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면서 말했다: “그래서요? 왕야는 저를 어떻게 처리할 셈인가요?”부진환의 안색은 어두워지더니 말했다: “낙청연, 화를 자초하지마라!”“본왕이 언제 너를 처리한다고 하였느냐?”낙청연은 기분을 가라앉히고 차가운 눈빛으로 평온하게 그를 바라면서 말했다: “왕야, 왜 모르는 척하십니까? 제가 제일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녕 모르시단 말씀입니까?”“제 어머니 유품 외에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부진환은 이마를 찌푸리더니 잠깐 침묵하더니 대답했다: “좋다.”“하지만 나도 조건이 있다.”낙청연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부진환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첫째, 취살대진을 해결하거라.”“둘째, 낙월영을 더 이상 겨냥하지 말거라.”“네가 분수에 맞게 본분만 잘 지킨다면 본왕은 그 향낭을 너에게 줄 것이다.”여기까지 듣던 낙청연은 주먹을 꽉 쥐었다.이것은 그녀더러 때리고 욕해도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 아닌가?“시한은 언제까지 입니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물었다.“시한은 두지 않는다. 본왕도 정확히 언제쯤 너에게 향낭을 돌려줘야 할지 모르겠구나.” 부진환은 여기까지 말하더니, 미간이 다소 무거워졌다.“너!” 낙청연은 벌떡 일어났다.이건 너무 과분하다!부진환은 눈을 슬쩍 감더니 그녀를 바라보면서 차갑고 협박이 담긴 어투로 말했다: “지금 본왕이 아니면 너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부운주와 태후, 넌 그냥 그들의 바둑돌일 뿐이고 아직 자격이 안 된다.”그는 차갑게 입꼬리를 올리더니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설령 그들이 너를 돕는다고 해도 본왕은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야.”협박!대놓고 협박한다!낙청연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지로 눌렸다.그래, 그녀는 감히 못한다.그녀는 아직 섭정왕과 적대할 능력이 없다.천궐국의 세력은 거의 엄가와 부진환이 반반 씩 나눠 가졌다. 부진환의 권세가 하늘을 찌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낙월영은 부진환을 좋아하기 때문에 향낭은 언제든지 부진
대놓고 의심을 사다니, 낙청연의 손톱은 손바닥을 뚫을 것 같았다.“저와 5황자의 관계는 아주 깨끗합니다! 단한번도 도를 넘는 행동을 한적이 없습니다!”그녀는 차갑게 질문했다: “왕야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 서든 뒤에서 든 늘 낙월영과 친밀하던데, 사람들이 뭐라고 할 까봐 두렵지 않으십니까?”부진환 미간의 핏대는 더욱 세게 섰고 눈 밑에서 분노로 꽉 찼다. 상위에 올려 놨던 손은 주먹을 꽉 쥐었다.그는 분노가 가득찬 시선으로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너 지금 나와 월령의 관계를 지적하는 것이냐? 만약 너만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는 어엿한 부부가 되었을 터다!”“낙청연, 네 주제를 좀 잘 파악했으면 좋겠구나!”갑자기, 그녀는 숨이 막혔다.주먹을 꼭 쥐고 올라오는 분노를 억지로 눌렀다.그래, 그녀가 대신 혼인해서 둘의 좋은 인연을 망쳐놓았다!그녀는 비난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그녀는 쓰디쓴 무언가를 억지로 삼키고 날카롭고 차가운 두 눈으로 평온하게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므로, 왕야께서는 저의 향낭을 하루 빨리 돌려주십시오. 그럼 제가 그 아름다운 인연을 두 분께 돌려드리겠습니다!”말을 마치고 그녀는 돌아서서 가버렸다.그녀의 그림자는 한 가닥의 단호함이 드러났다.부진환의 마음속은 이미 큰 파도가 일어났다.이 여인은, 그토록 단호했다. 그렇게 개의치 않을 거면 당초 왜 대신 혼인을 한 것인가!지금은 늘 떳떳하고 당당하다. 잘못은 그가 한 것처럼!그의 눈 밑에서 분노가 올라오더니 꼭 쥔 주먹은 아주 세게 서안(書案)을 내리쳤다.-방으로 돌아온 낙청연은 피곤한 나머지 바로 침상에 올라가 잠들어 버렸다.지초는 물을 떠와서 그녀의 얼굴과 손을 닦아주고 문을 닫고 방을 나갔다.등 어멈은 기분 좋은 마음으로 요깃거리를 들고 들어왔다. “왕비 배고프시죠? 저……”지초는 급히 쉿하는 손 동작을 하며 말했다. “왕비는 잠들었습니다. 보아하니 아주 피곤한 것 같습니다.”등 어멈은 듣더니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피를 그렇게 많이 흘렸
