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그건 바로 우리 아빠였다.아빠는 나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급히 달려와 나를 꽉 껴안았다.“정말 다행이야, 연정아. 네가 무사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안 그랬으면 내가 어떻게 했을지 모르겠다.”따뜻한 품에 안기니 마음이 한결 놓였지만 의문이 들어 물었다.“아빠, 어떻게 내가 여기 있는 걸 아셨어요?”아빠는 부드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네가 떠난 후에야 나도 허인아가 기밀을 훔쳤다는 걸 알아냈어. 그리고 차고에 있던 차가 없어진 걸 보고 네가 혼자 찾아갔을 거라고 짐작한 거야.”“너 정말, 네 안전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구나.”아빠의 말을 들으니 조금 미안했지만 내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아빠가 허인아한테 정이 좀 남아 있는 것 같아서요. 아빠가 마음 약해질까 봐 걱정됐어요.”내 말에 아빠는 갑자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마치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이상함을 느낀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빠, 엄마랑 결혼반지 허인아한테 주신 거 아니에요? 허인아가 그걸 자랑까지 했었는데요.”내 말이 끝나자 아빠는 갑자기 분노로 얼굴이 붉어졌다.아빠는 옆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는 허인아를 노려보며 말했다.“그건 내가 준 게 아니야. 며칠 전부터 반지가 없어진 걸로 내가 얼마나 속이 탔는데. 그걸 훔쳐간 게 너였어?!”이제야 진실이 밝혀졌다.그리고 아빠는 허인아를 더 이상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아빠는 허인아와 그녀의 가족을 법정에 바로 세웠다.허인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도 드러났다.그녀는 임신한 적이 전혀 없었다.모든 진단서는 아빠를 속이기 위해 조작된 것이었다.그리고 아빠와 관계를 가진 유일한 날도 그녀가 고의로 약을 써서 만들어낸 일이었다.결국 허인아는 여러 가지 죄목으로 감옥에서 평생을 보내게 되었고, 그녀의 가족도 범행을 공모하고 나를 해치려 한 죄로 함께 감옥에 갔다.이제야 그들의 악행에 마땅한 대가가 내려졌다.
아빠가 보내준 생활비를 받은 건 내가 운동장에서 룸메이트들과 함께 외식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 집은 형편이 꽤 괜찮아서 매달 받는 생활비도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게다가 나는 학생회 일로 늘 바빠서 평소 룸메이트들에게 여러 번 식사를 대신 사오게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기꺼이 한턱내기로 했고, 룸메이트들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우리가 한창 즐겁게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화려한 옷차림의 한 여자가 기세등등하게 내 앞에 서더니 내 휴대폰을 단번에 빼앗아 갔다. 그 여자는 휴대폰을 뒤적거리며 갑자기 손가락질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내가 알았어! 임정봉이 나 몰래 밖에서 여자를 하나 키우고 있었던 거야. 말해봐, 너 그 남자한테서 얼마나 뜯어냈어?”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 커서 운동장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멈춰서 이쪽을 보기 시작했다. 나도 그녀의 말을 듣고 눈살을 깊게 찌푸렸다. 임정봉, 바로 내 아빠였다. 며칠 전, 아빠는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연정아, 걱정하지 마. 아빠가 너를 위해 새엄마를 찾았는데 정말 성격이 따뜻하시고 좋은 분이야. 그냥 집안일 도와주는 친근한 아줌마라고 생각하면 돼.” 하지만 아빠가 그렇게 칭찬했던 사람이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독설적인 여자가 맞을 리 없었다. 나는 바로 입을 열어 변명했다. “오해십니다, 임정봉은 제 아빠...” 하지만 내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그녀는 손을 들어 내 뺨을 세게 내려쳤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나는 그 자리에서 얼굴이 불끈 부어올랐고, 몇 걸음 물러서다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눈앞의 여자는 더욱 일그러진 표정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이년아, 후원받는 게 그렇게 자랑스러워?”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몇 걸음 다가오더니 내 머리카락을 잡아채며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끌고 가며 보여줬다. 그러면서 소리쳤다. “여러분, 보세요! 이 학교 우수생이라는 애가 사실 유부남을 유혹하는 불륜
