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시몽이 쉬러 간 틈을 타서, 심면은 면심을 불러 상황을 물었다.“약의 효능이 뛰어난 것으로 보아 진귀한 약재일 것이다. 내가 다친 일을 궁에서 알고 있는 것이냐?”심면은 궁에 있는 사람들이 그녀가 심시몽때문에 다쳤다는 것을 알까 봐 걱정되었다.소문이 퍼지면 심시몽에게 영향을 끼칠 것이다.면심이 답했다.“궁에서 사람을 보내 상황을 물은 적 있습니다. 아가씨께서 무예를 연마하다 다쳐 며칠 쉬셔야 한다고 제멋대로 전하였습니다.”“다른 소식은 아마 전해지지 않은 듯하옵니다.”그녀의 답을 듣고 심면은 아주 만족스럽게 웃었다.“똑똑하구나. 역시 내가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다.”“하지만 이 약은 어디서 난 것이냐?”면심이 답했다.“의원께서 큰아가씨 상처는 빙천영지가 있어야 빨리 나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둘째 아가씨가 궁으로 가서 찾으려 했지만 무슨 이유인지 줄곧 얻지 못했습니다.”“그리고 둘째 아가씨께서 성 중 의원까지 찾아다녔지만, 여전히 약재를 얻지 못했습니다. 저도 아침에 와서야 큰 아가씨가 이미 약을 드신 것을 보았습니다. 의원께서 이것이 바로 빙천영지라 하셨습니다.”“어젯밤 둘째 아가씨가 약재를 얻어와 약을 달인 것이라, 저도 자세한 상황을 모릅니다.”그 말을 듣고 심면은 조금 의아했다. 궁에도 없다면 아마 도성의 의원에도 없을 것이다.심시몽은 대체 어디서 얻은 것일까?“그래. 알았다.”저녁 무렵 심시몽이 약을 달이러 왔을 때, 심면이 이 일을 물었다.“빙천영지는 어디서 얻은 것이냐?”심시몽은 잠깐 동작을 멈추고 한참을 주저하다가 답했다.“저는 빙천영지를 찾지 못했습니다. 어제 마침 강소풍을 만났고, 빙천영지도 그가 어젯밤 갖고 온 것입니다.”그녀의 말에 심면은 눈살을 찌푸렸다.“한밤중에 갖고 온 것이냐? 어떻게 얻은 것인지 물었느냐?”심시몽이 얼른 답했다.“물었지만 말하지 않고 다급히 자리를 떠났습니다.”“내일 찾아가서 묻겠습니다.”심면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귀한 약이니, 잘 물어보거라. 돈을 주고 샀다
상황은 심각해 보였다.강소풍의 출입을 막았기에 아무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강소풍은 집안에서 벌을 받고 출입을 금지당했다. 혹시 빙천영지로 인한 일이 아닐까?그날 한밤중에 빙천영지를 갖고 온 것으로 보아, 혹시 훔쳐낸 것은 아닐까?도성의 큰 의원에도 없던 약재라, 강소풍이 사 왔을 리는 없다. 혹시 강부에서 간직하고 있던 약재는 아닐까?만약 정말 그렇다면, 그녀가 강소풍을 해친 것이다.집으로 돌아오자, 심면이 정원에서 몸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심시몽이 돌아온 것을 보고 심면이 그녀를 불러세웠다.“어찌 이렇게 늦게 온 것이냐?”심시몽이 걱정스럽게 말했다.“강소풍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았습니다.”그 말을 듣고 심면은 멈칫하다 돌 탁자 옆에 앉았다.“무슨 일이냐?”심시몽은 오늘 알게 된 일과 자신의 추측을 솔직히 전했다.그녀의 말을 들은 심면의 표정은 다소 무거워졌다.“네 추측이 맞은 것 같다.”“강소풍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쳐 벌을 받은 것 같구나.”“귀한 약재니, 강부에서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방법을 생각해 빙천영지를 돌려드려야 한다.”심시몽은 깜짝 놀랐다.“빙천영지를 이미 써버렸는데, 어떻게 돌려줄 수 있습니까?”“빙천영지를 한 그루 더 얻어서 돌려줘야 한다.”그 말에 심시몽은 고민에 빠져 고개를 저었다.“어의원에도 약재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날 빙천영지를 찾으러 왔을 때 공주께서 마지막 한 그루를 가져가셨습니다.”“빙천영지는 절벽 계곡에서 자라 찾기 어렵습니다. 겨울이 되어 산에 들어가 약재를 찾는 사람도 없습니다. 어의원에 물어보니, 올해 겨울에는 새로운 빙천영지를 찾지 못할 것이라 하였습니다.”“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심면이 곰곰이 생각하다 이내 입을 열었다.“공주께서 청주에서 돌아왔을 때 다치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빙천영지를 다른 용도로 쓰거나, 아직 사용하지 않았다면 공주에게서 빌릴 수 있을 것이다
섭정왕부(攝政王府).동상방(東廂房) 내 꽃무늬가 새겨진 침상 주위에 옷들이 널브러져 있었다.낙청연(洛清淵)은 몸을 일으켜 앉더니 침상 위의 난잡한 흔적을 확인하고는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햇빛이 빨간색의 흔적을 또렷이 비추고 있었다. 어젯밤 신방(新房)에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쳐들어왔던 기억을 떠올리니 다시 한번 수치심과 모욕감이 울컥 치밀어올라 돌연 그녀를 견딜 수 없었고 굴욕으로 인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왜 우는 것이냐? 드디어 네 바람대로 섭정왕부에 시집왔으니 기뻐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서늘하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낙청연은 등골이 오싹했다.