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진: ...한성우는 끊임없이 유현진에게 잘 보이려는 강한서를 방해했다. 사귀기 전엔 한성우가 강한서를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었지만, 이젠 사귀기 시작했으니 한성우가 여전히 강한서를 괴롭히게 만들 수는 없었다. “미주가 이번 주에 조 선생님을 집에 초대해서 식사 대접하고 싶다고 그러던데, 성우 씨가 선생님이랑 친하시니까 뭘 좋아하시는지 여쭤보시겠어요? 그래야 장을 보죠.”한성우가 눈을 찡그렸다. “언제요? 전 그런 얘기 들은 적 없는데요.”“미주가 말 안 했어요?”유현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주 회사, 조 선생님이 소개해 준 거잖아요. 신체검사 결과만 나오면 바로 출근하는 거라, 당연히 조 선생님께 감사 인사드려야죠.”유현진의 말에 한성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조준이 알아봐 준 거라고요?”유현진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의심스럽다는 듯 물었다. “왜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이에요? 사귄다면서 그런 얘기도 안 하는 거예요?”유현진은 그저 한성우도 연애의 험난함을 느껴보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조준이 차미주에게 새 회사를 소개해 준 것도 모르고 있었다. ‘미주처럼 뭐든 공유하고 싶어 하는 애가, 그런 일도 남자친구한테 얘기하지 않았다고?’한성우는 유현진의 의심하는 눈초리를 신경 쓸 겨를이 전혀 없었다. 그의 머릿속엔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휴대폰을 보며 웃고 있던 차미주의 모습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합격 문자를 받았다며 회사에서 언제 신체검사를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고 얘기했다. 그는 단지 차미주가 취직에 성공해 기뻐하는 줄 알았다. 이제 생각해 보니 조준이 그녀의 문자에 답장해서 좋아한 것이 틀림없었다. “미주랑 조준, 요즘 연락 자주 해요?”유현진은 그를 훑어보았다.“모르겠어요.”잠시 멈칫하던 유현진이 불 난 집에 기름을 퍼부었다. “좋아했던 사람인데, 단번에 연락을 끊지는 않겠죠. 게다가 미주를 계속 도와주기도 했잖아요.”한성우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유현진은 직원에게서 주스를 가져와 한성우에게 건넸
‘이자식...'‘연애에 눈을 뜨니까 심쿵 포인트를 너무 잘 알잖아.’강한서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유현진은 그의 얼굴만으로도 설렘을 느꼈었다. 그런 그가 이젠 먼저 유현진의 마음을 흔드니, 그녀는 더욱 설렐 수밖에 없었다. 유현진이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녀는 테이블 밑으로 봉투를 받으며 말했다. “내가 잔소리 좀 안 했다고 이렇게 많이 넣어오면 어떡해. 네 돈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줄 알아?”강한서가 나지막이 말했다. “얼마 안 넣었어.”유현진이 제법 두꺼운 봉투를 만져보며 그를 째렸다. “이게 안 많아?”방금 유현진에게 한 방 먹은 한성우는 당연히 강한서에게 화풀이하려고 했다. 만약 그가 강한서를 건드린다면 강한서는 기껏해야 한성우에게 욕 몇 마디를 하고 말겠지만, 그가 유현진을 괴롭힌다면 강한서는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유현진에게 당한 복수는 강한서에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한성우는 두 사람을 보며 옆에서 부채질을 해댔다. “쟨 가정적이지 않아서 돈 아까운 줄 몰라요. 지난번 신진성 씨가 결혼할 때도, 한서가 계산했잖아요. 신우는 한 병에 200만 원이 넘는 와인을 몇 병이나 가져갔다고요. 그것도 전부 한서가 냈고요. 형수님, 그날 쟤가 돈을 얼마나 많이 썼는 줄 아세요?”“20억 넘어요. 20억이면 마세라티 한 대, 에르메스 가방, 심지어 번화가에 있는 아파트 계약금도 낼 수 있다고요. 그 돈이면 형수님이 매일 200만 원씩 뿌리면서 노셔도, 반년은 놀 수 있어요. 쟤가 그 돈을 그렇게 써버렸다니까요.”강한서는 이마의 핏줄이 튀어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넌 불 난 집에 부채질 좀 하지 마!”한성우가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언제?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형수님도 그날 계셨잖아. 못 본 것도 아니고. 신진성은 친구라고 하지만, 유상수는 대체 뭐야?”“너랑 형수님 이혼하니까 바로 형수님을 집에서 쫓아내고 관계를 끊었어. 그런 사람한테 그렇게 많이 내다니. 왜? 너도 유상수
