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영은 아량이 넓은 사람 행세를 하며 인터뷰를 했고 유현진에게 불리한 말은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유현진의 목소리라고 퍼진 음성 파일엔 유현진이 송민영이 다친 것이 아주 쌤통이라고 말하고 있었다.여론은 한쪽으로 몰렸고 전부 유현진을 비난하며 정신이 이상하다는 둥, 인성에 문제가 있다는 둥 얘기들로 가득했다.이런 사람이 정말로 영향력이 큰 배우가 된다면 그 팬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줄 것이었기에 유현진의 퇴출을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그녀가 하는 작품을 전면 중단하라고 했다.“송여우는 정말로 연예계의 암 덩어리야. 걔 팬들부터 봐봐. 무슨 사이비 종교 신도처럼 정신이 아주 홀렸잖아!”화를 참지 못한 차미주는 한성우를 노려보면서 말했다.“다 네 탓이야! 네가 그 여우를 이렇게까지 키우지 않았다면 걔가 지금 이런 짓을 꾸밀 담이나 있겠어? 많고 많은 여배우 중에 연기 잘하는 배우는 안 띄우고 왜 저런 발연기만 해대는 여자를 키운 건데? 눈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한성우는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이내 모든 잘못을 강한서에게 돌렸다.“내가 하늘에 맹세하는데 송민영은 내가 키운 게 아니야. 강한서가 키운 거라고. 그 여자 모든 섭외 다 강한서가 잡아다 준 거야. 그냥 우리 회사 이름으로 구해줬을 뿐이지 내가 키운 게 아니야. 생각해 봐, 송민영이 전에 논란을 일으켜도 내가 어디 관심이나 줬어? 나야말로 그런 진흙탕에 뛰어들고 싶지 않다고.”차미주는 이를 갈았다.“내가 그럴 줄 알았어. 내가 전부터 강한서와 송민영 사이가 심상치 않다고 했잖아! 안 그러면 걔가 왜 송민영한테 작품 섭외를 해줘? 현진이가 강한서 그 자식이랑 이혼한 건 아주 잘한 일이야. 그런 눈에 곰팡이 핀 애한테 현진이가 훨씬 아까워.”한성우는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맞아, 걔는 너무 집에서 곱게 커서 소중한 걸 아낄 줄을 몰라.”차미주는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너도 문제야. 강한서가 그딴 년을 키워주고 있다는 거 알면서도 말도 안 해주고 일부러 숨겨주고 있었잖아. 너 같은 사람
차미주는 원래 “네가 무슨 내 남자친구야.”라고 말하려 했지만, 재산이 많다는 소식에 그녀는 바로 호기심이 생겨버렸다.“얼마나 있는데?”한성우는 어깨를 으쓱거리면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뭐 2천억 정도는 될 거야.”“아, 그래.”차미주는 흥미진진한 모습이었다.“별로 뭐, 괜찮네.”“??? 괜찮다고?”그녀는 현재 취직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었고 2천억이라는 재산에 괜찮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그가 차미주에게 2천억이란 얼마나 많은 금액인지 설명하려던 순간, 차미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네 재산은 강한서보다 많이 달리네. 강한서는 현진이랑 이혼할 때 위자료로 2천억을 준다고 했어. 그런데, 네 재산이 고작 2천억 정도라고?”“...”그는 급히 해명했다.“난 그냥 건물이랑 주식을 빼고 말한 거야!”“그것들을 포함해도 강한서보다 많아?”한성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내 이를 갈며 마지막까지 자신을 위해 변명했다.“난 내 힘으로 하나씩 회사를 키워나간 거야. 강한서는 처음부터 강씨 가문의 힘으로 그렇게 많은 돈이 생겨난 거라고.”차미주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집안도 강한서보다 못하지. 강한서가 너랑 함께 지금까지 계속 어울려 줬다는 건, 그래도 걔 성격이 좋아서 그런 거였네. 난 또 재벌들끼리 서로 엄청 견제하고 무시하는 줄 알았지.”“...”‘난 차미주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한 말인데, 왜 얘기가 강한서 자랑으로 흘러갔지?'원래 곁에 대단한 친구가 있다는 건 아주 좋은 일이었지만 모든 상황에서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다. 예시를 들자면, 좋아하는 상대 앞에서 자신을 뽐내고 있을 때 비교를 당하는 상황에서 말이다.차미주는 이내 그 음성 파일을 편집 어플에 집어넣었고 편집된 부분을 빠르게 동그라미로 표기했다. 그리곤 옆에 설명을 덧붙여 알아보기 쉽게 정리한 후 채널을 운영하는 자신의 몇몇 친구들에게 보내면서 널리 퍼뜨릴 것을 부탁했다.그녀의 친구들은 전부 이 시기에 이런 영상을 올리면 악플 받는다며 그녀를 말렸고
