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강민아의 말을 끝까지 들을 인내심이 없었다. 강민아도 비탈길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생각하니 반하준은 마음이 심란해졌다.그는 퀭한 눈빛으로 강나현을 한 번 보고는 강민아에게 물었다.“나현이가 너와 석현이를 밀었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맞아!”강민아가 대답했다.“너도 석현이도 다치지 않았잖아?”반하준의 목소리는 잔잔했다.다치지 않았으니 강나현의 잘못을 따질 것이 뭐가 있겠냐는 듯했다.다치지 않았으니 이 일은 없던 일로 하면 된다는 말인 듯했다.강민아는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때 햇빛이 참 좋았는데 반하준은 그녀와 가까운 거리에 있음에도 두 사람 사이에는 마치 절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듯 멀게 느껴졌다.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녀와 강나현만 비참한 꼴이 되었다.다행히 육성민은 그녀에게 방어술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당시 반석현을 안고 비탈길을 굴러 내려갈 때 그녀는 가능한 한 자신과 반석현을 잘 보호할 수 있었다.강나현은 오히려 중상을 입은 사람처럼 보였다.반하준은 보호자의 자세로 강나현의 앞에 서 있었다. 설령 강나현이 강민아와 반석현을 비탈길에서 밀어낸 장본인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강나현을 감싸고 있었다.강민아는 갈수록 우습게 느껴졌다....“강민아! 네가 학업을 마칠 때까지 반씨 가문이 전력으로 지원할 테니 넌 열심히 공부해야 해!”일찍이 총장은 기뻐서 달려와 그녀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그녀는 의심스럽게 물었다.“반씨 가문이라니요? 반 수석 연구원께서 저를 지원한다는 건가요?”“널 후원한 사람은 반 수석 연구원님이 아니라 반씨 가문의 후계자인 반하준이야. 반 수석 연구원님의 조카이기도 하지.”총장은 그녀에게 계속 말을 전했다.“반하준은 반 수석 연구원 님으로부터 너의 일을 듣고 학교 측에 너를 위해 4년 동안 필요한 비용을 냈어. 그리고 넌 매달 생활비로 2백만 원씩 받을 거야. 반하준은 너에게 요구를 딱 한기만 했는데 그건 너의 각 과목 성적은 모두 1등이어야 한다는 거야.”총
후에 양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반하준은 그녀와 함께 묘원에 갔다.그는 강민아의 손을 자신의 패딩 주머니에 넣었고, 남자의 두꺼운 손이 그녀의 손을 감쌌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서로의 어깨에 눈송이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때 그녀는 천진난만하게 오늘 팔짱을 끼고 눈을 맞으면 평생 함께하게 될 운명이라고 생각했다.반하준은 일찍이 그녀를 따뜻하게 녹였지만, 결혼 후에야 그녀는 냉혈과 냉박함이 이 남자의 바탕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때 육성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나현이 너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그는 강민아에게 그 자리에서 까밝히라고 했다.“강나현이 나와 석현이를 밀었어요!”“난 그런 적 없어!”강나현은 즉각 부인했다.“웁!”반석현은 소리를 지르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화가 나서 강나현을 가리켰다.그는 모두에게 자신의 손에 있는 노루궁뎅이버섯을 보여주며 또 민이를 가리켰다.민이는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왜 그래? 나랑 상관없어!”반석현은 뺨을 불룩하게 하고 자신의 스마트워치를 눌렀다.그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그의 스마트워치는 줄곧 녹음 녹화 기능을 켜고 있었다.반석현의 스마트워치에서 민이의 소리가 흘러나왔다.“이 노루궁뎅이버섯은 정이가 가장 즐겨 먹어. 네가 좀 더 따주면 정이가 매우 기뻐할 거야.”“석현아, 거기 너무 위험해, 빨리 올라와.”강민아의 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두 사람이 함께 비탈길을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렸다.그리고 이어서 그의 스마트워치에서 또 강나현의 비명이 울렸다.반석현 스마트워치의 녹음을 들은 강나현과 민이의 얼굴색은 빠르게 변했다.수많은 시선이 두 사람에게 떨어졌다.민이는 귀를 긁으며 한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그때 강나현이 소리를 질렀다.“다들 왜 나를 이렇게 보고 있어요? 이 몇 마디 녹음으로 내가 두 사람을 밀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요?”강나현은 오히려 좋은 말로 반석현에 충고했다.“난 너와 민아 언니가 위험한 것을 보고 너희들을 구해주고 싶었어. 하지만 민아 언
