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846화

Author: 송진
연정우는 여전히 성유리의 말을 믿지 않았고 건네준 그 기획서조차도 마찬가지로 불신했다.

이건 박한빈과 성유리가 짜고 치는 연극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해리의 말이 그의 신념을 흔들었다..

해리는 연정우의 사람이다.

오늘 에이미에게 접근하게 한 것도 그의 지시였다.

그렇다면 박한빈은 해리의 존재조차 모른다.

만약 이 모든 게 연극이라면 그가 굳이 이런 디테일까지 연출할 필요가 있을까?

더군다나 성유리가 넘긴 기획서는 빈틈이 없었다.

그것은 단순한 문서가 아니었다.

넥스트 펀드가 젠 펀드를 어떻게 삼키고 그 과정을 어떤 식으로 실행할 것인지, 그리고 철저한 분석과 함께 단계별 계획까지 명시되어 있었다.

연정우는 이 기획서를 죠지와 함께 검토했었다.

만약 이것이 진짜라면 그들은 넥스트 펀드를 건드리기 전에 젠 펀드에 먼저 손을 뻗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매각해 버린다면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기회를 거머쥘 수 있다.

설령 이 문서가 가짜라고 해도 박한빈이 여기에 들인 시간과 노력이 어마어마할 터였으니 연정우는 확신했다.

그는 불필요한 함정을 파지 않는다.

더군다나 상대가 이 덫에 걸릴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렇다면 박한빈이 정말로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게 맞을 것이다.

그가 최근 라온시에 머무르는 것도 그 증거 중 하나였다.

하지만 연정우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 문서가 진짜라 해도 타겟이 젠 펀드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래서 연정우는 최근 며칠간 이와 관련된 다른 가능성을 조사했다.

그리고 젠 펀드 외에도 조건이 들어맞는 펀드가 몇 개 더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이미 부하들을 보내 감시하게 했다.

그러나 지금 해리의 말을 들은 후, 연정우는 자신의 판단이 맞는지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자기야.”

그때, 해리가 다정한 목소리로 연정우를 불렀다.

그제야 연정우는 하던 생각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

“왜 그래?”

“계속 멍때리고 있길래 내가 좀 챙겨주려고 그러지.”

연정우는 해리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웃음을 터뜨렸다.

Patuloy na basahin ang aklat na ito nang libre
I-scan ang code upang i-download ang App
Locked Chapter

Kaugnay na kabanata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47화

    혼자 있는 성유리를 보는 순간, 연정우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앞으로 나아가려던 그때, 다른 누군가가 먼저 움직였다.박한빈이었다.그는 성유리 앞에 무릎을 꿇듯 앉으며 다급하게 물었다.“어떻게 된 거야?”연정우는 그 모습을 보곤 헛웃음이 나왔다.역시 예상했던 대로였다.박한빈이 성유리를 그렇게까지 사랑하던 모습을 보아 왔는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마음을 접을 수 있겠는가?처음부터 이건 철저히 자신을 속이기 위한 연극이라는 확신이 들었다.연정우는 더 이상 이 상황에 머물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그래서 바로 몸을 돌려 병실을 떠나려던 때, 성유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거 놔요!”“성유리!”시끄러운 병원 안에서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연정우는 그 대화를 또렷이 들을 수 있었다.그는 즉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박한빈이 성유리의 손을 붙잡고 있었는데 마치 그녀를 억지로 끌고 가려는 듯한 모습이었다.하지만 성유리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이미 다른 여자가 있으시면서 왜 저까지 신경 쓰시는 건데요?”성유리는 이를 악물고 박한빈을 노려보며 따지듯 물었다.“박한빈 씨가 제게 줬던 것들, 전 전혀 필요 없어요. 그리고... 더 이상 박한빈 씨가 보고 싶지도 않다고요!”그녀는 거칠게 박한빈을 밀어냈다.그러나 박한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성유리를 번쩍 안아 들었다.“놔요! 당장 내려놓으시라고요.”성유리가 있는 힘껏 저항하자 연정우는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그는 빠르게 다가가 두 사람의 앞을 막아섰다.박한빈의 표정은 이미 굳어 있었기에 연정우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그야말로 살기가 띠어 있었다.“비켜.”박한빈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하지만 연정우 역시 전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유리는 당신과 함께 가는 걸 거부하는 것 같은데요?”그의 말은 단호했다.“굳이 제가 다시 상기시켜 줘야겠습니까? 여긴 금성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경거망동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연정우의 경고에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48화

