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주가 한성우를 노려보았다. “내가 혹시라도 갈대 같은 바람둥이에게 속을까 걱정해 주는 사람을 저주해? 왜? 다 들켜버리니까 창피해서 일부러 더 화내는 거야?”“걱정하긴 뭘 걱정해? 걘 걱정 따윈 하지 않아. 이건 내가 한 말이 아니라고. 그 개자식이 포토샵으로 거짓말하고 있는 거라니까.”한성우가 말하며 자기 휴대폰을 꺼내 강한서와의 대화창을 보여주었다. 억울함이 잔뜩 얼굴로 한성우가 말했다. “이거 봐. 좀 봐봐. 이게 원본이야. 젠장. 앞뒤 내용은 전부 지워서 너한테 오해할 만한 내용만 보여준 거라니까.”잔뜩 흥분한 채 열변을 토하는 한성우는 눈도 빨갛게 핏줄이 터져있었다. 이토록 억울함을 호소하는 한성우를 본 적이 없는 차미주는 순간 그의 말에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차미주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한성우의 대화창을 확인했다. 강한서가 보여준 대화 내용과는 확실히 다른 부분이 있었다. 강한서가 보낸 캡처본을 확대해 자세히 살펴보면 포토샵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사실을 확인한 차미주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말투로 물었다. “강한서는 왜 아무 이유 없이 널 괴롭히는 거야?”이제야 정신이 확 깬 한성우가 욕설을 중얼거렸다. “왜겠어? 질투가 나서 그러는 거겠지. 부러워서 견딜 수가 없을 거야. 6개월이나 걸려 형수님과 화해했으니 우리는 순조롭게 결혼 얘기가 오가는 걸 차마 눈 뜨고 지켜볼 수 없었겠지.”“역시 음흉한 자식이라니까. 남 좋은 꼴은 죽어도 못 보는 놈. 말미잘, 버러지 같은 새X.”차미주가 눈을 씰룩였다. ‘욕 참 찰지게 하네.’“그래서, 대체 누구 와이프가 너한테 꼬리 친 건데?”그 말에 한성우는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헛기침을 했다. “있어. 그런 친구.”차미주의 분노가 다시 들끓었다. “솔직하게 털어놓든, 헤어지든 둘 중 하나 선택해.”순간 주눅이 든 한성우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중얼거렸다. “네 친구.”“뭐?”입속에서 웅얼거리는 단어에 차미주는 전혀 알
차미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성우 앞으로 다가가 나지막이 말했다.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객관적으로 보면 강한서가 너보다 잘생기긴 했지만 나한텐 네가 강한서보다 훨씬 더 잘생겼어. 비교도 안 될 만큼.”저도 모르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꾹 참으며 한성우가 차미주를 힐끔 쳐다보았다. 목을 가다듬은 그가 입을 열었다. “어쩐지 네가 안목이 좋더라니까. 특히 남편을 고른 쪽으론 최고지.”차미주가 한성우의 품에 폭삭 안겼다. “한성우, 나 눈 뜨자마자 제일 먼저 본 게 강한서가 보낸 사진이야. 그래서 사진을 자세히 확인하지도 못했어. 너무 화가 나서 말을 심하게 한 거야... 미안해.”나지막이 한성우에게 사과를 건넨 차미주는 조금이라도 보상하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아직도 화가 안 풀렸으면 우리 싸우자. 절대 복수하지 않겠다고 맹세할게.”한성우가 차미주의 머리카락을 쓸며 장난스레 말했다. “파혼하고 싶어서 일부러 모함하려고 그러는 거지.”“아냐...”차미주의 어깨를 토닥인 한성우가 말했다. “이 일은 너 때문이 아냐. 잘못이 있다면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강한서, 그 개자식한테 있겠지. 나중에 꼭 갚아줄 거야.”차미주가 물었다. “어떻게 하려고? 그렇다고 때릴 순 없잖아.”한성우에게는 그럴 용기도 없었다. 한성우가 말했다. “만약 우리가 먼저 결혼하게 되면 축의금을 두둑이 받는 거야. 그리고 나중에 두 사람이 다시 결혼식을 올리면 우린 얄밉게 빈손으로 가서 호텔 뷔페만 맛있게 먹고 오는 거지.”차미주: ...“강한서가 그런 일로 화를 내긴 해?”‘강한서 재산이 얼만데 우리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씩 웃던 한성우가 차미주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걔가 화를 내든 말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내가 최대한 빨리 네 가족관계증명서에 이름을 올리고 싶다는 거지. 올리게 해줄 거야?”귓불이 빨갛게 달아오른 차미주가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반짝이는 눈으로 한성우를 바라보았다. “엄마가 한주에 오