강나현은 비명을 지르며 발로 육성민을 차고 싶었다.그러나 그녀의 한쪽 발은 이미 삐어 있었기에 발을 움직이면 가슴을 파고드는 고통을 느꼈다.“살려줘! 성폭행하려고 해! 아악! 놔줘, 하준 오빠! 살려줘!”“그 손 놔요!”반하준이 호통을 쳤다.육성민은 강나현을 들고 비탈길로 걸어가 고개를 돌리고 반하준을 바라보며 한마디만 대답했다.“알았어요.”말하면서 육성민이 손을 떼자 강나현은 다시 비탈길로 굴러떨어졌다.“아악!”강나현은 마대처럼 무겁게 쓰러졌는데 입에 흙이 한 움큼 들어왔다.그녀는 비탈길에 엎드려 너무 멀리 굴러가지 않았지만 일어설 힘이 없었다.이어서 육성민은 민이를 향해 걸어가 민이에게 물었다.“내가 너를 던져줄까, 아니면 너 스스로 내려갈래?”민이는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반하준 뒤에 숨어 울부짖었다.“싫어요. 으앙!”반하준은 자기 아들을 감싼 채 육성민을 향해 호통쳤다.“내 아들까지 당신이 가르칠 필요 없어요!”“그럼 내가 가르쳐 줄게, 그러면 되지?”반용화의 목소리가 갑자기 울리자 반하준은 몸을 흠칫했다.그는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반용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사복 경비원 한 명이 태블릿 피시를 들고 반하준 앞으로 다가왔다.반용화의 신처럼 광채 나는 얼굴이 태블릿 피시에 나타나자 반하준은 숨을 들이마셨다.그는 사복 경비원이 이렇게 빨리 반용화와 연락할 줄은 몰랐다.태블릿 피시를 사이에 두고 반용화가 그를 노려볼 때 반하준은 보이지 않는 위압이 그를 덮치는 것을 느꼈다.호랑이 같았던 반하준은 반용화 앞에서 발톱을 거두었다.“작은아버지, 석현이는 무사하니 안심하세요.”“나는 너를 안심할 수 없어.”반용화는 다정하게 말을 했지만 반하준은 문득 한기를 느꼈다.스크린을 사이에 두고 그는 비꼬며 말했다.“내 양자 곁의 가장 큰 위기가 네 아들과 네 좋은 형제에게서 비롯될 줄은 몰랐네.”반하준의 얼굴에 찬 서리가 내렸다.“반현민.”반용화의 목소리가 마치 종말을 심판하듯 들려왔다.반하준은
아팠다. 그의 왼손이 감각이 없을 정도로 아팠다.반하준은 회초리를 잡은 손을 안쪽으로 조였다. 그는 민이를 때렸지만 자신의 손바닥도 아팠다.그러나 반용화 앞에서는 상속자로서의 위엄을 보여줘야 한다.“너는 석현이를 친형제로 생각해야 해, 알겠어? 더는 네가 석현이와 화목하게 지낼 수 없다는 말이 내 귀에 들려오게 하지 마!”반하준의 말에 대한 대답은 민이의 비참한 울음소리뿐이었다.반하준은 그가 민이를 때렸으니 반용화가 화를 풀었을 것으로 생각해 고개를 돌려 태블릿 피시를 보았지만 그때 또 반용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건 아빠로서의 잘못이니 하준이 네 손바닥을 30대 때릴 것이다.”반하준은 멍해졌다.“절 때려요?”반하준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손에 든 회초리를 반용화의 부하에게 건네주고 공손하게 반용화에게 말했다.“작은아버지, 저를 벌해 주세요.”반용화의 목소리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잠깐만, 네 아버지가 곧 올 것이다.”반하준은 할 말을 잃었다.이번에는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조차도 어리둥절해졌다.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은 숲에서 멀지 않은 곳에 누군가가 거울을 이고 온 것처럼 반짝이는 반사점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그 반사점이 다가오자 선생님과 의료진들은 그제야 그 사람이 양복을 입고 가죽 신발을 신은 대머리라는 것을 보았다.빠르게 달려온 중년 대머리 남자는 반하준의 아버지인 반용훈이었다.반용훈의 뒤에는 그의 비서와 장기명, 및 몇몇 학부모들이 함께였다.장기명은 육성민, 반하준 그들이 계속 돌아오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기타 몇몇 학부모들과 함께 찾아왔다.장기명은 도중에 숲속에서 빙빙 돌면서 길을 잃은 듯한 반용훈을 발견했을 때 틀림없이 큰일이 발생하리라는 것을 느꼈다.장기명은 호기심이 생겨 다른 학부모들을 데리고 와서 보았다.반용훈은 손수건을 꺼내 자신의 대머리를 닦고는 태블릿 피시 앞에 다가섰다. 형이지만 반용화에게 유난히 공손했다.“용화야, 오는 길에 이미 석현이가 사고가 난 일