    연정우는 성유리를 데리고 병원을 떠났다.하지만 그녀의 상태가 점점 더 나빠졌다.차가 도로를 달리는 동안, 성유리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결국 연정우는 그녀를 다른 병원으로 데려갈 수밖에 없었다.진료를 마친 후, 의사가 성유리의 상태를 설명했다.연정우는 별다른 반응 없이 듣고 있었지만 시선은 줄곧 병상 위의 성유리에게 머물렀다.그 시각,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새하얀 얼굴, 질끈 다물어진 입술, 미세하게 찌푸려진 미간은 마치 한 송이 재스민 꽃처럼 보였다.그러나 그것이 과연 순수한 꽃인지, 아니면 치명적인 양귀비꽃인지 그는 확신할 수 없었다.결국 연정우는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성유리의 곁에 다가가 조용히 앉았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성유리가 천천히 눈을 떴다.그녀가 연정우를 발견한 순간, 아주 잠깐 미묘한 실명의 감정이 스쳤다.연정우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마워요.”성유리가 힘겹게 입을 열었는데 연정우는 여전히 말없이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제 휴대폰 좀 볼 수 있을까요?”연정우는 성유리의 말에 여전히 침묵했지만 망설이지 않고 바로 휴대폰을 건넸다.성유리는 곧장 화면을 확인했지만 아무 연락도, 아무 메시지도 없었다.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그녀는 천천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연정우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박한빈 씨랑 싸웠어?”성유리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그리고 그와 눈이 마주치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군.”연정우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그들이 왜 싸웠는지, 어떤 감정이 오갔는지 그것이 연정우에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절 못 믿으시는 거죠?”그때, 성유리가 갑자기 물었다.예상치 못한 질문에 연정우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제가 박한빈 씨랑 짜고 연극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연정우는 재빨리 대답했다.“아니.”그러나 그의 표정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고 눈빛 또한 마찬가지였다.성유리는 그 반응이 전혀 놀랍지 않았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49화

    “정우 씨 집에서 살라고요?”성유리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당연히 내 집에서 살라는 거지.”연정우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어차피 박한빈 씨한테도 이제 다른 여자가 있지 않나? 그러니 걱정 마. 네가 원하지 않는 한, 난 절대 널 건드리지 않을 거니까.”두 사람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몇 초 뒤, 성유리는 주저 없이 답했다.“좋아요.”그 순간, 연정우도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그렇게 빠르게, 그리고 그렇게 단호하게 대답할 줄은 몰랐다.연정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성유리를 바라보았다.그러나 그녀의 표정에는 망설임도, 어떠한 계획도 보이지 않았다.그저 진지하고 단호할 뿐.“그럼 제가 더 해드릴 건 없어요?”성유리는 차분하게 물었다.그 태도가 너무나도 진지해서 마치 이제 둘이 같은 배를 탄 동료라도 된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연정우는 여전히 완전히 믿을 수 없었다.이 모든 것이 연극이라면?성유리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거라면?만약 정말 연극을 펼치고 있다면 연정우는 앞으로 자기가 무얼 하든 그녀가 자신을 원망하고 탓하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얼마간 생각에 잠겨있던 연정우는 가볍게 웃으며 성유리의 손을 꼭 잡았다.“좋아. 그럼 내가 지금 바로 준비해 두라고 할게.”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발신자는 연정우의 합작 파트너인 죠지였다.전화를 받자 죠지는 흥분한 목소리로 연정우에게 보고했다.“박한빈 씨 쪽에서 움직임이 시작됐어!”그 말에 연정우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그럼 그 자료가 진짜일 확률이 크다는 거군.”그는 짧게 결론 내리며 대답했다.“우리가 먼저 움직인다. 젠 펀드를 선점해.”...한편, 마찬가지로 소식을 전해 들은 에릭이 다급하게 되물었다.“뭐라고? 마피?”“그들이 지금 우리 계획을 방해하고 있다고?”“네. 마치 저희가 뭘 할지 미리 알고 있던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움직임도 저희보다 훨씬 빨라서 젠 펀드 주식이 지금 빠르게 상승 중이고요. 저희...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50화

