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서는 그저 조용히 송민준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강한서는 일이 이렇게 커진 상황을 송병천이 전혀 눈치 채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송민준이 송병천에게 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지 않는 이유가 그것만은 아닐 것이라 여겼다. 송민준은 어쩌면 살인범을 아내로 들인 송병천을 조금쯤은 원망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젯밤 송병천은 강한서에게 전화를 했었다. 그는 별다른 말없이 요즘 많이 바쁘냐며 안부를 물었다. 현진이도, 민준이도 바쁜 탓에 함께 식사를 한지도 오래 된 것 같다며 말이다. 그 말을 꺼내는 송병천의 목소리에는 쓸쓸함이 가득했다. 강한서가 차분하게 송병천에게 설명했다. “현진이는 요즘 대회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어요. 형님도 열이 계약 해지 문제 때문에 바쁘시고요.”그러자 송병천은 더는 말이 없었다. 전화를 끊기 직전 송병천이 강한서에게 물었다. “아직도 네 어머니와 연락해?”송민준에게서 송병천의 과거를 듣지 못했던 그때의 강한서는 그저 송병천이 자신이 아직도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신미정에게 선을 긋지 못해 또다시 한현진에게 상처를 줄까 걱정되어 묻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지금 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집에서 지내고 계세요. 매달 생활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만 생활비를 드리고 있어요. 법적인 부양의 의무만 책임지고 있을 뿐 다른 건 없어요.”더 신경 쓸 것도, 더 할 말도 없었다. 신미정이 신제품 발표회에서 그의 등에 칼을 꽂으며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끝이 났다. 모자간의 감정이 깊지 않으니 강한서도 더 이상 그 정에 집착할 이유가 없었다. 이젠 그에게도 아이가 생겼다. 강한서는 신미정보다는 더 좋은 부모가 될 것이라 다짐했다. 강한서가 신미정에게 해줄 수 있는 법적으로 정해진 부양의 의무를 다하는 것뿐이었다. 송병천이 또다시 물었다. “만약 형수님이 병으로 몸 져 누우면, 그땐 용서할 거니?”잠시 생각하던 강한서가 대답했다. “치료에 필요한 비용 말고는 더 해줄 수 있는게 없어요. 제가 받은 것
마음을 굳게 먹은 한현진이 결연한 눈빛으로 말했다. “내가 결혼 해줄게.” 말하며 강한서에게 달려간 한현진이 그를 침대에 눕혔다. 박력 있는 한현진의 모습에 놀란 강한서가 조심스레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막 입을 열어 한현진에게 핀잔을 주려는데 그녀가 입을 맞추어 강한서 입을 막았다.한현진은 한 손으로 강한서의 턱을 추켜올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의 어깨를 침대에 꾹 눌렀다. 눈을 감고 강한서와 뜨거운 입맞춤을 나누는 한현진의 스킬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의 스킨십이라 강한서는 여전히 쉽게도 한현진의 유혹에 넘어왔다. 귓불이 빨갛게 달아오른 강한서가 꿀꺽 침을 삼켰다. 목덜미 역시 열이 올라 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강한서는 뜨겁고도 직접적으로 한현진의 키스에 응답했다. 그에 다리가 풀린 한현진은 얼마 못가 나른하게 강한서의 품에 쓰러졌다. 가파른 호흡을 내쉬며 몸을 돌려 한현진을 아래에 가둔 강한서가 다시 뜨겁게 입 맞췄다. 눈을 감은 채 강한서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던 한현진이 손을 뻗어 그의 벨트를 풀려던 그때, 강한서가 그녀의 손을 꾹 누르며 행동을 멈추게 했다. 피식 웃은 강한서의 호흡은 여전히 흐트러져 있었다. 그는 자신의 코끝으로 부드럽게 한현진의 코끝을 비비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얼마나 결혼하고 싶은지 알겠어.”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한현진이 큼, 목을 가다듬으며 말간 얼굴로 강한서를 쳐다보더니 나지막이 물었다. “그럼 계속 할래?”강한서는 대답 대신 손을 뻗어 한현진의 눈을 막았다. “그렇게 보지마. 나 네 유혹에 그렇게 강하지 않아.”지난번을 떠올린 한현진의 귓불에 은근히 열이 올랐다. 그녀는 용기내 강한서를 떠보았다. “아니면 내가 손이라도 빌려줄까?”강한서: ...강한서가 쑥스러워 차마 대답을 못하는 거라 한현진이 생각할 때쯤 변태 같은 남자가 대답했다. “다리도 괜찮아.”잠시 침묵하던 한현진이 강한서를 침대 아래로 뻥 차버렸다. 침대 옆 바닥에 앉은 강한서가 한쪽 다리를 굽히고 이마를