한성우는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다.“네 이름을 댄다면 분명 연락을 받아주진 않을 거야. 그러니까 내 여자친구라고 말해. 그럼 무조건 받을 테니까.”그는 다시 뜸을 들이다 말을 보탰다.“이 바닥에서 아직 내 이름을 대고 내 체면을 팔아버린 사람은 없거든.”차미주는 바로 연락처를 추가하곤 설명에 한성우 여자친구라는 글을 보탰다.한성우는 미소를 짓고 있었고 만족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천기영은 예상대로 바로 그녀의 문자에 답장을 하였다.「본인이 한성우 여자친구라고요?」차미주는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네. 맞아요.」「증명하세요.」“???”차미주는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어떻게 증명해 드릴까요?」「뽀뽀하는 사진을 찍어 보내주세요.」차미주가 답장을 보내기도 전에 그가 이어서 보냈다.「지금 영상통화를 걸어 보여주셔도 됩니다.」“...”차미주는 당황했다.「저희 지금 같이 있는데 설마 천기영 씨를 속이겠어요? 제가 한성우한테 자금 당장 영상 통화하라고 말할게요.」그러자 천기영이 답장했다.「전 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요. 한성우한테 전적이 있거든요. 전에 어떤 남자 연예인을 좀 컨설팅해달라고 남자친구라고 그러던데, 알고 보니 한성우 회사 소속 연예인이더라고요. 거기에 속아 제가 무료로 해줬었어요.」차미주의 안색이 어두워지고 옆에 있는 남자를 보았다.한성우는 헛기침을 내뱉으며 변명했다.“걔 컨설팅 비용이 한 번에 2000만 원부터 시작해. 하지만 내 친구라면 무료로 해주거든.”천기영이 경계하는 것을 보아 아마 한성우가 한두 번 속인 게 아닌 것 같았다.차미주의 입가가 바르르 떨렸다.“쪼잔한 놈.”천기영이 또 문자를 보내왔다.「영상통화 하실래요, 아니면 사진을 보내실 건가요? 5분을 드리죠. 5분이 지나면 차단할 겁니다.」차미주는 엄청 난처하였다. 하나밖에 없는 절친을 지켜줄 것인가, 자신의 체면을 지킬 것인가를 두고 머릿속에서 고민에 고민을 하였다.‘아, 됐어. 어차피 뽀뽀 안 해본 것도 아니잖아. 뭐 몇 번 더 한다고
곧이어 그는 품에 안은 차미주를 놓아주었다. 그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코를 맞대고 지그시 그녀를 보다가 나직하게 말했다.“사진 확인해 봐, 잘 나왔나.”정신이 번쩍 든 차미주는 급히 뒤로 물러나면서 촉촉해진 입술을 벅벅 닦았다. 그리곤 덜덜 떨려오는 손으로 휴대폰을 확인했다.그녀의 귓불은 너무 빨갛게 물든 나머지 건들면 툭 하고 피가 떨어질 것 같았고 평소에 호방한 성격을 보였던 그녀는 어느새 수줍음에 고개조차 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한성우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빤히 지켜만 볼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곧바로 그녀의 곁으로 바짝 들러붙어 함께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확인했다.“살짝 흐릿하게 나오지 않았나?”한성우의 숨결이 귓가에 닿자 차미주는 화들짝 놀라며 휴대폰을 반사적으로 던져버렸다.사실 사진은 흐릿하게 찍히지 않았다. 다만 한성우가 손을 움직이고 있었던 터라 다소 살짝 그림자가 생겼을 뿐이었다.덕분에 사진은 더욱 유난히... 야릇해 보였다.한성우는 상의를 입지 않아 선명하고 단단한 근육이 드러나 있었고 더욱 섹시한 느낌이었다. 차미주는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고 있었고 한성우에게 허리를 끌어당긴 채 키스를 하고 있었다.고개를 숙이고 키스하고 있는 한성우의 모습은 평소의 방정맞은 모습이란 찾아볼 수가 없었고 오히려 그윽한 눈길로 눈이 휘둥그레져 어버버한 얼굴로 그를 보고 있는 차미주를 보았다. 차미주는 키가 아주 적당한 162cm이었지만 186cm인 한성우 앞에 한없이 아담해 보였다.그녀는 아담하다는 말에 자신도 포함된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귓가에 울려 퍼지는 낮게 깔린 목소리에 차미주는 당황하며 뒷걸음질을 치다 뜨거워진 귀를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헛기침을 내뱉으며 말했다.“큼, 괜찮아. 그래도 얼굴은 선명하게 나왔어.”한성우는 나직하게 달래듯 말했다.“그냥 다시 찍자. 천기영 그 자식은 눈썰미가 안 좋아서 사진을 보고도 못 알아볼 거야.”차미주는 멈칫하더니 이내 미심쩍은 눈길로 그를 보았다.한성우도 자신의 의도
