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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작가: 송진
성유리의 표정은 전혀 장난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진지했지만 진무열은 그럼에도 웃음을 터뜨렸다.

“가자, 이번에 돌아오면서 파티시엘 몇 명 데려왔거든. 디저트들이 딱 네가 좋아할 만한 것들이야.”

말을 마친 진무열은 성유리를 데리고 앞으로 걸어갔다.

진무열이 오늘 파티의 주인공이니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향해 있었지만 진무열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성유리만을 데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는 테이블에 놓인 디저트를 성유리에게 건네주었다.

자신이 인정한 좋은 것은 같이 나누려고 하는 순진한 어린 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진무열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해서 성유리도 똑같이 굴 수는 없었다.

눈앞에 들이 밀어진 케익을 한참 동안 보고 있던 성유리는 마침내 그걸 받아들고는 말했다.

“의도가 너무 눈에 잘 보이잖아.”

그 말에 진무열은 눈썹은 꿈틀거리며 물었다.

“뭐가?”

“내가 방패가 되어주길 바라는 거잖아.”

성유리는 케익을 한입 베어 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 한참 만에 먹는 케익인 것 같았다.

박한빈과 성유리가 함께 사는 도연제에도 파티시엘은 있었지만 그들은 상류사회에선 별로 환영받지 않는 이렇게 달고 느끼한 케익은 잘 만들지 않았다.

그들에게 케익은 그저 특별한 날 분위기를 내기 위해 준비하는 것일 뿐이었다.

특별한 날에만 만들고 또 그걸 진짜로 먹는 사람이 없었기에 파티시엘들은 당연히 맛보다는 겉모습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열세 살에 처음 케익을 먹어본 성유리한테는 케익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되어버렸기에 성유리는 지금도 오랜만에 먹어본 달콤한 케익을 천천히 녹이며 음미하고 있었다.

은은한 우유 향과 상큼한 과일 향에 기분까지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까보다 조금 펴진 성유리의 미간을 주의 깊게 본 진무열은 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너는 여전히 전이랑 달리진 게 없네.”

“그래서 이게 나한테 주는 뇌물이야?”

케익을 삼킨 성유리가 묻자 진무열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역시 너는 못 속이겠다.”

그때 성유리의 눈에 맞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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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빈 씨가 저랑 싸울 사람인 것 같나요?”성유리의 반문에 김서영은 잠시 멍해졌지만 이내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할 말은 없네.”그러면서도 천천히 말을 덧붙였다.“하지만 그 애 성격상 가끔은 사람 속 뒤집는 말을 할 수도 있어. 그래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라면... 그럴 리 없을 텐데?”성유리는 그 말에 대답 대신 시선을 살짝 돌리더니 잔을 들어 한 모금 더 마셨다.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사실 저는 화난 것도 아니에요.”“오?”“그냥... 보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성유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을 이어갔다.“화가 난다기보다는... 너무 답답해요. 저에 대한 그 사람의 불신이.”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저는 도대체 어떤 모습을 보였기에 박한빈 씨가 그렇게 오해한 걸까 싶어요. 대체 무슨 이유로 제가 고작 남이 하는 몇 마디 말에 흔들릴 거라고 생각했을까요?”김서영은 이미 박한빈에게서 모든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그럼에도 다시금 성유리의 입에서 직접 이야기를 듣고 나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그녀의 가벼운 웃음에 성유리는 더욱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김서영을 바라봤다.“네가 뭘 잘못했을까 고민할 필요 없어.”김서영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이건 네 잘못이 아니라 그 애 스스로의 문제야.”“걔가 널 믿지 않는 게 아니야. 단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거지.”“네가 너무 소중해서 혹시라도 잃을까 봐 불안한 거야. 그래서 계속 확인하고 싶어 하고 스스로 선택받을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서는 거지.”그녀의 말에 성유리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하지만 김서영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잔을 채워주며 계속 말했다.“아무튼 괜찮으면 된 거야. 결국엔 둘이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해결될 테니까.”그리고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으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적어도 이틀 정도는 걔가 좀 불안해하면서 지내게 내버려둬.”성유리는 김서영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그녀의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03화

