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서 씨... 어리시죠. 제 사촌 여동생과 나이가 비슷해요. 성격도 그렇고요. 조용하게 있을 땐 귀엽죠.”“...”‘민 실장, 이 귀신 같은 놈. 말은 잘하네.’어리다는 건 나이가 맞지 않다는 말이었다. 사촌 여동생과 나이가 비슷하다는 건 동생 같다는 것이었다. 조용하게 있을 땐 귀엽다는 것은 평소엔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뜻이었다. 결국은 마음대로 인연을 맺어주려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정인월은 민경하의 말뜻을 못 알아들은 사람처럼 말했다. “2개월 동안 민 실장이 회사에서 민서에게 일을 가르쳤다고 들었네. 지금은 많이 배운 것 같아. 그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오냐오냐 키워서 누구 말도 안 듣는데, 자네가 그 아이를 이렇게까지 이끌어줄 수 있다는 건 민서도 자네를 인정하는가 보네.”민경하가 말했다. “민서 씨가 똑똑하고 잘 배우셔서 그래요. 전엔 그저 노는 데에만 정신이 팔렸지만 지금은 마음을 다잡았으니 실력이 빨리 느는 것도 당연한 일이죠. 그리고 민서 씨가 제 말을 잘 듣는 게 아니라, 아무래도 대표님께서 카리스마가 있으셔서 그런 걸 거예요.”어떻게든 피해 가려는 민경하의 모습에 조금 우울해진 정인월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민 실장, 민서가 별로인가?”민경하가 에둘러 표현했다. “전 민서 씨 좋게 보고 있어요. 지금 상태만 잘 유지하신다면 앞으로 충분히 좋은 성과를 내실 수 있을 거예요.”“됐네.”정인월이 민경하를 노려보았다. “내 손주사위가 되는 게 그렇게 싫은가?”말문이 막힌 민경하가 한참 만에야 대답했다. “회장님, 연애라는 건 서로가 원해야 하는 거잖아요. 저에게 민서 씨는 그저 동생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에요. 물론 민서 씨도 그럴 거고요.”“마음이야 서로 알아가면 되지.”정인월이 말했다. “민서 성격이 고집스러워서 싫은 건가? 민서가 본성이 나쁜 아이는 아닌데 교육을 잘못 받아서 그래. 이젠 내 몸이 하루하루가 옛날 같지 않으니 한서 남매가 잘 지냈으면 하는 마음뿐이라네. 한서는 자기 주견이 있
강한서가 멈칫했다. “이 말이 다친 적이 있다고요?”“전에 도련님께서 강운 도련님과 시합하실 때 강운 도련님이 타신 것이 바로 이 말이에요. 당시 말이 통제 불능이 되었던 것도 부상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목 여기에...”서수만은 말하며 말의 머리를 밀어 목 밑의 털을 강한서에게 보여주었다. “이 사이에 상처가 길게 나 있었어요. 무엇에 긁힌 것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못이나 그런 날카로운 물건이었을 거예요. 고삐를 잡아당기면서 상처가 깊어져 통증 때문에 통제 불능이 된 거였어요.”“그 상처는 잘 낫지도 않아 찢어지고 아물기를 반복하다 한 달 만에 겨우 다 나았어요. 지금까지 이곳엔 털이 자라지 않고 있죠. 오늘 승마하실 때 아마 이곳을 건드려 그렇게 반응했던 것 같아요.”훈련사는 오랫동안 말들과 지내며 정이 많이 쌓였다. 그는 강한서가 그 말을 팔거나 안락사를 시킬까 봐 말을 대신해 사정했다. “도련님, 평소엔 온순한 아이예요. 사람도 잘 따르고 우승도 한 적 있어요. 만약 다치지 않았다면 절대 그럴 리가 없었을 거예요.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제가 잘 훈련할게요.”정신이 든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전 훈련사님께서 하신 얘기가 기억나질 않네요. 당시 강운이가 다쳤었나요?”“도련님께서 제때 구해주셔서 강운 도련님은 다치지 않으셨지만 오히려 도련님께서 팔이 탈골되셨었죠.”강한서는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오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만약 다음에도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이 말은 다른 곳으로 보내세요. 사람을 다치게 하는 말은 여기 계속 둘 순 없어요.”훈련사가 얼른 장담하며 말했다. “다음엔 절대 이런 일 없을 겁니다.”강한서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그 말의 상처 부위를 한참 동안 빤히 쳐다보더니 곧 돌아서서 승마장을 벗어났다. 그 시각. 한현진은 돌아가는 길에 김 교수님에게 전화했다. “교수님, 지금 한주에 계세요?”“네. 여쭤볼 게 있어서요. 지금 시간 괜찮으세요?”“네. 그럼 제가 도착하면 주소