한성우가 생각했다. ‘이렇게 태연하게 나에게 사진을 보내는 걸 보면 송가람의 수단에 충격받을 사람 같진 않아.’하지만 한성우는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그런 말은 내뱉어봐야 가정의 평화에 불화를 가져올 뿐이었다. 그와 한현진 중 차미주가 누굴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는 한성우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한성우는 상업 파티와 연예계에 몸담으며 수도 없이 많은 여우 같은 여자들을 봤었다. 그들의 수단은 전부 한성우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 야한 사진을 보내는 것은 하수들이 자주 이용하는 제일 원시적인 방법이었다. 성적인 매력으로 남자의 흥미를 돋우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니 송가람은 여우 중에서도 하수에 속한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강한서는 결혼하고나서야 성생활을 시작한 모태 솔로였다. 강한서는 애초부터 성욕이 많지 않은 데다 바른 청년의 삶을 사는 그에게 연애 중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돌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그 여자가 와이프와 원수지간이라면 더더욱 불가능했다. 송가람은 강한서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강한서는 송가람이 말하는 좋아한다라는 감정이 진심인 건지, 아니면 단순히 한현진에게서 그를 뺏으려는 욕심인 건지도 알지 못했다. 만약 진심으로 강한서를 좋아하는 거라고 해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강한서의 결혼 생활 내내 송가람은 그 어떤 마음의 표현도 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오히려 한현진의 신분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그때부터 강한서에게 점점 더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송가람은 강한서의 외모에 빠진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니 유학 시절엔 강한서와 비슷한 심씨 가문의 외동아들 심원과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며 강한서의 빈자리를 채웠던 것이다. 한성우는 남자든 여자든 또 다른 사람에게서 사랑하는 사람의 그림자를 찾는 것을 제일 멸시했다. 한성우에게 그런 건 사랑이라고 말할 자격도 없는 역겨운 행위에 불과했다. 심원은 요즘 또다시 집안에서 지정해 준 여자들과 맞선을 보고 있다고 했다. 아
한성우: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잇지 못하는 한성우의 모습에 차미주가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표정이 왜 그래? 내 다이어트를 도와주지 않을 생각이야?”“아니, 그게 아니라.”알 수 없는 표정을 짓던 한성우가 한참 만에야 말했다. “자기는 아직 자기를 잘 모르는 것 같아.”차미주가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한성우를 바라보았다. 이별을 막기 위해 한성우가 용기 내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속상해서 살이 빠지는 건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기 때문이잖아. 하지만 넌? 넌 속상하면 맛있는 걸 먹어서 보상받으려고 하잖아. 평소엔 족발 1인분만 먹던 애가 속상할 땐 2인분도 먹는데 살이 빠져?”차미주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화가 나서였다. 손을 뻗어 한성우를 꼬집은 차미주가 잔뜩 화난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지?”한성우가 차미주의 손등을 두드리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하늘에 맹세코 절대 아니야. 난 곧 죽어도 널 사랑하는 네 모습이 좋아. 그리고 내가 왜 너랑 헤어져. 다이어트 때문이라고 해도 안 돼.”차미주가 한성우를 노려보았다. “그럼 자꾸 날 데리고 맛집 탐방하러 다니지 마. 내가 다이어트하는 게 쉬운 줄 알아? 이 걸림돌 같은 인간아.”“미안해. 다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유혹하지 않을게. 내가 또 네 다이어트를 방해하면 올해는 일전 한 푼도 못 벌게 될 거라고 맹세할게.”한성우처럼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 이 정도의 맹세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진지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목을 가다듬은 차미주가 말했다. “그래. 일단은 믿어줄게. 아까 하던 얘기나 계속해. 네가 말한 그 방법, 가능하긴 한 거야?”한성우가 씩 웃었다. “가능한지 아닌지는 해보면 알게 되겠지.”말하며 한성우는 휴대폰을 꺼내 심근호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잠시 업무 관련 얘기를 나누던 한성우가 갑자기 화제를 돌려 심원에 관해 물었다. “심 대표님, 아드님 맞선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그 말에 심근호가 한숨을 내뱉었다. “
