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나현은 비명을 지르며 발로 육성민을 차고 싶었다.그러나 그녀의 한쪽 발은 이미 삐어 있었기에 발을 움직이면 가슴을 파고드는 고통을 느꼈다.“살려줘! 성폭행하려고 해! 아악! 놔줘, 하준 오빠! 살려줘!”“그 손 놔요!”반하준이 호통을 쳤다.육성민은 강나현을 들고 비탈길로 걸어가 고개를 돌리고 반하준을 바라보며 한마디만 대답했다.“알았어요.”말하면서 육성민이 손을 떼자 강나현은 다시 비탈길로 굴러떨어졌다.“아악!”강나현은 마대처럼 무겁게 쓰러졌는데 입에 흙이 한 움큼 들어왔다.그녀는 비탈길에 엎드려 너무 멀리 굴러가지 않았지만 일어설 힘이 없었다.이어서 육성민은 민이를 향해 걸어가 민이에게 물었다.“내가 너를 던져줄까, 아니면 너 스스로 내려갈래?”민이는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반하준 뒤에 숨어 울부짖었다.“싫어요. 으앙!”반하준은 자기 아들을 감싼 채 육성민을 향해 호통쳤다.“내 아들까지 당신이 가르칠 필요 없어요!”“그럼 내가 가르쳐 줄게, 그러면 되지?”반용화의 목소리가 갑자기 울리자 반하준은 몸을 흠칫했다.그는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반용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사복 경비원 한 명이 태블릿 피시를 들고 반하준 앞으로 다가왔다.반용화의 신처럼 광채 나는 얼굴이 태블릿 피시에 나타나자 반하준은 숨을 들이마셨다.그는 사복 경비원이 이렇게 빨리 반용화와 연락할 줄은 몰랐다.태블릿 피시를 사이에 두고 반용화가 그를 노려볼 때 반하준은 보이지 않는 위압이 그를 덮치는 것을 느꼈다.호랑이 같았던 반하준은 반용화 앞에서 발톱을 거두었다.“작은아버지, 석현이는 무사하니 안심하세요.”“나는 너를 안심할 수 없어.”반용화는 다정하게 말을 했지만 반하준은 문득 한기를 느꼈다.스크린을 사이에 두고 그는 비꼬며 말했다.“내 양자 곁의 가장 큰 위기가 네 아들과 네 좋은 형제에게서 비롯될 줄은 몰랐네.”반하준의 얼굴에 찬 서리가 내렸다.“반현민.”반용화의 목소리가 마치 종말을 심판하듯 들려왔다.반하준은
아팠다. 그의 왼손이 감각이 없을 정도로 아팠다.반하준은 회초리를 잡은 손을 안쪽으로 조였다. 그는 민이를 때렸지만 자신의 손바닥도 아팠다.그러나 반용화 앞에서는 상속자로서의 위엄을 보여줘야 한다.“너는 석현이를 친형제로 생각해야 해, 알겠어? 더는 네가 석현이와 화목하게 지낼 수 없다는 말이 내 귀에 들려오게 하지 마!”반하준의 말에 대한 대답은 민이의 비참한 울음소리뿐이었다.반하준은 그가 민이를 때렸으니 반용화가 화를 풀었을 것으로 생각해 고개를 돌려 태블릿 피시를 보았지만 그때 또 반용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건 아빠로서의 잘못이니 하준이 네 손바닥을 30대 때릴 것이다.”반하준은 멍해졌다.“절 때려요?”반하준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손에 든 회초리를 반용화의 부하에게 건네주고 공손하게 반용화에게 말했다.“작은아버지, 저를 벌해 주세요.”반용화의 목소리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잠깐만, 네 아버지가 곧 올 것이다.”반하준은 할 말을 잃었다.이번에는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조차도 어리둥절해졌다.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은 숲에서 멀지 않은 곳에 누군가가 거울을 이고 온 것처럼 반짝이는 반사점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그 반사점이 다가오자 선생님과 의료진들은 그제야 그 사람이 양복을 입고 가죽 신발을 신은 대머리라는 것을 보았다.빠르게 달려온 중년 대머리 남자는 반하준의 아버지인 반용훈이었다.반용훈의 뒤에는 그의 비서와 장기명, 및 몇몇 학부모들이 함께였다.장기명은 육성민, 반하준 그들이 계속 돌아오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기타 몇몇 학부모들과 함께 찾아왔다.장기명은 도중에 숲속에서 빙빙 돌면서 길을 잃은 듯한 반용훈을 발견했을 때 틀림없이 큰일이 발생하리라는 것을 느꼈다.장기명은 호기심이 생겨 다른 학부모들을 데리고 와서 보았다.반용훈은 손수건을 꺼내 자신의 대머리를 닦고는 태블릿 피시 앞에 다가섰다. 형이지만 반용화에게 유난히 공손했다.“용화야, 오는 길에 이미 석현이가 사고가 난 일