“...”유현진은 강한서의 입이 참으로 독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녀는 마음에 들었다.“정말로 유현진의 눈물 연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요? 전 유현진의 눈물 연기가 너무 못생겨 보이네요. 입을 봐요, 어떻게 저렇게 커질 수가 있는 거죠?”강한서는 우아하게 계란 후라이를 나이프로 썰며 말했다.“자기가 울 때 거울 좀 확인해 보라고 해. 어쩌면 자신의 모습이 너무 못생겨서 울고 있는 것조차도 잊어버릴 테니까.”유현진은 그만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어이구, 강 대표님. 정말로 아이디 하나 만들어서 안티팬과 설전을 벌일 생각 없어? 대표님 그 말발로 분명 안티도 입을 다물어 버리게 될 텐데 말이야.”강한서가 답했다.“그런 사람들한테 내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이윽고 그는 고개를 들었다.“그런 사람들한테 굳이 너와 내 시간을 낭비해서 뭐 하게? 너 지금 이미 반 시간째 악플을 읽고 있어.”유현진은 바로 휴대폰을 끄고 빵 한 조각 집어 들어 강한서의 입에 물려주었다.“미안해. 내가 잘못했어.”강한서는 아주 흡족한 얼굴로 그녀를 보다 빵을 한입 베어 물곤 꿀꺽 삼켜버렸다.“그래, 착하네. 용서해줄게.”“...”강한서는 아침을 다 먹고 나서야 본론에 들어갔다.“언제부터 움직이게?”유현진은 우유를 한 모금 마셨다.“급한 건 아니야. 일단 송민영이 자신의 계획이 성공되었다고 생각할 때 즈음 움직일 거야.”강한서는 고개를 끄덕이었다.“그래, 알았어. 민 비서를 네게 붙여줄게.”유현진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니면 차라리 민 비서님을 내 매니저로 고용해 줘.”강한서가 답했다.“안 돼.” 유현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설마 민 비서님한테도 질투하는 거 아니지?”강한서는 고개를 들고 답했다.“민 비서의 월급은 네가 감당 못 해.”유현진은 굴하지 않고 말했다.“민 비서님은 비서잖아. 월급이 높으면 얼마나 높다고 그래?”강한서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일단 현재, 네 출연료보다... 많이 높아.”“
유현진은 순간 열불이 터졌다.“그럼 앞으로 너랑 자려면 내가 너한테 돈을 줘야 한다는 소리네?”강한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럴 필요는 없어.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나한텐 여자친구를 즐겁게 해주는 의무가 있거든. 몇 번을 하든지 난 다 좋아.”유현진은 말발이 달리자 인신공격을 하기 시작했다.“난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어. 전혀.”강한서는 멈칫하더니 이내 그녀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강대한 기세를 내뿜으며 다가오고 있었고 유현진은 그런 그의 모습에 순간 움찔했다.하지만 자신의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던 유현진은 목을 빳빳이 쳐든 채 적반하장으로 말했다.“뭐! 왜!”강한서는 갑자기 허리를 굽히더니 그녀를 안고 식탁 위에 앉혔다. 그리곤 그녀에게 바싹 붙어 한 손은 그녀의 허리에 다른 한 손은 식탁을 지탱하며 그녀를 품에 가뒀다.유현진은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벙찐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바로 지금 두 사람의 자세가 얼마나 야릇한지 알게 되었다.‘식탁 플레이?'‘강한서 이 자식이, 평소에 대체 뭘 봤길래 최근 들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거야?'그녀가 입을 벌려 말을 하려던 순간, 강한서가 바로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강한서의 유혹에 유현진은 항상 안 넘어간 적이 없었고 일부러 아무런 감흥이 없는 척 몸부림을 치다 결국 그의 키스를 받아들였다.키스하면서 그녀는 강한서의 허리에 팔을 둘러 끌어안았다.그녀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몽롱해졌고 인터넷에 떠돌던 유행어가 갑자기 어렴풋이 떠올랐다.“오빠의 허리는 그저 허리가 아니야. 날 미치게 만드는 치명적인 허리지.”유현진이 키스에 잠식되려던 순간, 귓가에 강한서의 목소리라 울려 퍼졌다.“넌 이런 때에만 솔직해지더라고.”유현진은 촉촉하고 몽롱해진 두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보았다.강한서는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켰다.유현진은 그의 손가락을 따라 아래를 보았다. 그녀의 두 손은 어느새 그의 벨트를 잡고 있었고 마치 당장이라도 그의 벨트를 풀 것 같