미간을 찌푸린 강한서가 손을 뻗어 막 잠이 들려는 한현진을 깨웠다. “현진아, 자지 말고 일단 일어나봐.”너무 피곤한 탓에 눈도 뜨고 싶지 않았던 한현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왜?”강한서가 나지막이 말했다. “내 내연녀가 나한테 문자를 보냈어. 목걸이가 예쁘냐고 묻는데 뭐라고 답장해야 돼?”한현진이 가늘게 실눈을 뜨고 대답했다. “봐봐.”강한서가 휴대폰을 건네고 사진을 확인한 한현진이 눈을 치켜 올렸다. 한참이나 말이 없는 한현진을 보며 강한서가 나지막이 물었다. “뭐라고 답장해야 해?”한현진이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네 눈엔 예뻐?”강한서가 말했다.“그냥 그런 것 같아. 목걸이가 거기서 거기잖아. 내가 얼마 전에 샀던 그 목걸이랑 비슷한 것 같아. 예쁘지도 않고 안 예쁘지도 않아.”강한서가 잠시 멈칫 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래도 네가 하면 예쁠 것 같아.”강한서는 퍽 고민인 듯 입을 열었다. “예쁘다는 칭찬은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아. 그렇다고 아예 별로라고 얘기할 수도 없잖아. 그건 내가 지금까지 송가람에게 보여줬던 이미지와는 안 맞는 것 같아.”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한현진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난 골에 대해 묻는 거야.”강한서: ?“골이라니?”한현진이 손을 들어 자신이 가슴을 들어 올렸다. 잠옷 아래 섹시하게 모인 가슴골을 본 강한서의 귀가 순간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한현진이 송가람이 보내준 사진을 다시 보여주자 강한서는 그제야 사진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곧바로 결백을 주장했다. “난 안 봤어! 난 전혀 눈치 채지 못 했었다고. 난 그냥 목걸이만 본거야. 오해하지 마.”강하서를 힐끔 쳐다본 한현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가람 동생이 일부러 찍어서 보여준 건데 목걸이만 보면 어떡해? 그건 송가람의 성의를 무시하는 거지.”미간을 찌푸린 강한서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나한테 목걸이 예쁘냐고 물었잖아.”흥, 콧방귀를 낀 한현진은 송가람이 보낸 사진 속 얼굴을 자
한현진: ...한현진이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본론이나 얘기해.”강한서는 여전히 한현진이 오래 전부터 자신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기쁨에 빠져있었다. “현진아, 네가 내 프러포즈를 받아줬을 때 조금은 좋아하고 있던 거지.”한현진이 말했다. “일단 이것부터...”강한서: “언제부터 좋아한 거야?”한현진: “그러니까 일단 이것부터 해결...”강한서는 한현진의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우리가 맞선 봤을 때? 아니면 교통사고를 당했던 그날 날 잡으며 오빠라고 불렀을 때? 그것도 아니면...”“강한서!”한현진이 베개로 잘생긴 얼굴을 내려치며 이를 갈았다. “계속 그렇게 사랑에 눈이 먼 인간처럼 행동하면 그 눈을 파서 삶아 먹어버릴 거야!”강한서: ...“송가람이 전에도 너한테 이런 사진 보냈었어?”강한서의 불만은 사뿐히 무시한 채 한현진이 얘기를 계속했다. 잠시 고민하던 강한서가 말했다. “보냈겠지.”사실 그는 송가람이 문자에 신경을 쓴 적이 없었다. 한현진은 강한서의 휴대폰을 가져가 [루비 판매자]와의 대화창을 확인했다. 그러자 한현진은 송가람은 두 사람의 이혼 후부터 이런 사진을 보내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었다. 바로 강한서가 한현진을 꼬시느라 여념이 없던 바로 그때였다. 가끔은 치마를, 또 가끔은 자신의 목걸이나 팔찌 사진을 강한서에게 보냈었다. 사진을 전송한 이유의 대부분은 파티에 어울릴만한 착장인지를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송가람의 사진 구도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였다. 하나는 조금 전처럼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는 깊은 V 넥의 목걸이 사진이거나 옆트임이 있는 치마 사진이었다. 팔찌를 찍을 때도 송가람은 손을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우아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송가람의 문자를 확인하지 않았던 강한서는 한현진이 찾은 사진을 보며 충격에 빠졌다. “이렇게 많아?”매달 한, 두 번 정도의 주기로 보낸 사진은 사실 그리 많은 것도 아니었다. 아마도 냉랭한 강한서의 태도 탓에 이제껏 조신한 척 연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송가람이 강한서에게 보낸 칭찬과 존경이 담긴 문자를 보며 한현진은 순간 오래 전 일을 떠올렸다. 대학생 시절의 일이었다. 한현진과 같은 숙소에서 생활하던 룸메이트와 그녀의 남자친구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온 친구이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며 연인으로 발전한 두 사람이었지만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갈 때쯤 남자는 다른 여자와 바람을 폈다. 