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백… 중… 왕…”지초는 무척 진지한 얼굴로 읽고 있었으나 주위 사람들 중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부진환은 지초가 그 위에 적힌 글들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낙월영은 조금 뒤늦게 반응했다. 그녀는 지초가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독에 당했다고 생각했고 장미의 지독함에 놀라고 있었다.부진환은 미간을 좁히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지초야, 내가 물으마. 네가 이 종이에 서명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지초는 솔직하게 대답했다.“시약을 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기에 여기에 서명해야만 시약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규칙이라고 하더군요.”부진환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규칙? 누가 정한 규칙이란 말인가?“누가 너에게 여기에 서명하라고 시킨 것이냐?”“약각의 서향향이 시킨 일입니다.”지초는 겁에 질린 얼굴로 대답했다.“왕비 마마께서 다치셔서 혈기를 보할 약초가 필요해 가지러 왔는데 서향향이 시약을 하지 않으면 약초를 주지 않을 것이라 했습니다.”그 말에 부진환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고 낙월영은 그제야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초는 아예 글을 읽을 줄 몰랐고 이 종이에 서명한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이 종이는 낙청연을 해치기 위한 것이었고 그 사실은 지초의 두 마디에 증명되었다.장미는 생각보다 더 멍청한 사람이었다.바로 그때, 밖에서 계집종 춘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왕야! 노비 춘월, 왕야를 뵙고 싶습니다. 왕야께 보고드려야 할 아주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들어오거라.”부진환이 분부했고 춘월은 들어오자마자 바닥에 풀썩 무릎을 꿇으면서 말했다.“왕야, 노비 춘월이 증명할 수 있습니다! 서향향이 지초를 속여 시약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서향향과 다른 이들이 시약하는 돈을 아꼈으니 어떻게 은자를 나눌 것이라 작당하는 것도 제 귀로 직접 들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벽운도 들었고 저희 모두 증명할 수 있습니다.”증인이 있을 줄은 몰랐던 낙청연은 살짝
소유가 다급히 들어와 부진환을 부축했다.“왕야, 왜 그러십니까?”부진환은 의자에 앉았다. 가슴께는 불에 타는 듯했고 머리도 깨질 듯이 아팠다.“고 신의를 불러라.”소서는 급히 고 신의를 모셔서 왔고 고 신의는 맥을 짚고는 부진환의 혓바닥과 눈을 관찰하면서 속으로 깜짝 놀랐다. 부진환은 줄곧 건강한 편이었는데 현재 그는 여기저기 허점이 가득한 상태였다.“고 신의, 왕야의 몸은 어떻습니까?”소유가 물었다.“아, 큰 문제는 없습니다. 그저 몸에 열이 많이 쌓였고 일이 많아 과로하신 것 같습니다. 한 달 동안 약을 복용하면서 몸조리하시면 괜찮아질 것입니다.”고 신의가 답했다.“그럼 제가 고 신의와 함께 약을 가지러 가겠습니다.”소유가 고 신의를 바래다줬다.몸을 돌리는 순간, 고 신의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약 반 시진 뒤 소유가 약을 들고 돌아왔고 약을 먹으니 두통이 많이 나아졌다.“왕야께서는 당분간 왕부의 일에 크게 신경 쓰지 마세요. 내원의 일은 등 관사가 해결할 것이고 다른 일들은 제가 맡겠습니다. 왕야께서는 몸조리에만 신경 쓰세요.”소유는 최근 일어난 일들 때문에 부진환이 수차례 화를 내다보니 화병이 난 것이라 여겼다.부진환은 이마를 문지르면서 미간을 좁혔다.“왠지 모르게 낙월영이 우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나게 돼.”소유는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설마 진짜 낙월영을 좋아하는 겁니까?”“그건 아닐 거다. 하지만… 나도 그게 어떤 감각인지는 묘사하기 어려워.”부진환은 은근히 걱정됐다.그는 자신에게 감정을 허락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감정이 생기면 약점도 생기는 법이었고 그는 약점이 있으면 안 됐다.하지만 매번 낙월영이 우는 모습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화를 내게 됐고 낙청연을 엄벌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는 분명 낙청연에게 잘못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감정과 이성이 그를 번갈아 가면서 공격했고 그 바람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소유는 표정이 심각했다. 왕야는 감정 면에서 경험이 없었고 어쩌면 진짜 낙월영을 좋