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려보니 의자 위에 정좌로 앉은 남자가 보였다. 그는 위엄 있으면서도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의 차가우면서도 냉담한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을 때 낙청연은 그의 시선이 칼이 되어 살을 에이는 것 같았고 온몸이 피 칠갑이 된 것 같았다.낙청연은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 폭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이내 가슴 부근이 꽉 막힌 것처럼 숨을 쉴 수가 없었다.“왕야(王爺)… 줄곧 여기 계셨습니까?”남자는 덤덤한 어투로 말했다.“너와 내가 혼인을 올린 날인데 본왕이 여기 있지 않으면 어디에 있어야 하느냐?”그 순간, 낙청연은 마치 벼락을 맞은 것 같았고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어젯밤 신방에 쳐들어왔던 남자들과 도처에 남겨진 어지러운 흔적들에 그녀는 수치스러웠고 분했는데 그녀와 함께 첫날밤을 보내야 했던 남자는 그 방 안에서 밤사이 그 남자들이 어떻게 그녀의 옷을 찢어발겼는지를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왜입니까? 제가 그렇게나 미우십니까?”정신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낙청연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분통을 터뜨렸다.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는 첫날밤 하인들더러 그녀의 순결을 빼앗게 했고 그녀의 몸과 마음을 더럽혔다.낙청연은 심장이 갈가리 찢기는 고통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그녀는 어릴 때부터 그를 경모했었고 당시 태황태후(太皇太后)는 두 사람이 금동옥
촤악.차가운 물이 얼굴을 향해 날아왔고 낙청연은 힘겹게 눈꺼풀을 들었다. ‘난 죽었는데? 왜 아픔이 느껴지는 것이지?’어멈처럼 보이는 하인이 대야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면서 화가 난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울고불고 소란 피울 생각은 마시옵소서. 왕야께서는 그런 수작에 넘어가시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 제 주제를 알아야지, 감히 동생을 대신해서 혼인을 치르러 하다니요? 섭정왕부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닙니다!”등 어멈(邓嬤嬤)은 얼굴에는 노여움이 가득했다. 그녀는 원래 집으로 돌아가 늙은 어미를 모시려 했으나 염치를 모르는 왕비가 자결 시도를 하는 바람에 다시 돌아와 그녀의 시중을 들게 되었다.“승상부의 아씨로서 살 것이지 이런 추접한 일이나 벌리다니, 차라리 죽어버리지.”머리 위로 욕설과 불평이 끊임없이 쏟아졌고 낙청연은 이 모든 게 낯설었다. 그녀의 것이 아닌 기억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어젯밤은 섭정왕과 낙월영의 혼인날이었다. 그러나 낙청원은 사랑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신부로 위장하고는 방 안에 미정향(迷情香)을 피워놓고 섭정왕의 아이를 가질 생각이었다.그런데 부진환이 결정적인 시각에 정신을 되찾았고 화가 나서 사람들을 대여섯 명 불러들였으며 낙청연은 깨어난 뒤 굴욕을 참지 못하고 절망스러운 마음으로 벽에 머리를 찧어 죽으려 했다.몸의 원래 주인은 그를 미치도록 사랑했었고 그녀의 몸에서 그녀의 괴로움과 마지못한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여국(黎國)의 대제사장(大祭司)으로서 그녀는 죽을 운명이었지만 영혼이 흩어지지 않았고 천궐국(天闕國) 승상의 딸의 몸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는데 난폭한 하인이 그녀를 바닥으로 밀어서 넘어뜨렸고 그 바람에 그녀는 침대 가장자리에 머리를 찧게 되었다. 뒤이어 극심한 고통이 느껴지자 낙청연은 저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키면서 손을 뻗어 머리를 만져봤고 피가 흥건했다.“돼지처럼 무거운데 누가 아씨를 옮기겠습니까? 눈치 좀 챙기세요. 섭정왕부로 시집왔다고 해서 정말 안주인이라도 된 줄 아
등 어멈은 화들짝 놀라면서 말했다.“아이고, 둘째 아씨 손이!”그러면서 등 어멈은 얼른 낙월영을 부축하면서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정말 악독하기 그지없군요. 둘째 아씨의 혼사를 빼앗은 것으로도 모자라 둘째 아씨가 약을 먹여주는데 밀어서 넘어뜨리다니요!”바로 다음 순간, 한 인영이 빠른 걸음으로 방 안으로 들어오더니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낙월영의 옆에 섰다.“월영아!”낙월영은 미간을 좁히더니 피로 얼룩진 손바닥을 들어 보았는데 그 모습은 못내 애처로워 보였다.부진환은 낙월영의 손에서 흐르는 피를 보더니 살기 어린 눈빛으로 낙청연을 쏘아보았고 낙청연은 곧바로 입을 열려고 했다.“전…”그러나 해명을 하기도 전에 그녀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부진환이 억센 힘으로 그녀를 침상 위에서 끌어 내렸다. 