    하늘이의 맑은 목소리는 어쩐지 약간 남의 불행을 즐기는 듯한 기색마저 띠고 있었다.분명, 딸은 부모의 가장 든든한 존재라 하지 않던가?그런데 하늘이는 대체 어느 쪽인 걸까?박한빈은 그 자리에 서서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한편, 성유리는 방에 스스로를 가둔 채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그녀가 모습을 드러낸 건 저녁 식사 때가 되어서였다.말을 아낀 채 식사하는 내내, 단 한 번도 박한빈을 쳐다보지 않았다.식사가 끝나자 박한빈은 그제야 기회를 잡아 성유리에게 먼저 물었다.“이따 나랑 같이 집으로 돌아갈 거야?”“아니요.”망설임 없이 돌아온 단호한 대답에 박한빈의 표정이 굳어졌고 곧장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잡으려 했다.그러나 성유리는 그보다 먼저 박한빈의 손을 뿌리쳤다.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이번엔 그녀의 어깨를 붙잡으려 했는데 순간, 김서영이 입을 열었다.“그만하고 우선 돌아가는 게 좋겠다.”차분한 목소리가 박한빈을 멈춰 세웠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김서영을 보며 말했다.“어머니.”그러나 김서영은 박한빈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성유리를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마침 내일 주말이잖니. 하늘이도 학교 안 가는 날이고... 너희 둘이 여기서 이틀 정도 쉬어가는 게 어떠니?”그리고 다시금 박한빈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너는 회사 일로 바쁘잖아. 일단 돌아가도록 해.”결국 박한빈은 억지로 ‘쫓겨나듯’ 이곳을 떠났다.하늘이 역시 그런 박한빈을 달갑지 않게 대하는 듯했다.하지만 밤이 되어 성유리가 아이를 재우던 중, 하늘이는 갑자기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엄마, 진짜로 화난 거야?”그 질문에 행동을 멈춘 성유리는 이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그녀의 미소에 하늘이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말했다.“역시 그럴 줄 알았어. 엄마가 진짜 화난 건 아니구나.”“응?”“엄마가 진짜 화났다면 바로 나를 데리고 바로 경운시로 갔겠지.”그 말을 듣고 나서도 성유리는 뭐라 반박하지 못했다.결국 성유리는 아이의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02화

    박한빈의 말이 끝나자 성유리는 갑자기 조용해졌다.하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침묵을 견디기 힘들었던 박한빈이 무언가 더 말하려던 찰나, 성유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뭐라고?”뜻밖의 질문에 박한빈은 순간 멍해졌고 무심결에 되묻고 말았다.그러나 성유리는 차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박한빈 씨 눈에는 제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요? 제가 얼마나 이성 없이 굴어야 그런 선택을 하겠어요?”성유리는 겉으로는 차분해 보였지만 목소리에는 분명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그제야 박한빈은 겨우 한숨을 내쉬었다.“아까 제가 병실에 도착했을 때 연정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요?”성유리가 다시 물었다.“뭐라고 했는데?”“박한빈 씨가 일부러 하나 씨 아버지가 편찮으시단 걸 저한테 숨겼다고 하더라고요.”성유리가 눈을 가늘게 뜨며 계속 말했다.“하지만 저는 그 자리에서 바로 대답했죠. 저는 박한빈 씨를 믿는다고.”그녀는 박한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그런데 이게 박한빈 씨가 제 신뢰에 대한 보답인가요?”“아니야, 그게 아니고...”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박한빈이 서둘러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성유리는 손을 들어 그의 움직임을 막았다.“거기 서 계세요.”단호한 태도에 박한빈은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이내 성유리는 그를 한 번 흘끗 바라보더니 곧장 뒤돌아 걸어갔고 그 속도는 무척 빨랐다.박한빈이 멍하니 서 있는 사이, 성유리의 모습은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그는 급히 성유리를 뒤따라갔다.하지만 병원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성유리가 탄 차는 사라진 뒤였다.결국 박한빈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실버 포레스트로 돌아갔다.그런데 집에 들어서자마자 깨달은 사실 하나, 성유리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박한빈은 순간적으로 불안감이 엄습했다.급히 도우미들에게 물어보니 그들은 성유리가 아예 집에 오지 않았다고 했다.바로 전화를 걸었지만 한 통 걸 때마다 곧바로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01화