다시 눈을 떴을 때 눈앞에는 새하얀 천장이 펼쳐져 있었다. 온몸이 극심한 통증에 휩싸였고, 얼굴에는 산소마스크가 씌워져 있었다. 내가 깨어난 것을 보고, 얼마 동안이나 지키고 있었는지 모를 간호사가 곧바로 문밖으로 외쳤다. “환자 보호자 어디 계세요? 환자가 깨어났어요!” 내가 기절한 후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걸 알았다. 아빠가 날 병원에 데려온 줄 알고 가슴이 설레며 문쪽을 바라봤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내 피를 얼어붙게 만든 바로 그 여자였다. 바로 새엄마였다. 그녀는 간호사를 몇 마디로 돌려보낸 뒤 나를 한참 동안 노려보더니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정말 임정봉의 딸이었네.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 나 곧 네 새엄마가 될 사람이야. 네 아빠 대신 혼쭐 좀 낸 거라 생각해.” “너 같은 여자애가 뭐 하러 생활비가 그렇게 많이 필요해? 어차피 시집갈 건데.” 그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나는 반박할 기운조차 없었다. 몸을 간신히 일으키며 그녀에게 물었다. “아빠는요? 지금 어디 계세요?” 어릴 때부터 나를 아끼고 사랑하던 아빠는 내가 감기에 걸려도 걱정이 태산이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병원에 실려왔는데도 안 보였다. 내 말에 새엄마는 비웃으며 대답했다. “왜, 네 아빠한테 일러바치려고? 내가 학교에 간다고 말했더니 날 믿고 맡겼어. 지금쯤 출장 중일 거야.” 그 순간 간호사가 다시 병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내 몸의 심각한 상처를 보며 미간을 찌푸리더니 새엄마를 향해 물었다. “아이 몸이 왜 이렇게 됐죠? 누가 때린 건가요? 이렇게 심하게 맞았는데 경찰에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다시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새엄마가 먼저 대답했다. “어머, 부끄럽지만 이 아이가 학교에서 공부는 안 하고 유부남이랑 바람을 피워서 그 아내한테 맞았어요. 정말 창피해서 경찰에 신고할 생각도 없어요.” 그녀의 황당한 거짓말에 간
새엄마는 병원의 소독약 냄새가 싫다며 오래 머물지도 않고 떠났다. 떠나기 전, 내 모든 통신 기기를 빼앗아갔다. 아마 아빠에게 전화로 이라도 할까 봐 걱정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병원에서 통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사실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호출 버튼을 눌렀고, 간호사가 곧 전화를 가져다줬다. 그리고 외울 정도로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아빠...나 병원에 있어요.” 벨이 몇 번 울린 뒤, 차가운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 뒤로는 회의 중인 듯한 웅성거림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결국 떨리는 목소리로 병원에 있다는 말만 겨우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아빠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를 본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떨리는 손으로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연정아...누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니. 아빠가 반드시 그 사람을 찾아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그 순간 병실 문이 또 한 번 열렸다. 들어온 사람은 바로 새엄마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구석으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녀는 태연하게 아빠를 보며 오히려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내가 연정을 잘 돌볼 수 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회의 중에 왜 왔어요?” 아빠의 얼굴에 잠시 짙은 분노가 스쳐갔다. 하지만 그는 겨우 참으며 물었다. “허인아, 네가 연정을 잘 돌볼 수 있다더니, 이렇게 큰일이 났는데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 허인아는 여전히 애교 섞인 목소리로 아빠에게 매달렸다. 내게는 단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마치 내가 진실을 말할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했다. 결국 아빠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차갑게 말했다. “내가 듣기로는 누가 내 딸을 삼이라고 헐뜯어서 이런 일을 당했다는데, 지금 당장 그 사람을 찾을 거야.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 거라고!” 이 말을 들은
우리 모두가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을 보자 허인아는 다시 한번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아직 불러오지 않은 배를 손으로 감싸며 아빠에게 말했다.“원래는 말할 생각도 없었는데, 아는 분께 부탁해서 알아봤어요. 아들이래요. 이제 임씨 가문 대도 끊어지지 않을 거예요.”그 말을 듣자 나는 본능적으로 얼굴을 찌푸렸다.그리고 무심코 아빠를 바라봤다.아빠는 잠시 동안 침묵했지만, 곧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지워. 그 아이는 난 인정하지 않을 거야.”이번에는 허인아가 멍해졌다.한참을 그렇게 있더니 목소리가 한껏 높아지며 날카롭게 외쳤다.“무슨 소리야! 임정봉, 책임질 생각 없어?”아빠는 고개를 단호히 저으며 진지하게 말했다.“너와 결혼한 건 연정이가 엄마의 사랑이 그리울까 봐서였어. 그런데 네가 내 아이를 해쳐? 그런 널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허인아는 화가 나서 얼굴이 일그러졌다.