낙월영은 자신의 입을 만져보았다. 약을 발랐지만 여전히 심하게 부어 있었고 차마 눈으로 볼수 없을 만큼 참혹했다. 그녀의 두 눈에서 미움이 터 질것처럼 흘러나왔다.이를 부득부득 갈며, 마음속은 분노로 꽉 찼다. “그럼 왕야는 그녀에게 벌을 줬느냐?”장미는 머리를 흔들더니 말했다. “그녀는 공을 세웠기에 왕야는 벌도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상상 내린 것 같았습니다. 그녀를 서방으로 불러서 오래 있었습니다.”낙월영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증오와 원한은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손바닥을 피가 날 정도로 꼬집게 했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다는 말인가?그럼 왕야는 그 천박한 것을 그냥 이렇게 봐준다 말인가, 그녀는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왕야는 그녀를 위해 복수를 하지 않는 단 말인가!장미는 안색이 안 좋은 그녀를 보더니 위로했다: “둘째 소저, 안심하세요. 왕야의 마음속에는 둘째 소저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그녀가 공을 세워서 왕야가 벌을 안주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하지만 왕야는 둘째 소저가 겪은 고통을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저희끼리 방법을 생각해서 분풀이를 합시다! 그래도 왕야는 저희 편일 겁니다.” 장미의 두 눈은 음흉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듣고 있던 낙월영은 깜짝 놀라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장미를 쳐다봤다.이어서 조용해지더니, 뜻 깊게 말했다: “네가 뭘 하던지, 나까지 엮이게 하지 말거라.”“장미는 반드시 둘째 소저를 위해 분풀이를 하겠습니다!” 장미는 의기양양하게 웃었다.낙월영의 입가에도 잔잔한 웃음기가 번졌다. 비록 뚜렷하지만 않았지만 전에 비해 차분하고 느긋해졌다.장미는 섭정왕부의 계집종이다. 무엇을 하다가 걸려도 그녀가 지시한 것이 아니기에 그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때문에 왕야 마음속의 자신의 모습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이른 아침.지초는 약각에 약을 찾으러 왔는데 마침 장미도 둘째 소저의 약을 찾고 있었다.“서 언니, 왕비 약을 찾으러 왔습니다. 오늘 보혈약도 좀 주십시오, 어제
낙청연은 정오까지 잠을 잤다. 해가 하늘 높이 떴고 햇빛은 눈부셨다. 그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어나서 햇빛을 쬐러 나가려고 했다.등 어멈이 음식과 약을 가져왔다. “왕비, 일어나셨습니까, 어서 식사하시고 약을 드세요. 오늘 약각에서 특별히 처방한 보혈약입니다.”“보혈약 처방?” 그래도 양심은 좀 있구나!낙청연은 약사발을 들더니 마셔버렸다. 하지만 크게 한 입 먹고 나니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녀는 약을 있는 대로 내뱉았다.약사발을 내려 놓았다. 그녀는 이마를 찌푸리더니 팔뚝의 상처가 터질 듯이 아팠고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혈액은 들끓듯이 상처에서 쏟아져 나오려고 했다.“왕비, 어찌 된 일입니까?” 등 어멈은 깜짝 놀랐다.낙청연의 두 눈은 차가워지더니 약사발에 있는 탕약을 한 번 쳐다보았다. 이건 원래부터 보혈약이 아니었다. 이중에 들어간 약재들은 전부 상처를 악화시기고 피를 끊임없이 흘리게 하는 약재들이었다.특히 구향충(九香蟲)을 넣었다. 이것은 피에 굶주린 독물이다!이 한 사발의 약을 그녀가 다 마셨다면 기혈이 역행하여 상처가 터져서 끊임없이 피를 뿜어 낼 것이며 며칠 못 가서 기혈이 소모되어 극히 엄중하게 된다. 지금 그녀의 몸으로는 죽지 않으면 거의 죽다 살아날 것이다!“이 약은 어디서 가져온 거냐? 소유가 가져온 것이냐?’ 낙청연은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이 약에 문제가 있습니까? 이것은……지초가 찾아온 것입니다.” 등 어멈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지초는?”“방에 있을 겁니다.” 등 어멈이 말했다.낙청연은 즉시 일어났다.“지초?” 낙청연은 바로 지초의 방문을 열었다.여위고 허약한 사람의 형체가 담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뒷모습은 계속 떨고 있었으며 울고 있는 것 같았다.“지초, 왜 그러느냐?”가까이 다가가니 피냄새가 코를 찔렀다.그녀는 미간이 흔들리더니 지초의 어깨를 두드렸다.지초는 고개를 돌렸다. 입안에는 온통 피였고 얼굴은 검은 빛이 돌았다. 입술과 주위에 바늘 구멍같은 피구멍