김수철이 손을 내저었다. “지금 중요한 건 현진 씨예요. 얼른 검사해 보세요. 몸조리가 아직 완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이 되었으니 만약 무슨 문제가 있다면 최대한 빨리 아이를 지켜야 해요.”긴장하지 않고 있던 한현진은 김수철의 말에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녀는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차미주에게 전화해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고 했다. 한현진은 한성우를 데리고 오지 말라는 당부를 깜빡 잊고 하지 못했고, 결국 차미주는 한성우와 함께 한현진에게로 왔다. 차에 탈 때, 한현진은 차미주에게 나지막이 얘기했다. “성우 씨는 왜 같이 온 거야.”차미주가 대답하기 전에 한성우가 말했다. “형수님, 제가 없으면 형수님께서 병원에서 검사를 마치고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혼전 임신했다는 사실은 바로 기사화될 거예요. 제가 있으면 기사는 제가 다 내릴 수 있어요.”차미주가 말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임신 테스트기를 사 왔으니 뒷처리 정도는 책임져야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성우 씨가 계시면 언론사에서 사진을 못 찍을 수는 있겠지만, 성우 씨 입은 아마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만들겠죠.”한성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저 입 무겁다고요.”한현진이 “제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요.”라는 표정을 지었다. 차미주가 물었다. “현진아, 어쩔 생각이야? 만약 임신이면 강한서에게 안 알려줄 생각인 거야?”한현진이 대답했다. “알려줄 거야.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야. 그 전에 이 사실이 새어나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그녀는 말하며 한성우는 쳐다보았다. “성우 씨는 내 계획의 옥에 티예요.”한성우는 할 말을 잃었다. 차미주는 곧 무섭게 한성우를 노려보았다. “오늘 일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고 당장 맹세해.”한성우는 차미주가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남자친구보다 친구가 중요한 여자친구를 만났으니 뭐 어쩔 거야?’‘바라는 대로 해줄 수밖에.’한성우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오늘
차미주와 한현진 모두 말문이 막혔다. 한성우는 뻘쭘한 표정을 지으며 욕을 지껄였다. “헛소리하지 마요. 이 분은 내 친구예요.”그러더니 차미주를 옆으로 끌어왔다. “여긴 내 여자친구. 검사하실 분은 내 여자친구의 친구세요.”차미주가 한성우를 밀어버리며 말했다.“누가 네 여자친구야? 마음대로 그렇게 부르지 마.”한준우은 조금 의외인 듯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마치 “너도 이런 날이 있구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한성우의 형은 의사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고 가볍게 한성우를 놀린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미 준비해 뒀어요. 여기 유 선생님께서 안내하실 겁니다. 어떤 검사를 진행하는지도 유 선생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한현진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전하고 한성우의 형 옆에 있던 여자 의사와 자리를 벗어났다.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차미주는 모든 과정을 동행했다. 그들이 자리를 떠나고 나서야 한성우의 형은 한성우를 쳐다보았다. “언제 여자친구를 사귄 거야. 어머니, 아버지께 그런 얘기는 들은 적 없는데. 얼마 전에도 나한테 우리 병원 의사를 너에게 소개해 주라고 하셨어.”한성우가 나른하게 창가에 기대며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말씀드리면 다음 날 바로 집으로 찾아가서 조부모님까지 조사하려고 하실 거잖아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호구조사 하는 줄 알겠어요.”한준우이 소리 내 웃었다. “아무래도 네가 제일 잘나가니까 그런 거지. 너에게 여러모로 어울리는 아가씨로 찾아서 결혼시켜 아이도 낳고 그러시려는 거야.”한성우가 코웃음을 쳤다. “본인들이 낳은 아이도 신경 쓰지 않으시면서 손주를 바라시다니, 웃기시네요.”한준우은 한성우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 형제는 사이가 좋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서로 겪은 일들은 비슷할 수밖에 없었다. 한성우는 농촌에서 자라며 최소한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살 수 있었지만 부모님 곁에서 자란 다른 형제들의 동년은 부모님이 없는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삐딱선을 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일
