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주가 한성우에게 다가와 물을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앉아서 좀 쉴래?”한성우가 웃으며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휴대폰을 들고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 “네 마음이 불편하면 형수님 찾아가서 말해. 어디가 아픈지, 콕 짚어주면서 말해. 절대 강압적으로 형수님한테 뭔가를 요구하지 말고. 그냥 널 마음 아파하게만 만들라고!”“연애에도 수단이 필요한 법이야. 직진만 하지 말고, 상대방 모르게 뭔가를 하려고 하지도 말고. 꼭 알게 해야 해. 심지어 과장되게 생색도 내면서.”“연애 중에 제삼자가 나타났을 땐, 그 사람을 상대할 게 아니라, 네 애인을 공략해야 한다고! 멍청한 놈이나 상대방을 상대하는 거야. 널 미쳐 날뛰는 쪼잔한 놈으로 만들면, 그 사람은 목적을 달성한 거라고!”강한서가 한성우의 말을 바로잡았다. “제삼자 같은 건 없어. 현진이는 나만 좋아해.”“네네네, 너만 좋아하겠지. 그럼 가서 형수님이랑 통화해, 난 차가 와서. 나중에 얘기해.”차미주가 걸어오자 한성우는 급히 전화를 끊었다. 강한서는 휴대폰을 들고 한성우가 했던 얘기를 떠올리며 생각에 빠졌다. 유현진은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침대 시트를 바꾸는 강한서를 마주했다. 그녀는 그의 모습에 의아해졌다. 강한서처럼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자란 도련님은 침대 시트를 바꾸기는커녕, 시트의 앞뒷면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는 머리의 물기를 털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시트 바꾼 지 며칠 되지도 않았잖아. 왜 바꾸는 거야?”강한서는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대답했다. “너 어제 이 시트가 불편하다며?”“난 그냥 조금 까끌까끌하다고 했을 뿐인데?”유현진이 강한서를 도와 시트 모서리를 잡아주며 말했다. “전에 내가 너한테 치약은 아래서 위로 짜고, 갈아입은 옷은 빨래 바구니에 넣으라고 할 때는 잘 까먹더니, 오늘은 침대 시트가 까끌까끌한 걸 알아차리다니. 너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이렇게 부지런한 척하는 거지?”강한서가 말했다. “꿍꿍이가 있긴 하지.”유현진이 멈
강한서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다른 사람 휴대폰을 함부로 보는 건 매너 없는 거 아니야?”유현진이 시선을 위로 향하며 말했다. “함부로 다른 사람 생일을 휴대폰 비밀번호로 설정하는 건 매너 있는 거야?”강한서: ...“이리 와.”유현진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강한서가 도도하게 말했다. “제대로 불러. 강아지 부르듯 부르지 말고.”유현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올 거야, 말 거야?”강한서는 우물쭈물하며 입술을 달싹이더니 “다음은 없어.”라며 유현진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가 유현진의 앞으로 다가오자, 유현진이 바로 그를 침대로 밀어뜨렸다. 그녀도 뒤따라 침대에 누우며 그의 품에 안겼다.멈칫하던 강한서가 나지막이 말했다. “나 아직 샤워 안 했어.”유현진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 “괜찮아. 너 냄새 난다고 싫어하지 않아.”강한서: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안전 교육 상식을 가르쳤다. “성관계 전엔 깨끗이 씻는 게 제일 좋아. 80%의 여성질환은 깨끗하지 않은 성생활로 인한 거야. 그중 대부분은 성관계 파트너가 생식기관 위생에 신경 쓰지 않아서 감염되는 거라고.”유현진: ...“아는게 많네.”강한서가 겸손한 태도로 얘기했다. “지난번 너랑 병원에 갔을 때, 병원에서 나눠주는 HPV 홍보 글에서 읽었어.”“아~”유현진이 말을 길게 늘어뜨리더니 갑자기 그의 귓가에 바짝 다가갔다. “하지만 난 못 참겠는걸.”강한서는 온몸의 근육이 순식간에 긴장했다가 다시 천천히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그의 귀는 눈에 띄게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의 목젖이 꿀꺽 움직였다. “아니면, 욕실로 가서...”“여기서 해.”유현진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유혹적이었다. “욕실엔 의자가 없잖아. 서 있기 싫어.”방금까지 강한서의 귀는 조금 붉은 정도였다면 지금은 완전히 새빨개졌다. 서 있고 싶지 않아...서 있고...강한서의 머릿속에는 떠오르는 미성년자 관람 불가의 장면이 떠올랐다. 그의 눈은 더욱