    박한빈은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았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성유리를 자신의 뒤로 살짝 끌어당겼다.“연정우 씨를 두 분이 어떻게 보든, 좋게 평가하시든 상관없지만 성유리는 이제 제 아내입니다. 이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죠.”류수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유리는 얼어붙은 분위기를 눈치채고 서둘러 중재하려고 나섰다.“사모님, 죄송해요.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그러면서 박한빈을 흘깃 째려보며 말했다.“사모님께서 농담하신 거 몰라요? 얼른 사과하세요.”“사과는 됐어.”성유리가 박한빈의 손을 잡으려는 순간, 류수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유리야, 생각해 보니 방금 박한빈 씨가 한 말이 틀리지도 않아. 이 일은... 확실히 나와는 무관한 일이었는데 괜히 참견했네.”그녀는 얼굴을 살짝 돌려 박한빈을 보며 말을 이었다.“의사도 말했지만 제 남편은 지금 충분한 휴식이 필요해요. 직접 이렇게 찾아와주신 마음은 충분히 알았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 주세요.”아까완 달리 류수미의 얼굴은 훨씬 더 싸늘하게 식어있었다.성유리는 뭔가 더 설명하려 했지만 박한빈은 오히려 이 상황을 반겼다는 듯 더 말을 길게 하지 않았다.류수미가 추가로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고 침대에 누워 있는 사민혁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넨 후 바로 성유리를 이끌고 병실을 나섰다.단 한마디도 더 할 기회를 주지 않은 채.그렇게 병실에서 끌려 나오듯 따라 나온 성유리는 결국 참지 못하고 박한빈의 손을 뿌리쳤다.“잠깐만요, 박한빈 씨! 제가 기다리라고 했잖아요!”그제야 멈춰 선 박한빈이 고개를 돌려 성유리를 바라봤고 그녀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따져 물었다.“대체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내가 뭘?”박한빈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설마 지금 나한테 따지는 거야?”“이건 오히려 내가 너한테 물어야 할 질문 같은데?”그는 차가운 시선으로 성유리를 바라보았다.“만약 내가 방금 거기 들어가지 않았다면 너는 뭐라고 대답할 생각이었어?”“설마... 너도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00화

