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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6화

작가: 송진
“선생님, 큰일 났어요.”

전화가 걸려 올 때까지 성유리는 호텔에서 짐 정리를 하고 있었다.

이미 대본은 거의 수정을 마친 상태였기에 성유리는 하늘이와 함께 집에 돌아가 살기로 결정을 내렸다.

비록 2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호텔에서 머물렀지만 짐은 생각보다 많았고 성유리는 이사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성유리는 조금 멍해진 채로 물었다.

“왜 그래요?”

“뉴스 안 보셨어요?”

“무슨 뉴스요?”

“허유라 알아요?”

성유리는 그때까지도 무슨 상황인지 눈치채지 못했었다.

통화를 하던 상대는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바로 말을 이어갔다.

“빨리 뉴스 확인하세요. 전에 선생님이랑 같은 회사에 다녔다고 주장하는 사람인데 지금 선생님이 쓰신 [안개가 걷힌 뒤] 그 만화가 자기 작품이라고 우겨요. 자기 작품인데 회사가 선생님을 알리기 위해 자기한테서 뺏어갔다고 하면서요. 게다가 자기는 회사에서 잘리기까지 했대요. 난리가 났는데 못 보셨어요?”

상대는 빠르게 말을 이어갔고 성유리가 뭐라 반응할 틈도 주지 않은 채 바로 통화를 끝내버렸다.

성유리는 멍하니 서 있다 천천히 핸드폰을 열어 뉴스를 확인했고 상대의 말대로 인터넷에서는 그녀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 1위를 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잖아. 성유리는 얼굴 하나 믿고 나대는 거라고. 무조건 다른 사람들 덕을 봤다니까?]

[여신 만화 작가는 무슨! 남이 쓴 작품 베끼기나 하는 주제에.]

[이런 저질스러운 만화도 베껴? 낯이 얼마나 두꺼운 거야?]

[소문으로는 성유리 뒤에 돈이 엄청 많은 스폰서가 있다던데?]

[게다가 현장에서 남자 배우들을 계속 꼬신대. 늙은 여우 주제에 왜 저런대?]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댓글은 수도 없이 많았고 성유리는 댓글들을 확인하며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하늘이는 옆에서 조용히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기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성유리를 발견한 하늘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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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그만 마셔요. 너무 속상하니까!”성유리가 방에서 나왔을 때, 마침 사하니의 목소리를 들었다.그녀는 거울 앞에 서서 한 손으로 목을 꽉 잡은 채로 애써 안희연의 목소리를 따라 하고 있었다.원래부터 안희연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사하나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밥을 같이 먹다 보니 더더욱 안희연이라는 사람이 극도로 싫어졌다.성유리는 사하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먼저 물었다.“안희연 씨가 너한테 무슨 큰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싫어해?”“왜 싫어하냐고요?”그녀의 말에 사하나는 두 눈을 부릅뜨며 대답했다.“싫어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저 연기하는 꼴 좀 보세요! 게다가 방금도 언니를 막 조롱하려고 했잖아요. 언니는 그저 박한빈 씨 과거 애인이라는 사실을 대놓고 밝히고 비웃은 거잖아요!”“어떻게 보면 정말 대단해요. 과거 일로 말하자면 저도 말할 게 많다고요. 전에도 막 다른 남자랑 쇼핑하고 호텔도 갔잖아요. 박한빈 씨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아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여자를 도대체 왜 좋아하는 거죠?”“언니, 내 생각엔 박한빈 씨가 일부로 저러는 것 같아요. 언니 질투심을 유발하려고 저러는 게 분명해요. 그게 아니면 전 이해가 안 돼요. 좀 잇다 돌아가서 그 여자 얼굴 볼 생각만 하면 토 나온다니까요! 근데 언니는 왜 자꾸 저를 쿡쿡 찌르세요?”말문이 한번 트이기 시작한 사하나는 멈출래야 멈출 수가 없었다.그녀가 말하는 동안 성유리는 몇 번이나 끼어들려고 했지만 기회를 다 놓쳐버렸고 어쩔 수 없이 사하나의 손을 잡거나 쿡쿡 찔러야 했다.그러자 사하나는 불만이 가득 섞인 표정을 한 채 미간을 찌푸리며 성유리를 쳐다보았다.성유리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자신의 뒤에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사하나는 순식간에 등골이 싸해졌다.뒤를 천천히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안희연이 미소 띤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성유리는 전에 화장실에서 사람들이 누군가의 뒷담화를 하거나 욕을 하는 모습을 많이 봤었다. 하지만 어느 날 자신이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37화

