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매듭지을 때가 되었다...다음 날.“꺅!”방 안에서 배경윤의 기겁하는 소리가 들려왔다.눈을 떠보니 그녀는 사도현과 한 침대에 누워있었고 제일 민망했던 건 마치 나무에 매달린 코알라처럼 팔과 다리로 사도현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는 것이었다.“깼어?”사도현은 나른한 몸짓으로 기지개를 한번 켰다. 그러고는 예쁘게 미소를 지으며 품속의 여인을 다정하게 바라보았다.“지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왜 여기...”“뭘 그렇게 놀라? 어젯밤 술을 많이 마셨으니까 이렇게 되는 건 당연한 거 아닐까?”사도현은 마치 이런 상황을 많이 겪어본 사람처럼 태연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하지만 보수적인 배경윤은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저리 비켜!”그녀는 사도현의 품에서 벗어나 헐레벌떡 밖으로 나왔다.“일찍 깼네?”차설아는 아침 일찍 잠에 깨 해변에서 산책하고 있었다. 그러다 배경윤이 나오는 걸 보고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잘 잤어?”배경윤은 목까지 빨개져서는 차설아의 팔을 잡고 미친 듯이 휘둘렀다.“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내가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 같으면 말렸어야지. 어떻게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있어. 이러고도 네가 내 친구야?”“왜 이렇게 심각해.”차설아는 배경윤을 토닥이며 진정시켰다.“어제는 우리가 말리지 않은 게 아니라 도저히 말릴 수가 없었어. 너는 어제 고삐 풀린 말처럼 통제가 되지 않았다고. 그리고 사도현 정도면 괜찮지 않아? 나는 진심으로 너희 둘이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괜찮긴 개뿔이!”배경윤은 씩씩거리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사도현 별명이 해안시에서 제일가는 플레이보이라는 것도 몰라? 여자가 끊인 적 없는 남자고 이성이면 일단 플러팅하고 보는 사람이라고. 그런 사람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사도현이랑 연애하는 건 감정낭비야!”“그게 사도현 진짜 모습은 아니야.”차설아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사도현 같은 사람은 쉽게 마음을 내주지 않는 것뿐이야. 누
“어떡해, 어떡해! 저 남자 이쪽으로 오고 있잖아. 네가 가서 못 오게 좀 해 봐...”배경윤은 얼굴이 빨개진 채로 발을 동동 굴렀다.“내가 뭘 어떻게 해...”차설아는 난감한 기색이었다. 사도현과 같은 남자는 누가 막는다고 막아 질 사람이 아니었으니까.그러는 와중에도 사도현은 점점 더 다가오고 있었고 배경윤은 입술을 꽉 깨물더니 이내 뭔가 결심한 듯 바다에 풍덩 뛰어들었다.“???”그 모습에 사도현의 얼굴에 걸려 있던 웃음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녀의 행동에 많이 놀란 듯싶다.“갑자기 바다에는 왜 뛰어들어?”그는 의문 가득한 얼굴로 차설아를 향해 물었다.“음... 몸이 찌뿌둥해서 수영하려나 봐요. 아침에 일어나서 수영하는 게 습관이라고 했거든요.”차설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늘어놓았다.그리고 사도현은 그 말을 믿으며 감탄을 늘어놓았다.“좋은 습관이네. 그간 만난 여자들은 운동은 물론이고 피부 탄다고 햇볕 아래 서는 것조차 싫다며 난리를 피웠는데... 다른 사람들이 가녀린 꽃이라면 경윤이는 정말 들판에 자란 잡초 같아. 누구한테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강단도 있어.”차설아는 사도현의 표정을 힐끗 보더니 은근슬쩍 물었다.“경윤이가 꽤 마음에 들었나 보죠? 보는 눈은 있네요.”“상당히 마음에 들었지. 나는 독립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여자들이면 다 좋아.”“완전히 플레이보이네요.”차설아의 표정이 진지해지더니 사도현의 멱살을 잡고 물었다.“어젯밤 경윤이 어떻게 했어요?”“뭘 어떻게 해?”사도현이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내가 뭐 네 친구 괴롭히기라도 했을까 봐?”“모른 척 그만하죠? 내가 뭘 묻는 건지 다 알잖아요.”차설아는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경윤이는 지금 그 일로 상당히 복잡해 하고 있어요. 도현 씨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도 모르고 있다고요. 두 사람 이대로 얼굴 안 볼 거 아니잖아요.”“다 같은 성인인데 뭐가 문제야? 그런데 확실히 좀 놀라기는 했어. 평소에는