그녀는 내 병상으로 다가와 손을 들어 나를 때리려 했다.나는 겁에 질려 눈을 꼭 감았다.하지만 이번에는 아빠가 그녀의 공격을 단번에 막아냈다.아빠는 주저하지 않고 허인아의 뺨을 세게 때렸다.그녀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야 했다.그렇게 완벽했던 그녀의 하얗고 매끈한 얼굴은 단번에 부어올라 나와 똑같아졌다.허인아는 잠시 동안 멍해 있더니 곧 울음을 터뜨렸다.그녀의 울음소리는 병실 밖 복도를 지나던 간호사와 환자들까지 멈춰 서서 쳐다보게 만들 정도로 컸다.하지만 아무도 나서서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마치 그때의 나처럼 말이다.아빠는 그녀를 바라보며 냉담하게 말했다.“연정을 다치게 한 건 내가 무조건 따질 거야. 이따가 회계팀에 가서 급여를 정산받고,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 그리고 아이 문제는 네가 알아서 해. 나는 절대 너랑 결혼하지 않을 거니까.”그 말을 끝으로 아빠는 더 이상 그녀의 소란에 귀 기울이지 않고 휴대폰을 꺼내 내 병원을 옮길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십여 분 만에 나는 좁고 답답했던 병실에서 최고급 VIP 병실로 옮겨졌다.심지어 최첨단
다행히 병원에서 최고의 치료를 받으면서 내 상처도 점점 나아졌다.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아무리 집안 형편이 좋아도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건 내 성격에 맞지 않았다.학업을 마치기 위해 나는 다시 학교로 복귀했다.내가 무사히 돌아오자 그동안 휴대폰으로 내 안부를 걱정하며 연락을 주고받던 룸메이트들도 한숨 돌리는 모습이었다.일상은 허인아를 만나기 전처럼 평온하게 흘러가는 듯했다.그런데 어느 날, 운동장에서 익숙한 얼굴이 다시 보였다.허인아였다.그녀도 나를 발견하더니 주저 없이 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순간 놀라서 도망가려고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허인아는 내 앞에 서 있었다.룸메이트들은 즉시 경계하며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다.모두 그녀가 또 무슨 문제를 일으킬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허인아는 느닷없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눈물과 콧물을 범벅으로 하며 울부짖기 시작했다.“임연정, 나도 잘못한 건 인정해. 근데 나를 왜 이렇게까지 몰아세우는데.”허인아의 말에 주변의 학생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다.일부는 이전에 내가 공개적으로 맞았던 사건의 주인공임을 알아보고 수군대기 시작했다.나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져서 허인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허인아는 자기 말을 이어갔다.“알아, 내가 전에 너랑 네 아빠의 관계를 오해했어. 하지만 나도 네 아빠의 아이를 가졌잖아. 그랬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고.”“그런데 네가 그 이유만으로 나를 회사에서 잘리게 했잖아!”“우리 부모님은 나이가 많고, 백수인 동생도 하나 있어. 게다가 내 뱃속에 아이까지 있는데 이 일자리가 없으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제발, 나 좀 살려줘. 무릎 꿇고 빌 테니까 한 번만 봐줘.”그러더니 허인아는 머리를 바닥에 찧기 시작했다.금세 이마에서 피가 흐르며 얼굴은 더 비참한 모습이 됐다.그 모습에 몇몇은 동정을 표하기 시작했다.사람들은 나를 가리키며 수군대기 시작했다.“나이에 비
학교 측의 말에 순간 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억지로 분노를 삼키고 차분하게 말했다.“이번 일은 애초에 제 잘못이 아닙니다. 지난번에도 교내 관리 소홀로 외부인이 들어와서 제가 맞는 일이 생겼잖아요.”내 말에 학교 측은 별다른 신경도 안 쓰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그건 이미 치료가 끝난 일이잖아. 게다가 이번 사건은 학교 명예와도 관련된 문제인데, 우리가 임산부를 곤란하게 하면서 사과를 요구할 순 없지 않겠니?”그 말은 나한테 사과하라는 뜻이었다.학교 측의 태도를 보니 더 이상 이들과 논쟁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나는 아무 말 없이 사무실을 나섰다.문을 나서자마자 아빠가 기다리고 있었다.날 보자 아빠는 피곤한 얼굴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쉬었다.“연정아, 허인아가 또 널 찾아왔어? 난 허인아가 일자리 못 구하면 고향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아빠의 말에 나는 냉소적인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아빠, 사람 마음의 악랄함을 너무 쉽게 본 거예요.”내 말에 아빠는 죄책감을 느낀 듯 고개를 깊이 숙였다.하지만 그는 끝까지 이 일을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의 도움을 거절했다.아빠가 나서면 분명 일이 깔끔하게 마무리될 수 있다.하지만 그렇게 되면 학교에서 내 평판은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이 문제는 내가 직접 해결해야 한다.내 결심을 들은 아빠는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연정아, 넌 정말 많이 컸구나. 아빠가 미안해. 바쁘다는 핑계로 너와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못했어.