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이 폭로된 순간, 유현아는 바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입양된 ‘고아’였든, 아니면 17이든 유현아가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여론을 조작해 인기를 얻은 수법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대중을 더 분노하게 한 것은 유현아는 유치원 사건으로 이득을 본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유치원 사건의 내막을 누구보다 제일 잘 아는 사람이면서 SNS를 통해 방귀 낀 놈이 성내는 식으로 사건의 진위를 뒤집으려 했다. 그러니 지정욱이 유현아의 신분을 폭로하자 곧바로 그녀의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 사진, 주소를 비롯한 모든 신상정보가 탈탈 털려 인터넷에 공개되었다. 유현아와 지정욱이 계약을 해지한 당일 오후, 유현아의 휴대폰은 테러 맞은 듯 울려댔다. 심지어 거리에서도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고, 길거리에서 그녀를 향해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하룻밤 사이, 유현아는 여기저기 매를 맞는 동네북이 되었다. 유현아는 감히 집 밖을 나갈 수도 없었고 심지어 배달시키기도 무서웠다. 행여나 배달원이 자신을 알아보고 지금 살고 있는 집주소를 공개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민경하가 유현아에게 새 휴대폰과 음식을 가져다주었을 때 유현아의 상태는 그 전보다 훨씬 더 나빠져 있었다. 그녀는 잔뜩 겁에 질린 강아지처럼 주눅이 들어있었다. 몇 번이나 문을 두드리고 유현아에게 신분을 확인받고 나서야 겨우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요즘엔 일단 이 번호로 저와 연락하면 됩니다. 잠시 여론이 가라앉길 기다리면 괜찮아질 거예요.”뱃가죽이 등에 붙을 듯 배가 고팠던 유현아는 민경하가 하는 말엔 대꾸도 하지 않고 음식이 담긴 주머니를 가로채 빵 하나를 뜯어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허겁지겁 먹는 유현아의 모습을 보며 민경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비록 유현아는 마음이 바르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지금의 처지는 조금 잔인한 것 같기도 했다. 빵에 목이 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유현아를 보며 민경하는 물 한 병을 꺼내 뚜껑을 따서 건넸다. 유현아가 반병 넘게 물을 들이부어
번쩍 정신이 든 유현아가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뭐 하는 거야? 이거 놔!”얼음장처럼 차가운 민경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계신 집이 누가 구해준 건지 잊으신 모양이군요. 유현아 씨 입에서 제가 원하는 정보를 들을 수 없다면 저 역시 유현아 씨에게 예의를 다할 필요가 없겠죠.”민경하는 말하며 문을 열더니 그대로 유현아를 밖으로 내던졌다. 그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던 유현아는 잠시 멍해졌다. “누가 나에게 쪽지를 준 건지 알고 싶지 않아요?”민경하가 냉담한 태도로 말했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유현아 씨가 아니더라도 조사해 낼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단지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죠.”그러더니 민경하는 유현아의 캐리어까지 밖으로 던졌다. 누가 봐도 진심인 민경하의 모습에 유현아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 사람은 나도 찾지 못했어요. 그쪽은 그게 누군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찾아요?”“그건 제 사정입니다.”시간을 확인한 민경하가 말했다. “아직 문단속할 시간이 되지 않았으니 얼른 가시죠. 아니면 경비원 부를 겁니다.”유현아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이를 악물며 말했다. “2억, 2억만 주면 누군지 알려줄게요.”민경하가 경비실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기 모르는 여자가 저희 집에 쳐들어...”십 분 후, 유현아는 욕설을 지껄이며 경비원에게 쫓겨났다. 물론 민경하도 진짜로 포기한 건 아니었다. 그는 유현아 같은 유형의 인간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인간들의 입을 열려면 너무 다급해 해서는 절대 안 될 일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의 가치를 알게 되면, 끝도 없이 그것을 빌미로 상응한 대가를 치르라고 할 것이 분명했다. 당연히 유현아에게 그런 기회를 만들어 줄 수는 없었다. 돈이 없는 데다 모든 네티즌들의 미움을 받고 있으니 얼마 못가 결국 먼저 민경하를 찾아올 것이다. 그때야말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기회였다. 오갈 곳 없는 유현아가 백현석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발신 번호를 확인한 백현석이