같은 나이대 여배우 중에서 당연히 그녀와 비교가 될 배우는 신하리였다. 신하리도 로맨스 드라마로 데뷔를 했고 뛰어난 연기와 큰 인기로 30살이 되지 않은 나이로 상이란 상은 전부 휩쓸고 다녔다.그러나 송민영은 처음부터 로맨스 장르로 데뷔했지만, 여전히 로맨스 드라마만 받고 있었기에 그녀의 팬덤과 신하리의 팬덤이 서로 싸우기 시작한다면 송민영의 팬덤은 항상 신하리의 팬덤에 지고 있었다.서로 싸우면 항상 상 받은 거로 언급하며 싸웠고 송민영은 연기를 인정받은 적도, 연기로 상을 받은 적도 없었기에 애초에 신하리 팬덤과 싸워 이길 수가 없었다.그랬기에 이번 소식이 올라온 후 송민영의 팬들은 그제야 말할 거리가 생겼고 여기저기 페이스북에 올려 자신의 연예인을 자랑해 대기 시작했다. 그들은 심지어 신하리의 계정을 찾아가 댓글까지 남겼다.그러자 신하리의 팬들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신하리의 어느 홈마는 바로 오후에 게시글을 올렸다.「여러분께 제가 알고 있는 소식을 들려드리려고 해요. 여배우 Y와 여배우 X는 아주 절친한 친구죠. 두 사람은 동시에 어느 드라마 캐릭터에 오디션을 보았는데 Y의 이미지가 X보다 더 캐릭터에 적합한 거예요. 하지만 오디션에선 X의 연기력이 조금 더 좋아 결국 X가 캐스팅되었죠. Y는 아주 진심으로 기뻐해 주고 심지어 파티까지 열어 축하해 줬어요. X는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니 낯선 호텔에 알몸으로 누워있게 된 것을 발견했죠. 몸에서 아무런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 X는 별다른 생각하지 않았고 다니던 직장을 계속 다니면서 제작진의 계약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어요.」「그러나 계약을 받기는커녕 호텔 침대에 알몸으로 어떤 남자와 함께 누워있는 사진이 퍼지게 되었죠. X와 같은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는 가정이 있는 유부남이었거든요. 그래서 한순간에 불륜녀로 낙인찍혔어요. X는 그렇게 계약도 잃고 촬영 예정이던 드라마도 취소가 되어 거액의 배상금까지 물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X는 그 사진이 바로
라이벌의 계략에 빠져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던 그녀는 자살을 선택했고, 만약 이 모든 게 정말로 이소원의 얘기였다면 엄청난 충격이 될 것이었다.유현진도 그 장편의 글을 보고 있었고 댓글을 확인하려던 순간 뒤바뀌지 않는 화면에 그녀는 다시 그 게시글을 눌러 새로 고침을 했다. 그러자 그 게시글은 삭제 처리가 되었다.다시 페이스북 홈으로 돌아온 그녀는 실검도 사라졌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송민영의 대처는 아주 빨랐다.강한서가 그녀에게 건넨 송민영의 자료에 이 사건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자료에 적힌 진실은 홈마가 올린 게시글보다 더 충격적이었다.이소원은 사진까지 찍혔을 뿐만 아니라 성폭행까지 당했다.그녀는 어릴 때 당한 성추행으로 이미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던 상태였고 오랜 치료 끝에 겨우 증상이 나아진 상태였다. 그러나 그 사건으로 그녀는 다시 깊은 어둠 속에 잠기게 되었다.그녀의 오빠는 동생을 위해 사실을 밝히려고 했지만, 증거를 수집하러 가던 도중에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되었다.지속된 악플에, 친한 친구의 배신, 친오빠까지 잃게 되어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게 되었고 우울증이 다시 도져 자살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이소원의 부모님은 아들과 딸을 잃고 서서히 병으로 앓기 시작했다.그들은 지금까지도 그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죽은 아이들을 위해서 진상을 파헤치며 이소원을 성폭행 한 사람과 그 사람들을 사주한 배후를 지금까지 조사하고 또 조사하고 있었다.유현진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탁탁 두드리고 있었다. ‘이번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병원. 페이스북을 보고 있던 송민영은 표정이 구겨졌다.“망할 년! 이런 쓰레기 같은 년이! 어디서 떼 거지로 몰려와 헛소리를 해!”임효우가 말했다.“언니, 일단 뭐라도 좀 먹어요. 그 사람들이 뭐라 하든 어차피 진짜도 아닌데 뭘 신경 써요?”송민영은 마치 꼬리라도 밟힌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누가 신경 쓴다고 그래? 내가 두려울 게 뭐가 있다고? 걔는 이런 사소한