사도현은 예쁘게 웃더니 능글맞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바지는 벗지 말아야겠다. 경윤이가 보면 또 도망갈라.”그러고는 배경윤처럼 단번에 바다로 뛰어들었다.두 사람은 에메랄드빛 바닷속에서 점점 더 가까워져 갔다.한 명은 도망가고 한 명은 그 뒤를 쫓는 것이 멀리에서 보면 그저 달콤한 연인 같았다.차설아는 자기도 모르게 엄마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고른 남자인데 친구 마음에 들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조금 더 빨리 따라가요.”차설아는 모래사장에서 손까지 흔들며 사도현을 응원했다. 그 모습은 마치 드라마 한 장면을 보는 열정적인 관객 같기도 했다.“이러다 감기 걸리겠어.”그때 성도윤이 그녀 옆으로 다가와 외투를 입혀주었다.“고마워.”차설아는 고개를 돌리더니 그를 향해 싱긋 웃었다.두 사람은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듯이 서로를 자연스럽게 끌어안았다.차설아는 따뜻한 남자의 품속에서 마음속 깊이 행복과 평온을 느꼈다.행복이라는 것도 결국 거창한 게 아닌 그저 이런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저 둘 지금 뭐 하는 거야?”성도윤은 두 팔로 차설아를 감싸 안고 턱을 그녀의 머리에 괴며 물었다.바다 한가운데서 한 명은 쫓고 한 명은 도망가며 때로는 티격태격하는 것이 상당히 이상해 보였던 모양이다.“하하하, 열렬히 구애 중이라고 해야 하나?”차설아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확실히 도현 씨는 여자 공략하는 법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저 사람 레이더망에 든 여자들은 아마 빠져나올 틈이 없을 거야.”“왜, 너도 마음이 흔들려?”성도윤의 질투를 담은 음성이 들려왔다.“무슨 헛소리야. 나는 그냥 두 사람이 보기 좋아서 그런 것뿐이야.”차설아의 말투에는 부러움이 묻어있었다.“처음부터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쏟아부으면 오해도 없을 거고 방해물도 없을 거잖아. 그리고 돌이켜보면 행복한 추억밖에 없을 거고...”어떤 사랑은 처음부터 별다른 풍파 없이 순조롭게만 흘러간다.그녀와
성도윤이 이곳을 떠난 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그 일주일 동안 그는 미스터 Q처럼 연락 한번 주지 않았다.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고 그의 어머니에게 물어도 잘 모르겠다는 답변만 돌아왔으며 뉴스나 기사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이에 다급해진 배경윤이 이곳저곳 전화를 돌리자 평소 무서울 것 없던 재벌 2세들이 지금은 마치 함구령이라도 받은 사람들처럼 입을 꾹 닫고 있었다.반면, 차설아는 꽤 담담한 모습이었다. 성도윤에게 전화를 몇 번 더 걸더니 깔끔하게 포기해 버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일상을 보냈다.새로운 아침이 밝아오고 차설아는 바다로 가 일출을 그렸다.배경윤은 그 옆에서 왔다 갔다 하며 호들갑을 떨더니 결국은 그녀의 펜을 빼앗아 들고 말했다.“설아야, 너는 걱정도 안 돼? 지금 그림이 눈에 들어오냐고.”“뭐 말하는 거야?”차설아는 배경윤과 눈을 마주치며 침착하게 물었다.“성도윤 지금 일주일 째 소식이 없잖아. 며칠 전까지만 해도 네 옆에서 떨어질 줄 모르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졌는데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뭐가 그렇게 이상한데?”차설아가 웃으며 말했다.“어디서 객사한 것도 아닐 테고 그렇다고 바람피우고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뭘.”“왜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해?!”배경윤이 흥분하며 말했다.“성도윤은 초범도 아니잖아. 너 그때 어떤 여자가 성도윤의 아이를 뱄다며 널 찾아와 이혼하라고 난리 친 것도 기억 안 나? 바람이라는 건 안 피웠으면 모를까 한번 피운 사람들은 계속 피우게 된다고. 네가 지금 태평하게 그림이나 그릴 때가 아니란 말이야.”그녀는 차설아가 또다시 상처받을까 봐 여태 이런 말을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계속 이대로 모른 척만 하는 것도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했다.“성도윤 성격상 정말 바람을 피운다 해도 나한테 숨기거나 이런 유치한 방법으로 질질 끌지는 않을 거야. 지금까지 연락 없는 건 아마 그 사람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일만 해결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나타날 거야.”차설아는 담담히 웃으며
만약 두 사람이 정말 연인이 된다면 사도현은 그녀의 공격을 막게 호신술이라도 배워야 할 것 같다.“두 사람 그만해. 아이 두 명 돌보는 것도 머리 아파죽겠는데 더 이상 날 피곤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차설아는 관자놀이를 어루만지며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사도현은 그런 그녀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걱정하지마. 형이라면 금방 일을 해결하고 이곳으로 올 테니까.”이에 차설아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하며 그를 향해 물었다.“뭘 알고 있나 봐요?”“글쎄,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고.”배경윤은 모호한 그 말에 사도현을 힘껏 노려보았다.“제대로 말 안 해?”“알았어. 얘기할 테니까 또 흥분하지 마.”