수화기 너머 들리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심근호가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한성우가 태연하게 티슈를 뽑아 차미주에게 건네며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녜요. 집 고양이가 감기에 걸리더니 투정을 좀 부려서요.”차미주가 찔린 얼굴로 티슈를 받아 한성우의 얼굴에 튄 물기를 닦아냈다. 그녀는 신들린 듯 내뱉는 한성우의 거짓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저 형제 많은 거 아시죠? 부모님께서 젊으셨을 때 돈을 버시느라 절 할아버지 댁에 맡겼었어요. 할아버지는 평범한 농민이셨고 글도 떼지 못한 분이셨어요. 제가 건강하게만 자라도 훌륭하게 컸다고 여기시는 분이셨죠.”“학원 같은 건 전혀 다닌 적도 없었어요. 수업이 끝나면 마음껏 뛰어놀았고 그렇게 12살이 되었어요. 그쯤 할아버지께서 몸이 안 좋으셔서 더 이상 저를 키워주실 수 없으셨고 그래서 부모님은 다시 절 한주에 데려오셨어요.”“농촌 마을에서 뛰어놀던 아이가 한주에 오니 여기 아이들과는 전혀 어울릴 수 없었어요. 장기자랑 대회가 있어서 선생님께서 개인기를 하나씩 준비해 오라고 하셨지만 제가 할 줄 아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외국인 교수님이 강의하시는 영어 수업은 전혀 알아듣지도 못했어요. 옷 브랜드의 진품과 짝퉁도 구분하지 못했고 심지어 가족들과 함께 참석한 파티에선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할 줄도 몰랐어요. 전 어디에서든 촌놈이라고 놀림 받았죠.”“그때의 전 자존감이 바닥을 쳤어요. 명절마다 가족들과 선물을 고르러 갈 때면 부모님께선 저에게 먼저 고르라고 하셨지만 전 차마 제 마음에 드는 걸 고르지도 못했어요. 늘 전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사교적으로 보여도 사실은 비슷한 상황을 자주 겪으며 적응하다 보니 그런 척, 하는 연기가 제법 는 것뿐이거든요. 절 완전히 바뀌게 한 건 실은 제 약혼녀예요.”멈칫, 행동을 멈춘 차미주가 고개를 들어 한성우를 바라보았다.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이라고 여기던 차미주였지만 한성우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복잡해졌다. 한성우의
고작 열몇 살의 어린아이가, 한창 자존심이 강할 나이에 이런 일로 또래에게 놀림을 당해야만 했다. 못에서 시계를 건져 올린 그날, 또다시 같은 일로 비웃는 아이를 보며 한성우는 갑자기 독한 마음을 먹고 아이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아이를 바닥에 누른 채 얼굴을 사정없이 가격했다. 아이의 일행이 이미 한성우를 에워싸고 주먹을 휘둘렀지만 그럼에도 그는 절대 상대방을 놓아주지 않았다. 마치 사냥감을 입에 문 늑대처럼 죽어도 손을 놓지 않았다. 한성우가 휘두르는 주먹에 맞으며 욕을 퍼붓던 남자아이는 결국 겁에 질려 울며 사정하기 시작했다. 한준우가 한성우를 끌어냈을 때 그의 눈은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차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남자아이의 집안이 재력가였던 탓에 함부로 척질 수 없었던 한성우의 부모님은 한성우를 억지로 끌고 가 사과하도록 했다. 그들은 모든 것이 한성우의 잘못인 듯 얘기했다. 그날 이후, 한성우는 다시는 그 누구와도 싸우지 않았다. 아이는 그렇게 타협을 배웠고 가식을 배웠다.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야 했고 놀림과 왕따를 당해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성우가 처음 강한서와 친구가 되려고 했던 것도 사실은 한서 집안이 한주에서는 명문가였기 때문이었어요. 게다가 한서는 강씨 가문의 장손이었으니 보호막이 되어주길 바랐든 인맥을 넓히기 위한 수단이었든 성우에게 한서는 최고의 선택지였어요.”“하지만 나중에야 술에 취한 성우가 그러더라고요.”“강한서는 너무 멍청해. 비행기 모형을 만져본 적이 없다는 내 말에 아버지가 선물해 주신 모형을 선물로 주더라니까. 걔는 그 모형이 마음에 안 든대. 웃기지도 않는 거짓말이지. 그 비행기 모형은 거울처럼 반짝거렸어.”“매일 소중하게 닦지 않았다면 그렇게 깨끗할 리가 없잖아. 말만 그래, 걔는. 그리고 어찌나 잘 속는지... 만약 내가 친구 하자는 말이 진심이 아니었다고 얘기하면 강한서 설마 우는 거 아냐? 됐어.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평생 속이지, 뭐.”그때의 차미주는 한창 연애 경험이
“어쩌면 이런 것도 인연이겠네요. 제 사촌 동생이 마침 그런 스타일이거든요. 동생이 저와 함께 파티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심원 씨를 보고는 저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그땐 심원 씨가 여자친구가 있다고 해서 말씀을 안 드렸었고요.”“요즘 심원 씨가 맞선을 보고 있다는 소식에 이렇게 연락드렸어요. 다른 분은 모르겠고 사촌 동생의 성격이 심원 씨와 잘 맞을 것 같아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 사촌 동생을 소개해 드리면 어떨까 싶은 마음에 오늘 실례를 무릅쓰고 심원 씨 맞선 얘기를 꺼낸 거예요.”심근호가 놀란 말투로 대답했다. “그런 생각인 줄 전혀 몰랐어요.”