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는 유현진의 말을 그다지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는 어쩐지 유현진의 반응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정명석을 보는 그녀의 눈빛은 학교 동문을 만난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 한성우가 뭔가 더 얘기를 꺼내려는데, 유현진이 차미주에게 말했다. “미주야, 나랑 음식 가지러 가자.”“응, 그래.”두 여자가 자리를 비우자, 한성우는 그제야 강한서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네 와이프 조금 이상한 것 같아. 잘생긴 남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형수님 성격상, 방금 정명석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어야 정상적인 반응일 텐데 말이야. 하지만 방금, 형수님은 정명석을 몇 번 쳐다보지도 않았어. 매번 눈이 마주치면 바로 시선을 피하고. 언제 잘생긴 남자를 봤다고 저렇게 수줍어했던 적 있어?”강한서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도 당연히 유현진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유현진 편을 들었다. “대체 어떤 눈으로 봐야 수줍어한 거로 보이는 거야? 현진이가 보지 않는다는 건, 잘생기지 않았다는 거야.”한성우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왜 예전엔 강한서의 ‘을’ 성향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만약 유현진과 장명석 사이에 아무 사연이 없다면, 한성우는 자신이 성을 갈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유현진은 집게로 차미주에게 에그타르트를 집어주고 있었다. 차미주는 에그타르트를 바로 입에 넣으며 물었다. “현진아. 정명석이라는 사람, 네가 2주일 만나고 헤어진 첫사랑이지?”유현진: ...유현진의 반응을 확인한 차미주는 자신의 추측을 확신했다. “어쩐지 반응이 이상하더라니.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기억 못하겠어. 게다가 학교 킹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얼굴인데.”유현진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강한서 앞에서 헛소리하지 마. 안 그러면 또 난리 날 거야.”차미주가 말했다. “만약 네가 방금 솔직하게 얘기했으면, 강한서도 그렇게까지 쪼잔하게 굴지는 않았을 거야. 하지만 네가 정명석을 모르는 척
전남친의 충격적인 발언에 옆에서 귀를 기울이던 차미주에게는 재밌는 구경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현진이 일에 대해 잘 알고 있잖아? 귀국하자마자 강한서와 현진이 일도 알고.’‘일부러 소식을 알아본 게 아니라면, 이렇게 빨리 알았을 리가 없을 텐데.’‘설마,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거야?’순간 차미주의 머릿속에는 삼각관계 로맨스물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그녀는 당장 한성우에게 전화해 라이브로 이 상황을 같이 구경하고 싶었다. 유현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정명석의 말에 대답했다. “그건 내 일이야. 너한테 설명할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정명석은 덤덤하게 미소 지었다. “그냥 물어본 거야. 내가 생각해도 강한서 씨 때문은 아닌 것 같아. 어차피 넌, 사람을 버릴 땐 늘 깔끔하게 선을 긋는 사람이니까.”그의 말에 차미주의 표정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저게 무슨 말이야?’‘현진이가 찼다는 뜻인가?’“얘기 끝났어? 더 할 얘기 없으면 난 갈게.”접시를 내려놓고 자리를 피하려는 유현진을 정명석이 가로막았다. 그러더니 그는 망고 푸딩을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만나서 반가웠어. 진심으로.”그는 유현진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바로 자리를 벗어났다. 유현진은 손바닥 위에 놓인 푸딩을 보더니 자리 원위치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굉장한데?’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차미주를 협박하며 말했다. “강한서한테 말하지 마. 안 그러면 절교야.”차미주가 얼른 맹세했다. “걱정하지 마. 나 입 무거워.”그러더니 차미주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네가 찼어?”유현진이 말했다. “내가 헤어지자고 한 건 맞지만, 쟤도 바로 알겠다고 했어. 평화로운 이별이었다고.”“왜? 외모는 네 타입이잖아. 게다가 성격은 강한서보다는 좋은 것 같은데.”유현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말할 수 없는 사연은 아니야. 집에서 유학을 보내려고 준비 중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헤어지자고 했어.”“겨우 그거라고?”“내가 유학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 때문
