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나현은 어리둥절해졌다.“... 우리 아버지가 왜 여기에 와요?”반용화의 부하가 대답했다.“우리가 강성진에게 구름 목장으로 오라고 통지했어요. 작은 도련님과 도련님 모두 아버지에게 맞았는데 강나현 씨도 당연히 너의 아버지가 교육해야 하지 않겠어요?”그들이 말을 하고 있을 때 강성진이 왔다.강민아는 반용화의 빠른 속도에 놀랐다. 사건이 발생한 지 30분밖에 안 되었는데 그는 반석현이 사고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신속하게 징계지령을 내렸다.강성진은 급히 달려왔다가 마침 반하준이 채찍을 맞는 장면을 보았다.강성진은 회초리에 묻은 선혈을 보고 온몸을 떨었다.그는 불러오는 길에 이미 반용화의 부하에게서 강나현이 반용화의 아들을 산비탈에서 밀었다는 것을 들었다.강성진은 이 일을 듣자마자 바로 간담이 서늘해졌다.반용화의 부하가 걸어오자 강성진은 강나현을 보지 못하고 나지막하게 물었다.“내 딸은 아직 살아있어요?”반용화의 부하는 회초리 하나를 강성진에게 건네주었다.“강나현 아가씨는 강민아 아가씨와 석현 도련님을 산비탈에서 떨어뜨린 주범입니다. 강성진 씨가 직접 강나현 아가씨의 손바닥을 50대 때려주십시오.”아랫사람의 말에 언덕 아래에 엎드려 있던 강나현은 매우 놀라며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반하준의 손바닥은 채찍을 서른 대 맞고 피를 흘렸는데 그녀가 오십 대를 맞는다면 손이 망가지지 않겠는가 말이다.“내 손은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손이에요. 다음 주에 또 레이싱 경주에 참여해야 한다고요. 난 손을 다치면 안 돼요!”반하준은 국제 레이싱 경주의 후원자 중의 한 명으로써 강나현을 도와 시범경기의 정원을 따냈다.강성진은 자연히 그의 이 딸이 배운 것도 없고 재주도 없어 종일 남자들 사이에서 빈둥거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강나현은 이렇게 빈둥거리다가 뜻밖에 자그마한 성적을 따냈다.그녀가 어떤 순위를 차지하든 강나현이 시범경기에서 얼굴을 내밀기만 하면 그녀는 서경시에서 유명해질 수 있다.강성진은 어쩔 수 없이 반용화의 부하를 바
“하준아, 휴대폰 꺼내.”반용화가 지령을 내리자 반하준은 내키지 않았지만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반용화의 부하는 반하준의 곁에 서서 반하준이 서경팸 단톡방을 클릭하는 것을 확인했다.반하준은 기계적으로 휴대전화를 들어 강나현을 향해 휴대폰 렌즈를 겨누었다.그가 준수하고 그윽한 얼굴은 살얼음처럼 차갑게 변했다.강민아의 이런 수법은 강나현의 목줄을 틀어쥔 거나 다름없었다.퍽!“아아아아아!”강나현은 통증을 견디며 얼굴을 가렸다.“찍지 마! 찍으면 안 돼!”그녀의 이렇게 비참한 모습이 서경팸의 채팅방에 전해졌는데, 그녀가 온갖 신경을 쓰며 부잣집 도련님 앞에서 세운 이미지가 완전히 무너졌다.사복 경비가 반용화를 대신해 명령했다.“강나현 씨, 강민아 씨와 석현 도련님께 사과하세요.”강나현은 열 손가락으로 땅의 잡초를 잡고 있는데 손톱 틈새는 모두 먼지투성이였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이를 악물고 얼굴이 빨갛게 된 채 목에 핏줄을 세웠다.그녀는 사과하고 싶지 않았다. 강민아의 계략이 실현되게 놔둘 수 없었다.“아!”회초리가 다시 떨어졌지만 그녀가 입을 열지 않자 다른 경비원은 더는 그녀의 엉덩이에 떨어진 회초리 횟수를 세지 않았다.“25、25、25...”강성진이 때릴 때마다 숫자를 세는 경비원은 25를 외쳤다.강성진은 자신도 피곤해지자 강나현을 향해 소리쳤다.“빨리 사과해!”“악!”강나현은 울부짖었다.“언니! 미안해! 잘못했어! 내가 잠시 머리가 어떻게 됐었나 봐. 그래서 언니한테 돌을 던졌어! 단지 하준 오빠를 위해 화풀이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어. 나는 심하게 던진 것도 아니잖아. 언니! 제발 용서해 줘!”강민아는 목소리가 차분했다.“이 사과는 듣기에 좀 이상한데.”경비원이 말했다.“강나현 씨, 다시 하세요.”다른 경비원은 이미 30까지 세었지만 다시 25라는 숫자로 돌아왔다.반하준도 따라서 다시 한번 강나현이 맞는 동영상을 녹화해야 했다.강나현은 화가 나서 소리 질렀다.“나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강성
안 보내기만 하면 그는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다.반하준은 차가운 숨을 들이쉬고 쌀쌀하게 대답했다.“나현이가 이미 사과했잖아. 어쨌거나 친동생인데 더는 괴롭히지 마.”반용훈은 옆에 서서 반하준의 휴대폰을 직접 빼앗았다.“영상을 보내라니, 왜 이렇게 꾸물거려!”반용훈은 잘 알고 있었다. 계속 이렇게 하면 반하준은 틀림없이 또 반용화에게 한바탕 얻어맞을 것이다.만약 반하준의 두 손이 모두 망가진다면, 내일 그는 이사회 사람들에게 설명할 방도가 없다.반용화가 입을 열었으니 반용훈은 힘을 내야 한다.반용훈은 아예 반하준의 휴대전화에 있는 발송버튼을 직접 눌렀다.“아저씨! 제발 발송하지 말아요!”강나현은 힘없이 소리쳤다.그때 강민아가 입을 열었다.“반 대표, 강나현이 이런 눈빛으로 보고 있는데 잘못을 아는 눈빛이 확실해? 반 대표 안경 맞춰야겠어?”