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명왕이 자기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수란석은 속으로 화가 치밀어 오르며 더는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동안 성릉관의 일을 명확히 밝혀야겠다는 마음이 굴뚝같았다.두 눈에서 불꽃이 튀고 있을 때 사여묵이 물었다. "수 대장군이 부상을 입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다 나으셨습니까?"수란석은 눈빛을 거두며 대답했다. "이리 신경 써 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형님께선 이제 큰 이상이 없습니다.""이번에 수 대장군과 함께 오실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수란석의 눈빛은 차갑고 냉랭했다. "형님께선비록 큰 이상은 없지만 과거에 중상을 입으셨기에 장거리 이동은 부적합합니다."사여묵은 수란키가 갇혔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 말했다. "우리 소 대장군도 두 번이나 화살을 맞았고 게다가 이제 막 칠순을 넘긴 고령이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일을 처리하러 성릉관에서 진성으로 돌아오셨습니다."수란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저 말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오늘은 분명 저런 얘기를 안 하기로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나에게도 할 말이 아주 많은데.’하지만 수란석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듯 사여묵은 또 다른 화제로 말을 돌렸다. "아참, 듣자니 수 상서께서는 친히 검을 만드는 걸 좋아하신다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어떤 신검을 만드셨는지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주제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바뀌었고 수란석은 화가 난듯한 목소리로 눈을 크게 뜨며 대답했다. "군무가 바빠서 이제 더는 검을 만들지 않습니다. 왕야께서 서경의 무기가 보고 싶으시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전장에 나가면 충분히 볼 수 있었기에 사여묵은 그를 가볍게 바라보며 한 마디 던졌다. "좋습니다."목소리는 매우 낮았지만, 수란석의 귀에는 아주 도발적으로 들렸다. 마치 그가 전쟁을 원한다는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내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왕이 말하길 북명왕은 두 나라가 전쟁을 계속하는 걸 가장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두 나라가 전쟁을 하면 소가는 분명 죄
송석석은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 그들은 전쟁을 피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서경이 그들이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확신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수란석에게는 송가와 소가만 전쟁을 원하지 않으며 북명왕은 오히려 군권을 되찾기 위해 전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 송석석은 시선을 돌리며 냉옥 장공주의 유창한 상국 말에 귀 귀울였다. "본궁은 항상 왕비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상국에 온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왕비님을 뵙기 위함입니다."그녀는 방금전에도 이렇게 말했었지만 이번에는 표정이 진지하고 진심에서 우러나 보였으며 아까 같은 가식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다. 송석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공주님을 뵙게 되어 저 또한 영광입니다."가까이에서 보니 냉옥 장공주는 어제 성문에서 봤을 때보다 피로해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 충분한 휴식을 취한 모양이었다. 그녀의 눈 밑의 다크서클은 얇은 화장 덕분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전체적인 상태는 실제 나이보다 몇 년 더 많이 먹은 듯 지쳐보였다. 송석석은 그녀가 정권을 보좌했던 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경은 내외의 위협을 겪었는데, 그들이 그동안 겪은 고통은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다. 내일 그녀와 신경전이 벌어질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에게 존경심을 느꼈다.서로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궁중 연회가 시작되었다.모두 자리에 앉아 식사를 준비했다. 서경의 사절단은 여전히 오른쪽에 앉아 있었고, 사여묵과 송석석은 나란히 앉았다. 태후는 음식을 같이 먹지 않았고 냉옥 장공주와 잠시 대면하기 위해 나왔다. 이는 사절단을 중시하는 태도였다.황제와 황후가 자리를 지키고 여러 왕야와 권신들도 함께 했다. 물론 회왕은 참석하지 않았고 회왕비도 오지 않았다. 연왕은 측비 김씨와 함께 자리에 앉았는데, 그는 이런 자리에 절대로 시민주를 데리고 오지 않는다. 아무리 시민주가 정비라도 말이다.연회 중 술잔이 오가며 두 나라는 우호적인 관계인 것처럼 보