당시 한현진을 포함한 기숙사의 다른 룸메이트들은 함께 남자를 쓰레기라며 욕해줬었다. 남자친구의 바람을 도무지 인정할 수 없었던 룸메이트는 굳이 자신이 어떤 여자에게 진 건지 확인을 하겠다며 나섰다. 그 여자를 만난 룸메이트는 그 현실을 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누가 봐도 그 여자는 한현진의 룸메이트보다 예쁜 것도 아니었고 몸매가 좋은 것도 그렇다고 학력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 어떤 면에서도 자신보다 못한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겨 몇 년의 정을 저버릴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현진의 룸메이트는 예의가 바르던 여자였다. 그녀는 모두가 다 알도록 일을 키우며 서로에게 좋을 것 하나 없는 이별을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만 남자친구가 자신과의 관계를 배신하게 한 그 여자의 매력이 무엇인지 알고 싶을 뿐이었다. 룸메이트는 그 여자를 카페로 불렀고 몇 마디 할 새도 없이 남자친구 카페로 찾아왔다. 그는 심지어 아무 것도 묻지 않은 채 왜 죄 없는 애를 괴롭히냐며 할 얘기가 있으면 뭐든 자기에게 하라며 룸메이트에게 따졌다. 죽고 못 산다던 커플도 이별 앞에서는 미움만이 가득했다. 남자를 말리는 여자는 선을 지키지 못한 자기 탓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오해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여자는 그 자리에서 더는 남자와 연락하지 않겠다며 당장이라도 연락처를 지울 것처럼 굴었다. 그날 한현진은 룸메이트를 따라 그 현장에 있었다. 그 남자는 룸메이트가 보는 앞에서 그 여자를 끌어안고 말했다. “내가 먼저 널 좋아한 거야. 잘못이 있다면 나에게 있어.”그는 마치 영웅처럼 여자의 손을 꼭 잡고
게다가 그 여자는 남자 앞에서 적당히 고개를 숙일 줄 알았고 또 작은 일도 남자에게 부탁하기를 좋아했다. 병뚜껑을 따달라고 한다거나, 생수를 들어달라고 한다거나, 비 오는 날 여자가 건네는 우산은 거절한 채 굳이 남자와 함께 우산을 쓰려고 한다거나, 그러면서 일부러 스킨십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거나...채팅 내용이 공개된 후 사람들은 하나둘 여자친구가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남자와 연락을 주고받는 여자의 행실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그 여자와 썸을 타고 있던 남자들도 하나둘 연락처를 삭제했다. 동기들 사이에 소문이 퍼지자 더는 견디지 못하던 여자는 결국 휴학을 신청했다. 남자는 그 여자에게 뒤통수를 맞고 나서야 조강지처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 자신이 그 여자에게 넘어간 것은 한현진의 룸메이트가 너무 이성적이라 자신에게 의지하지도, 숭배하는 말투로 칭찬하지도 않아 좌절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그러다 자신에게 칭찬도 해주고 의지하는 사람을 만나니 잠깐 한눈을 팔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남자의 가스라이팅에 룸메이트는 하마터면 깜빡 속아 넘어갈 뻔 했다. ‘꽃뱀 같던 계집애가 천하의 나쁜 X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천하의 나쁜 X는 여자가 조금씩 선을 넘도록 지켜본 이 쓰레기 같은 놈이네.’룸메이트의 전 남자친구는 현명하고 독립적이며 쿨한 성격에 자신의 발목을 잡지 않을 여자를 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남자로써의 알량한 자존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여자의 추앙과 숭배를 받기를 바랐다. 룸메이트는 남자와 바람을 피웠었고 또 대나무 숲에 여자의 개인 정보를 누설한 사실을 그가 곧 입사할 회사에 고발했다. 그러자 회사 측에서는 곧바로 남자의 입사 자격을 취소했다. 남자는 결국 대기업엔 입사하지 못한 채 이름 없는 소기업에서 일을 시작해야 했다. 잠자코 기회를 노리며 살다 다시 대기업 면접을 보려던 남자는 또다시 꽃뱀에게 낚이고 말았다. 그 탓에 남자는 업무 중 큰 실수를 저질
