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진, 강한서와 손성하는 화기애애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작별 인사를 할 때, 손성하는 유현진에게 한복을 선물했다. 유현진은 한복을 선물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잔뜩 들떠 자랑했다. “역시 손성하 선생님께서 보는 눈이 있으셔.”“누구랑은 다르게 말이야.”강한서는 유현진의 말을 들으며 눈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고 그는 곧 과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가 “우연”인 줄 알고 있는 그 만남은 사실, 강한서가 일부러 만든 것이었다. 당시 유현진은 송민영의 존재로 인해 강한서에게 선을 긋고 있었다. 그러니 강한서가 준비한 것이 분명한 일임에도 그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유현진은 무의식적으로 강한서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고 그녀에게 잘해주지도 않는다고 여기고 있었으니, 당연히 그가 자신의 일을 신경 쓰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강한서를 호구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좋은 일은 자기가 다 하고, 결국 욕도 본인이 다 들었다. 유현진과 성안나는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니 성안나가 유현진의 편을 들어준 것은 강한서의 의도임이 뻔했다. 예전 유현진의 옷장에는 성안나가 디자인한 옷이 많았다. 주문 제작한 옷이든, 백화점에서 구매한 옷이든, 전부 강한서가 민경하를 통해 보낸 것이었다. 강한서는 옷을 잘 고르지는 못했지만, 그는 유현진의 안목을 믿지 않았다. 제일 좋은 것보다 제일 비싼 것을 고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국내 최고의 디자이너인 성안나는, 당연히 강한서의 최선책이었다. 그런 고객을 위해 성안나도 당연히 그의 부탁을 들어주어야 했다. 업계 대가라고 할 수 있는 성안나가 나서서 얘기했으니, 유현진의 한복이 진짜인가 하는 문제는 더 이상 토론할 가치가 없었다. “유현진이 송성하 선생님과 그런 인연이 있었다니, 믿을 수 없어.”“그래도 한때는 강씨 집안 사람이라 보고 들은 게 많을 테니, 저런 소장 가치가 충분한 옷을 몸에 걸치고도 태연한 거겠죠.
역시.강한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로 쏠렸다. 이혼한 부부가 전 장인어른의 결혼식에 왔고, 심지어 전남편이 전와이프 대신 축의금을 내려고 한다는 건,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유현진이 덤덤한 표정으로 강한서를 훑어보았다. “강 대표님, 이혼 서류에 도장 찍은 그 순간부터 저희 사이는 이미 끝이 난 것 같은데요. 남들 오해할 만한 행동은 하지 마시죠.”유현진이 말을 이었다. “유 대표님께서 저를 키우셨으니, 제가 축의금을 내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강 대표님은 무슨 명분으로...?”‘그것도 이렇게 많이!’강한서가 입술을 앙다물더니 말했다. “난 네가 올 줄 알고 온 거야. 이건 내 마음이야.”그의 말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쩐지.’‘저러니 유상수가 강한서를 부를 수 있는 거였구나.’‘유현진 때문이었다니.’유상수와 유현진이 다시 연락을 주고 받는다는 소식이 퍼졌을 때, 사람들은 비록 유현진이 친딸은 아니지만 키운 정이 있으니, 유현진이 그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에 의아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이상한 것은 오히려 강한서의 참석이었다. 하지만 유현진과 강한서의 태도를 보니, 사람들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당시 두 사람은 평화롭게 이혼한 것이 아니었고 유현진은 위자료도 받지 않았으니, 누가 봐도 두 사람 사이는 완전히 끝난 것이었다. 