강나현은 어리둥절해졌다.“... 우리 아버지가 왜 여기에 와요?”반용화의 부하가 대답했다.“우리가 강성진에게 구름 목장으로 오라고 통지했어요. 작은 도련님과 도련님 모두 아버지에게 맞았는데 강나현 씨도 당연히 너의 아버지가 교육해야 하지 않겠어요?”그들이 말을 하고 있을 때 강성진이 왔다.강민아는 반용화의 빠른 속도에 놀랐다. 사건이 발생한 지 30분밖에 안 되었는데 그는 반석현이 사고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신속하게 징계지령을 내렸다.강성진은 급히 달려왔다가 마침 반하준이 채찍을 맞는 장면을 보았다.강성진은 회초리에 묻은 선혈을 보고 온몸을 떨었다.그는 불러오는 길에 이미 반용화의 부하에게서 강나현이 반용화의 아들을 산비탈에서 밀었다는 것을 들었다.강성진은 이 일을 듣자마자 바로 간담이 서늘해졌다.반용화의 부하가 걸어오자 강성진은 강나현을 보지 못하고 나지막하게 물었다.“내 딸은 아직 살아있어요?”반용화의 부하는 회초리 하나를 강성진에게 건네주었다.“강나현 아가씨는 강민아 아가씨와 석현 도련님을 산비탈에서 떨어뜨린 주범입니다. 강성진 씨가 직접 강나현 아가씨의 손바닥을 50대 때려주십시오.”아랫사람의 말에 언덕 아래에 엎드려 있던 강나현은 매우 놀라며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반하준의 손바닥은 채찍을 서른 대 맞고 피를 흘렸는데 그녀가 오십 대를 맞는다면 손이 망가지지 않겠는가 말이다.“내 손은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손이에요. 다음 주에 또 레이싱 경주에 참여해야 한다고요. 난 손을 다치면 안 돼요!”반하준은 국제 레이싱 경주의 후원자 중의 한 명으로써 강나현을 도와 시범경기의 정원을 따냈다.강성진은 자연히 그의 이 딸이 배운 것도 없고 재주도 없어 종일 남자들 사이에서 빈둥거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강나현은 이렇게 빈둥거리다가 뜻밖에 자그마한 성적을 따냈다.그녀가 어떤 순위를 차지하든 강나현이 시범경기에서 얼굴을 내밀기만 하면 그녀는 서경시에서 유명해질 수 있다.강성진은 어쩔 수 없이 반용화의 부하를 바
“하준아, 휴대폰 꺼내.”반용화가 지령을 내리자 반하준은 내키지 않았지만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반용화의 부하는 반하준의 곁에 서서 반하준이 서경팸 단톡방을 클릭하는 것을 확인했다.반하준은 기계적으로 휴대전화를 들어 강나현을 향해 휴대폰 렌즈를 겨누었다.그가 준수하고 그윽한 얼굴은 살얼음처럼 차갑게 변했다.강민아의 이런 수법은 강나현의 목줄을 틀어쥔 거나 다름없었다.퍽!“아아아아아!”강나현은 통증을 견디며 얼굴을 가렸다.“찍지 마! 찍으면 안 돼!”그녀의 이렇게 비참한 모습이 서경팸의 채팅방에 전해졌는데, 그녀가 온갖 신경을 쓰며 부잣집 도련님 앞에서 세운 이미지가 완전히 무너졌다.사복 경비가 반용화를 대신해 명령했다.“강나현 씨, 강민아 씨와 석현 도련님께 사과하세요.”강나현은 열 손가락으로 땅의 잡초를 잡고 있는데 손톱 틈새는 모두 먼지투성이였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이를 악물고 얼굴이 빨갛게 된 채 목에 핏줄을 세웠다.그녀는 사과하고 싶지 않았다. 강민아의 계략이 실현되게 놔둘 수 없었다.“아!”회초리가 다시 떨어졌지만 그녀가 입을 열지 않자 다른 경비원은 더는 그녀의 엉덩이에 떨어진 회초리 횟수를 세지 않았다.“25、25、25...”강성진이 때릴 때마다 숫자를 세는 경비원은 25를 외쳤다.강성진은 자신도 피곤해지자 강나현을 향해 소리쳤다.“빨리 사과해!”“악!”강나현은 울부짖었다.“언니! 미안해! 잘못했어! 내가 잠시 머리가 어떻게 됐었나 봐. 그래서 언니한테 돌을 던졌어! 단지 하준 오빠를 위해 화풀이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어. 나는 심하게 던진 것도 아니잖아. 언니! 제발 용서해 줘!”강민아는 목소리가 차분했다.“이 사과는 듣기에 좀 이상한데.”경비원이 말했다.“강나현 씨, 다시 하세요.”다른 경비원은 이미 30까지 세었지만 다시 25라는 숫자로 돌아왔다.반하준도 따라서 다시 한번 강나현이 맞는 동영상을 녹화해야 했다.강나현은 화가 나서 소리 질렀다.“나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강성
안 보내기만 하면 그는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다.반하준은 차가운 숨을 들이쉬고 쌀쌀하게 대답했다.“나현이가 이미 사과했잖아. 어쨌거나 친동생인데 더는 괴롭히지 마.”반용훈은 옆에 서서 반하준의 휴대폰을 직접 빼앗았다.“영상을 보내라니, 왜 이렇게 꾸물거려!”반용훈은 잘 알고 있었다. 계속 이렇게 하면 반하준은 틀림없이 또 반용화에게 한바탕 얻어맞을 것이다.만약 반하준의 두 손이 모두 망가진다면, 내일 그는 이사회 사람들에게 설명할 방도가 없다.반용화가 입을 열었으니 반용훈은 힘을 내야 한다.반용훈은 아예 반하준의 휴대전화에 있는 발송버튼을 직접 눌렀다.“아저씨! 제발 발송하지 말아요!”강나현은 힘없이 소리쳤다.그때 강민아가 입을 열었다.“반 대표, 강나현이 이런 눈빛으로 보고 있는데 잘못을 아는 눈빛이 확실해? 반 대표 안경 맞춰야겠어?”반하준은 강나현의 눈빛에 숨어있는 한과 잔인함을 보았다. 마치 강민아를 갈기갈기 찢어 죽여도 그녀의 원한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한듯했다.“예전에 나는 당신 말을 듣고 강나현과 따지지 않았어. 어쨌거나 나는 반씨 가문의 사모님이었으니 말이야. 하지만 당신이 나가서 똥을 먹고 있으니 나는 구역질이 났어. 지금 네가 좋아하는 그 똥 덩어리가 또 나에게 묻으려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참을 수 있겠어? 모든 사람이 당신처럼 뇌가 부족한 것은 아니야.”반하준은 미간을 찌푸렸다.“나는 강나현과 아무 사이도...”“마음도 나한테 없고 돈도 나한테 없는 남자를 내가 곁에 둬서 뭐해?”그녀의 한마디에 반하준은 말문이 막혔다.강민아는 강나현을 향해 말을 이었다.“너 나에게 할 수 있는 수작이 얼마나 남았어? 어디 마음껏 해 봐. 하나님이 너를 멸망시키려 할 때 반드시 먼저 미치게 할 것이니!”강나현은 땅에 엎드려 벌레처럼 머리를 높이 들고 강민아를 주시하며 눈을 치켜뜨고 찢어버릴 듯 노려보았다.그녀가 징계를 받는 동영상은 서경팸 단톡방에 나타나자 부잣집 자제들은 동영상을 보고 침묵했다.[젠장! 나현이가 정말 비