지초는 해독했고 간신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약각의 서향향과 몇몇 계집종들은 왕부에서 내쫓겼고 등 어멈은 때마침 약각 일을 맡았던 춘월을 발탁함으로써 이번 일에서 증언해준 고마움을 표했다.등 어멈은 낙청연의 처방대로 약재를 가져왔고 낙청연은 줄곧 약재를 분말로 갈고 있었다.“왕비 마마, 서향향은 이런 일을 벌일 정도로 간이 큰 사람은 아닙니다. 게다가 지금은 제가 관사인데 서향향이 이렇게 막 나올 리가 없습니다.”등 어멈은 시종일관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낙청연은 웃으면서 말했다.“서향향은 당연히 못 그러지. 내가 지초에게 자세히 물어보니 장미가 그 애를 부추겼다고 하더구나.”“그럼 서향향은 무엇 때문에 장미를 일러바치지 않은 것입니까?”등 어멈은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간단하지. 장미의 뒤에 또 다른 사람이 있거나 서향향에게 입막음 값으로 돈을 두둑이 챙겨줬다거나, 또는 서향향이 위협을 당해서 감히 고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낙청연은 이 모든 것이 낙월영과 상관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낙청연이 잘되는 꼴은 죽어도 보지 못하고, 낙청연이 죽었으면 하는 사람은 낙월영뿐이었기 때문이다.“그렇군요! 그럼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실 생각이십니까?”등 어멈은 지초가 처참히 당했던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팠다.“그냥 넘어가다니? 내 평생 그냥 넘어간다는 건 존재하지 않는 일이다.”낙청연의 눈동자에 언뜻 살기가 스쳐 지나갔고 등 어멈은 깜짝 놀랐다.낙청연은 온종일 약재를 갈고 있었는데 일부는 지초에게 줄 것이고 일부는 자신의 얼굴 외상을 치료하기 위해서 준비한 것이었다.그리고 남은 부분은 독이 들어있는 피와 함께 조합되어 환약으로 만들어졌다.“왕비 마마, 이것은…”등 어멈이 물었다.낙청연은 환약을 약상자 안에 넣고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고 신의가 낙월영에게 상처를 치료하는 환약을 주지 않았더냐? 이것 또한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환약이다. 게다가 냄새도 효능도 고 신의가 준 것과 똑같지.”등 어멈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왕비 마
낙청연의 뒤를 쫓던 낙월영은 떨어진 약상자를 보았다. 그것은 고 신의가 외상을 치료하는 데 쓰라며 준 약이었고 전부 비싼 약초들만 쓰였다. 낙월영은 그 환약을 먹어 얼굴에 흉터가 남지 않게 할 생각이었다.“어찌 제 약을 훔치십니까?”낙월영은 낙청연이 자신의 환약을 훔쳐 미천한 노비인 지초에게 주려 한다고 생각했다.빌어먹을! 내 물건을 감히 노비에게 주려 하다니?낙청연은 낙월영이 자신의 수를 꿰뚫어 보자 더욱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다급히 약상자를 들고 앞으로 달려갔고, 낙월영은 이를 악물고 그녀를 뒤쫓았다.“멈추세요!”낙청연은 도둑처럼 황급하게 도망갔지만 곧 힘이 빠지고 숨이 차올랐다. 낙월영도 포기하지 않고 그녀를 뒤쫓아 두 사람은 화원에까지 도착하게 됐다.낙청연은 하마터면 자빠질 뻔하면서 지초의 앞에 당도했다. 그녀는 부랴부랴 약상자를 열면서 조급한 어조로 말했다.“빨리, 빨리 이 약을 먹거라. 지초야!”지초는 환약을 받고서는 입을 열어 재빨리 그것을 삼키려 했으나 부리나케 달려온 낙월영이 지초의 뺨을 내리쳤고 그 바람에 지초가 손에 들고 있던 환약이 저 멀리 날아갔다.바닥에서 나뒹구는 환약을 보고 낙청연은 그것을 잡으려 몸을 날렸지만 낙월영이 잽싸게 환약을 주워 한입에 삼켰다.“망할, 제 물건을 감히 노비 따위에게 주려 하신 겁니까?”환약을 삼킨 낙월영은 턱을 쳐들면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낙청연은 그녀가 환약을 삼키는 것을 보았지만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느긋하게 옷매무새를 정리하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낙월영을 보면서 말했다.“낙월영, 너 혹시 어디 아픈 것이냐?”낙청연은 소매 안에서 색이 선명한 월계화를 꺼내더니 넘어져서 망가진 꽃잎을 뜯어내며 여유롭게 말했다.“네 정원에 가서 꽃 한 송이 꺾은 것뿐인데 이렇게 끈질기게 쫓아올 필요가 있었느냐? 게다가 내 계집종의 약까지 빼앗아 먹다니, 낙씨 가문의 둘째 아씨가 언제 이렇게 초라해진 것이냐?”낙월영은 그 자리에서 몸이 굳었다.낙청연이 들고 있는 월계화를 바라보며 낙청연은