주현의 생각은 성월과 달랐다. 송가람은 사랑에 눈이 멀어 남자의 사랑을 바랐지만 주현은 아니었다. 그녀의 목표를 애초부터 매우 명확했다. 주현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신분과 지위를 노렸다. 그건 20년, 30년을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지금 주현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이 눈앞에 놓였는데 그 기회를 잡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주현은 성월의 성격을 잘 알았다. 성월은 반평생을 야심으로 가득 찬 서해금 곁을 지키며 진작 서해금의 충직한 개가 되었다. 성월에게 신분은 뛰어넘을 수 없는 벽 같은 거였고 자신의 미래는 스스로 기회를 잡아 개척해 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해금 역시 자신의 두 손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송병천과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서민 출신에 남편을 잃고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 무슨 수로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웃기지 말라 그래.’하지만 그 말을 주현은 감히 성월 앞에선 할 수 없었다. 주현은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 “이모, 도와줘요. 신씨 가문으로 돌아가든 아니든 저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송가람 씨와 조금이라도 가까이 할 수 있는 일로 부탁해요. 활동이든 파티든 데리고 다닐 수 있는 자리로요. 그래야 신씨 가문에 호감을 살 수 있죠.”성월의 학창 시절, 그녀의 집안은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주현의 부모님이 빌려주신 돈으로 급한 불을 끈 덕에 성월은 늘 주현의 집안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주현의 애교에 견디지 못한 성월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송가람 씨 비서로 전근 보내볼게. 너, 네 남자친구한테 기본적인 건 잘 가르쳐. 묻는 말에 아무 것도 대답 못하면 안 돼.”주현이 순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성월에게 팔짱을 끼고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이모! 역시 이모가 날 제일 예뻐할 줄 알았어. 주말에 집에 와서 식사해요. 안 가신지 꽤 됐잖아요...”한편, 사무실로 돌아온 한현진의 마음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만약 어제 바로 세정제
서해금이 입술을 짓이기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냉정하다니, 한현진 답지 않아.”성월이 말했다. “사실 전 그렇게 냉담한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오일을 깨뜨린 것도 주혁 씨였고 몰래 부업을 하다 한 대표님 얼굴에 먹칠한 것도 주혁 씨잖아요. 그러니 당연히 원망하는 마음이 있을 거예요.”말이 없던 서해금이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인사팀에 잠깐 다녀와요. 일단 주혁을 가람이 운전기사로 전근시켜요.”성월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대표님, 가람 아가씨에게 운전기사를 붙일 생각이시면 제가 다른 기사님을 찾을게요. 회사에는 지금 마침 새로 입사한 젊은 신입사원들이 많아요. 어리고 건강하고 운전 경력도 전부 5년이 넘었어요. 주혁 씨는 한현진 곁에서 한동안 일을 하신 분인데, 가람 아가씨 운전기사로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아요.”“전근시키라고 하면 시켜요. 제가 이렇게 하는 덴 이유가 있어요. 그러니 성 비서는 나서지 말아요.”성월이 다급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성월이 사무실을 나서자 주현이 곧바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모, 어떻게 됐어요? 대표님께 말씀 드렸어요?”성월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대표님께서 이미 송가람 씨에게 다른 운전기사를 붙이셨어. 이미 결정된 일이야.”순간 주현은 조바심이 났다. “왜 갑자기 결정 난 거예요? 회사에서 요즘 새로 신입사원 모집했잖아요. 보안팀은 싫어할 거란 말이에요.”성월이 말했다. “대표님께서 주혁을 송가람 씨 운전기사로 전근시켰어. 지금 인사팀에 가서 그 일부터 처리해야 해.”그 말을 들은 주현이 투덜거렸다. “한현진 밑에 있던 사람이잖아요. 게다가 본인 상사를 배신까지 했고요. 대표님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사람을 딸 운전기사로 쓰시겠다는 거예요?”순간 얼굴을 일그러뜨린 성월이 주현을 구석진 곳으로 끌고 갔다. 성월은 주변을 확인하고 나서야 주혁의 팔을 내치며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너 미쳤어? 여긴 회사야. 여기서 집인 줄 알고 그렇게 큰 소리로 대표님 뒷담화를 하는 거야?
