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서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다른 사람 휴대폰을 함부로 보는 건 매너 없는 거 아니야?”유현진이 시선을 위로 향하며 말했다. “함부로 다른 사람 생일을 휴대폰 비밀번호로 설정하는 건 매너 있는 거야?”강한서: ...“이리 와.”유현진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강한서가 도도하게 말했다. “제대로 불러. 강아지 부르듯 부르지 말고.”유현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올 거야, 말 거야?”강한서는 우물쭈물하며 입술을 달싹이더니 “다음은 없어.”라며 유현진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가 유현진의 앞으로 다가오자, 유현진이 바로 그를 침대로 밀어뜨렸다. 그녀도 뒤따라 침대에 누우며 그의 품에 안겼다.멈칫하던 강한서가 나지막이 말했다. “나 아직 샤워 안 했어.”유현진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 “괜찮아. 너 냄새 난다고 싫어하지 않아.”강한서: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안전 교육 상식을 가르쳤다. “성관계 전엔 깨끗이 씻는 게 제일 좋아. 80%의 여성질환은 깨끗하지 않은 성생활로 인한 거야. 그중 대부분은 성관계 파트너가 생식기관 위생에 신경 쓰지 않아서 감염되는 거라고.”유현진: ...“아는게 많네.”강한서가 겸손한 태도로 얘기했다. “지난번 너랑 병원에 갔을 때, 병원에서 나눠주는 HPV 홍보 글에서 읽었어.”“아~”유현진이 말을 길게 늘어뜨리더니 갑자기 그의 귓가에 바짝 다가갔다. “하지만 난 못 참겠는걸.”강한서는 온몸의 근육이 순식간에 긴장했다가 다시 천천히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그의 귀는 눈에 띄게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의 목젖이 꿀꺽 움직였다. “아니면, 욕실로 가서...”“여기서 해.”유현진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유혹적이었다. “욕실엔 의자가 없잖아. 서 있기 싫어.”방금까지 강한서의 귀는 조금 붉은 정도였다면 지금은 완전히 새빨개졌다. 서 있고 싶지 않아...서 있고...강한서의 머릿속에는 떠오르는 미성년자 관람 불가의 장면이 떠올랐다. 그의 눈은 더욱
유현진의 말에 굳었던 강한서의 얼굴이 확 피었다. 하지만 그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내가 너 안 믿는다고 한 적 없는데, 왜 이렇게까지 공식적인 해명 글을 썼어?”유현진은 그런 강한서를 맞춰주지 않고 얼른 말했다. “그럼 업로드 안 할게.”그에 강한서는 눈보다 빠르게 손을 움직여 그녀의 휴대폰을 낚아채 피드를 업로드했다. 글을 올리고 고개를 돌리자 그는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유현진을 마주했다. 그 순간, 그는 어쩐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유현진이 그에게 다가와 나지막이 말했다. “넌 수영선수보다도 대단해.”강한서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유현진이 그에게 설명했다. “넌 물에 빠져도 입만 동동 뜰 거야. 그러니 안 대단해?”강한서: ......한성우와 차미주는 비행기에서 내려 차에 올라탔다. 그들은 두 시간을 더 달려서야 마을에 도착했다. 이미 저녁 11시였다.농촌 마을은 도시와 달라 그 시간엔 길거리의 많은 가게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다. 가끔 무인 편의점이나 성인용품 가게만 있을 뿐이었고, 거리에는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성우는 땀범벅이 된 차미주를 보고는 참지 못하고 직접 물건을 들었다. 차미주가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 거의 다 왔어.”“오는 길 내내 네가 들었잖아. 잠깐 쉬어. 거의 다 왔는데, 서두르지 마.”한성우는 말하며 휴지를 꺼내 차미주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주었다. 차미주는 그제야 휴지를 받아 들고 짐을 그에게 넘겨주었다. “엄마가 데리러 온다고 했는데, 춤추러 간 게 분명해! 그 말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한성우가 웃으며 말했다. “우린 둘이잖아. 아주머니 혼자서 스쿠터를 타고 오셔도 우리 둘을 다 데리고 가는 건 무리야.”차미주: ...차미주의 엄마가 자신이 스쿠터를 타고 온다는 말을 들으면 화낼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렸을 적 그녀는 도매하기 위해 삼륜차를 타고 다니다 당시의 라이벌에게 놀림을 받은 적이 있었다. 사업을 시작한 뒤 그녀의 엄