‘무슨 점수?’강한서는 고민하는 듯 눈빛이 흔들렸다. 한성우가 이를 악물었다. “그깟 점수가 친구 행복보다 중요해? 강한서. 남자답게 좀 굴어, 내가 널 무시하게 만들지 말고.”강한서가 잠시 머뭇거렸다. 한성우가 막 드디어 강한서에게 친구에 대한 의리가 남아있다고 생각할 때쯤, 그의 말이 들려왔다. “몇 점?”유현진은 한성우의 약점을 잡기 위해 점수를 크게 불렀다. “천 점.”그러자 강한서가 바로 대답했다. “딜.”한성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강한서, 이 양심도 없는 놈아. 네 장모님 장례식에서 네가 없는 동안 누가 너 대신 나서줬어? 네가 형수님에게 대시할 때, 너한테 방법을 알려준 건 또 누구고? 이제 둘이 사귀니까 나한테 칼을 꽂아?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야?”강한서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나지막이 유현진에게 말했다. “성우 전전여친이, 쟤 전여친의 전여친이었어. 성우는 다른 사람 사랑싸움의 도구였고.”한성우: ...잔뜩 충격받은 얼굴을 한 유현진이 얼른 강한서에게 말했다. “얼른 더 얘기해봐.”한성우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강한서를 노려보았다. 그는 강한서에게 욕설을 퍼부으려다 다시 말을 삼켰다. 괜히 말을 잘못했다간 그나마 남아있는 우정도 날아가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성우는 어두운 얼굴로 강한서가 자신의 흑역사로 유현진의 마음을 사고 있는 장면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한성우는 유현진이 쥐고 있는 봉투를 보더니 물었다. “한서가 대체 얼마를 넣었기에 그렇게 두꺼운 거예요?”유현진이 봉투를 만져보지 않았더라면, 이 돈은 그대로 유상수의 주머니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강한서에게 물었다. “너 얼마 넣었어?”강한서는 천천히 오렌지 주스를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얼마 안 돼.”“이렇게 두꺼운데 얼마 안 된다고?”강한서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 네 것보단 안 두꺼워.”강한서의 말에 유현진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내 것은 보기엔 두꺼워도 안에 만 원밖에 안 넣었어.
“네가 하나 더 사면 되잖아.”유현진은 말을 그렇게 했지만 손을 테이블 아래로 내려 봉투를 뜯었다. 봉투로 손을 넣어 안에 있던 지폐를 잡는 순간, 유현진은 행동을 멈추었다. ‘이건 지폐 촉감이 아닌데?’유현진은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에 강한서가 태연하게 물었다. “왜 그래?”한성우가 물었다. “놀랄 정도로 많아요?”유현진은 말없이 입술을 앙다물고 봉투 안에 있던 물건을 꺼냈다. 한성우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가 확인했다. 그리고 돈을 밝히는 두 사람 모두 침묵했다. 봉투에 담긴 것은 돈이 아니라 웨딩 촬영 홍보 포스터였다. 믿을 수 없었던 유현진은 또 다른 봉투를 뜯어 확인하더니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그 봉투 안에는 신혼여행 스케줄표였다. 한성우가 투덜거렸다. “넌 정말 형수님에게 너무 많은 걸 배웠어. 내 결혼식에도 이렇게 넣을 거면, 애초에 오지 마.”강한서는 아예 한성우를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유현진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물었다. “나한테 아직 많이 있어. 나중에 네가 선택해. 우리 미리 계획하자.”유현진: ...‘한참을 연기하더니, 봉투를 뜯어보게 하려고 그런 거였네.’유현진의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했지만, 그녀는 괜히 아닌 척 입을 열었다. “방금 내가 말리지 않아서 네가 이걸 줬으면, 나중에 어쩔 뻔했어.”강한서가 말했다. “이 정도 두께면, 네가 가만있을 리가 없잖아.”잠시 말을 멈추던 그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어차피 널 위해 준비한 거였어.”한성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두 사람의 애정행각을 바라보고 있었다. 애초부터 이곳에서 괜한 얘기를 꺼낸 한성우의 탓이었다. 한성우가 괘씸한 커플을 저주하던 그때, 휴대폰을 가지러 갔던 차미주가 드디어 도착했다. 한성우는 사람들 틈에서 한눈에 차미주를 알아보고는 손을 흔들며 그녀를 불렀다. “여기!”얼른 달려온 차미주는 테이블 위에 놓인 주스 절반을 꿀꺽꿀꺽 마셔버렸다. “내가 오는 길에 누굴 봤는지 알아?”한성우가 눈