반년 후, 두 사람이 동시에 유상수의 결혼식에 나타날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강한서의 시선은 처음부터 유현진만을 향하고 있었다.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그의 모습은 평소 시크하던 그의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그의 신분으로는, 이미 이혼한 전와이프에게 이렇게 목을 맬 필요는 없었다. 미련이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유현진의 태도는 강한서와 전혀 달랐다. 그녀는 강한서의 말을 철저히 무시했다. 유현진은 덤덤하게 강한서를 한번 훑어보더니 말했다. “강 대표님 마음은 미래의 사모님을 위해 남겨두시죠. 이곳에 대표님 마음을 표현할
유현진: ...한성우는 끊임없이 유현진에게 잘 보이려는 강한서를 방해했다. 사귀기 전엔 한성우가 강한서를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었지만, 이젠 사귀기 시작했으니 한성우가 여전히 강한서를 괴롭히게 만들 수는 없었다. “미주가 이번 주에 조 선생님을 집에 초대해서 식사 대접하고 싶다고 그러던데, 성우 씨가 선생님이랑 친하시니까 뭘 좋아하시는지 여쭤보시겠어요? 그래야 장을 보죠.”한성우가 눈을 찡그렸다. “언제요? 전 그런 얘기 들은 적 없는데요.”“미주가 말 안 했어요?”유현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주 회사, 조 선생님이 소개해 준 거잖아요. 신체검사 결과만 나오면 바로 출근하는 거라, 당연히 조 선생님께 감사 인사드려야죠.”유현진의 말에 한성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조준이 알아봐 준 거라고요?”유현진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의심스럽다는 듯 물었다. “왜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이에요? 사귄다면서 그런 얘기도 안 하는 거예요?”유현진은 그저 한성우도 연애의 험난함을 느껴보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조준이 차미주에게 새 회사를 소개해 준 것도 모르고 있었다. ‘미주처럼 뭐든 공유하고 싶어 하는 애가, 그런 일도 남자친구한테 얘기하지 않았다고?’한성우는 유현진의 의심하는 눈초리를 신경 쓸 겨를이 전혀 없었다. 그의 머릿속엔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휴대폰을 보며 웃고 있던 차미주의 모습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합격 문자를 받았다며 회사에서 언제 신체검사를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고 얘기했다. 그는 단지 차미주가 취직에 성공해 기뻐하는 줄 알았다. 이제 생각해 보니 조준이 그녀의 문자에 답장해서 좋아한 것이 틀림없었다. “미주랑 조준, 요즘 연락 자주 해요?”유현진은 그를 훑어보았다.“모르겠어요.”잠시 멈칫하던 유현진이 불 난 집에 기름을 퍼부었다. “좋아했던 사람인데, 단번에 연락을 끊지는 않겠죠. 게다가 미주를 계속 도와주기도 했잖아요.”한성우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유현진은 직원에게서 주스를 가져와 한성우에게 건넸
‘이자식...'‘연애에 눈을 뜨니까 심쿵 포인트를 너무 잘 알잖아.’강한서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유현진은 그의 얼굴만으로도 설렘을 느꼈었다. 그런 그가 이젠 먼저 유현진의 마음을 흔드니, 그녀는 더욱 설렐 수밖에 없었다. 유현진이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녀는 테이블 밑으로 봉투를 받으며 말했다. “내가 잔소리 좀 안 했다고 이렇게 많이 넣어오면 어떡해. 네 돈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줄 알아?”강한서가 나지막이 말했다. “얼마 안 넣었어.”