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연차를 내서 우리 여행 다녀오자.”이번엔 고개를 끄덕이며 아빠의 말을 조용히 받아들였다.아빠가 돌아간 후 나는 허인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신호가 울리기 무섭게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어머, 이게 누구야? 우리 임연정 아가씨 아니야? 아까는 경비까지 불러서 날 내쫓더니, 이번엔 왜 이렇게 다정하게 전화까지 줬을까?”허인아의 비아냥거리는 말투를 듣고 있자니 불쾌했지만 불필요한 말로 그녀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교내에서도 너한테 빨리 이 일을 해결하라고 했어. 안 그러면 강제로 나한테 사과하게 할 거라더라.”“내 말 듣고 네 아빠한테나 잘 말해. 그러면 우리가 한 가족으로 남을 수도 있어. 안 그러면 네가 사과하더라도 난 쉽게 용서하지 않을 거야.”그녀의 허황된 말을 듣고 나는 거의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도대체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자기가 지금도 우리 집안과 맞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어이없었다.내가 이 모든 걸 참아준 건 단지 그녀와 아빠 사이에 정말 뭔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일이 너무 보기 흉해지지 않게 마무리하고 싶었을 뿐이다.하지만 그녀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더 이상 봐줄 필요도 없다.나는 더 이상 그녀와 말다툼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가방을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하지만 내 이런 행동에 허인아가 급하게 반응했다.그녀는 내 팔을 꽉 붙잡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어딜 가려고 해? 설마 사과 안 하겠다는 거야?”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그녀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참아왔던 분노를 억누르며 그녀를 향해 말했다.“내가 왜 너한테 사과해야 돼? 나를 그렇게 때려놓고, 이제 와서 도덕적으로 압박하려고? 정말 역겹다.”그렇게 말하고는 허인아가 놀라기 전에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이런 사람과 더 얽히고 싶지 않았다.그날 밤, 나는 집안의 권한을 바로 사용해 인터넷 상에서 나와 관련된 모든 화제를 전부 삭제했다.심지어 회사에서 학교에 직접 개입하도록 만들었다.그제야 학교 측은 내가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았다.태도를 싹 바꾼 그들은 나에게 공손히 사과했다.나는 이제야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다.학교 안에서의 소문은 완전히 잠재울 수 없더라도 최소한 내 앞에서는 누구도 쉽게 떠들지 못할 거라고 믿었다.그렇다면 더 이상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허인아는 모든 걸 포기한 듯 막무가내로 나섰다.그녀는 어디선가 유명한 인터넷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그건 바로 우리 아빠였다.아빠는 나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급히 달려와 나를 꽉 껴안았다.“정말 다행이야, 연정아. 네가 무사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안 그랬으면 내가 어떻게 했을지 모르겠다.”따뜻한 품에 안기니 마음이 한결 놓였지만 의문이 들어 물었다.“아빠, 어떻게 내가 여기 있는 걸 아셨어요?”아빠는 부드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네가 떠난 후에야 나도 허인아가 기밀을 훔쳤다는 걸 알아냈어. 그리고 차고에 있던 차가 없어진 걸 보고 네가 혼자 찾아갔을 거라고 짐작한 거야.”“너 정말, 네 안전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구나.”아빠의 말을 들으니 조금 미안했지만 내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아빠가 허인아한테 정이 좀 남아 있는 것 같아서요. 아빠가 마음 약해질까 봐 걱정됐어요.”내 말에 아빠는 갑자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마치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이상함을 느낀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빠, 엄마랑 결혼반지 허인아한테 주신 거 아니에요? 허인아가 그걸 자랑까지 했었는데요.”내 말이 끝나자 아빠는 갑자기 분노로 얼굴이 붉어졌다.아빠는 옆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는 허인아를 노려보며 말했다.“그건 내가 준 게 아니야. 며칠 전부터 반지가 없어진 걸로 내가 얼마나 속이 탔는데. 그걸 훔쳐간 게 너였어?!”이제야 진실이 밝혀졌다.그리고 아빠는 허인아를 더 이상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아빠는 허인아와 그녀의 가족을 법정에 바로 세웠다.허인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도 드러났다.그녀는 임신한 적이 전혀 없었다.모든 진단서는 아빠를 속이기 위해 조작된 것이었다.그리고 아빠와 관계를 가진 유일한 날도 그녀가 고의로 약을 써서 만들어낸 일이었다.결국 허인아는 여러 가지 죄목으로 감옥에서 평생을 보내게 되었고, 그녀의 가족도 범행을 공모하고 나를 해치려 한 죄로 함께 감옥에 갔다.이제야 그들의 악행에 마땅한 대가가 내려졌다.