비틀거리던 한성우는 거대하고 복슬복슬한 물체에 의해 그대로 쓰러졌다. 곧이어 축축한 혀가 그의 머리를 핥았다. 한성우의 등에는 소름이 쫙 돋았고, 그는 순간 손을 뻗어 반격하려고 했다. “때리지 마, 때리지 마!”차미주가 얼른 다가와 목줄을 잡아당겨 한성우를 덮친 물체를 떼어냈다. 거리가 벌어지자 한성우는 그제야 자신을 덮친 것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그건 크기가 80cm 정도 되는 코카서스 셰퍼드였는데, 두 발로 일어서면 차미주보다도 컸다. 그의 털은 회색과 흰색에 얼룩무늬가 있었고, 볼륨감이 있으면서 광택이 났다. 근육질의 몸매를 가지고도 차미주에게 끌려온 코카서스 셰퍼드는 오히려 잔뜩 흥분해 그녀의 곁을 빙빙 맴돌았다. 아담한 차미주가 하마터면 놓칠뻔했고, 그녀가 투덜투덜 소리를 질렀다. “복실아, 복실아! 진정해!”전엔 강아지를 무섭다고 느낀 적이 없는 한성우였지만, 이제 보니 무섭고 아니고는 체형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느껴졌다. 아무래도 그가 이제껏 봤었던 대형견은 기껏해야 골든레트리버 정도였으니 말이다. 코카서스 셰퍼드, 강아지가 사납고 아니고를 떠나, 일단 그 어마어마한 체형만으로도 열에서 아홉은 다리에 힘이 빠질 것이었다. 강아지는 지나치게 활발한 편이었다. 낯선 사람을 보고 잔뜩 흥분해 굳이 한성우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한성우는 두피까지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그는 어쩐지 차미주의 힘으로는 저렇게 거대한 강아지를 붙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면 내가 먼저 나갔다가, 네가 걜 묶으면 다시 들어올게.”차미주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얘 말 잘 들어.”말이 끝나기 무섭게 복실이는 갑자기 그녀의 손에서 벗어나 한성우에게 달려들었다.한성우도 더 이상 환자 행세를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차미주가 목줄을 놓친 순간, 그는 바로 도망쳤다. 복실이는 한성우가 그와 놀아주려는 줄 알고 그의 뒤를 쫓아갔다. 차미주네 집 마당은 작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형견에게는 그 공간은 작다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한성우: ...복실은 그의 천적임이 틀림없었다![번외]어느 날, 강한서가 일을 하는 동안, 유현진에게서 문자가 왔다. 유현진: 「요즘 HR 진짜 비싸네.」강한서: 「괜찮은 것 같은데.」유현진: 「작년엔 지금보다 쌌어.」강한서가 멈칫했다. 「너 HR 필요해?」유현진: 「요즘 일이 너무 바빠서, 밤도 많이 새고. 좀 진정시킬 필요가 있는 것 같아.」강한서는 요즘 그녀가 밤을 새우며 촬영하고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녀의 다크서클은 이미 턱까지 내려왔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강한서는 마음이 아팠다. 「내가 알아볼게.」유현진이 얼른 답장했다. 「고맙습니다, 여보~」차미주가 옆에서 엄지를 치켜들었다. “너 이런 식으로 돈을 모은 거구나?”유현진은 낯이 두꺼운 편이었다. “표현할 기회를 주는 거야.”차미주는 자신도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현진이 방금 강한서에게 했던 수법을 한성우에게 쓸 생각이었다. 한성우가 빠르게 답장했다. 「지난번 고객이 회사에 보낸 거 있어. 조금 이따 너희 집으로 보내라고 할게.」차미주가 유현진의 말투를 따라 했다.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냐? 다른 사람한테서 받은 걸 나한테 주다니.」한성우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그는 어쩐지 그 말투가 눈에 익은 것 같았다. 전혀 차미주답지 않은 말투였다. 오히려, 강한서네 돈 밝히는 여인네와 비슷한 것 같았다. 한성우는 생각하며 차미주를 달랬다. 「화 풀어. 너 아직 임신 중이라 아무거나 쓰면 안 돼. 아이한테 안 좋아. 아이 낳으면, 우리 본사 가서 대량 구매하자.」차미주는 한성우의 말에 바로 마음을 풀었다. 유현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성우를 믿어? 아이 낳으면, 또 모유 수유 기간이라 안 된다고 할 거야. 몇년 동안 한성우가 너한테 말로만 했던 약속이 얼마야, 그거로는 부족해?”차미주: ...한성우는 태생이 검소(깍쟁이)했다. 결혼 후, 그 성격은 더욱 두드러졌다. 결혼 전 끊었던 각 클럽의 VIP 카드는, 비즈니스를 위해 자주 다니는 두