차미주는 이미 잔뜩 흥분해 있었다. “이게 바로 내 딸이야? 세상에, 이렇게 작다니. 너무 신기해.”그러면서 차미주는 한현진에게 말했다. “현진아, 현진아. 빨리 봐. 내가 너 임신이라고 했잖아.”울컥한 한현진은 한참 만에야 대답했다. “왜 이렇게 작아요? 안 건강한 거 아니에요?”그 말에 유소민이 웃었다. “이제 한 달밖에 안 됐으니 작은 게 당연해요. 건강한지 아닌지는 어떻게 보아낸 거예요?”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전에 제가 몸이 안 좋아서요. 아이에게 영향이 있을까 봐 걱정이거든요.”유소민이 멈칫하더니 물었다. “모든 검사 결과가 나와야 저희도 판단할 수 있어요. 지금은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으세요. 마음 편히 계시면 돼요.”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후 다시 물었다. “선생님, 제 남편이 정관 수술을 했는데 아기에게 영향이 있을까요?”유소민이 할 말을 잃었다. “남편분께서 정관 수술을 했는데 어떻게 임신을 하신 거죠?”한현진이 말했다. “아마도 수술이 실패하지 않았을까요?”유소민은 이 초보 엄마에게 말문이 막혔다. “일반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된다면 태아가 조금 더 큰 뒤에 정밀 검사를 받아보시면 돼요.”알겠다던 한현진은 곧 또 다른 질문을 떠올리고는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음주는 아기에게 영향이 있을까요?”“당연하죠. 임신하셨는데 어떻게 술을 마셔요?”유소민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술 드셨어요?”한현진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전에 임신인 줄 몰라서 조금 마셨어요.”“조금이라면 얼마나 마셨어요?”한현진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차미주가 말했다. “반병이요. 바로 어제 마셨어요. 그때는 임신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안 하고 있어서.”유소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엄한 태도로 한현진을 꾸짖었다. 한현진의 얼굴이 잿빛이 되었다. 왜 진작 임신일 걸 눈치채지 못했을까? 진작 알았다면 누가 뭐라고 하든 주강운과 술을 시음하러 가지 않았을 것
애초부터 강한서는 다리를 심하게 다친 것이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와병하며 근육이 위축되었던 것뿐이었다. 본가로 돌아온 며칠 동안 재활 훈련과 음식 조절을 열심히 하고 있었으니 그의 몸도 빠른 속도로 회복이 되었다. 비록 건강은 많이 좋아졌지만 송가람은 점점 더 말이 없어지는 강한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강한서의 냉담함에 은근히 불안해진 송가람은 먼저 한현진 얘기를 꺼냈다. “요즘 현진 씨가 집에 없으니 집안 분위기가 허전한 것 같아요. 비록 현진 씨가 전엔 계속 제가 한서 오빠를 구한 일로 저를 원망하긴 했지만 사실 전 집에 여동생이 있는 게 좋았거든요.”한현진의 이름을 들은 강한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송가람이 혼잣말하듯 말했다. “아빠에게 들었는데 친구와 바람 쐬러 여행을 갔다고 하더라고요. 현진 씨는 워낙 친구가 많아서, 지난번엔 강운 오빠와 가더니 이번엔 누구와 함께 갔는지 모르겠어요.”강한서는 여전히 송가람의 말에 대꾸는 하지 않더니 오히려 그녀에게 물었다. “가람 씨. 할머니가 어제 이젠 제 다리도 거의 다 회복이 되었으니 시간을 내 감사 인사를 전하러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아저씨께 이번 주말에 시간이 있는지 물어봐 주시겠어요? 만약 시간이 맞으면 이번 주말에 찾아뵐게요. 이번 기회에 가람 씨가 절 구한 일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 드려야겠어요. 그래야 가람 씨를 곤란하게 하지 않을 테니까요.”송가람이 멈칫했다. 그녀는 순간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네. 돌아가서 아빠께 여쭤볼게요.”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간을 확인했다. “기사님께 모셔다드리라고 할게요. 저도 이젠 쉬어야겠어요.”송가람은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강한서의 건강이 점점 좋아지고 있으니 송가람에게는 이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그녀가 떠난 후 강한서는 쉬어야겠다던 자기 말대로 방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은서의 방으로 향했다. 그림을 그리고 있던 꼬마 아가씨는 노크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찾아온 사람이 강한서라는 것을 확인한 은