휴대폰을 가져간 반하준은 서경팸 단톡방 채팅 기록을 보지 못했다.강나현이 처참하게 맞는 영상을 보고 그들이 뭐라 하든 반하준에겐 중요하지 않았으니까.휴대폰을 쥐고 있던 반하준의 오른손 손가락이 움츠러들었다. 죽도로 30대를 맞은 왼손의 살갗이 여전히 고통으로 욱신거렸다.손바닥에는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고 구급대원들이 바로 옆에 있었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서 상처를 치료해 주지 않았다.그는 싸늘한 어투로 강민아에게 물었다.“이제 만족해?”강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반하준이 조롱했다.“힘 있다고 사람 괴롭히네.”강민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난 힘이라도 있지 당신에겐 뭐가 있는데?”그녀의 눈이 휘어지며 하얗고 밝은 얼굴에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앞으로 정신 제대로 차리고 살아요. 반 대표님.”길게 숨을 들이마시자 신선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와 온몸이 편안해졌다.반하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대꾸하려는데 강민아가 감탄 섞인 말을 뱉었다.“이게 바로 사랑받는 느낌인가? 누군가 나서서 날 지켜주고 감싸주는 느낌에 온몸의 피와 살이 자라는 것 같아.”다시 한번 반하준을 돌아보는 강민아의 흑백이 분명한 눈동자는 마치 맑은 물로 씻은 듯 투명했다.“그래도 한때는 남편이었는데 당신한테서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단 말이지.”자조적인 웃음을 짓는 강민아의 모습에 반하준은 호흡마저 흐트러졌다.50대의 채찍질이 끝나자 강나현은 움직이지도 못한 채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강성진은 매를 때리느라 헐떡였고 그의 손도 죽도에 다 갈라져 있었다.하지만 반용화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그는 강나현 외에는 감히 누구에게도 욕을 하지 못했다.조금 전 반용화가 강민아를 얼마나 싸고도는지 봤기에, 가는 눈매로 강민아를 바라보는 강성진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민이의 얼굴은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콧물을 닦아줄 사람조차 없었다.민이는 고개를 내밀며 초조하게 물었다.“현이 형, 괜찮아요? 괜찮죠?”반하준은 구급대원에게 지시했다.“
“끄아악!”강나현은 비탈길을 내려오는 내내 비명을 질렀고 그 바람에 굴러떨어지며 흙먼지와 모래를 한입 가득 먹었다.아래에 있는 덤불로 굴러떨어진 그녀는 밧줄에 몸이 묶인 채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반용화의 부하들은 두 손이 묶인 강나현이 다시 올라가지 못하도록 밧줄을 고정했다.그러고는 반하준과 민이에게 크고 작은 안전 로프를 건네며 직접 착용하라고 말했다.“선생님께선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겪은 모든 고통을 전부 경험하게 해야만, 가해자가 뭘 해야 하고 뭘 하지 말아야 하는지 제대로 배운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반 대표님도 자식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 한 수 가르쳐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반하준은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민이의 옷깃을 잡고 함께 비탈길을 내려갔다.“흑흑, 아빠, 무서워요!”민이가 반하준에게 매달리면서 비명을 지르자 그는 화를 내며 소리쳤다.“사내라면 용감해야지. 그만 울어!”...캠프로 돌아오는 길, 강민아는 육성민이 자기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손을 들어 얼굴을 만지며 물었다.“내 얼굴에 뭐 묻었어?”비탈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졌으니 얼굴에 뭐가 묻는 것도 당연했다.