유현진이 제법 두꺼운 봉투를 만져보며 그를 째렸다. “이게 안 많아?”방금 유현진에게 한 방 먹은 한성우는 당연히 강한서에게 화풀이하려고 했다. 만약 그가 강한서를 건드린다면 강한서는 기껏해야 한성우에게 욕 몇 마디를 하고 말겠지만, 그가 유현진을 괴롭힌다면 강한서는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유현진에게 당한 복수는 강한서에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한성우는 두 사람을 보며 옆에서 부채질을 해댔다. “쟨 가정적이지 않아서 돈 아까운 줄 몰라요. 지난번 신진성 씨가 결혼할 때도, 한서가 계산했잖아요. 신우는 한 병에 200만 원이 넘는 와인을 몇 병이나 가져갔다고요. 그것도 전부 한서가 냈고요. 형수님, 그날 쟤가 돈을 얼마나 많이 썼는 줄 아세요?”“20억 넘어요. 20억이면 마세라티 한 대, 에르메스 가방, 심지어 번화가에 있는 아파트 계약금도 낼 수 있다고요. 그 돈이면 형수님이 매일 200만 원씩 뿌리면서 노셔도, 반년은 놀 수 있어요. 쟤가 그 돈을 그렇게 써버렸다니까요.”강한서는 이마의 핏줄이 튀어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넌 불 난 집에 부채질 좀 하지 마!”한성우가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언제?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형수님도 그날 계셨잖아. 못 본 것도 아니고. 신진성은 친구라고 하지만, 유상수는 대체 뭐야?”“너랑 형수님 이혼하니까 바로 형수님을 집에서 쫓아내고 관계를 끊었어. 그런 사람한테 그렇게 많이 내다니. 왜? 너도 유상수
‘무슨 점수?’강한서는 고민하는 듯 눈빛이 흔들렸다. 한성우가 이를 악물었다. “그깟 점수가 친구 행복보다 중요해? 강한서. 남자답게 좀 굴어, 내가 널 무시하게 만들지 말고.”강한서가 잠시 머뭇거렸다. 한성우가 막 드디어 강한서에게 친구에 대한 의리가 남아있다고 생각할 때쯤, 그의 말이 들려왔다. “몇 점?”유현진은 한성우의 약점을 잡기 위해 점수를 크게 불렀다. “천 점.”그러자 강한서가 바로 대답했다. “딜.”한성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강한서, 이 양심도 없는 놈아. 네 장모님 장례식에서 네가 없는 동안 누가 너 대신 나서줬어? 네가 형수님에게 대시할 때, 너한테 방법을 알려준 건 또 누구고? 이제 둘이 사귀니까 나한테 칼을 꽂아?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야?”강한서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나지막이 유현진에게 말했다. “성우 전전여친이, 쟤 전여친의 전여친이었어. 성우는 다른 사람 사랑싸움의 도구였고.”한성우: ...잔뜩 충격받은 얼굴을 한 유현진이 얼른 강한서에게 말했다. “얼른 더 얘기해봐.”한성우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강한서를 노려보았다. 그는 강한서에게 욕설을 퍼부으려다 다시 말을 삼켰다. 괜히 말을 잘못했다간 그나마 남아있는 우정도 날아가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성우는 어두운 얼굴로 강한서가 자신의 흑역사로 유현진의 마음을 사고 있는 장면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한성우는 유현진이 쥐고 있는 봉투를 보더니 물었다. “한서가 대체 얼마를 넣었기에 그렇게 두꺼운 거예요?”유현진이 봉투를 만져보지 않았더라면, 이 돈은 그대로 유상수의 주머니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강한서에게 물었다. “너 얼마 넣었어?”강한서는 천천히 오렌지 주스를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얼마 안 돼.”“이렇게 두꺼운데 얼마 안 된다고?”강한서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 네 것보단 안 두꺼워.”강한서의 말에 유현진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내 것은 보기엔 두꺼워도 안에 만 원밖에 안 넣었어.