“그러면 현진 이모는 왜 안 오는 거예요?”강한서가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어떻게 알겠어. 궁금하면 네가 직접 물어봐.”은서가 강한서를 노려보았다. “전 현진 이모 전화번호도 모르는데 어떻게 물어봐요?”강한서는 은서를 힐끔 쳐다보았다. “넌 능력도 대단한 애가 그 사람 전화번호도 못 구한 거야?”강한서 때문에 화가 난 은서는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또 한참을 은서 방에 머문 강한서는 은서가 그린 그림에 대해 평가를 늘어놓았다. 결국 화가 난 은서가 더는 자기를 상대하지 않자 강한서는 그제야 방을 나섰다. 강한서의 말에 충격을 받은 것인지, 은서는 자기가 그린 그림을 보면 볼 수록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막 그림을 찢고 새로 그리려던 은서의 눈에 갑자기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이 들어왔다. 강한서가 은서 방에 놓고 간 휴대폰이었다. 휴대폰을 강한서에게 돌려주려던 은서는 갑자기 빈정대던 강한서의 말을 떠올렸다. 그러더니 은서는 강한서의 휴대폰에서 한현진의 전화번호를 찾아보았다. 새로 바꾼 강한서의 휴대폰은 비밀번호도 설정하지 않아 은서는 쉽게 한현진의 전화번호를 찾을 수 있었다. 은서는 생각도 하지 않고 한현진에게 전화했다. 퇴원한 한현진은 이제 막 클라우드 아파트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려는데 휴대폰이 진동했고 화면을 확인한 그녀는 조금 의아해졌다. 강한서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사실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된 그 순간부터 그녀가 제일 먼저 그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던 사람은 다름 아닌 강한서였다. 전화를 받은 순간, 한현진은 강한서가 자기를 기억하든 말든 대뜸 임신한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는 충동이 생겼다. 하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휴대폰 너머에서는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 이모, 저 은서예요.”그 목소리에 멈칫하던 한현진은 추모회에서 강단해에게 등 떠밀려 앞으로 나왔던 아이를 떠올렸다. 당시 한현진은 하마터면 그들이 퍼드린 소식이 현혹될 뻔했
깜짝 놀라던 은서는 의자에서 뛰어 내려와 종종걸음으로 문 쪽으로 뛰어가더니 고개를 내밀고 밖을 내다보았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고 집 안 청소를 하는 도우미가 계단 손잡이를 닦고 있을 뿐이었다. 다만 문 앞에 화분이 놓인 바닥에 흙이 흩어져 있었다. 은서는 휴대폰을 쥐고 한현진을 불렀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대답이 없어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니 어느샌가 전화는 끊어져 있었다. 은서가 다시 전화하려고 했지만 강한서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내 휴대폰 네 방에 있어?”얼른 손가락을 움츠린 은서는 휴대폰을 바로 강한서에게 돌려주려 했다. 하지만 갑자기 무언가를 떠올린 아이는 손을 등 뒤로 숨기며 딜을 하기 시작했다. “현진 이모 전화번호 알려주면 휴대폰 돌려줄게요.”강한서가 은서를 힐끔 쳐다보았다. “내가 알려줘도 네 전화는 받지 않을 거야.”“현진 이모는 삼촌처럼 속 좁은 사람이 아니거든요.”은서가 중얼거리며 말했다. “받든 안 받든 삼촌 번호만 주면 되요.”강한서는 은서를 잠시 쳐다보더니 말했다. “네가 휴대폰을 안 주면 내가 어떻게 알려줘?”내가 찾겠다고 말하려던 은서는 또 강한서가 자신이 한현진에게 전화한 사실을 알게 될까 두려워 그에게 휴대폰을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휴대폰을 가진 강한서는 그대로 몸을 돌려 나가버렸다. 멈칫하던 은서가 얼른 잰걸음으로 강한서를 쫓아갔다. “현진 이모 번호 아직 안 줬잖아요.”강한서는 키가 크다는 우세를 발휘해 두 손가락 사이에 휴대폰을 끼워 가슴 앞에서 흔들어 보이며 여유롭게 말했다. “사회생활 제1강. 그 어떤 사람의 약속도 쉽게 믿지 말 것. 설사 제일 가까운 사람과의 약속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야.”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은서는 강한서의 다른 한쪽 손을 붙잡더니 그의 손등을 꽉 깨물었다. 강한서는 은서 옷에 달린 모자를 들어 올렸다. 은서는 마치 병아리처럼 쉽게도 강한서에 의해 들어 올려졌다. 은서는 여전히 강한서의 손을 깨물고 있었다.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분노에
알겠다고 대답한 한현진이 전화를 끊기 전 호기심을 못 이겨 물었다. “오빠, 문채영 씨와는 어떻게 됐어요?”멈칫한 송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한서 그 자식 혹시 네 옆에 있어?”한현진이 움찔하며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가로젓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한현진이 대답했다. “아뇨. 샤워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말을 믿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개의치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걔한테 내 말 똑바로 전해. 