상대는 분명 낙청연을 노리고 온 것이었다. 지초가 죽을지 살지는 모르지만 지초를 만졌다면 낙청연 또한 분명 독에 감염될 것이다.지초를 안고 부랴부랴 약각으로 향하던 도중, 끓어오르는 혈액으로 인해 딱지가 앉았던 팔뚝의 상처가 터지면서 선혈이 밖으로 솟구쳤고 그 바람에 소맷자락이 빨갛게 물들어졌다.팔에서 오는 통증을 신경 쓸 새도 없이 낙청연은 마음이 조마조마했고 어떻게든 지초의 생명을 살리고 싶다는 일념에 차 있었다.“왕비 마마… 독이 있으니 절 내려주세요…”지초는 고통을 견디며 입을 열었고 눈물이 왈칵 흘러넘쳤다.“미련하긴, 널 내려놓아서 어쩌겠느냐? 넌 지금 온몸에 독이 퍼졌으니 널 이렇게 만든 사람에게 복수하러 가야지 않겠느냐?”낙청연은 서릿발치는 눈빛을 하고 발걸음을 다그쳤다.지초는 더욱 맹렬한 기세로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일이 이렇게 될 줄도 몰랐고 자신이 왕비의 짐 덩어리가 될 줄도 몰랐다.—약각 내에서 몇몇 계집종들이 해바라기 씨를 까면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언니, 정말 총명하십니다. 이번에 들여온 약초에는 전부 독이 있어 감히 시약해 볼 사람이 없었지요. 은자 몇백 냥을 들여서 백여 명쯤 사람을 모아 시약해봐야 하나 싶었는데 지초 혼자 그 많은 약초를 전부 시약할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의기양양한 얼굴로 찻잔을 든 서향향(徐香香)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다들 걱정하지 말거라. 이 돈은 저녁에 나눠줄 것이다.”장미가 묘책을 떠올린 덕분에 은자 몇백 냥을 아꼈으니 서향향은 그중 가장 많은 몫인 백 냥이 넘는 은자를 가질 것이었다. 지금 당장 섭정왕부에서 쫓겨난다고 해도 그 돈으로 좋은 사람을 만나 혼인할 수 있었다.게다가 지초는 소심한 아이였으니 일러바치지도 못할 것이었다.다들 들떠있을 때 돌연 밖에서 호된 목소리가 들려왔다.“돈을 나눠 가질 궁리나 하고 앉아 있구나. 그러려면 너희들 목숨줄이 남아있어야 할 텐데.”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낙청연은 지초를 품에
장미가 들이닥친 순간 그림자 하나가 그녀를 덮쳐왔고 낙청연은 곧바로 약그릇을 든 채로 몸을 벌떡 일으키며 손에 든 해독 탕약을 지키려 했다.장미는 약그릇을 노리고 간 것이라 낙청연이 불쑥 몸을 일으킬 줄은 예상치 못했다.그래서 낙청연이 일어서는 순간 낙청연의 머리와 장미의 턱이 거세게 부딪쳤고, 낙청연은 체격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 부딪쳐서 날아간 건 당연히도 장미였다.장미는 바닥에 풀썩 주저앉고는 입을 가렸는데 손이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손바닥을 펴보니 치아 두 개가 빠져나갔다.“이, 이런!”장미는 화난 얼굴로 낙청연을 손가락질했다. 혀를 씹는 바람에 피가 멈추지 않았고 말을 제대로 할 수조차 없었다.낙청연은 무덤덤한 얼굴로 장미를 훑어보더니 몸을 숙이고 계속해 지초에게 약을 먹였다. 눈물을 뚝뚝 떨구는 지초를 보니 가슴이 아팠다.“지초야, 얼른. 아파도 다 먹어야 한다.”장미가 왔으니 이제 곧 그 인간도 오겠지.낙청연은 그들과 싸우는 건 두렵지 않았지만 미처 먹지 못한 해독 탕약이 그들에 의해 쏟아질까 무서웠다.지초를 위해 해독하는 건 한시가 급한 일이었다.지초 역시 왕비가 자신을 위해 약을 달이는 게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알았고 이로 인해 어쩌면 수많은 질타와 징벌을 받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약은 이미 다 달여진 상태였으니 먹지 않는다면 왕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일이었다.그렇기에 지초는 통증을 참아가면서 고개를 들어 마지막 남은 탕약을 전부 마셨다. 피와 탕약이 함께 섞여서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바로 그때 불청객이 나타났다.“장미야, 왜 그러느냐?”낙월영은 들어오자마자 입 근처가 피범벅이 된 장미를 보았고 장미는 헐레벌떡 낙월영의 발치에 매달리며 분통을 터뜨렸다.“둘째 아씨… 제 치아가…”그러면서 낙청연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왕비 마마께서 다짜고짜 제 뺨을 때리셨사옵니다! 둘째 아씨, 둘째 아씨께서 말씀 좀 해주세요.”낙월영이 막 입을 열려던 참에 낙청연이 몸을 일으키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장미를 쏘아보며 말했다.