말을 마친 백현석이 뚝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유현아의 계좌로 200만 원이 입금되었다. 마스크를 쓴 유현아가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길가에 주저앉아 갑자기 소리내 폭소했다. 웃음소리가 점점 더 커졌고 그녀의 표정은 점점 더 미쳐갔다. 행인들은 그녀를 정신 질환으로 오해하고 하나둘 유현아를 피해 멀리 도망갔다. 통화를 마친 백현석이 3층 테라스를 떠났다. 2층 베란다의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주강운은 시선을 아래로 떨군 채 컵에 있던 찻잎을 아래층 화단에 쏟아버렸다. 지정욱은 유현아를 망가뜨리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SNS에 퍼지던 유현아의 일들은 잠잠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화제를 몰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사람을 고용해 유현아를 괴롭혔다. 유현아가 집 밖을 나서기만 하면 지정욱이 고용한 사람은 유현아의 곁을 따라다녔다. 그 사람은 유현아를 때리지도, 욕하지도 않고 그저 팻말을 들고 세상 모든 사람에게 유현아가 저지른 비열한 짓을 폭로했다. 유현아는 도저히 머리를 들고 다닐 수 없었다. 악랄한 지정욱의 처사는 끝내 유현아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유현아는 아무런 전조 없이 갑자기 새로운 SNS 계정을 만들었다. 공개 라이브 방송을 켠 그녀는 “밥 안 먹는 베베”가 업로드한 동영상의 내막을 공개했다. 수작을 걸던 남자의 동영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하고 찍은 것이었다. 심지어 그 동영상의 대본은 유현아의 작품이었다. 유현아는 대본뿐만 아니라 촬영 현장까지도 공개했다. 영상 속 변태는 회사의 직원이었고 촬영이 끝난 후 회식하면서 어떻게 편집하면 더 많은 어그로를 끌 수 있을지 토론하기도 했다. 그리고 유현아는 지정욱에게 맞은 진단서를 공개하며 “밥 안 먹는 베베”와 지정욱의 부적절한 관계를 폭로했다. 지정욱은 “밥 안 먹는 베베”와 여러 차례 호텔을 드나들었고 직장 내에서도 따돌림이 있었다고 얘기했다. 지정욱은 유현아가 이런 미친 물귀신 작전을 벌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유현아의 라이브 방송 후 “밥 안 먹는 베베”의 팔로워가
전혜지가 한현진의 사무실 책상 앞으로 걸어와 품에 있던 샘플 몇 가지를 내려놓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대표님, 위에는 이번 달 새로 나온 샘플이고 아래는 전에 나온 겁니다. 확인해 보세요.”한현진이 보석 감별 라이트로 사무실 책상에 놓인 샘플을 자세히 확인하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이 샘플들은 왜 이렇게 스크래치가 많아요?”전혜지가 입술을 짓이기며 대답했다. “이번에 들여온 원석으로 만든 샘플은 전부 이래요. 오후에 제품을 가지러 오신 손님들껜 제가 핑계를 대고 시간을 뒤로 미뤘어요. 이런 품질의 제품을 고객님들께 판매할 수는 없어요. 저희 고객님들은 보석 감별 베테랑이잖아요. 제품의 품질 정도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거예요.”잠시 말을 멈춘 전혜지는 아예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대표님, 저도 요즘 회사 매출이 많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요. 재룟값도 인건비도 오르고 있지만 품질은 절대 떨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명품 브랜드가 되려면 원가를 아끼려고 이러면 안 돼요.”잠시 말이 없던 한현진이 입을 열었다. “제가 재룟값을 아끼기 위해 품질을 떨어뜨렸다고 생각하는 거예요?”전혜지가 멈칫하더니 물었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사항이 아니에요?”한현진이 이마를 짚었다. “주얼리는 이미 비싼 가격에 판매하고 있어요. 제가 그런 짓까지 할 이유가 없어요.”한현진이 고개를 들었다. “이 문제를 언제 발견한 거예요?”“어제요. 어제 고객님께서 주문 제작한 제품이 어느 정도까지 완성되었는지 물으셔서 가지러 갔다가 발견하게 되었어요. 이번 제품엔 품질이 나쁜 것과 좋은 게 섞여 있었어요.”전혜지가 민망해하며 말을 이었다. “전 대표님께서 원가를 아끼시려고 지시하신 건 줄 알았어요.”한현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그런 게 아니에요. 하지만 누구 짓인지 대충 알 것도 같네요.”한현진은 그가 조금 더 기다렸다가 손을 쓸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빠를 줄이야.그녀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회사에서 친한 사람