사도현은 금세 꼬리를 내리며 말을 이어갔다.“형이 전화를 안 받아서 우리 집에 연락해 봤더니 성대 그룹에 문제가 생겼다 하더라고. 협력 업체였던 서씨 가문에서 갑자기 성대 그룹 경쟁사와 손을 잡고 성대 그룹을 상대하는 모양이야. 그래서 성대 그룹은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거고.”“서씨 가문이요?”차설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그녀도 성도윤과 재결합하게 되면 이런저런 문제가 터져 순조롭지 않을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그래. 나도 최근에서야 알게 된 건데 서씨 집안과 성씨 집안에서 줄곧 결혼 제의가 오갔던 모양이야. 서은아와 형을 맺어주려고 날짜까지 정한 것 같은데 너랑 형이 재결합하는 바람에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됐지. 그래서 그 집안 회장님이 화가 나 그 자리에서 수백억 가치가 되는 화병들을 수십 개나 깨트렸다 하더라고.”사도현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뱉었다.“서은아는 형이랑 친구처럼 지냈으니까 이 일로 형한테 불이익이 닥칠까 봐 무려 3일을 무릎 꿇고 빌었대. 그러니 회장님도 어쩌겠어. 이렇게까지 하니 넘어가려고 했지. 그런데 난데없이 회장님 애인이 울며불며 복수해달라고 난리를 친 거야. 그래서 서씨 가문은 옛정이고 뭐고 없이 성씨 가문과 지금 이 사태까지 오게 된 거고.”“그게 무슨 소리야?”배경윤이
배경윤 역시 두 팔을 벌려 그녀의 앞길을 막았다.“방금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더더욱 너를 보낼 수는 없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 곳에 널 어떻게 보내.”차설아는 두 사람의 걱정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너무 걱정하지 마. 난 이 갈등을 해결하러 가는 거야. 그리고 무슨 일이 생겼다고 해도 그건 내가 아니라 그들일 거야. 내 실력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아는데, 그 사람들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그래!”사도현도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이 해안시에서 형을 끌어내리려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서씨 가문은 그저 그중 하나일 뿐이라고.”“그래서요? 덤빌 테면 다 덤비라고 해요. 똑같이 갚아줄 자신 있으니까.”차설아는 굳게 주먹을 쥐었다. 그녀의 예쁜 얼굴에서는 절대적인 자신감이 묻어있었다.“말은 쉽지. 너 근 몇 년간 왜 사람들이 형을 끌어내지 못했는지 알아? 힘이 부족해서? 성씨 가문이 너무 강해서? 아니, 형한테는 그동안 약점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너와 아이들이 있어. 그 말인즉슨 약점도 그만큼 많아졌다는 거지.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솔직히 나도 장담 못 해...”사도현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아마 형이 갑자기 해바라기 섬에서 나간 것도, 너한테 연락을 하지 못한 것도 다 너랑 아이들 안전을 보장해 주려고 그런 걸 거야. 그러니까 네가 지금 그쪽으로 가는 건 오히려 형의 짐이 될 뿐이라고.”“도현 씨 말도 일리가 있어요. 하지만 나는 이대로 그 사람이 만들어준 안전한 보호막 속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숨어있을 생각 없어요. 같이 싸워서 같이 이겨낼 거예요.”차이설은 단호한 얼굴로 대답했다.“안 돼. 너 지금 제정신 아니야. 거길 어디라고 가.”배경윤은 급기야 차설아의 허리를 감싸 안더니 붉어진 눈으로 사도현에게 도움을 청했다.“빨리 차설아 좀 말려 봐. 얘 한 번 고집 피우면 끝이 없으니까!”사도현은 차설아를 굳게 잡고 있던 배경윤의 손을 풀어준 후 침착하게 말했다.“만약 네가 정말 갈 생각이라면
배경윤은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사도현의 뒷말을 막았다.“뭐가 이렇게 야만적이야. 그렇다고 어떻게 사람 목숨을...”“이건 드라마라서 오히려 수위가 약한 거야. 현실은 이것보다 더한 것도 많으니까.”그 말을 하는 사도현의 표정은 조금 초연해 보였다.그 역시 해안시 8대 명문가 중 한 가문의 일원으로서 지금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일을 겪고 들었다. 현실은 언제나 드라마보다 더 잔인할 뿐 절대 덜하지는 않았다.“그러니까 도윤 씨가 로버트고 나는 잔인하게 배가 뚫려 죽는 그 사람 아내라는 건가요? 그래서 내가 지금 이곳을 떠나게 되면 똑같이 죽게 될 거고?”차설아가 사도현을 바라보며 물었다.“서씨 가문은 절대 만만하게 볼 게 아니야. 지금 그 자리까지 올라오게 된 건 그만큼 뒤가 구린 짓을 많이 했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만약 네가 지금 나서게 되면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꼴이 돼 버려.”“그래, 그러니까 지금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좋아. 나도 이번만큼은 사도현과 같은 생각이야.”배경윤은 맞장구를 치며 사도현에게 잘했다는 눈빛을 보냈다.