화원에 있던 등 어멈은 넋을 놓았다. 왕비가 말한 방법이란 낙월영이 직접 약을 빼앗아서 먹게 하는 것이었다.낙월영의 상처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것은 왕비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낙월영은 사람이 가득한 곳에서 낙청연의 것을 빼앗아 먹었기 때문이다.자신이 몹시 어려울 거라 생각했던 일을 왕비는 손쉽게 해결했고 낙월영을 골탕 먹이기까지 했다. 목적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화풀이도 했으니 속이 후련했다.등 어멈은 왕비를 더욱더 존경하게 됐다. 이곳이 얘기를 나누기 껄끄러운 곳만 아니었다면 그녀는 왕비를 입이 마를 정도로 칭찬했을 것이다.화원 밖의 복도에서 부운주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고 그의 옆에 있던 서동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저는 왕비 마마께서 둘째 아씨께 쫓기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왕비 마마께서 둘째 아씨를 골탕 먹이신 거군요.”부운주의 평온하던 눈동자에 파문이 일었고 무언가 그의 눈동자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왕비의 목적은 둘째 아씨를 골탕 먹이는 게 아닐 것이다.” “남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적녀가 이렇게 많이 변할 줄은 생각지도 못한 일입니다.”너무 많이 변해서 사람을 홀릴 정도였다.“왕비 마마, 둘째 아씨께서 왕야에게 고자질하는 것은 아니겠지요?”지초는 걱정스레 물었고 낙청연은 웃는 얼굴로 과일을 먹으며 대꾸했다.“그렇게 창피한 일을 당했는데 고자질할 수 있겠느냐? 아마도 지금쯤 방에 숨어서 울고 있을 것이다.”그녀의 머릿속에 어쩐지 부진환의 얼굴이 떠올랐다.그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하던 모습과 살기를 품은 눈빛을 생각하면 어딘가 이상했다.하지만 그녀도 눈으로 보기만 했을 뿐 맥을 짚어본 건 아니기에 알 수 없었다.낙청연은 이런 걸 쓸데없이 걱정하고 싶지 않았다. 부진환이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갑자기 등 뒤에서 온화하고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렇지요. 오늘 둘째 아씨는 큰 망신을 당했습니다. 궁중연회가 열린 날 밤에 있었던 일의 화풀이를 한 셈
낙청연은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덕망이 높으시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분이시니 선물의 값어치를 따지시지는 않겠지요. 그렇다면 중요한 건 마음입니다. 낙태부께서 기뻐하시길 원하신다면 그분께서 좋아하긴 하지만 아직 갖지 못한 것을 드리면 되지요.”낙청연은 생신 잔치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중이었다.어쩌면 출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지도 몰랐다.현재 낙청연은 모든 기대를 부진환에게 걸 수 없었다.그 순간 저 멀리서 욕지거리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니 낙월영이 한 여인과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두꺼비가 자기 주제도 모르고 높은 가지에 앉으려고 하는 걸 보니 참으로 어이가 없군요. 월영 낭자는 성정이 유약하여 괴롭힘을 당한 것입니다. 저였으면 그 두꺼비의 껍질을 벗겨서 기름에 튀겼을 것입니다.”“높은 가지에 앉았다고 해도 두꺼비가 아니겠습니까? 기껏해야 날개 두 짝이 생긴 두꺼비일 뿐, 그런다고 해서 봉황이 될 수는 없지요.”그들은 얘기를 나누면서 화원 안으로 들어왔다.귀엽고 활기 넘치는 분홍색 치마를 입은 여인은 비아냥거리면서 경멸하는 눈빛으로 낙청연을 바라봤다.그들은 분명 낙청연을 욕하고 있는 것이었다.그 여인은 무척 익숙했는데 그녀를 보는 순간 낙청연은 저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두려움이 샘솟았다.아마도 몸의 원래 주인이 그녀를 굉장히 무서워한 듯했다.“왜 그렇게 보십니까? 그 더러운 눈깔로 보지 마시지요. 징그럽습니다.”분홍색 치마를 입은 여인은 낙청연을 흘겨보며 말했다.그러고는 낙월영과 함께 자리에 앉더니 계속해서 낙청연을 비꼬았다.“정말 얼마나 낯짝이 두꺼우면 저럴 수 있는 것입니까? 저도 저런 사람을 본 적이 있지요. 억지를 부려 혼인해놓고 시동생과 시시덕거리더군요. 저런 인간은 돼지우리에 처넣어야 하는데 말입니다.”그 말은 분명 낙청연을 욕하고 있는 것이었다.부운주 또한 그 얘기를 듣고 안색이 나빠졌다. 그는 그들을 말리려 입을 열려고 했는데 돌연 사레가 들려서 큰 소리로 기침하기 시작했다.“켁켁…”