한현진은 사무실에 앉아 공급처의 책임자가 자신에게 한탄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대표님, 저희가 스트레인지와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해왔고, 좋은 물건은 언제든 먼저 스트레인지에 드렸어요. 설사 외상을 하셨다고 해도, 급히 돈 쓸 일만 없었다면 1년을 미루셨어도 재촉하지는 않았을 겁니다.”“수년간의 파트너로서 그 정도 믿음은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번 일은, 너무 막무가내잖아요.”한현진이 컵을 그 사람 쪽으로 밀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 매니저님, 먼저 물부터 마셔요.”상대방이 컵을 받아 들자 한현진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손 매니저님께서 하신 얘기, 어떻게 된 일인지 사실 전 모르겠어요. 원석을 구매하는 건 계속 계 매니저님이 책임지고 진행하던 업무였어요. 저도 손 매니저님이 하신 얘기만 듣고 전부 사실이라고 믿을 수는 없어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계 매니저님을 모셔 오면 직접 얘기하시죠. 그래도 괜찮죠?”손 매니저는 당연히 삼자대면이 두려울 게 없었다. “이 일은 제가 먼저 계 매니저님과 얘기했었어요. 하지만 얘기가 잘되지 않아 이렇게 여기까지 찾아온 겁니다.”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지금 당장 오라고 할게요.”계 매니저는 오늘 학교 학부모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이유로 휴가를 신청한 상태였지만 실상은 불륜녀와 함께 쇼핑 중이었다. 그의 불륜녀는 그 대신 모든 죄명을 뒤집어쓰고 해고당했다. 그러니 어떻게든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보상을 해줘야 했다. 마침 생활이 조금 나아진터라 불륜녀와의 데이트를 위해 휴가를 냈다. 한현진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계 매니저는 불륜녀와 함께 명품점에서 옷을 사고 있었다. 미간을 찌푸린 계 매니저는 불륜녀에게 눈짓을 하고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대표님.”“매니저님, 제가 매니저님께 물어 보고 싶은 일이 있어서 지금 가게로 오셔야 할 것 같아요.”계 매니저가 말했다. “지금요? 저 지금 학부모회에 와 있어서요. 물어 보고 싶으신 게 있으
“제가 언제 물건을 가져갔다고 그래요? 함부로 얘기하지 마시죠.”계 매니저가 말을 이었다. “오해가 있는 게 분명해요. 먼저 돌아가세요. 나중에 제가 이 대표님께 직접 확인할게요.”평소였다면 손 매니저는 당연히 계 매니저의 말을 알아듣고 자리를 비켰을 것이다. 물건을 가지는 사람이 가운데서 차액을 버는 일은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 며칠 회사의 자금 상황은 정말로 좋지 않았고 그로 인해 손 매니저는 대표에게 호되게 혼나기도 했다. 게다가 계 매니저는 그의 전화를 받지 않고 전혀 대화가 되지 않았다. 화가 잔뜩 난 손 매니저는 당연히 계 매니저의 사정을 봐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곧바로 가방에서 십수 장의 외상 영수증을 꺼냈다. 영수증을 받아 확인한 한현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계 매니저를 보며 말했다. “계 매니저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회사 도장은 매니저님이 갖고 계시잖아요.”계 매니저가 얼른 영수증을 가져가더니 이내 당황해하며 말했다. “혹시 다른 사람이 우리 회사를 사칭해 물건을 가져간 게 아닐까요? 사기당하신 거 아니에요?”한현진의 눈빛이 차게 식었다. “진짠지 가짠지도 구분 못 하는 거예요?’계 매니저가 줄줄 식은땀을 흘렸다. 서해금은 비록 한현진에게 스트레인지의 지분과 소유권을 전부 넘겼지만 회사의 회사 도장은 한현진에게 주지 않고 계 매니저에게 맡겼다. 한현진이 전에 회사 도장을 달라고 했지만 계 매니저는 늘 이런저런 이유로 한현진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러니 회사 도장이 계 매니저의 손에 있는 지금 이런 일이 터졌으니, 당연히 그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었다. “대표님, 원자재를 들이는 일은 늘 제가 직접 해왔어요.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시킨 적이 없다고요. 저도 대체 누가 회사 도장을 훔쳐 제 이름으로 물건을 가져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일엔 오해가 있는 게 분명해요.”한현진이 그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그동안 원자재를 직접 가져온 게