육성민은 시선을 거두며 조용히 물었다.“반용화 어떻게 생각해?”“선생님은 나한테 아주 잘해줘.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큰 나무처럼 비바람도 피할 수 있게 도와주지.”“너한테만 그러겠지.”육성민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그 순간 강한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며 육성민의 목소리도 뚝 끊겼다.“뭐?”강민아는 잘 들리지 않았다.“강민아 씨.”사복 경호원이 다가와 강민아에게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도련님 지켜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선생님께서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는데 오늘 밤에 시간 되십니까?”육성민은 반용화의 초대를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강민아가 물었다.“저녁 식사 후에 선생님 서재에 있는 자료 좀 읽어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반용화의 서재에는 인터
강민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휴대폰으로 샤워 젤을 짜는 소리를 들으며 괜히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심은호가 지금 어딜 씻는 걸까.’욕실에 들어선 남자의 목소리는 더욱 섹시하고 낮게 깔렸다.“무슨 일이에요?”강민아는 뜨거운 이마를 짚으며 머리가 끓어오르는 냄비 속에 던져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한 가닥 남은 이성을 붙들고 서둘러 심은호에게 전화한 의도를 설명했다.“사실은 다음 주에 제 친구가 귀국하거든요. 심은호 씨도 알 거예요. 제 내비게이터 윤세현이요. 그래서 드림을 잠시 빌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심은호는 흔쾌히 동의했다.“네, 그럼 저는 한때 문라이트 클럽 대표로서 함께 마중 나가도 될까요?”강민아가 웃으며 말했다.“물론이죠.”그 순간 갑자기 심은호의 나지막한 탄성이 그녀의 귀에 들려왔다.강민아가 잠시 멈칫하며 고개를 돌려 휴대폰을 보니 휴대폰 화면에 심은호의 젖은 얼굴이 나타났다.작은 물줄기가 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미남이 씻고 있자 강민아는 너무 놀라서 휴대폰을 날려버릴 뻔했다.“죄송해요. 끊으려고 했는데 손이 미끄러져서 엉뚱한 곳을 눌렀어요.”심은호의 목소리가 육성민에게 들리자 운전 중이던 육성민은 앞만 주시하며 강민아에게 물었다.“뭐야?”강민아가 서둘러 대답했다.“아무것도 아니야!”“엇!”휴대폰에서 툭 소리가 나더니 전화기는 바닥에 떨어졌고 전면 카메라에는 단단하고 탄력 있는... 허벅지가 보였다.휴대폰 화면 위로 물줄기가 튀면서 화면이 흐려지자 강민아는 서둘러 눈을 감고 속으로 중얼거렸다.‘보지 말자. 보지 말자.’그녀가 손가락으로 휴대폰을 마구 누르는데 심은호는 손가락이 화면에 나타나는 것을 보며 깃털 같은 목소리로 강민아 귓가를 간질였다.“민아 씨, 막 만지지 마요.”강민아의 얼굴이 온통 붉게 물들었을 때 전방 교차로에 빨간불이 켜졌고, 차를 세운 육성민이 강민아를 돌아보았다.무의식적으로 강민아는 휴대전화를 등 뒤로 숨겼다.육성민 앞에서 애정 행각을 벌이다가 들킨 것 같은 기분
그는 이제 그 목도리를 어디에 뒀는지도 잊어버렸다.하지만 강민아는 목도리에 그려진 꽃을 자신이 직접 디자인했다고 말했다.백화점에서 살 수 없는 목도리니까 강민아가 직접 뜨개질을 한 것이 틀림없다!반하준은 우선 주문 내용을 살펴보며 강민아가 뜨개실을 많이 샀다는 것을 확인했다.그는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 목도리는 강민아가 직접 뜬 게 확실하다.그러다 문득 반하준의 시선이 한 주문 내용에 멈췄다.[자동 뜨개질 기계]아이들을 위해 목도리나 장갑, 모자 등을 뜨기 위해 구입한 것 같다.두 아이를 위해 그렇게 많은 걸 만들어줬는데 분명 강민아 혼자서 다 하기엔 힘들었겠지.반하준은 감시카메라 영상을 찾아 강민아가 자동 뜨개질 기계를 사용하는 모습을 발견했다.기계가 뜨는 속도가 느리다고 생각한 그녀는 전동 드릴을 꺼내 기계를 개조했다.10분 후, 기계에서 목도리 하나가 뚝딱 완성되었다.그건 반하준에게 선물한 그 목도리였다.반하준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는 강민아가 목도리를 건네줄 때 피곤한 표정으로 하품까지 했던 것을 기억한다.반하준은 강민아가 자신을 위해 밤새도록 한 땀 한 땀 뜨개질을 해서 그 목도리를 만들어줬다고 생각했다.그래도 기술이 발달한 탓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자동 뜨개질 기계가 있으니 강민아가 기계로 뜨는 건 당연했다.