한성우가 말했다. “전엔 괜히 실례인 것 같아 대표님께 직접 묻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통해 물어봤었어요. 심원 씨가 해외에서 만나던 여자친구가 있다고 해서 더 묻지 않았고요. 하지만 요즘 심원 씨가 맞선을 보고 있다는 소식에 사촌 동생 오작교나 해줄까, 생각한 거예요.”여자친구라는 말에 심근호는 심원과 송가람의 일이 이미 소문이 났음을 알아차렸다. 송가람을 향한 심근호의 불만이 커져만 갔다. “모르는 사람들이 지껄이는 헛소문이에요. 원이는 여자친구 없어요.”멈칫한 심근호가 말을 이었다. “한 대표님 사촌 동생분은 뭘 하시는 분이에요? 혹시 사진 있어요?”“의사예요. 대학원을 졸업하고 지금은 한주 병원에서 인턴으로 있어요. 아이를 좋아해서 소아병동에서 근무하고 있고요. 인내심이 강한 애예요. 부모님 두 분 모두 선생님이세요. 한 분은 중학교, 다른 한 분은 고등학교에 근무하세요.”“가정환경은 흠잡을 데가 없지만 대표님 댁에 비하면 조금 부족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동생이 어쩌다 호감이 가는 사람이 생겼는데 오빠가 되어서 한 번 시도는 해봐야 할 것 같아서요. 혹시라도 내키지 않으시면 저도 확실히 마음을 접을 수 있게 얘기할 수 있고요.”한성우가 말을 이었다. “잠시만요. 제가 사진 보내드릴게요.”잠시 후 차미주는 학사복을 입은 채 카메라를 향해 V를 그리며 웃고 있는 여자아이의 사
한성우가 곧바로 전연의 말에 반박했다. “나 같은 느끼한 여우도 너처럼 이런 꼬마한테는 관심 없어.”전연이 한성우를 향해 입을 삐죽이더니 곧 차미주를 보며 말했다. “전 돈은 많지만 순진한 사람이 좋아요. 좀 덜 똑똑한 사람이면 더 좋고요.”차미주: !!!‘너무 직설적인 거 아냐?’전연이 씩 미소 지었다. 포니테일에 말끔한 얼굴의 전연은 단순한 아이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하나 같이 직설적이었다. “제가 너무 돈만 밝히는 것 같아요?”차미주가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혹시라도 전연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을까, 차미주가 말을 이었다. “진짜 돈을 밝히는 사람은 그런 말 안 해요. 게다가 맞선이잖아요. 누구든 조건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게 당연하죠. 가난한 사람을 만나 같이 고생할 필요는 없으니까요.”전연이 환하게 웃었다. “제 말이 일리가 있다고 해준 사람은 새언니가 처음이에요. 다들 얘기는 안 하지만 이상한 눈빛으로 절 쳐다보거든요.”차미주가 쑥스러운 듯 말했다. “다들 자기만의 기준이 있는 법이잖아요. 저도 예전엔 학식이 풍부하고 말이 적은 진중한 성격의 의사나 선생님을 만나려고 했어요. 하지만 이렇게 수다쟁이를 만난 줄 누가 알았겠어요. 심지어 입만 살아서 저보다도 말이 많잖아요.”한성우: ???“내가 말이 많아?”한성우는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럼 말수가 적은 사람 한 번 만나봐. 열 마디를 해도 겨우 한 마디 대답할까 말까 한 그런 사람 말이야. 뉴스를 보면서도 수다를 떨어야 하는 네 성격에 그런 사람 만나면 병날걸?”“내가 뭐가 말이 많아? 너 말고 나랑 다른 사람이랑 그렇게 말 많이 하는 거 본 적 있어? 내가 너한테 말을 많이 하는 건 뭐든 너랑 공유하고 싶지 때문이잖아. 입 꾹 닫고 어떻게 너랑 일상을 공유해? 내가 말이 적으면 넌 오히려 걱정해야 할 거야.”“그리고 말이 많으면 뭐 어때서. 말을 하라고 달린 입이잖아. 결혼 생활은 소통이 제일 중요해. 안 그럼 뭐 집에서
심원과 강한서 모두 매혹적인 봉황 눈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강한서의 눈은 일자로 뻗어나간 형태였고 심원의 눈은 위로 살짝 치켜올라간 모양이었다. 웃으면 살짝 올라가는 눈꼬리는 귀티가 있어 보이기도 했다. 멈칫한 전연이 심원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같이 가요.”전연을 태운 심원의 차가 이모네 국수를 향해 출발했다. 일이 순조롭게 풀린 탓인지 심원은 전연과 조잘조잘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심원은 자신과 비슷한 입맛과 취향을 가진 전연이 신기하기만 했다.그 탓인지 어떤 주제든 두 사람의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단순히 맞장구를 치기 위한 기계적인 리액션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이제야 전연을 만나게 되어 아쉽다는 생각이 든 심원이 감개무량하다는 듯 말했다. “만약 우리가 더 일찍 만났다면 분명 좋은 친구가 되었을 거예요.”전연이 미소 지었다. “저는 지금도 늦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그 말에 대답하려던 심원은 연신 하품을 하는 전연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잠깐 눈 좀 붙여요. 아직 조금 더 가야 해요. 도착하면 깨울게요.”“네.”대답한 전연이 졸음이 가득한 눈을 감았다. 이모네 국수 앞에 도착했지만 전연은 여전히 잠에서 깨지 않았다. 깊은 잠에 빠진 전연을 보며 잠시 고민하던 심원은 전연을 깨우지 않았다. 차의 시동도 끄지 않고 에어컨도 그대로 틀어놓은 채 안전벨트를 푼 심원이 조용히 차에서 내려 가게로 들어가 미리 주문을 했다. 심원이 차에서 내리자 전연이 천천히 눈을 떴다. 맑게 빛나는 눈빛은 졸음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전연이 휴대폰을 꺼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순조롭게 진행 중.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될 것 같아.]곧 한성우가 답장했다. [이렇게 빨리?]전연: [상대하기 힘든 사람인 줄 알았더니 내 사진을 보고는 바로 발끈하던데?]한성우가 역시 대단하다는 의미의 이모티콘을 보냈다. [지금 어디야?]전연: [미래의 남편과 밥 먹으러 왔어. 우리도 서로 알아가야지.]한성우: [얼