유현진의 말에 굳었던 강한서의 얼굴이 확 피었다. 하지만 그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내가 너 안 믿는다고 한 적 없는데, 왜 이렇게까지 공식적인 해명 글을 썼어?”유현진은 그런 강한서를 맞춰주지 않고 얼른 말했다. “그럼 업로드 안 할게.”그에 강한서는 눈보다 빠르게 손을 움직여 그녀의 휴대폰을 낚아채 피드를 업로드했다. 글을 올리고 고개를 돌리자 그는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유현진을 마주했다. 그 순간, 그는 어쩐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유현진이 그에게 다가와 나지막이 말했다. “넌 수영선수보다도 대단해.”강한서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유현진이 그에게 설명했다. “넌 물에 빠져도 입만 동동 뜰 거야. 그러니 안 대단해?”강한서: ......한성우와 차미주는 비행기에서 내려 차에 올라탔다. 그들은 두 시간을 더 달려서야 마을에 도착했다. 이미 저녁 11시였다.농촌 마을은 도시와 달라 그 시간엔 길거리의 많은 가게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다. 가끔 무인 편의점이나 성인용품 가게만 있을 뿐이었고, 거리에는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성우는 땀범벅이 된 차미주를 보고는 참지 못하고 직접 물건을 들었다. 차미주가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 거의 다 왔어.”“오는 길 내내 네가 들었잖아. 잠깐 쉬어. 거의 다 왔는데, 서두르지 마.”한성우는 말하며 휴지를 꺼내 차미주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주었다. 차미주는 그제야 휴지를 받아 들고 짐을 그에게 넘겨주었다. “엄마가 데리러 온다고 했는데, 춤추러 간 게 분명해! 그 말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한성우가 웃으며 말했다. “우린 둘이잖아. 아주머니 혼자서 스쿠터를 타고 오셔도 우리 둘을 다 데리고 가는 건 무리야.”차미주: ...차미주의 엄마가 자신이 스쿠터를 타고 온다는 말을 들으면 화낼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렸을 적 그녀는 도매하기 위해 삼륜차를 타고 다니다 당시의 라이벌에게 놀림을 받은 적이 있었다. 사업을 시작한 뒤 그녀의 엄
비틀거리던 한성우는 거대하고 복슬복슬한 물체에 의해 그대로 쓰러졌다. 곧이어 축축한 혀가 그의 머리를 핥았다. 한성우의 등에는 소름이 쫙 돋았고, 그는 순간 손을 뻗어 반격하려고 했다. “때리지 마, 때리지 마!”차미주가 얼른 다가와 목줄을 잡아당겨 한성우를 덮친 물체를 떼어냈다. 거리가 벌어지자 한성우는 그제야 자신을 덮친 것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그건 크기가 80cm 정도 되는 코카서스 셰퍼드였는데, 두 발로 일어서면 차미주보다도 컸다. 그의 털은 회색과 흰색에 얼룩무늬가 있었고, 볼륨감이 있으면서 광택이 났다. 근육질의 몸매를 가지고도 차미주에게 끌려온 코카서스 셰퍼드는 오히려 잔뜩 흥분해 그녀의 곁을 빙빙 맴돌았다. 아담한 차미주가 하마터면 놓칠뻔했고, 그녀가 투덜투덜 소리를 질렀다. “복실아, 복실아! 진정해!”전엔 강아지를 무섭다고 느낀 적이 없는 한성우였지만, 이제 보니 무섭고 아니고는 체형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느껴졌다. 아무래도 그가 이제껏 봤었던 대형견은 기껏해야 골든레트리버 정도였으니 말이다. 코카서스 셰퍼드, 강아지가 사납고 아니고를 떠나, 일단 그 어마어마한 체형만으로도 열에서 아홉은 다리에 힘이 빠질 것이었다. 강아지는 지나치게 활발한 편이었다. 낯선 사람을 보고 잔뜩 흥분해 굳이 한성우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한성우는 두피까지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그는 어쩐지 차미주의 힘으로는 저렇게 거대한 강아지를 붙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면 내가 먼저 나갔다가, 네가 걜 묶으면 다시 들어올게.”차미주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얘 말 잘 들어.”말이 끝나기 무섭게 복실이는 갑자기 그녀의 손에서 벗어나 한성우에게 달려들었다.한성우도 더 이상 환자 행세를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차미주가 목줄을 놓친 순간, 그는 바로 도망쳤다. 복실이는 한성우가 그와 놀아주려는 줄 알고 그의 뒤를 쫓아갔다. 차미주네 집 마당은 작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형견에게는 그 공간은 작다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한성우: ...복실은 그의 천적임이 틀림없었다![번외]어느 날, 강한서가 일을 하는 동안, 유현진에게서 문자가 왔다. 유현진: 「요즘 HR 진짜 비싸네.」강한서: 「괜찮은 것 같은데.」유현진: 「작년엔 지금보다 쌌어.」강한서가 멈칫했다. 「너 HR 필요해?」유현진: 「요즘 일이 너무 바빠서, 밤도 많이 새고. 좀 진정시킬 필요가 있는 것 같아.」강한서는 요즘 그녀가 밤을 새우며 촬영하고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녀의 다크서클은 이미 턱까지 내려왔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강한서는 마음이 아팠다. 