플레이보이라서 그런지 역시 말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 남자였다.“알겠어. 그럼 조금만 더 기다려 볼게.”차설아는 결국 그들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그래 잘 생각했어.”배경윤은 그제야 안심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고는 사도현과 눈을 마주치며 활짝 웃었다. 아마 두 사람이 일심동체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그날 밤, 그들은 술을 마셨고 밤이 깊도록 얘기를 나눴다.아이들도 11시가 다 되도록 잠들 기미가 없어 보였고 엄마와 함께 자고 싶다며 졸랐다.별 모양으로 가득한 아이들 방 안에서 차설아는 결국 아이를 양옆에 끌어안고 침대 정중앙에 누웠다.아이들은 그녀의 팔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귀여운 아기 고양이들 같았다.“엄마, 아빠는 언제 와요? 달이는 아빠가 보고 싶어요.”달이가 입을 삐죽 내밀며 투정을 부렸다.원래부터 두 아이는 성도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
두 아이는 망설임 없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당연히 아빠랑 같이 싸워야죠!”특히 원이는 귀여운 얼굴에 그렇지 못한 성숙한 표정으로 어른 못지않게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아이는 손으로 턱을 괴더니 작전을 세우기 시작했다.“아니면 엄마는 달이랑 여기 있어요. 일단 내가 해안시로 가서 상황을 보고 올게요. 그래서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면 내가 해결할게요.”“엄마, 그럼 우리 오빠한테 맡겨요. 오빠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은 없으니까!”원이를 보는 달이의 눈이 반짝거리며 빛이 났다. 그러고는 성도윤을 깎아내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아빠는 겉모습만 번지르르하지 약해 빠졌어. 엄마 손까지 빌려야 한다니, 쯧쯧. 역시 오빠가 제일 대단해!”원이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성도윤을 한심하게 여겼다.“내가 진작 말했잖아. 이 집은 나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고.”“...”차설아는 가끔 자신이 낳은 아이들이 진정 아이들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 때가 있다. 이들은 어른들을 성가시고 챙겨줘야 할 존재로 인식하는 것 같다.차설아는 자신의 태교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닌지 참으로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두 아이에게 당부했다.“너희들 엄마 말 말들어. 엄마도 사실은 너희들과 같은 생각이야. 이대로 있는 것보다 아빠와 같이 싸우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 하지만 적들이 너무 교활하고 잔인해서 아빠한테는 엄마 혼자 갈 거야. 너희들은 이곳에서 엄마랑 아빠를 기다리고 있어. 그게 도와주는 거야. 알겠어?”“알겠어요, 엄마! 그렇게 할게요!”달이는 알겠다고 했지만 원이는 눈썹을 찡그리며 계속 같이 가겠다고 했다. 차설아 혼자 보내는 게 어지간히도 눈에 밟히는 듯싶다.하지만 차설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니, 이번은 타협의 여지가 없어. 너희는 엄마랑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이곳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면 안 돼. 만약 엄마 말을 안 들으면 혼내줄 거야!”차설아는 엄한 표정을 지으며 원이를 가리켰다.“특히 원이 너, 절대 허튼짓하지
서태원은 소영금을 한바탕 욕한 뒤, 서은아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 서은아는 물에 빠져서 의식을 잃고 쇼크 상태가 이어졌다가 다시 회복했다. 하지만 며칠 동안 입원하면서 계속 지켜봐야 했다.“아빠, 어떻게 되었어요? 아주머니는 뭐라고 하시던가요? 이제는 도윤이를 만날 수 있는 거예요?”서은아는 서태원이 오기 전까지 병실에서 안절부절못하면서 손을 덜덜 떨었다. 서은아가 입원한 뒤부터 매일 서태원한테 울면서 성도윤을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서은아는 서태원의 힘을 빌려 성도윤의 마음을 얻고 싶었다.“이제는 만날 수 없을 거야. 성씨 가문과의 협력은 더 이상 없어! 진작에 그래야 했는데 말이야.”서태원은 팔짱을 낀 채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사실 서태원은 예전부터 성씨 가문을 완전히 끊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서은아의 체면을 생각해서 지금까지 꾹 참았던 것이다.앞으로 성씨 가문을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뭐, 뭐라고요? 가서 성도윤을 만나게 해달라고 빌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성씨 가문과의 협력을 중지하면 어떡하냐고요!”“은아야, 정신 좀 차려. 성도윤을 비롯한 성씨 가문 사람들은 서씨 가문을 업신여겼어. 