전연은 대답 대신 되물었다. “만약 제가 심원 씨가 좋아하시는 분과 사귈 수 있게 도와드린다면요?”심원은 그저 전연이 농담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연의 표정은 누구보다 진지했다. 그녀는 심원을 도와줄 테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말했다. 심원은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하지만 친화력이 좋은 전연은 사람의 이야기를 잘 끌어내는 매력이 있었다. 심원은 저도 모르는 사이 전연에게 송가람과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었다. 며칠 동안 전연은 매일 같이 심원과 약속을 잡았다. 가끔은 공원에서 또 가끔은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의 주제는 매번 송가람이었다. 신원은 자신과 송가람 사이에 있었던 모든 일을 전연에게 들려주었다. 전연은 심원과 함께 울고 웃으며 그와 송가람을 이어줄 방법을 고민했다. 심원의 여자친구인 척 하게 된 것도 전연이 송가람을 자극하기 위해 생각해낸 방법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송가람은 전연이 예측했던 것처럼 먼저 심원에게 연락했다. 전연의 방법이 효과가 있다는 의미였다. “그럼 제가 다시 연락을 해야 해요? 아니면 또 인스타그램에 우리 사진을 올려서 질투를 유발할까요?”전연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조금 전 송가람 씨 연락은 안 받으면서 바로 우리 사진을 올려버리면 그분도 자기에게 보여주려고 일부러 올린 사진이구나, 하고 눈치 챌 텐데 그럼 오빠가 저랑 사귀고 있다는 것도 안 믿을 거예요.”“콜백도 안 되고 사진도 안 되면 전 뭘 어떡해요?”전연이 웃으며 말했다. “콜백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빨리 하지 말라는 얘기예요. 생각해봐요. 전에 오빠가 먼저 연락했을 땐 매번 시간이 잔뜩 지나서야 다시 연락이 왔잖아요. 그럼 오빠는 답장을 기다리느라 속이 바짝 탔었죠?”심원이 멍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당연히 알죠. 그건 우리 여...”큼, 헛기침한 전연이 목을 가다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건 우리 여자들이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내 말 듣고 있어?”대답이 없는 송가람을 본 서해금이 언성을 높였다. 송가람이 재빨리 대답했다. “듣고 있어. 알았어.”창백해진 얼굴의 서해금을 본 송가람은 순간 한 가지 추측이 머리를 스쳤다. 그녀는 고민도 없이 툭 던지듯 물었다. “엄마, 한현진이 바뀐 거 우연한 사고 맞아?”멈칫한 서해금이 송가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세상에 정말 그렇게 많은 우연이 있다고 생각해?”송가람의 눈이 동그래졌다. 놀란 얼굴로 서해금을 바라보던 송가람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서해금이 정리를 마친 서류를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몸을 일으켰다. 송가람 앞으로 걸어간 서해금이 시선을 내려 송가람의 옷매무시를 다듬었다. “어떤 사람의 운명은 타고나는 거지만 또 어떤 사람은 본인이 직접 개척해 나가야 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애를 쓴 건 넌 나처럼 피땀 흘리며 살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현재에 안주하면 안 돼. 내 말 알아들어?”송가람은 손가락이 바르르 떨렸다. 시선을 내린 그녀는 한참만에야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어.”송가람은 줄곧 한현진이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그동안 누린 관심과 행복은 전부 한현진에게서 빼앗은 것이었다. 만약 한현진이 바뀌지 않았다면 서해금이 송병천과 결혼하고 송가람이 송병천의 딸로 살 기회가 있었을까?그 질문의 정답을 송가람은 마주할 자신도, 인정할 자신도 없었다. 한편, 전연이 전화를 끊자 더는 참을 수 없던 심원이 말했다. “휴대폰 이리 줘요. 가람이에게 전화해야겠어요.”전연이 심원의 손을 피하며 휴대폰을 뺏기려 하지 않았다. “안 돼요. 아직은 전화하면 안 돼요.”심원이 다급하게 얘기했다. “조금 이따 다시 전화하라면서요. 왜 지금은 또 안 된다는 거예요?”“콜백을 하긴 할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거죠. 금방 전화를 끊었는데 바로 다시 전화하면 뭐라고 생각하겠어요?”심원이 모르겠는 표정으로 물었다. “뭐라고 생각하는데요?”전연이 말했