반하준은 강나현의 눈빛에 숨어있는 한과 잔인함을 보았다. 마치 강민아를 갈기갈기 찢어 죽여도 그녀의 원한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한듯했다.“예전에 나는 당신 말을 듣고 강나현과 따지지 않았어. 어쨌거나 나는 반씨 가문의 사모님이었으니 말이야. 하지만 당신이 나가서 똥을 먹고 있으니 나는 구역질이 났어. 지금 네가 좋아하는 그 똥 덩어리가 또 나에게 묻으려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참을 수 있겠어? 모든 사람이 당신처럼 뇌가 부족한 것은 아니야.”반하준은 미간을 찌푸렸다.“나는 강나현과 아무 사이도...”“마음도 나한테 없고 돈도 나한테 없는 남자를 내가 곁에 둬서 뭐해?”그녀의 한마디에 반하준은 말문이 막혔다.강민아는 강나현을 향해 말을 이었다.“너 나에게 할 수 있는 수작이 얼마나 남았어? 어디 마음껏 해 봐. 하나님이 너를 멸망시키려 할 때 반드시 먼저 미치게 할 것이니!”강나현은 땅에 엎드려 벌레처럼 머리를 높이 들고 강민아를 주시하며 눈을 치켜뜨고 찢어버릴 듯 노려보았다.그녀가 징계를 받는 동영상은 서경팸 단톡방에 나타나자 부잣집 자제들은 동영상을 보고 침묵했다.[젠장! 나현이가 정말 비
휴대폰을 가져간 반하준은 서경팸 단톡방 채팅 기록을 보지 못했다.강나현이 처참하게 맞는 영상을 보고 그들이 뭐라 하든 반하준에겐 중요하지 않았으니까.휴대폰을 쥐고 있던 반하준의 오른손 손가락이 움츠러들었다. 죽도로 30대를 맞은 왼손의 살갗이 여전히 고통으로 욱신거렸다.손바닥에는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고 구급대원들이 바로 옆에 있었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서 상처를 치료해 주지 않았다.그는 싸늘한 어투로 강민아에게 물었다.“이제 만족해?”강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반하준이 조롱했다.“힘 있다고 사람 괴롭히네.”강민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난 힘이라도 있지 당신에겐 뭐가 있는데?”그녀의 눈이 휘어지며 하얗고 밝은 얼굴에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앞으로 정신 제대로 차리고 살아요. 반 대표님.”길게 숨을 들이마시자 신선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와 온몸이 편안해졌다.반하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대꾸하려는데 강민아가 감탄 섞인 말을 뱉었다.“이게 바로 사랑받는 느낌인가? 누군가 나서서 날 지켜주고 감싸주는 느낌에 온몸의 피와 살이 자라는 것 같아.”다시 한번 반하준을 돌아보는 강민아의 흑백이 분명한 눈동자는 마치 맑은 물로 씻은 듯 투명했다.“그래도 한때는 남편이었는데 당신한테서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단 말이지.”자조적인 웃음을 짓는 강민아의 모습에 반하준은 호흡마저 흐트러졌다.50대의 채찍질이 끝나자 강나현은 움직이지도 못한 채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강성진은 매를 때리느라 헐떡였고 그의 손도 죽도에 다 갈라져 있었다.하지만 반용화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그는 강나현 외에는 감히 누구에게도 욕을 하지 못했다.조금 전 반용화가 강민아를 얼마나 싸고도는지 봤기에, 가는 눈매로 강민아를 바라보는 강성진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민이의 얼굴은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콧물을 닦아줄 사람조차 없었다.민이는 고개를 내밀며 초조하게 물었다.“현이 형, 괜찮아요? 괜찮죠?”반하준은 구급대원에게 지시했다.“
“끄아악!”강나현은 비탈길을 내려오는 내내 비명을 질렀고 그 바람에 굴러떨어지며 흙먼지와 모래를 한입 가득 먹었다.아래에 있는 덤불로 굴러떨어진 그녀는 밧줄에 몸이 묶인 채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반용화의 부하들은 두 손이 묶인 강나현이 다시 올라가지 못하도록 밧줄을 고정했다.그러고는 반하준과 민이에게 크고 작은 안전 로프를 건네며 직접 착용하라고 말했다.“선생님께선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겪은 모든 고통을 전부 경험하게 해야만, 가해자가 뭘 해야 하고 뭘 하지 말아야 하는지 제대로 배운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반 대표님도 자식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 한 수 가르쳐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반하준은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민이의 옷깃을 잡고 함께 비탈길을 내려갔다.“흑흑, 아빠, 무서워요!”민이가 반하준에게 매달리면서 비명을 지르자 그는 화를 내며 소리쳤다.“사내라면 용감해야지. 그만 울어!”