    사하나는 그런 안희연의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안희연 씨 맞으시죠? 전에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모습 본 적 있는 것 같아요.”“아, 그래요?”안희연은 그제야 사하나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환하게 웃으며 대답을 이어갔다.“사하나 씨 제 팬이신가 봐요?”‘팬? 누가? 별꼴이야. 정말!’사하나는 속으로 안희연을 몇 번이나 욕했지만 입 밖으론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그러다 감정을 추스르고는 입을 열었다.“팬은 아니고 그냥 몇 번 본 것뿐이에요. 근데 제가 알기론 남자 친구 있으시지 않았나요? 안희연 씨랑 친구라고 한 것 같은데.”“맞아요. 그렇지만 저희는 이미 헤어졌어요.”안희연은 사하나의 말을 깔끔하게 인정하며 계속 말했다.“이 시대에 연애 좀 하는 것도 법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잖아요. 누구나 다 과거는 있는 법이죠. 안 그래요?”안희연은 성유리를 쓱 쳐다보며 이런 말을 했는데 마치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성유리는 그저 박한빈의 과거일 뿐이라는 말을 전하려는 의도 같았다.그 모습에 겨우 화를 억누르던 사하나가 폭발하려는 순간, 성유리가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아주었다.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표정 관리를 못하던 사하나를 본 연정우는 먼저 술잔을 들며 말을 꺼냈다.“이제 보니 박 대표님이랑 이렇게 같이 식사하는 것도 참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오늘 이 기회를 빌어 제가 한 잔 따라드릴까요?”박한빈은 연정우의 말에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좋습니다.”두 사람은 그렇게 술잔에 가득 담긴 술을 단번에 마셨다.한잔, 두잔, 세잔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갑작스러운 두 사람의 음주에 놀란 사하나가 낮은 소리로 성유리에게 말했다.“지금 이게 뭐 하는 거예요?”“혹시 누가 먼저 취하는지 붙어보려는 건가? 연 대표님 주량이 어떻게 돼요?”성유리는 사하나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그저 뚫어져라 앞에 있는 두 사람을 쳐다보기만 했다.솔직히 말하면 성유리는 지금 두 사람이 이러는 게 너무 싫었다.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36화

    “내일 몇 시 비행기예요? 전 내일 바빠서 아마 공항까지는 못 데려다줄 것 같아요.”사하나는 말을 하면서도 연정우를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그녀는 지금 너무나도 티 나게 연정우에게 무언의 암시를 주고 있었다.연정우는 그 기회를 놓칠세라 얼른 사하나의 말에 대답했다.“그래요? 유리야, 그럼 내가 데려다줄게. 몇 시 비행기야?”성유리는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그럴 필요 없어. 우리가 알아서 택시 타고 갈게.”“그래도 내가 데려다줄게. 다음엔 언제 볼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연정우는 성유리를 조금 원망하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고 옆에 있던 사하나도 맞장구를 쳐줬다.“연 대표님 말이 맞아요. 성유리 씨? 이번엔 결정을 너무 빨리 내리신 것 같아요. 저희한테 반응할 틈도 안 주시고.”성유리는 두 사람의 말에 그저 옅은 미소만 지어 보일 뿐이었다.그때, 연정우는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을 하늘이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아저씨가 주는 선물이야.”하늘이는 핑크색으로 정교히 포장돼 있는 선물 상자를 보고는 성유리의 눈치를 쓱 살폈다.성유리는 단번에 상자 위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로고를 발견했는데 어린아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귀중한 물건이었다.그녀가 이 선물을 어떻게 거절할까 고민하는 와중, 누군가의 목소리가 식당 안에 울려 퍼졌다."어머,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사하나가 먼저 뒤돌아 소리가 나는 쪽을 봤고 목소리의 주인공을 발견한 순간 그녀는 하마터면 마시고 있던 음료를 뱉을 뻔했다.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한빈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던 안희연이었다.꽤 잘나가는 인플루언서인 안희연은 멀리서 봐도 자태가 아름다웠지만 금성에서는 내놓을 정도의 미모가 아니었다.그래서 사하나는 박한빈이 안희연이 바람을 피우는 사실을 알고 나면 당연히 그녀를 내팽개칠 줄 알았다.하지만 박한빈은 그러지 않았다.안희연의 옆에 서 있는 남자는 누가 봐도 박한빈이었다. 그녀는 그의 팔짱을 꽉 끼고 있었는데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35화