“사악한 기운은 이 집안에 있겠지요!”그 말을 끝으로 낙운희는 씩씩거리면서 도망쳤다.마치 화가 나서 간 것으로 보이지만 낙청연은 낙운희가 두려움에 도망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운희야! 운희야!”낙월영은 당황한 듯 보였다. 낙운희마저도 낙청연을 어찌할 수 없다니.낙월영은 낙청연을 째려보고는 다급히 낙운희를 따라갔다.낙청연은 천천히 자리에 앉더니 미간을 찌푸리면서 사색에 잠겼다.말 몇 마디에 낙운희가 겁을 먹고 도망치는 것은 절대 흔한 일이 아니었고 저 정도로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니 어쩌면 그녀의 집안에 진짜 큰 문제가 생긴 걸지도 몰랐다. “켁켁… 왕비, 조금 전 한 말이 사실입니까? 저 사람은 왕비의 둘째 할아버지 낙태부의 손녀 아닙니까? 그럼 낙태부의 집안에…”부운주는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그의 말대로 낙운희는 낙태부의 손녀딸이었고 그녀의 사촌 동생이었다.그렇기에 낙청연은 태부부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닐까 근심스러웠다.낙운희의 몸에는 음기가 있었다.낙청연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뭘 그렇게 진지하게 구십니까? 일부러 겁을 주려고 한 말일 뿐입니다. 운희의 어머니께서는 엄격한 분이시라 이미 몇 년 전에 혼처를 물색했었지요. 다들 아는 일이라 그저 때려 맞춘 것뿐입니다.”낙운희에게 도화살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고 앞으로 큰 사건이 일어날지도 몰랐다.부운주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군요. 그 말이 이렇게 효과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전 설명을 통해 그녀의 말에 반박하려 했군요.”낙청연은 웃으며 답했다.“마음이 급하시면 기침을 세게 하시는 것 같은데 평소에는 최대한 마음을 편히 하세요. 절대 조급해하시면 안 됩니다.”부운주는 낙청연이 그 점도 보아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알겠습니다.”사실 낙청연은 그 사실을 오래전에 눈치챘다. 기침하는 이유가 폐 때문인지 인후 때문인지 그녀는 소리를 통해 구별할 수 있었다. 부운주는 폐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으니 흥분으로 인해서 기침하는 것이었다.물을 급하게 마시면 사레가 들리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낙청연은 등 어멈을 데리고 외출했고 지초는 저택에 남았다.“왕비 마마, 낙태부의 생신 선물을 고르시는 것이라면 너무 초라해서는 아니 됩니다. 천진각(天珍閣)에 가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왕부의 장부에 적으면 됩니다.”“아니다. 내가 드릴 선물인데 부진환의 돈을 써서는 아니 되지.”그녀는 이 일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우선 태부부에 가보자꾸나.”만약 태부부에 지독한 것이 붙었으면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천진각에서 산 선물보다 훨씬 더 값졌다.활기 넘치는 시가를 지나 조용한 서계길(徐溪街)에 도착한 그들은 기백 넘치는 태부부를 단번에 알아봤다.낙청연의 아버지는 때마침 태부부의 문 앞에 서 있었고 그의 뒤에는 도포(道袍)를 입은 도사 한 명이 서 있었다.“한번 시도해보려무나. 절대 사기꾼이 아니다. 저택에서 이상한 일들이 자꾸만 일어난다면 진짜 사악한 무언가가 집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낙해평은 구구절절 얘기하면서 상대를 설득하려 했다.문가에 단정하게 서 있는 부인은 온몸으로 거센 기운을 내뿜으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승상 대감, 이만 돌아가시지요. 이것은 저희 집안일입니다. 승상 대감이랑은 상관없는 일이지요. 저희 아버지께서는 승상 대감이 찾아오는 것을 반가워하지 않으시니 굳이 여기서 큰 소리로 싸우는 일 없었으면 좋겠습니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낙운희의 어머니이자 낙태부의 독녀인 낙용(洛榕)이었다.“난 정말 다른 뜻이 없다. 그저 저택에서 일어난 이상한 일을 해결하고 싶은 것뿐이란다. 이런 일은 나도 경험해 본 적이 있으니 한 번만 믿어다오.”낙해평은 몹시 다급했는지 낙용이 문을 닫기라도 할까 봐 손으로 문을 잡고 있었다.낙청연은 자신의 위엄 넘치던 승상인 아버지가 이토록 비참하게 자세를 낮추면서까지 간곡히 부탁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낙용은 짜증 난 얼굴로 대꾸했다.“승상 대감, 본인 집안일에나 신경 쓰세요. 저희 태부부의 일에는 관여하지 마시고요.”그 말을 끝으로 낙용
부소는 깜짝 놀라 다급히 부원뢰를 업으려 했다.“아버지를 데리고 도성에 가서 의술이 더 뛰어난 의원을 찾겠습니다!”“분명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부원뢰는 부소의 손을 잡아당겼다.“콜록... 내 몸은 내가 잘 알고 있다. 난 시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사람은 결국 죽을 테니, 그렇게 걱정하지 말거라.”부원뢰는 힘없이 말하며 그를 위로하려 억지 미소를 지으며 부소의 손등을 두드렸다.“어떻게 이럴 수가...”부소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부원뢰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나도 생각지 못했다.”“네가 장가를 가고 아이를 낳는 것도 보지 못했는데, 아쉬움을 품고 가야 할 것 같구나.”