...캠프로 돌아오는 길, 강민아는 육성민이 자기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손을 들어 얼굴을 만지며 물었다.“내 얼굴에 뭐 묻었어?”비탈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졌으니 얼굴에 뭐가 묻는 것도 당연했다.육성민은 시선을 거두며 조용히 물었다.“반용화 어떻게 생각해?”“선생님은 나한테 아주 잘해줘.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큰 나무처럼 비바람도 피할 수 있게 도와주지.”“너한테만 그러겠지.”육성민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그 순간 강한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며 육성민의 목소리도 뚝 끊겼다.“뭐?”강민아는 잘 들리지 않았다.“강민아 씨.”사복 경호원이 다가와 강민아에게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도련님 지켜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선생님께서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는데 오늘 밤에 시간 되십니까?”육성민은 반용화의 초대를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강민아가 물었다.“저녁 식사 후에 선생님 서재에 있는 자료 좀 읽어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반용화의 서재에는 인터
강민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휴대폰으로 샤워 젤을 짜는 소리를 들으며 괜히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심은호가 지금 어딜 씻는 걸까.’욕실에 들어선 남자의 목소리는 더욱 섹시하고 낮게 깔렸다.“무슨 일이에요?”강민아는 뜨거운 이마를 짚으며 머리가 끓어오르는 냄비 속에 던져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한 가닥 남은 이성을 붙들고 서둘러 심은호에게 전화한 의도를 설명했다.“사실은 다음 주에 제 친구가 귀국하거든요. 심은호 씨도 알 거예요. 제 내비게이터 윤세현이요. 그래서 드림을 잠시 빌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심은호는 흔쾌히 동의했다.“네, 그럼 저는 한때 문라이트 클럽 대표로서 함께 마중 나가도 될까요?”강민아가 웃으며 말했다.“물론이죠.”그 순간 갑자기 심은호의 나지막한 탄성이 그녀의 귀에 들려왔다.강민아가 잠시 멈칫하며 고개를 돌려 휴대폰을 보니 휴대폰 화면에 심은호의 젖은 얼굴이 나타났다.작은 물줄기가 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미남이 씻고 있자 강민아는 너무 놀라서 휴대폰을 날려버릴 뻔했다.“죄송해요. 끊으려고 했는데 손이 미끄러져서 엉뚱한 곳을 눌렀어요.”심은호의 목소리가 육성민에게 들리자 운전 중이던 육성민은 앞만 주시하며 강민아에게 물었다.“뭐야?”강민아가 서둘러 대답했다.“아무것도 아니야!”“엇!”휴대폰에서 툭 소리가 나더니 전화기는 바닥에 떨어졌고 전면 카메라에는 단단하고 탄력 있는... 허벅지가 보였다.휴대폰 화면 위로 물줄기가 튀면서 화면이 흐려지자 강민아는 서둘러 눈을 감고 속으로 중얼거렸다.‘보지 말자. 보지 말자.’그녀가 손가락으로 휴대폰을 마구 누르는데 심은호는 손가락이 화면에 나타나는 것을 보며 깃털 같은 목소리로 강민아 귓가를 간질였다.“민아 씨, 막 만지지 마요.”강민아의 얼굴이 온통 붉게 물들었을 때 전방 교차로에 빨간불이 켜졌고, 차를 세운 육성민이 강민아를 돌아보았다.무의식적으로 강민아는 휴대전화를 등 뒤로 숨겼다.육성민 앞에서 애정 행각을 벌이다가 들킨 것 같은 기분
육성민은 지금 조심스러운 도베르만 같았다.강민아는 차에 올라 달콤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석현아, 내가 안아줄까?”잠결에 비몽사몽이던 반석현이 그대로 강민아에게 기대었다.아이가 품에 안기자 강민아는 곧장 아이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반석현은 강민아의 어깨에 엎드려 그녀의 부드럽고 달큰한 체취를 맡으며 반쯤 눈을 감았다. 유난히 강민아의 따뜻함에 애착을 보이는 아이가 팔을 뻗어 먼저 강민아의 목을 안았다.손님을 맞이하러 나왔던 도우미들이 강민아가 반석현을 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두 눈을 크게 떴다.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누구와도 신체적 접촉을 하지 않는 반석현이 제일 가깝게 지내는 게 반용화지만, 가끔은 그의 말도 무시할 때가 있었다.지금 강민아에게 안겨있다는 건 혹시 자폐증이 호전되기 시작한 걸까?“도련님께서 잠드셨어요? 제가 안을까요?”도우미가 앞으로 다가가 묻자 강민아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석현이가 정신은 차렸는데 몸이 아직 잠에서 덜 깬 것뿐이에요.”그녀는 반석현의 등을 살며시 토닥였다.“저한테 기대게 놔두세요.”