    “어디야?”성유리가 전화를 받자마자 박한빈이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바로 물었다.“병원이요.”성유리는 박한빈을 속일 생각이 없었기에 솔직하게 대답하자 수화기 너머 그는 잠시 침묵했다.“전 일이 있어서 먼저 끊을게요.”그녀는 박한빈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성유리가 병실 안으로 걸음을 옮겼을 때, 안에 있던 두 사람은 대화를 하고 있지 않았다.주춤거리던 성유리는 어색함을 무릅쓰고 먼저 입을 열었다.“저 정우 바래다주고 왔어요.”“어... 그래.”류수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고마워.”성유리는 입술을 오므리고 있다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저 방금... 일부러 몰래 들으려던 건 아니었어요. 정말... 죄송해요.”“괜찮아. 우리도 네가 들으면 안 될 말을 한 게 아니거든.”사민혁은 얼굴에 미소를 띤 채로 되묻기까지 했다.“아마... 없겠지?”“없어요. 없어요!”성유리가 손까지 내저으며 대답하자 류수미는 웃음을 크게 터뜨렸다.“먹을래?”그러다 깎고 있던 사과 하나를 성유리에게 건네주며 물었다.“저... 제가 혼자 깎아 먹을게요.”류수미가 직접 깎은 사과를 넙죽 받아먹기 어색했던 성유리는 거절할 마땅한 이유도 떠오르지 않아 결국 이 한마디만 뱉었다.사과를 건네던 류수미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성유리는 허락을 맡은 것 마냥 자리에 앉았다.뭐든지 빠릿빠릿하게 하는 것이 습관이 된 성유리는 사과를 손에 들고 칼질 몇 번 만에 깨끗하게 껍질을 다 깎았다.사민혁은 옆에서 그 모습을 보더니 감탄했다.“딱 보니까 평소에 이런 거 잘했구나. 아주머니와는 달리. 봐라, 아주머니가 깎은 사과.”그의 말에 류수미는 남편을 째려보며 반박했다.“그럼 드시지 마세요.”두 사람의 사이는 늘 좋았다. 잉꼬부부라고 해도 될 정도로.중간에서 둘의 모습을 보던 성유리는 긴장했던 마음이 서서히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류수미는 문득 무언가 떠올랐는지 성유리를 보며 물었다.“맞다, 아까 이미 들었다고 했지? 그럼 넌 내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699화

    성유리의 말투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부드러웠으나 연정우는 바로 그녀의 뜻을 이해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끔찍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연정우를 보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내뱉었다.그리고 성유리는 왜 연정우를 미워하지 않는 걸까?그녀는 어떻게 연정우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정말 연정우가 성유리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녀는 그를 미워해야 한다!그런데 왜 성유리는 단 한 점의 미움의 감정도, 원망도 없는 것일까. 혹시 연정우는 미움받을 자격도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이런저런 생각이 들자 연정우의 표정은 조금씩 사라졌고 안색도 매우 안 좋아졌다. 그러나 성유리는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그래서 그녀는 연정우에게 고개만 살짝 숙여 인사를 하고는 발걸음을 뚝 멈췄다.“그럼 여기까지 배웅해 줄게.”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연정우는 그제야 그들이 어느새 병원 입구에 다 왔음을 알아챘다.그렇지만 성유리는 그의 답변을 기다리지도 않고 말을 마치는 즉시 몸을 돌려 걸어갔다.제자리에 남겨진 연정우는 그녀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갑자기 또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지만 그 웃음은 어딘가 괴이했다.오랜 시간이 지난 후, 성유리의 모습이 연정우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는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뒤돌아 떠나갔다.한편, 성유리는 곧바로 병실로 돌아왔고 이때 병실은 아주 조용헀다.류수미는 고개를 숙인 채 사과를 깎고 있었으며 사민혁은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었다.하지만 텔레비전의 소리는 너무도 작았기에 성유리는 단번에 그의 주의가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정우는 정말 좋은 애인 것 같아요”그러던 와중, 갑작스러운 류수미의 한 마디.그 한마디에 사민혁은 고개를 돌려 류수미를 쳐다봤고 그 눈빛에 담긴 의미를 그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그러나 류수미는 아무렇지 않아 하며 계속 말했다.“만약 가능하다면... 하나가 돌아온다면 난 반드시 정우와 결혼시킬 거예요.”“왜 또 그런 말을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698화