차미주는 난처해하며 복실이 대신 설명했다. “복실이는 아마 네가 좋은가 봐. 나 쟤가 누굴 보고 저렇게 흥분하는 거 처음 봐.”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복실은 “쫙” 소리를 내며 옷에서 천 조각을 뜯어냈다.한성우: ...차미주의 외할머니는 자애로우신 분이셨다. 안쓰러운 한성우의 모습을 보더니, 얼른 입을 열었다. “미주야, 내 방에 네 아빠가 전에 입던 옷이 있단다. 가서 옷 좀 가져와 먼저 친구가 씻고 갈아입을 수 있게 하렴. 그리고 내일 아침에 같이 가서 옷 두어 벌 사.”차미주가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얼른 위층으로 옷을 가지러 올라갔다. 한성우는 몸 곳곳에 가시가 박히고 더러운 상태라 소파에 앉기도 민망할 지경이었다. 그래서는 그는 얌전히 거실에 서 있었다. 꼴은 좀 볼품없었지만 말은 여전히 예쁘게 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할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미주가 친구와 함께 온다고 해서, 난 여자애일 줄 알았지, 사내놈일 줄은 몰랐네.”한성우가 멈칫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미주가 할머니한테 절 친구라고 해요?”할머니는 의아해하며 물었다.“아니라는 건가?”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미주가 무슨 사이라고 하면 무슨 사이인 거죠. 미주 말이 다 맞아요.”할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미주 말이 맞아? 말투로 보아하니, 설마 남자친구?’한성우를 보던 할머니의 눈빛이 갑자기 바뀌었다. 그녀는 한성우를 이리저리 관찰했다. ‘허우대는 멀쩡한 것이, 예의도 바른 것 같고. 얼굴은... 너무 더러워서 잘 모르겠지만 강아지한테 쫓겨서 저 지경이 된 걸 보면 어쩐지 조금 모자 보이는 것 같은데.’“이름이?”한성우가 말했다. “한성우예요. 밝을 성에, 뛰어날 우를 써요. 성우라고 불러주시면 돼요.”차미주가 옷을 가지러 간 사이, 아래층에서 한성우는 이미 할머니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할머니는 계속 “성우야”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그 호칭이 얼마나 다정하게 들리는지 몰랐다. 차미주가 내려오자 할머니는 그녀를 불러
개의치 않아 하는 차미주를 보니, 그가 괜한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집에 아직도 아빠 옷이 있네.”“이 옷은 엄마가 산 건데 아빠가 왜 가져가?”차미주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처음엔 외삼촌한테 주려고 했는데, 삼촌한텐 작고 버리기엔 아까워서 뒀어. 택도 안 뗀 옷들도 많아. 거의 골동품이라니까.”“넌 아빠랑 사이가 안 좋아?”그녀의 집안에 어우러지려면, 자세히 알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실수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쁘다고 할 수도 없어. 어쨌든 아빠랑 지낸 시간이 길지는 않으니까. 아빠는 여기 사람이 아니거든. 엄마는 아빠가 살던 곳으로 시집을 갔다가, 그곳에서 6, 7년을 살았어. 나중에 날 데리고 외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고. 그리고 2년 후 이혼했지.”“내가 어릴 땐, 아빠는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었어. 일 년 동안 며칠 만날까 말까였지. 졸업하고는 학교에 남았는데, 엄마는 아빠를 따라 도시에 있길 원하지 않았거든. 그 일로 두 분이 갈등이 생겼고, 분가하다가 이혼. 사실 아빠는 나한테 꽤 잘해줘. 하지만 엄마와의 사이는 여전히 살얼음판이지. 아빠도 일찍 재혼하셨고, 그쪽에서 남동생도 낳으셨어. 하지만 새 아내가 우리랑 연락하는 걸 예민하게 받아들이거든. 그래서 나도 웬만하면 먼저 연락 안 해.”한성우는 차미주의 말에서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 그건 바로 장모님이 장인어른을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결론은 그것이었다. 조심히 만날 것.차미주는 욕실 문을 열었다. 그녀는 수건을 포함한 물건들을 한성우에게 밀어주었다. “얼른 씻어. 더러워진 옷은 밖에 두는 거 잊지 말고.”한성우가 말했다. “등이 아픈 것 같아.”“그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안 아플 리가 있어? 강아지가 쫓아가는데 도망가다니, 너 바보야?”“나도 도망가고 싶지 않았어. 그렇게 큰 애가 혓바닥을 내밀고 침을 뚝뚝 흘리면서 뒤에서 쫓아오는데, 나도 모르게 그런 거라고.”차미주가 살풋 웃었다. “겁에 잔뜩 질려서는, 그러고
그 편지는 여자아이의 부모가 직접 쓴 손 편지였다. 천자가 넘는 장편의 글이었는데, 진심을 담아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한편, 그들의 딸이 당시 백화점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한 것도 있었다. 아이는 자신과 유현진이 거의 비슷한 시간에 가게로 들어섰고 당시 유현진이 두 명의 미성년자와 다투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했다. 두 명의 미성년자 중 한 사람이 유현진의 마스크를 잡아당겼고, 휴대폰을 유현진의 얼굴에 들이밀었기 때문에 유현진이 휴대폰을 밀어냈다는 것이었다. 