강나현은 어리둥절해졌다.“... 우리 아버지가 왜 여기에 와요?”반용화의 부하가 대답했다.“우리가 강성진에게 구름 목장으로 오라고 통지했어요. 작은 도련님과 도련님 모두 아버지에게 맞았는데 강나현 씨도 당연히 너의 아버지가 교육해야 하지 않겠어요?”그들이 말을 하고 있을 때 강성진이 왔다.강민아는 반용화의 빠른 속도에 놀랐다. 사건이 발생한 지 30분밖에 안 되었는데 그는 반석현이 사고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신속하게 징계지령을 내렸다.강성진은 급히 달려왔다가 마침 반하준이 채찍을 맞는 장면을 보았다.강성진은 회초리에 묻은 선혈을 보고 온몸을 떨었다.그는 불러오는 길에 이미 반용화의 부하에게서 강나현이 반용화의 아들을 산비탈에서 밀었다는 것을 들었다.강성진은 이 일을 듣자마자 바로 간담이 서늘해졌다.반용화의 부하가 걸어오자 강성진은 강나현을 보지 못하고 나지막하게 물었다.“내 딸은 아직 살아있어요?”반용화의 부하는 회초리 하나를 강성진에게 건네주었다.“강나현 아가씨는 강민아 아가씨와 석현 도련님을 산비탈에서 떨어뜨린 주범입니다. 강성진 씨가 직접 강나현 아가씨의 손바닥을 50대 때려주십시오.”아랫사람의 말에 언덕 아래에 엎드려 있던 강나현은 매우 놀라며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반하준의 손바닥은 채찍을 서른 대 맞고 피를 흘렸는데 그녀가 오십 대를 맞는다면 손이 망가지지 않겠는가 말이다.“내 손은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손이에요. 다음 주에 또 레이싱 경주에 참여해야 한다고요. 난 손을 다치면 안 돼요!”반하준은 국제 레이싱 경주의 후원자 중의 한 명으로써 강나현을 도와 시범경기의 정원을 따냈다.강성진은 자연히 그의 이 딸이 배운 것도 없고 재주도 없어 종일 남자들 사이에서 빈둥거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강나현은 이렇게 빈둥거리다가 뜻밖에 자그마한 성적을 따냈다.그녀가 어떤 순위를 차지하든 강나현이 시범경기에서 얼굴을 내밀기만 하면 그녀는 서경시에서 유명해질 수 있다.강성진은 어쩔 수 없이 반용화의 부하를 바
“하준아, 휴대폰 꺼내.”반용화가 지령을 내리자 반하준은 내키지 않았지만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반용화의 부하는 반하준의 곁에 서서 반하준이 서경팸 단톡방을 클릭하는 것을 확인했다.반하준은 기계적으로 휴대전화를 들어 강나현을 향해 휴대폰 렌즈를 겨누었다.그가 준수하고 그윽한 얼굴은 살얼음처럼 차갑게 변했다.강민아의 이런 수법은 강나현의 목줄을 틀어쥔 거나 다름없었다.퍽!“아아아아아!”강나현은 통증을 견디며 얼굴을 가렸다.“찍지 마! 찍으면 안 돼!”그녀의 이렇게 비참한 모습이 서경팸의 채팅방에 전해졌는데, 그녀가 온갖 신경을 쓰며 부잣집 도련님 앞에서 세운 이미지가 완전히 무너졌다.사복 경비가 반용화를 대신해 명령했다.“강나현 씨, 강민아 씨와 석현 도련님께 사과하세요.”강나현은 열 손가락으로 땅의 잡초를 잡고 있는데 손톱 틈새는 모두 먼지투성이였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이를 악물고 얼굴이 빨갛게 된 채 목에 핏줄을 세웠다.그녀는 사과하고 싶지 않았다. 강민아의 계략이 실현되게 놔둘 수 없었다.“아!”회초리가 다시 떨어졌지만 그녀가 입을 열지 않자 다른 경비원은 더는 그녀의 엉덩이에 떨어진 회초리 횟수를 세지 않았다.“25、25、25...”강성진이 때릴 때마다 숫자를 세는 경비원은 25를 외쳤다.강성진은 자신도 피곤해지자 강나현을 향해 소리쳤다.“빨리 사과해!”“악!”강나현은 울부짖었다.“언니! 미안해! 잘못했어! 내가 잠시 머리가 어떻게 됐었나 봐. 그래서 언니한테 돌을 던졌어! 단지 하준 오빠를 위해 화풀이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어. 나는 심하게 던진 것도 아니잖아. 언니! 제발 용서해 줘!”강민아는 목소리가 차분했다.“이 사과는 듣기에 좀 이상한데.”경비원이 말했다.“강나현 씨, 다시 하세요.”다른 경비원은 이미 30까지 세었지만 다시 25라는 숫자로 돌아왔다.반하준도 따라서 다시 한번 강나현이 맞는 동영상을 녹화해야 했다.강나현은 화가 나서 소리 질렀다.“나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강성
안 보내기만 하면 그는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다.반하준은 차가운 숨을 들이쉬고 쌀쌀하게 대답했다.“나현이가 이미 사과했잖아. 어쨌거나 친동생인데 더는 괴롭히지 마.”반용훈은 옆에 서서 반하준의 휴대폰을 직접 빼앗았다.“영상을 보내라니, 왜 이렇게 꾸물거려!”반용훈은 잘 알고 있었다. 계속 이렇게 하면 반하준은 틀림없이 또 반용화에게 한바탕 얻어맞을 것이다.만약 반하준의 두 손이 모두 망가진다면, 내일 그는 이사회 사람들에게 설명할 방도가 없다.반용화가 입을 열었으니 반용훈은 힘을 내야 한다.반용훈은 아예 반하준의 휴대전화에 있는 발송버튼을 직접 눌렀다.“아저씨! 제발 발송하지 말아요!”강나현은 힘없이 소리쳤다.그때 강민아가 입을 열었다.“반 대표, 강나현이 이런 눈빛으로 보고 있는데 잘못을 아는 눈빛이 확실해? 반 대표 안경 맞춰야겠어?”반하준은 강나현의 눈빛에 숨어있는 한과 잔인함을 보았다. 마치 강민아를 갈기갈기 찢어 죽여도 그녀의 원한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한듯했다.“예전에 나는 당신 말을 듣고 강나현과 따지지 않았어. 