    성유리는 박한빈의 말에 어떠한 대답도 없이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차 안에는 적막만이 흘렀고 침묵하던 하늘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엄마, 나는 하나 이모랑 더 놀고 싶어.”“응. 오늘 저녁에 같이 밥 먹자고 약속했어.”“연정우 아저씨도 와?”하늘이가 물었다.아이의 말에 성유리는 무의식적으로 박한빈을 슬쩍 쳐다보았다.다른 이유에서가 아닌 행여나 박한빈이 갑자기 화를 낼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박한빈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조용히 운전만 했다.성유리는 그제야 하늘이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아이는 잔뜩 신나 하며 말했다.“와! 너무 좋아. 난 연정우 아저씨랑 같이 노는 게 제일 행복해.”“왜?”“왜냐하면 정우 아저씨는 잘생겼거든. 그리고 아저씨는 엄마를 잘 보호해 줄 것 같아.”하늘이의 말에 운전만 하던 박한빈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조롱 섞인 눈빛으로 성유리를 쳐다보았다.성유리는 그의 눈빛을 애써 못 본 체했고 시선을 하늘이에게만 고정했다....성유리는 그날 저녁, 연정우와 밥 약속이 있었다. 필경 전에 갑자기 연정우와의 약속을 취소해 버린 죄가 있으니 말이다.게다가 곧 금성을 떠날 성유리기에 오늘 밤이 아니라면 아마 만날 기회가 더는 없을 것이다.하지만 성유리는 하늘이까지 데리고 그와 만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세 사람이 같은 장소에 있으면 분위기가 이상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저번에 놀이공원을 가려고 한 날에도 성유리는 사실 사하나와 함께 가려고 약속을 한 상태였다.사하나는 성유리가 자신과의 약속을 깨고 박한빈과 함께 놀이공원으로 향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잔뜩 화가 나 씩씩거리기도 했다.그녀는 한결같이 성유리가 얼른 박한빈과 하늘이 사이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빨리 불필요한 관계를 끊으라고 재촉하고 있었다.생물학적인 아버지라는 존재는 필요 없다는 말과 함께. 성유리가 누누이 말한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주고 싶다는 말 또한 사하나는 전혀 새겨듣지 않았다.사하나는 박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34화