다음에 또 이렇게 입을 가볍게 놀렸다간 내가 그 입을 꿰매 버릴 거라고.”강한서: ...그 말에 한현진이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렸다. “사실 강한서는 별말 안 했어요...”송민준은 더는 아무 말 없이 일찍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송민준의 얼굴이 공개된 후, 한열의 바람 스캔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람들도 점차 한현진이 한열의 사촌누나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열의 성추문은 여전히 일파만파 퍼져나갔다.한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성의 페이스북 계정은 [아기 고구마]였다. 이 계정은 피드를 올릴 때마다 다음 업로드 시간을 예고하며 다음엔 마치 증거를 공개할 것처럼 사람들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에 [아기 고구마] 계정의 팔로워는 점차 늘어갔다. 하지만 예고와는 달리 매번 터무니없는 사실들만 업로드 했고 그 피드의 내용으로는 한열이 여자 연예인을 성추행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정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하룻밤 사이, 한열의 팔로우는 십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한열의 회사 측에서는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을 공개하며 이미 경찰에 신고를 마쳤고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열의 회사에서 소장을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고구마]도 페이스북에 점심 열두시부터 라이브 방송으로 빼박 증거를 공개해 한열과 직접 맞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에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말을 아끼던 윤명훈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계약 해지 때문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회사에서는 쿨하게 한열을 보내줄 마음이 없거든요.”그가 한현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현진도 알 수 있었다. 윤명훈은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한열이 아직 취해 있는 지금 그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윤명훈은 한현진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제가 잠시 후 해명글을 올릴게요. 명훈 씨는 신하리 씨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는 기사들 처리해 달라고 연락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선임해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요.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해명하기 어려워질 거예요.”한열의 바람 스캔들을 터트린 건 그저 페이크에 불과했다. 성추문으로 한열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만약 한현진이 한열의 회사 대표였다면, 자신의 두 손으로 탑급의 자리까지 올린 아이를 이렇게 쉽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계약을 해지 한다고 해도 한열의 빛을 어느 정도는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한열은 신하리라는 충무로 연기파 배우의 인맥까지 갖고 있으니 앞으로 어느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끝장을 볼 이유는 없었다. 연예계에게는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 영원한 적은 없는 법이었다.그러니 이번 일은 오히려 누군가 한열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꾸미고 있는 일 같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세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 했다. 다만 송민준의 눈은 모자이크 처리했다.[저희 오빠와 사촌 동생이 그렇게까지 닮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신하리]사진 속에서 한현진은 가운데 서 있었고 그녀의 왼쪽엔 송민준이, 그리고 오른쪽엔 한열이었다. 막내 동생인 한승은 아예 잘라버린 후 사진을 업로드 했다.비록 송민준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하긴 했지만 하관만 보아도 한열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