바닥에 쓰러져서 몸의 중심을 잡기도 전에 부진환이 매섭게 따귀를 때렸다.그 순간 귓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뺨이 덴 것처럼 뜨거웠고 아렸다.낙청연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낙월영은 부진환의 옷소매를 잡으면서 간청했다.“왕야, 제가 부주의해서 넘어진 것입니다. 언니 잘못이 아닙니다.”등 어멈이 섭정왕에게 고자질했다.“왕야, 제가 똑똑히 보았습니다. 둘째 아씨께서 좋은 마음으로 약을 먹이는데 그 마음을 헤아리지는 못할망정 둘째 아씨를 밀쳤습니다. 둘째 아씨께서 선량하셔서 그냥 넘어가 주려고 하는 것이지,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괴롭힘을 당해서야 되겠습니까?”“둘째 아씨를 데리고 가서 약을 발라주거라.”부진환이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예.”등 어멈은 낙월영을 부축하면서 떠났다.방 안에는 낙청연과 부진환 두 사람만이 남았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그는 자신의 서늘한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힘주어 잡았다. 만약 그가 잡은 것이 낙청연의 목이었다면 그녀는 아마도 숨이 끊어졌을 것이다.“진짜 네가 왕비라도 된 것 같으냐? 월영이가 부탁하지만 않았다면 난 널 죽였을 것이다. 또 한 번
낙요는 눈가가 빨갰지만 눈빛만은 의연하고 차가웠다.방문을 닫은 뒤 그녀는 아직도 쑤시듯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침상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이 몸으로 환생해서인지 무력을 전혀 쓸 수가 없었다.그녀가 여국에서 모두가 우러러보는 대제사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풍수와 관상을 보고 점을 치는 능력이 출중한 것도 있지만 혼자서 백여 명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대단한 무공 실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었다.거기까지 생각하니 그녀는 자기 몸이 못내 그리워졌다. 어릴 때부터 무공을 배워서 경맥이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강인했으니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괴롭힐 수 있을 리가 없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몸은 이미 좌골양회(挫骨揚灰: 원한이 깊거나 중죄를 저지른 사람이 죽은 후 그 뼈를 갈아서 뿌리는 것)를 당했다.서방(書房)으로 돌아온 부진환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고 마음도 심란했다.소유(蘇游)가 그의 방으로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왕야, 오늘 밤도 그 사람들을 불러 큰아씨께 겁을 줄까요?”그의 말에 부진환의 미간이 더욱 좁혀졌다.“아니, 오늘은 됐다.”어젯밤 그녀를 단단히 혼냈으니 다시 한번 그런 일을 겪는다면 또 자결하겠다고 난리를 칠 게 뻔했고, 혹시라도 진짜 죽기라도 한다면 승상부 쪽에 얘기하기가 껄끄러워진다.소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겠습니다.”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고 희미한 광선이 방 안으로 쏟아졌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 있었다.젊고 예쁘장한 계집종이 방 안으로 들어오면서 오만한 태도로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왕비 마마께서는 신선이라도 되려고 그러십니까?”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낙청연이 눈을 떴다. 그녀의 눈빛은 싸늘하고 날카로웠고 그 눈빛에 맹금우(孟錦雨)는 순간 겁을 먹었다.그녀는 손을 휘저으며 밖에 있는 사람을 불러들이더니 일부러 거드름을 피우면서 느긋하게 얘기했다.“왕비 마마께서 온종일 음식을 드시지 않았으니 배가 많이 고플 것이라 하여 왕야께서 자비를 베풀어 이것들을 하사해주셨습니다.”계집종들이
“구했으면 구한 거지 이유가 필요하더냐?”낙청연은 담담하게 대꾸하고는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그녀가 저 멀리 걸어가자 등 어멈은 오늘 오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라 죄책감이 들었고, 결국 참지 못하고 낙청연을 불러 세웠다.“왕비 마마!”낙청연이 발걸음을 멈추자 등 어멈은 재빨리 그녀에게 다가갔다.“오늘 아침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 왕비 마마의 시중을 드는 일만 아니었다면 전 이미 저택에서 나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왕비 마마를 원망하고 분풀이하였습니다.”등 어멈은 고개를 숙인 채로 미안한 듯 얘기했다.그녀는 왕비가 자신을 도와줄 줄 몰랐다. 그녀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자신은 아마도 맹금우에게 맞아 죽었을지도 모른다.