말을 마치고 그는 옆에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옥교를 보며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가씨, 하나만 묻겠네. 부소가 마음에 드느냐?”옥교는 멈칫하다 저도 몰래 고개를 돌려 부소를 바라보았다.부원뢰가 말했다.“너에게 물은 것이니, 부소를 보지 말거라.”“내가 곧 죽는다고 해서 듣기 좋은 말로 위로하려 하지 말거라. 난 그저 사실을 듣고 싶을 뿐이다.”옥교는 조금 쑥스러웠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부원뢰는 그녀의 손을 잡고 품에서 피로 물든 옥팔찌 하나를 꺼내 꼼꼼히 닦은 후 옥교에게 건네주었다.“이 팔찌는 부소 어머니의 혼수다. 이번에 이곳으로 온 것도 부소 어머니의 임무를 받고 온 것이다. 네가 참 마음에 드는구나. 앞으로 두 사람이 함께 있든 아니든 이 팔찌를 받기를 바란다.”“내 소원을 들어준다고 생각하거라. 그렇지 않으면 죽어서도 부소 어머니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될 것이다.”옥교는 그 말을 듣고 놀라기도 했고 난처하기도 했다.그녀는 부소의 마음도 모르는데 어떻게 며느리의 신분을 의미하는 받을 수 있겠는가.게다가 이 옥팔찌는 너무도 귀하다.부소도 그녀가 난처한 것을 알고 말했다.“그냥 받으시오.”옥교는 그제야 팔찌를 받았다.그녀는 나중에 부소에게 돌려주기로 생각했다. 그녀는 부소가 아버지의 아쉬움을 달래
눈시울을 붉히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송천초의 모습을 보며 초경은 마음이 아프면서도 못내 기뻤다.그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뽀뽀했다.그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가치가 있다고 하면 가치가 있는 것이오!”초경은 별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로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았다. 그의 확고한 눈빛에 송천초는 저도 몰래 팔을 들어 그의 목을 휘감고 더욱 적극적인 대답을 했다....송천초는 날이 밝자마자 깨어났다.그녀는 옆에 누워 있는 초경을 보고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려 하지 않았다.“뭘 그렇게 보는 것이오? 그렇게 좋소?”갑자기 눈을 뜬 초경이 입꼬리를 올렸다.“깨어나셨습니까?”“본디 잠이 많지 않소.”초경은 말하면서 얼굴을 쓰다듬고 있던 송천초의 손을 잡고 잡아당겼다.“왜 그러시오? 아침부터 왜 그리 걱정이 많은 것이오?”“다음 생에 당신처럼 잘해 주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송천초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진지하게 그를 바라보았다.“다음 생에 꼭 일찍 저를 찾아오십시오.”“다음 생이 지나도 마찬가지입니다.”초경은 그녀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좋소. 다음 생에도 앞으로도 꼭 일찍 찾아 지켜줄 것이오.”“평생 지켜줄 것이오.”그 말을 듣고 송천초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수명도 아껴야지 않겠습니까? 수명이 줄면 어찌 저를 평생 지켜줄 수 있습니까?”초경은 멈칫하다 마음이 따뜻해져 그녀를 꼭 안았다.“좋소. 자네의 말을 듣고 소중히 아끼겠소.”“하지만 동하국을 없애는 일은 이미 부진환에게 승낙했으니, 약속을 어길 순 없지 않소?”“걱정하지 마시오. 이 일은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오.”“앞으로 뭐든 자네의 말을 듣고 수명을 소중히 여기며 평생 당신을 지켜줄 것이오.”송천초도 그를 꼭 껴안았다.“좋습니다.”-며칠 후, 이한도 쪽에서 고강해를 미끼로 삼아 그를 구하려는 사람을 몇 명 잡았다.심문하자, 그들은 모두 왕자를 구하러
막사로 돌아간 후 부진환은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는 고강해를 미끼로 삼으려고 이한도로 데려갔다.그리고 동하국에 소식을 전해 투항을 권했다.3일도 지나지 않아 동하국 선박이 이한도 부근에 와서 고강해가 정말 이한도에 있는지 알아보려 했다.그와 동시에 송천초와 초경도 청주를 찾아왔다.부진환은 소식을 듣고 직접 맞이하러 가서 열정적으로 접대했다.세 사람은 정원에 술과 안주를 준비했다.부진환은 술을 따르고 말했다.“여제께서 두 사람이 올 것이라 편지를 보냈는데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소. 왜 며칠 더 놀다 오지 않은 것이오?”송천초가 눈썹을 치켜올렸다.“이젠 여제라 부르는 것입니까? 괜히 낯설어 보이십니다.”부진환은 멈칫하다 웃으며 답했다.“보는 눈도 많은데 마음대로 여제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예의가 아니지 않소. 이미 여제라 부르는 것이 익숙하오.”“하긴 여국의 부 태사시니, 여제께 무례를 범하며 안 되시지요. 이렇게 빨리 여국으로 오실 줄 몰랐습니다. 부 태사 같은 분은 정말 흔치 않습니다.”“자, 제가 한 잔 드리지요!”