 차렸다.단단한 신발 밑창이 바닥을 밟는 소리는 마치 지옥에서 온 소리처럼 무서웠다.원유희는 거실로 들어오는 긴 검은 그림자를 보았을 때 눈동자가 흔들렸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굳어진 몸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김신걸을 바라보았다.며칠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김신걸은 그녀 앞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검은 눈동자으론 김신걸의 속을 차마 헤아릴 수가 없었고 알 수 없는 위험이 느껴졌다.원유희는 그런 것까지 다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얼른 일어서서 옆집을 가리키며 말했다.“윤설이 내 집을 엉망으로 만들어놨어. 우리 아빠가 준 집인데 저기 좀 봐봐, 난장판으로 됐다고…….”김신걸은 말하지 않고 다친 원유희의 손을 정확하게 들어 올렸다. 핑크 빛을 내던 예쁜 손톱은 이미 핏자국으로 물들여졌고 똑바로 바라보기 힘들 정도였다.“이 와중에 집을 신경 쓸 힘도 있어?”김신걸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고 분위기는 엄청나게 썰렁해졌다.아차 싶은 원유희는 손가락에 통증이 전해져오자 김신걸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김신걸은 분명히 힘을 별로 쓰지 않은 것 같았지만 원유희는 아무리 힘을 써도 그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다 된 듯 싶자 김신걸은 그릇과 젓가락을 식판에 올려놓았다.원유희는 배부른지, 아니면 아직 부족하지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 밥 먹는 것조차 김신걸이 다 결정하는 것 같았다.김신걸은 옆에 있는 냅킨을 들고 원유희의 입을 닦아주었다. 원유희는 악마에게 이런 대접을 받으니 따뜻함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고 오싹한 기분만 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거절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여기 가만히 있어. 더 이상 나를 화나게 하지 마. 너한테 좋을 게 없어." 김신걸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협박했다. 이 말을 듣자 원유희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김신걸은 원유희의 입을 닦아주고 그 말을 마치자 바로 한 손으로 식판을 들고 일어나 떠났다.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오자 원유희는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문을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맑은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원유희는 무기력하게 침대에 앉아 있었고, 방 안은 절망적인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저녁은 송욱이 가져왔다.방에 들어간 후 침대에 누워 아무런 생기도 없는 원유희를 보고 마음속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송욱은 걸어가서 도시락을 열어 물었다."배고프세요?”“이게 바로 당신이 날 도와 말을 한 결과죠.”원유희는 멍하니 창문을 보며 말했다.“죄송해요, 이럴 줄 정말 몰랐어요…….”“당연히 몰랐겠죠. 제가 너무 순진했어요. 어떻게 김신걸이 내가 다쳤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약해질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원유희는 슬프게 자조했다.송욱도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원유희를 빼내기는커녕 더 힘들게 만들었다.송욱은 앞으로 가서 원유희의 손을 잡고 밴드를 떼고 상처를 확인한 후, 연고를 발라주었다.“선생님은 유희 씨가 또 자해할까 봐 걱정하는 거예요.”원유희는 돌아서서 송욱을 보고 무표정하게 물었다."정말 그렇게 생각해요?송욱은 마치 오랫동안 태양에 비치지 않은 듯한 창백한 원유희의 얼굴을 보고 말을 잃었다.“그죠, 걱정하겠죠. 제가 죽으면 괴롭힐 사람이 없잖아요.”원유희는 시선을 떨구고 침대
