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진이 피식 냉소를 흘렸다. “그렇군요.”한현진은 젓가락으로 그릇 안에 담긴 물만두를 뒤적였다. 그녀는 젓가락으로 그릇을 부딪치며 끊임없이 맑은 소리를 냈다. 강한서는 한현진의 본가에서 그녀와 밥을 먹은 적이 있었기에 그녀의 식사 예절이 밝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 강한서가 본 한현진은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제야 그는 뒤늦게 뭔가를 눈치채고 말했다. “화났어요?”“그럴 리가요.”한현진이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강 대표님께서 이렇게 늦게 퇴근하시면서까지 제 음식을 챙겨주시니 기뻐서 몸 둘 바를 모르겠는데요. 하하.”“...”강한서는 뭔가 한현진의 특징을 눈치챈 것 같았다. 그녀는 화가 나면 자신을 강 대표님이라고 불렀다. 또 기억 조각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때도 한현진은 지금과 같은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었다. “강 대표님, 시계 예쁘네요.”하지만 그때의 한현진은 진심으로 시계가 예뻐서 칭찬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도 없는 빈말을 건넨 것이었다. 한현진이 화낸 포인트를 알 수 없었던 강한서가 물었다. “새우 물만두 안 좋아해요?”한현진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요. 새우는 임산부에게 좋죠. 태아에게도 좋고요.”“...”강한서는 그 말에 뭔가를 깨달았다. 잠시 망설이던 그가 입을 열었다. “한세 한식당 대표가 제가 늘 새우 물만두만 사 간다고 해서, 전 한현진 씨가 좋아할 줄 알았어요.”그 말에 한현진이 멈칫했다. 그녀가 다시 물만두를 입에 넣었을 때, 더 이상 젓가락으로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 모습에 강한서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임산부는 역시 호르몬의 영향 때문에 감정 기복이 심해. 화도 쉽게 냈다가 또 쉽게 풀잖아.’물만두를 다 먹은 한현진은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려 했다. 강한서가 그런 한현진을 불렀다. “나가서 좀 걸어요. 소화도 시킬 겸.”그러자 한현진이 더 놀라고 말았다. ‘강한서는 내 카리스마를 느끼고 싸움 대신 굴복을 선택한 거야?’도륵 눈을
한현진의 마음이 조금씩 찢겼다. ‘몽롱이라...’‘상처가 얼마나 심각했어야 매일 같이 진통제를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로 썼을까?’한현진은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늘 생각했다. 만약 그때 강한서를 꼭 잡았었더라면 나중의 모든 일들도 일어나지 않았을 테고, 그러면 강한서가 제일 힘든 순간에 그를 외롭게 혼자 놔두지도 않았을 텐데...우울한 한현진의 기분을 눈치챈 강한서는 어쩐지 자기 마음도 침울해지는 것 같았다. 강한서는 한현진을 쳐다보지도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한현진과 같은 발걸음을 유지하며 그녀의 곁을 지켰다. 가로등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강한서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한현진 씨와 그 사람... 은 예전에도 이렇게 자주 산책했어요?”그의 말에 잠시 멍해졌던 한현진은 강한서가 말하는 그 사람이 바로 예전의 그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혹은 그녀와 결혼했었던 그를 말하는 걸지도 몰랐다. 왜냐면 전에 한현진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최소한 날 사랑했던 강한서가 무사한지는 알아야겠어요.”한현진이 시선을 내리며 대답했다. “아뇨. 저희는 같이 산책할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산책하더라도 제 손을 잡은 적이 없었죠.”그건 강한서에게는 꽤 의외의 대답이었다. 그가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달랐기 때문이었다. 한현진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은 속이 좁고 삐딱한 성격이라 절 좋아하면서도 늘 자존심 때문에 표현하기를 꺼렸어요. 선물을 줄 때도 분명 자기가 고심해서 고른 거면서도 늘 클라이언트가 준 거라고 했었고 제가 해 준 음식을 좋아했으면서도 맛이 별로라고 했죠. 항상 마음과 다른 말을 해서 늘 저를 화나게 했어요.”“전 이제껏 나이 30 먹은 남자가 그렇게까지 유치하고 삐딱한 방법으로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처음 봤어요. 그때 전 산책할 때마다 생각했었어요. 다른 부부는 손을 잡거나 어깨를 껴안고 걷는데 왜 우리만 늘 앞뒤로 걸어야 하나, 하고요.”“나중에야 알았죠. 저와 손을 잡기 싫