한현진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 예능부 기자 채용 문턱이 이 정도로 낮아진 거야? 두 눈이 멀어도 기자로 활동할 수 있나봐?”진윤: ...‘우리 여신님 사석에서는 이렇게 독설을 날리는 사람이었어?’휴대폰 너머에서 한참을 듣고 있던 차미주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사진 너와 한열 아니야?”한현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건 나랑 오빠야.”“하지만 이 사진들은 정말 한열과 비슷해 보여. 게다가 네 오빠가 운전한 거 한열 차 아니야?”한현진은 그날 송민준이 운전한 차를 눈 여겨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정말 한열의 차를 운전하고 온 거라면 파파라치가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다시 페이스북을 다운로드 받고 인기 검색어를 확인한 한현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연예 부문의 인기 검색어의 TOP 5는 전부 한열의 바람에 관한 이슈가 차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꽃뱀, 이열 커플 사이에 끼어들다], [이열 커플, 결별 위기 스크린 밖에서도 삼각관계], [한열 살아있네], [찐사랑을 못 숨겨] 등이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검색어들이 가득 했다. 한현진이 페이스북에 로그인하자 수백 개의 DM과 십만 개가 넘는 댓글이 쏟아졌다.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신하리와 한열 두 사람의 팬들의 남긴 수많은 욕이거나 일반 네티즌의 호기심에 가득한 댓글일 것이 분명했다. 인터넷이 얼마나 필터 없이 악랄한 글로 난무한 곳인지 잘 알고 있는 한현진은 아예 댓글을 확인하지도 않고 뉴스피드로 들어갔다. 한열과 한현진의 기사는 두 시간에 터졌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각 마케팅 계정에서는 이미 타임 라인까지 정리한 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한현진은 관련 피드를 대충 훑었다. 마케팅 계정의 분석에 의하면 한열과 신하리는 [살의] 촬영 이전에 이미 사귀기 시작했고 송민영이 하차된 후 한열이 자신의 여자친구인 신하리를 여주인공으로 추천했으며 영화 홍보 현장에서의 친밀한 스킨십 사진이 폭로되어 어쩔 수 없이 공개 연애를 택한 것이었다. 그 계정
한현진은 반나절이 걸려서야 일의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쩐지 지난번 홍혜림 씨 사건이 있었을 때 왜 진윤 씨가 갑자기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키나 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거잖아.’순간 한현진은 뻘쭘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방금 전화를 받고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입도 벙긋하지 말았어야 했다. 진윤의 말처럼 이건 정말 비열한 짓이었다. 유치한 강한서가 벌일 만한 일이 맞긴 한 것 같았다. 강한서 본인 역시 이번 일은 너무 얍삽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어쩌다 아이를 달래주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탓이라고 해. [정상에서]에서 지금 자체 테스트 중인 스킨 한 세트 줄게. 어때?”진윤이 작게 울먹이며 말했다. “스킨 세 세트?“강한서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와중에 딜을 하는 걸 보니 그리 큰 상처를 받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세 세트 전부 줄게.”진윤이 곧바로 울음을 멈췄다. 절판되어 더는 살 수 없는 게임 스킨과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여신 중 아무리 바보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래요. 제가 오해한 거라고 하죠.”말하며 한현진을 쳐다보던 진윤은 여전히 아쉬워하며 말했다. “현진 누나, 왜 이렇게 빨리 결혼하셨어요. 남자 때문에 손에 넣었던 트로피도 놓칠 수가 있어요.”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결혼이 커리어 영향주지 않아. 이간질 하려고 하지 마.”“형님은 남자니까 당연히 영향을 안 받으시겠죠.”강한서에게 농락을 당한데다 하루아침에 구닥다리에게 여신을 뺐긴 진윤은 누구보다 빨리 흑화 했다. “결혼하면 아이도 낳아야 하잖아요. 어떤 유명한 감독이 임산부를 캐스팅하려고 하겠어요. 제일 예쁠 나이를 남편과 아이에게 바치면 나중에 아이가 클 때쯤엔 본인의 레전드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요. 제가 다 아쉬워서 그래요. 너무 불공평해요.”비록 진윤은 그저 이간질을 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그 말은 현실이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커리어엔 고난과 역경이