직원들은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어떤 직원은 회사의 조치가 꽤 인간적이라며 칭찬했고 또 어떤 직원은 아무리 화장실 청소라도 그렇게 부식성이 강한 세제를 쓰진 말았어야 했다며 안전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 회사의 관리에 문제가 있다고 비난했다. 이번 일은 단순히 청소 직원이 화상을 입은 것으로 그쳤지만 만약 누군가 범행을 저지르려고 한다면 부식성이 강한 세정제는 범죄자에게 칼을 준비해준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꼴이었다. 의문을 제기하던 직원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한현진과 눈을 마주쳤다. 그제야 실언했다는 것을 인지한 직원이 다급하게 말했다. “대표님, 전 회사에서 조치를 제대로 못했다는 뜻이 아니라요. 단지 위험 요소가 될 수도 있는 거니까, 저도 모르게 제일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본 거예요.”한현진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위험 요소요?”그 직원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못... 못 들으셨어요?”“죄송해요.”한현진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전 친구 문자에 답장하느라 못 들었어요.”직원이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옆에 있던 또 다른 직원이 얼른 말을 이었다. “회사에서 며칠 동안 청소하시는 직원분들이 다치는 사고가 있었잖아요. 그 일 때문에 다들 마음이 뒤숭숭해요.”한현진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 직원이 말을 이었다. “아, 맞다. 대표님. 다치신 분 중에 대표님이 아는 사람도 있어요. 전에 대표님 운전 기사셨던 주혁 기사님이요. 그 분이 제일 심하게 다치셨어요.”한현진이 미간을 찌푸렸다.“기사님이요? 확실해요? 어제 볼 일 보러 갔다가 기사님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멀쩡하셨는데. 언제 다치신 거예요?”한현진의 말에 직원이 멍해졌다.“그럴 리가요. 며칠 전에 이미 다치셨어요. 대표님과 비슷한 시기에 휴가를 내셨어요.”한현진이 곰곰이 생각했다. “그날 제가 급한 일 때문에 길게 얘기를 나누진 못했어요. 손에 붕대 같은 건 본 기억도 없고 기사님께서도 저한테 그런 얘기는 없으셨는데... 심하게 다치셨어
막 전화를 끊으려던 그 순간, 박안수가 다시 불렀다.“아, 그리고...”“뭔데?”“오늘 경찰서에서 한현진과 마주쳤어.”서해금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한현진이 경찰서엔 왜?”“나도 자세한 건 안 물어 봐서 잘 몰라. 하지만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간 것 같아. 혼자가 아니라 6, 7살 쯤 되는 어린 아이와 함께 왔었어.”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하던 서해금이 또 물었다. “한현진이랑 얘기했어? 무슨 얘기했는데?”“괜히 의심할까봐 내가 경찰서에 간 이유를 사실대로 얘기했어. 한현진도 더 묻지 않았고.”우물 쭈물거리며 숨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당당하게 대답하는 편이 오히려 의심을 덜 사는 방법이었다. “그게 다야?”“응.”생각의 잠겼던 해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경찰한테 손에 상처는 뭐라고 얘기했는데?”“회사에서 청소하다가 부식성 제품에 다친 거라고 했어.”서해금이 원망하듯 말했다. “왜 회사에서 다친 거라고 했어. 회사에서 그렇게 부식성이 강한 제품을 쓸 리가 없잖아.”“그렇다고 내가 집에서 다친 거라고 할 순 없잖아. 집에는 회사에서 다친 거라고 했는데. 조사 협조 요청을 나한테만 하는 게 아니잖아. 게다가 그 두 사람은 거짓말을 아예 못 해. 만약 경찰이 내 손에 관해 묻기라도 한다면 바로 들켜 버리는 거잖아.”서해금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여자는 미쳤고 애는 귀가 먹었는데, 그런 병X도 제대로 통제 못 해?”순간 얼굴을 찡그린 박안수가 말했다. “말 그렇게 하지 마. 두 사람 불쌍한 사람들이야.”“뭐가 불쌍해. 도박쟁이 가정폭력범을 성실하고 부지런한데다 박학다식한 남편으로 바꿔줬는데. 우리한테 고마워해도 모자라.”서해금의 말에 박안수는 왠지 마음이 불편해졌다.너는 대화를 이어 가고 싶지 않았던 서해금이 당부하며 말했다. “이만 끊어. 가람이한테 당신을 기사로 쓰라고 얘기하러 갈 거야. 소식 기다려.”박안수는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삼키며 나지막하게 대답했다.“그래.”전화를 끊은 서해금은 아무리 생
“아니.”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렸다. 도무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경찰에겐 뭐라고 했어?”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실대로 얘기했어.”“박안수!”서해금은 참기 힘들 정도로 화가 끓어올랐다. “지금이 농담할 때야?”“농담 아냐.”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더 가라앉았다. “그럼 내가 뭐라고 말할까? 네가 준 신분이니 난 당연히 주어진 대본대로 연기할 수밖에. 그럼 내가 난 박안수라고 얘기했어야 해? 죽은지 27년도 더 된 사람이야. 박안수가 어떻게 돌아와?”그의 목소리엔 고통과 원망으로 가득 했다. 그 순간, 서해금의 얼굴이 끔찍하게 일그러졌다. “지금 날 탓하는 거야?”말이 없던 상대방은 잠시 후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적 없어.”