그 여자가 넘어진 것도 유현진이 민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한 여자가 유현진과 다투면서 유현진을 밀었고, 유현진은 뒤로 밀려나면서 실수로 부딪힌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는 자신도 그저 구경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고 했다. 처음 현실에서 배우를 만나는 거라 궁금하기도 했고, 심지어 유현진은 요즘 송민영을 밀친 사건으로 핫한 인물이었으니 친구들과 얘기를 하려고 영상을 촬영한 것이라고 했다. 더 잘 나오도록 촬영하기 위해 아이는 굉장히 가까이 서 있었다. 비록 당시 현장 분위기는 굉장히 과열되었지만, 대부분은 시비를 건 두 사람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고, 끊임없이 유현진을 질책했다. 유현진은 말이 적었고 폭력을 휘두른 적도 없었다. 심지어 컵이 날아왔을 때, 여자아이를 밀어버렸다. 아이의 부모는 감사 편지의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저와 제 남편도 미디어 관련 업계에 종사하고 있어요. 전에 인터넷에 떠돌던 부정적인 뉴스 때문에 유현진 씨에 대해 그다지 호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아무래도 당시 동영상이 너무 분명하게 찍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유현진 씨는 계속 그 일에 대해 사과하거나 대응하지 않았죠.아이가 저한테 유현진 씨가 아이를 위해 날아온 컵을 막아줬다고 했을 때, 전 정말 의외였고 충격이었어요.제 딸이 묘사한 유현진 씨는, 요즘 기사에 알려진 인성이 바닥을 친 연예인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거든요.유현진 씨는 자신이 사람을 구해주었다는 사실을 자랑하며 여기저기 떠벌리지도
「인터넷에 떠도는 영상은 각도에 문제가 있어요. 유현진 씨는 애초에 전혀 힘을 쓰지 않았어요. 제가 유현진 씨 등 뒤에서 똑똑히 봤어요. 하지만 다른 한 분이 너무 인기가 많은 분이라, 저도 계속 유현진 씨를 위해 해명할 수가 없었어요. 요 며칠 유현진 씨에게 악플이 달리는 것을 보면서 마음에 내키질 않았어요. 제가 진작 나서서 해명해야 했어요.」「저는 당시 송민영 씨의 보호 장비를 책임졌던 스태프 중의 한 명입니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송민영 씨가 저에게 무릎 보호대를 하나 더 추가해달라고 했어요. 일반 보호 장비로도 이미 충분히 그날 액션신 촬영이 가능했거든요. 전혀 하나를 더 추가할 필요가 없었어요. 송민영 씨는 아마 그날 자신이 다칠 것을 예상하고 있는 것 같았아요.」...이런 발언이 하나둘 많아지면서, 인터넷의 여론은 완전히 역전되기 시작했다. 송인명은 병원에서 그 실검들을 보며, 분노가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녀는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 사람의 번호는 없는 번호가 되어 있었다. 그는 본인이 송민영에게 연락하겠다며, 그녀가 먼저 자신에게 연락하는 것은 싫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전화가 통하지 않자 화가 치민 송민영은 임효우에게 한바탕 화풀이를 해댔다. 그러더니 임효우에게 실검을 내려버리라고 소리 질렀다. 화를 꾹 누르고 있던 임효우는, 결국엔 굳을 얼굴로 송민영이 시키는 일을 하러 나섰다. 하지만 그쪽의 피드백은 긍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실검을 내려주기를 거부했다. 지금의 SNS는 정말이지 얼굴이 두껍다고 할 수 있었다. 돈만 쥐여주면 어떤 더러운 기사든 전부 내려주었다. 하지만 이번엔, 의외로 돈도 받지 않으려고 했다. 그들이 이런 태도로 나온다는 것은 한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이미 다른 사람의 돈을 받은 것이다. 임효우가 나지막이 말했다. “언니, 실검 못 내려요. 아니면 저희도 지금 페이스북 업로드해서 그날 일에 대해 해명하는 게 어때요. 오해라고 하면, 아직은 늦지 않았을 거예요.”송민영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
한현진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 예능부 기자 채용 문턱이 이 정도로 낮아진 거야? 두 눈이 멀어도 기자로 활동할 수 있나봐?”진윤: ...‘우리 여신님 사석에서는 이렇게 독설을 날리는 사람이었어?’휴대폰 너머에서 한참을 듣고 있던 차미주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사진 너와 한열 아니야?”한현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건 나랑 오빠야.”“하지만 이 사진들은 정말 한열과 비슷해 보여. 게다가 네 오빠가 운전한 거 한열 차 아니야?”