게다가 낙청연은 그녀의 빠진 팔을 치료해주었고 소문처럼 그렇게 독살스러운 사람이 아니었다.등 어멈의 말에 낙청연은 그제야 연유를 깨달았고 등 어멈은 그녀에게 충고를 해주었다.“왕비 마마, 이 섭정왕부에서 계속 지내고 싶으시다면 맹금우와는 척을 지지 마셔야 합니다. 맹금우는 저택의 일등 계집종입니다. 내원 관사(內院管事)의 친딸이거든요.”“이미 척을 지지 않았더냐.”이제 와서 얘기해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등 어멈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낙청연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서는 목소리를 낮추며 얘기했다.“제가 무심코 들은 얘기가 있는데, 둘째 아씨께서 맹금우에게 한 가지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둘째 아씨께서 왕비 마마가 되면 건강이 좋지 않아 왕야의 시중을 들 수 없으니 맹금우를 통방으로 삼아 그녀더러 왕야의 시중을 들게 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씨와 왕야의 혼례가 성사되지 않았으니 왕비 마마께서 맹금우를 구슬리시려면 맹금우더러 왕야의 시중을 들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왕비 마마께 그렇게 적대적이지는 않겠지요.”등 어멈은 낙청연의 도움에 감사했고 그래서 자신도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기에 그녀 대신에 방도를 생각했다.등 어멈의 말에 낙청연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낙월영은 맹금우와 통방을 조건으로 거래를 한 것이었고, 맹
낙청연은 벽 구석 쪽에 놓인 몽둥이를 휘둘러 맹금우를 기절시켰다. 그리고는 소매 안에서 찐빵을 꺼내서 그녀의 입안에 쑤셔 넣어 그녀가 삼키게 만들었다.사내들은 창문 쪽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낙청연이 창문 쪽으로 도망치려는 줄로 알았다.“여기 있었군. 감히 도망칠 생각을 하다니.”그중 한 명이 맹금우의 뺨을 내리쳤고 낙청연은 내친김에 맹금우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사내들은 기절한 맹금우를 낙청연으로 여겼고 그녀를 침상 위로 옮겼다.낙청연은 벽에 귀를 딱 붙이고 안쪽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일이 확실히 진행되고 있자 낙청연은 그제야 유유히 몸을 돌려 그곳을 떠났다.밤이 깊어진 틈을 타 낙청연은 몰래 부엌으로 가서 먹을 것을 찾았지만 부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결국 낙청연은 부엌 구석 쪽에 자리를 잡고 잠을 청했다.공무를 마친 부진환은 서방 안에서 휴식을 취하려 했는데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렸고 낙월영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왕야! 주무시고 계십니까?”그녀의 황급한 목소리에 부진환은 얼른 문을 열었다.“왜 그러느냐?”낙월영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조금 전 눈물을 흘린 것처럼 그렁그렁한 눈으로 부진환을 바라보았다.“왕야, 제가 아까… 사내 여럿이 언니의 방 안으로 들어가는 걸 목격했습니다. 왕야, 제발 언니를 용서해주세요.”그녀의 말에 부진환의 안색이 돌변했다.사내 여럿이 낙청연의 방으로 들어갔다니? 그는 소유에게 분명 그 짓을 그만하라고 분부했었다.“왕야, 저한테 언니는 한 명뿐입니다. 언니가 무슨 짓을 저질렀든 언니가 제 언니인 건 변함없는 사실입니다.”낙월영은 울음을 터뜨리면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고 부진환은 미간을 좁히더니 얼른 그녀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다.“나와 함께 가보자꾸나.”“그…”낙월영은 고개를 숙이면서 민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부진환의 눈빛이 살벌하게 빛났다. 낙청연이 대체 무슨 짓을 꾸민 것인지, 왜 지금에 와서도 포기하지 않는지 의문이었다. 게다가 낙월영이 그가 무슨 짓을 했다고 오해까지 하게 만들
상황은 심각해 보였다.강소풍의 출입을 막았기에 아무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강소풍은 집안에서 벌을 받고 출입을 금지당했다. 혹시 빙천영지로 인한 일이 아닐까?그날 한밤중에 빙천영지를 갖고 온 것으로 보아, 혹시 훔쳐낸 것은 아닐까?도성의 큰 의원에도 없던 약재라, 강소풍이 사 왔을 리는 없다. 혹시 강부에서 간직하고 있던 약재는 아닐까?만약 정말 그렇다면, 그녀가 강소풍을 해친 것이다.집으로 돌아오자, 심면이 정원에서 몸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심시몽이 돌아온 것을 보고 심면이 그녀를 불러세웠다.“어찌 이렇게 늦게 온 것이냐?”심시몽이 걱정스럽게 말했다.“강소풍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았습니다.”그 말을 듣고 심면은 멈칫하다 돌 탁자 옆에 앉았다.“무슨 일이냐?”심시몽은 오늘 알게 된 일과 자신의 추측을 솔직히 전했다.그녀의 말을 들은 심면의 표정은 다소 무거워졌다.