정이는 육성민에게 안긴 채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하품하며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강민아는 반석현을 소파에 내려놓고 물티슈 몇 장을 뽑아 아이의 얼굴과 손을 닦아주었다.허리를 굽히자 그녀의 폭포수 같은 머리카락이 드리우고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그녀의 손끝과 손바닥은 무척 따뜻했다.예쁜 반석현의 눈매 속 흑진주 같은 검은 눈동자가 눈의 4분의 3을 차지했고 흰색은 얼마 되지 않았다.아이는 강민아를 빤히 바라보며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강민아의 머리카락을 만지려 했다.“선생님 오셨어요.”도우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반석현은 꿈에서 깨어난 듯 휙 손을 거두었다.강민아가 고개를 돌리자 반용화가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가오는 게 보였다.그는 베이지색 캐주얼 정장을 입었는데 반듯한 옷차림에 콧등에 무테안경을 걸고 안경 렌즈가 서늘한 빛을 번뜩이고 있었다.강민아는 반용화에게 흰색이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마치
반용화의 시선은 이미 육성민의 얼굴에서 멀어진 뒤였다.“그러세요.”그는 덤덤하고 여유로운 눈빛으로 강민아를 바라보았다.“석현이 구해줘서 고마워.”강민아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석현이가 절 구해줬어요.”반석현은 강민아의 손을 잡고 자기 가슴을 두드리더니 워치를 가리켰다.강민아는 반석현의 뜻을 금방 알아차렸다.자신이 있는 한 강민아를 지켜주겠다는 말이었다.강민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칭찬했다.“오늘 석현이 아주 용감했어.”“석현아, 뽀뽀해도 돼?”반석현을 안은 정이는 그가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자 볼에 쪽 입을 맞췄다.강민아도 몸을 숙여 반석현의 머리에 부드럽게 입맞춤했다.반석현의 볼이 불그스레 물들고 검은 눈동자엔 무수히 많은 별이 담긴 듯 반짝였다.조금 전 캠프로 돌아갈 때 강민아는 정이에게 반석현과 버섯을 채취하러 갔을 때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정이는 그 말을 듣고 당장이라도 민이를 찾아가 따질 기세였지만, 민이가 비탈 아래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말에 학교로 돌아가 자기 주먹을 보여주며 차분하게 얘기해 보기로 했다.육성민은 강민아와 반석현을 바라보던 반용화가 차가운 렌즈 속 깊은 눈동자에 따뜻한 온기를 머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연구원님, 혹시 아드님에게 엄마를 찾아줄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육성민이 입을 열자 부엌에서 음식을 나르던 도우미가 대신 답했다.“도련님은 강민아 씨를 무척 따르는데 강민아 씨가 도련님 엄마가 되어주면 좋겠네요.”반용화의 집에서 일하는 도우미들도 강민아가 한때 반용화의 조카며느리였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들은 반씨 가문 사람들과 거의 접촉하지 않았다.이들은 강민아가 반용화의 서재에 들어갈 수 있고, 반석현이 강민아와의 친밀한 접촉도 거부하지 않는 것을 보며 강민아가 그들 부자에게 남다른 존재라는 걸 알았다.그런데 도우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반석현이 크게 반응했다.그를 안고 있던 정이는 아이가 불편한 듯 꿈틀거리자 얼른 손을 놓았다.반석현은 뒤로 두발짝 물러나 붉게 물든 눈으로 강민아를
순진한 정이의 목소리에 반하준 뒤에 있던 선생님들은 흥미로운 표정이었다.반하준은 당황하며 서둘러 해명했다.“아니야...”그는 고개를 들어 강민아를 바라보면서 속으로 짜증이 솟구쳤다.“아빠는 강나현이랑 잔 적 없어! 절대 그런 적이 없다고!”마치 강민아에게 하는 말인 듯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그런데 반하준의 해명은 정이의 논리를 이길 수 없었다.“하지만 이모가 아빠의 친구인 것처럼 현이 씨도 엄마의 친구인데요?”“달라!”반하준이 부정하자 정이는 볼을 부풀리며 여전히 반박하려는 반하준의 눈빛을 똑바로 마주하더니 오히려 그를 가르치기 시작했다.“아저씨, 자기한테는 관대하고 남한테는 엄격하면 안 되죠. 그건 내로남불이에요!”말문이 막힌 반하준은 어른의 사생활과 관련된 주제에 대해 다섯 살짜리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서 강민아에게 물었다.“대체 정이한테 무슨 말을 했길래 강나현과 내 사이를 이렇게 생각하는 거야?”강민아는 콧방귀를 뀌며 설명하고 싶지도, 그와 말을 섞고 싶지도 않았다.“아저씨는 엄마를 오해하고 있어요.”딸이 입을 열자 반하준는 한결 마음이 풀려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아빠가 했던 행동 때문에 네가 오해를 한 것 같으니까 지금 확실하게 말할게. 