한현진은 그날 송민준이 운전한 차를 눈 여겨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정말 한열의 차를 운전하고 온 거라면 파파라치가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다시 페이스북을 다운로드 받고 인기 검색어를 확인한 한현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연예 부문의 인기 검색어의 TOP 5는 전부 한열의 바람에 관한 이슈가 차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꽃뱀, 이열 커플 사이에 끼어들다], [이열 커플, 결별 위기 스크린 밖에서도 삼각관계], [한열 살아있네], [찐사랑을 못 숨겨] 등이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검색어들이 가득 했다. 한현진이 페이스북에 로그인하자 수백 개의 DM과 십만 개가 넘는 댓글이 쏟아졌다.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신하리와 한열 두 사람의 팬들의 남긴 수많은 욕이거나 일반 네티즌의 호기심에 가득한 댓글일 것이 분명했다. 인터넷이 얼마나 필터 없이 악랄한 글로 난무한 곳인지 잘 알고 있는 한현진은 아예 댓글을 확인하지도 않고 뉴스피드로 들어갔다. 한열과 한현진의 기사는 두 시간에 터졌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각 마케팅 계정에서는 이미 타임 라인까지 정리한 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한현진은 관련 피드를 대충 훑었다. 마케팅 계정의 분석에 의하면 한열과 신하리는 [살의] 촬영 이전에 이미 사귀기 시작했고 송민영이 하차된 후 한열이 자신의 여자친구인 신하리를 여주인공으로 추천했으며 영화 홍보 현장에서의 친밀한 스킨십 사진이 폭로되어 어쩔 수 없이 공개 연애를 택한 것이었다. 그 계정
한현진은 반나절이 걸려서야 일의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쩐지 지난번 홍혜림 씨 사건이 있었을 때 왜 진윤 씨가 갑자기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키나 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거잖아.’순간 한현진은 뻘쭘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방금 전화를 받고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입도 벙긋하지 말았어야 했다. 진윤의 말처럼 이건 정말 비열한 짓이었다. 유치한 강한서가 벌일 만한 일이 맞긴 한 것 같았다. 강한서 본인 역시 이번 일은 너무 얍삽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어쩌다 아이를 달래주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탓이라고 해. [정상에서]에서 지금 자체 테스트 중인 스킨 한 세트 줄게. 어때?”진윤이 작게 울먹이며 말했다. “스킨 세 세트?“강한서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와중에 딜을 하는 걸 보니 그리 큰 상처를 받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세 세트 전부 줄게.”진윤이 곧바로 울음을 멈췄다. 절판되어 더는 살 수 없는 게임 스킨과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여신 중 아무리 바보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래요. 제가 오해한 거라고 하죠.”말하며 한현진을 쳐다보던 진윤은 여전히 아쉬워하며 말했다. “현진 누나, 왜 이렇게 빨리 결혼하셨어요. 남자 때문에 손에 넣었던 트로피도 놓칠 수가 있어요.”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결혼이 커리어 영향주지 않아. 이간질 하려고 하지 마.”“형님은 남자니까 당연히 영향을 안 받으시겠죠.”강한서에게 농락을 당한데다 하루아침에 구닥다리에게 여신을 뺐긴 진윤은 누구보다 빨리 흑화 했다. “결혼하면 아이도 낳아야 하잖아요. 어떤 유명한 감독이 임산부를 캐스팅하려고 하겠어요. 제일 예쁠 나이를 남편과 아이에게 바치면 나중에 아이가 클 때쯤엔 본인의 레전드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요. 제가 다 아쉬워서 그래요. 너무 불공평해요.”비록 진윤은 그저 이간질을 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그 말은 현실이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커리어엔 고난과 역경이