어쨌거나 나는 반씨 가문의 사모님이었으니 말이야. 하지만 당신이 나가서 똥을 먹고 있으니 나는 구역질이 났어. 지금 네가 좋아하는 그 똥 덩어리가 또 나에게 묻으려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참을 수 있겠어? 모든 사람이 당신처럼 뇌가 부족한 것은 아니야.”반하준은 미간을 찌푸렸다.“나는 강나현과 아무 사이도...”“마음도 나한테 없고 돈도 나한테 없는 남자를 내가 곁에 둬서 뭐해?”그녀의 한마디에 반하준은 말문이 막혔다.강민아는 강나현을 향해 말을 이었다.“너 나에게 할 수 있는 수작이 얼마나 남았어? 어디 마음껏 해 봐. 하나님이 너를 멸망시키려 할 때 반드시 먼저 미치게 할 것이니!”강나현은 땅에 엎드려 벌레처럼 머리를 높이 들고 강민아를 주시하며 눈을 치켜뜨고 찢어버릴 듯 노려보았다.그녀가 징계를 받는 동영상은 서경팸 단톡방에 나타나자 부잣집 자제들은 동영상을 보고 침묵했다.[젠장! 나현이가 정말 비
휴대폰을 가져간 반하준은 서경팸 단톡방 채팅 기록을 보지 못했다.강나현이 처참하게 맞는 영상을 보고 그들이 뭐라 하든 반하준에겐 중요하지 않았으니까.휴대폰을 쥐고 있던 반하준의 오른손 손가락이 움츠러들었다. 죽도로 30대를 맞은 왼손의 살갗이 여전히 고통으로 욱신거렸다.손바닥에는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고 구급대원들이 바로 옆에 있었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서 상처를 치료해 주지 않았다.그는 싸늘한 어투로 강민아에게 물었다.“이제 만족해?”강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반하준이 조롱했다.“힘 있다고 사람 괴롭히네.”강민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난 힘이라도 있지 당신에겐 뭐가 있는데?”그녀의 눈이 휘어지며 하얗고 밝은 얼굴에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앞으로 정신 제대로 차리고 살아요. 반 대표님.”길게 숨을 들이마시자 신선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와 온몸이 편안해졌다.반하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대꾸하려는데 강민아가 감탄 섞인 말을 뱉었다.“이게 바로 사랑받는 느낌인가? 누군가 나서서 날 지켜주고 감싸주는 느낌에 온몸의 피와 살이 자라는 것 같아.”다시 한번 반하준을 돌아보는 강민아의 흑백이 분명한 눈동자는 마치 맑은 물로 씻은 듯 투명했다.“그래도 한때는 남편이었는데 당신한테서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단 말이지.”자조적인 웃음을 짓는 강민아의 모습에 반하준은 호흡마저 흐트러졌다.50대의 채찍질이 끝나자 강나현은 움직이지도 못한 채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강성진은 매를 때리느라 헐떡였고 그의 손도 죽도에 다 갈라져 있었다.하지만 반용화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그는 강나현 외에는 감히 누구에게도 욕을 하지 못했다.조금 전 반용화가 강민아를 얼마나 싸고도는지 봤기에, 가는 눈매로 강민아를 바라보는 강성진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민이의 얼굴은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콧물을 닦아줄 사람조차 없었다.민이는 고개를 내밀며 초조하게 물었다.“현이 형, 괜찮아요? 괜찮죠?”반하준은 구급대원에게 지시했다.“
강민아는 육성민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냥 계약 관계일 뿐이야.”그녀 자신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다....이날 밤 강민아는 육성민이 손목을 주물러주며 어혈을 풀어준 덕분인지, 아니면 직접 죽도를 들고 반하준을 거칠게 채찍질해 통쾌하게 분풀이를 한 덕분인지 깊은 잠이 들었다.다시 눈을 떴을 땐 벌써 다음 날 아침이었다.강민아는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휴대폰의 앱을 확인했다.반하준은 밤새 갇혀 있으면서도 그녀에게 애원 한 번 하지 않았다.‘제법 버티네. 아니면 이미 바지에 쌌나?’화려하고 고고한 대표님은 늘 오만하게 굴었다. 샤워할 땐 반드시 물 온도를 42.3도에 맞춰야 했으며 0.2도만 벗어나도 얼굴을 찡그리곤 했다.옷도 매번 한 번만 입고 정장 외투에 주름이라도 생기면 바로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그의 앞에 내놓는 접시엔 소스가 가장자리에 묻어있으면 안 되고, 소스가 많아서 질퍽한 음식 또한 싫어했다.여름에는 실크, 겨울에는 캐시미어 소재의 침구 세트를 사용하며, 두날에 한 번씩 시트와 이불을 바꾸고 계절마다 한 가지 색상으로 통일해야 했다.이렇듯 까다롭고 성가시게 굴던 남자가 방에 갇혀 물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가고 있었다.