정영수는 이 방법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북명왕이 왕비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든 간에 이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무 소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큰 위험을 동반할 수도 있었다."수 대인, 저는 여전히 이 방법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분명 우리의 소행임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정영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뭐가 옳지 않다는 거냐?" 수란석의 눈빛에는 분노가 섞여 있었다. "우리를 의심하게 하는 것이 바로 내 목적이다. 만약 그가 전쟁을 원한다면 이것은 그에게 큰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는 협상 자체를 파괴하고 즉시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만약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는 이 사건을 모른 척하고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 구출할 것이다. 그럼 우리가 그의 속셈을 알게 되지 않겠냐?""전쟁이 옳지 않다는 겁니다. 공주님께서 두 나라의 전쟁을 피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여인의 생각, 수란키와 똑같이 마음이 나약하구나." 수란석은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주머니에서 손조를 꺼내 정영수에게 건넸다. "보거라. 이것이 바로 폐하의 진정한 뜻이다."등불 아래에서 정영수가 손조를 펼쳤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 손조가 진짜임을 확신했다. 그는 평소에도 황제 앞에서 시중을 들었기 때문에 황제의 필체를 잘 알고 있었다. 손조에는 엄격한 요구 사항이 담겨 있었는데, 상국이 이를 거부하면 즉시 상국을 떠나 전쟁을 선포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정영수는 황제가 처음에는 전쟁을 원했으나 후에 장공주에게 설득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만약 이 손조가 진짜라면... 정영수는 급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면 수 대인은 북명왕을 시험하려는 것이 아니라 송석석을 납치하려는 것이군요."북명왕을 시험하는 것은 구실에 불과했다. 황제는 전쟁을 원했기에 송석석을 납치하여 그들 방식대로 갚으려는 것이다. 이는 예전에 이방이 태자를 납치하고 모욕해 성릉관에서 소가군을 물러나게 한 것과 같은 방법이었다
냉옥 장공주는 소란석과 정영수의 퇴장에 약간 불안한 마음을 느꼈다. 그들은 돌아왔을 때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한 모습이 보였지만 정영수에게 물을 수는 없었다. 궁중 연회에서 몇 번씩 정영수를 불러 내면 쉽게 눈에 띄기 마련이었다. 서경은 현재 내란이 일어나려 하고 냉옥 장공주는 이제 더이상의 충돌을 원하지 않는다. 이번에 공정한 해결을 요구하는 것도 삼황제의 황위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달래기 위해서였다.남강 전쟁에 나가 정의를 위해 싸웠을 때 이미 많은 군사들이 희생되었다. 게다가 사국에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주어 국고는 비어버렸기에 더는 민심을 잃는 전쟁은 감당할 수 없었다. 전쟁을 벌이려면 최소 5년은 더 기다려야 했다.궁거문고 연주가 울리고 무희들이 엄청난 기예를 선보이고 있었지만 모두 속마음을 숨긴 채 거짓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몰래 살펴볼 뿐이었다. 연회가 끝났을 땐 이미 해시중으로 숙청제는 취기가 잔뜩 오른 상태였고 냉옥 장공주는 사절을 이끌고 퇴장 의례를 마쳤다. 술에 취한 숙청제는 궁인들의 부축을 받아 후궁으로 돌아갔다.오늘 밤의 연회는 모두 평화로웠고, 내일의 협상이 어떻게 진행될지, 어떻게 전쟁의 연료가 될지, 그가 직접 대면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사여묵의 사심이 마음에 들었다. 사여묵이야말로 진정 평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가 맘에 들었다. "대공무사"라며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하도 위선적이라 그는 절대 믿지 않았다. 요구가 없는 사람이 더 두려운 법이다. 본성을 어긴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다.진정한 충신, 애국적인 순수한 신하가 있을 수 있긴 하다. 예를 들어 소 대장군은 정말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다. 그는 말로만 하지 않고 실제로 평생을 걸어 행동으로 실천해 왔다. 하지만 사람 마음은 쉽게 변하는 법, 그는 이미 연주에 조사를 보냈는데, 현재까지도 연주에서 문제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심지어 옹현에도 사람을 보냈다. 옹현의 사온의 봉지로 만약