무시당하면서 그 가문과 혼약을 맺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야. 서씨 가문의 사업 규모가 성씨 가문보다는 작아도 괜찮아. 혼약을 파기하면서 성씨 가문은 해안시의 웃음거리가 될 테니 말이야. 그동안 너 때문에 참았었는데 이제는 끊어내는 게 맞아. 우리 가문이 왜 성씨 가문의 시종처럼 끌려다녀야 해? 너는 평생 그렇게 살고 싶어?”서씨 가문은 이 혼약을 위해 굽신거리면서 부르면 달려가는 강아지 노릇을 했다. 서태원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기에 불만이 아주 많았다.그러면서 성씨 가문에 악감정이 생겼고 성씨 가문이 파산하길 바랐다.“아빠, 나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다른 남자를 마음에 담은 적이 없어요. 내가 제일 사랑하는 남자는 성도윤뿐이라고요. 도윤이랑 겨우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성씨 가문과의 협력을 중지하면 나는 어쩌라고요? 내
진무열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서 물었다.“나는 괜찮아. 이 바닥에 저런 미친놈이 한둘이야? 하도 봐서 이제는 신경 쓰지도 않아.”소영금은 흩어진 머리를 정리했고 우아한 사모님의 자태를 뽐냈다. 미친개가 달려들면 같이 물어뜯지만 해결한 후에는 여전히 해안시 4대 미인 중 한 명으로서 품위를 유지했다.“서씨 가문이 처음부터 다른 마음을 먹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우리 가문과 혼약을 맺기 위해 막대한 투자금을 선뜻 내놓았지만 이제는 두 아이가 결혼할 수 없다는 걸 알았던 거지. 그래서 발을 빼는 것도 이해할 수 있어. 이제라도 발을 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소영금은 서태원 때문에 화난 것보다 성도윤을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다.“도윤이가 성대 그룹의 자금에 대해서 말한 적 없었어? 분명 턱없이 부족했을 텐데 말이야.”성도윤은 2년 동안 성대 그룹의 투자 영역을 몇 배 넓혔다. 투자금이 몇십 배 더 늘어났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수익이 아주 적었다.그리고 많은 일이 벌어지면서 경쟁자들의 실력이 늘었고 회사 경영은 점점 힘들어졌다.“자금이 부족하긴 해요. 성대 그룹에서 맡았던 프로젝트가 갑자기 줄어들면서 다른 경쟁자들한테 시장을 빼앗겼어요. 대표님은 인공지능 영역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어 하지만 신흥산업이라 연구개발 비용만 해도 몇억, 몇십억이 필요해요. 하지만 다른 사업의 수익은 계속 줄어드니 경영이 어려워진 상태예요.”진무열은 성도윤의 유능한 오른팔로서 성대 그룹의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영역을 계속 확장한 바람에 관리가 힘들어졌고 자금이 부족해서 언제든지 파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성도윤은 소영금이 걱정할까 봐 회사의 상황을 비밀에 부쳤다.“그동안 도윤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나도 잘 알아. 게다가 감정 문제마저 도윤이를 힘들게 하니 기댈 곳도 없이 혼자서 버텼겠지. 불쌍한 우리 도윤이를 어쩌면 좋아...”소영금은 울먹이면서 말했다.성도현이 살아있었을 때, 성도윤은 그저 관심이 있는 영역만 책임지면서 편하게 지냈었다.“내가
서태원의 말을 들은 소영금은 원이가 더 마음에 들었다. 원이의 성격은 차설아와 소영금을 닮아서 똑똑하고 과감했다. 성도윤처럼 답답한 성격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나중에 원이가 성대 그룹을 이어받는 것이 소영금의 소원이었다.원이는 성도윤보다 훨씬 멋진 어른으로 자라서 성대 그룹을 이끌 것이다.“지, 지금 말 다 했어요? 우리 은아가 당신 손주 때문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고요.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났는데 웃음이 나와요?”서태원은 소영금을 궁지로 몰고 나서 성도윤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할 생각이었다.하지만 소영금은 미안한 기색이 하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대놓고 비웃으면서 서태원의 심기를 건드렸다.소영금은 콧방귀를 뀌고는 말했다.“이렇게 웃긴 상황에 울어야 하나요? 성인이 5살 된 어린아이한테 당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그래요.”소영금은 서태원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가면서 진지하게 말했다.“그리고 내 손주가 어떤 아이인지는 내가 제일 잘 알아요. 누군가가 위협하지 않는 이상, 절대 아무 이유 없이 먼저 다른 사람을 공격할 아이가 아니에요. 당신 딸이 왜 내 손주한테 밀려서 호수에 빠졌는지 직접 물어보세요. 알지도 못하면서 피해자인 척하지 말고요.”“소영금 씨! 지금 말 다 했어요?”서태원은 소영금을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씩씩거렸다.“예전부터 당신 같은 여자랑 결혼하고 싶었던 내가 더 우스워요. 당신은 생각보다 더 미친 여자였군요. 우리 은아가 성도윤한테 간이고 쓸개고 다 바쳤지만 결국 이렇게 버려졌네요.”“아무도 당신 딸을 버린 적 없어요. 만약 억울하다면 알아서 다른 남자를 찾으라고 전하세요. 도윤의 곁에 계속 남아있다는 건 얻을 게 있다는 뜻이겠죠.”소영금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이제는 서씨 가문이 안중에도 없다는 거네요. 오늘부터 우리 서씨 가문과 성씨 가문의 협력은 여기까지예요. 혼약대로 결혼할 수 없다면 원수 사이로 지내는 게 맞아요!”서태원은 독기 서린 눈으로 소영금을 바라보았다.사실 서태원은 진작에 다른 계획이 있었다. 그러