조급한 마음에 한현진이 나가지 않으려고 하자 진씨가 입을 열었다. “한현진 씨, 나가시죠. 이건 지 선생님 룰이에요.”한현진은 주먹을 꽉 쥐고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방문이 굳게 닫히고, 안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한현진은 문 앞을 서성이며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지자 점차 불안해지기 시작한 한현진이 진씨에게 물었다. “아저씨, 저분은 어디서 오신 분이세요? 믿을 만한 분이에요?”진씨가 대답했다. “한현진 씨도 보신 적 있는 분이세요.”한현진이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 “제가요? 전 전혀 기억이 없는데.”진씨가 말했다. “삼청관.”“삼청—”한현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현기법사 님이요? 그분은 무당 아니셨어요? 의학도 아시는 거예요?”머리를 묶지 않아 한현진은 그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진씨가 말했다. “미신은 신앙이고 과학은 생활이죠.”“...”‘말 한마디로 직업이 바뀌네.’현기법사와 정인월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라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 아마 정인월도 현기법사를 누구보다 신뢰하기 때문에 그를 부른 것일 테였다. 하지만 현기법사의 의술이 강한서에게 효과가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1 시간쯤 되었을 때 드디어 방문이 열렸다. 젊은 남자가 고개를 내밀고 한현진과 진씨에게 들어오라고 말했다. 한현진이 빠른 걸음으로 청년의 뒤를 따랐다. 강한서는 침대에 앉아 법— 아니, 지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혈색이 없고 피곤해 보였지만 방금 전의 창백하던 모습보다는 훨씬 상태가 좋아진 것 같았다. 한현진이 방으로 들어서자 강한서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한 번 쳐다보더니 곧 시선을 거두었다. 지 선생님은 강한서에게 몇 마디 당부의 말을 남기더니 몸을 일으키며 진씨에게 말했다. “갑시다.”한현진은 그에게 묻고 싶은 말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일어나기 힘들어서 그러니 손님 배웅 좀 해줘요.”
주방으로 다 데워졌냐는 송병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서해금이 대답했다. “다 됐어요.”말하며 그녀는 문자를 전부 지워버리고는 데워진 국을 들고 주방을 나섰다. “이제 이런 일은 아줌마 시켜.”송병천이 손을 닦으며 말했다. “날도 추운데 왔다 갔다 하는 사이면 음식 다 식잖아.”“아줌마도 저녁 내내 바삐 보내다 이제 겨우 쉬면서 방에서 식사하고 있는데 이런 일은 제가 해도 돼요.”서해금은 송병천에게 국을 한 그릇 더 떠주며 말했다. “전에 어머님 보살펴 드리면서 습관이 되어서 괜찮아요.”그 말에 송병천은 멈칫하더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해금이 시어머니를 모시던 그 몇 년 동안, 그녀는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송씨 가문은 재벌가였으니 사람을 보살피는 일이 아무리 고되다고 하더라도 돈만 제대로 준다면 간병인을 찾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송병천의 모친은 젊은 시절 성격이 온화하고 우아한 분위기가 넘치던 사람으로 한주에서 알아주는 재벌가 규수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병환에 시달리며 온종일 침상에만 갇혀 생활했고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그녀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어 점점 우울 속에 빠졌다. 아무리 성격이 좋았던 사람도 아프기 시작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하기도 했다. 송병천의 모친 역시 그랬고 그녀는 자주 모욕적인 말로 간병인을 욕하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송병천이 아무리 임금을 올려주어도 2달 이상 버틸 수 있는 간병인을 찾기 어려웠다. 서해금 역시 갓 시어머니를 돌보기 시작했을 때는 온갖 모욕적인 말들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서해금은 워낙 끈기가 있는 성격이라 설사 시어머니가 매일 같이 그녀를 비꼬며 욕해도 날마다 꾸준히 시어머니를 돌봐왔다. 송병천 역시 어머니가 밖에서 발작을 일으킬 때 서해금이 두 손으로 어머니의 구토물을 받아내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아들인 자기도 그렇게까지 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서해금의 그 행동에 송병천은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송병천