서해금은 첫 번째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아는 한현진이라면 기억이 돌아올 가능성이 전혀 없는 강한서의 아이를 낳으려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한현진에게 아이는 강한서를 잡는 패가 될 수는 있어도 자신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양시은 딸의 결혼식장에서 신미정의 계략으로 넘어진 한현진을 바짝 긴장한 채 안고 가는 강한서의 모습은 한현진의 임신 사실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모두가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유독 송가람과 서해금에게만 쉬쉬거렸다. 숨기는 이유가 어쩌면 한아람 죽음에 관한 의심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해금은 불안해졌다. 당시 그 사건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더는 증인으로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서해금의 불안을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한현진이 돌아온 그 순간부터 서해금은 단 하루도 깊은 잠에 빠질 수가 없었다. 창백한 얼굴의 송가람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없어. 한서 오빠가 기억 잃은 척 연기할 리가 없어. 한현진이 뭔가 수작을 부리는 게 분명해.”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렸다. “강한서가 정말 기억 상실인지 아닌지 네가 어떻게 확신해?”“만약 기억을 잃은게 아니라면 오빠가 어떻게 날...”순간 멈칫한 송가람이 입술을 꾹 누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아무튼 오빠는 기억을 잃은게 확실해.”이상함을 감지한 서해금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너 강한서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아냐. 난 아무것도 안 했어.”송가람이 서해금의 눈빛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오빠 기억 회복을 도와주려고 제일 유명한 신경외과 교수님을 모셨었는데 아무런 효과도 없었어. 날 속일 수는 있어도 의사를 속일 수는 없을 거잖아.”한참동안 서해금은 송가람을 빤히 쳐다보았다. “정말 나한테 숨기는 거 없어?” 자신은 서해금 앞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송가람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짙게 난 손톱자국의 통증을 용기 삼아 송가
서해금이 개의치 않다는 듯 말했다. “어쩌다 한 번, 행운이 따랐던 것뿐이야. 한현진은 아직 우리에게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야. 너야말로 계속 밖으로 싸돌아다니지 말거 문채영 씨 옆에서 제대로 배워. 두 번 다신 실망시키지 마.”서해금의 말에 알겠다고 대답한 송가람의 머릿속은 여전히 심원의 일로 가득 했다. “그, 새로 오신 기사님은 어때?”서해금이 슬그머니 물었다. “마음에 잘 맞아?”잔소리가 많던 중년의 남자를 떠올린 송가람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냥 그래. 말이 좀 많은 것 같아. 계속 이것저것 물어서 귀찮아 죽겠어. 하지만 운전 실력은 좋은 것 같아. 시키는 일은 뭐든지 다 해. 강아지처럼 말을 잘 들어.”그 말에 멈칫한 서해금이 입술을 짓이기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송가람, 사람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던 말 기억해?”움찔한 송가람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기억해.”서해금이 서류를 정리하며 태연하게 말했다. “말해봐.”송가람이 주먹을 꽉 움켜쥔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신분이 낮을 땐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켜야 하고 내가 높은 자리에 있을 땐 상대방을 인간으로 존중해야 한다.”서해금이 시선을 올리며 말했다. ”그래서 넌 그 말을 지키고 있어?”아랫입술을 깨문 송가람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잘못했어.”“다신 잘못했다는 말 듣게 하지마.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게 그 말이야. 잘못했다고 말만하면 뭐 해! 달라지질 않는데! 송가람. 엄마 이젠 젊지 않아. 평생 네 곁을 지킬 수 없어. 어떤 일은 너도 이젠 혼자 해내야지.”고개를 숙인 송가람은 단 한마디도 반박할 수 없었다. 불쌍한 송가람의 모습에 서해금은 안쓰러우면서도 짜증이 치밀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라 마음을 독하게 먹을 수 없어 안쓰러웠고 자신의 좋은 유전자 대신 멍청힌 아빠를 닮은 모습에 짜증이 치밀었다. 송가람은 심지어 그녀의 아빠만큼 성실하지도 않았다. 만약 송병천과 아들딸이라도 낳을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상황에 끌