그러다 몇 번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면서 그녀에게 잘하는 요리를 준비하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강민아는 많은 요리를 준비하느라 오후 내내 바삐 돌았다.일부러 그때그때 마음을 바꾸면서 소금을 적게 넣거나 진간장 대신 전통 간장을 쓰라고 했었는데 그것까지 즉석식품으로 대체할 수는 없겠지.반하준이 주방 카메라를 돌려보니 그날도 어김없이 강민아는 점심에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햇빛 아래에서 책을 보고 태블릿을 이용해 에세이와 연구 논문을 찾아보며 오후 내내 주방에 머물렀다.반하준과 그의 친구들이 집에 도착하기까지 30분 정도 남았다는 운전기사의 전화를 받고서야 강민아는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그
잘생긴 반하준의 얼굴이 팍 일그러지며 살벌한 표정이 드러났다.“아줌마한테 해달라고 해!”참 터무니없다.강민아를 대하는 민이의 태도가 확 달라지니 고통받는 사람은 그가 되었다.반하준은 이런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지만 민이는 고집스럽게 떼를 썼다.“엄마가 직접 끓인 죽 먹고 싶어요! 으아앙!”전화기 너머로 아이가 칭얼대자 반하준은 귀에 수많은 바늘이 꽂힌 듯 고막을 찌르는 듯한 이명을 느꼈다.“그럼 내가 그 여자 손을 잘라서 죽 만들어줄게!”홧김에 뱉은 말에 민이의 얼굴이 충격으로 창백해졌다.“아빠!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난 엄마...”“다시는 엄마라는 말 입에 담지 마!”매정하게 전화를 끊어버린 남자는 가슴을 들썩이며 숨을 쉴 때마다 심장이 아팠다.분노의 불길에 피가 부글부글 끓으며 전화기를 쥐고 있던 손에서는 푸른 혈관이 뚫고 나올 기세로 뱀처럼 꿈틀거렸다.그는 여전히 강민아가 그토록 오랜 결혼 생활 동안 자신에게 무심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조금 전 봤던 건 전부 우연일 거다.그렇다면 스코틀랜드식 에그는?만드는 과정이 복잡한 스코틀랜드식 에그는 강민아가 분명 매번 손수 만들어줬을 거다.반하준은 컴퓨터를 들여다보다가 강민아가 올해 자신과 아이를 위해 스코틀랜드식 에그를 만들었던 영상을 발견했다.그는 모니터를 통해 강민아가 스코틀랜드식 에그를 직접 손으로 하나하나 만드는 것을 확인했다.반하준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꼬리까지 올라갔다.그러다 갑자기 반하준이 고개를 앞으로 숙여 컴퓨터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강민아가 스코틀랜드식 에그를 두 개만 만든 게 아니겠나.반하준과 민이, 정이를 위한 것이라면 세 개를 만들어야 했다.반하준은 음식이 거의 끝날 무렵 강민아가 냉장고에서 상자를 하나 꺼내는 것을 발견했다.포장을 뜯어보니 안에는 이미 튀긴 스코틀랜드식 에그가 들어있었고, 강민아는 조리된 채 얼린 스코틀랜드식 에그를 꺼내 에어프라이어에 넣었다.그렇게 곧 스코틀랜드식 에그 3인분이
반하준의 얼굴이 다소 일그러지고 반용화는 반하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꿰뚫어 보았다.“촌수로 따지면 너와 석현이가 같지 않나? 대단하신 반 대표님이라 사촌 동생한테 사과를 못 하겠어?”세대로 따지면 반석현이 그의 사촌 동생인 것은 맞지만 반석현은 민이와 동갑내기였다.게다가 반석현은 반용화의 양아들에 불과했고 반씨 가문에서 그의 지위는 민이보다 열세였다.그런데 어른인 그를 보고 반석현에게 사과하라고 하니 반하준은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반용화가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다.“두 번 말하게 하지 마!”연진숙이 걸어 나왔다.“용화 씨, 지금 뭐 해요? 왜 가만히 있는 하준이보고 석현이한테 사과하라는 건데요? 그러다 애가 벌 받아요.”마지막 말은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기에 연진숙도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다.대단한 반용화가 굳이 그녀에게 캐묻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준아,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손 내밀어.”반용화는 아무 기복 없는 목소리에 웃어른의 진중함을 담아 명령했다.반하준은 막연하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마치 강한 힘이 자신을 부추기는 것 같아서 도저히 손을 뻗지 않을 수가 없었다.반용화가 비서에게 눈짓하자 비서는 자를 꺼내 반하준의 손바닥을 내리쳤다.짜악!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연진숙은 몸을 흠칫 떨었다. 병실에서 울고 있던 민이도 벌벌 떨며 울음을 그쳤다.맞은 반하준의 손바닥은 순간 하얗게 변했다가 이내 피가 몰리며 맨눈으로 보일 정도로 빠르게 부풀어 올랐다.때린 건 반하준의 손바닥이지만 아픈 건 연진숙의 마음이었다. 연진숙은 속이 쓰라린 느낌에 입술을 달달 떨었다.“이... 이게 대체...”연진숙은 충격에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일부러 그녀가 보는 앞에서 때렸다는 걸 안다.반용화는 올곧은 소나무처럼 휠체어에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네 아들이 석현이한테 무례하게 굴어서 때리는 거야. 네 어머니가 말실수했으니 벌은 네가 받아야지.”반용화가 연진숙에게 말했다.“형수님, 다음에 또 말실수하면 그땐 제가 하