「내가 알아볼게.」유현진이 얼른 답장했다. 「고맙습니다, 여보~」차미주가 옆에서 엄지를 치켜들었다. “너 이런 식으로 돈을 모은 거구나?”유현진은 낯이 두꺼운 편이었다. “표현할 기회를 주는 거야.”차미주는 자신도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현진이 방금 강한서에게 했던 수법을 한성우에게 쓸 생각이었다. 한성우가 빠르게 답장했다. 「지난번 고객이 회사에 보낸 거 있어. 조금 이따 너희 집으로 보내라고 할게.」차미주가 유현진의 말투를 따라 했다.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냐? 다른 사람한테서 받은 걸 나한테 주다니.」한성우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그는 어쩐지 그 말투가 눈에 익은 것 같았다. 전혀 차미주답지 않은 말투였다. 오히려, 강한서네 돈 밝히는 여인네와 비슷한 것 같았다. 한성우는 생각하며 차미주를 달랬다. 「화 풀어. 너 아직 임신 중이라 아무거나 쓰면 안 돼. 아이한테 안 좋아. 아이 낳으면, 우리 본사 가서 대량 구매하자.」차미주는 한성우의 말에 바로 마음을 풀었다. 유현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성우를 믿어? 아이 낳으면, 또 모유 수유 기간이라 안 된다고 할 거야. 몇년 동안 한성우가 너한테 말로만 했던 약속이 얼마야, 그거로는 부족해?”차미주: ...한성우는 태생이 검소(깍쟁이)했다. 결혼 후, 그 성격은 더욱 두드러졌다. 결혼 전 끊었던 각 클럽의 VIP 카드는, 비즈니스를 위해 자주 다니는 두
차미주는 난처해하며 복실이 대신 설명했다. “복실이는 아마 네가 좋은가 봐. 나 쟤가 누굴 보고 저렇게 흥분하는 거 처음 봐.”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복실은 “쫙” 소리를 내며 옷에서 천 조각을 뜯어냈다.한성우: ...차미주의 외할머니는 자애로우신 분이셨다. 안쓰러운 한성우의 모습을 보더니, 얼른 입을 열었다. “미주야, 내 방에 네 아빠가 전에 입던 옷이 있단다. 가서 옷 좀 가져와 먼저 친구가 씻고 갈아입을 수 있게 하렴. 그리고 내일 아침에 같이 가서 옷 두어 벌 사.”차미주가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얼른 위층으로 옷을 가지러 올라갔다. 한성우는 몸 곳곳에 가시가 박히고 더러운 상태라 소파에 앉기도 민망할 지경이었다. 그래서는 그는 얌전히 거실에 서 있었다. 꼴은 좀 볼품없었지만 말은 여전히 예쁘게 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할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미주가 친구와 함께 온다고 해서, 난 여자애일 줄 알았지, 사내놈일 줄은 몰랐네.”한성우가 멈칫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미주가 할머니한테 절 친구라고 해요?”할머니는 의아해하며 물었다.“아니라는 건가?”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미주가 무슨 사이라고 하면 무슨 사이인 거죠. 미주 말이 다 맞아요.”할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미주 말이 맞아? 말투로 보아하니, 설마 남자친구?’한성우를 보던 할머니의 눈빛이 갑자기 바뀌었다. 그녀는 한성우를 이리저리 관찰했다. ‘허우대는 멀쩡한 것이, 예의도 바른 것 같고. 얼굴은... 너무 더러워서 잘 모르겠지만 강아지한테 쫓겨서 저 지경이 된 걸 보면 어쩐지 조금 모자 보이는 것 같은데.’“이름이?”한성우가 말했다. “한성우예요. 밝을 성에, 뛰어날 우를 써요. 성우라고 불러주시면 돼요.”차미주가 옷을 가지러 간 사이, 아래층에서 한성우는 이미 할머니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할머니는 계속 “성우야”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그 호칭이 얼마나 다정하게 들리는지 몰랐다. 차미주가 내려오자 할머니는 그녀를 불러
개의치 않아 하는 차미주를 보니, 그가 괜한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집에 아직도 아빠 옷이 있네.”“이 옷은 엄마가 산 건데 아빠가 왜 가져가?”차미주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처음엔 외삼촌한테 주려고 했는데, 삼촌한텐 작고 버리기엔 아까워서 뒀어. 택도 안 뗀 옷들도 많아. 거의 골동품이라니까.”“넌 아빠랑 사이가 안 좋아?”그녀의 집안에 어우러지려면, 자세히 알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실수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쁘다고 할 수도 없어. 어쨌든 아빠랑 지낸 시간이 길지는 않으니까. 아빠는 여기 사람이 아니거든. 엄마는 아빠가 살던 곳으로 시집을 갔다가, 그곳에서 6, 7년을 살았어. 나중에 날 데리고 외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고. 그리고 2년 후 이혼했지.”