전연은 비꼬는 송가람의 말투를 눈치 채지 못한 것처럼 웃으며 대답했다. “저와 원이 오빠가 사귀기로 한지 며칠밖에 되지 않아서요. 오빠가 쑥스러움이 많고 내향적이라 말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아직 얘기하지 않았을 거예요. 원이 오빠와 많이 친하신 것 같은데 오빠에게서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오빠 동창이세요?”송가람은 더 이상 웃고 있을 수가 없었다. 맞다는 대답도, 아니라는 대답도 할 수 없어 그녀는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나랑 심원이 무슨 사이인지는 심원에게 직접 물어요!”전연이 말했다.“오빠랑 가까운 사이 같으신데 제가 언니 카톡 추가해도 될까요? 친한 사이면 원이 오빠 취향을 잘 아실 거잖아요. 곧 오빠 생일이라 선물을 준비하고 싶은데 제가 아는 오빠 친구가 없어서요. 오빠에게 직접 물어보면 서프라이즈가 아니잖아요.”“언니가 알려주실래요?”송가람의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네까짓 게 뭔데.’하지만 자신이 고생해 길들은 강아지가 자신 몰래 여자친구를 만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던 송가람이 숨을 크게 들이쉬며 대답했다. “그래요. 연락처 저장해서 추가해요.”전연이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고마워요, 언니.”해맑게 불린 언니라는 호칭에 송가람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녀는 어두운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전연이 곧 송가람에게 친구 추가를 신청했다. 전연의 카톡 프로필 사진은 조금 전 심원의 인스타그램에서 봤던 사진이었다. 수락을 누른 송가람은 곧 전연의 인스타그램을 찾아냈다. 전연이 기본 그리드에 고정한 피드는 바로 심원과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었다.[나도 드디어 달달한 연애 시작이다~]분노로 얼룩진 마음이 소용돌이쳤다. 주현이 다시금 커피를 건네자 송가람은 탁, 커피를 쳐냈다. 뜨거운 커피가 주현의 몸에 흘러내렸고 그 고통에 주현이 비명을 질렀다. “팀장님?”송가람이 험악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눈앞에 보이는 모든 물건을 쓸어버리며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 “꺼져! 당장 꺼지라고!”마침 송가람 사무실로 들어서며
멈칫한 한현진이 시선을 올려 은서하를 바라보았다. “더 할 말 남았어요?”고개를 가로 저은 은서하가 서류철은 안고 사무실을 벗어났다. 책상에 놓인 유자를 한참 동안 쳐다보던 한현진이 주세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현이 문을 열고 송가람의 사무실로 들어섰다. 서류가 여기저기로 널브러져 엉망진창인 모습이 주현의 눈에 들어왔다. 커피를 손에 든 주현은 뒤뚱거리며 서류를 피해 송가람 앞으로 다가갔다. 커피를 건넨 주현이 입을 열었다. “팀장님, 여기 커피요.”송가람은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차가운 얼굴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채팅방에서는 심원의 새로운 여자친구에 관해 얘기 중이었다. SNS는 하지도 않던 조용한 심원이 인스타그램에 여자친구와의 사진을 업로드 했다. 송가람의 친구들이 그 사진을 채팅방에 올리며 수다를 떨었다. [낯익은 얼굴은 아닌 것 같은데, 우리도 아는 사람 맞아? 처음 보는 사람 같아.][낯이 익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이긴 한데. 꽤 예쁘장하게 생겼는데?][우리가 알만 한 사람은 아닐 거야. 심 대표님께서 아드님에게 찾아준 맞선 대상이 명문가 딸은 아니라고 들었어. 심원 씨가 외동이라 괜히 재벌가와 사돈을 맺었다가 대가 끊기게 될까 봐 컨트롤이 가능한 평범한 가정의 딸을 소개했다고 하던데.][그러니까 우리가 몰랐던 거겠지.][심 대표님과는 안 그래도 인연이 없었으니 몰랐던 것도 당연한 거지, 뭐. 가람이가 심원 씨와 동창에다 사이도 좋았잖아. 어쩌면 가람이는 심원 씨 여자친구가 누군지 알지도 몰라.”송가람이 심원의 인스타그램을 확인했다. 심원과 그 여자의 사진이 버젓이 업로드 되어 있었다. 사진 속 여자는 한 손에 밀크티를 쥐고 있었다. 셔츠를 입고 포니테일을 한 채 카메라를 향해 꽃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진 아래 부분에서 뻗어 나온 누군가의 손이 여자의 다른 한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유행하던, 남자친구의 시야에서 손을 맞잡은 여자친구의 모습