아침 여섯 시가 되어서야 눈을 뜬 강한서가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휴대폰 화면을 켜자 백 개도 넘는 카톡 알람이 떠 있었다. 몇 개의 업무 관련 카톡을 제외하면 전부 한성우가 보낸 문자였다. 의아한 마음을 품고 강한서는 한성우의 문자를 확인했다. 마지막 문자는 30분 전에 보낸 것이었다. [6시야. 아직도 안 일어난 거야? 그렇게 오래 자면 죽어.]강한서가 스크롤을 위로 올렸다. [5시 40분이야. 난 아직도 기다리고 있고.][답장 좀 해. 네가 답장을 안 하면 난 어떻게 자라고!][제발 제발 제발...]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강한서가 대화창을 계속 위로 올린 그는 드디어 한성우가 새벽 3시에 보낸 문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성우: [헤이, 브로. 내 친구가, 그러니까... 넌 모르는 앤데, 걔 와이프가 나한테 눈치를 주더라고. 그거 있잖아. 그... 날 좀 좋아하는 것 같아. 미리 얘기하는데 난 전혀 그런 마음 없어. 난 우리 도둑이밖에 없어.][남은 인생 동안 절대 다른 사람한테 그런 마음을 품을 리가 없을 거야. 게다가 그 사람은 친구 와이프잖아. 내가 지금 고민인 건 어떻게 그 친구한테 걔 와이프가 날 좋아한다는 사실을 은근히 전하냐는 거야.]강한서가 대화창을 내렸다.[일어나서 문자 보면 답장해 줘. 나한테 정말 중요한 문제야.][아니, 너 평소엔 계속 야근했잖아.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잠든 거야?][내가 특별히 잘 챙겨준 적도 없는데 왜 날 좋아하게 된 거지?][내가 매력이 넘친다는 거 나도 알아. 하지만 내 친구도 외모로는 꿀리지 않아. 그냥 나보다 좀 떨어지는 정도랄까?][설마 두 사람 싸운 건 아니겠지? 그래서 날 이용하는 걸까? 그림자처럼 떨어질 줄 모르던 두 사람이 그렇게 쉽게 마음이 변할 리가 없잖아.][하지만 만약 진심으로 날 좋아하는 거면 어떡해? 예쁘게 생기긴 했지만 절대 내 스타일은 아니야. 젠장. 머리 아파 죽을 것 같아. 나 어떡하냐. 얼른 일어나서 아이디어 좀 내 봐!]막 잠에서
‘내 재혼을 저 개자식이 얼마나 많이 방해했는데.’한현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유치하긴. 알겠어. 나중에 할게. 나도 미주한테 부모님 만난 거 어떻게 됐는지 물어보려고 했어. 나한테 얘기해주지 않았거든.”한편, 강한서의 답장을 기다리던 한성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한창 단잠에 빠져 있던 그때, 누군가 그의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한성우의 귓가를 차미주의 목소리가 가득 메웠다. “개자식아, 일어나서 설명 좀 해 봐!”밤새 한숨도 못 잔 한성우는 머리가 천근만근처럼 느껴졌다. 상대방의 손을 잡아 행동을 멈추게 한 한성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만해. 자기야, 나 밤새 한숨도 못 잤어. 5분만 더.”조금 더 자려 끌어안는 한성우의 손을 차미주가 찰싹 쳐냈다. 한성우의 잠옷을 잡아당겨 침대에서 일으킨 차미주가 바득 이를 갈았다. “자긴 뭘 자! 오늘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평생 못 자게 될 줄 알아.”한성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래?”“네 생각엔 내가 왜 이러는 것 같아?”차미주가 눈에 독기를 품은 채 말했다. “너, 네 친구 누구 와이프랑 꽁냥거렸어? 언제부터야?”한성우: ?“뭐?”한성우는 순간 자신이 헛것을 들은 것이라 생각앴다. 차미주가 그런 한성우를 노려 보였다. “아직도 모른 척이야? 강한서가 문자까지 보냈어. 네가 밤새 문자를 주고받느라 설레서 밤새 잠도 못 잤다고!”한성우: ??그는 순간 불안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강한서 그 자식이 너한테 뭐라고 했어?”“강한서가 아니라 네가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건지, 그거부터 설명해야 하는 거 아냐? 대체 뭔데 네 죽마고우가 더는 못 봐주겠어서 나한테 알려주는 거냐고.”차미주는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강한서가 정의가 넘쳐서 다행이지, 아니면 내가 너한테 속아 눈이 밤탱이가 될 때까지 아무것도 모를 뻔했어.”“걔가 뭐가 정의가 넘쳐.”한성우가 바득 이를 갈았다. “그 자식이 너한테 MSG를 잔뜩 쳐서 말해준 거 아냐? 자기야. 강한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
홍혜림이 서해금에게 얘기를 꺼내려던 그때, 진윤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깐 실례할게요.”홍혜림이 곧바로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부축해줄게.”“네.”진윤이 대답했다. 진윤을 부축하며 병실을 나서는 홍혜림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고개를 돌려 성월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했죠?”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어요.”멈칫하던 성월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정말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러 오실까요?”