    박한빈이 연정우에게 준 그 계획서는 확실히 진짜였다.비록 그가 연정우에게 함정을 놓아 발을 헛디디게 만들고 싶었지만 결국 박한빈은 연정우가 그렇게 어리석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박한빈이 원하는 것이 단지 연정우를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었다.그 계획서를 내보냈다고 해서 연정우가 믿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차피 그들은 계획대로 계속 일을 진행할 것이다.그러나 만약 연정우가 믿게 된다면 그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부르노는 누구도 자신의 이익에 손을 대도록 두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리고 박한빈이 원하는 것은 에릭과 그들의 그룹을 끌어내려는 것이었다.연정우는 지금 어느 정도 큰 배경을 갖고 있지만 여긴 금성이 아니므로 그를 빼앗기기엔 너무 어려운 상황이었다.그러나 부르노를 끌어내린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게 그것이 박한빈의 목표였다.에릭이 이 사실을 다 알아버렸어도 박한빈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이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너는 이제 라온시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나?”분노한 에릭이 책상에 손을 내리치며 따지듯 물었다.“아니면 목숨을 잃을 각오라도 한 거야? 총에 맞아 죽고 싶어 환장한 거냐고!”배신자는 두 번 죽음의 기회를 받지 않는다. 그래서 에릭은 확신했다.만약 이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박한빈은 손쉽게 라온시에서 쫓겨날 수 있을 것이고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네가 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은 알 수 없지.”박한빈은 침착하게 대답하자 에릭이 소리를 질렀다.“도대체 내가 왜 너를 위해 비밀을 지켜줘야 하는 거냐고!”“우리 친구 아니었나?”박한빈의 목소리에는 마치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에릭은 손에 있던 물건을 그에게 던지고 싶었고 실제로 그렇게 하기도 했다.그러나 박한빈은 그가 움직이는 것을 정확히 포착해 에릭이 손을 들자마자 쉽게 피했다.결국 에릭은 모든 걸 포기한 듯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버렸다.박한빈은 뒤돌아있는 에릭의 등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51화

    그러나 죠지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극도로 흥분한 상태였으니까.예전에도 부르노와 몇 차례 맞붙어 본 적이 있었지만 절대적인 강자의 권력 앞에서 죠지는 감히 남은 찌꺼기조차 건드릴 수 없었다.그런데 오늘은 부르노의 앞에서 이렇게 큰 ‘고기’를 가로챘고 그를 물러설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이 상황이 죠지를 기쁘게 하지 않을 리 없었고 그래서인지 술잔이 연거푸 그의 손으로 건너왔다.연정우가 아무리 취하지 않으려 해도 이 순간에는 사람들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었다. 결국 주는 대로 마시다 보니 그는 제대로 취해 버렸다.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제대로 걷지도 못해 휘청거릴 정도였다.그리고 실내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발견한 순간, 그는 잠시 멈칫했다.그러다 문득 떠올렸다.이제 이곳에는 그 혼자만 있는 게 아니라 성유리도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연정우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끊임없이 자신에게 상기시켰다.성유리는 그저 인질일 뿐이라고.박한빈이 조금이라도 이상한 움직임을 보인다면 그는 바로 성유리를 죽일 것이다.하지만 지금, 그녀가 자신을 위해 남겨둔 이 작은 불빛을 마주하는 순간 연정우는 몸이 저도 모르게 떨렸다.그리고 마음 어딘가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누구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자신을 위해 켜진 불빛이 기다리고 있길 바라지 않는가.그런 꿈을 꾸던 시절이 연정우에게도 있었다.그가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을 때, 앞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연정우가 고개를 들자 성유리가 객실 문 앞에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술 마셨어요?”멈칫하던 성유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녀는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연정우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그렇지만 미간을 살짝 찌푸린 표정과 눈빛 속에 담긴 감정은 확실했다.분명히 그 감정은 걱정이었다.연정우는 대답 없이 가만히 성유리를 바라보기만 했다.“꿀물이라도 타드릴까요?”성유리가 다시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52화

    연정우는 말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그 표정은 성유리를 설득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맞은편에 앉아 있는 성유리는 아무 말 없이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한동안 서로 시선을 마주한 후, 연정우가 갑자기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그래서 오늘 우리가 왜 축하 파티를 연 줄 알아?”성유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부르노가 즐겨 먹는 치즈를 빼앗았거든! 아, 물론 진짜 치즈는 아니고.”그는 흡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다 네가 전에 나한테 건넨 그 기획서 덕분이야. 덕분에 부르노가 무슨 수를 쓰던지 우리가 미리 알고 대응할 수 있어.”“죠지도 엄청 기뻐하더라. 원래는 내 능력을 의심하면서 자기 펀드에 걸림돌이 될까 봐 걱정했었는데 오늘 밤 걔 태도 못 봤지?”“그뿐만이 아니야. 이제 이 세계에서 나를 인정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마침내... 나도 이곳에서 발을 제대로 붙일 수 있게 됐다고!”연정우는 점점 더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성유리는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다.다만, 그녀가 제공한 기획서 덕분에 일이 성공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눈썹이 아주 살짝 올라갔다.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갔다.그 반응이 연정우의 신경을 건드렸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성유리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문득 물었다.“넌 박한빈 씨가 걱정되지도 않아?”성유리는 가볍게 숨을 들이쉬더니 담담하게 대답했다.“제가 그 사람을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깊이 사랑한 적은 없어요.”그녀는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전의 기억은 이미 다 잊어버렸어요.”“제가 그와 함께했던 건, 그 사람이 내 남편이라고 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희가 과거에 어떤 관계였던지... 저는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고요.”“그래서 처음에는 남편인 박한빈 씨와 함께 지내려고 했어요. 과거의 제가 선택한 사람이니까 믿어보려고 생각했죠.”성유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낮은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하지만 이제는...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53화