다행히 내가 전공한 학과가 경영학이라 회사 업무를 처리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문제는 최근 퇴사한 직원이 회사의 중요한 자료를 빼돌려 발생한 것이었다.그런데 최근 퇴사한 사람은 허인아뿐이었다.아버지를 살짝 바라보며 복잡한 심정에 잠겼다.그러나 이 사실을 알리지 않기로 하고, 혼자 차를 몰아 그녀를 찾아 나섰다.기자회견 사건 이후 허인아는 이 도시에서 완전히 설 자리를 잃었다.큰 회사는 물론, 슈퍼마켓 아르바이트조차 그녀를 고용하려 하지 않았다.결국 허인아는 시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나는 직원 기록에서 그녀의 주소를 찾아냈다.그리고 직접 운전해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문에 다다르기도 전에 안에서 허인아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아빠! 엄마! 제발 때리지 마요. 제가 임정봉 회사의 기밀을 가져왔어요! 곧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요!”그 말을 듣고 나는 망설임 없이 문을 밀어 열었다.안으로 들어가자 허인아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온몸엔 상처투성이였다.옷은 너덜너덜하고 그녀의 초라한 모습은 처음 만났을 때의 화려함과는 전혀 달랐다.그녀 옆에는 젊어 보이는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가 맞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내가 들어오자 방 안의 모든 사람이 잠시 얼어붙었다.그중 가장 먼저 반응한 건 허인아였다.그녀는 미친 듯이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나에게 달려들었다.“너 이년이 여기 왜 온 거야!”하지만 허인아는 오랫동안 굶주린 데다 매까지 맞아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나는 이미 대비하고 있었기에 그녀의 공격을 쉽게 피할 수 있었다.나는 허인아를 차갑게 노려보며 담담히 말했다.“허인아, 회사 기밀을 훔치는 건 범죄라는 걸 알고 있어?”내 말에 그녀는 잠깐 몸이 굳었다. 그러나 곧 태연한 척하며 반박했다.“뭐? 도둑질이라니, 무슨 소리야. 난 전혀 모르겠는데!”이때 방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마침내 상황을 파악한 듯했다.허인아의 부모는 나를 향해 미간을 찌푸리
비서의 도움으로 기자회견은 빠르게 생방송으로 진행되었다.내가 카메라 앞에 나타나자마자 휴대폰에 동기화된 생방송 화면에 각종 댓글이 쏟아졌다.[어떻게 이런 상황에 나타날 수가 있지? 정말 뻔뻔하다.][이번에도 권력을 이용해서 여론을 조작하려고? 절대 자본에 굴복하지 않을 거야!][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는데 하는 짓은 정말 못됐다.]나는 더 이상 댓글을 보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안녕하세요. 저는 임연정입니다. 최근 인터넷에서 논란이 된 사건의 당사자이기도 하죠.”“오늘 기자회견을 연 이유는, 저희 회사가 허인아 씨를 해고한 것이 근거 없는 조치가 아님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허인아 씨는 과거에 저를 폭행한 적이 있습니다.”내 말이 끝나자마자 회장은 잠시 조용해졌고, 곧이어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한 기자가 마이크를 내 입가로 바짝 들이밀며 날카롭게 물었다.“임연정 씨, 허인아 씨가 당신을 폭행했다는 증거가 있나요?”그 질문에 모든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었다.물론 운동장에서 그녀에게 맞았던 당시의 CCTV는 명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하지만 다행히도 허인아가 나를 때릴 때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 중 몇몇은 사건을 촬영했다.그리고 약간의 비용만 들이면 증거를 확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 영상을 대형 스크린에 투사했다.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생방송을 시청하던 이들은 허인아가 나를 잔인하게 폭행하고 모욕하는 과정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그제야 사람들은 나를 향한 경멸의 눈빛을 동정으로 바꿨다.하지만 여전히 한 기자는 물러서지 않고 질문을 이어갔다.“하지만 허인아 씨는 이 일로 직장을 잃었고, 지금은 당신 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입니다. 왜 용서해주지 않으시는 건가요?”그 질문에 나는 웃음을 더 크게 지었다.그리고 주머니에서 녹음기를 꺼냈다.이 녹음기는 허인아와 만났던 날 사용했던 것이었다.그날 내가 그녀에게 사과의 기회를 어떻게 줬는지, 그리고 허인아가 그