“네 추측이 맞은 것 같다.”“강소풍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쳐 벌을 받은 것 같구나.”“귀한 약재니, 강부에서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방법을 생각해 빙천영지를 돌려드려야 한다.”심시몽은 깜짝 놀랐다.“빙천영지를 이미 써버렸는데, 어떻게 돌려줄 수 있습니까?”“빙천영지를 한 그루 더 얻어서 돌려줘야 한다.”그 말에 심시몽은 고민에 빠져 고개를 저었다.“어의원에도 약재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날 빙천영지를 찾으러 왔을 때 공주께서 마지막 한 그루를 가져가셨습니다.”“빙천영지는 절벽 계곡에서 자라 찾기 어렵습니다. 겨울이 되어 산에 들어가 약재를 찾는 사람도 없습니다. 어의원에 물어보니, 올해 겨울에는 새로운 빙천영지를 찾지 못할 것이라 하였습니다.”“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심면이 곰곰이 생각하다 이내 입을 열었다.“공주께서 청주에서 돌아왔을 때 다치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빙천영지를 다른 용도로 쓰거나, 아직 사용하지 않았다면 공주에게서 빌릴 수 있을 것이다
심시몽이 쉬러 간 틈을 타서, 심면은 면심을 불러 상황을 물었다.“약의 효능이 뛰어난 것으로 보아 진귀한 약재일 것이다. 내가 다친 일을 궁에서 알고 있는 것이냐?”심면은 궁에 있는 사람들이 그녀가 심시몽때문에 다쳤다는 것을 알까 봐 걱정되었다.소문이 퍼지면 심시몽에게 영향을 끼칠 것이다.면심이 답했다.“궁에서 사람을 보내 상황을 물은 적 있습니다. 아가씨께서 무예를 연마하다 다쳐 며칠 쉬셔야 한다고 제멋대로 전하였습니다.”“다른 소식은 아마 전해지지 않은 듯하옵니다.”그녀의 답을 듣고 심면은 아주 만족스럽게 웃었다.“똑똑하구나. 역시 내가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다.”“하지만 이 약은 어디서 난 것이냐?”면심이 답했다.“의원께서 큰아가씨 상처는 빙천영지가 있어야 빨리 나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둘째 아가씨가 궁으로 가서 찾으려 했지만 무슨 이유인지 줄곧 얻지 못했습니다.”“그리고 둘째 아가씨께서 성 중 의원까지 찾아다녔지만, 여전히 약재를 얻지 못했습니다. 저도 아침에 와서야 큰 아가씨가 이미 약을 드신 것을 보았습니다. 의원께서 이것이 바로 빙천영지라 하셨습니다.”“어젯밤 둘째 아가씨가 약재를 얻어와 약을 달인 것이라, 저도 자세한 상황을 모릅니다.”그 말을 듣고 심면은 조금 의아했다. 궁에도 없다면 아마 도성의 의원에도 없을 것이다.심시몽은 대체 어디서 얻은 것일까?“그래. 알았다.”저녁 무렵 심시몽이 약을 달이러 왔을 때, 심면이 이 일을 물었다.“빙천영지는 어디서 얻은 것이냐?”심시몽은 잠깐 동작을 멈추고 한참을 주저하다가 답했다.“저는 빙천영지를 찾지 못했습니다. 어제 마침 강소풍을 만났고, 빙천영지도 그가 어젯밤 갖고 온 것입니다.”그녀의 말에 심면은 눈살을 찌푸렸다.“한밤중에 갖고 온 것이냐? 어떻게 얻은 것인지 물었느냐?”심시몽이 얼른 답했다.“물었지만 말하지 않고 다급히 자리를 떠났습니다.”“내일 찾아가서 묻겠습니다.”심면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귀한 약이니, 잘 물어보거라. 돈을 주고 샀다
그녀는 일단 강소풍의 소식을 기다리기로 했다.날도 어두워져서 의원도 문을 닫았으니, 내일에야 계속 의원을 찾아갈 수 있었다.집으로 돌아가면 면심은 약재를 찾았는지 바로 물을 것이다. 약재를 찾지 못했다는 것을 알면 그녀는 실망하며 등을 돌릴 것이다.심시몽은 더욱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그녀는 풀이 죽어 방에 앉아 강소풍이 소식을 전하러 오기를 바랐다.한밤중이 되도록 기다리자,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심시몽은 얼른 앞으로 나가 방문을 열었다. 역시 강소풍이었다.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말했다.“정말 온 것이오?”강소풍은 다급히 상자를 그녀에게 건네고 답했다.“빙천영지요! 자!”심시몽은 상자를 열어보고 정말 빙천영지가 들어있는 것을 본 후 기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어디서 얻은 것이오?”“묻지 말고 일단 언니부터 구하시오.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마시오!”심시몽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강소풍은 빙천영지를 그녀에게 가져다준 후 다시 재빨리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심시몽은 얼른 빙천영지를 갖고 심면을 구하러 갔다.강소풍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고 그녀도 한밤중에 빙천영지를 얻어왔다고 누군가 물을까 봐 걱정되어, 홀로 심면의 방으로 향했다.그녀는 의원의 처방에 빙천영지를 넣어 약을 달였다.과정이 복잡하고 불도 항상 지켜봐야 하기에 그녀는 밤새 바삐 보내고 날이 밝을 무렵에야 약을 심면에게 먹여주었다.그녀는 날이 밝은 후 다시 의원을 불러 심면을 살피게 했다.의원은 진맥을 마치고 고개를 끄덕였다.“약을 제때 먹었기에, 아마 큰 아가씨께서는 곧 깨어나실 것입니다.”심시몽은 그 말을 듣고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의원을 떠나보낸 후, 면심은 방 안의 약통과 약을 발견하였다. 심시몽의 초췌한 얼굴을 살펴보니, 어젯밤 그녀가 큰 아가씨에게 약을 달여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둘째 아가씨, 제가 모시겠습니다. 어서 돌아가서 쉬시지요.”면심이 관심 어리