    그러니 아무리 표정 관리를 잘하는 성유리라도 그 말을 듣고 나서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한참 후에야, 성유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정말... 그랬어요?”“박한빈 씨가 이런 이야기를 너한테 했을 리가 없지.”연정우는 쓴웃음을 지었다.“그 사람은 절대 그 사실을 입 밖에 내지 못해. 그렇게 더러운 과거를 들추고 싶겠어? 그래서 말인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행복한 삶을 누릴 자격이 있는 거지?”“걱정 마. 이번에는 나도 반드시 박한빈 씨를 무너뜨릴 거니까.”“그리고 그때가 되면 네 여권도 찾아줄 테니까 너도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어.”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고 성유리를 바라보는 눈빛은 진지했다.사실 연정우는 성유리가 떠나지 않길 바랐다.박한빈과의 ‘싸움’에서 승리는 물론 원했다.하지만 만약 승리의 순간에 성유리가 자기 곁에 있어 준다면 그것보다 더 완벽한 것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최상의 자리에 올라서면 그때는 누군가가 불을 밝혀주는 것도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그리고 연정우는 그 누군가가 성유리이기를 바랐다.“고마워요.”그러나 성유리의 대답은 단순했다.연정우가 바랐던 대답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지금 당장은 성유리가 자기편에 서 있기만 해도 충분했으니 말이다.“됐어. 이제 자러 가.”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앞으로 며칠만 기다려. 좋은 소식만 들려줄 테니까.”“네.”성유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하지만 몇 걸음 걷다가 문득 멈춰 서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연정우를 바라보았다.“그런데... 만약 연정우 씨가 진다면요?”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진지했다.연정우는 순간 성유리가 자신을 걱정하는 줄 알았다.하지만 나중에야 알았다.그녀는 단지 경고를 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승리가 그렇게 쉽게 주어질 리가 없었다.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하지 않나.높이 올라갈수록 추락할 때의 충격은 더욱 처참할 것이라는 사실은 어린아이도 잘 안다.그러나 연정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54화

    연정우는 며칠 전 저택에서 열린 축하 파티를 떠올렸다.그날, 죠지는 그를 사람들 앞에 세웠다.샴페인이 잔잔히 흔들리는 사이 그는 모두의 찬사와 인정을 받았다.그 순간, 그는 확신했다.과거에 자신을 의심하고 반대했던 이들이라도 그날 밤만큼은 모두 입을 다물었으리라고.그래서 죠지는 1차 목표가 달성되자마자 연정우를 위한 축하 파티를 열어줬다.연정우의 성과를 모두에게 공개해야만 그들 역시 기꺼이 자금을 맡길 테니까.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결과가 이렇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사실, 부르노 측이 최고점에 도달한 후에도 추가 투자를 계속하자 죠지는 연정우에게 위험 신호를 보냈다.그러나 시장은 변덕스러운 법이니 몇 초의 망설임도 패배로 이어질 수 있다.그래서 연정우는 주저하지 않았다.그는 박한빈 또한 같은 게임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렇다면 물러설 이유가 없었다.연정우에게 필요한 건 단 하나. 완벽한 승리였다.이번만큼은 꼭 박한빈을 꺾을 것이라는 일념 하나로 모든 걸 걸었다.그렇지만 연정우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박한빈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젠 펀드가 아니라 진짜 목표는 마피 전체를 삼키는 것이라는 사실을.생각해 보면 이와 비슷한 상황이 과거에도 있었다.그때도 연정우는 자신의 회사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설령 패배하더라도 사씨 가문이 뒤를 받쳐주기에 완전히 망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박한빈이 노린 것은 단순한 한 회사가 아니었다.그는 사씨 그룹 전체를 원했다.마치 지금처럼.박한빈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젠 펀드가 아니라 마피 전체와 부르노 일당까지 모두 포함된 거대한 판이었다.아니, 사실 저들은 인간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짐승들이라고 해야 옳았다.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이익뿐.감정도, 인간성도,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자들이었다.마치 초원에서 먹잇감을 쫓는 맹수처럼 일단 상대의 목덜미를 물었다면 절대 놓아주지 않는 자들.결국, 마피는 끝장났다.연정우의 휴대전화가 계속해서