“내가 어릴 땐, 아빠는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었어. 일 년 동안 며칠 만날까 말까였지. 졸업하고는 학교에 남았는데, 엄마는 아빠를 따라 도시에 있길 원하지 않았거든. 그 일로 두 분이 갈등이 생겼고, 분가하다가 이혼. 사실 아빠는 나한테 꽤 잘해줘. 하지만 엄마와의 사이는 여전히 살얼음판이지. 아빠도 일찍 재혼하셨고, 그쪽에서 남동생도 낳으셨어. 하지만 새 아내가 우리랑 연락하는 걸 예민하게 받아들이거든. 그래서 나도 웬만하면 먼저 연락 안 해.”한성우는 차미주의 말에서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 그건 바로 장모님이 장인어른을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결론은 그것이었다. 조심히 만날 것.차미주는 욕실 문을 열었다. 그녀는 수건을 포함한 물건들을 한성우에게 밀어주었다. “얼른 씻어. 더러워진 옷은 밖에 두는 거 잊지 말고.”한성우가 말했다. “등이 아픈 것 같아.”“그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안 아플 리가 있어? 강아지가 쫓아가는데 도망가다니, 너 바보야?”“나도 도망가고 싶지 않았어. 그렇게 큰 애가 혓바닥을 내밀고 침을 뚝뚝 흘리면서 뒤에서 쫓아오는데, 나도 모르게 그런 거라고.”차미주가 살풋 웃었다. “겁에 잔뜩 질려서는, 그러고
그 편지는 여자아이의 부모가 직접 쓴 손 편지였다. 천자가 넘는 장편의 글이었는데, 진심을 담아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한편, 그들의 딸이 당시 백화점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한 것도 있었다. 아이는 자신과 유현진이 거의 비슷한 시간에 가게로 들어섰고 당시 유현진이 두 명의 미성년자와 다투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했다. 두 명의 미성년자 중 한 사람이 유현진의 마스크를 잡아당겼고, 휴대폰을 유현진의 얼굴에 들이밀었기 때문에 유현진이 휴대폰을 밀어냈다는 것이었다. 그 여자가 넘어진 것도 유현진이 민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한 여자가 유현진과 다투면서 유현진을 밀었고, 유현진은 뒤로 밀려나면서 실수로 부딪힌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는 자신도 그저 구경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고 했다. 처음 현실에서 배우를 만나는 거라 궁금하기도 했고, 심지어 유현진은 요즘 송민영을 밀친 사건으로 핫한 인물이었으니 친구들과 얘기를 하려고 영상을 촬영한 것이라고 했다. 더 잘 나오도록 촬영하기 위해 아이는 굉장히 가까이 서 있었다. 비록 당시 현장 분위기는 굉장히 과열되었지만, 대부분은 시비를 건 두 사람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고, 끊임없이 유현진을 질책했다. 유현진은 말이 적었고 폭력을 휘두른 적도 없었다. 심지어 컵이 날아왔을 때, 여자아이를 밀어버렸다. 아이의 부모는 감사 편지의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저와 제 남편도 미디어 관련 업계에 종사하고 있어요. 전에 인터넷에 떠돌던 부정적인 뉴스 때문에 유현진 씨에 대해 그다지 호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아무래도 당시 동영상이 너무 분명하게 찍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유현진 씨는 계속 그 일에 대해 사과하거나 대응하지 않았죠.아이가 저한테 유현진 씨가 아이를 위해 날아온 컵을 막아줬다고 했을 때, 전 정말 의외였고 충격이었어요.제 딸이 묘사한 유현진 씨는, 요즘 기사에 알려진 인성이 바닥을 친 연예인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거든요.유현진 씨는 자신이 사람을 구해주었다는 사실을 자랑하며 여기저기 떠벌리지도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
홍혜림이 서해금에게 얘기를 꺼내려던 그때, 진윤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깐 실례할게요.”홍혜림이 곧바로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부축해줄게.”“네.”진윤이 대답했다. 진윤을 부축하며 병실을 나서는 홍혜림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고개를 돌려 성월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했죠?”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어요.”멈칫하던 성월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정말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러 오실까요?”