송천초는 술잔을 들고 단숨에 다 마셨고 부진환도 잔을 들어 술을 마셨다.두 사람은 전쟁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초경이 마음이 급한 듯 먼저 입을 열었다.“동하국과의 전쟁은 어떻게 되었소?”“동하국 위치는 알아낸 것이오? 내가 가서 그들을 죽일 것이오.”“절대 늦어서는 안 되오.”부진환은 살짝 당황했다.“그리 조급해하는 것이오?”초경은 천천히 음식을 먹으며 물었다.“빨리 없애는 것이 좋지 않소?”“일찍 끝내야 천초가 매일 같이 걱정을 하지 않을 것이오.”부진환이 웃으며 답했다.“동하국의 위치는 이미 사람을 보내 알아보고 있소. 아마 곧 소식이 있을 것이오.”“하지만 자네는 이제 보통 사람이 아니오. 나라 사이의 전쟁에 끼어들면 수위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소?”사실 이 일은 초경이 나설 일이 아니다.평소 송천초를 지키기 위해 사람을 몇 명 죽이는 것은 괜찮지만, 나라 사이의 전쟁은 결코
고강해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열쇠요.”“하지만 다들 열쇠가 가짜라는 것을 모르고 있소.”부진환은 곰곰이 생각하다 또 좋은 계획이 떠올랐다.그가 물었다.“당신을 대신한 형제들과 고옥서 남매를 제외하고 몇 명의 성인 형제자매가 있는 것이오?”고강해는 생각하다 답했다.“아홉 명이 더 있소.”이 숫자에 부진환은 살짝 놀랐다.동하국 왕의 자식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아홉 명 전부 동하국에 있는 것이오? 왜 나타나지 않는 것이오?”고강해가 답했다.“우리는 서로 싸우는 사이라 아무도 서로 굴복하고 지휘받는 것을 원하지 않소.”“그래서 따로 병사를 통솔하고 있소. 그래야 공로를 세워도 다른 사람과 나눌 필요가 없소.”“내가 잡히자, 고옥서가 오지 않았는가?”부진환은 그 말을 듣고 가볍게 웃었다.“그렇게 서로 싸우면서 뿔뿔이 흩어져 어찌 여국을 상대하려는 것이오?”고강해가 말했다.“우리에게는 약사가 있소.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지 자네는 모르오.”“여국의 풍수사가 강하다고 하지만, 그녀의 손가락 하나에도 비길 수 없소.”그 말을 듣고 부진환이 물었다.“전쟁을 오랫동안 했는데, 그 대단하다는 약사는 왜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오?”“정말 궁지에 몰리지 않은 이상 약사는 동하국을 떠나지 않을 것이오.”“약사는 스무살에 동하국으로 왔고 이미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소. 하지만 약사는 아직도 스무살 때의 얼굴을 유지하고 있소. 어찌 비긴다는 말이오?”“약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여국을 평정할 수 있소.”비록 부진환은 이런 허풍을 믿지 않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적을 얕볼 순 없다.“약사가 그렇게 대단하면 어찌 이렇게 많은 동하국 사람의 희생이 필요하오? 어차피 약사는 동하국 사람이 아니니, 동하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을 것이오.”부진환이 단번에 중점을 꼬집어 말하자 고강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부진환이 말을 이었다.“게다가 당신이 잡혀도 아무도 구하지 않을 것이오.”“형제자매들은 자네가 죽기를
“왜 계속 당신을 남겨두었는지 알고 있소?”부진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고강해는 고개를 떨구고 힘없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동하국 왕자이기 때문에 남겨 두면 반드시 쓸모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소.”“하지만 동하국 사람이 당신을 죽이려 할 줄은 생각지 못했소.”고강해는 그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오?”“자네는 이젠 아무런 가치가 없소.”고강해는 자신의 처지를 비웃듯 입꼬리를 올리고 답했다.“사실 난 잡힌 순간부터 아무런 가치도 없었소.”“동하국에는 황자가 많으니, 나 하나 없다고 문제 될 것 없소.”“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나를 죽이려 할 줄은 몰랐소. 도망가는 와중에도 나를 쏘려고 했소.”“하지만 우리는 형제 사이의 정이 없었소. 그저 경쟁과 싸움뿐이었소.”부진환은 그가 많은 말을 하자, 계속 물었다.“그저 싸우는 사이라면 어찌 자네를 그렇게 미워하는 것이오? 구하지 않는 것도 망정이지, 왜 죽이려 하는 것이오?”고강해가 답했다.“그들은 나한테서 무언가를 얻으려 하오.”“만약 그것을 얻는다면 새로운 왕자가 될 수 있소.”부진환은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고옥서가 고옥언을 구할 때, 그는 옆 방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고 고강해 시체에서 뭔가를 갖고 가겠다는 것을 들었다.“그게 무엇이오?”고강해는 대답하지 않고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우리 동하국에는 존경받는 약사가 있소.”“하지만 과거 그녀는 동하국의 제압을 받던 일반 의원이었소. 독을 만들 줄 알기에 우리의 핍박을 받고 독을 만들었소.”“그녀는 여국인이지만 진법으로 인해 밖으로 나와 다시는 돌아가지 못했소. 그렇게 떠돌다 그녀는 동하국으로 왔고 늘 여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소.”“그녀의 계획은 줄곧 실패했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홀로 바다에 갔소. 그날 그녀는 파도 때문에 배가 뒤집혔지만, 마침 바다 밑에서 보물을 발견했소.”“오래된 침몰선이 해저에서 거대한 궁전이 된 듯한 모습이었고, 그녀는 그 안에서 많은 보물을 얻었고 특