성씨 가문은 여전히 해안시 8대 가문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었다. 서씨 가문이 아무리 사업을 발전시켜서 막대한 부를 얻었다고 해도 성씨 가문에 밉보이면 안 되었다.“이렇게 소란을 피우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요.”소영금은 차갑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태원 씨, 한밤중에 부하들을 데리고 온 건 나를 겁주기 위함이 아니었어요? 갑자기 불쌍한 척하는 건 태원 씨답지 않아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우리 은아가 자꾸 도윤이를 보고 싶어 해서 그러죠. 두 가문에서 혼담이 오가고 결혼 날짜까지 정해서 청첩장을 돌렸는데... 은아는 도윤의 약혼녀잖아요. 적어도 은아는 도윤이를 만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은아가 도윤이를 얼마나 걱정하고 그리워하는지 아세요?”서태원은 차분하게 말했지만 솟구쳐 오르는 화를 참기 위해 주먹을 꽉 잡았다.“그건 그렇지만 예전과 상황이 달라요. 은아가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나 보죠? 은아는 도윤이가 수술받지 못하게 하려고 주치의를 죽이려고 했어요! 그런데 은아가 기어코 수술을 받은 도윤이를 만나면 심정이 어떻겠어요? 도윤이한테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아냐고요.”소영금은 서태원의 체면이 구겨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 앞에서 서은아의 만행을 떠들어댔다.반년 동안 서은아가 성도윤을 정성껏 보살피고 사랑해 주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소영금은 서은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없었다.이대로 아무 일 없이 잘 지낸다면 두 가문의 혼약대로 결혼하게 할 생각이었다.서은아와 성도윤은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란 친구였기에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었다. 두 가문의 실력 차이도 크지 않았으니 이 혼약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거래였다.그러나 고분고분 말을 듣던 서은아는 아무도 모르게 음험한 짓을 저지르고 다녔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소영금은 더 이상 서은아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그런 일이 있었다고요? 우리 은아가 그럴 리 없어요. 무슨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조금 더 조사해 보는 게 어
소영금은 손을 내저으면서 성도윤의 말을 끊어버렸다.“됐어! 수술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애한테 내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엄마가 생각이 짧았어.”소영금은 성도윤이 어떤 대답을 할지 알고 있었다. 성도윤이 무슨 말을 하든 차설아가 받아주지 않는다면 소용없었다.“만약 너랑 차설아의 사주가 상극이라서 걱정이 된다면 당장 사주를 봐준 사람을 찾아갈게. 그분이라면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는 기운을 없애줄 수 있을 거야.”소영금의 말에 진무열이 엄지손가락을 척 내밀면서 말했다.“역시 모성애는 위대해요. 너무 멋지세요.”진무열은 성도윤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대표님, 아무 생각 말고 푹 쉬세요. 차설아 씨에 관한 일이든 회사 일이든 저희가 해결할게요. 대표님한테 가장 중요한 건 얼른 낫는 거예요.”이때 보디가드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와서 다급히 말했다.“저... 말씀을 나누는 중에 죄송하지만 보고할 것이 있어서요. 나오시면 따로 보고드릴게요.”소영금은 미간을 찌푸린 채 보디가드를 노려보고는 성도윤을 향해 말했다.“도윤아, 먼저 쉬고 있어. 무슨 일이기에 호들갑을 떠는지 직접 나가봐야겠어.”보디가드는 소영금이 병실을 나서자마자 재빨리 보고했다.“서씨 가문에서 부하들을 모아 이곳으로 왔어요. 병실 앞까지 오겠다는 걸 겨우 말렸더니 사모님과 대표님이 직접 해명하라면서 협박했고요. 사모님이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서씨 가문이라고?”소영금은 별생각 없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당장 한 대 칠 기세였고 씩씩대면서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란 환자들과 의사는 멀찍이 떨어져서 지나갔고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영금 씨, 드디어 나를 만나주러 내려왔군요. 계속 내려오지 않으면 병실을 쳐들어갈 생각이었거든요.”인파속에서 씩씩대던 서태원은 소영금을 보자마자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왔다.“태원 씨, 여기까지 와서 소란을 피우는 건 선을 넘은 거 아닌가요? 도윤이가 수술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온 거예요?”소영금도