한성우는 잠시 멈칫하더니 갑자기 차미주에게 물었다. “넌 정명석을 어떻게 알아?”“나 졸업하자마자 히든 엔터에 이력서를 넣은 적이 있었어. 물론 그쪽에선 날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그때 면접에서 마주친 적이 있어. 히든 엔터의 소속 연예인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같이 면접 봤던 사람에게 들으니까 정석호 대표님 외동아들이라고 하더라고.”“특히 한 번만 봐도 잊히지 않을 정도로, 상징적으로 잘생긴 얼굴이었거든. 정석호 대표님의 아내가 당시 미스 유니버스의 우승자라고 하더라고. 그렇게 생각해 보면, 그가 수려한 외모를 지닌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아무래도 아들은 엄마를 닮는 법이니까.”한성우는 차미주가 다른 남자를 칭찬하는 것을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상징적으로 잘생긴 외모? 얼마나 상징적인데? 나보다... 한서보다 더 상징적이야?”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상징적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쓰이는 거였더라?’차미주는 진지하게 비교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강한서랑 분위기가 비슷한 것 같아. 같은 스타일이라고 할까? 외모라는 건 보는 사람 취향에 따라 다른 거니까. 내가 보기엔 비슷한 것 같아.”한성우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여자야, 넌 잘생긴 사람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지. 비슷해? 어디가 비슷하다는 거야? 강운이 리즈시절 외모가 겨우 한서랑 비슷한 수준인데. 만 명 중 한 명 나올까 말까한 외모가 그렇게 흔한 거였으면, 연예계에 선남선녀가 이렇게도 적겠어?”차미주가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 “믿기 싫으면 관둬.”한성우는 자신이 한 말을 인정받으려 얼빠인 유현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형수님, 제 말이 맞죠?”방금까지 멍때리고 있던 유현진은, 한성우의 부름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뭐라고요?”한성우: ...차미주가 한성우를 비웃었다. “현진아, 조금 있으면 정명석 도착할 거야. 네가 나중에 봐봐, 강한서랑 비교할 만한 외모가 맞는지 아닌지. 내 말이 헛소리인지 아닌지 말이야.”한성우가 말했다
잠시 후, 정명석이 걸음을 옮겨 앞으로 다가왔다. 유현진에게 향했던 그의 시선은 잠시 뒤 강한서와 한성우를 향했다. 옆에 있던 젊은 친구가 소개했다. “도련님. 이분은 바이브 엔터의 한성우 대표님이세요.”정명석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을 내밀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정명석은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의 옆에 있는 사람은 아마도 정석호가 아들에게 붙여준 비서인 것 같았다. 일부러 정명석을 데리고 모임에 나와 업계의 사람들을 소개하는 중인듯했다. 한성우와 히든 엔터는 비록 라이벌이지만, 사석에서는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그러니 한성우는 상대방이 내민 손을 잡으며 악수했다. “정씨 집안 도련님이셨군요. 역시 들은 대로 멋지시네요. 정 대표님 젊은 시절 모습이 보여요.”정명석도 공손하게 말했다. “저도 아버지께 한 대표님 얘기 많이 들었어요. 젊으신데 능력까지 겸비한 분이라고. 안목이 좋으신 분이라 기회가 되면 대표님께 많이 배우라고 하셨거든요.”한성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로 배우는 거죠.”비서가 이번엔 강한서를 소개했다. “이분은...”“한성 그룹 강한서 대표님이시죠.”비서가 말을 꺼내기 전에 정명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대표님 업적은 유학 시절 많이 들었어요.”그러더니 손을 뻗으며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강한서는 상대방의 손을 아주 잠깐 잡았다가 놓아주었다. 그는 비록 정석호와 안면이 있었지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정석호는 오히려 강단해와 절친한 사이였다. 그러니 그의 아들인 정명석에게 강한서도 특별히 친절하게 대하지 않았다. 그저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며 어색한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을 정도면 충분했다. 강한서는 모르는 사람과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한성우는 아니었다. 한성우가 그렇게 많은 연예계의 찌라시를 알고 있는 건 전부 그의 말솜씨와 뻔뻔함 덕분이었다. 그러니 소개를 마친 뒤, 한성우는 원래부터 친했던 사이처럼 정명석에게 물었다. “명석 군, 결혼식에
정명석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너 나 기억 안 나?”그는 또 충격적인 한마디를 내뱉었다. 한성우는 이미 경악하던 표정을 지우고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 강한서와 분위기가 비슷하고 외모도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남자가 유현진과 아는 사이였다. ‘이건... 너무 재밌잖아.’