한현진: ?강한서가 들고 있던 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것은 차미주의 목소리였다. “현진아! 너 내연녀가 되어버렸어. 게다가 그 상대가 네 사촌 동생이래.”강한서: ?강한서는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그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전여친, 현여친이 뭐야?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게다가 이 목소리, 왜 이렇게 귀에 익은 거지?’“저... 저기 혹시 전화 잘못 하신 거 아녜요?”한현진이 나지막이 물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곳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 현진 누나?”한현진이 멍해졌다. ‘날 알아?’“네. 제가 한현진이예요. 누구세요?”상대방은 말이 없었다. 그에게서는 그저 조금 흥분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강한서가 한현진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무슨 일이야?”진윤이 이를 악물었다. “방금 전화 받은 사람 누구예요!”강한서가 말했다. “내 와이프.”“그럴 리가 없어!”진윤이 바득 이를 갈았다. “이 사생팬 같은 아저씨가! 혹시 일부러 날 속이려고 옆에 성대모사하는 분이라고 모셔놓은 거 아녜요?”강한서가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너처럼 유치한 인간인 줄 알아? 그리고 현진이는 아무도 대체할 수 없어.”진윤은 강한서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거짓말 좀 그만 해요. 현진 누나는 지금 그 티베탄 마스티프와 데이트하는 중이라고요. 만약 누나가 정말 형님 와이프라면 형님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누나가 딴 남자와 데이트하는 걸 지켜볼 수 있어요?”더 이상 진윤을 대꾸하기 귀찮았던 강한서가 그에게 영상통화를 보냈다. 몇뿐 후, 휴대폰 화면으로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여신과 딱 붙어 앉아있는 전남편 형님을 확인한 진윤은 순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한현진은 휴대폰에 비춰진 진윤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진윤 씨가 강한서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 거야?’진윤은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어댔다. “거짓말쟁이! 뻔뻔한 인간! 전
유난히 예쁘게 잘 나온 사진을 보며 한 현지는 신난 얼굴로 고개를 돌려 강한서에게 보여 주었다. 하지만 멍청하게 나온 것 같다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강한서는 굳이 자신이 찍겠다면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한현진이 눈을 실룩거렸다. “네가 사진을 찍겠다고? 168cm인 나를 138cm로 만들어 버리는 네가? 강 대표님 본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강한서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 실력이 그렇게 별로야?”한현진이 말했다. “쌀을 뿌린 휴대폰을 닭이 부리로 쪼아도 내가 찍은 것 보단 낫다고 할 수 있어.”왠지 수치를 당한 것 같은 기분에 강한서가 이를 악 물면 말했다. “그럼 난 왜 우리가 데이트했을 때 내가 찍어준 사진을 밤새도록 보고 있었던 거야?”강한서가 괜히 그 얘기를 꺼낸 탓에 잊혀 가던 한현진의 기억이 문득 돌아왔다.“사진을 보면서 넌 그저 사진을 찍을 줄 모르는 것뿐이라고 날 설득 하지 않는다면 호텔 앞에서 바로 너와 싸우 버릴 것 같았거든. 내 외모에, 감독님께서도 나에게 각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 하셨는데 넌 대체 어떻게 날 사실 눈으로 찍을 수 있었던 거야?”강한서: ...“사시눈... 처럼 나왔어?”한현진이 일을 악물었다. “내가 뛰어다니는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하니까 유체 이탈한 것처럼 찍어줬잖아! 내가 피드를 업로드할 때 실수로 그 사진까지 넣었더니 애들이 나한테 대체 어디서 이런 심령사진을 찍었냐고 물었었어.”“...”활활 타오르던 강한서의 분노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어쩌다 가끔... 몇 십 장뿐이었잖아.”한현진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하.”뭔가를 말하려던 강한서가 고개를 숙이자 무릎 정도까지 오는 어린 아이가 옆에 쭈그려 앉아 불쌍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아저씨, 아직 더 놀 거예요? 저희 잠깐 놀게 해주시면 안 돼요?”강한서가 고개를 돌리자 뒤에는 어린 라이 대여섯 명이 줄을 서 있었다. 한현진: ...창피함에 고개