얼마 후, 강한서와 한성우는 드디어 인사를 마치고 유현진과 차미주 쪽으로 걸어왔다. 강한서는 손에 바나나를 들고 유현진에게 건네주었다. 바나나를 건네받은 유현진이 바로 껍질을 벗겨 입에 넣으려고 했다. 강한서가 유현진에게 눈치를 줬다. “유상수 왔어. 들키지 마.”유현진은 멈칫하더니 바나나를 다시 강한서에게 던지며 차갑게 말했다. “마음대로 이러지 마시죠. 저 바나나 안 좋아해요.”한성우: ...‘1초 만에 몰입하다니.’유상수는 멀지 않은 곳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기며 바나나를 들고 서서는 한참 후에야 물었다. “뭐 먹고 싶어. 내가 가져다줄게.”“제가 뭘 먹고 싶든, 강 대표님과 무슨 상관이죠?”유현진은 조금 짜증스럽게 말했다. “비켜주시겠어요?”유상수가 얼른 유현진 곁으로 다가왔다. “현진아, 왜 그러니? 한서도 너 챙겨주려고 그러는 거잖아. 얘가, 너무 고집스러워서 탈이야.”유현진은 얼굴을 굳힌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계집애가, 자기 엄마처럼 성격이 더러워서는. 강한서가 어떤 사람인데. 강한서가 정말 끝도 없이 맞춰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유상수는 강한서가 화라도 낼까 봐 얼른 유현진을 대신해 사과했다. “한서야, 괜찮니? 얘가 정말 성질이 점점 더 날카로워지네. 이혼까지 해놓고 아직도 반성하지 않다니 말이야.”유상수의 말에 차미주는 욕설을 퍼붓고 싶어졌다. ‘대체 무슨 낯으로 저런 얘길 하는 거야?’‘현진이가 저 자식이랑 이혼한 건, 아주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잖아. 아주머니 남편이라는 인간이 장례식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서, 무슨 자격이 있어서 현진이를 질책해?’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유 대표님, 현진이는 잘못한 거 없어요.”유상수가 그의 말에 깜짝 놀랐다. ‘이거... 강한서가 이렇게 사랑꾼이었나?’잠시 생각하던 유상수는 갑자기 뭔가를 떠올렸다. ‘이건, 너무 잘된 일이잖아.’강한서의 지금 상태는, 유현진의 말이 곧 법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유현진은 지정욱이라는 젊은 남자를 쓱 훑어보았다.지정욱이 정명석의 사촌 동생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의 외모는 너무나도 평범했기 때문이다.작은 두 눈에, 큰 머리. 키는 작지는 않았지만, 비율이 좋지 않았고 살짝 정 자세로 서 있기 힘들어 보이기도 했으며 거북목이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전혀 젊은 남자의 기백이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알코올에 중독되어 정신이 흐릿한 사람으로 보였다.유현진의 시선을 느낀 상대는 바로 작은 두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유현진은 바로 고개를 홱 돌려 시선을 피했다.마음이 급했던 유상수는 얼른 미래의 사위가 될 강한서를 소개하려고 했다. 상대에게 인맥을 넓혀주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그는 강한서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다.강한서는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이고는 시선을 계속 유현진에게만 돌리고 있었다.그런 그의 모습에 유상수는 분명 강한서가 아직도 유현진에게 미련을 못 버린 것으로 생각했고 반드시 두 사람을 처음의 함께 했던 사이로 만들어 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두 사람이 다시 이어지게 되면 자신의 사업에도 도움이 되었기에 유상수는 절대 이 기회를 마다할 리가 없었다.그렇게 생각한 유상수는 바로 고개를 돌려 유현진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따 결혼식이 끝나면, 바로 네가 내 딸이라고 밝힐 생각이다. 현진아, 앞으로 유씨 가문이 널 든든하게 지켜줄 거다.”유현진은 시선을 떨군 채 담담하게 말했다.“그래도 먼저 아줌마와 상의해 보고 결정하시죠. 이렇게 좋은 날에 분위기를 망칠 순 없잖아요.”그는 식견도 짧고 그의 뜻을 눈치채지 못하는 백혜주에게 딱히 알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그러나 그는 일단 그녀의 말에 대답을 했다.“그래, 알았다.”그는 이내 고개를 돌려 유현아에게 말했다.“일단 손님들을 계속 네가 맞이하거라. 난 네 엄마한테 가보마.”“알았어요. 아빠.”유상수는 바로 자리를 옮겨갔다. 유현아는 고개를 돌리자마자 유현진만 바라보고 있는 강한서를 목격하게 되었고 순간 열불이 올라왔다.그녀에게 강한서는