여기까지 생각한 송병천의 표정도 한결 부드러워졌다.“비서한테 연극 티켓을 두 장 예매하라고 했어. 내일 오후에 시간 있어?”서해금은 다소 의외였다. 결혼한 지 이렇게 오래됐지만, 항상 그녀가 모든 것을 준비한 후 송병천을 불러냈다. 그는 먼저 약속을 잡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있다고 해도 친구의 초대를 거절하지 못해서였다.그녀는 눈웃음을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있어요. 몇 시 공연이에요?”“3시, 내일 데리러 갈게.”서해금은 알았다고 대답했다.송병천은 국을 마시며 천천히 말했다.“가람은 20년 키웠으니 오래 전부터 친자식으로 생각했어. 현진은 20여년 떨어져 있다가 어렵게 다시 만나서 가끔 그쪽으로 기우는 걸 어쩔 수 없어.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서해금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에요. 다 이해하니까 설명하지 않으셔도 돼요. 전에 제가 잘못한 부분도 있으니 당신이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해요. 제가 민준을 키우기 시작할 때 겨우 열 살이었어요. 나이가 어려서 맞추기 쉽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어요. 하지만 현진은 돌아올 때 이미 성인이었어요. 고민이 있어도 숨기는 나이였죠. 저는 그저 그 애와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잘 몰랐을 뿐이에요. 게다가 이번에 가람이 한서를 구한 걸 놓고 속으로 원망하는 것 같아요. 저도 자꾸 말하면 귀찮아할까 봐 말하지 못했어요.”송병천은 잠깐 침묵하더니 말했다.“현진은 철없는 아이가 아니야. 당신이 잘해주면 그 애는 당신한테 더 잘할 거야. 은혜를 갚을 줄 알고 불의를 보면 못 참는 것이 아람과 똑같아.”서해금은 주먹을 불끈 쥐더니 눈을 내리깔고 나지막이 말했다.“알았어요.”이어서 한현진이 아름드리 펜션에 사는 문제를 얘기했는데, 서해금은 결혼하지 않았으니 같이 사는 것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하지만 강한서가 한현진을 기억 못하기 때문에 결혼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한서가 현진에게는 생명의 은인이고, 이번에 가는 목적도 한서가 기억을 되찾도
그녀는 줄곧 강한서가 다른 남자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모든 사람의 본연의 모습을 감상할 줄 안다.그녀와 강한서 사이에 부족한 것은 함께 지낸 시간뿐이다.다만 강한서가 파혼하자는 말까지 했고 주강운과 친밀한 관계가 됐는데도 한현진이 이렇게 뻔뻔스럽게 강한서에게 매달릴 줄은 몰랐다. 역시 빈한한 집안 출신의 여자라 수치심이 없다.그녀의 속마음을 모르는 서해금은 말투를 좀 누그러뜨렸다.“이 세상에 좋은 남자는 많고도 많아. 강한서는 한현진과 얽혀 있어 좋은 배필이 아니야. 그러니까 하루빨리 마음을 접어. 걔가 강한서에게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지금이 너에게는 기회야. 너는 깔린느에 힘을 쏟아 입지를 굳히는 게 낫잖아. 주식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해.”하지만 송가람은 이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강한서가 기억을 잃은 지금이 그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인데 그녀는 다른 곳에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았다. 깔린느는 엄마가 있는 이상 한현진이 빼앗아갈 걱정은 없다고 생각했다.오랜 세월에 걸쳐 서해금의 세력이 깔린느의 구석구석에 깊이 침투했다. 한현진이 창업주 따님 신분이 있다고 해도 그 지위는 흔들지 못할 것이다.그래서 그녀는 강한서에게 더 많은 시간을 쓰려 했다. 어쩌면 이것이 그녀에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르니까.그러나 입으로는 감히 서해금을 거역하지 못하고 다소곳이 대답했다.“알았어, 엄마.”그러고 나서 그녀는 쓸데없는 참견을 했다.“엄마, 저녁 식사할 때 누가 문자했어요?”서해금은 흠칫하더니 담담하게 말했다.“스팸 문자야.”송가람은 ‘오’하고 답했지만 엄마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송병천은 그때 식사하느라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녀는 봤다.태산이 무너져도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을 정도로 항상 침착하던 엄마가 그 문자를 보고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무슨 일이길래 나한테까지 숨기지?’다음날 아침 일찍 송민준은 전용기를 타고 M국으로 떠났다.이륙하기 전에 그는 한현진에게 전화