한현진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면 이상한 일이네요. 계 매니저님이 제출하신 10억이 넘는 영수증은 누가 발급해 준 걸까요?”계 매니저는 여전히 자신을 위해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건 아마... 새로 온 재무가 실수한 게 아닐까요. 대표님, 지금 제일 급한 건 대체 누가 회사의 도장을 훔쳐 저를 사칭해 그렇게 많은 물건을 가져갔는지 알아내는 거예요.”계 매니저가 말을 이으려는데 부점장이 물건을 가지고 들어왔다. 부점장을 본 손 매니저가 얼른 말했다. “저 사람이에요. 저 사람이 도장을 갖고 와 물건을 가져갔어요. 본인이 스트레인지에서 보낸 사람이라면서요.”계 매니저는 멈칫하더니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는 순간 이 모든 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차렸다. ‘날 사칭하기는 개뿔.’부점장이 한현진의 지시로 그의 이름으로 물건을 가져온 것이 분명해 보였다. 업체에서 대금 상환을 위해 찾아오게 만들어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나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무래도 직접 계 매니저를 찾아가 따진다면, 그와 공급 업체의 사이라면 그의 말 한마디로 충분히 그를 위해 말을 맞춰줄 수 있었다. 한현진은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러니 미리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을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업체 책임자의 앞에서 계 매니저가 몰래 공급 업체를 바꿨다는 것을 폭로해 손 매니저를 불쾌하게 하고 그 사실을 안 손 매니저는 자연스레 계 매니저의 편에 서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진실을 밝힐 수 있었다. 한현진이 차가운 얼굴로 날카롭게 말했다. “마음대로 업체를 바꾸고 가짜 영수증을 만들어 회사의 공금을 횡령하다니. 계 매니저님, 간도 크시네요.”계 매니저는 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는 그는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대... 대표님. 제가 공급 업체를 바꾼 건 맞지만 공금 횡령이라니요. 추측만으로 그런 큰 죄를 저에게 뒤집어씌우시면 안 돼요. 제가 공급 업체를 바꾼 건 그 업체의 원자재가 정말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어요. 저도 회사의
서해금이 잔뜩 굳은 얼굴로 손에 들린 종이를 계건후의 얼굴에 뿌리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못난 놈!”계건후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감히 말대꾸도 하지 못했다. 서해금은 차가운 얼굴로 화를 식히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저 자식이 이런 짓을 했으니 나도 면목이 없구나. 하지만 이럴 때 해고한다는 건 현명한 처사가 아니야. 일단 건후는 가게에서 경력이 제일 오래된 직원이야. 네가 아직 회사를 이어받은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고참 직원을 연달아 해고한다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당연히 네가 회사를 관리할 능력이 안 돼서 대대적으로 물갈이를 하려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 그리고 스트레인지는 지금 사람이 부족한 상황이야. 만약 이런 상황에 건후를 해고한다면 널 위해 중심을 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문제가 생길 거야. 마지막으로 네가 일을 크게 만들어 제품 품질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새어나가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회사의 모든 제품의 품질을 의심할 테고, 그러면 매출에 영향을 주게 되겠지.”한현진은 마음속으로 냉소 지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마치 겸허하게 충고를 받아들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주머니, 그러면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요?”서해금이 말했다. “내가 봤을 땐, 일단 건후를 해고하지 말고 잘못을 뉘우칠 기회를 주는 게 좋을 것 같아. 만약 계속 버릇을 못 고친다면 그때 해고해도 늦지 않아.”“하—”한현진이 피식 웃음 흘렸다. “저 사람이 제 돈을 훔쳤는데, 제가 계속 도적질하도록 주머니를 열어줘야 한다는 건가요? 게다가 회사의 공금을 횡령하는 건 범죄예요. 전 이런 일은 경찰에게 맡기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계건후가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입을 열었다. “이모...”입을 열기도 전에 서해금과 눈을 마주친 그가 꿀꺽 말을 삼켰다. 서해금이 입술을 짓이겼다. “현진아, 건후가 비록 잘못을 저질렀지만 회사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고생도 많이 했어. 네가 스트레인지를 이어받은 후에도 널 최선을 다해 도왔고. 물