Pinakabagong kabanata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77화

    아라는 원래 그저 하나의 거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에릭의 태도는 그녀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아라는 당연히 에릭과 계속 함께할 생각이 없었다.그래서 일부러 에릭에게 바람을 피울 기회를 만들어주었고 일부러 현장에서 들키는 상황까지 연출했다.아라의 뛰어난 연기 덕분에 에릭은 결국 그녀에게 질려버렸고 먼저 이별을 통보했었다.그녀는 약간의 소란을 피운 뒤, 에릭이 건넨 이별 위로금을 받고 아쉬운 마음이 가득한 듯 끄 까지 연기하며 퇴장했다.이걸로 모든 이야기가 완벽하게 끝났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에릭이 여기까지 쫓아온 것이다.그리고 에릭의 표정을 보아하니 뭔가 눈치챈 것 같기도 했다.에릭이 얼마나 냉혹한 남자인지 아라도 잘 알고 있었기에 즉시 감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진짜요? 정말 다행이네요.”말을 하며 아라는 자연스럽게 남자의 팔을 껴안았다.“제가 요즘 에릭 씨를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 모르시죠?”에릭은 아라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아라는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걱정 마세요. 이제부터 철없이 굴지 않을게요. 에릭 씨 일에는 절대 참견하지도 말썽도 부리지 않을 거예요. 그저 에릭 씨 곁에 남아있을 수만 있다면...”“그래. 걱정 안 할게. 이제부터 다른 사람은 없을 거니까.”에릭이 아라의 말을 단호하게 끊어버리며 단호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네?”아라는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를 냈다.“난 너랑 결혼하고 싶어. 어떻게 생각해?”예상치 못한 에릭의 질문에 아라의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가자. 지금 당장 혼인 신고하러.”“아니... 잠깐만요.”그제야 아라는 정신을 차리고 몸부림치기 시작했고 에릭은 곧장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왜? 싫어?”에릭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고 눈빛도 점점 싸늘하게 식어갔다.눈치 보던 아라가 무언가 말하려던 찰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라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박한빈은 오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76화

    아라는 요 며칠 계속해서 누군가 자신을 따라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하지만 뒤를 돌아볼 때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잠시 불안감이 스쳤지만 이내 스스로를 달랬다.‘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고... 누가 날 쫓아오겠어?’아라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 돈도 많지 않고 외모도 그렇게 눈에 띄는 편이 아니었다.그러니 누군가 아라를 미행할 이유 따위 없었다.애써 잡생각을 정리하고 괜찮다고 생각하며 신경을 끄기로 했다.요즘 아라의 가장 큰 관심사는 주성운이었다.요즘 그는 점점 건강을 회복하고 있었기에 아라가 돈을 모아 주문한 의족도 곧 도착할 예정이었다.의족이 도착하면 주성운은 다시 두 발로 설 수 있고 그들의 삶도 한층 더 나아질 터였다.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함께 작은 가게를 열어 조용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그것이 아라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미래였다.공공버스에서 내려 그런 생각에 잠겨 있던 순간,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아라야.”익숙한 이름, 그리고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에 아라의 발걸음이 즉시 멈췄다.그리곤 믿을 수 없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돌렸는데 거기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라를 바라보고 있었다.딱 떨어지는 고급 정장을 입은 채로 눈에 띄는 금발과 짙은 청록색 눈동자를 지닌 남자.남자가 입을 열자 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아라에게 쏠리자 아라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에릭이 아라를 찾아온 것이다.순간 아라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몇 초 후, 그녀는 억지로 평정을 되찾고 조심스럽게 다가섰다.“에... 에릭 씨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예요?”에릭은 아라를 쳐다만 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냥... 지나가는 길인가요?”아라는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자연스럽게 상황을 넘기려 했다.“진짜 우연이네요. 근데...”“아니. 특별히 널 찾으러 왔어.”에릭의 대답에 아라는 멈칫했다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저... 저를 왜 찾아오셨어요? 무슨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75화