고강해는 절망에 휩싸여 눈을 감고 죽음을 맞이했다.하지만 이때, 옆에서 화살이 날아가 정확히 고옥서가 쏜 화살을 떨구었다.고옥서는 그 모습을 보고 화를 내며 활을 내던지고 재빨리 마차를 이끌고 그곳을 떠났다.이내 그 마차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났다.병사들도 신속히 그들의 뒤를 쫓았고 성문에 걸린 고강해도 내려져 감옥으로 데려갔다.고옥서와 고옥언은 바닷가로 도망쳐 작은 배를 찾아 먼저 숨을 곳을 찾기로 했다.하지만 너무 빨리 쫓아온 병사들 때문에 두 사람은 숨을 곳 없이 훤히 모습을 드러냈다.두 사람은 힘껏 노를 저어 떠나려 했다.바다에서 힘에 부쳐 곧 쫓기려는 그때, 눈앞에 동하국의 배 한 척이 나타났다.그리고 배 위에는 동하국 깃발이 달려 있었다. 고옥서는 미리 계획한 배가 마침 인근에 왔다고 추측했다.두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본 듯이 배 위에 있는 사람에게 인사를 했고 곧 배에 올랐다.“어서 돌아가거라! 병사가 쫓아왔다!”고옥서가 다급히 명을 내렸다.하지만 배는 바다에 멈춰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옥서는 눈살을 찌푸리고 배 위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무엇들 하는 게냐? 귀가 먹은 것이냐?”비록 배 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동하국 병사였지만 이상하게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고 그녀의 말도 신경 쓰지 않았다.고옥서는 병사들이 곧 쫓아올 것 같아 조바심을 내며 그들에게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았으며 배도 움직이지 않았다.고옥서는 어딘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끼고 고옥언을 끌고 배에서 뛰어내리려 했다.하지만 그때, 선실에서 청주군 병사들이 뛰어나와 단번에 그들을 포위했다.배에서 뛰어 내리려 해도 이젠 뛸 수 없었다.그리고 추격하던 병사들도 가까이 도착해 그들의 배를 겹겹이 에워쌌다. 그리고 배 위에는 부소가 서 있었다!그녀는 놀란 나머지 절망스러웠다. 고옥서는 화를 내며 동하국 사람을 붙잡았다.“적들을 도와 우리에게 함정을 파놓은 것이냐?”상대는 울먹이는 말
결국 다들 시선을 부소에게로 옮겼다.부소는 멍하니 자기를 가리키며 물었다.“나한테 가라는 것이오?”“그것도 아니지 않소?”부진환이 말했다.“주락과 계진 둘 다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미인계에 넘어가게 생겼소?”“자네의 연기가 비슷할 것 같소.”부소가 다급히 말했다.“다른 사람을 찾으면 되지 않소?”“다른 사람은 마음이 놓이지 않소.”부소는 한참 고민하다 잔에 담긴 차를 단숨에 다 마셨다.“가면 될 것 아니오!”“좋은 소식 기다리시오!”부소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부진환이 그를 불러 세웠다.“오늘 이미 심문을 받았으니, 지금 가는 것은 너무 티가 날 것이오. 급할 것 없이, 내일 다시 가시오.”-다음 날 저녁.부소는 부진환이 말한 대로 고옥서를 심문하러 갔다.부 태사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고옥서는 전쟁 때문에 그가 오지 못했다고 생각했다.역시 부진환의 추측대로 고옥서의 계략 중 하나가 바로 미인계였다.부 태사에게는 통하지 않았지만, 부소는 다르다.한바탕 유혹하고 난 후, 고옥서는 기회를 잡아 부소와 단둘이 있게 되었다. 그녀는 고옥언이 갇힌 위치를 알아내고 부소가 방심한 틈을 타서 독 가루를 뿌려 그를 쓰러트렸고 감옥 문 열쇠를 훔쳐냈다.그리고 그녀는 독으로 감옥을 지키고 있던 옥졸을 쓰러트리고 고옥언이 갇힏 곳을 찾아 고옥언을 구출했다.“누나!”고옥언은 감격에 겨웠다.“어찌 온 것입니까? 동하국이 청주성을 뚫은 것입니까?”고옥서는 사방을 경계하며 말했다.“아니다. 홀로 너를 구하려 들어온 것이다.”“일단 이곳을 떠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두 사람은 조용히 감옥을 떠나려 했다. 하지만 감옥 끝에 있는 철문을 보고 고옥언이 발걸음을 멈추었다.“누나. 고강해가 저곳에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데리고 가실 겁니까?”고옥서는 바로 거절했다.“안 된다. 너무 위험한 상황이라, 우리도 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누나. 저는 그저 고강해가 지니고 있는 열쇠를 말한 것입니다.”그 말을 듣고