면심은 심면에게 약을 먹였다. 심시몽은 그저 문어 귀에 서서 바라볼 뿐, 들어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그녀는 하마터면 언니를 죽일 뻔했다는 진실을 마주할 수 없었다.면심은 약을 먹이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공포에 질린 심시몽의 모습을 보고 그녀는 심시몽을 탓하지 않았다.“둘째 아가씨, 지금 큰아가씨께서 다치셨으니 집안 주인은 아가씨입니다.”“이럴 때일수록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의원이 빙천영지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저희는 하인이라 궁에 들어갈 수 없으니, 둘째 아가씨께서 다녀오셔야 할 듯합니다.”심시몽은 정신을 차리고 바로 자리를 떠났다.그녀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궁으로 들어갔다. 어의원으로 가는 길에 그녀는 공주를 만났다.강여는 그녀를 보자마자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심시몽은 긴장한 채 입을 열었다.“공주마마.”강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리를 떠났다.공주가 차갑게 떠난 것을 보고 심시몽은 손을 꽉 움켜쥐었다.그녀는 풀이 죽을 새도 없이 어의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어의원의 마지막 빙천영지는 공주가 가져갔다.심시몽은 어쩔 수 없이 공주를 찾아갔다. 공주의 궁으로 쫓아갔지만, 공주는 그녀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심시몽은 심면을 구하려 한다고 상황을 설명하고 싶었지만, 공주의 궁녀들이 그녀를 내쫓았다.궁을 떠난 후 심시몽은 참다못해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눈물을 훔치며 궁을 나섰다.마차를 타고 도성을 뒤지고 다니며 빙천영지가 있는지 알아보았다.이틀 동안 도성의 의원을 거의 다 돌아다녔지만, 너무 귀한 터라 빙천영지는 없었다.날이 어두워지자, 심시몽은 넋을 잃고 의원에서 걸어 나와 힘없이 계단에 쪼그리고 앉았다.분명 그녀가 나쁜 일을 많이 해서 이런 상황에 이르렀을 것이다.겨우 언니와 과거의 원한을 풀고 서로 의지할 수 있었는데, 언니를 죽일 뻔했다.어디에서도 빙천영지를 찾을 수 없으니, 언니가 언제 깨어날지도 모른다.모두 자기 탓이다!그녀는 무기력하게 무릎을 안고 훌쩍거렸다.갑자기 앞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안 됩니다. 못하겠습니다.”심시몽이 얼른 손을 저었다.심면은 억지로 검을 그녀의 손에 쥐었다.“괜찮다. 한 번 해보자.”“시작하마!”심시몽은 깜짝 놀랐다.“안 됩니다. 아직 준비도 하지 못했습니다.”하지만 심면은 그녀에게 준비할 기회를 주지 않고 바로 심시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물론 그녀는 이미 속도를 조절했다.심시몽은 황급히 검을 피하고 검으로 막아냈다.그러나 심면은 여전히 매섭게 그녀를 몰아세웠다.심시몽은 뒤로 물러나며 그저 수비만 할 뿐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그 모습에 심면은 어쩔 수 없이 계속 공격을 퍼부었고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뒤로 물러서는 게 아니라, 반격해야 한다!”“내가 사용하는 수법은 네가 목검으로 연습한 적 있다. 어떻게 반격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 않느냐? 망설이지 말고 과감하게 손을 쓰거라!”심면의 공격은 점점 매섭고 빨라졌다. 심시몽은 힘에 부쳐 그녀의 공격을 막을 수 없게 되었다.“심사할 때, 다들 훨씬 빨리 공격할 것이다. 나조차도 상대할 수 없는데, 어찌 그들을 이길 수 있겠느냐?”“네 실력으로 5위 안에 들 기회가 있느냐?”“더 이상 물러서지 말거라!”심면은 일부러 말로 그녀를 자극했고 한시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심시몽은 줄곧 생명의 위험을 느꼈다. 날카로운 칼날이 자칫하면 그녀의 목을 벨 것 같았다.그녀는 더 이상 긴장으로 숨을 쉴 수 없었다.심면의 핍박에 심시몽은 이를 악물고 모든 힘을 다해 반격했다.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반격이었다.이미 백 번도 넘게 연습한 수법들이라, 무의식적으로 반격을 했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과감하고 빠르게 손을 썼다.그녀가 반격하는 것을 보고, 심면은 기뻐했다.하지만 지금 심시몽이 궁지에 몰려 이성을 잃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심면은 수비를 하다 심시몽의 검에 손목을 긁혀 검을 놓쳤다. 그 순간, 심시몽의 검이 그녀의 가슴을 향해 찔러왔다.심면의 가슴을 찌른 순간, 심시몽은 번뜩 정신을 차리고 깜짝 놀라 검을 놓았다.“난...”