    “모르지. 방금 에릭이 나한테도 말 안 해줬잖아?”성유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근데 에릭 씨 정도로 돈이 많은 사람이 단순히 재산 문제로 화낼 리는 없고... 그렇다면 그냥 가지고 놀았다는 건가요?”성유리가 이 일에 대해 그렇게 분석하자 박한빈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아마도 그럴걸?”에릭은 매우 만족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그 녀석이 예전에 나보고 미쳤다고 난리 치더니 이제야 본인이 제대로 당했네. 아주 좋아.”그렇게 말하면서도 에릭은 뭔가 떠오른 듯 곧바로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아라의 신원을 조사해 보라고 지시했다.그리고는 다시 성유리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이번 연극... 아주 볼만하겠어.”...에릭이 도착한 건 새벽이었지만 박한빈은 당연히 마중을 나가지 않았다.하지만 미리 주소를 알아두었기 때문에 에릭은 공항에서 곧장 이곳으로 쳐들어왔다.현관 벨이 울릴 때, 성유리와 박한빈은 아직 잠들지 않은 상태였다.갑작스러운 초인종 소리에 성유리는 본능적으로 움찔했고 그 바람에 그녀의 손톱이 박한빈의 등을 스치며 얇은 상처를 남겼다.그래서 박한빈 역시 얼굴을 찡그리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사람 있어요.”성유리가 뭔가 말하려 했지만, 박한빈은 개의치 않고 그녀를 더욱 깊숙이 끌어안았다.그렇지만 벨 소리는 마치 재촉이라도 하듯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성유리는 점점 신경이 곤두섰고 결국 그를 밀어내려 했다.살짝 화가 난 박한빈은 입술을 굳게 다물더니 아예 성유리의 손목을 잡아 머리 위로 눌러버렸다.한편, 에릭은 문 앞에서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금성은 아직 그렇게 추운 계절이 아니었지만 어릴 때부터 고생을 모르고 자란 그에게 이처럼 문 앞에서 추위를 견디며 기다리는 경험은 그야말로 치욕이었다.그렇게 이를 악물고 서 있다가 마침내 문이 열리고 박한빈이 내려왔는데 그의 표정은 에릭 못지않게 어두웠다.“대체 뭐 하러 온 거야?”박한빈의 목소리에는 짙은 짜증이 배어 있었다.에릭은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74화

    성유리가 아라와 다시 마주친 건 두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병원 로비, 휠체어에 앉아 있는 낯선 남성과 아라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남자는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얼굴엔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는 아라에게 무언가를 조용히 이야기했고 아라는 몸을 숙여 그의 말을 경청했다.그러다 말이 끝나자 대놓고 눈알을 굴리며 남자를 향해 장난이 섞인 짜증도 부렸다.아라의 표정은 투덜대는 듯했지만 입가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그 모습은 성유리가 에릭 곁에서 보았던 아라보다 훨씬 생기 있어 보였다.그래서 성유리는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았다.그런데 아라는 마치 누군가의 시선을 감지한 듯 고개를 들었다.그리고 성유리와 눈이 마주친 순간, 아라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하지만 그 찰나의 경직은 오래가지 않았다.아라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선을 피하고 다시 남자를 밀며 걸어갔다.그 모습을 보고도 성유리는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어차피 아라는 에릭의 여자 친구였을 뿐이고 지금은 헤어진 듯하니 다른 사람과 함께 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그런데 아라의 발걸음이 왠지 급해 보였다.마치 무언가를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마치 잘못을 저지르고 들킬까 봐 불안해하는 사람처럼.이상한 아라의 행동에 성유리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그때 마침, 박한빈이 성유리의 건강검진 결과를 들고 다가왔다.“유리야.”그녀는 멍하니 서서 생각에 잠겨 있었기에 박한빈의 부름에도 반응하지 못했다.아무리 기다려도 성유리가 반응이 없자 결국 박한빈은 팔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성유리는 그제야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고 박한빈은 그녀의 반응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왜 그래? 얼이 빠져있는 사람처럼.”성유리는 한동안 박한빈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방금 아라 씨를 봤어요.”“아라?”“네. 에릭 씨의 새 여자 친구였던 사람.”그제야 박한빈도 기억이 난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아라 씨가 한국으로 돌아온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73화

    “그래요?”성유리는 잠시 멈칫하다 물었다.“네. 저도 금성 대학 출신이에요. 다만 제가 입학했을 땐 선배님은 이미 졸업하고 결혼하셨더라고요. 나중에 선배님의 작품이 드라마로 만들어졌을 때 교수님이 강의 시간에 소개해 주셨었어요.”아라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했다.이야기 소재 자체가 성유리에게는 다소 민망한 주제였지만 덕분에 박한빈과 에릭 사이의 살벌한 분위기가 조금은 누그러지는 듯했다.그런 이유로 성유리는 굳이 더 신경 쓰지 않았다.어쨌든 저녁 식사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이미 밤이 깊었기 때문에 에릭은 두 사람에게 하룻밤 묵고 가라고 권했지만 박한빈은 단칼에 거절했다.에릭은 여전히 냉랭한 박한빈의 태도에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 정 그렇다면 나도 더 붙잡지는 않을게. 집사님, 손님들을 배웅하십시오.”말을 마친 그는 아라를 품에 안고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그리고 박한빈 또한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채, 성유리를 데리고 조용히 저택을 나섰다.그 뒷모습을 보며 성유리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이 둘은 한때 명실상부한 파트너였고 지금도 각자의 분야에서 손꼽히는 인물인데 지금 하는 행동은 꼭 유치한 초등학생 같았다.하지만 박한빈이 아직도 에릭에게 앙금을 가지고 있는 듯해 보였기 때문에 성유리는 굳이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그저 가만히 그의 손을 잡을 뿐.박한빈은 성유리를 힐끗 보더니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의 손바닥 안에 넣고 장난스럽게 주물렀다.그러다 갑자기 입을 열었다.“좀만 기다려 봐.”“뭘요?”성유리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저 바보 곧 크게 당할 거야.”박한빈의 말에 성유리의 표정이 순간 굳어버렸다.“제가 연정우한테 끌려갔던 건 사실 에릭 씨 탓만 할 수도 없는 일이잖아요. 박한빈 씨랑 에릭 씨는 오랜 시간 알고 지냈는데 굳이 이 일로 계속 싸울 필요는 없지 않아요?”성유리가 말하는 동안 박한빈은 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그러더니 오히려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너 지금 뭐라고 했어?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72화