한현진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더니 반듯한 웃음을 지었다.“은하 플라자, 세기 플라자, 백야 쇼핑몰, 한량리... 강 대표님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자가용 아니면 택시? 택시로 가시겠다면 제가 지금 바로 연락하겠습니다.”“...”그녀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알랑거리는 말투를 썼다. 강한서는 아첨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하는데, 한현진이 이 말을 할 때 싫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은근히 유쾌하기까지 했다.‘귀여워 죽겠어.’그는 주먹을 입술에 대고 가볍게 기침한 후 시선을 돌리고 담담하게 말했다.“차로 가고, 장소는 그쪽이 정해요.”“그럼 가성비가 좋은 백야 쇼핑몰로 가요.”강한서가 동의하자, 한현진은 이쪽으로 오시라는 제스처를 보냈다.“강 대표님, 올라가시죠. 제가 옷 갈아입는 것을 시중들겠습니다.”강한서가 입술을 깨물었다.“2억이 모자라서 다른 잇속도 챙기려는 거예요?”한현진은 별 생각 없이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강한서의 말을 듣고 보니 갑자기 옷 갈아입는다는 말이 극히 애매하게 느껴져 귀가 빨개졌지만 기세에서 밀릴 수 없었다.그녀는 목청을 가다듬고 말했다.“천상에나 있을 듯한 강 대표님의 값진 몸매를 감상할 수 있다면 저야 좋죠. 잇속을 챙기지 못하는 게 바보라는 말도 있는데...”강한서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당신은 태교를 이렇게 해요?”한현진은 멈칫했다.“좋은 게 있는데 챙기지 못하면 멍청이죠.”강한서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화가 났는지, 아니면 너무 쌍스러운 말이 싫었는지 그녀를 째려보더니 옷을 갈아입으러 위층으로 올라갔다.한현진이 강한서네 집에 산다는 소문은 이내 지인들 사이에 쫙 퍼졌다.대외적으로 강한서가 기억을 되찾도록 돕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결혼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했다.딸을 목숨처럼 아끼는 송병천인데, 강한서를 사위로 인정하지 않았다면 그집에 보냈겠는가?다만 한현진과 주강운의 열애설이 불거지면서 주씨 가문에서도 두 사람을 결혼시킬 생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
양지원은 고개를 숙인 채 바짓가랑이에 묻은 흙물 자국을 닦고 있었다. 흰색 바지를 입은 게 후회되어 불평을 늘어놓으면서.옆에서 발자국 소리가 났지만 그녀는 가게 직원인 줄 알고 고개도 들지 않았다. 다 정리하고 고개를 드니 주강운이 훤칠하니 테이블 앞에 서 있었다.양지원은 깜짝 놀라며 가볍게 기침을 하고 말했다.“왔는데, 왜 말을 안 해요?”주강운은 피씩 웃었다.“중얼거리고 있길래 뭐라고 하는지 듣고 싶었어요.”양지원은 얼굴을 붉혔다. 정말이지 듣기 좋은 말이 아니었다.표절한 사람을 미친 년이라고 욕했고, 또 주강운은 왜 쇼핑몰에 가지 않고 길가의 식당을 골랐냐고 불평했다. 이 길을 걷지 않았으면 바지를 더럽힐 일도 없었을 텐데, 사람들이 보면 또 뒤에서 지저분하다고 비아냥거릴 텐데 하면서 말이다.“바지가 더럽혀져서 그래요.”주강운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양지원의 설명을 들으면서 의자를 살며시 끌어당겼다.양지원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나지막이 말했다.“저 평소에는 안 그래요.”이번에는 맞은편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어리둥절해서 올려다보던 양지원은 그의 그윽한 눈에 빠져들어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정말 화근이다.그녀는 손을 가슴에 대고, 좋아하지 않아도 이 얼굴을 보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인간은 결국 모두 시각적인 동물이다.“참, 저한테 도움 청할 일이 있다고 하셨는데, 무슨 일이에요?”주문한 후 양지원은 화제를 돌려 먼저 입을 열었다.“급하지 않아요.”주강운이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먼저 그쪽 친구분 상황을 얘기해봐요.”양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사건은 복잡하지 않았다. 심지어 전혀 어렵지 않다고 말할 수 있었다.양지원의 고등학교 동창이 대학을 졸업하고 인터넷 작가가 됐는데, 얼마 전 저작권 침해를 당했다. 표절자는 그녀의 시나리오, 캐릭터, 복선을 도용해 2차 창작의 명목으로 플랫폼에 작품을 발표하고 불법으로 이익을 챙겼다.게다가 독자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