신하리는 말하며 예쁜 눈웃음을 지었다. “저 정신병 있는 거 다들 아시죠?”그 말에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얼마 전, 신하리가 한 드라마 촬영 중 현장에서 갑자기 귀신에 쓰인 사람처럼 아무런 안정장비도 하지 않은 채 6미터가 넘는 곳에서 뛰어내려 뼈가 부러진 사건이 있었다. 다들 신하리에게 왜 뛰어내렸냐고 묻자 그녀는 아래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그러나 당시 상황을 증명해 줄 동영상은 없었고 그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듣고 지나보냈었지만 지금 신하리의 입으로 직접 그녀에게 정신병이 있다고 말하니 그때의 사건을 떠올린 사람들은 순산 오싹함을 느껴야 했다. 이건 분명한 경고였다. 마치 난 심신이 미약한 사람이라 너에게 정말 염산을 뿌려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으니 내 말을 장난으로 가볍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신하리의 등장으로 [아기 고양이]의 라이브 방송의 인기는 더 뜨거워졌다. 댓글에도 다양한 의견이 더 많아졌다. [사랑에 눈이 먼 연예인 1위! 보상은 산에서 산나물 캐기 18년!][신하리 미친 거 아녜요? 이렇게 대놓고 협박이라니.][면전에 협박하는데 아직도 신고하지 않는다고? 증거가 없는 거야, 아님 애초부터 한열을 모함하고 있었던 거야?][성추행을 한 사람도 경찰서에 신고했는데 당한 사람은 대체 뭐가 무서워서 신고하지 않는 거야.][지난번에 스스로 신고한 인간은 아직도 감옥에서 사회봉사 중이예요.][만약 지금 당장 신고한다면 전 아기 고구마 말을 믿을 거예요. 계속 이런 식으로 수작을 부리는 건 오히려 한열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작당 모의에 더 가까워 보여요.][지금 루머를 퍼뜨리는 건 너무 쉬운 일이 됐어요. 스크린샷 몇 장이면 바로 스토리를 짤 수 있으니까요.]여론이 점차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멀어지자 [아기 고구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지금 저 협박하시는 거예요? 아
신하리의 라이브 방송 연결 요청에 [아기 고구마]가 잠시 멍해졌다. 무의식적으로 옆을 바라보던 그녀가 곧 시선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은 그 미세한 행동을 포착하지 못했지만 한현진에겐 들키고 말았다. [아기 고구마]는 혼자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 듯 했다. 그녀의 옆에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던, 궁금증 해소를 위해 모인 사람들과 진실 규명을 바라는 팬들이 미친 듯이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겁쟁이! 네가 그러고도 무슨 남자야! 사건이 터지면 뒤로 물러나 여자친구가 나서서 모든 걸 감당하게 하다니. 네 팬이었다는 게 너무 후회돼!][끼리끼리는 과학이라잖아요. 한열이 이런 쓰레기라면 신하리도 그리 좋은 인간은 아니지 않겠어요? 연결해요.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죠.][언니! 얼른 입도 벙긋 못하게 증거를 뿌려버려요. 저런 인간은 아이돌을 할 자격이 없어요.][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난 영원히 한열을 믿을 거야!][덕질에 도덕 같은 건 중요하지도 않나보네.]...[아기 고구마]는 사람들의 부추김에 신하리와 라이브 방송을 연결했다.신하리의 모습이 라이브 방송 화면에 나타나자 카메라는 신하리의 얼굴을 향해 바짝 다가갔다. 후드 차림에 화장도 하지 않은 신하리가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그쪽 대신 경찰에 신고했어요. 얼른 오세요.”카메라가 홱 회전하며 한주 용하구의 경찰서 대문을 비췄다. 그에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순간 멍해졌다. ‘신하리, 미친 거야? 어제 저녁에도 한열 대신 해명해주더니.’[아기 고구마]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전, 전 신고한다고 안 했어요.”신하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한열이 그쪽을 성추행했다면서 신고를 안 해요? 성모 마리아세요? 방송으로 울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보다 신고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요? 경찰은 그쪽을 도와줄 수 있는데도 싫다고요?”네티즌들도 신하리의 말을 따라 댓글을 남겼다. [맞아요