한현진: ?강한서가 들고 있던 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것은 차미주의 목소리였다. “현진아! 너 내연녀가 되어버렸어. 게다가 그 상대가 네 사촌 동생이래.”강한서: ?강한서는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그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전여친, 현여친이 뭐야?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게다가 이 목소리, 왜 이렇게 귀에 익은 거지?’“저... 저기 혹시 전화 잘못 하신 거 아녜요?”한현진이 나지막이 물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곳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 현진 누나?”한현진이 멍해졌다. ‘날 알아?’“네. 제가 한현진이예요. 누구세요?”상대방은 말이 없었다. 그에게서는 그저 조금 흥분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강한서가 한현진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무슨 일이야?”진윤이 이를 악물었다. “방금 전화 받은 사람 누구예요!”강한서가 말했다. “내 와이프.”“그럴 리가 없어!”진윤이 바득 이를 갈았다. “이 사생팬 같은 아저씨가! 혹시 일부러 날 속이려고 옆에 성대모사하는 분이라고 모셔놓은 거 아녜요?”강한서가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너처럼 유치한 인간인 줄 알아? 그리고 현진이는 아무도 대체할 수 없어.”진윤은 강한서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거짓말 좀 그만 해요. 현진 누나는 지금 그 티베탄 마스티프와 데이트하는 중이라고요. 만약 누나가 정말 형님 와이프라면 형님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누나가 딴 남자와 데이트하는 걸 지켜볼 수 있어요?”더 이상 진윤을 대꾸하기 귀찮았던 강한서가 그에게 영상통화를 보냈다. 몇뿐 후, 휴대폰 화면으로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여신과 딱 붙어 앉아있는 전남편 형님을 확인한 진윤은 순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한현진은 휴대폰에 비춰진 진윤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진윤 씨가 강한서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 거야?’진윤은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어댔다. “거짓말쟁이! 뻔뻔한 인간! 전
유난히 예쁘게 잘 나온 사진을 보며 한 현지는 신난 얼굴로 고개를 돌려 강한서에게 보여 주었다. 하지만 멍청하게 나온 것 같다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강한서는 굳이 자신이 찍겠다면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한현진이 눈을 실룩거렸다. “네가 사진을 찍겠다고? 168cm인 나를 138cm로 만들어 버리는 네가? 강 대표님 본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강한서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 실력이 그렇게 별로야?”한현진이 말했다. “쌀을 뿌린 휴대폰을 닭이 부리로 쪼아도 내가 찍은 것 보단 낫다고 할 수 있어.”왠지 수치를 당한 것 같은 기분에 강한서가 이를 악 물면 말했다. “그럼 난 왜 우리가 데이트했을 때 내가 찍어준 사진을 밤새도록 보고 있었던 거야?”강한서가 괜히 그 얘기를 꺼낸 탓에 잊혀 가던 한현진의 기억이 문득 돌아왔다.“사진을 보면서 넌 그저 사진을 찍을 줄 모르는 것뿐이라고 날 설득 하지 않는다면 호텔 앞에서 바로 너와 싸우 버릴 것 같았거든. 내 외모에, 감독님께서도 나에게 각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 하셨는데 넌 대체 어떻게 날 사실 눈으로 찍을 수 있었던 거야?”강한서: ...“사시눈... 처럼 나왔어?”한현진이 일을 악물었다. “내가 뛰어다니는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하니까 유체 이탈한 것처럼 찍어줬잖아! 내가 피드를 업로드할 때 실수로 그 사진까지 넣었더니 애들이 나한테 대체 어디서 이런 심령사진을 찍었냐고 물었었어.”“...”활활 타오르던 강한서의 분노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어쩌다 가끔... 몇 십 장뿐이었잖아.”한현진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하.”뭔가를 말하려던 강한서가 고개를 숙이자 무릎 정도까지 오는 어린 아이가 옆에 쭈그려 앉아 불쌍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아저씨, 아직 더 놀 거예요? 저희 잠깐 놀게 해주시면 안 돼요?”강한서가 고개를 돌리자 뒤에는 어린 라이 대여섯 명이 줄을 서 있었다. 한현진: ...창피함에 고개