반용화는 깊은 웅덩이처럼 맑고 차가운 눈빛으로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반하준의 시선이 반용화의 두 다리로 향했다.7년 전, 반용화는 미린국의 제재를 받고 국가안보 리스트에 올랐다. 국내를 떠나 미린국과 조약을 맺은 나라만 가면 곧바로 체포될 수 있었다.그러나 국내의 많은 학자들에게 이러한 제재는 영광이라고 할 수 있다. 심한기도 5년 전에 미린국의 입국 제한 명단에 올랐고, 미린국은 심한기가 학자의 신분으로 어떠한 동맹국이든 연구 방문하는 것을 금지했다. 즉 세계 10대 대학에 전부 심한기, 반용화와 협업하는 것을 금한 것이다.하지만 이들이 국내에 거주하는 한 최고급 학자로서 생활하는 데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그러다 하필 반용화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목숨을 노린 교통사고가 일어난 것. 다행히 반용화는 목숨은 건졌지만 대신 다리를 잃었다.이후 반씨 가문은 반용화를 더욱 회피했고, 반용화도 반씨 가문 기업은 물론 그 어떤 사람과도 엮이려 하지 않으며 일부러 반씨 가문과 거리를 두었다.반하준은 반용화가 수많은 사람 중 강민아를 발탁해 영재반에 데려간 것 말고는 둘 사이에 접점이 없다고 생각했다.가족 모임에서 몇 번 만난 게 전부였다.강민아도 반용화를 만나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하는 것 외에는 두 사람 사이에 별다른 교류가 없었다.이 때문에 반하준은 오랫동안 반용화와 강민아가 서로를 잘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런데 반용화의 말이 그의 심장을 꽉 움켜쥐었다.“강민아가 원하던 야심 찬 목표가 뭔데요?”반용화의 검은 눈동자엔 통찰력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그는 반하준의 당황과 긴장을 전부 꿰뚫어 보고 있었다.강민아가 자신을 깊이 사랑한다고 믿어왔던 것이 반용화의 한 마디에 너무도 쉽게 뒤집혀버린 것이다.“걔가 할 일은 끝났어. 사모님이라는 신분으로 보호받으며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지. 반씨 가문이 걔를 지켜주는 건 여기까지야. 이제부터는 내가 해. 하지만 너한테 고맙다는 말은 안 해. 결혼은 했지만 평범한 부부생활을 보내진 못했잖아
그가 고개를 돌려 병실을 보니 의사들이 병상 주변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민이의 상태가 더 안 좋아진 건가?’“네 아들 왜 저래?”“독한 엄마 때문에 저렇게 됐죠.”그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차가운 기운이 칼날처럼 그의 얼굴을 스쳤다.뺨이 찬바람을 맞은 것처럼 아팠다.반하준은 물었다.“작은아버지, 왜 그런 눈빛으로 저를 보시는 거예요?”그의 말이 틀렸나.“제 아들이 강민아에게 달려가서 화해하자고, 제발 좀 자기를 봐달라고, 한 번만 안아달라고 애원했지만 강민아는 애가 밖에서 비를 맞게 내버려뒀어요. 그래서 민이가 저 지경이 됐는데 엄마로서 책임이 없나요?”반용화의 흠잡을 곳 없는 얼굴은 내내 무표정이었다.“나보고 민아를 질책하라는 거야?”반하준이 그를 똑바로 마주했다.“작은아버지도 반씨 가문 사람인데 팔이 바깥으로 굽으면 안 되죠.”반용화는 깊은 눈동자로 덤덤하게 반하준을 응시했다.“난 반씨 가문 사람이니까 당연히 반씨 가문 편을 들 거야. 반씨 가문 사람들이 선을 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불쾌함을 느낀 반하준의 말에 가시가 돋쳐 있었다.“강민아와 저는 이미 이혼했는데 작은아버지는 무슨 신분으로 걔 편을 드는 거죠?”반용화는 지나치게 강민아를 챙기고 있었다.이건 제자에 대한 스승의 애정을 넘어선 감정이다.게다가 반용화가 어떻게 강민아의 스승인가. 제대로 가르친 적도 없는데.“민아가 너랑 결혼한 진짜 이유가 뭔지 알아?”당황한 반하준은 순간 머릿속이 윙윙 울렸다.“나랑 결혼하는데 다른 이유가 있겠어요? 날 좋아하고 내 위치 때문에...”“네 신분 때문인 건 맞지.”반용화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는 너무 많은 것을 감추고 있었다.반하준은 그런 그의 눈빛에 불안한 마음이 쿵쾅거렸다.“난 부신 그룹 대표고 그 여자는 불순한 의도로 내게 접근했어요.”“그래.”반용화가 인정했다.“민아는 더 큰 꿈을 위해 7년 동안 반씨 가문에 있었던 거야.”반하준은 휠체어에 앉은 반용화를 바라보면서 숨이 가빠지고 동공이