하루 종일 바닥에 앉은 자세로 버텨야 하는데 이대로 가다간 엉덩이가 썩어 문드러질 것 같았다.생각만 해도 강민아는 다소 기대가 되었다.그녀가 나쁜 건가. 하지만 반하준에겐 더 독하게 굴어야 할 것 같았다....강민아는 딸을 위해 아침밥을 만든 뒤 돌솥을 그대로 식탁 위에 올려두고 갓 끓여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죽 한 그릇을 떠주었다.그러고는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는 사이 다 씻은 정이가 알아서 식탁에 마주 앉았다.아이는 고개를 들어 강민아의 방을 흘깃 쳐다보다가 재빨리 자신의 보온병을 꺼냈다.숟가락을 들고 죽을 보온병에 퍼 담았다.강민아가 옷을 갈아입고 방에서 나오자 정이도 재빨리 보온병 뚜껑을 닫고 가방에 넣었다.하지만 아무리 빠르게 행동해도 강민아의 눈을 피해 갈 순 없었지만 강민아
육성민은 강민아 외에는 누구도 가까이할 수 없는 위험한 맹수 같은 존재다.“진짜 남자 친구 맞아요? 남은 속일 수 있어도 자기 자신은 속이지 말죠?”그런 육성민에게 발끈하던 심은호가 입을 벙긋하며 반박하려 하자 강민아는 손을 뻗어 남자의 소매를 잡아당겼다.강민아의 시선을 마주한 남자의 눈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민아 씨 원하는 대로 해요.”심은호의 목소리가 포근한 깃털처럼 그녀를 감쌌다.남자는 심호흡하며 강민아를 위해 마음속의 분노를 억지로 삭이고 있었다.그녀를 위해 싸우거나 빼앗을 수 있지만 마찬가지로 그녀를 위해 가만히 있는 것도 할 수 있었다.“형님은 치고받는 데 선수니까 민아 씨 잘 부탁해요. 남자 친구인 나는 형님에게 상대가 안 되네요. 그쪽은 가족이니까.”심은호가 일부러 강조하며 말끝을 길게 늘리자 육성민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가느다란 손목을 들어 올리는 심은호의 모습에 강민아가 나지막이 웃었다.그저 작은 멍에 불과했지만 심은호는 소중한 보물처럼 부서지기라도 할 듯 조심스럽게 그녀를 대하고 있었다.비록 아이처럼 조금만 긁혀도 울면서 남이 달래주길 기다리는 나이는 지났지만, 이렇듯 다정한 보살핌을 받을 때면 심장에 자극제를 투여한 듯 뜨거운 피가 솟구쳤다.“가서 씻고 일찍 쉬어요. 잠 못 자겠으면 형님한테 곁에 있어 달라고 하고. 물론 형님은 거실에서 자야 해요. 사실 나도 안방 앞 바닥에서 잘 수 있지만 민아 씨가 날 아낀다는 걸 아니까, 형님은 가죽도 튼튼해도 괜찮을 거예요. 형님 코 고는 소리 때문에 방해될 수도 있으니까 방 문은 꼭 닫아요.”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던 육성민은 당장이라도 실과 바늘을 가져와 심은호의 입을 꿰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강민아는 반용화를 배웅하고 심은호와 작별 인사를 했다.육성민이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었고, 강민아는 현관에서 신발을 갈아 신던 중 정이가 작은 화이트보드에 쓴 글을 발견했다.[내일 아침은 엄마가 끓여준 사랑의 닭죽을 먹고 싶어요!]아이는
심은호의 몸에서 풍기는 향기와 맞닿은 체온에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평온함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강민아는 경직된 그의 몸이 떨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우리 여친 무사하니까 됐어요.”온전한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난 강민아를 보자 허공에 매달렸던 그의 심장이 드디어 제자리를 찾아갔다.심은호는 이내 팔을 풀었다. 최대한 강민아가 갑작스럽고 불편해하지 않도록 포옹한 시간과 힘을 조절했다.하지만 시선이 강민아의 얼굴에 닿자 그는 도저히 눈을 떼지 못했다.심은호가 적절한 타이밍에 몸을 떼어낸 탓에 그의 온기와 특유의 향기가 사라지자 되새기며 아쉬워하는 쪽은 강민아였다.“난 괜찮아요.”심은호가 곧장 물었다.“그 죄인은요? 경찰이 데려갔어요?”소식이 빠른 심은호가 반하준을 욕하는 말에 강민아는 코끝에서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그녀는 뒤를 돌아보며 답했다.“안에 있어요.”심은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안에요? 경찰이 오길 기다리는 거예요?”강민아가 고개를 저었다.“제가 가둬놨어요.”심은호는 멈칫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강민아가 가느다란 검지를 입술 위에 올려놓는데 심은호의 시선은 온통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에 쏠렸다.“부탁할게요. 비밀 지켜줘요.”“우리가 무슨 사이인데 나보고 비밀 지켜달라는 거죠?”남자가 예쁜 눈을 가늘게 뜨며 의미심장하게 말끝을 길게 늘어뜨렸다.반용화와 육성민이 다 있는 곳에서 강민아는 두 볼이 화끈거렸다.심은호는 그녀를 정말 좋아해서 새 타이틀을 머리에 쓰고 다니며 도처에 자랑하고 싶은 정도였다.그런 심은호에게 잘해줄 수밖에 없었다.“남친님, 제발 비밀 지켜줘요.”심은호가 반용화를 돌아보았다.“지금 누구한테 부탁하고 있는 거죠? 아, 민아 씨가 나한테 부탁하는 거네요! 반 선생님, 들었어요?”만약 심은호가 공작이었다면 지금쯤 활짝 펼친 깃털 하나하나에 ‘강민아 남자 친구’라고 적은 뒤 반용화 주위를 맴돌며 자랑했을 거다.반용화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심은호가 먼저 자기소개를 했다.“다시 제 소