“교내에서도 너한테 빨리 이 일을 해결하라고 했어. 안 그러면 강제로 나한테 사과하게 할 거라더라.”“내 말 듣고 네 아빠한테나 잘 말해. 그러면 우리가 한 가족으로 남을 수도 있어. 안 그러면 네가 사과하더라도 난 쉽게 용서하지 않을 거야.”그녀의 허황된 말을 듣고 나는 거의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도대체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자기가 지금도 우리 집안과 맞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어이없었다.내가 이 모든 걸 참아준 건 단지 그녀와 아빠 사이에 정말 뭔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일이 너무 보기 흉해지지 않게 마무리하고 싶었을 뿐이다.하지만 그녀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더 이상 봐줄 필요도 없다.나는 더 이상 그녀와 말다툼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가방을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하지만 내 이런 행동에 허인아가 급하게 반응했다.그녀는 내 팔을 꽉 붙잡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어딜 가려고 해? 설마 사과 안 하겠다는 거야?”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그녀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참아왔던 분노를 억누르며 그녀를 향해 말했다.“내가 왜 너한테 사과해야 돼? 나를 그렇게 때려놓고, 이제 와서 도덕적으로 압박하려고? 정말 역겹다.”그렇게 말하고는 허인아가 놀라기 전에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이런 사람과 더 얽히고 싶지 않았다.그날 밤, 나는 집안의 권한을 바로 사용해 인터넷 상에서 나와 관련된 모든 화제를 전부 삭제했다.심지어 회사에서 학교에 직접 개입하도록 만들었다.그제야 학교 측은 내가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았다.태도를 싹 바꾼 그들은 나에게 공손히 사과했다.나는 이제야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다.학교 안에서의 소문은 완전히 잠재울 수 없더라도 최소한 내 앞에서는 누구도 쉽게 떠들지 못할 거라고 믿었다.그렇다면 더 이상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허인아는 모든 걸 포기한 듯 막무가내로 나섰다.그녀는 어디선가 유명한 인터넷
학교 측의 말에 순간 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억지로 분노를 삼키고 차분하게 말했다.“이번 일은 애초에 제 잘못이 아닙니다. 지난번에도 교내 관리 소홀로 외부인이 들어와서 제가 맞는 일이 생겼잖아요.”내 말에 학교 측은 별다른 신경도 안 쓰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그건 이미 치료가 끝난 일이잖아. 게다가 이번 사건은 학교 명예와도 관련된 문제인데, 우리가 임산부를 곤란하게 하면서 사과를 요구할 순 없지 않겠니?”그 말은 나한테 사과하라는 뜻이었다.학교 측의 태도를 보니 더 이상 이들과 논쟁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나는 아무 말 없이 사무실을 나섰다.문을 나서자마자 아빠가 기다리고 있었다.날 보자 아빠는 피곤한 얼굴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쉬었다.“연정아, 허인아가 또 널 찾아왔어? 난 허인아가 일자리 못 구하면 고향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아빠의 말에 나는 냉소적인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아빠, 사람 마음의 악랄함을 너무 쉽게 본 거예요.”내 말에 아빠는 죄책감을 느낀 듯 고개를 깊이 숙였다.하지만 그는 끝까지 이 일을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의 도움을 거절했다.아빠가 나서면 분명 일이 깔끔하게 마무리될 수 있다.하지만 그렇게 되면 학교에서 내 평판은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이 문제는 내가 직접 해결해야 한다.내 결심을 들은 아빠는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연정아, 넌 정말 많이 컸구나. 아빠가 미안해. 바쁘다는 핑계로 너와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못했어.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연차를 내서 우리 여행 다녀오자.”이번엔 고개를 끄덕이며 아빠의 말을 조용히 받아들였다.아빠가 돌아간 후 나는 허인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신호가 울리기 무섭게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어머, 이게 누구야? 우리 임연정 아가씨 아니야? 아까는 경비까지 불러서 날 내쫓더니, 이번엔 왜 이렇게 다정하게 전화까지 줬을까?”허인아의 비아냥거리는 말투를 듣고 있자니 불쾌했지만 불필요한 말로 그녀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병원에서 최고의 치료를 받으면서 내 상처도 점점 나아졌다.