반하준이 민이를 병원에 데려왔을 때 민이의 목소리는 우느라 다 쉬었다.이젠 소리조차 나오지 않자 작은 얼굴은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장시간 격한 감정 기복과 빗속에서 넘어지기까지 해서 몸의 염증을 유발한 탓에 민이의 뺨은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온몸은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반하준은 민이에게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하고 재빨리 의사를 불렀다.여러 명의 의사가 민이를 둘러싸고 곧바로 응급처치를 시작했다.소식을 들은 연진숙은 병원에 도착해 의사들이 병상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보고 가슴을 움켜쥔 채 소리를 질렀다.“민이한테 무슨 일 생겼어? 오소정이 어디로 데려갔어?”“강민아를 찾으러 갔어요.”반하준이 퉁명스럽게 말하자 연진숙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그 양심 없는 것을 만나러 갔는데 왜 이렇게 됐어? 강민아가 민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남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민이를 용서하지 않고 민이가 비를 맞도록 내버려두었대요.”그 말을 들은 연진숙은 분노에 기절할 것만 같았다.“기자들 불러서 강민아는 엄마가 될 자격이 없다고 모든 매체에 대서특필할 거야! 유명하다고 우리가 대단하게 생각할 줄 아나 본데, 명성은 원래 양날의 검이야. 높이 올라갈수록 처참하게 떨어진다고!”“마음대로 하세요.”뒤돌아 병실을 나서는 반하준의 얼굴이 침울했다.강민아의 이름은 가시처럼 그의 심장 깊숙이 박혀 혈관 속을 누비고 다녔다.그녀를 생각만 해도 반하준은 온몸이 아팠다.아들이 동의하는 모습에 연진숙은 기분이 좋았다.“오늘 신씨 집안 딸과 소개팅한 건 어땠어?”그녀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반하준은 귀를 의심했다.“어머니, 의사들이 지금 민이를 살리고 있잖아요!”조금 전까지 민이의 몸 상태에 대해 슬퍼하던 사람이 곧바로 기대에 찬 목소리로 반하준의 연애사에 개입했다.“의사들이 민이를 살리고 있지만 애한테 새엄마를 찾아주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지.”연진숙이 덧붙였다.“빨리 새엄마를 찾아줘야 민이를 잘 보살펴주지. 신씨 집안 딸이 의대생에 한의학 전공했대.
옷은 모두 젖어서 하얗고 얇은 천이 몸에 딱 달라붙어 섬세한 곡선을 드러내고 있었다.오소정의 입이 달걀 하나는 족히 들어갈 정도로 떡 벌어졌다.“여사님... 왜 그러세요?”오소정은 도민영이 미친 게 아닌지 의심되었다.도민영은 음악을 틀어놓고 휴대폰을 향해 요염한 몸짓을 선보이며 말했다.“모르겠어요? 나 성진 씨한테 복수하고 있어요!”그제야 오소정은 도민영이 SNS 계정을 만들어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이게 무슨 복수에요?”오소정의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도민영은 허리를 비틀며 가슴을 흔들었다.“성진 씨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 내 몸을 다른 남자들에게 보여줄 거예요!”오소정은 침묵했다. 강씨 가문에서 오랫동안 온실 속 화초로 자란 사람은 역시 남다르다.민이가 중얼거렸다.“할머니는 무슨 소설에서 뛰쳐나온 사람 같아요.”오소정은 민이를 안은 채 도민영에게서 멀어졌다.“도련님, 비가 너무 많이 오니까 제가 차까지 모셔다드릴게요.”“안 돼요. 내려주세요!”오소정이 민이를 휠체어에 태우려 하자 민이의 온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면서 또다시 휠체어에서 떨어졌다.“도련님!”오소정은 이제 목소리가 다 갈라져 있었다.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는 민이를 부축해 주려 하자 아이가 빽 소리를 질렀다.“건드리지 마!”“도련님, 바닥에 엎드려 있으면 어떡해요!”빗물이 얼음처럼 민이의 얼굴을 때렸지만 추운 날씨에 이미 감각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건드리지 마, 건드리지 말라고!”도민영의 행동이 민이를 자극했다. 이렇게 바닥에 누워 있으면 강민아가 자신을 절대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민이와 도민영을 쫓아내려던 경비원들이 이 장면을 목격했다.민이는 바닥에 쓰러져 울부짖고 도민영은 쏟아지는 빗속에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하나는 미친 할망구, 하나는 미친 아이라 차마 다가가서 쫓아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16층에서 강민아는 커튼을 열어 아래층 광경을 보고는 다시 커튼을 닫았다.다섯살 민이가 떼를 쓰