강민아는 그를 사회적으로 매장할 작정이었다.“날 풀어줘!”반하준은 소리를 지르면서도 몸은 아직 조금 전 상황을 되새기는 듯 온몸의 근육이 떨리고 있었다.“오늘 일은 서로 없던 걸로 해.”목소리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들키기 싫어서 힘겹게 말을 뱉었지만 잠긴 목소리는 감출 수 없었다.차가운 죽도가 그의 얼굴을 때리며 여자의 맑고 차가운 목소리가 그의 머리 위에 울려 퍼졌다.“못난이 주제에 참 아름다운 환상만 가지고 있단 말이지.”강민아는 죽도를 내려놓으며 자기 손목에 멍이 든 것을 확인했다.싸늘한 눈동자엔 매정함만이 남아 있었다.“말했지, 오늘부터 여기서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간다고. 나중에 여기 자동 호출기 설치해 줄 테니까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나한테 빌어.”강민아는 반하준을 철저히 감금하기 위해 생각한 끝에 경호원에게 지시했다.“전기 충격 목걸이 큰 사이즈로 가져와서 이 사람한테 채워요. 괜히 소리 지르고 난동 부리면 이웃들에게 피해를 줄 테니까. TV도 하나 가져와요. 반 대표님 혼자 계시면 적적할 테니 24시간 내내 틀어놓으세요.”잠도 못 자게 하려는 거다.그는 여기 갇혀서 움직일 수 없는데 24시간 내내 TV를 틀어놓으면 소음과 빛의 방해를 받아 편히 지낼 수 없었다.강민아는 정말 그를 죄수처럼 대하고 있었다!반하준의 목구멍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누구한테 배웠어? 이걸 다 누가 가르쳐줬지? 저 사람이야?”반하준은 매서운 눈빛으로 반용화를 바라보았다.그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지고 턱선은 강철처럼 날카롭고 단단했다.“아니면 저 자식이야?”반하준의 시선이 육성민에게 향했다.“다 당신한테 배운 거야. 아이 울음소리 때문에 깨고 가슴 통증 때문에 잠도 못 잘 때 당신은 어디 있었는데?”그는 밤새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으며 그녀 홀로 울부짖는 두 아이와 반씨 가문 사람들을 상대하게 내버려두었다.몸조리하는 동안 쌓였던 원한은 평생 마음에 새겨져 5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온몸이 스트레스와 공포에 휩
수치스럽고 괴로워하는 그의 표정이 휴대폰 카메라에 여러 각도로 찍혔다.죽도를 휘두르자 공기 중엔 요란한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사람을 때리는 것도 제법 중독성이 있었다.게다가 직접 손으로 때리는 상대가 망할 전남편이면 더더욱 그랬다.“즉석식품이나 길거리 음식을 사다 주는 것도 들킬까 봐 조심스럽게 행동했어. 당신은 날 업신여겼고 난 당신을 우습게 봤지. 결혼생활 내내 날 무시하는데 제대로 챙겨주고 싶겠어? 반하준, 결국엔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야. 아파?”짜악!강민아가 죽도를 휘두르며 말했다.“살갗에 난 상처는 며칠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언어적 폭력으로 받은 상처는 평생 마음에 남아!”욕설과 모욕이 가장 큰 상처가 되는 만큼 반하준도 똑같이 느끼길 바랐다.반하준은 누군가 자신을 향해 대포알을 던지는 것 같았다. 갈래갈래 찢어질 듯한 고통이 그의 몸을 관통할수록 아드레날린도 최고조에 달했다.고개를 뒤로 젖히자 그의 목과 턱선이 선명하게 드러났다.문득 그날 정수산에서 레이싱했을 때의 짜릿함을 다시 한번 경험하는 것 같았다.쾌감?반하준도 혼란스러웠다.몸속에서 자신도 모르고 있던 어떤 페티쉬가 강민아의 손에서 발굴되어 드러난 것 같았다.레이싱 대회가 끝나고 꾸었던 기이하면서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매혹적인 꿈이 반하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지저분하고 더러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자 온몸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하이힐 굽이 몸을 짓밟는 힘을 느끼며 반하준은 위험도 도래하고 있음을 직감했다.“빨리... 이거 놔! 강민아, 너...”고함을 지르는 남자의 붉게 물든 목 위로 핏줄이 툭 튀어나왔다.강민아의 이름이 봉인을 해제하는 주문이 되었다.그의 인내심은 한계점에 다다랐고 봉인이 풀리자 그는 몸도 완전히 통제를 벗어났다.검은 하이힐이 바닥을 딛자 주저앉은 반하준은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배터리가 방전되어 벽에 버려진 로봇 같았다.가슴의 들썩거림만이 그가 아직 살아 숨 쉬는 인간임을 확인시켜 주었다.분노와 증오의 감정은 해일처럼