    연정우는 성유리가 할 대답을 쭉 생각해 봤었다.하지만 단 한 가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바로 이것이다.게다가 지금 성유리의 눈빛을 보니 일부러 연정우를 놀리는 것이 아니라 사뭇 진지하고 진심인 것 같았다.‘정말 진지하게 나한테 묻네.’연정우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 성유리가 말을 이어갔다.“만약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때 우린 헤어지지 않았나? 게다가 우리 둘이 만날 때 나도 박한빈 씨랑 따로 연락하지 않았는데?”“난 이 방면에선 깨끗해. 그래서 너한테 잘못한 적은 없어.”성유리의 말에 연정우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너 지금... 나를 돌려 까는 거야?”그의 물음에 성유리는 멍해있다 이내 대답하려고 입을 뻥끗거렸다.그러나 연정우가 먼저 말했다.“나도 알아. 이런 일엔... 나도 확실히 문제가 좀 있었지. 근데 유리야, 네 생각엔 그때 나한테...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고 생각해?”연정우의 말에 성유리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한참을 그를 쳐다보다 되물었다.“그러니까 그때 넌 날 속이고 있었던 거네? 맞아?”“뭐?”“전에 나한테 그랬잖아. 아무것도 없어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다른 사람이 네가 가진 것들을 다 뺏어가도 나만 있으면 된다고 했잖아. 그 말들... 다 거짓말이었어?”“아니야.”연정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고 성유리는 입을 꾹 닫아버렸다.아마 스스로도 자신이 한 행동과 말이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는지 연정우는 다른 변명을 더 하려고 했다.그러나 성유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그럼 나도 이젠 알겠네.”“뭘... 알겠다는 거야?”“그때 네가 날 선택한 이유가 사실 그냥...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그랬던 거란 걸.”성유리는 차분한 태도로 말을 이어갔다.“당시 네 회사는 이미 절벽 끝까지 밀려났었지. 그래서 박한빈 씨와 겨룰 자격도, 그럴 실력도 없었고. 너는 그냥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나를 선택한 거야. 그런 김에 나한테서 너에 대한 호감이나 죄책감도 얻고. 맞지?”“나중에 유효정 씨가 찾아왔을 땐 너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697화

    성유리의 목소리가 들리자 사민혁은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그러자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 류수미를 바라보며 말했다.“죄송해요. 저는... 이제야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았어요. 어머님은...”“의사 선생님도 그랬어. 이젠 괜찮다고.”대답하는 류수미의 태도는 평온하기 짝이 없었다.“게다가 어젯밤 내내 정우가 있어서 별로 큰일도 안 생겼고.”“저도 딱히 한 건 없는걸요. 그래도 다행히 아버님께서 잘 이겨내셨어요. 근데 꼭 무리하면 안 되고 잘 휴식해야 한다고 했으니 명심하십시오.”“그래요. 정우 말이 맞아요.”류수미는 연정우의 말에 맞장구를 쳐줬다.“제가 그랬잖아요. 회사 일은 다른 사람한테 맡기면 된다고. 저흰 이제 나이도 있는데 돈을 그렇게 많이 벌어서 뭐 하시려고요? 가지고 갈 수도 없고 남겨줄 수도...”말하던 류수미는 갑자기 입을 꾹 다물었고 고개를 돌려 성유리를 조심스레 쳐다봤다.아무렇지 않은 척 서 있던 성유리는 류수미의 말을 들은 어느 한순간, 두 주먹을 꽉 쥐었다.분위기가 얼어붙으려고 하던 그때, 연정우가 먼저 말을 꺼냈다.“저는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류수미도 얼른 대답해 줬다.“그래.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으니 얼마나 피곤하겠니? 돌아가서 푹 쉬어, 이번엔... 정말 고마웠어.”“이러지 마시라니까요.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어제도 말씀드렸다시피.”성유리는 연정우가 언제부터 사씨 가문 사람들과 이렇게 친해졌는지도 몰랐다.하지만 그들이 연정우를 보는 눈빛을 관찰하니 다들 그를 신뢰하고 좋아하는 것 같았다.세 사람의 모습을 보던 성유리는 문득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유효정.그녀는 이미 세상을 떠났으나 국내에선 아무도 유효정의 사망 소식을 신경 쓰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하기야 유씨 가문은 이미 타락한 상태고 그녀의 부모님 또한 세상을 떠났다.그러니 유효정의 사인이 도대체 무엇인지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유리야, 네가 나 좀 바래다줄래?”연정우가 묻는 말에 성유리는 그제야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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