오소정의 심장이 철렁했다.“도련님!”“으아앙, 엄마!”민이는 두 손으로 강민아를 향해 기어가려고 했다.“엄마, 나 좀 봐줘요!”두 눈에서 눈물이 솟구치고 뺨이 붉게 상기된 채 민이는 몸의 통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앞으로 기어 나갔다.하늘에서 가랑비가 내리고 오소정이 서둘러 민이를 안아 들었다.강민아와 정이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오소정이 민이를 안은 채 뛰어왔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강민아와 정이가 안으로 들어갔다.“엄마!”민이는 목이 터지라 울부짖으며 두 팔을 쭉 뻗었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아이는 손을 뻗어 엘리베이터 문을 두드렸고 슬픈 울음소리가 건물 전체에 울려 퍼졌다.“엄마! 다시는 엄마를 화나게 하지 않을게요! 제발 돌아와요! 내가 이렇게 빌게요! 돌아와 줘요!”엘리베이터가 올라가고 머리 위 조명이 고개를 든 강민아의 눈동자를 비추었다. 흑백이 분명한 눈동자는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민이가 버린 밥은 다시 지으면 그만이고, 민이가 찢어버린 시험지와 교과서도 다시 쓰면 되지만...버려진 사랑은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쓰레기통에서 자신이 부쉈던 조각들을 꺼내 다시 이어 붙여도 그 위에 얼룩진 상처는 다시 돌이킬 수 없었다.그것이 그녀가 엄마로서 아이에게 가르치는 마지막 교훈이었다.거듭된 상처를 받은 후 엄마로서 용기를 내어 가해자인 아들을 떠난 것이다....“엄마...”정이가 속삭였다.강민아가 슬퍼하는 것이 느껴져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엄마를 위로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강민아는 아랫입술에 깊은 이빨 자국이 남을 정도로 깨물며 고개를 숙이고 정이에게 괜찮다는 미소를 지으려 했다.하지만 표정을 바꾸자 뜨거운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정이는 마음이 아프고 코끝이 시큰거렸다.“엄마, 민이 낳은 거 후회해요?”강민아가 고개를 저으며 쭈그리고 앉자 정이는 손을 내밀어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강민아가 말했다.“정아, 난
옆에서 지켜보던 도민영도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딸, 민이 동생 용서해 줘. 엄마가 자식 용서 안 하는 게 어디 있어.”민이가 물었다.“엄마는 내가 어떻게 해야 용서해 줄 거예요? 내 카드 엄마한테 줄게요!”평소 강나현이 카드를 긁는 것을 제일 좋아했기에 민이는 손에 쥔 블랙 카드가 제일 가치 있고 누구나 탐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강민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민아,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건 이번 한 번만 용서하는 게 아니야. 오늘 내가 너를 용서하면 앞으로 매일 밥을 짓고 죽을 끓일 때마다 널 한 번씩 용서해야 할 거야. 앞으로 강나현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또다시 너를 용서해야 하고, 네 아빠를 볼 때면 반씨 가문에서 네가 나에게 했던 말과 행동이 떠오를 거야. 그러면 난 또 내 아픈 상처를 마주하면서 너그러운 척 너를 용서해야 해.”강민아는 민이의 눈에 수정 같은 눈물이 소용돌이치는 것을 보았다. 아이는 지금 속상한 마음에 울기 직전이었다.“이제 오토바이 탈 수 있어?”강민아가 묻자 민이는 울면서 말했다.“이제 못 타요.”강민아가 덤덤하게 대꾸했다.“그래, 나도 못 해. 한번 뱀에게 물리면 10년 동안 밧줄만 봐도 놀란다는데, 넌 몸을 다쳤지만 난 마음을 다쳤어.”민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굵은 눈물을 흘렸다.“난 뱀이 아니라 엄마 아들이에요...”“난 네 아빠와의 결혼생활에서 일찍 벗어날 수 있었어. 하지만 너희를 두고 갈 수가 없었어. 네 아빠와 이혼하면 둘 다 데려가진 못하니까. 둘 다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인데 누구를 버리겠어? 근데 네가 날 도와줬어. 네 덕분에 숨 막히는 결혼생활을 끝낼 결심을 할 수 있었어.”강민아는 오래전부터 이혼할 생각이 뇌리에 박혀 있었다.줄곧 이혼을 준비해 왔기에 반하준 명의로 된 다양한 사업체와 자금을 파악하고, 마음을 굳힌 후 빠르게 이혼 서류와 합리적인 공동 재산 분배 계획을 반하준에게 내밀 수 있었다.아이를 낳은 후 본능적인 모성애가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아이 울음소리만 들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