한성우는 강한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강한서는 입술을 앙다물고 있었고,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의 두 눈은, 흔들림 없이 유현진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날카로운 시선이 뒤에서 느껴지자, 유현진은 마음에 찔려 감히 뒤돌아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마음이 아무리 불안한 상태여도 유현진은 겉으로는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눈에 익은 것 같기는 한데. 죄송해요. 제가 기억력이 안 좋아서요. 힌트라도 좀 주시겠어요?”유현진의 반응에 정명석은 말을 잃고 말았다. 그는 눈앞에 있는 여자를 훑어보았다. 사실 유현진은 고등학교 시절과 많이 달라졌다. 애굣살도 많이 빠졌고, 턱선도 더 선명해졌다. 물론 이목구비도 더욱 또렷해졌다. 당시 학교 장기 자랑 무대에서 촌스러운 옷을 입고 콩트를 하던 여자아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유독 변하지 않은 것은 반짝거리는 그녀의 두 눈이었다. 촉촉하던 그녀의 눈빛을, 정명석은 지금도 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순진무구해 보이는 그 눈빛에 숨겨진 교활함을 말이다. 유현진은 바로 그 촉촉한 눈빛으로 정명석을 바라보았었다. 그녀는 그에게 귀여운 동물로 변신시키는 마술을 보여주겠다고 하더니 그의 손에 쥐 한 마리를 올려놓았었다. 몇 초간 빤히 유현진을 쳐다보던 정명석은 고개를 숙여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고개를 들었다. “기억 안 나면 어쩔 수 없지. 다시 알아가면 되니까.”그러더니 그는 손을 내밀며 다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전 한주고등학교 15기 3학년 9반 정명석이에요.”유현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차미주가 말했다. “한주고등학교? 현진아, 너도 한주고등학교
한성우는 유현진의 말을 그다지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는 어쩐지 유현진의 반응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정명석을 보는 그녀의 눈빛은 학교 동문을 만난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 한성우가 뭔가 더 얘기를 꺼내려는데, 유현진이 차미주에게 말했다. “미주야, 나랑 음식 가지러 가자.”“응, 그래.”두 여자가 자리를 비우자, 한성우는 그제야 강한서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네 와이프 조금 이상한 것 같아. 잘생긴 남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형수님 성격상, 방금 정명석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어야 정상적인 반응일 텐데 말이야. 하지만 방금, 형수님은 정명석을 몇 번 쳐다보지도 않았어. 매번 눈이 마주치면 바로 시선을 피하고. 언제 잘생긴 남자를 봤다고 저렇게 수줍어했던 적 있어?”강한서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도 당연히 유현진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유현진 편을 들었다. “대체 어떤 눈으로 봐야 수줍어한 거로 보이는 거야? 현진이가 보지 않는다는 건, 잘생기지 않았다는 거야.”한성우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왜 예전엔 강한서의 ‘을’ 성향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만약 유현진과 장명석 사이에 아무 사연이 없다면, 한성우는 자신이 성을 갈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유현진은 집게로 차미주에게 에그타르트를 집어주고 있었다. 차미주는 에그타르트를 바로 입에 넣으며 물었다. “현진아. 정명석이라는 사람, 네가 2주일 만나고 헤어진 첫사랑이지?”유현진: ...유현진의 반응을 확인한 차미주는 자신의 추측을 확신했다. “어쩐지 반응이 이상하더라니.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기억 못하겠어. 게다가 학교 킹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얼굴인데.”유현진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강한서 앞에서 헛소리하지 마. 안 그러면 또 난리 날 거야.”차미주가 말했다. “만약 네가 방금 솔직하게 얘기했으면, 강한서도 그렇게까지 쪼잔하게 굴지는 않았을 거야. 하지만 네가 정명석을 모르는 척