알겠다고 대답한 한현진이 전화를 끊기 전 호기심을 못 이겨 물었다. “오빠, 문채영 씨와는 어떻게 됐어요?”멈칫한 송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한서 그 자식 혹시 네 옆에 있어?”한현진이 움찔하며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가로젓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한현진이 대답했다. “아뇨. 샤워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말을 믿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개의치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걔한테 내 말 똑바로 전해. 다음에 또 이렇게 입을 가볍게 놀렸다간 내가 그 입을 꿰매 버릴 거라고.”강한서: ...그 말에 한현진이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렸다. “사실 강한서는 별말 안 했어요...”송민준은 더는 아무 말 없이 일찍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송민준의 얼굴이 공개된 후, 한열의 바람 스캔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람들도 점차 한현진이 한열의 사촌누나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열의 성추문은 여전히 일파만파 퍼져나갔다.한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성의 페이스북 계정은 [아기 고구마]였다. 이 계정은 피드를 올릴 때마다 다음 업로드 시간을 예고하며 다음엔 마치 증거를 공개할 것처럼 사람들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에 [아기 고구마] 계정의 팔로워는 점차 늘어갔다. 하지만 예고와는 달리 매번 터무니없는 사실들만 업로드 했고 그 피드의 내용으로는 한열이 여자 연예인을 성추행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정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하룻밤 사이, 한열의 팔로우는 십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한열의 회사 측에서는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을 공개하며 이미 경찰에 신고를 마쳤고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열의 회사에서 소장을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고구마]도 페이스북에 점심 열두시부터 라이브 방송으로 빼박 증거를 공개해 한열과 직접 맞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에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말을 아끼던 윤명훈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계약 해지 때문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회사에서는 쿨하게 한열을 보내줄 마음이 없거든요.”그가 한현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현진도 알 수 있었다. 윤명훈은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한열이 아직 취해 있는 지금 그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윤명훈은 한현진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제가 잠시 후 해명글을 올릴게요. 명훈 씨는 신하리 씨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는 기사들 처리해 달라고 연락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선임해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요.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해명하기 어려워질 거예요.”한열의 바람 스캔들을 터트린 건 그저 페이크에 불과했다. 성추문으로 한열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만약 한현진이 한열의 회사 대표였다면, 자신의 두 손으로 탑급의 자리까지 올린 아이를 이렇게 쉽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계약을 해지 한다고 해도 한열의 빛을 어느 정도는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한열은 신하리라는 충무로 연기파 배우의 인맥까지 갖고 있으니 앞으로 어느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끝장을 볼 이유는 없었다. 연예계에게는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 영원한 적은 없는 법이었다.그러니 이번 일은 오히려 누군가 한열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꾸미고 있는 일 같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세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 했다. 다만 송민준의 눈은 모자이크 처리했다.[저희 오빠와 사촌 동생이 그렇게까지 닮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신하리]사진 속에서 한현진은 가운데 서 있었고 그녀의 왼쪽엔 송민준이, 그리고 오른쪽엔 한열이었다. 막내 동생인 한승은 아예 잘라버린 후 사진을 업로드 했다.비록 송민준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하긴 했지만 하관만 보아도 한열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