차미주는 바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난 아무 말도 안 했어.”강한서의 목소리가 다운되었다.“그러니까, 현진이가 정명석과 키스를 했다고?”차미주는 모른 척 말했다.“잘 못 들은 거야.”그녀는 바로 우정이 아닌 도망을 선택하려 했다.“그, 뭐냐. 나도 갑자기 배가 고픈 것 같아. 스테이크 더 있나 확인하러 갈게.”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도망갔다.“...”유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차미주의 주둥아리를 믿은 내가 잘못이지!'강한서는 어두워진 시선으로 유현진을 보며 물었다.“설명해 봐.”유현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기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돌아가서 설명하면 안 돼? 아직 이 연극은 안 끝났잖아.”강한서의 얼굴에서 빠직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런 그의 모습에 유현진은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넘어가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그녀는 헛기침을 내뱉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실 별거 아니야. 그냥... 그냥 정명석은 내 첫사랑이었거든.”강한서의 안색이 그녀의 예상대로 어두워졌다.그는 이를 갈며 말했다.“아까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어?”유현진의 목소리는 점점 더 낮아졌다.“그건 그냥 네가 화낼까 봐 그런 거야.”“내가 화낼 걸 알면서도 나를 속여?”“속인 거 아니야.”유현진은 그의 손등을 살살 쓸었다.“나도 그 사람을 여기서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어. 그래서 너한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몰랐단 말이야. 넌 질투가 심하잖아. 만약 네가 삐쳐서 연기 안 해주겠다고 하면 헛걸음하게 되잖아.”강한서의 안색은 여전히 굳어져 있었다.유현진의 살짝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강한서, 한서야? 대표님?”그러나 강한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결심한 듯 이를 꽉 물더니 바로 말했다.“오빠, 화내지 마. 집에 가서 오빠 하란 대로 다 할 테니까 화 좀 풀어, 응? 자꾸 화내면 건강에 안 좋아. 그럼 나도 마음이 아프다고.”강한서의 심장이 쿵쾅쿵
‘하, 치밀한 자식!'유현진은 그런 강한서의 속마음을 알 리가 없었다. 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열예닐곱 살이었던, 아무것도 모르던 애들이 사귄 거라 연애가 뭔지도 몰랐어.”강한서는 그녀를 흘겨보았다. 그러자 유현진이 바로 입을 열었다.“내 마음속 1순위인 우리 오빠를 제외하고 제일 잘생긴 사람은 바로 너야.”“...”강한서는 할 말을 잃었다.그는 비록 송민준에게 순위가 밀렸지만 그래도 넘어가 주기로 했다.“그럼 왜 헤어졌는데?”유현진이 말했다.“유학을 간다고 했어. 난 장거리 연애엔 자신이 없었거든. 그래서 헤어지자고 했지.”“그저 그렇게 헤어졌다고?”강한서는 잘 믿기지 않는 듯했다.유현진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걔 아빠가 날 찾아왔었어. 엄청 기분이 불쾌해지는 말만 했었지.”강한서는 바로 눈치챘다.장석호 그 사람은 가문을 아주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유씨 가문을 조사하고 유현진을 찾아가 난처하게 만든 것이 분명했다.미성년자이고, 또 금방 연애를 시작했으니, 감정도 그리 깊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그때의 유현진은 분명 하현주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클 때였고, 절대 그런 취급까지 받아 가며 연애를 이어갈 사람이 아니었다.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그가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은 타이밍이 아주 정확했던 것 같았다. 만약 그도 하현주가 건강할 때 유현진을 만난 것이라면, 거만하고 유별난 그때의 성격 탓에 절대 유현진의 마음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그렇게 생각한 강한서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래도 마음에 걸려.”유현진은 그의 말에서 그가 얼마나 고소해하고 있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그녀는 작게 코웃음을 쳤다.“마음에 안 걸렸다면 이런 것도 너한테 말하지 않았을 거야.”강한서는 조금 전 차미주가 했던 질문을 떠올리며 물었다.“그럼 두 사람은 진도 어디까지 나갔는데? 키스?”“...”유현진은 바로 말을 돌렸다.“결혼식 곧 시작할 것 같아.”강한서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네 첫 키스 상대가 걔야?”유현