아빠와 이모는 그저 친구 사이야. 우리는 절대 네 엄마와 이 자식처럼...”윤세현은 몸을 돌려 강민아를 끌어안고 자기 머리를 강민아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그녀는 반하준을 향해 도발하듯 말했다.“엥? 친구랑 안은 적 없어요?”“...”반하준의 목소리가 뚝 멈추며 정이가 대신 대답했다 “내가 이모랑 아저씨 안고 있는 거 봤는데?”옆에 있던 선생님들은 구석에 숨어서 구경하기 바빴다.윤세현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웃었다.“친구 사이에 서로 안는 건 당연하지. 가까운 사이면 뽀뽀도 하고.”말하며 그녀가 강민아의 얼굴에 쪽 입을 맞추자 반하준은 순식간에 속에서 피가 끓으며 입안에는 비릿한 피 맛이 가득 느껴졌다.주먹을 불끈 쥔 그의 손등
반하준은 자신의 역할을 부각하고 딸에게 아빠의 능력을 알려주기 위해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방송국 팀을 불러줄 수도 있고 춤추고 싶으면 아빠가 국내외 최고의 댄서들에게 연락할 수도 있어. 정아, 뭐가 됐든 넌 내 딸이니까 최대한 나한테 의지했으면 좋겠어.”정이는 다소 당황한 표정이었다. 아이의 기억 속 반하준은 지금처럼 관심을 보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애정을 보이니 불편하기만 했다.“정아, 네가 나한테 의지했으면 좋겠어. 전에는 아빠가 미안했어. 넌 이제 겨우 다섯살이니까 지금부터라도 충분히 보상해 줄 수 있어.”정이는 반하준의 말이 어디까지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었고, 그 뒤에 숨은 반하준의 의도도 분석할 수 없었다.그저 자신의 직감과 감정에만 근거해서 남자에게 대꾸했다.“아저씨, 엄마랑 날 방해만 하지 마세요.”반하준은 즉시 부인했다 “내가 왜 방해해...”“하지만 아저씨는 현이 씨를 좋아하지 않고 엄마와 현이 씨가 함께 있는 걸 반대하잖아요.”반하준은 칼로 가슴을 후벼파는 듯한 통증과 입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그는 불쑥 말을 뱉을 뻔했다.‘당연히 반대하지!’강민아 곁에 다른 남자들이 나타나고 윤세현이 강민아의 진짜 사랑이라는 데 반대하지 않을 수가 있나.‘진짜 사랑’이라는 말이 씨앗처럼 반하준의 마음에 자리 잡아 싹을 틔우고 심장을 관통하는 가시로 자랐다.반하준은 위태롭게 요동치는 심장을 느꼈다.자기 핏줄인 딸이 강민아와 윤세현의 만남을 응원하고 있었다.젠장!반하준은 심각한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네 엄마는 이미 남자 친구가 있는데 네가 말하는 현이 씨가 같은 집에 살면서 엄마랑 자는 건 바람피우는 거야!”강민아의 감정사를 딸에게 너무 자세하게 얘기하고 싶지는 않아 그는 씁쓸하게 말했다.“아빠는 엄마가 널 잘못 가르칠까 봐 걱정하는 거야.”강민아와 윤세현은 서로를 바라봤고, 윤세현은 입술을 달싹이며 가슴이 들썩거릴 정도로 새어 나오는 웃음을 힘겹게 참았다.강민아는 윤세현을 향해 어깨를 으쓱거렸다
강민아는 반하준을 차갑게 바라봤다.이미 조금 전 강당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엘리베이터가 오작동하고 반하준이 우연히 이곳에 나타난 것으로 보아 그의 의도는 이미 뻔했다.강민아는 정이의 손을 잡은 채 식은땀이 삐질 났다. 정말 미친놈이다. 말로는 제 딸이라고 하면서 정이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었다.하지만 구체적인 증거 없이는 본인이 엘리베이터 오작동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거다.강민아는 가슴 속에서 터져 나오려는 분노를 참았다.“반진경이 정이를 노리는 거 알고 있었어?”“요즘 어머니랑 가깝게 지내고 있어...”다시 말해 반진경은 연진숙의 지시를 받고 학교에서 오만방자하게 날뛴 것이다.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문화부 선생님 몇 명이 나타났다.그들은 반하준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반 대표님.”정이도 그들을 안다. 별님반에서 축제에 참여할 때 그들이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었다.“안녕하세요. 저는 햇님반 강윤정이라고 합니다. 축제에서 단독으로 공연하고 싶은데 그래도 되나요?”정이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진지한 얼굴로 여러 선생님을 바라보았다.그들은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반하준을 돌아보며 이사장인 그가 동의하면 그들도 그의 뜻에 따를 생각이었다.하지만 이런 암묵적인 규칙을 정이 앞에서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강민아가 반하준에게 물었다.“여기서 내가 애원하길 기다리는 거야?”반하준은 강민아가 부탁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에 깊은 동공에 웃음기가 번뜩였다.“나한테 부탁하면 정이가 축제에 참여하는 걸 쉽게 해결할 수 있지.”정이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축제에 참여하고 싶지만 무슨 공연을 할지 생각은 못 했어요.”아이는 진지하게 선생님들을 향해 말했다.“연습하고 나서 선생님들께 보여드릴게요. 제 공연이 마음에 드시면 제가 무대에 올라가 친구들 앞에서 공연하는 걸 응원해 주세요.”반하준은 정이가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에 이렇게 물었다.“정아, 아빠 도움은 필요 없어? 네가 아빠 딸이