소영금은 기쁜 마음을 감추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네. 기억났어요...”성도윤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정확히 말하면 행복한 기억만 떠올랐어요. 슬프고 아팠던 기억은 흐릿해져서 잘 생각나지 않아요.”불행한 기억은 흐릿해진 것이 아니라 성도윤이 잊으려고 애쓰는 것이었다.성도윤과 차설아는 많은 일을 함께 겪었다. 행복한 추억, 잔인한 장면과 복잡한 기억이 머릿속에 축적되면서 과부하가 되었다.그래서 성도윤은 스스로 슬프고 아팠던 기억을 잊고 행복한 기억만 간직하려고 했다.“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소영금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성도윤이 자극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물어보지 않으려 했지만 원이를 만나게 되어 기뻤던 소영금은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소영금은 성도윤이 차설아의 마음을 얻게 되면 매일 원이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성도윤은 차분하게 대답했다.“그게 무슨 말이야? 설마 차설아랑 화해할 마음이 없다는 뜻은 아니지? 네 아이가 다른 남자를 아빠라고 부르는 걸 지켜만 볼 셈이야? 너는 원래 정이 없어서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나는 절대 용납할 수 없어!”소영금은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성도윤은 아버지처럼 어설프고 여자의 마음을 하나도 몰랐다. 적극적으로 다가가지도 않고 시간만 끌면서 여자를 괴롭혔다.‘도윤이가 나의 성격을 조금이라도 닮았다면 진작에 차설아랑 화해하고 셋째, 넷째까지 낳았을 거야. 차설아가 그동안 먼저 다가와 주었으니 이제는 도윤이가 나설 차례인데 어쩌려고 그러는지...’“대표님이 차설아 씨와 화해하고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세요?”곁에 있던 진무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당연한 걸 왜 물어?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는데 그것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잖아.”소영금은 팔짱을 끼면서 당당하게 말했다.“하지만 예전에 차설아 씨와 대표님의 사주가 상극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두 분이 함께 있으면 불행한 일만 생긴다면서 엮이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진무열은 계
성도윤의 말을 들은 원이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어린아이 특유의 순진함은 숨길 수가 없었다.“약속대로 꼭 와야 해요. 저랑 엄마를 보러 오지 않으면 또 100점을 깎을 거예요.”“걱정하지 마. 이제부터 아빠는 너랑 한 약속을 지킬 거야. 이리 와, 손가락 걸고 약속하자.”성도윤도 웃으면서 손가락을 내밀었다.“흥! 손가락 걸고 약속하는 건 어린아이들이 하는 짓이거든요? 정말 유치해서 못 봐주겠어요.”원이는 입을 삐죽 내밀면서 투덜거렸지만 재빨리 달려가서 성도윤의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었다.“이렇게 손가락을 걸고 약속한 다음에 손바닥을 이마에 대면 도장을 찍는 거예요.”원이는 환하게 웃으면서 손바닥을 이마에 갖다 댔다. 민이 이모는 원이를 데리고 병원을 나섰다. 그 뒤로 소영금이 따라오면서 말했다.“벌써 가시는 거예요? 조금 더 얘기를 나누다가 가시지 그래요. 원이는 아빠랑 잘 얘기했어? 원이를 기억해 냈대?”소영금은 어렵게 만난 원이를 돌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일초라도 더 눈에 담고 싶어서 두 사람의 뒤를 계속 따라왔다.“네! 그래서 1점을 주기로 했어요.”원이는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사실 소영금과 같이 있은 시간이 많지 않아서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게다가 차설아의 편에 서면서 소영금과 성도윤을 전부 적이라고 생각했었다.소영금과 성도윤이 차설아를 괴롭혔기에 점수를 많이 깎였고 점수를 더하려면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정말 다행이야. 너한테 말하지 않았지만 네 아빠는 예전부터 아팠었어. 그래서 너랑 네 엄마를 잊은 것이니 네 아빠를 탓하지 말아 주렴. 네 아빠를 용서해 줄 수 있겠어?”소영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성도윤과 원이가 잘 지내게 되면 소영금은 앞으로 원이를 더 자주 볼 수 있었고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용서할지 말지는 제가 정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 엄마가 용서한다고 하면 저도 생각해 볼게요. 그리고 마이너스 99점에서 점수를 더 깎을지 아니면 더할지는 그분이 알아서 할 거예요.”원이는 팔짱을 낀 채 시