낙요가 깊이 잠든 후에야 부진환은 옷을 입고 조영궁을 떠났다.비록 그와 여제의 사이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황제와 신하의 신분은 다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의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한 나라 군주의 위엄이 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누군가를 사랑할수록 그녀가 잘되기를 원할수록 자기 자신을 자제해야 한다.지금처럼 함께 지내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충분히 만족한다.-겨울이 되었다.송천초는 여전히 통천탑에서 내단을 흡수하고 있었고 초경이 그녀의 곁을 지켰다. 낙요가 궁인을 시켜 매일 탑에 숯불을 보냈기에, 방안은 줄곧 따뜻했다.어느덧 연말이 되어 제사장족과 현학서원은 다시 시험을 진행했다.제사장족에서는 여전히 낙현책이 일등을 하였고, 유생이 이등을 하였다.현학서원의 서열은 차례로 심면, 강소풍, 임계천, 봉함선, 그리고 뒤쫓아 온 소우청이었다.청주의 전쟁을 거치면서 다들 실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그래서 심시몽의 순위를 8위로 떨어졌다.대부분 성적이 나쁘지 않았지만, 체력이 좋지 않아 꼴찌를 했고 전체 순위도 낮아졌다.성적이 발표되자 심시몽이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강소풍이 그녀를 뒤쫓아갔다.“낙심하지 마시오. 아주 대단하오!”“어디가 대단하다는 것이오? 난 체술이 바닥이오.”심시몽은 기분이 가라앉았다.“무공이 약하지만 천천히 연마하면 되오. 하루 이틀 만에 느는 것이 아니오. 5위에 든 사람은 모두 무공이 뛰어나오. 7위에 오른 것도 대단한 것이오.”그래도 심시몽의 기분은 좋지 않았다.그녀는 하루 종일 시무룩했다.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에서 심면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녀를 보며 먼저 입을 열었다.“다들 청주에서 연습한 적이 있으니, 실전 능력이 많이 늘었다. 네가 상대가 안 되는 것도 정상이다. 10위에 든 것도 충분히 대단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위로할 필요 없습니다. 무예가 차지한 비중은 크지 않습니다. 다들 5위 안에 들 수 있는 것은 무공만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남
월규가 차를 들고 온 후, 바로 물러갔다.저녁에 되자, 궁중에서 연회를 베풀고 즐겁게 음주와 가무를 즐겼다.현학서원과 제사장족 제자들도 모두 참석했다. 연회에서 조정 신하들이 연이어 부진환에게 술을 권하여 그는 하마터면 취할 뻔했다.전쟁을 시작으로 더 이상 아무도 부진환을 의심하지 않았고 다들 그를 존경했다.심지어 신하들이 자기 딸을 부 태사에게 소개해 주려고 했다. 아무래도 그의 인품과 생김새가 손꼽히는 데다 젊은 나이에 태사의 자리에 올랐으니, 사윗감으로 최고였다.비록 부 태사는 조금 취해있었지만, 그런 말을 모두 거절했다. 심지어 평생 혼사를 치르지 않겠다고 명확히 뜻을 전했다.그의 말에 다들 더욱 존경스러웠다.소진오도 그 말을 듣고 부진환에게 술을 권했다.“제가 소인배였습니다. 부 태사가 이렇게 충실한 신하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여제를 안심시키기 위해 혼사를 치르지 않고 천궐국의 핏줄도 남기지 않으시다니.”“그 기백이 정말 대단합니다!”“태사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부진환은 웃으며 잔을 들어 함께 술을 마셨다.그가 혼사를 치르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아니었다.하지만... 굳이 얘기할 필요도 없었다.술을 마시고 부진환은 고개를 돌려 낙요를 바라보았다.두 사람은 서로 시선을 마주했다. 낙요는 술잔을 들고 그를 향해 눈썹을 치켜올린 후, 단숨에 술을 마셨다.연회가 끝나기도 전, 낙요는 먼저 조영궁으로 돌아갔다.그녀가 떠나자마자 부진환이 바로 따라왔다.“태사가 어찌 온 것이오?”낙요가 발걸음을 멈추었다.부진환은 진지한 척 입을 열었다.“소신 아직도 동하국에 관한 일을 여제에게 전하지 않았습니다. 내일 아침 깨어나면 이 일을 잊어버릴까 봐 걱정스럽습니다.”낙요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부 태사는 정말 충실하오. 오늘도 보고를 잊지 않는다니.”“월규야,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 부 태사가 조영궁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월규는 얌전히 응한 뒤, 눈치껏 조영궁의 궁녀를 물러가라 했다.두 사람은 달빛을 빌려 천천히 조영궁