반하준은 강민아가 고개를 돌린 채 윤세현을 향해 흐뭇한 미소를 짓는 모습에 멈칫했다.강민아가 이렇게 웃는 건 처음 본다. 심은호에게도 이렇게 웃어준 적이 없는데, 마치 윤세현이 하는 말은 다 들어준다는 표정이었다.날카로운 단검이 그의 심장을 연달아 찌르는 것 같아 반하준의 호흡이 거칠어졌다.소꿉친구가 이토록 위협적인 존재였던가.윤세현과 강민아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온 사이라는 건 알지만 상대를 안중에도 둔 적이 없었다.반씨 가문의 후계자인 그가 외딴 마을에서 상경한 사람에게 눈길을 줄 리가 없으니까.강민아와 윤세현이 친한 친구 사이라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반하준은 윤세현을 경멸하고 있었다.그런데 강민아가 윤세현이 진짜 사랑이라는 말에 동의할 줄이야.윤세현이 진짜 사랑이고 심은호가 남자 친구이면 그는 뭐란 말인가.7년 동안 둘의 결혼은 그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 걸까?무거운 쇠망치가 반하준을 내리치는 듯 뻥 뚫린 가슴에 차갑고 쌀쌀한 바람이 계속 쏟아져 들어와 오장육부를 후벼팠다.“강민아!”그의 어두운 눈동자는 짙은 먹물로 뒤덮인 것처럼 보였고 미간은 잔뜩 주름이 잡혀 있었다.“이 자식이 진짜 사랑이면 심은호는 뭐야?”“당신 심은호 좋아해?”강민아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왜 그렇게 관심이 많아?”자신을 올곧게 쳐다보는 남자의 눈가에 씁쓸한 기색이 담긴 게 보였다.강민아는 풍성한 속눈썹을 깜박이면서 전남편을 마주하고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들어? 우린 모르는 사이야. 이혼할 땐 나보고 절대 돌아오지 말라더니 왜 이젠 당신이 계속 내 앞에 나타나는 건데?”강민아의 말에 남자의 말투도 차가워졌다.“네 착각이야. 설마 내가 일부러 너랑 마주치려고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는 거야?”반하준은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며 비웃더니 어두운 눈동자에 경멸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마음에 찔려서 강민아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사실 일부러 강민아와 마주치려고 이곳에 나타난 거다.강민아가 정이를
잡아보니 윤세현의 깡마른 팔에 반하준의 눈에선 경멸의 빛이 번뜩였다.이렇게 깡마른 놈이 감히 그의 여자를 건드리다니.“반하준, 뭐 하는 거야!”강민아는 소리를 지르며 윤세현을 꽉 잡고 있는 반하준의 손을 떼어내려 했다.“손 풀어!”반하준은 윤세현을 뒤로 보내며 감싸는 강민아를 보고 왠지 모를 분노가 밀려왔다. 그는 역겨운 듯 윤세현의 팔을 뿌리치더니 강민아에게 날카롭게 쏘아붙였다.“왜 계속 이렇게 약해빠진 놈이랑 있는 거야? 이 자식도 심은호랑 똑같이 여우짓 하면서 연약한 척 너한테 지켜달라고 하잖아.”반하준이 씩씩거려도 강민아는 퉁명스럽게 대꾸할 뿐이었다.“난 이런 게 좋아.”남자는 그녀를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강민아는 그와 같은 남자를 좋아하는 게 아니었나.반하준이 봤을 때 심은호와 윤세현은 지극히 닮았다. 둘 다 연약하고 그가 조금만 건드리면 손쉽게 제압할 것 같았다.하지만 그들이 계속해서 강민아의 뒤에 숨기 때문에 강민아는 점점 더 그를 미워하고 있었다.반하준의 턱이 굳게 다물리며 피부밑으로 튀어나온 핏줄이 꿈틀거렸다.그때 정이가 앳된 목소리로 말했다.“아까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심하게 흔들렸는데 현이 씨가 저와 엄마를 지켜줬어요. 아저씨, 현이 씨한테 그렇게 못되게 굴지 마세요!”정이가 단호하게 말하자 반하준이 물었다.“이 사람이 좋아?”정이는 반하준이 윤세현에 관해 물어본다는 것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난 현이 씨가 제일 좋아요!”“그럼 이 사람이 좋아, 심은호가 좋아?”반하준은 정이에게서 답을 찾고 싶었다.“음...”정이가 풍성한 속눈썹을 깜빡이며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난 현이 씨가 더 좋아요!”아이가 무슨 처세술을 알겠나. 그저 본인 생각대로 솔직하게 답할 뿐이었다.정이의 말을 들은 윤세현은 미소를 지으며 반하준 때문에 언짢았던 기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왜?”반하준이 묻자 정이가 동그란 손가락을 접어가며 세었다.“현이 씨는 요리도 잘하고 좋은 향기도 나요. 나랑