“박안수, 지금 날 탓하는 거잖아.”서해금이 공격적인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그때 빚을 진 사람도 당신이고, 그 아이디어를 낸 사람도 당신이었어. 당신이 가람이를 키울 능력이 없었던 거고, 당신이 가람이가 더 좋은 환경에서 살길 바랐고, 그래서 나한테 도와달라고 사정한게 당신이었어.”“내가 당신한테 돈 안 줬어? 지금껏 내가 당신한테 준 돈이 얼만데. 당신은 얼마든지 해외에서 지금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었어. 굳이 한주에 남겠다고 한 건 당신이야. 내가 당신에게 그럴 듯한 신분을 만들어주지 않았으면 당신이 무슨 명분으로 가람이 앞에 나타날 건데? 당신이 이렇게 당당하게 가람이를 만날 수나 있었을 것 같아?”목이 메인 남자는 한참만에야 눈을 감으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네 탓한 거 아냐. 난 그저 이렇게 조마조마 마음 졸이는 생활에 지쳤을 뿐이야. 난 집에서도 감히 옷을 못 벗어. 잠도 깊게 잘 수가 없어. 길에서는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그 사람은 날 보면서 반갑게 인사하는데 난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몰라. 그러면서도 아는 척, 반가운 척 인사를 해야 해. 심지어 아무리 아파도 검사도 못 해. X발, 병원도 가질 못한다고!”남자가 깊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네, 볼 일 봐요. 회사로 복귀하면 다시 얘기하죠.”한현진이 전화를 끊었을 때 차는 이미 회사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한현진은 곧바로 로비로 향했다. 회사의 프런트가 한현진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짧게 인사를 받은 엘리베이터에 탄 한현진은 사무실이 아닌 2층을 눌렀다. 회사 건물은 2층부터 화장실이 있었기에 1층엔 화장실이 없었다. 한현진은 아예 2층부터 일일이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역시 공교롭게도 2층에 도착한 한현진은 마친 청소 중인 직원과 마주쳤다. 근무 시간이 화장실엔 사람이 없었다. 직원은 바닥을 닦고 있었고 세면대와 멀지 않은 곳에 청소차가 세워져 있었다. 그 위엔 청소 용품으로 가득 했다. 한현진은 고개를 숙여 청소 용품을 확인했다. 청소차엔 수많은 플라스틱 통과 병이 있었고 그 안엔 전부 액체가 담겨져 있었다. 굳이 뚜껑을 열지 않아도 소독제의 냄새가 올라왔다. 그러나 그 제품들은 그 어떤 별다른 표시도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부식성이 그렇게 강한 용액을 플라스틱 병에 담진 않았을 거 아냐.’“누구세요?”청소차를 관찰하는 한현진의 등 뒤로 사투리 억양이 섞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현진이 몸을 돌리니 청소 중이던 직원이 보였다. 그 직원은 아래층 청소를 도맡아 하는 분이라 한현진을 본 적이 없었다. 단순히 한현진이 화장실을 사용하려는 것이라 생각한 직원이 말했다. “아직 소독제를 쓰지 않았으니까 볼 일 보려면 얼른 봐요.”한현진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청소차의 물건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아주머니, 여쭤볼게 있어요. 화장실 청소를 하실 때 어느 브랜드의 농도가 얼마인 세정제를 사용하세요?”직원이 말했다. “도매 시장에서 파는 회색통이요. 커다란 거. 엄청 싸요. 이름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사려고요?”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장실이 항상 깨끗해서요. 저도 집에서 써보려고요.”청소 직원이 얼른 한현진을 말렸다. “절대 사지 마요. 변기의 때는 우리가 항상 솔로 조금씩 닦
또 다른 경찰이 물었다. “그래서 지장은 찍을 수 있어요?”“손이 그 지경인데 지장을 어떻게 찍어? 손을 보니까 지장은 무리인 것 같아서 포기했지. 어차피 지문도 완전히 회복하긴 힘들 것 같았어. 그래서 애들한테 홍채와 성문을 따라고 했어.”말을 마친 키 큰 형사가 한현진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나중에 회사에 가셔서 얘기 좀 하세요. 그렇게 부식성이 강한 제품은 얼른 교체하라고요. 만약 누가 나쁜 마음이라도 먹고 그 제품으로 가해라도 하면 회사에서도 책임지셔야 해요.”생각에 잠겼던 한현진이 그 말에 얼른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알려주셔서 고마워요.”경찰서에서 나온 한현진은 내내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전 은서가 본 것은 주혁의 태반이나 점이 아니라 청소 용액에 부식되어 생긴 상처였다. 어차피 납치 사건의 범인은 이미 잡혀 경찰서에 있는데, 대체 뭐가 그렇게 급해서 상처를 치료도 하지 않고 경찰서로 달려온 것일까?한현진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하나 더 있었다. 회사에선 그런 고농도의 부식성 제품을 구매했을 리가 없었다. 형사의 말처럼 그런 제품은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한현진은 이시연의 연락처를 찾아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연결음이 거의 끝나가도록 이시연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곧이어 강한서에게 연락했다. 몇 초 후 통화가 연결되었지만 전화를 받은 사람은 강한서가 아닌 민경하였다. 강한서는 오늘 중요한 회의가 있어 전화를 받을 상황이 아니었기에 민경하가 그의 휴대폰을 갖고 있었다. “사모님, 저예요. 대표님께서 지금 중요한 회의 중이시라 전화를 받기 힘든 상황이에요. 급한 일이시면 저에게 얘기하셔도 돼요. 급한 일이 아니면 회의가 끝나면 바로 전화 드리라고 대표님께 말씀 드릴게요.”“급한 건 아녜요. 제가 지금 급히 회사에 가봐야 하는데 아직 은서랑 같이 있어서요. 제가 조금 이따가 회사로 가는 길에 은서를 먼저 한