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아무리 집안 형편이 좋아도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건 내 성격에 맞지 않았다.학업을 마치기 위해 나는 다시 학교로 복귀했다.내가 무사히 돌아오자 그동안 휴대폰으로 내 안부를 걱정하며 연락을 주고받던 룸메이트들도 한숨 돌리는 모습이었다.일상은 허인아를 만나기 전처럼 평온하게 흘러가는 듯했다.그런데 어느 날, 운동장에서 익숙한 얼굴이 다시 보였다.허인아였다.그녀도 나를 발견하더니 주저 없이 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순간 놀라서 도망가려고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허인아는 내 앞에 서 있었다.룸메이트들은 즉시 경계하며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다.모두 그녀가 또 무슨 문제를 일으킬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허인아는 느닷없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눈물과 콧물을 범벅으로 하며 울부짖기 시작했다.“임연정, 나도 잘못한 건 인정해. 근데 나를 왜 이렇게까지 몰아세우는데.”허인아의 말에 주변의 학생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다.일부는 이전에 내가 공개적으로 맞았던 사건의 주인공임을 알아보고 수군대기 시작했다.나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져서 허인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허인아는 자기 말을 이어갔다.“알아, 내가 전에 너랑 네 아빠의 관계를 오해했어. 하지만 나도 네 아빠의 아이를 가졌잖아. 그랬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고.”“그런데 네가 그 이유만으로 나를 회사에서 잘리게 했잖아!”“우리 부모님은 나이가 많고, 백수인 동생도 하나 있어. 게다가 내 뱃속에 아이까지 있는데 이 일자리가 없으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제발, 나 좀 살려줘. 무릎 꿇고 빌 테니까 한 번만 봐줘.”그러더니 허인아는 머리를 바닥에 찧기 시작했다.금세 이마에서 피가 흐르며 얼굴은 더 비참한 모습이 됐다.그 모습에 몇몇은 동정을 표하기 시작했다.사람들은 나를 가리키며 수군대기 시작했다.“나이에 비
우리 모두가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을 보자 허인아는 다시 한번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아직 불러오지 않은 배를 손으로 감싸며 아빠에게 말했다.“원래는 말할 생각도 없었는데, 아는 분께 부탁해서 알아봤어요. 아들이래요. 이제 임씨 가문 대도 끊어지지 않을 거예요.”그 말을 듣자 나는 본능적으로 얼굴을 찌푸렸다.그리고 무심코 아빠를 바라봤다.아빠는 잠시 동안 침묵했지만, 곧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지워. 그 아이는 난 인정하지 않을 거야.”이번에는 허인아가 멍해졌다.한참을 그렇게 있더니 목소리가 한껏 높아지며 날카롭게 외쳤다.“무슨 소리야! 임정봉, 책임질 생각 없어?”아빠는 고개를 단호히 저으며 진지하게 말했다.“너와 결혼한 건 연정이가 엄마의 사랑이 그리울까 봐서였어. 그런데 네가 내 아이를 해쳐? 그런 널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허인아는 화가 나서 얼굴이 일그러졌다.그녀는 내 병상으로 다가와 손을 들어 나를 때리려 했다.나는 겁에 질려 눈을 꼭 감았다.하지만 이번에는 아빠가 그녀의 공격을 단번에 막아냈다.아빠는 주저하지 않고 허인아의 뺨을 세게 때렸다.그녀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야 했다.그렇게 완벽했던 그녀의 하얗고 매끈한 얼굴은 단번에 부어올라 나와 똑같아졌다.허인아는 잠시 동안 멍해 있더니 곧 울음을 터뜨렸다.그녀의 울음소리는 병실 밖 복도를 지나던 간호사와 환자들까지 멈춰 서서 쳐다보게 만들 정도로 컸다.하지만 아무도 나서서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마치 그때의 나처럼 말이다.아빠는 그녀를 바라보며 냉담하게 말했다.“연정을 다치게 한 건 내가 무조건 따질 거야. 이따가 회계팀에 가서 급여를 정산받고,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 그리고 아이 문제는 네가 알아서 해. 나는 절대 너랑 결혼하지 않을 거니까.”그 말을 끝으로 아빠는 더 이상 그녀의 소란에 귀 기울이지 않고 휴대폰을 꺼내 내 병원을 옮길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십여 분 만에 나는 좁고 답답했던 병실에서 최고급 VIP 병실로 옮겨졌다.심지어 최첨단