“네가 하나 더 사면 되잖아.”유현진은 말을 그렇게 했지만 손을 테이블 아래로 내려 봉투를 뜯었다. 봉투로 손을 넣어 안에 있던 지폐를 잡는 순간, 유현진은 행동을 멈추었다. ‘이건 지폐 촉감이 아닌데?’유현진은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에 강한서가 태연하게 물었다. “왜 그래?”한성우가 물었다. “놀랄 정도로 많아요?”유현진은 말없이 입술을 앙다물고 봉투 안에 있던 물건을 꺼냈다. 한성우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가 확인했다. 그리고 돈을 밝히는 두 사람 모두 침묵했다. 봉투에 담긴 것은 돈이 아니라 웨딩 촬영 홍보 포스터였다. 믿을 수 없었던 유현진은 또 다른 봉투를 뜯어 확인하더니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그 봉투 안에는 신혼여행 스케줄표였다. 한성우가 투덜거렸다. “넌 정말 형수님에게 너무 많은 걸 배웠어. 내 결혼식에도 이렇게 넣을 거면, 애초에 오지 마.”강한서는 아예 한성우를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유현진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물었다. “나한테 아직 많이 있어. 나중에 네가 선택해. 우리 미리 계획하자.”유현진: ...‘한참을 연기하더니, 봉투를 뜯어보게 하려고 그런 거였네.’유현진의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했지만, 그녀는 괜히 아닌 척 입을 열었다. “방금 내가 말리지 않아서 네가 이걸 줬으면, 나중에 어쩔 뻔했어.”강한서가 말했다. “이 정도 두께면, 네가 가만있을 리가 없잖아.”잠시 말을 멈추던 그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어차피 널 위해 준비한 거였어.”한성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두 사람의 애정행각을 바라보고 있었다. 애초부터 이곳에서 괜한 얘기를 꺼낸 한성우의 탓이었다. 한성우가 괘씸한 커플을 저주하던 그때, 휴대폰을 가지러 갔던 차미주가 드디어 도착했다. 한성우는 사람들 틈에서 한눈에 차미주를 알아보고는 손을 흔들며 그녀를 불렀다. “여기!”얼른 달려온 차미주는 테이블 위에 놓인 주스 절반을 꿀꺽꿀꺽 마셔버렸다. “내가 오는 길에 누굴 봤는지 알아?”한성우가 눈
한성우는 잠시 멈칫하더니 갑자기 차미주에게 물었다. “넌 정명석을 어떻게 알아?”“나 졸업하자마자 히든 엔터에 이력서를 넣은 적이 있었어. 물론 그쪽에선 날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그때 면접에서 마주친 적이 있어. 히든 엔터의 소속 연예인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같이 면접 봤던 사람에게 들으니까 정석호 대표님 외동아들이라고 하더라고.”“특히 한 번만 봐도 잊히지 않을 정도로, 상징적으로 잘생긴 얼굴이었거든. 정석호 대표님의 아내가 당시 미스 유니버스의 우승자라고 하더라고. 그렇게 생각해 보면, 그가 수려한 외모를 지닌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아무래도 아들은 엄마를 닮는 법이니까.”한성우는 차미주가 다른 남자를 칭찬하는 것을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상징적으로 잘생긴 외모? 얼마나 상징적인데? 나보다... 한서보다 더 상징적이야?”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상징적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쓰이는 거였더라?’차미주는 진지하게 비교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강한서랑 분위기가 비슷한 것 같아. 같은 스타일이라고 할까? 외모라는 건 보는 사람 취향에 따라 다른 거니까. 내가 보기엔 비슷한 것 같아.”한성우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여자야, 넌 잘생긴 사람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지. 비슷해? 어디가 비슷하다는 거야? 강운이 리즈시절 외모가 겨우 한서랑 비슷한 수준인데. 만 명 중 한 명 나올까 말까한 외모가 그렇게 흔한 거였으면, 연예계에 선남선녀가 이렇게도 적겠어?”차미주가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 “믿기 싫으면 관둬.”한성우는 자신이 한 말을 인정받으려 얼빠인 유현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형수님, 제 말이 맞죠?”방금까지 멍때리고 있던 유현진은, 한성우의 부름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뭐라고요?”한성우: ...차미주가 한성우를 비웃었다. “현진아, 조금 있으면 정명석 도착할 거야. 네가 나중에 봐봐, 강한서랑 비교할 만한 외모가 맞는지 아닌지. 내 말이 헛소리인지 아닌지 말이야.”한성우가 말했다
잠시 후, 정명석이 걸음을 옮겨 앞으로 다가왔다. 유현진에게 향했던 그의 시선은 잠시 뒤 강한서와 한성우를 향했다. 옆에 있던 젊은 친구가 소개했다. “도련님. 이분은 바이브 엔터의 한성우 대표님이세요.”정명석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을 내밀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정명석은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의 옆에 있는 사람은 아마도 정석호가 아들에게 붙여준 비서인 것 같았다. 일부러 정명석을 데리고 모임에 나와 업계의 사람들을 소개하는 중인듯했다. 한성우와 히든 엔터는 비록 라이벌이지만, 사석에서는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그러니 한성우는 상대방이 내민 손을 잡으며 악수했다. “정씨 집안 도련님이셨군요. 역시 들은 대로 멋지시네요. 정 대표님 젊은 시절 모습이 보여요.”정명석도 공손하게 말했다. “저도 아버지께 한 대표님 얘기 많이 들었어요. 젊으신데 능력까지 겸비한 분이라고. 안목이 좋으신 분이라 기회가 되면 대표님께 많이 배우라고 하셨거든요.”한성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로 배우는 거죠.”비서가 이번엔 강한서를 소개했다. “이분은...”“한성 그룹 강한서 대표님이시죠.”비서가 말을 꺼내기 전에 정명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대표님 업적은 유학 시절 많이 들었어요.”그러더니 손을 뻗으며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강한서는 상대방의 손을 아주 잠깐 잡았다가 놓아주었다. 그는 비록 정석호와 안면이 있었지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정석호는 오히려 강단해와 절친한 사이였다. 그러니 그의 아들인 정명석에게 강한서도 특별히 친절하게 대하지 않았다. 그저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며 어색한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을 정도면 충분했다. 강한서는 모르는 사람과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한성우는 아니었다. 한성우가 그렇게 많은 연예계의 찌라시를 알고 있는 건 전부 그의 말솜씨와 뻔뻔함 덕분이었다. 그러니 소개를 마친 뒤, 한성우는 원래부터 친했던 사이처럼 정명석에게 물었다. “명석 군, 결혼식에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