이어질 다음 경기는 조별 리그였다. 조향 대회의 조별 리그는 팀워크가 중요했다. 자유롭게 팀을 구성할 수 있었고 주최 측에서 무작위로 채택할 수도 있었다. 송가람은 당연히 문채영과 팀을 하려 했다. 문채영의 실력을 등에 업는다면 송가람은 무난히 다음 라운드로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 한현진이 걱정되는 건 주세은이었다. 회의 전 한현진은 주세은에게 누구와 팀을 짤 것이 물었었다. 주세은은 주최 측에서 무작위로 뽑은 사람과 하겠다고 대답했다. 주최 측에서 무작위로 선정한 팀은 리스크가 너무 컸다. 안 맞는 사람과 팀이 되었다간 협력은커녕 오히려 팀원이 주세은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었다. 잘못하다간 바로 탈락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참가자 명단을 훑어보던 한현진은 어쩌면 이시연과 주세인이 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시연은 회사 내의 다른 참가자들과도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만약 이시연이 이미 파트너를 정했다면 거절할 수도, 그렇다고 대답할 수도 없는 서로가 난감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었다. 다른 참가자의 이름을 확인한 한현진은 비교적 침착한 성격의 참가자 두 명의 이름에 동그라미 표식을 해두었다. 조금 이따 물어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하던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며 이시연이 자몽 두 개를 들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대표님, 바쁘세요?”한현진이 서류철을 덮으며 대답했다. “아뇨. 무슨 일이에요?”이시연이 사무실로 들어서며 문을 닫았다. 그녀는 자몽을 한현진의 테이블 위에 올려두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저 대신 주세은 씨에게 저와 팀을 하면 어떨지 물어봐 주시겠어요?”한현진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시연 씨와 팀을 하겠다는 분이 없어요?”이시연이 난감함 표정을 지었다. “있긴 한데 제가 거절했어요. 전 주세은 씨와 팀을 하고 싶거든요. 전에 세은 씨가 넘버 S 오일을 제조했을 때, 사실 저 깜짝 놀랐어요. 이번엔 예선에서도 바로 TOP 10에 들었잖아요.”“저와 성적이 비슷하니까 같이 힘을 합쳐서 포인
직원들 역시 바보가 아니었다. 대회를 앞둔 시점에 갑자기 문채영을 스카우트해 송가람과 팀을 맺어준 목적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참가자를 응원하기 위한 보너스라고 얘기했지만 상금의 80%는 우승자를 위한 것이었다. 나머지 20%의 상금도 TOP 10에 들어야만 일 인당 4000만 원씩 받을 수 있었다. 난이도가 극상에 가까운 미션에 성공해 보너스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결국은 그저 겉모습만 화려한 보여주기식 퍼포먼스에 불과하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한현진의 제안대로라면 20위 안에만 들어도 보너스를 받을 수 있었고 심지어 송가람을 보너스 지급 대상에서도 제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참가자들이 보너스를 받을 기회는 자연히 더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16억의 우승 보너스의 주인이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상금이 높아지면 그만큼 도전하는 사람도 많아질 테고 송가람까지 제외된 상황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은 도전 의식을 불태워볼 만했다. 각자의 생각을 가진 참가자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굳이 투표를 진행하지 않아도 서해금은 이미 결과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시선을 올려 한현진을 바라보며 씩 입꼬리를 올렸다. “투표는 필요 없을 것 같네요. 저도 한 대표 제안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럼 한 대표 제안대로 진행하도록 하죠. 다들 원하는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애쓰길 바라요. 대회가 끝나면 제가 직접 파티를 열어 여러분께 보너스를 지급할 거예요.”서해금과 눈을 마주친 한현진이 그녀를 따라 웃으며 말했다. “그럼 미리 여러분의 승리를 기원할게요.”말을 마친 한현진이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회의실에 있던 참가자들도 하나둘 그녀를 따라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마주쳤다. 서로의 눈빛에 날카로운 칼날을 숨기고 있음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분노로 들끓은 송가람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막 문을 열고 회의실을 나서던 송가람은 서류 심부름을 하러 온 비서와 부딪혔다. 서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