“정말인 것이냐? 동하국에는 나를 거절할 수 있는 남자가 없다.”그 말을 듣고 부진환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동하국 사람들이 워낙 적으니, 그럴만하다.”고옥서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정말 단호하구나.”말을 마치고 고옥서는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옷을 입었다.부 태사에게 미인계가 통하지 않을 줄 생각지도 못했다.“인내심이 없으니,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거라.”부진환이 천천히 몸을 돌려 불쾌한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고옥서는 어쩔 수 없이 답했다.“내 동생을 구하러 왔다.”“동하국 왕자, 고강해.”“너에게 잡힌 지 오래되었는데, 아직 살아 있는 것이냐?”부진환은 놀라지 않았다.“얼마 전에 그를 구하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다들 실패했는데, 너라고 성공할 거라 생각한 것이냐?”고옥서가 가볍게 웃었다.“확신이 없다면 어찌 왔겠느냐? 청주성에서 순찰하는 청주군도 많지 않은 듯한데, 다들 바닷가로 갔나 보구나.”“동하국의 배가 부담을 준 것이냐?”부진환이 담담하게 그녀를 힐긋 보고 답했다.“쓸데없는 걱정이구나.”말을 마치고 부진환은 몸을 돌려 떠났다.부진환의 반응을 본 고옥서는 전쟁의 상황이 부 태사에게 큰 부담이 되었고 막사마저 사라졌을 것이라 추측했다.그렇지 않으면 부 태사가 어찌 안색을 바꾸었겠는가?그렇게 생각한 고옥서는 자신감에 찬 미소를 지으며 철문을 바라보았다.감옥에서 나간 부진환은 눈살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 부소가 와서 그를 부른 것도 듣지 못할 정도였다.부소는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왜 그리 넋을 놓고 있소? 여러 번 불러도 도통 반응이 없었소.”“심문하러 간 동하국 여인은 어떻게 되었소? 안색이 좋지 않소.”부진환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청주성에 들어와 동하국 왕자이자 그녀의 동생 고강해를 구하러 왔다고 순순히 말했소.”부소가 깜짝 놀랐다.“고강해 말이오?”“그런 뜻으로 말했소. 하지만 고옥서라는 이름을 들으니, 고옥언과의 관계가 궁금해졌소.”“나이를 보니
“모든 것이 예전처럼 회복될 것입니다.”차강남은 고개를 끄덕이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황량한 이한도의 모습을 바라보며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다 잘될 것이다.”그는 이한도를 예전의 모습으로 만드는 것이 시간문제일 것이라 믿는다.마음만 먹으면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것이다.-저녁이 되자 바닷가의 막사는 고요함을 되찾았다. 전쟁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깨끗이 청소되었다.옥에 갇힌 고옥서는 아직도 동하국의 병사들이 매복을 당해 전쟁에서 지고 도망친 것을 모르고 있다.그녀는 옥에 끌려간 후 동생의 모습을 보고 싶어 두리번거렸지만 계속 그를 찾지 못했다.지하 감옥의 가장 깊은 곳에는 철문이 하나 있었다. 엄격하게 지키는 것으로 보아 중요한 죄수를 수감하는 곳 같았다.그녀는 철문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옥에 갇혀 있었다.위치가 적합하니, 기회만 생기면 동생을 구출할 수 있을 것이다.그녀는 늦게까지 누군가 오기를 기다렸다.하지만 감옥에 온 사람은 부진환이었다.고옥서는 입꼬리를 올렸다.“부 태사?”부진환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네가 바로 동하국의 공주구나.”“몇 번 교전할 때, 네가 지휘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용기에 비해 계략이 부족하더구나.”“홀로 청주성에 들어오다니. 정말 청주군의 눈이 멀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고옥서는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나 문 앞까지 걸어가 웃으며 말했다.“부 태사는 역시 대단하구먼.”“중독된 사람들과 달리 아직도 멀쩡하게 기운이 남아도는구먼.”“바깥 상황은 어떠하냐? 부 태사의 막사는 지켜낸 것이냐?”고옥서는 일부러 그를 비웃으려 득의양양하게 비꼬았다.하지만 부진환은 표정 변화 없이 그냥 싸늘하게 그녀를 보고 있었다.하지만 고옥서는 그의 뜻을 지키지 못했다고 이해했다.하지만 청주성은 아직 뚫리지 않은듯하다.“이름이 무엇이냐? 동하국에 내세울 사람이 없는 것이냐? 어찌 여인을 보내 전쟁을 지휘하게 하는 것이냐?”부진환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고옥서는 입꼬리를 올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