“네가 강씨 가문으로 돌아가면서 우경아는 널 양딸로 데려가 네 보호자가 될 절차를 밟을 수 없게 되었어. 그러다 네가 결혼했다는 걸 알고... 너한테 완전히 흥미를 잃었지.”강민아는 먼 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우경아의 발목을 잡은 세력은 뭔데?”윤세현은 고개를 저었다.“그건 우경아도 아직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윤세현의 맑은 눈동자가 진지하게 반짝였다.“내 생각엔 그 힘이 널 지켜주는 것 같아.”강민아도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물었다.“우경아에게 내 과거에 대해 말한 적 있어?”윤세현은 멍하니 고개를 흔들었다.“몇 번이나 날 떠보긴 했어도 난 네 일에 대해 조금도 털어놓지 않았어. 미린국에 오면서 너와 완전히 갈라졌다고 했거든.”강민아는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내가 볼 때 우경아는 오래전부터 날 지켜봤던 것 같아. 나에 대해 자세히 조사하고 너조차 모르는 내 일을 다 알고 있었어.”강민아는 더 생각하기 싫어 다시 가벼운 어투로 윤세현에게 물었다.“우경아가 나한테 무슨 짓할까 봐 학교로 온 거야?”“서경에 오자마자 너 때문에 양자 테크가 억대 손해를 봤다는 소식을 들었어. 우경아가 직접 널 만나러 학교에 온다는 얘기도... 우경아는 무자비한 사람이라 건드리기만 하면 제자리에서 상도 엎어. 너한테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강민아의 두 눈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담겨 있었다 “난 아직 그 여자한테 거대한 이용 가치가 있어서 당분간은 나한테 아무 짓도 못 해.”오히려 윤세현을 달래며 말을 이어갔다.“걱정하지 마, 이미 우경아와 거래를 달성했거든.”윤세현은 어리둥절했다.“어떤 거래?”“내가 양자 테크의 통솔권을 가지고 우경아와 협업하는 동시에 1분기 투자금 4천억을 요구했어. 거기에 향후 양자 테크의 수익은 100% 나한테 돌아오기로 했지.”윤세현은 찬 공기를 들이켜며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동의했어?”“응.”“어떻게?”강민아와 우경아가 협상한 조건은 윤세현에게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강민아가
“현이 씨!”윤세현을 보자마자 정이의 눈이 환하게 빛나며 폴짝폴짝 윤세현을 향해 달려갔다.윤세현은 강민아에 대한 걱정에 코끝에서 열기 섞인 숨결이 흘러나왔다.“현이 씨, 너무 보고 싶었어요!”정이의 앳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윤세현은 쭈그리고 앉더니 정이의 의상을 보고 자기 외투를 벗어 아이에게 입혀주었다.“정이 너무 예쁘다.”정이의 머리가 조금 헝클어진 것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빗겨주었다.강민아는 윤세현을 향해 걸어갔다 “왔어?”지난주 윤세현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집을 나서면서 떠나기 전 곧 돌아오겠다는 말만 남겼다.강민아는 윤세현에게 뭘 하러 가는 건지 묻지 않고 정이와 함께 윤세현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그런데 뜻밖에도 윤세현이 서경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학교로 달려올 줄이야.우경아는 윤세현과 일정한 거리로 좁혀질 때쯤 말을 꺼냈다.“이번에 고생했어.”멈칫하던 윤세현의 조각상처럼 잘생긴 얼굴이 엄숙하게 바뀌었다.강민아는 우경아 앞에서 유독 경직된 윤세현을 알아차렸다.윤세현은 우경아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면서 잠긴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엄마, 민아는...”우경아는 붉은 입술을 말아 올렸고, 찬 바람에 풍성하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더더욱 아름다움을 뽐냈다.“오랜만에 보는 건데 친구랑 좋은 시간 보내.”우경아는 강민아를 쳐다보지 않고 윤세현에게만 명령했다.“오늘 밤에 호텔로 와서 보고하고.”윤세현은 공손하게 우경아를 향해 답했다.“네.”우경아가 자리를 떠나서야 굳어있던 윤세현은 긴장이 풀리며 정이의 손을 잡고 강민아를 향해 걸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우 대표가 너 힘들게 했어?”강민아는 고개를 저었다.“미린국에 간 첫해에 한 거물이 널 눈여겨보고 거둬줘서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했잖아. 그 거물이 우경아였어?”5년 전 윤세현은 강민아가 준 거금을 들고 미린국에 가면서 둘은 멀리 떨어지게 되었고, 윤세현은 나쁜 소식은 전부 감추고 좋은 소식만 전해주었다.그때 강민아는 두 아이를 낳은 터라 윤세현과