알겠다고 대답한 한현진이 전화를 끊기 전 호기심을 못 이겨 물었다. “오빠, 문채영 씨와는 어떻게 됐어요?”멈칫한 송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한서 그 자식 혹시 네 옆에 있어?”한현진이 움찔하며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가로젓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한현진이 대답했다. “아뇨. 샤워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말을 믿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개의치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걔한테 내 말 똑바로 전해. 다음에 또 이렇게 입을 가볍게 놀렸다간 내가 그 입을 꿰매 버릴 거라고.”강한서: ...그 말에 한현진이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렸다. “사실 강한서는 별말 안 했어요...”송민준은 더는 아무 말 없이 일찍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송민준의 얼굴이 공개된 후, 한열의 바람 스캔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람들도 점차 한현진이 한열의 사촌누나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열의 성추문은 여전히 일파만파 퍼져나갔다.한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성의 페이스북 계정은 [아기 고구마]였다. 이 계정은 피드를 올릴 때마다 다음 업로드 시간을 예고하며 다음엔 마치 증거를 공개할 것처럼 사람들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에 [아기 고구마] 계정의 팔로워는 점차 늘어갔다. 하지만 예고와는 달리 매번 터무니없는 사실들만 업로드 했고 그 피드의 내용으로는 한열이 여자 연예인을 성추행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정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하룻밤 사이, 한열의 팔로우는 십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한열의 회사 측에서는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을 공개하며 이미 경찰에 신고를 마쳤고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열의 회사에서 소장을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고구마]도 페이스북에 점심 열두시부터 라이브 방송으로 빼박 증거를 공개해 한열과 직접 맞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에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말을 아끼던 윤명훈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계약 해지 때문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회사에서는 쿨하게 한열을 보내줄 마음이 없거든요.”그가 한현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현진도 알 수 있었다. 윤명훈은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한열이 아직 취해 있는 지금 그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윤명훈은 한현진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제가 잠시 후 해명글을 올릴게요. 명훈 씨는 신하리 씨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는 기사들 처리해 달라고 연락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선임해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요.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해명하기 어려워질 거예요.”한열의 바람 스캔들을 터트린 건 그저 페이크에 불과했다. 성추문으로 한열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만약 한현진이 한열의 회사 대표였다면, 자신의 두 손으로 탑급의 자리까지 올린 아이를 이렇게 쉽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계약을 해지 한다고 해도 한열의 빛을 어느 정도는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한열은 신하리라는 충무로 연기파 배우의 인맥까지 갖고 있으니 앞으로 어느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끝장을 볼 이유는 없었다. 연예계에게는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 영원한 적은 없는 법이었다.그러니 이번 일은 오히려 누군가 한열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꾸미고 있는 일 같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세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 했다. 다만 송민준의 눈은 모자이크 처리했다.[저희 오빠와 사촌 동생이 그렇게까지 닮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신하리]사진 속에서 한현진은 가운데 서 있었고 그녀의 왼쪽엔 송민준이, 그리고 오른쪽엔 한열이었다. 막내 동생인 한승은 아예 잘라버린 후 사진을 업로드 했다.비록 송민준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하긴 했지만 하관만 보아도 한열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