반하준은 눈을 크게 뜨고 경호원들이 강민아의 지시를 따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그들은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를 켜고 사방에서 반하준을 향해 카메라를 조준했다.짜악!강민아가 죽도를 휘두르자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남자의 뺨에 붉은 자국이 순식간에 드러났다.반하준의 몸에서 피가 끓어오르며 그는 혀끝으로 화끈거리는 입 안쪽을 밀어냈다.“강민아!”굴하지 않고 고함을 지르며 욕을 내뱉으려던 그가 말을 뚝 멈췄다. 한 번도 이런 각도로 강민아를 바라본 적은 없었다.죽도를 든 여자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의 앞에 서 있었고,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드리워져 두 개의 그림자가 눈을 덮고 있었다.전처가 예쁘다는 건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지만 지금 이순간 매서운 그녀의 모습에서 처음으로 칼날같이 오싹한 섬광이 보였다.강민아는 가느다란 죽도를 다시 들어 올렸다.반하준의 눈이 번쩍 뜨이며 무의식적으로 숨을 참았다.“죽도로 이렇게 사람을 때리면 손 다쳐.”강민아의 뒤에서 육성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그가 앞으로 다가오더니 크고 두꺼운 손으로 죽도를 들고 있던 그녀의 손등을 완전히 감쌌다.“팔을 움직여. 팔꿈치를 돌려서 어깨뼈를 펴고 허리 힘으로 팔을 끌어당겨서 이렇게 때리는 거야.”짜악!그렇게 반하준의 어깨를 때리는 순간 통증이 불길처럼 번지며 순식간에 온몸을 휩쓸었다.반하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강민아 뒤에 서 있는 육성민을 차갑게 바라봤다.그가 바라보는 각도에서는 강민아의 등이 육성민의 가슴에 완전히 밀착되어 있었다.기골이 장대한 남자가 산처럼 여자를 완전히 감싸고 있었다.강민아의 눈에 미소가 번졌다.“이렇게 때리니까 확실히 손이 흔들리지 않네.”육성민이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그의 따뜻하고 큰 손이 강민아의 손등에서 멀어졌다.반용화는 휠체어에 앉아 육성민의 뒷모습을 깊게 응시했다.퍽!통증이 가슴에 번지며 반하준은 두 손으로 주먹을 불끈 쥔 채 이마에서 땀방울이 스며 나왔다.“지금부터 내 허락 없이 화장실도 못 가고 밥도 못 먹어. 못 참겠으면
그러다 강민아가 반하준과 이혼하고 정이만 데리고 나왔을 때야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내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강민아는 손을 움직이며 육성민이 반하준에게 다시 한번 주먹을 날리는 모습을 지켜봤다.반하준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와 순백의 벽에 끔찍한 흔적을 남겼다.강민아는 반용화에게 물었다.“선생님, 저 어떻게 찾았어요?”“여기 스프링 가든이야. 반하준이 네 집 맞은편에 집을 샀어.”강민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이 집을 언제 샀는데요?”“3일 전에.”강민아는 목구멍에서 울컥 역겨움이 밀려왔다.강나현에게서 반유하의 녹취록을 얻은 후 일부러 그녀에게 복수하려고 마음먹은 거다.그녀를 스프링 가든에 가둠으로써 마치 그녀가 집을 나가지 않은 것처럼 사람들 눈을 속이려고 했다.만약 그녀가 육성민의 경호원 없이 ‘시크릿’에 갔다면 그녀가 감금된 후 반하준은 육성민에게도 손을 써서 정이를 데려갔을 거다.반용화가 미간을 찌푸렸다.“이미 경찰에 신고했어.”이제 그는 자기 조카에 대한 혐오밖에 남지 않았다.강민아는 반하준이 다시 바닥에 쓰러져 턱을 따라 흐르는 피가 비싼 와이셔츠를 더럽히는 것을 보았다.사파이어 브로치는 진작 2, 3미터 떨어진 곳에 날아갔고 남자의 얼굴은 붉고 멍이 든 흔적이 가득했다.그는 볼품없이 한 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그러면서도 여전히 고개를 들고 오만하게 눈을 치켜뜬 채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노려보았다.강민아가 반용화에게 물었다.“저를 납치한 지 얼마나 됐죠?”“두 시간.”“네.” 강민아가 대답했다.“사태가 심각하지 않고 사람을 다치게 한 것도 아니니 구치소에 들어가도 귀한 대접만 받겠네요.”오히려 육성민이 반하준을 적지 않게 다치게 했다.반하준은 바닥에 앉아 한 쪽 팔을 구부린 다리 위에 올려놓았다.입꼬리를 말아 올린 그는 경찰서로 보내는 게 전혀 두렵지 않았다. 오랫동안 재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그깟 법 하나 모를까.강민아는 머릿속에 어떠한 생각이 떠올라 반용화에게 물었다