“하하하.”한현진이 마른 웃음을 지었다.“오빠. 제가 티슈 없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강한서가 눈을 씰룩였다. 그야말로 완벽한 핑계였다. 그는 입술을 달싹여 아내를 따라 염치 없이 말했다. “형님, 저도 없어요.”송민준이 가방과 티슈를 두 사람에게 던지며 강한서를 노려보았다. 탁, 소리와 함께 문이 닫겼다. 한현진: ...“오빠가 나한테 화 난 건 아니겠지?”강한서가 우울하게 말했다. “너보단 날 먼저 걱정해야 할 것 같아. 네 오빠가 아무리 너에게 화가 나도 결국은 나에게 그 화살이 돌아올 거야.”한현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마음이 좀 놓이네.”강한서: ?한현진이 그의 손을 잡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어차피 오빠가 널 탐탁지 않아 한게 하루 이틀도 아니잖아. 오늘 이 일로 크게 달라지진않을 거야.”“...”‘행복은 본인이 누리고 잘못은 내가 뒤집어쓰고. 정말 좋은 아내네.’강한서는 한현진을 데리고 호텔 라운지로 향했다. 입덧이 끝난 이후로 한현진의 식욕은 줄곧 안정적이었다. 매 끼니마다 많이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지만 배고픔도 빨리 찾아왔기에 하루에 몇 끼씩 먹어야 했다. 그 덕에 지금의 한현진은 송아지처럼 튼튼하기만 했다. 강한서는 임신한 한현진을 위해 오랫동안 공부했지만 한현진에게는 하나도 쓸모가 없었다. 그의 주변엔 임산부가 많이 없었지만 많은 아내들이 임신 후 남편을 괴롭힌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현진에겐 모든 임신의 호르몬 변화가 거짓말처럼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 의사는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큰 반응 없이 잘 먹고 잘 지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의사는 강한서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시간이 날 때마다 산책을 자주 다니며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으면 된다고 했다. 한현진은 정서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 조금 유치해지기도 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한현진은 강한서의 팔을 끌며 굳이 아이들의 흔들 목마에게 타게 해달라며 떼를 썼다.
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채영 언니.”문채영이 가방에서 포장한 선물 박스를 건넸다. “첫 만남이라 어떤 선물을 준비하면 좋을지 몰라 제가 직접 향낭을 만들었어요. 향 맡아봐요.”한현진이 조금 의외라는 듯 말했다. “언니도 조향하세요?”문채영이 미소 지었다. “제가 조향에 입문하게 된 것도 민준이 덕분이었어요. 전엔 이런 거 만드는 거 좋아했었거든요.”한현진은 다시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그녀는 조향하는 송민준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줄곧 송민준은 그쪽으론 취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송민준은 그 얘기를 꺼내는 것이 불쾌한 듯 담담하게 말했다. “주문부터 해. 배고파.”멈칫하던 문채영이 시선을 내려 눈에 맴도는 서운함을 숨겼다. 한현진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언니, 오랜만에 오셨을 텐데 오늘은 한주 음식으로 드시는 게 어때요?”문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요. 현진 씨가 먹고 싶은 거로 주문해요.”주문한 음식 서빙을 마치고 룸을 나서려는 종업원에게 송민준이 갑자기 말했다. “장어 국수도 주문할게요.”문채영이 힐끗 송민준을 쳐다보자 시선을 올린 그가 마치 변명이라도 하듯 말했다. “환영회에 국수가 빠질 수 없지.”‘그래, 환영회에 국수가 빠질 수 없다고 하는 건 그렇다고 쳐. 하지만 하고 많은 국수 중에 왜 하필 장어 국수야?’‘오빠가 장어 국수라고 말할 때 언니 표정을 보면 설마 두 사람 사이에 장어 국수와 관련된 스토리가 있었던 건가?’호기심이 활활 불타오른 한현진이 몰래 테이블 아래로 강한서의 손을 꼬집었다. 그러자 강한서는 그녀에게 새우를 발라 주었다. 한현진: ...강한서과 문채영은 너무 친한 사이였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한현진은 문채영의 외할머니와 강한서의 할머니가 먼 친척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워낙 촌수가 먼 사이라 피가 거의 섞이지 않은 가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알고 지낸지 한참 후에야 두 가문이 몇 세대 전에는 친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