우경아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식었다. 강민아에게 40억을 주고 쫓아냈는데 이제 그녀를 다시 데려오려니 상대가 4천억을 원하고 있었다.그리고 그녀는 강민아가 4천억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원한다는 걸 알고 있다.우경아의 목구멍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랫동안 사업을 하면서 피를 말리는 협력자나 경쟁자를 만나본 적 없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녀는 여전히 강민아 앞에서 여유로웠다. “강민아 씨, 이 바닥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당신에게 수익의 70%를 줄 수는 있어요. 투자는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프로젝트 전체를 나한테 주지 않으면 전 그쪽이랑 일 안 해요.”“말도 안 되는 소리!”우경아가 낮게 윽박질렀다. 한 번도 그녀에게서 먹잇감을 통째로 가져가는 사람은 없었다.강민아는 여전히 사람 좋은 표정으로 부드럽게 한숨을 쉬었다.“전 우 대표님이 무서워서 시작부터 많은 걸 바라는 거예요. 이미 한번 절 아웃시켜서 아직 마음이 불안하거든요. 저한테 큰 조각을 넘기기 싫고 수익의 100%를 넘기지 않는다면 전 그쪽이랑 일 안 해요. 세상은 저 없이 잘만 돌아가고 우 대표님은 저 말고 다른 사람 알아봐도 되니까요.”강민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경아를 지나쳐갔다.우경아는 자신이 소유한 양자 테크나 옴 테크에서 데려온 전문가들이 강민아가 건넨 대형 모델을 사흘 밤낮으로 연구해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것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강민아!”그녀가 소리쳐 부르자 강민아는 뒤에서 들려오는 우경아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강성진과 도민영 사이에서 당신 같은 딸이 나올 줄은 몰랐네요.”강민아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우 대표님, 칭찬 감사합니다.” 우경아의 목구멍에서 차가운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강민아를 만나러 직접 승덕까지 찾아오고 반씨 가문 사람과 무례한 교사까지 혼내줬으니 강민아가 은혜를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면 그녀와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강민아가 조금도 물러서지 않을 줄이야.우경아는 우유부단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강민아가 확신에 찬 어투로 말했다.“너무 일찍 저에게 등 돌린 걸 후회하고 계시네요.”“강민아 씨, 우리한테 넘겨준 데이터를 조작한 거죠?”우경아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고 눈빛에는 극도의 압박감이 느껴졌다.그녀에게서 음산한 냉기가 퍼져나갔지만 옆에 앉아 있던 강민아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제가 왜 조작해요? 우 대표님 밑에 일하는 직원의 능력이 부족한 거죠. 섣불리 사람을 배신하니까 벌써 200억 정도 손해를 보셨죠?”팔짱을 낀 우경아의 정성껏 관리한 손톱이 연분홍빛을 띠고 있었다.강민아의 말에 그녀는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그녀는 진작 자신이 없으면 우영 그룹의 양자 테크에서 억대 손해를 볼 것을 예상하였던 걸까?심지어 수백억을 손해 볼 때 우경아가 자신을 찾아올 거란 것도 예상했다.그 생각에 우경아는 살짝 놀랐다.조금 전 자신이 나타났을 때 강민아가 전혀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던 걸 떠올리며 우경아는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여자를 다시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민아 씨는 함께 일하기 좋은 사람인 것 같네요. 내가 그쪽을 오해했어요. 7년 동안 집안에만 갇혀 지낸 여자가 아무리 성적이 뛰어나도 별 능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공부를 잘하는 건 아무 쓸데가 없어요. 날고 기는 천재도 이론만 빠삭하고 실전에는 멍청이니까. 확실히 그쪽은 날 놀라게 하네요.”강민아를 바라보는 우경아의 두 눈엔 그녀를 손에 쥐고 싶은 충동이 타올랐다.“강민아 씨, 우리 계속 같이 일합시다. 전에 일은 내가 미안했어요. 나는 지금 진심으로 협업을 제안하는 겁니다. 협업 말고도 여러 가지 도와줄 수 있어요. 예를 들면...”앞을 돌아보니 그녀에게 맞아서 얼굴이 부어오른 반진경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무대 위에서 발레하는 반연주에게 시선이 향했다.그녀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나랑 같이 일하면 그쪽 딸 센터로 만들어 줄게요.”“그건 됐어요.”강민아가 단호하게 거절했다.“어른들 싸움에 아이들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