낙월영은 예전의 낙청연이 소심하고 자신감이 없다는 점을 이용해 낙월영을 수도 없이 괴롭혔다.지금의 낙월영은 부진환이 감싸고 돌아서 더욱 기고만장해졌고 만약 지금 자신이 낙청연을 위해 반격을 가하지 않는다면 낙청연의 분풀이를 해줄 사람이 없었다.태어날 때부터 제사장의 제자라는 고귀한 신분을 타고났던 낙요는 단 한 번도 이런 취급을 당한 적이 없었고 예전의 낙청연처럼 그저 당하고 있을 생각도 없었다.낙월영은 잠시 낙청연을 노려보더니 이내 눈에 눈물을 머금고 화가 난 듯, 또 억울한 듯 자리를 떴다.—역시나,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낙월영에게 왕야를 찾으라 얘기했다.서방에 도착했을 때 낙월영은 부모님이라도 돌아가신 듯 의자에 앉아 서럽게 울고 있었고, 장미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왕야에게 없는 소리를 하면서 고자질했다.“낙청연! 내가 뭐라고 경고했었는지 잊었느냐?”부진환의 미간에는 노여움이 가득했다.그는 낙청연에게 다시는 낙월영을 괴롭히지 말라고 한 적이 있었다.낙청연은 억울했다. 본인이 먼저 나서 낙월영을 건드린 것도 아니거니와 낙월영을 괴롭히려고 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낙월영이 자신을 찾으러 온 것이었는데 부진환은 그것마저 그녀의 탓이라고 했다.하지만 낙청연은 해명하지 않았고 해명할 마음도 없었다.분노 가득한 그의 눈동자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설명한다고 해도 부진환은 낙월영의 말을 믿을 것이다.“네가 이렇게 악랄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사람의 목숨을 우습게 여기고 너를 위해 시약하게 하다니!”부진환은 최대한 자신의 화를 억누르려 했다. 그는 자신이 왜 이토록 화가 나는지 알지 못했고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제어할 수가 없었다.낙청연은 그의 말에 싸늘하게 대꾸했다.“전 다른 사람의 목숨을 우습게 여긴 적도, 저를 위해 시약하게 한 적도 없습니다.”“여기 증거가 떡하니 있는데 변명하는 것이냐?”부진환은 종이 한 장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는 그것을 힘껏 내리치며 말했고, 낙청연은 가까이 가서 그 종이를 확인해봤다.
“왕… 백… 중… 왕…”지초는 무척 진지한 얼굴로 읽고 있었으나 주위 사람들 중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부진환은 지초가 그 위에 적힌 글들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낙월영은 조금 뒤늦게 반응했다. 그녀는 지초가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독에 당했다고 생각했고 장미의 지독함에 놀라고 있었다.부진환은 미간을 좁히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지초야, 내가 물으마. 네가 이 종이에 서명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지초는 솔직하게 대답했다.“시약을 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기에 여기에 서명해야만 시약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규칙이라고 하더군요.”부진환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규칙? 누가 정한 규칙이란 말인가?“누가 너에게 여기에 서명하라고 시킨 것이냐?”“약각의 서향향이 시킨 일입니다.”지초는 겁에 질린 얼굴로 대답했다.“왕비 마마께서 다치셔서 혈기를 보할 약초가 필요해 가지러 왔는데 서향향이 시약을 하지 않으면 약초를 주지 않을 것이라 했습니다.”그 말에 부진환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고 낙월영은 그제야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초는 아예 글을 읽을 줄 몰랐고 이 종이에 서명한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이 종이는 낙청연을 해치기 위한 것이었고 그 사실은 지초의 두 마디에 증명되었다.장미는 생각보다 더 멍청한 사람이었다.바로 그때, 밖에서 계집종 춘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왕야! 노비 춘월, 왕야를 뵙고 싶습니다. 왕야께 보고드려야 할 아주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들어오거라.”부진환이 분부했고 춘월은 들어오자마자 바닥에 풀썩 무릎을 꿇으면서 말했다.“왕야, 노비 춘월이 증명할 수 있습니다! 서향향이 지초를 속여 시약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서향향과 다른 이들이 시약하는 돈을 아꼈으니 어떻게 은자를 나눌 것이라 작당하는 것도 제 귀로 직접 들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벽운도 들었고 저희 모두 증명할 수 있습니다.”증인이 있을 줄은 몰랐던 낙청연은 살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