홍혜림이 서해금에게 얘기를 꺼내려던 그때, 진윤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깐 실례할게요.”홍혜림이 곧바로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부축해줄게.”“네.”진윤이 대답했다. 진윤을 부축하며 병실을 나서는 홍혜림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고개를 돌려 성월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했죠?”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어요.”멈칫하던 성월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정말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러 오실까요?”서해금이 덤덤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분명 부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홍혜림은 지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저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아무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조향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OM향 협회의 투표로 승패가 결정돼요. 홍혜림은 OM향 협회의 오래된 회원이에요. 게다가 이번 조향 대회 열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홍혜림은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큰 도움을 준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거예요. 전 준비가 안 된 싸움은 시작하지 않아요.”피식 웃음을 흘린 서해금의 눈빛이 멸시로 가득했다. “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성월은 이토록 치밀한 서해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성빈의 친척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서해금의 모습에 성월은 그녀가 단지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해금이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마음에 빚을 진 홍혜림이 조향대회에서 관건적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서해금이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고 있으니 송가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성월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물었다. “대표님, 인터넷에서 진윤 씨에 관한 여론이 들끓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가면 걔들은 거짓말을 들킨 네가 양심에 찔려서 해외로 도피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진윤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걔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출국하면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할 텐데.”“그럼 너 평생 해외에만 있을 거야? 안 돌아올래?”입술을 달싹인 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집도, 가족도 전부 한주에 있으니 지금 당장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홍혜림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윤아, 사람의 명성이라는 게 한 번 나빠지면 다시 좋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해외로 도망쳐 이번 일을 지나보낸다고 해도 졸업하면 결국 여기 동기들과 다시 마주해야 한 텐데, 걔들이 널 보고도 옛날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 같아?”“다들 널 안 좋게 보고 있는 지금, 네가 끝까지 네 결백을 증명해야 나중에 걔들이 다시 이 얘기를 꺼내도 억울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결백을 뭐로 증명해요? CCTV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전 당당하다는 걸 아무도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요. 절 믿는 사람도 없다고요.”진윤이 잠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저 어떡해요?”홍혜림은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아무도 널 안 믿어도 엄마는 널 믿어. 네 아빠, 형 그리고 네 형수님도 널 믿어. 그러니까 아들, 괜찮아. 엄마가 있는 한 아무도 우리 아들 못 건드려. 엄마가 꼭 네가 정정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할게.”홍혜림이 말에 진윤이 대답하려던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진윤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홍혜림 역시 심호흡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자 보이는 의외의 인물에 홍혜림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해금이었다.서해금은 성월과 함께 진윤의 병실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 서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서해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