    성유리는 하늘이가 박한빈과 할 말이 있어서 지금 이런 부탁을 하는 것임을 알아차렸다.‘조용히 자리 피해줘야겠네.’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자리에서 일어나 박한빈을 슬쩍 보고는 앞으로 걸어갔다.병원 앞에 마침 편의점 하나가 있어 성유리는 하늘이를 위해 우유 한 개와 작은 케이크 하나를 구매했다.성유리는 하늘이가 박한빈에게 대체 무슨 말을 할지 짐작이 가지 않아 시간을 더 벌어주려고 계산을 마치고 나서도 병원 주위를 맴돌았다.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성유리가 올라갔을 때는 하늘이와 박한빈이 이미 대화를 마친 상태였다.두 사람은 조용히 복도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성유리는 사실 전까지만 해도 하늘이가 자신의 이목구비와 아주 닮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나란히 앉아 있는 박한빈과 하늘이를 보니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확신이 들었다.특히 두 사람이 입을 오므릴 때면 복사 붙여넣기를 하는 것처럼 매우 똑같았다.성유리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두 사람을 지켜보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엄마.”그녀를 발견한 하늘이는 눈까지 반짝이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성유리는 자신에게로 달려오는 하늘이의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으며 물었다.“배고파?”“응. 우유는? 우유 마시고 싶어.”“여기.”성유리가 빨대까지 꽂아주자 하늘이는 우유를 건네받고는 단숨에 들이키기 시작했다.그때, 박한빈이 두 명에게로 다가오며 말했다.“검사 결과 나왔대. 내가 가서 볼게.”성유리는 그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고 박한빈이 멀리 떠나가자 그제야 하늘이에게 물었다.“엄마가 없을 때 무슨 말 했어?”“누구랑?”“아빠랑 말이야.”“나는 아무 말도 안 했어.”하늘이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했고 성유리는 피식 웃으며 아이의 귀를 살짝 잡고는 다시 물었다.“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엄마가 모를 것 같아?”하늘이는 고개를 숙여 우유만 마시며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하지만 뭔가 숨기는 것이 있는 것 같은 하늘이의 모습에 성유리는 너무도 궁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33화

    “왜 자리가 없겠니? 거실에 걸어두면 되지.”“그럼 이 집의 인테리어랑 너무 안 어울릴 것 같은데요.”“그게 무슨 대수라고! 우리 손녀가 직접 그려준 그림은 어디 가서 돈 주고도 못 사.”김서영의 완강한 태도에 성유리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그러나 김서영은 여전히 환하게 웃으며 하늘이를 보더니 물었다.“뭐 갖고 싶은 거 있니? 있으면 다 말해. 할머니가 사 오라고 말할 테니까.”“괜찮아요. 할머니.”하늘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그리고 할머니, 저 이제 집에 가고 싶어요.”아이의 말에 김서영은 멍해졌다. 그러다 얼마 후, 그녀는 천천히 입을 뗐다.“집에 가고 싶다니? 지금도...”“아니요. 제 뜻은 경운시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이에요. 저랑 엄마 둘이서만 사는 집.”하늘이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고 김서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성유리와 아이를 번갈아 보았다.김서영뿐만 아니라 옆에 있는 성유리도 하늘이가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성유리는 얼른 하늘이를 향해 돌아앉더니 물었다.“왜 그래? 왜 갑자기 돌아가려고?”“그럼 우리는 평생 여기서 사는 거야?”하늘이는 성유리를 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계속 물었다.“민준 오빠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오빠를 못 본 지도 너무 오래됐잖아. 안 그래?”“하늘이 네 친구야? 그럼 할머니가 내일 하늘이 친구를...”말을 하던 김서영은 자신의 말이 너무 황당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이내 입을 꾹 닫았다.“할머니, 시간 있으면 언제든지 할머니 보러 올게요. 할머니도 우리 보고 싶으면 우리한테 와도 돼요.”잔뜩 당황한 성유리와는 달리 하늘이는 너무 진지하고 단호했다.결국, 김서영은 포기한 듯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럼... 병원 가서 한 번 더 검사받고 나서 다시 말하자. 저번에 의사가 언제 다시 오라고 했지?”“이번 주 금요일이요.”가만히 앉아 있던 성유리가 그제야 대답했다.“그럼 한빈이보고 데려다주라고 할까?”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32화