서해금이 덤덤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분명 부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홍혜림은 지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저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아무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조향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OM향 협회의 투표로 승패가 결정돼요. 홍혜림은 OM향 협회의 오래된 회원이에요. 게다가 이번 조향 대회 열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홍혜림은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큰 도움을 준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거예요. 전 준비가 안 된 싸움은 시작하지 않아요.”피식 웃음을 흘린 서해금의 눈빛이 멸시로 가득했다. “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성월은 이토록 치밀한 서해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성빈의 친척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서해금의 모습에 성월은 그녀가 단지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해금이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마음에 빚을 진 홍혜림이 조향대회에서 관건적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서해금이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고 있으니 송가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성월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물었다. “대표님, 인터넷에서 진윤 씨에 관한 여론이 들끓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가면 걔들은 거짓말을 들킨 네가 양심에 찔려서 해외로 도피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진윤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걔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출국하면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할 텐데.”“그럼 너 평생 해외에만 있을 거야? 안 돌아올래?”입술을 달싹인 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집도, 가족도 전부 한주에 있으니 지금 당장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홍혜림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윤아, 사람의 명성이라는 게 한 번 나빠지면 다시 좋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해외로 도망쳐 이번 일을 지나보낸다고 해도 졸업하면 결국 여기 동기들과 다시 마주해야 한 텐데, 걔들이 널 보고도 옛날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 같아?”“다들 널 안 좋게 보고 있는 지금, 네가 끝까지 네 결백을 증명해야 나중에 걔들이 다시 이 얘기를 꺼내도 억울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결백을 뭐로 증명해요? CCTV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전 당당하다는 걸 아무도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요. 절 믿는 사람도 없다고요.”진윤이 잠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저 어떡해요?”홍혜림은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아무도 널 안 믿어도 엄마는 널 믿어. 네 아빠, 형 그리고 네 형수님도 널 믿어. 그러니까 아들, 괜찮아. 엄마가 있는 한 아무도 우리 아들 못 건드려. 엄마가 꼭 네가 정정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할게.”홍혜림이 말에 진윤이 대답하려던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진윤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홍혜림 역시 심호흡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자 보이는 의외의 인물에 홍혜림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해금이었다.서해금은 성월과 함께 진윤의 병실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 서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서해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