한현진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 예능부 기자 채용 문턱이 이 정도로 낮아진 거야? 두 눈이 멀어도 기자로 활동할 수 있나봐?”진윤: ...‘우리 여신님 사석에서는 이렇게 독설을 날리는 사람이었어?’휴대폰 너머에서 한참을 듣고 있던 차미주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사진 너와 한열 아니야?”한현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건 나랑 오빠야.”“하지만 이 사진들은 정말 한열과 비슷해 보여. 게다가 네 오빠가 운전한 거 한열 차 아니야?”한현진은 그날 송민준이 운전한 차를 눈 여겨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정말 한열의 차를 운전하고 온 거라면 파파라치가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다시 페이스북을 다운로드 받고 인기 검색어를 확인한 한현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연예 부문의 인기 검색어의 TOP 5는 전부 한열의 바람에 관한 이슈가 차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꽃뱀, 이열 커플 사이에 끼어들다], [이열 커플, 결별 위기 스크린 밖에서도 삼각관계], [한열 살아있네], [찐사랑을 못 숨겨] 등이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검색어들이 가득 했다. 한현진이 페이스북에 로그인하자 수백 개의 DM과 십만 개가 넘는 댓글이 쏟아졌다.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신하리와 한열 두 사람의 팬들의 남긴 수많은 욕이거나 일반 네티즌의 호기심에 가득한 댓글일 것이 분명했다. 인터넷이 얼마나 필터 없이 악랄한 글로 난무한 곳인지 잘 알고 있는 한현진은 아예 댓글을 확인하지도 않고 뉴스피드로 들어갔다. 한열과 한현진의 기사는 두 시간에 터졌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각 마케팅 계정에서는 이미 타임 라인까지 정리한 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한현진은 관련 피드를 대충 훑었다. 마케팅 계정의 분석에 의하면 한열과 신하리는 [살의] 촬영 이전에 이미 사귀기 시작했고 송민영이 하차된 후 한열이 자신의 여자친구인 신하리를 여주인공으로 추천했으며 영화 홍보 현장에서의 친밀한 스킨십 사진이 폭로되어 어쩔 수 없이 공개 연애를 택한 것이었다. 그 계정
한현진은 반나절이 걸려서야 일의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쩐지 지난번 홍혜림 씨 사건이 있었을 때 왜 진윤 씨가 갑자기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키나 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거잖아.’순간 한현진은 뻘쭘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방금 전화를 받고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입도 벙긋하지 말았어야 했다. 진윤의 말처럼 이건 정말 비열한 짓이었다. 유치한 강한서가 벌일 만한 일이 맞긴 한 것 같았다. 강한서 본인 역시 이번 일은 너무 얍삽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어쩌다 아이를 달래주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탓이라고 해. [정상에서]에서 지금 자체 테스트 중인 스킨 한 세트 줄게. 어때?”진윤이 작게 울먹이며 말했다. “스킨 세 세트?“강한서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와중에 딜을 하는 걸 보니 그리 큰 상처를 받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세 세트 전부 줄게.”진윤이 곧바로 울음을 멈췄다. 절판되어 더는 살 수 없는 게임 스킨과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여신 중 아무리 바보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래요. 제가 오해한 거라고 하죠.”말하며 한현진을 쳐다보던 진윤은 여전히 아쉬워하며 말했다. “현진 누나, 왜 이렇게 빨리 결혼하셨어요. 남자 때문에 손에 넣었던 트로피도 놓칠 수가 있어요.”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결혼이 커리어 영향주지 않아. 이간질 하려고 하지 마.”“형님은 남자니까 당연히 영향을 안 받으시겠죠.”강한서에게 농락을 당한데다 하루아침에 구닥다리에게 여신을 뺐긴 진윤은 누구보다 빨리 흑화 했다. “결혼하면 아이도 낳아야 하잖아요. 어떤 유명한 감독이 임산부를 캐스팅하려고 하겠어요. 제일 예쁠 나이를 남편과 아이에게 바치면 나중에 아이가 클 때쯤엔 본인의 레전드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요. 제가 다 아쉬워서 그래요. 너무 불공평해요.”비록 진윤은 그저 이간질을 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그 말은 현실이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커리어엔 고난과 역경이