    사실 에릭에게 여자 친구가 끊긴 적은 없었다.자주 마주칠 일도 없는 성유리조차 그가 여러 명의 여자 친구를 두는 모습을 봐왔을 정도였다.박한빈도 전에 말했었다. 에릭에게 여자 친구란 그저 소모품 같은 존재라고.한동안은 그녀들에게 온갖 애정과 특권을 쏟아붓지만 ‘유효기간’이 지나면 가차 없이 버려버린다고 했다.그 과정에서 단 한 치의 감정도 남기지 않았다.오히려 에릭은 여자들이 잃어버린 것에 절망하고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걸 즐기는 인간쓰레기였다.하지만 성유리는 아라에게만큼은 에릭이 다르게 대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가장 직관적인 증거는 박한빈이 말하기를 이 저택은 에릭의 개인적인 공간이었으며 초대받은 사람만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그럼 아라는?그녀의 태도는 마치 이곳의 여주인 같았다.물론 이건 그저 성유리의 생각일 뿐이었으니 굳이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박한빈과 에릭 사이에는 어딘가 묘한 거리감이 존재하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저녁 식사 분위기도 화기애애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아라는 에릭 곁에서 마치 길들여진 고양이처럼 얌전하게 행동했다. 그녀는 에릭이 원하는 대로 움직였고 에릭은 그런 아라의 ‘배려심’을 아주 만족스러워하는 듯했다.하지만 성유리는 그런 아라를 보면서 왠지 과거의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았다.성유리의 시선을 느낀 것일까, 아라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제야 성유리는 자신의 무례함을 깨닫고 미안하다는 듯 미소를 지은 뒤 조용히 식사에 집중했다.그때, 갑자기 에릭이 입을 열었다.“돌아가면 이제 2세 가질 계획을 세우는 건가?”성유리는 난데없는 대화 주제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아니, 그보다 이 질문을 던진 사람이 에릭이라는 점이 더 황당했다.잠시 에릭이 정말 미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아무리 그래도 이런 말을 에릭의 입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그리고 성유리뿐만 아니라 박한빈 역시 예상치 못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렇지만 그는 성유리보다 훨씬 직설적이었다.“미쳤냐?”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71화

    그녀의 대답에 박한빈의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또 다음 있다고?”성유리는 웃으며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다음은 없을 거니까 걱정 말아요.”박한빈은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바로 그때 운전기사의 안내 소리가 들려왔다.동시에 대기하고 있던 집사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는 궁금증을 잠시 접어두고 성유리를 데리고 차에서 내렸다.“잠깐만요. 저 립스틱 좀 다시 바르고.”성유리는 그의 손을 떼어내려 했지만 박한빈은 그녀의 뜻대로 해주지 않았고 오히려 손을 더욱 단단히 잡았다.“그럴 필요 없어. 그 사람이 무슨 대단한 인물이라고 그렇게 격식을 차려야 해?”박한빈에게는 자신이 여기까지 와준 것만으로도 에릭에게 큰 은혜를 베푼 셈이었다. 그런데 굳이 멋을 낼 필요가 있나?성유리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박한빈이 이끄는 대로 차에서 내렸다.“로얀.”그곳에 있던 집사는 박한빈과 매우 친숙한 듯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넨 후,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성유리는 고개를 들어 저택의 구조를 살폈다.박한빈이 전에 말했던 것처럼 에릭은 단순히 넥스트의 창립자일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의 후손이라고 했다.이 저택 역시 그 시절부터 내려온 유산이었다.새하얀 벽과 아치형 창문은 성유리가 동화책에서 본 성과 거의 똑같았다. 천장이 높은 거실 한가운데 걸려 있는 웅장한 샹들리에도 그녀가 떠올린 전형적인 귀족 저택의 이미지와 부합했다.하지만 한 가지, 성유리가 어딘가 위화감을 느낀 것이 있었다.거실에서 차를 따르고 있는 여인.그녀는 푸른빛의 긴 치마를 입고 있었고 머리를 가지런히 틀어 올렸는데 우아한 몸매에 단아한 얼굴, 그리고 전형적인 동양인의 외모를 지닌 여인이었다.낯선 인물의 등장에 성유리는 약간 놀란 듯 눈썹을 살짝 올렸고 박한빈도 마찬가지였다.심지어 박한빈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먼저 물었다.“네가 왜 여기 있어?”성유리는 그제야 박한빈을 돌아봤다.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70화