서해금이 덤덤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분명 부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홍혜림은 지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저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아무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조향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OM향 협회의 투표로 승패가 결정돼요. 홍혜림은 OM향 협회의 오래된 회원이에요. 게다가 이번 조향 대회 열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홍혜림은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큰 도움을 준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거예요. 전 준비가 안 된 싸움은 시작하지 않아요.”피식 웃음을 흘린 서해금의 눈빛이 멸시로 가득했다. “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성월은 이토록 치밀한 서해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성빈의 친척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서해금의 모습에 성월은 그녀가 단지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해금이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마음에 빚을 진 홍혜림이 조향대회에서 관건적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서해금이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고 있으니 송가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성월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물었다. “대표님, 인터넷에서 진윤 씨에 관한 여론이 들끓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가면 걔들은 거짓말을 들킨 네가 양심에 찔려서 해외로 도피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진윤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걔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출국하면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할 텐데.”“그럼 너 평생 해외에만 있을 거야? 안 돌아올래?”입술을 달싹인 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집도, 가족도 전부 한주에 있으니 지금 당장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홍혜림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윤아, 사람의 명성이라는 게 한 번 나빠지면 다시 좋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해외로 도망쳐 이번 일을 지나보낸다고 해도 졸업하면 결국 여기 동기들과 다시 마주해야 한 텐데, 걔들이 널 보고도 옛날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 같아?”“다들 널 안 좋게 보고 있는 지금, 네가 끝까지 네 결백을 증명해야 나중에 걔들이 다시 이 얘기를 꺼내도 억울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결백을 뭐로 증명해요? CCTV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전 당당하다는 걸 아무도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요. 절 믿는 사람도 없다고요.”진윤이 잠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저 어떡해요?”홍혜림은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아무도 널 안 믿어도 엄마는 널 믿어. 네 아빠, 형 그리고 네 형수님도 널 믿어. 그러니까 아들, 괜찮아. 엄마가 있는 한 아무도 우리 아들 못 건드려. 엄마가 꼭 네가 정정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할게.”홍혜림이 말에 진윤이 대답하려던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진윤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홍혜림 역시 심호흡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자 보이는 의외의 인물에 홍혜림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해금이었다.서해금은 성월과 함께 진윤의 병실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 서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서해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