계진은 깜짝 놀랐다.“완쾌하셨습니까? 그동안 사라지셨을 때, 신의라도 만난 것입니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그런 셈이오. 쉽게 만나지 못할 신의였소.”계진은 그 말을 듣고 아주 기뻤다.“그렇습니까? 부 태사께서는 복이 많은 사람이라, 어찌 쉽게 병으로 죽을 수 있겠습니까?”신의든 신선이든 지금 부 태사의 몸이 무사하니, 계진은 마음이 놓였다.초경이 약속한 대로 겨울이 오기 전, 부 태사는 도성으로 돌아왔다.그는 환한 모습으로 다시 조영궁에 나타났다. 조금도 허약하고 초췌한 모습이 없었다. 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날려 잘생긴 얼굴을 스쳐 지났다. 그는 예전처럼 늠름한 모습이었다.낙요는 순간 몇 년 전의 섭정왕을 본 것 같았다.날카로운 눈매와 의연한 눈빛에 부드러운 웃음기가 담겨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잊을 수 없게 만들었다.“여제를 뵙습니다. 소신 죄를 청하러 왔습니다.”부진환이 예를 올렸다.“무슨 죄가 있소?”“여제에게 불경을 저지른 죄입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단번에 낙요를 품속으로 안았다. 그는 큰손으로 낙요의 허리를 가볍게 눌렀다. 두 사람의 몸은 바짝 붙었고, 그는 단숨에 낙요의 입술을 탐냈다.그동안의 그리움은 뜨거운 키스로 변했다.낙요의 심장은 마치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녀는 나른하게 그의 품속에서 그의 맹렬한 공세를 묵묵히 견뎌냈다. 그녀는 상황을 전혀 통제할 수 없었다.한참 키스를 하고서야 부진환은 천천히 그녀를 놓아주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가에 묻은 연지를 가볍게 닦아내고 아쉬운 듯 그녀의 이마에 키스했다.“마지막 모습도 못 볼 줄 알았소.”낙요가 그를 꽉 안았다.“나도 그렇소.”“초경이 있어서 다행이오.”그녀의 말에 부진환이 살짝 멈칫하다 의심스럽게 그녀를 바라보았다.“다 알고 있던 것이오?”낙요는 그를 끌고 연탑에 앉았다.“이렇게 큰일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소?”“현책은 거짓말에 능하지 않소. 특히 거짓말을 하느라, 날 피하며 만나지도 않았소. 내가 어찌 모르겠소?”“혼자
“방금 살펴보니, 확실히 오래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그 말을 듣고 낙요의 심장을 철렁 내려앉았다.하지만 초경이 말을 이었다.“그를 위해 연명할 수 있습니다.”낙요는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연명이라니?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부진환의 말대로, 만약 금술로 그를 위해 팔자를 고치면 분명 화를 입을 것입니다.”“하지만 전 할 수 있습니다.”“우리 천초를 구해줬으니, 당신에게 신세를 졌습니다.”“당신들의 수명은 저보다 짧습니다. 제가 부진환을 구한다면, 그의 목숨도 구할 수 있고, 나에게도 큰 영향이 없을 것입니다.”낙요는 그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걱정하던 마음도 사라졌다.“참 고맙습니다!”초경이 웃으며 말했다.“일단 궁으로 데려다줄 테니, 다시 청주로 돌아와 그를 치료할 것입니다. 겨울이 되기 전에 분명 활력 가득한 부 태사를 돌려줄 것입니다.”“그동안 천초를 잘 돌봐주십시오.”낙요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잘 챙길 것입니다.”송천초는 아직도 통천탑에서 내단을 흡수하고 있다. 워낙 긴 과정이라 절대 급해선 안 된다.-다음 날 아침.계진이 제때 약을 들고 부 태사를 찾아왔다. 방문을 열고 보니, 부 태사는 온데간데없었다.깜짝 놀란 계진은 탁자 위에 남겨진 편지를 발견했다.열어보니 확실히 부 태사의 필적이었다. 편지에는 찾지 말라는 말 한마디뿐이었다.계진은 안색을 바꾸고 바로 약그릇을 내려놓고 그를 찾으러 갔다.동네방네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부 태사를 본 적 없었다. 그가 대체 어디로 갔는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계진은 말할 엄두도 나지 않아 부하들을 데리고 청주성 안팎을 찾아다녔다.그는 부 태사가 절망감에 휩싸여 무슨 일이라도 당할까 봐 무서웠다.연이어 6일을 찾았지만, 부 태사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향 장군도 사람을 데리고 찾아다녔다. 다들 불안한 마음에 잠시도 쉴 수 없었다.심지어 바닷속에도 사람을 보내 뒤지게 했다.향 장군이 이 일을 궁에 보고하려던 때, 누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