    “그 사람은?”성유리는 갑자기 이런 물음을 묻는 하늘이가 무척 당황스러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다 색칠 놀이에 필요한 색연필을 아이에게 건네주며 되물었다.“누구?”하늘이는 색연필을 건네받아 푸른 초원을 초록색으로 칠하며 말했다.“있잖아. 그... 그 남자.”성유리는 그제야 하늘이가 말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눈치챘다.“하늘이 아빠 말이야?”“응.”하늘이가 고개를 끄덕였다.“엄마도 몰라. 근데 갑자기 아빠는 왜 찾는 거야?”전에 박한빈은 이곳에 자주 오지 않았었다. 그래서 하늘이도 박한빈의 존재를 굳이 신경 쓰지 않았고 가끔 마주친다 해도 피해버리거나 무서워 숨었었다.하지만 오늘, 하늘이는 갑자기 성유리에게 박한빈의 행방을 물었다.성유리는 하늘이를 뚫어져라 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아빠는 갑자기 왜 묻는 건데?”“아니야. 그냥... 물어보는 거야.”하늘이는 성유리의 눈도 마주치지 못하며 열심히 색칠하는 척했다.어찌나 힘을 세게 주어 색을 입혔는지 그림 종이는 이미 여러 군데 찢겨 있었고 성유리는 아이의 속내를 알아차렸다.“아빠 보고 싶어?”“아니.”하늘이는 주저하지도 않고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성유리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했다.“괜찮아. 보고 싶으면 보러 가면 되지.”성유리의 말에 하늘이는 죄를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더니 입을 열었다.“그럼 내가 너무 배신자 같잖아.”“배신자라니?”“내가 그러면 난 엄마를 배신한 사람이 되는 거야.”성유리는 아이의 말에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누가 그래?”“근데 그 남자는...”“엄마가 그랬잖아. 그 남자가 아니라 하늘이 아빠라고.”성유리가 단호한 목소리로 하늘이에게 계속 말했다.“만약 아빠가 아니었다면 하늘이는 이 세상에 올 수도 없었어. 그리고 하늘이 몸에는 아빠의 피가 흐르고 있어.”“그러니까 아빠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 건 당연한 거야. 서로 이끌리고 끈끈하게 지내는 것도 아주 좋은 일이고. 이런 일로 부끄러워하거나 미안해할 필요는 전혀 없어. 엄마는 절대 하늘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31화

    성유리의 팔목을 잡고 있는 박한빈의 힘은 상당했다.그 고통에 성유리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지만 아프다는 티도 내지 않고는 박한빈을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그거 아세요? 사실 그때 하늘이가 아플 때 제가 제일 먼저 생각한 사람은 바로 박한빈 씨예요.”성유리가 나지막한 소리로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박한빈 씨한테 전화를 너무 걸고 싶었는데 용기나 안 났어요.”“왜냐하면 저도 박한빈 씨가 상처받은 걸 잘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나... 제 아이한테 어떤 태도를 보일지 짐작이 안 됐어요.”“나중에야 하나 씨가 그러더라고요. 박한빈 씨가 소개팅까지 하면서 결혼할 준비를 한다고. 게다가 하늘이 상황도 알면서 신경도 안 쓰다고 있다는 말도 저한테 했어요.”“그건 다 오해야!”박한빈이 성유리의 말에 끼어들며 반박했다.“그때 내가 사하나 씨랑 만났을 때 난 그 사람이 현장 일에 대해 말하는 줄 알았어. 나는 절대...”“저도 알아요. 그다음은요?”성유리가 물었다.그러자 박한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그녀의 물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나중에 저희 상황을 다 알고 나서도 왜... 그렇게 모질게 구셨죠?”“하늘이가 저한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도 아시면서.”“사실 그때 만약 저희가 앉아 대화를 나눴더라면 아마... 다시 잘 될 가능성은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그러지 않으셨죠.”“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박한빈 씨는 아이를 이용해 저를 협박하고 벼랑 끝까지 내모셨잖아요.”“박한빈 씨가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하지 않고 계실 때, 하루하루 창백해져 가는 하늘이의 안색을 지켜만 봐야 하는 제 심정을 당신은 죽을 때까지 모르실 거예요.”“하늘이는 제 몸의 일부이고 제 피부이자 살이에요. 저랑 피를 나눈 아이가 저한테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세요?”성유리는 갑자기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박한빈을 조롱하듯 물었다.“아니면 혹시 그걸 아시니까 일부러 더 그랬던 건가요?”“박한빈 씨, 전에 저를 어떻게 대하셨던 전 상관이 없었어요. 심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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