    성유리와 박한빈이 라온시를 떠나기 전에, 에릭이 그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그런데 그 식사는 호텔이나 다른 레스토랑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에릭의 개인 별장에서 진행되었는데 마치 성인 사자들이 자신만의 영역을 갖듯 에릭의 별장도 그의 사적인 영역이었다.에릭이 박한빈 혼자 초대한 적이 있지만 성유리와 함께 초대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는 그가 성유리를 인정했다는 뜻이었다.박한빈은 사실 에릭의 인정 따위 필요하지 않았지만 그가 성유리의 존재를 받아들였다는 점을 뜻깊게 생각했다.성유리는 연정우에게 끌려갔던 일을 아직 에릭에게 따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마음속으로 갈등하고 있었지만 그는 성유리에게 직접 연락을 해 초대를 했다.어쩔 수 없이 성유리는 그 뒤에 일어날 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지만 초대에 기꺼이 응하며 박한빈과 함께 가기로 했다.그리고 성유리 또한 에릭의 별장에 흥미를 보이기에 박한빈도 순순히 그녀의 결정을 따랐다.별장 지역에 도착하자마자 성유리는 경비원들이 순찰을 도는 모습을 봤다.그들은 모두 총을 들고 있었고 비록 에릭이 사전에 연락을 했지만 어떤 경비 지점에선 차량을 멈추고 확인을 거친 후에야 통과를 허락했다.“자기가 잘못한 게 너무 많아서 누군가 자신을 암살하려 할까 봐 두려워서 저러는 거야.”성유리는 박한빈의 설명을 듣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그래도 그냥 안전을 위한 거겠죠. 여긴 위험한 곳이니까.”하지만 박한빈의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보안이 그렇게 철저하면 뭐 해? 보디가드들이 엉망이니까 너를 연정우가 납치해 갔잖아. 밥만 축내는 식충이들 같으니라고.”성유리가 그를 달래듯 조용히 말했다.“그때 연정우가 초대장을 구해서 들어온 거였어요.”박한빈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미간을 깊이 찌푸리고 있었다.성유리는 그가 여전히 그때 일을 떠올리며 불안해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그녀가 의식을 잃고 있었던 이틀 동안, 박한빈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그러나 박한빈이 유서를 작성했다는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69화

    “네 어머니께서 알려주셨어.”성유리의 말에 연정우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성유리를 바라보았다.입술을 몇 번 달싹였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내가 어머니한테 말했어. 설령 어머님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해도 박한빈 씨가 결국 널 찾아낼 거라고.”“박한빈 씨 수단이 어떤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어. 그때가 되면 네 어머니가 원하는 평온한 삶도 불가능해질 거라고.”“하지만 만약 어머니가 내게 네가 있는 곳을 말해 준다면 적어도 지금의 생활은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했어.”연정우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문득 성유리에게 물었다.“그래서 엄마가 너한테 내 행방을 알려준 거란 말이지?”성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연정우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하지만 방금 전의 웃음과는 달랐다.이번에는 한층 더 담담한, 어쩌면 체념이 섞인 듯한 웃음이었다.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의 눈은 붉게 물들어갔고 손도 덜덜 떨렸다.성유리는 그런 그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그러나 바로 그 순간, 연정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이런 말 해주려고 오늘 일부러 찾아온 건가?”그 말에 성유리는 미간을 찌푸렸고 발걸음을 멈췄지만 돌아보지 않았다.연정우는 그녀의 등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는 다시 말했다.“성유리, 너는 나를 냉혹하다고 해도 좋아. “나를 배은망덕한 놈이라 불러도 좋아. 하지만 내가 평생 수많은 사람들에게 죄를 지었어도 너한테만큼은 아니야!”그의 목소리가 점점 격앙되기 시작했다.“난 널 위해서라면 뭐든 했어.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도... 다 널 믿었기 때문이야!”“하지만 넌? 나한테서 그토록 많은 걸 가져가고도 아직도 부족해?!”“이제는 날 이렇게까지 짓밟아야 속이 시원해?”“감옥에서조차 편히 지낼 수 없게 하려는 거냐고!”“너...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잔인해질 수가 있어?”잔인하다는 그 단어가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왔을 때, 연정우 스스로도 믿

Galugarin at basahin ang magagandang nobela
Libreng basahin ang magagandang nobela sa GoodNovel app. I-download ang mga librong gusto mo at basahin kahit saan at anumang oras.
Libreng basahin ang mga aklat sa app
I-scan ang code para mabasa sa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