“하하하.”한현진이 마른 웃음을 지었다.“오빠. 제가 티슈 없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강한서가 눈을 씰룩였다. 그야말로 완벽한 핑계였다. 그는 입술을 달싹여 아내를 따라 염치 없이 말했다. “형님, 저도 없어요.”송민준이 가방과 티슈를 두 사람에게 던지며 강한서를 노려보았다. 탁, 소리와 함께 문이 닫겼다. 한현진: ...“오빠가 나한테 화 난 건 아니겠지?”강한서가 우울하게 말했다. “너보단 날 먼저 걱정해야 할 것 같아. 네 오빠가 아무리 너에게 화가 나도 결국은 나에게 그 화살이 돌아올 거야.”한현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마음이 좀 놓이네.”강한서: ?한현진이 그의 손을 잡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어차피 오빠가 널 탐탁지 않아 한게 하루 이틀도 아니잖아. 오늘 이 일로 크게 달라지진않을 거야.”“...”‘행복은 본인이 누리고 잘못은 내가 뒤집어쓰고. 정말 좋은 아내네.’강한서는 한현진을 데리고 호텔 라운지로 향했다. 입덧이 끝난 이후로 한현진의 식욕은 줄곧 안정적이었다. 매 끼니마다 많이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지만 배고픔도 빨리 찾아왔기에 하루에 몇 끼씩 먹어야 했다. 그 덕에 지금의 한현진은 송아지처럼 튼튼하기만 했다. 강한서는 임신한 한현진을 위해 오랫동안 공부했지만 한현진에게는 하나도 쓸모가 없었다. 그의 주변엔 임산부가 많이 없었지만 많은 아내들이 임신 후 남편을 괴롭힌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현진에겐 모든 임신의 호르몬 변화가 거짓말처럼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 의사는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큰 반응 없이 잘 먹고 잘 지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의사는 강한서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시간이 날 때마다 산책을 자주 다니며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으면 된다고 했다. 한현진은 정서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 조금 유치해지기도 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한현진은 강한서의 팔을 끌며 굳이 아이들의 흔들 목마에게 타게 해달라며 떼를 썼다.
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채영 언니.”문채영이 가방에서 포장한 선물 박스를 건넸다. “첫 만남이라 어떤 선물을 준비하면 좋을지 몰라 제가 직접 향낭을 만들었어요. 향 맡아봐요.”한현진이 조금 의외라는 듯 말했다. “언니도 조향하세요?”문채영이 미소 지었다. “제가 조향에 입문하게 된 것도 민준이 덕분이었어요. 전엔 이런 거 만드는 거 좋아했었거든요.”한현진은 다시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그녀는 조향하는 송민준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줄곧 송민준은 그쪽으론 취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송민준은 그 얘기를 꺼내는 것이 불쾌한 듯 담담하게 말했다. “주문부터 해. 배고파.”멈칫하던 문채영이 시선을 내려 눈에 맴도는 서운함을 숨겼다. 한현진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언니, 오랜만에 오셨을 텐데 오늘은 한주 음식으로 드시는 게 어때요?”문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요. 현진 씨가 먹고 싶은 거로 주문해요.”주문한 음식 서빙을 마치고 룸을 나서려는 종업원에게 송민준이 갑자기 말했다. “장어 국수도 주문할게요.”문채영이 힐끗 송민준을 쳐다보자 시선을 올린 그가 마치 변명이라도 하듯 말했다. “환영회에 국수가 빠질 수 없지.”‘그래, 환영회에 국수가 빠질 수 없다고 하는 건 그렇다고 쳐. 하지만 하고 많은 국수 중에 왜 하필 장어 국수야?’‘오빠가 장어 국수라고 말할 때 언니 표정을 보면 설마 두 사람 사이에 장어 국수와 관련된 스토리가 있었던 건가?’호기심이 활활 불타오른 한현진이 몰래 테이블 아래로 강한서의 손을 꼬집었다. 그러자 강한서는 그녀에게 새우를 발라 주었다. 한현진: ...강한서과 문채영은 너무 친한 사이였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한현진은 문채영의 외할머니와 강한서의 할머니가 먼 친척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워낙 촌수가 먼 사이라 피가 거의 섞이지 않은 가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알고 지낸지 한참 후에야 두 가문이 몇 세대 전에는 친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현진이 고개를 들자 옆에 서 있는 벤틀리가 보였다. 송민준이 운전석에 앉아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차창은 닫혀 있었으니 송민준은 당연히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강한서의 차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차를 세운지 한참이 지나도 두 사람이 모습을 보이지 않자 송민준은 강한서가 또 이상한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송민준의 목소리를 들은 강한서가 한현진의 손을 놓고 그녀의 옷을 정리하며 단정하게 자리에 앉았다. 