새엄마는 병원의 소독약 냄새가 싫다며 오래 머물지도 않고 떠났다. 떠나기 전, 내 모든 통신 기기를 빼앗아갔다. 아마 아빠에게 전화로 이라도 할까 봐 걱정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병원에서 통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사실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호출 버튼을 눌렀고, 간호사가 곧 전화를 가져다줬다. 그리고 외울 정도로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아빠...나 병원에 있어요.” 벨이 몇 번 울린 뒤, 차가운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 뒤로는 회의 중인 듯한 웅성거림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결국 떨리는 목소리로 병원에 있다는 말만 겨우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아빠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를 본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떨리는 손으로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연정아...누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니. 아빠가 반드시 그 사람을 찾아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그 순간 병실 문이 또 한 번 열렸다. 들어온 사람은 바로 새엄마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구석으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녀는 태연하게 아빠를 보며 오히려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내가 연정을 잘 돌볼 수 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회의 중에 왜 왔어요?” 아빠의 얼굴에 잠시 짙은 분노가 스쳐갔다. 하지만 그는 겨우 참으며 물었다. “허인아, 네가 연정을 잘 돌볼 수 있다더니, 이렇게 큰일이 났는데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 허인아는 여전히 애교 섞인 목소리로 아빠에게 매달렸다. 내게는 단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마치 내가 진실을 말할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했다. 결국 아빠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차갑게 말했다. “내가 듣기로는 누가 내 딸을 삼이라고 헐뜯어서 이런 일을 당했다는데, 지금 당장 그 사람을 찾을 거야.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 거라고!” 이 말을 들은
다시 눈을 떴을 때 눈앞에는 새하얀 천장이 펼쳐져 있었다. 온몸이 극심한 통증에 휩싸였고, 얼굴에는 산소마스크가 씌워져 있었다. 내가 깨어난 것을 보고, 얼마 동안이나 지키고 있었는지 모를 간호사가 곧바로 문밖으로 외쳤다. “환자 보호자 어디 계세요? 환자가 깨어났어요!” 내가 기절한 후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걸 알았다. 아빠가 날 병원에 데려온 줄 알고 가슴이 설레며 문쪽을 바라봤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내 피를 얼어붙게 만든 바로 그 여자였다. 바로 새엄마였다. 그녀는 간호사를 몇 마디로 돌려보낸 뒤 나를 한참 동안 노려보더니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정말 임정봉의 딸이었네.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 나 곧 네 새엄마가 될 사람이야. 네 아빠 대신 혼쭐 좀 낸 거라 생각해.” “너 같은 여자애가 뭐 하러 생활비가 그렇게 많이 필요해? 어차피 시집갈 건데.” 그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나는 반박할 기운조차 없었다. 몸을 간신히 일으키며 그녀에게 물었다. “아빠는요? 지금 어디 계세요?” 어릴 때부터 나를 아끼고 사랑하던 아빠는 내가 감기에 걸려도 걱정이 태산이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병원에 실려왔는데도 안 보였다. 내 말에 새엄마는 비웃으며 대답했다. “왜, 네 아빠한테 일러바치려고? 내가 학교에 간다고 말했더니 날 믿고 맡겼어. 지금쯤 출장 중일 거야.” 그 순간 간호사가 다시 병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내 몸의 심각한 상처를 보며 미간을 찌푸리더니 새엄마를 향해 물었다. “아이 몸이 왜 이렇게 됐죠? 누가 때린 건가요? 이렇게 심하게 맞았는데 경찰에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다시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새엄마가 먼저 대답했다. “어머, 부끄럽지만 이 아이가 학교에서 공부는 안 하고 유부남이랑 바람을 피워서 그 아내한테 맞았어요. 정말 창피해서 경찰에 신고할 생각도 없어요.” 그녀의 황당한 거짓말에 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