반하준이 고개를 돌리자 문 밖의 하얀 빛이 휠체어에 앉은 남자의 실루엣을 비추었다.성큼성큼 들어오는 육성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순식간에 방 안의 공기를 집어삼켰다.반하준이 이제 막 몸을 일으키는데 육성민이 주먹을 휘둘렀고, 손을 들어 저항했지만 육성민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반하준은 프로 격투기를 배웠어도 힘에서 압도적인 재능을 자랑하는 육성민의 상대가 되진 못했다.육성민이 반하준의 복부를 펀치로 가격했고 반하준은 바닥에 쓰러졌다.바닥에 엎드린 그가 입을 벌리며 울컥 무언가를 뱉어냈다. 목구멍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를 참으며 고개를 들자 육성민이 열쇠를 들고 강민아의 손목에 묶인 수갑을 풀고 있었다.반하준은 한 손으로 몸을 지탱한 채 다른 한 손으로는 아픈 복부를 감쌌다.고개를 드니 휠체어를 탄 반용화가 눈앞에 와 있었다.남자는 찢어진 입술을 끌어올리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반용화, 이래도 저 여자한테...”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반용화는 검은색 지팡이를 들고 반하준의 얼굴을 때렸다.5년 동안 반용화가 지팡이를 사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 반하준을 때리려고 꺼내든 것이다.휘두르는 움직임이 크지 않았지만 단단한 나무 지팡이가 반하준의 얼굴에 얼음처럼 차갑게 부딪혔다.퍽!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반하준의 얼굴 한쪽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오르며 부어올랐다.반용화는 발밑에 엎드린 개미를 바라보듯 그를 내려다보았다.“괜찮아?”반하준의 뒤에서 육성민의 걱정 어린 물음이 들려왔다.고개를 돌리자 육성민의 훤칠하고 건장한 몸이 강민아를 완전히 가리고 있었다.반하준의 목구멍에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육성민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강민아를 향한 그의 마음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하지만 당시 육성민은 풋풋했고 군대 훈련도 받고 작전에도 참여했지만, 고귀한 재벌가 후계자에 비하면 밑바닥부터 한 걸음씩 올라온 그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육성민이 강민아에게 남매 이상의 감정이 있다는 증거는 없지만, 반하준은 적을 만났을 때
강민아는 힘겹게 말을 뱉어냈다.“반유하를 그렇게 만들어서 내가 얻는 게 뭔데?”반하준의 음침한 동공에서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죽을 줄은 몰랐겠지. 항상 널 괴롭혔으니까 그냥 한번 골려주고 싶었겠지.”강민아가 우아하게 눈을 흘기자 남자의 목소리는 점점 더 차가워졌다.“네가 인정 안 할 줄 알았어. 이 녹취록만 가지고는 절대 널 감옥에 보낼 수는 없겠지.”남자의 시선이 그의 손에 붙잡혀 억지로 고개를 든 강민아의 붉은 입술에 닿았다.그에게 온순하고 순종적이었던 시절도 잠시, 아이를 낳고 난 뒤부터 그녀는 온갖 수작을 부리며 그를 챙기지 않았다.“강민아, 난 너한테 뭐야? 네가 사는 집, 네가 타는 차, 매달 수억 원의 생활비까지 줬잖아. 근데 넌 나한테 쓰레기 음식이나 먹이고 싸구려 도시락을 회사에 가져왔어. 그러곤 내가 배탈이 날까 봐 끓인 차에 위장약을 탔지. 사모님 노릇 한번 편하게 하네.”눈을 깜박이던 강민아의 눈동자에 놀란 기색이 스쳐 지나가는 것도 잠시, 반하준은 그녀의 얼굴에서 그 어떤 당황스러움이나 부끄러움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오히려 그녀의 흑백이 분명한 맑은 눈동자는 희미한 웃음기를 머금었다.“세 번째 아이를 잃고 난 뒤엔 당신을 인간 취급도 하기 싫었어. 집안 음식과 살림은 내가 책임지는데 약으로 대머리를 만들 순 없잖아? 어르신이 민이를 정식 후계자로 삼을 때까지 몇 년만 참으려고 했어.”나른하게 흘러나오는 강민아의 목소리는 아주 가벼워 깃털처럼 날렸지만, 그게 반하준의 신경을 자극하며 사지를 휩쓸고 지나가는 아픔을 가져다주었다.그의 손끝이 미끄러져 강민아의 목을 움켜쥐었다.웃는 그의 선홍빛 얇은 입술이 어두운 밤의 뱀파이어처럼 광기를 띠었다.너무 똑똑한 여자는 독이 든 꽃과 같아서 쉽게 끌리지만 한번 건드리면 역으로 공격당한다.강민아와 결혼하기로 했을 때 할아버지 반영식은 심각한 얼굴로 그녀가 적절한 상대는 아니라고 말했다.“저는 정략결혼보다 쉽게 통제할 수 있고 진심으로 나만 사랑하는 여자를 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