휴대폰 너머로 뭐라고 말하는지 들리지 않았지만, 백혜주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의심하는 사람은 없겠지?”“없습니다.”백혜주는 미간을 꾹꾹 누르며 목소리를 한껏 낮춰 말했다.“고생했어요. 이 일만 잘되면 나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네요.”말하던 와중에 신부 대기실 문이 활짝 열렸다.화들짝 놀란 백혜주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고개를 돌린 그곳엔 유현아가 있었다. 그녀는 바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짜증을 냈다.“노크할 줄 몰라? 넌 이제부터 유씨 가문의 하나뿐인 딸이야. 행동거지를 조심해야지. 괜히 다른 사람 눈에 교양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혀 웃음거리가 돼서는 안 되잖니.”유현아는 잔뜩 어처구니가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유현진 그 뻔뻔한 것이 또 왔어요!”백혜주는 멈칫하더니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걔가 여길 왜 와?”“아빠가 불렀어요. 엄마는 아까 그 자리에 없으셔서 모르겠지만, 아빠가 걔한테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아세요? 유현진이 친딸이라도 된 것처럼 대했다니까요! 이렇게 좋은 날에 걔를 왜 불렀는지! 정말 짜증 나요!”백혜주의 신경이 바로 날카로워졌다. 그녀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유현진이 누구랑 왔니?”“아마 혼자 온 것 같던데요?”유현아는 곰곰이 생각했다. 확실히 유현진이 결혼식장으로 들어올 때 혼자였던 것 같았다.“더는 어느 가문의 딸도 아니니 체면치레는 할 수 없을 거예요. 심지어 무슨 궁중 자수가 박힌 한복을 입고 왔더라니까요.”백혜주는 눈앞에 있는 자신의 딸인 유현아가 너무나도 멍청하다고 생각되어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누가 그런 걸 물어봤니? 내가 물어본 건, 강한서랑 유현진이 같이 왔냐고. 그거 물어본 거잖아.”유현아는 바로 입을 삐죽 내밀었다.“강한서는 오긴 했는데, 유현진이랑 같이 온 거는 아닌 것 같았어요.”백혜주는 의심의 눈길로 그녀를 보았다.“확실해?”“당연하죠. 엄마는 유현진 꼬락서니를 못 봐서 그래요. 유현진은 강한서를 똑바로 쳐다도 못 보는 것 같았는데, 오히려
한성우는 작은 토마토를 집어 쉴 새 없이 조잘거리는 그녀의 입 속에 밀어 넣었다.“그래, 넌 모르겠지. 적과 싸우려면 적에 대해 잘 알아야 해. 아무것도 모른 채로 어떻게 적과 싸우냐?”차미주는 작은 토마토를 씹어 넘겼다. 그리로는 작게 코웃음을 쳤다.“흥, 넌 그냥 MCN 회사로 떼돈을 번다고 하니까 몰래 그 방법을 배워 한 몫 챙기려는 거잖아, 아니야?”한성우는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오올, 네 머리는 오늘 드디어 잘 돌아가나 본데?”차미주는 그의 손을 '탁' 쳐냈다.“내가 아직도 널 몰라? 넌 돈만 보면 눈을 반짝이잖아.”한성우는 작게 코웃음을 쳤다.“그건 네 친구한테 더 어울리는 말이지 않나?”차미주는 그의 종아리를 차버렸다.“현진이가 아무리 돈을 좋아한다고 해도 친구까지 팔아먹지는 않거든. 어디 너처럼 강한서를 매번 팔아먹는 줄 알아?”한성우는 변명했다.“그건 걔도 동의한 거야. 그 대신 나한테서 다른 걸 배워갔으니 최소한의 수강료는 받아야지 않겠냐?”“너 같은 놈한테 뭐가 배울 게 있다고 그래?”한성우는 입꼬리를 올렸다.“나 같은 놈이라고 해도 배울 것만 있으면 된 거잖아, 안 그래?”그는 바로 먹기 편하게 썰어둔 스테이크를 차미주에게 건넸다.“넌 왜 네 친구 옆에서 경계 모드를 하지 않고 나 따라온 건데? 왜,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차미주는 멈칫하더니 바로 찔리는 구석이 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성우는 그녀의 마음을 맞힌 줄 알고 바로 기분 좋은 듯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했다.“한시라도 눈앞에 안 보이니까, 막 보고 싶고 그래?”차미주는 바로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뭐래!”그녀는 다시 멈칫하더니 우물쭈물하며 말했다.“그냥, 현진이가 날 때릴까 봐...”“형수님이 널 왜 때려?”한성우는 이해가 되지 않아 자세히 묻게 되었고 그제야 차미주가 말실수로 사고 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주의한다고 하긴 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라 강한서가 분명 지금 현진이한테 꼬치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
홍혜림이 서해금에게 얘기를 꺼내려던 그때, 진윤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깐 실례할게요.”홍혜림이 곧바로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부축해줄게.”“네.”진윤이 대답했다. 진윤을 부축하며 병실을 나서는 홍혜림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고개를 돌려 성월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했죠?”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어요.”멈칫하던 성월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정말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러 오실까요?”