민경하는 은연 중에 자신의 미래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차에서 내린 송민준은 카키색의 캐주얼한 외투에 검정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평소 한열이 자주하던 헤어스타일과 비슷했고 선글라스를 콧등에 걸친 채 입술을 앙다물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넓은 어깨에 긴 다리의 그가 우뚝 서 있으니 카리스마와 매력이 흘러넘쳤다. 전엔 그가 한열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이런 차림에 선글라스까지 쓴 모습을 보니 만약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아마 그를 한열로 착각할 것도 같았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차에서 내린 한현진이 가방을 메고 송민준을 향해 걸어갔다. “오빠, 오늘 왜 이렇게 멋져요?”송민준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내가 언제 안 멋진 적이 있었어?”한현진이 눈웃음 지으며 말했다. “어떤 날이든 멋지긴 하죠. 그래서 언제 데뷔할 생각이요?”송민준이 한현진의 가방을 건네받으며 장난스레 말했다. “난 열이와 캐릭터가 너무 비슷해. 내가 데뷔하면 연예계에 걔 자리가 있긴 할 것 같아?”한현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송민준은 손을 들어 검지로 콧등에 걸린 선글라스를 아래로 내렸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강한서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쟨 차에서 뭐하는 거야?”“업무 통화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한현진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가자. 우린 먼저 올라가는 게 좋겠어. 혼자 미적거리라고 해.”룸에 도착하자 송민준은 그제야 물었다. “너희 두 사람, 대체 무슨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이렇
한현진이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강한서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마음 약해질 줄 알았는데,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 봐.”한현진이 말했다. “처음엔 마음이 약해졌는데 조금 전 불쾌한 일이 있었거든.”한현진은 간단하게 주혁이 무릎 꿇은 일을 서술했다. “난 사실 그렇게까지 화가 난 건 아니었어. 하지만 꿇어앉아 있는 기사님 모습을 본 순간 화가 치밀더라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러니까 날 강박하는 것 같았거든. 그래서 그 기회를 빌려 바로 전근시켰어.”한현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오는 길에 계속 마음이 불편했어. 내가 너무 극단적으로 처리한 건 아닌가 싶었거든. 기사님은 지금 아들에게 인공 달팽이관을 해줄 돈이 부족한 상황이거든. 전근하면 월급은 당연히 전보다 줄어들 텐데.”강한서가 한현진의 손등을 토닥였다.“인공 달팽이관은 보청기와 비슷한 거야. 생명과 직결된 문제도 아니니 돈이 부족하다고 해도 당장 급할 건 없어. 하지만 굳이 너를 속여 가며 부업을 하려고 했어. 난 그 부분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아.”멈칫한 한현진이 나지막이 물었다. “기사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야?”강한서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건 모르지.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무릎을 꿇고 자존심 따위는 쉽게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원하는 건 자신의 존엄보다 훨씬 더 소중한 걸 거야. 전근이 제일 좋은 선택이었어. 네가 그 사람을 곁에 두는 건 내가 불안해.”강한서는 한현진의 손을 잡으며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 약해지지 마. 네가 마음 약해질 때마다 난 심장이 떨려.”“휴. 신세를 지기도 했고 기사님 집에는 장애인이 두 명이나 있잖아. 안타까워서 그러지. 내가 언제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약해지는거 봤어? 난 아주 독한 사람이라고.”강한서는 곧바로 태클을 걸었다. “강운이에겐 마음 약하게 굴었잖아.”지나간 이야기를 꺼내려는 강한서의 태도에 한현진이 얼른 입을 열었다. “그건 내가 불쌍해 보이는 주 변호사님 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