한현진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 예능부 기자 채용 문턱이 이 정도로 낮아진 거야? 두 눈이 멀어도 기자로 활동할 수 있나봐?”진윤: ...‘우리 여신님 사석에서는 이렇게 독설을 날리는 사람이었어?’휴대폰 너머에서 한참을 듣고 있던 차미주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사진 너와 한열 아니야?”한현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건 나랑 오빠야.”“하지만 이 사진들은 정말 한열과 비슷해 보여. 게다가 네 오빠가 운전한 거 한열 차 아니야?”한현진은 그날 송민준이 운전한 차를 눈 여겨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정말 한열의 차를 운전하고 온 거라면 파파라치가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다시 페이스북을 다운로드 받고 인기 검색어를 확인한 한현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연예 부문의 인기 검색어의 TOP 5는 전부 한열의 바람에 관한 이슈가 차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꽃뱀, 이열 커플 사이에 끼어들다], [이열 커플, 결별 위기 스크린 밖에서도 삼각관계], [한열 살아있네], [찐사랑을 못 숨겨] 등이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검색어들이 가득 했다. 한현진이 페이스북에 로그인하자 수백 개의 DM과 십만 개가 넘는 댓글이 쏟아졌다.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신하리와 한열 두 사람의 팬들의 남긴 수많은 욕이거나 일반 네티즌의 호기심에 가득한 댓글일 것이 분명했다. 인터넷이 얼마나 필터 없이 악랄한 글로 난무한 곳인지 잘 알고 있는 한현진은 아예 댓글을 확인하지도 않고 뉴스피드로 들어갔다. 한열과 한현진의 기사는 두 시간에 터졌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각 마케팅 계정에서는 이미 타임 라인까지 정리한 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한현진은 관련 피드를 대충 훑었다. 마케팅 계정의 분석에 의하면 한열과 신하리는 [살의] 촬영 이전에 이미 사귀기 시작했고 송민영이 하차된 후 한열이 자신의 여자친구인 신하리를 여주인공으로 추천했으며 영화 홍보 현장에서의 친밀한 스킨십 사진이 폭로되어 어쩔 수 없이 공개 연애를 택한 것이었다. 그 계정
한현진은 반나절이 걸려서야 일의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쩐지 지난번 홍혜림 씨 사건이 있었을 때 왜 진윤 씨가 갑자기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키나 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거잖아.’순간 한현진은 뻘쭘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방금 전화를 받고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입도 벙긋하지 말았어야 했다. 진윤의 말처럼 이건 정말 비열한 짓이었다. 유치한 강한서가 벌일 만한 일이 맞긴 한 것 같았다. 강한서 본인 역시 이번 일은 너무 얍삽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어쩌다 아이를 달래주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탓이라고 해. [정상에서]에서 지금 자체 테스트 중인 스킨 한 세트 줄게. 어때?”진윤이 작게 울먹이며 말했다. “스킨 세 세트?“강한서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와중에 딜을 하는 걸 보니 그리 큰 상처를 받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세 세트 전부 줄게.”진윤이 곧바로 울음을 멈췄다. 절판되어 더는 살 수 없는 게임 스킨과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여신 중 아무리 바보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래요. 제가 오해한 거라고 하죠.”말하며 한현진을 쳐다보던 진윤은 여전히 아쉬워하며 말했다. “현진 누나, 왜 이렇게 빨리 결혼하셨어요. 남자 때문에 손에 넣었던 트로피도 놓칠 수가 있어요.”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결혼이 커리어 영향주지 않아. 이간질 하려고 하지 마.”“형님은 남자니까 당연히 영향을 안 받으시겠죠.”강한서에게 농락을 당한데다 하루아침에 구닥다리에게 여신을 뺐긴 진윤은 누구보다 빨리 흑화 했다. “결혼하면 아이도 낳아야 하잖아요. 어떤 유명한 감독이 임산부를 캐스팅하려고 하겠어요. 제일 예쁠 나이를 남편과 아이에게 바치면 나중에 아이가 클 때쯤엔 본인의 레전드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요. 제가 다 아쉬워서 그래요. 너무 불공평해요.”비록 진윤은 그저 이간질을 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그 말은 현실이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커리어엔 고난과 역경이