한현진: ?강한서가 들고 있던 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것은 차미주의 목소리였다. “현진아! 너 내연녀가 되어버렸어. 게다가 그 상대가 네 사촌 동생이래.”강한서: ?강한서는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그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전여친, 현여친이 뭐야?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게다가 이 목소리, 왜 이렇게 귀에 익은 거지?’“저... 저기 혹시 전화 잘못 하신 거 아녜요?”한현진이 나지막이 물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곳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 현진 누나?”한현진이 멍해졌다. ‘날 알아?’“네. 제가 한현진이예요. 누구세요?”상대방은 말이 없었다. 그에게서는 그저 조금 흥분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강한서가 한현진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무슨 일이야?”진윤이 이를 악물었다. “방금 전화 받은 사람 누구예요!”강한서가 말했다. “내 와이프.”“그럴 리가 없어!”진윤이 바득 이를 갈았다. “이 사생팬 같은 아저씨가! 혹시 일부러 날 속이려고 옆에 성대모사하는 분이라고 모셔놓은 거 아녜요?”강한서가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너처럼 유치한 인간인 줄 알아? 그리고 현진이는 아무도 대체할 수 없어.”진윤은 강한서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거짓말 좀 그만 해요. 현진 누나는 지금 그 티베탄 마스티프와 데이트하는 중이라고요. 만약 누나가 정말 형님 와이프라면 형님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누나가 딴 남자와 데이트하는 걸 지켜볼 수 있어요?”더 이상 진윤을 대꾸하기 귀찮았던 강한서가 그에게 영상통화를 보냈다. 몇뿐 후, 휴대폰 화면으로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여신과 딱 붙어 앉아있는 전남편 형님을 확인한 진윤은 순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한현진은 휴대폰에 비춰진 진윤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진윤 씨가 강한서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 거야?’진윤은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어댔다. “거짓말쟁이! 뻔뻔한 인간! 전
유난히 예쁘게 잘 나온 사진을 보며 한 현지는 신난 얼굴로 고개를 돌려 강한서에게 보여 주었다. 하지만 멍청하게 나온 것 같다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강한서는 굳이 자신이 찍겠다면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한현진이 눈을 실룩거렸다. “네가 사진을 찍겠다고? 168cm인 나를 138cm로 만들어 버리는 네가? 강 대표님 본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강한서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 실력이 그렇게 별로야?”한현진이 말했다. “쌀을 뿌린 휴대폰을 닭이 부리로 쪼아도 내가 찍은 것 보단 낫다고 할 수 있어.”왠지 수치를 당한 것 같은 기분에 강한서가 이를 악 물면 말했다. “그럼 난 왜 우리가 데이트했을 때 내가 찍어준 사진을 밤새도록 보고 있었던 거야?”강한서가 괜히 그 얘기를 꺼낸 탓에 잊혀 가던 한현진의 기억이 문득 돌아왔다.“사진을 보면서 넌 그저 사진을 찍을 줄 모르는 것뿐이라고 날 설득 하지 않는다면 호텔 앞에서 바로 너와 싸우 버릴 것 같았거든. 내 외모에, 감독님께서도 나에게 각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 하셨는데 넌 대체 어떻게 날 사실 눈으로 찍을 수 있었던 거야?”강한서: ...“사시눈... 처럼 나왔어?”한현진이 일을 악물었다. “내가 뛰어다니는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하니까 유체 이탈한 것처럼 찍어줬잖아! 내가 피드를 업로드할 때 실수로 그 사진까지 넣었더니 애들이 나한테 대체 어디서 이런 심령사진을 찍었냐고 물었었어.”“...”활활 타오르던 강한서의 분노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어쩌다 가끔... 몇 십 장뿐이었잖아.”한현진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하.”뭔가를 말하려던 강한서가 고개를 숙이자 무릎 정도까지 오는 어린 아이가 옆에 쭈그려 앉아 불쌍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아저씨, 아직 더 놀 거예요? 저희 잠깐 놀게 해주시면 안 돼요?”강한서가 고개를 돌리자 뒤에는 어린 라이 대여섯 명이 줄을 서 있었다. 한현진: ...창피함에 고개