서해금이 덤덤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분명 부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홍혜림은 지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저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아무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조향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OM향 협회의 투표로 승패가 결정돼요. 홍혜림은 OM향 협회의 오래된 회원이에요. 게다가 이번 조향 대회 열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홍혜림은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큰 도움을 준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거예요. 전 준비가 안 된 싸움은 시작하지 않아요.”피식 웃음을 흘린 서해금의 눈빛이 멸시로 가득했다. “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성월은 이토록 치밀한 서해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성빈의 친척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서해금의 모습에 성월은 그녀가 단지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해금이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마음에 빚을 진 홍혜림이 조향대회에서 관건적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서해금이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고 있으니 송가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성월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물었다. “대표님, 인터넷에서 진윤 씨에 관한 여론이 들끓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가면 걔들은 거짓말을 들킨 네가 양심에 찔려서 해외로 도피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진윤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걔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출국하면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할 텐데.”“그럼 너 평생 해외에만 있을 거야? 안 돌아올래?”입술을 달싹인 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집도, 가족도 전부 한주에 있으니 지금 당장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홍혜림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윤아, 사람의 명성이라는 게 한 번 나빠지면 다시 좋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해외로 도망쳐 이번 일을 지나보낸다고 해도 졸업하면 결국 여기 동기들과 다시 마주해야 한 텐데, 걔들이 널 보고도 옛날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 같아?”“다들 널 안 좋게 보고 있는 지금, 네가 끝까지 네 결백을 증명해야 나중에 걔들이 다시 이 얘기를 꺼내도 억울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결백을 뭐로 증명해요? CCTV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전 당당하다는 걸 아무도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요. 절 믿는 사람도 없다고요.”진윤이 잠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저 어떡해요?”홍혜림은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아무도 널 안 믿어도 엄마는 널 믿어. 네 아빠, 형 그리고 네 형수님도 널 믿어. 그러니까 아들, 괜찮아. 엄마가 있는 한 아무도 우리 아들 못 건드려. 엄마가 꼭 네가 정정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할게.”홍혜림이 말에 진윤이 대답하려던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진윤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홍혜림 역시 심호흡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자 보이는 의외의 인물에 홍혜림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해금이었다.서해금은 성월과 함께 진윤의 병실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 서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서해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