주혁은 한현진보다 조금 더 먼저 경찰서에 도착한 것 같았다. 한현진이 도착했을 땐 주혁은 입구에서 통화 중이었다. 안색이 어두웠지만 그는 목소리를 잔뜩 낮춘 채 대화하고 있었다. 그를 먼저 발견한 한현진이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주혁이 곧 경계하듯 고개를 돌렸다. 한현진을 본 주혁이 멈칫하더니 곧 전화를 끊고 다가왔다. “대표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한현진이 말했다. “일이 좀 있어서요. 기사님도 일 보러 오셨어요?”짧게 대꾸한 주혁이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8년 전 제 아들을 납치한 마지막 용의자가 잡혔다고 해서요. 조사에 협조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왔어요.”한현진이 놀라운 듯 물었다. “아드님이 납치되었었어요?”주혁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8, 9년 전 일이죠. 납치된 동안 납치범에게 맞아 치료 시간을 놓쳐 청력도 잃게 된 거예요. 그 사건을 맡은 형사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사건이 종결되면 배상금을 어느 정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요.”얘기하는 동안 주혁은 아래쪽에서 자신의 손을 지긋이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다. 그는 입술을 짓이기며 조용히 손바닥을 다리에 대고 말을 이었다. “곧 아이에게 인공 달팽이관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주혁의 이야기가 한현진의 호기심을 자극하긴 했지만 그녀는 예의상 더는 그 일에 관해 묻지 않았다. 한현진은 대화주제를 돌리며 주혁에게 물었다. “제가 전에 추천해준 의사 분께 가 보셨어요?”주혁이 멈칫하며 대답했다. “아직이요.”한현진에게는 꽤 의외의 대답이었다. 그녀는 주혁이 최대한 빨리 아이를 데리고 검사를 받으러 가 인공 달팽이관을 제작할 것이라 여겼다. 아무래도 주혁은 규정을 어기고 부업을 할 만큼 누구보다 간절하게 수술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현진이 그에게 일반 병원보다 더 싼 가격에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의사를 추천해주었음에도 지금까지 검사조차 받지 않았다고 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요즘 아내가 몸이 안 좋아서요. 전근된 곳이 전처럼
하온이는 적합한 골수를 기다리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에게는 골수를 의식할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다. 처음으로 하은이에게 기회가 찾아 왔을 때는 골수 의식의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하온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그의 집안은 이미 빚더미에 앉은 상황이라 아무리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도 수술비를 모을 수 없었다. 그러니 하온의 부모님은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독하게 먹고 수술을 포기한 채 아득바득 돈을 모으며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하지만 곧 있을 줄 알았던 두 번째 기회는 그리 빨리 오지 않았다. 너무 오랜 기다림을 견뎌냈지만 하온의 몸은 이미 수술을 진행 할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해져 있었다. 하온은 하루하루 날이 다르게 시들어 가는 꽃 같았다. 은서는 낮엔 하온이와 놀다가도 저녁엔 침대에 누워 눈물을 흘렸다. 하온이가 세상을 떠나기 전날 밤, 은서는 강한서 품에 안겨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은서가 말했다. “삼촌, 저도 죽어요?”“삼촌, 우린 왜 이런 병에 걸린 거예요?”“삼촌 부자잖아요. 하온이 오빠가 수술할 수 있게 돈 빌려주시면 안 돼요? 제가 커서 돈 벌면서 갚을게요. 하온이 오빠 죽는거 싫어요.”강한서는 은서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은서는 아직 너무 어려서, 인생은 가끔 이렇게 운명의 장난 앞에서는 무력하기만 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목숨으로 돈을 맞바꾸기는 쉬운 일이었지만 돈으로 목숨을 살 수는 없었다. 강한서는 은서가 아직까지 그 일을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때의 은서는 고작 5살이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한현진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세상에는 가여운 사람이 너무도 많았다. 그러니 혼자의 힘으로는 고작 얼마의 힘이나 보탤 수 있을까. 그렇다고 세상이 나아질 것이라 기대하는 아이의 기대를 깨트릴 수도 없었다. 한현진은 정중하게 물었다. “정말 이거 전부 기부할 거야? 기부하면 은서에겐 아무 것도 없는 거야.”고개를 끄덕이던 은서가 곧 찬란한 미소를 지었다. “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