한현진: ?강한서가 들고 있던 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것은 차미주의 목소리였다. “현진아! 너 내연녀가 되어버렸어. 게다가 그 상대가 네 사촌 동생이래.”강한서: ?강한서는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그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전여친, 현여친이 뭐야?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게다가 이 목소리, 왜 이렇게 귀에 익은 거지?’“저... 저기 혹시 전화 잘못 하신 거 아녜요?”한현진이 나지막이 물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곳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 현진 누나?”한현진이 멍해졌다. ‘날 알아?’“네. 제가 한현진이예요. 누구세요?”상대방은 말이 없었다. 그에게서는 그저 조금 흥분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강한서가 한현진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무슨 일이야?”진윤이 이를 악물었다. “방금 전화 받은 사람 누구예요!”강한서가 말했다. “내 와이프.”“그럴 리가 없어!”진윤이 바득 이를 갈았다. “이 사생팬 같은 아저씨가! 혹시 일부러 날 속이려고 옆에 성대모사하는 분이라고 모셔놓은 거 아녜요?”강한서가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너처럼 유치한 인간인 줄 알아? 그리고 현진이는 아무도 대체할 수 없어.”진윤은 강한서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거짓말 좀 그만 해요. 현진 누나는 지금 그 티베탄 마스티프와 데이트하는 중이라고요. 만약 누나가 정말 형님 와이프라면 형님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누나가 딴 남자와 데이트하는 걸 지켜볼 수 있어요?”더 이상 진윤을 대꾸하기 귀찮았던 강한서가 그에게 영상통화를 보냈다. 몇뿐 후, 휴대폰 화면으로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여신과 딱 붙어 앉아있는 전남편 형님을 확인한 진윤은 순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한현진은 휴대폰에 비춰진 진윤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진윤 씨가 강한서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 거야?’진윤은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어댔다. “거짓말쟁이! 뻔뻔한 인간! 전
유난히 예쁘게 잘 나온 사진을 보며 한 현지는 신난 얼굴로 고개를 돌려 강한서에게 보여 주었다. 하지만 멍청하게 나온 것 같다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강한서는 굳이 자신이 찍겠다면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한현진이 눈을 실룩거렸다. “네가 사진을 찍겠다고? 168cm인 나를 138cm로 만들어 버리는 네가? 강 대표님 본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강한서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 실력이 그렇게 별로야?”한현진이 말했다. “쌀을 뿌린 휴대폰을 닭이 부리로 쪼아도 내가 찍은 것 보단 낫다고 할 수 있어.”왠지 수치를 당한 것 같은 기분에 강한서가 이를 악 물면 말했다. “그럼 난 왜 우리가 데이트했을 때 내가 찍어준 사진을 밤새도록 보고 있었던 거야?”강한서가 괜히 그 얘기를 꺼낸 탓에 잊혀 가던 한현진의 기억이 문득 돌아왔다.“사진을 보면서 넌 그저 사진을 찍을 줄 모르는 것뿐이라고 날 설득 하지 않는다면 호텔 앞에서 바로 너와 싸우 버릴 것 같았거든. 내 외모에, 감독님께서도 나에게 각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 하셨는데 넌 대체 어떻게 날 사실 눈으로 찍을 수 있었던 거야?”강한서: ...“사시눈... 처럼 나왔어?”한현진이 일을 악물었다. “내가 뛰어다니는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하니까 유체 이탈한 것처럼 찍어줬잖아! 내가 피드를 업로드할 때 실수로 그 사진까지 넣었더니 애들이 나한테 대체 어디서 이런 심령사진을 찍었냐고 물었었어.”“...”활활 타오르던 강한서의 분노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어쩌다 가끔... 몇 십 장뿐이었잖아.”한현진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하.”뭔가를 말하려던 강한서가 고개를 숙이자 무릎 정도까지 오는 어린 아이가 옆에 쭈그려 앉아 불쌍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아저씨, 아직 더 놀 거예요? 저희 잠깐 놀게 해주시면 안 돼요?”강한서가 고개를 돌리자 뒤에는 어린 라이 대여섯 명이 줄을 서 있었다. 한현진: ...창피함에 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