사실 성도윤은 차설아가 성진과 데이트를 하느라 원이와 영상통화를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이가 직접 찾아와서 도움을 청했기에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이 기회를 빌려 차설아와 성진 사이를 훼방하고 싶었다.진무열은 재빨리 부하들을 모았고 성진의 별장으로 떠날 채비를 마쳤다.“흠... 비록 나쁜 남자이긴 하지만 이럴 때는 또 든든하네요. 참 잘했어요.”원이는 성도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내밀면서 말을 이었다.“원래 마이너스 100점이었는데 오늘 도움을 받았으니 1점 더해줄게요. 그럼 현재 점수는 마이너스 99점이고요. 100점이 되는 날에 엄마랑 만나서 화해하게 해줄 테니 힘내세요.”성도윤과 진무열은 원이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진무열이 먼저 입을 열었다.“원이 도련님, 그러면 두 분이 언제 화해하겠어요? 이러다가는 서로 다른 짝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까 봐 겁나지도 않으세요?”“만약 이것도 못 한다면 인연이 아닌 거예요. 사랑한다는 것도 전부 거짓말이겠죠. 인연이 아닌 사람이라면 떠나가도 상관없어요.”원이는 덤덤하게 대답했다.“맞아요.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죠.”진무열은 성도윤을 힐끗 쳐다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대표님, 분발하셔야겠어요. 199점이나 모으려면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잖아요. 힘내세요!”성도윤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괜찮아. 남아도는 게 시간이니 천천히 모아봐야지.”성도윤은 남은 생의 모든 시간을 동원해서 원이의 마음을 얻고 차설아를 품에 안을 것이다. 부하들이 성진의 별장으로 가려고 할 때, 민이 이모가 병원으로 찾아왔다. 보디가드가 나서서 막았지만 복도에 있던 소영금이 직접 데리고 들어왔다.“원이 도련님, 정말 혼자 여기까지 왔군요...”민이 이모는 원이를 보고서야 한숨을 돌렸다. 원이는 깜짝 놀라더니 물었다.“제가 여기에 있는 건 어떻게 아시고 온 건가요? 설마 달이가 알려줬어요? 하지만 저는 달이한테 이곳으로 온다고 말한 적이 없는걸요.”“원이 도련님의 엄마가 직접 알아낸 거예요. 그
원이는 진지한 표정을 하고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엄마가 지금 위험한 상황에 처한 게 분명해요. 영상통화는 받지 못하고 전화만 받을 수 있어요. 누군가가 엄마를 납치했을 거예요. 납치 지점은 이미 알아냈지만 저는 어린아이라서 엄마를 구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능력 있는 부하들을 모아 달라고 부탁하러 온 거예요.”원이는 또박또박 말했다.“뭐라고? 설아가 납치당했다는 말이야?”성도윤의 표정이 삽시에 굳어졌다. 마지막으로 차설아의 위치를 확인했을 때는 성진이 지내는 별장이었다.그때는 차설아와 성진의 데이트 현장을 염탐하는 것 같아서 민망했는데 알고 보니 생각했던 것과 사뭇 달랐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성도윤은 차설아가 원이와 영상통화도 하지 못하는 것을 수상하게 여겼다.“멍때리지 말고 도와줄 건지 말 건지 결정해 주세요. 도와주지 않겠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어차피 경찰에 신고하면 되니까요.”원이는 시크하게 말했지만 사실 성도윤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경찰에 신고한다고 해도 당장 차설아를 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어린아이가 찾은 증거를 경찰 측에서 쉽게 믿지 않아서 장난으로 간주하고 사건을 조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차설아의 상황을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아빠랑 같이 가자.”성도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했다.“아니요! 아직 다 낫지도 않았으니 누워계세요. 그저 싸움을 잘하고 똑똑한 부하들을 모아주면 돼요. 만약 같이 가게 되면 엄마를 구하기도 전에 쓰러질까 봐 그래요.”원이는 성도윤을 도로 눕히면서 진지하게 말했다.“그, 그래...”성도윤이 수술받은 뒤, 상처가 단번에 아물지 않았기에 자칫하다가 피를 흘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회복 기간에 무리했다가는 의식을 영영 잃을 것이다.성도윤은 차설아가 걱정되어서 미칠 것 같았지만 경거망동해서는 안 되었다.“진무열!”성도윤은 병실 밖을 향해 높은 소리로 외쳤다. 목소리에 분노와 슬픔이 배어있었다.진무열은 재빨리 문을 열고 들어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