“하하하.”한현진이 마른 웃음을 지었다.“오빠. 제가 티슈 없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강한서가 눈을 씰룩였다. 그야말로 완벽한 핑계였다. 그는 입술을 달싹여 아내를 따라 염치 없이 말했다. “형님, 저도 없어요.”송민준이 가방과 티슈를 두 사람에게 던지며 강한서를 노려보았다. 탁, 소리와 함께 문이 닫겼다. 한현진: ...“오빠가 나한테 화 난 건 아니겠지?”강한서가 우울하게 말했다. “너보단 날 먼저 걱정해야 할 것 같아. 네 오빠가 아무리 너에게 화가 나도 결국은 나에게 그 화살이 돌아올 거야.”한현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마음이 좀 놓이네.”강한서: ?한현진이 그의 손을 잡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어차피 오빠가 널 탐탁지 않아 한게 하루 이틀도 아니잖아. 오늘 이 일로 크게 달라지진않을 거야.”“...”‘행복은 본인이 누리고 잘못은 내가 뒤집어쓰고. 정말 좋은 아내네.’강한서는 한현진을 데리고 호텔 라운지로 향했다. 입덧이 끝난 이후로 한현진의 식욕은 줄곧 안정적이었다. 매 끼니마다 많이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지만 배고픔도 빨리 찾아왔기에 하루에 몇 끼씩 먹어야 했다. 그 덕에 지금의 한현진은 송아지처럼 튼튼하기만 했다. 강한서는 임신한 한현진을 위해 오랫동안 공부했지만 한현진에게는 하나도 쓸모가 없었다. 그의 주변엔 임산부가 많이 없었지만 많은 아내들이 임신 후 남편을 괴롭힌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현진에겐 모든 임신의 호르몬 변화가 거짓말처럼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 의사는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큰 반응 없이 잘 먹고 잘 지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의사는 강한서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시간이 날 때마다 산책을 자주 다니며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으면 된다고 했다. 한현진은 정서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 조금 유치해지기도 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한현진은 강한서의 팔을 끌며 굳이 아이들의 흔들 목마에게 타게 해달라며 떼를 썼다.
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채영 언니.”문채영이 가방에서 포장한 선물 박스를 건넸다. “첫 만남이라 어떤 선물을 준비하면 좋을지 몰라 제가 직접 향낭을 만들었어요. 향 맡아봐요.”한현진이 조금 의외라는 듯 말했다. “언니도 조향하세요?”문채영이 미소 지었다. “제가 조향에 입문하게 된 것도 민준이 덕분이었어요. 전엔 이런 거 만드는 거 좋아했었거든요.”한현진은 다시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그녀는 조향하는 송민준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줄곧 송민준은 그쪽으론 취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송민준은 그 얘기를 꺼내는 것이 불쾌한 듯 담담하게 말했다. “주문부터 해. 배고파.”멈칫하던 문채영이 시선을 내려 눈에 맴도는 서운함을 숨겼다. 한현진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언니, 오랜만에 오셨을 텐데 오늘은 한주 음식으로 드시는 게 어때요?”문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요. 현진 씨가 먹고 싶은 거로 주문해요.”주문한 음식 서빙을 마치고 룸을 나서려는 종업원에게 송민준이 갑자기 말했다. “장어 국수도 주문할게요.”문채영이 힐끗 송민준을 쳐다보자 시선을 올린 그가 마치 변명이라도 하듯 말했다. “환영회에 국수가 빠질 수 없지.”‘그래, 환영회에 국수가 빠질 수 없다고 하는 건 그렇다고 쳐. 하지만 하고 많은 국수 중에 왜 하필 장어 국수야?’‘오빠가 장어 국수라고 말할 때 언니 표정을 보면 설마 두 사람 사이에 장어 국수와 관련된 스토리가 있었던 건가?’호기심이 활활 불타오른 한현진이 몰래 테이블 아래로 강한서의 손을 꼬집었다. 그러자 강한서는 그녀에게 새우를 발라 주었다. 한현진: ...강한서과 문채영은 너무 친한 사이였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한현진은 문채영의 외할머니와 강한서의 할머니가 먼 친척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워낙 촌수가 먼 사이라 피가 거의 섞이지 않은 가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알고 지낸지 한참 후에야 두 가문이 몇 세대 전에는 친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