원유희는 자기에게 닥쳐올 미래가 무엇인지 아예 짐작이 가지 않았다.원유희는 거의 계속 눈을 뜨고 창문 저쪽을 보고 있었다.마지막에 눈꺼풀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잠들었다.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아 날이 밝기 시작했다.원유희가 깨어났을 때 김신걸은 이미 갔다. 온 적이 없는 것처럼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그러나 밤이 되자 김신걸은 다시 잠을 자러 왔고 아침에 떠났다. 이틀째 같은 루틴이었다.‘도대체 뭐 하려는 거야?’아무것도 하지 않은 김신걸은 오히려 원유희를 불안하게 했다.낮에는 여전히 송욱이 와서 먹을 것을 챙겨주었고 겸사겸사 원유희의 상처 회복을 검사하고 멘탈 상황을 확인했다. 심지어 원유희더러 굽히는 것을 선택하라고 원유희를 설득하기도 했다.원유희는 아무 표정도 없이 듣기만 했다. 너무 오래 갇혀 있어서 투지를 잃었는 지 원유희는 침묵을 지켰다.낮에 혼자 있을 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멍만 때렸고 밤이 되면 또 제시간에 잠을 잤다.한밤중에 나타난 김신걸은 계속 원유희를 품에 안고 잤지만 원유희를 풀어준다는 얘기를 종래로 하지 않았다.잠을 자려고 여기에 온 것 같았다.오후에 원유희는 침대 머리에 기대어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밖에는 하늘만 있었다. 짙푸른 하늘은 아무것도 변한 것 같지 않았고 시간은 마치 멈춘 것 같았다.그러다가 누가 원유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원유희! 원유희? 아직 살아있어? 죽어서 시체에서 악취 나는 거 아니야?”지난번에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떠난 후 며칠을 기다린 윤설은 김신걸이 자기에게 화를 내지 않은 것을 확인하자 또 왔다.방안에는 지난번에 떠났을 때 그대로였다. 바닥에는 유리 조각으로 가득했고 의자는 쓰러져있었다. 베란다도 그대로였다. 옆집에서 날아온 화분이 있었고 의자는 역시 쓰러져 있었다.윤설는 가드레일 옆에 서서 저쪽을 향해 소리쳤다."원유희, 네가 안에 있다는 거 다 알아. 죽은 척해도 소용없어!”옆집이 김신걸의 어머니 집만 아니었다면, 윤설은 정말 술병을 그쪽으로 던지고 싶었
“…… 내가 그런거 맞아. 근데…… 아!”김신걸은 윤설을 밖으로 더 밀었다. 김신걸이 손을 놓기만 하면 윤설은 줄 끊어진 연처럼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다.“신걸 씨, 날 올려줘! 올려달라고! 떨어질 것 같아! 나 다 당신을 위해서 이런 거야! 원유희가 당신한테 한 짓을 생각해 봐, 당신 이렇게 화낼 필요 없어…… 신걸 씨, 이러지 마. 당신이 싫다면 다신 안 그럴게. 신걸 씨, 옛정을 생각해서 날 끌어올려 줘! 나 죽기 싫단 말이야…….”김신걸은 윤설의 목을 조르고 안쪽 바닥으로 던졌다.“아!" 윤설은 바닥에 낭패한 자세로 엎드려 있었고 혼비백산이 되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김신걸은 윤설을 내려다보았다.“3일 내로 원래대로 복구해. 네 손으로 직접. 아니면 여기서 널 던져 죽일 테니까.”김신걸은 말을 마치고 곧장 떠났다.윤설은 말을 하지 못했고 김신걸이 떠나는 것을 보고 일어났다.팔꿈치와 무릎 모두 상처 자국이었다. 윤설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방금 김신걸은 정말로 자기를 죽이려 했고 하마터면 그대로 죽을 뻔했다.윤설은 처참하게 죽은 장미선의 모습을 떠올리더니 겁이 나기 시작했다.‘왜 날 갑자기 죽이려고 했을까? 예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고 엄청나게 잘해주고 보살펴 줬는데. 심지어 날 위해 원유희를 다치게 했는데. 그러면 나 신걸 씨한테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는 얘기잖아. 근데 왜 이렇게…….’윤설은 갑자기 임민정에게 맡긴 약이 생각났다.‘그래, 약 때문이네. 약 때문이 아니라면 신걸 씨는 절대 날 이렇게 대하지 않았을 거야.’이렇게 생각하자 윤설은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임민정이랑 약을 그만 넣으라고 말할까? 아니지, 약은 효과 있을 때 더 많이 써야 하는 법이지.’윤설은 원유희를 죽이기 전에는 약을 멈추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윤설은 일어서서 화분 조각을 밟았다.집안의 물건을 모두 혼자 정리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니, 화가 나서 의자를 힘껏 걷어찼다. 그러자 무릎의 상처가 너무 아파 이를 악물었다.예쁜 메이크업도 예쁘지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