해시중의 어가에는 마차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몽동이는 앞에서 마차를 몰았는데 이제는 이 일에 꽤 능숙해진 것 같았다. 어쨌든 그는 이제 마차가 있는 사람이니 말이다. 이때 시만자가 송석석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오늘 정말 힘들었다며 푸념하기 시작했다. "너희는 안에서 맛있는 걸 먹고 마셨겠지만 우리는 밖에서 찬 바람이나 맞으며 기다렸다. 다행히 보주가 구운 오리와 과자를 준비해 주고 또 배려 깊게 차를 황피 물주머니에 담아 왔으니 말이지, 그렇지 않으면 지금 배고파서 쓰러져 버렸을 것이다."송석석이 웃으며 말했다."시만자 아씨를 굶게 두다니 정말 미안하구나. 일이 끝나면 내 너를 위해 잔치를 열어주겠다."시만자는 그제야 인상을 펴고 밝게 웃었다."역시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너밖에 없다. 내가 인생에서 가장 마음껏 쓸 수 있는 건 아마도 돈 뿐일 것이다."그녀는 주위 사람들에게 돈을 쓰는 걸 좋아했고 외부 사람들에게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만약 동정심이 생기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줄곧 아깝지 않게 돈을 썼다.송석석은 머리를 비스듬히 기울인 뒤 그녀의 머리와 맞대었다. 두 여인은 몽동이가 있으니 별문제 없을 것이라 믿어 외부 소음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회왕부.서재 안에는 어두운 불빛이 하나 켜져 있었다. 그 불빛은 그가 풍상에 쓸려온 얼굴을 비추고 있었는데 평소의 나약하고 소극적인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위험한 눈빛만 번쩍였다. 오늘 밤의 행동에서는 한 점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다.두 나라가 반드시 전쟁을 벌여야만 그들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남강 전쟁에서 그들이 이미 기회를 놓쳤기에 이번에는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숙청제는 그들을 의심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자존심과 명예를 둘 다 취할 수 없었다. 아무리 반역자라고 하더라도 승자가 왕이 되는 법, 이후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는 권력이 있는 자가 결정한다.과거 삼 형제는 명예를 너무 중시하여 그 좋은 기회를 놓쳤고 황자까지 희생시켰다.이제 성공적인 역
회왕비는 문밖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떠났다. 그녀는 왕야가 마치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회왕부에는 몇 명의 낯선 사람들이 왔는데 그들은 왕비인 그녀조차 안중에도 두지 않는 듯 마주쳐도 못 본 척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고요한 밤에 갑자기 말굽 소리가 들렸지만, 청석판 거리에는 아무도 다니지 않았다.진성의 밤은 동서성 및 강변 쪽에서만 번화했으며 그곳의 소음과 웃음소리가 남성까지 전해지지는 않았다.바로 그때 갑자기 말이 울부짖으며 멈추더니 공기 속에 이상한 떨림이 느껴졌다.몽동이는 채찍을 들고 허리에는 긴 칼을 찼다. 마차의 풍등은 먼 곳까지 비추지 못했고, 달이 구름 속에 숨어있는 탓에 주변은 어둠에 휩싸여 오싹할 정도로 음침했다.몽동이는 눈을 감고 공기 속의 변화를 귀 기울여 들으며 귀를 미세하게 움직였다.송석석도 채찍을 쥐고 있었는데 긴 채찍은 마치 붉은 뱀처럼 그녀의 발치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시만자는 검을 움켜잡으며, 검집을 살짝 튕기면 검이 쑥 빠져나오게 단단히 준비를 했다. 어둠 속에서 수십 명의 그림자가 조용히 내려앉았는데 발밑에는 먼지조차 닿지 않아 그들의 경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었다.몽동이는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전투력을 발휘했다. 그는 마치 천둥 같은 힘으로 채찍을 휘두르며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손에 쥐고 경공을 펼쳐 구름을 타듯 날아가면서 칼을 뽑아 그 사람을 향해 내리쳤다.암살자는 치명적인 일격을 피하기 위해 몸을 피했지만 긴 칼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피 냄새가 코를 찔러 암살자의 살육 본능을 자극했다.마차 안에서 두 사람은 창을 부수고 뛰쳐나왔다. 긴 채찍은 민첩하게 뱀처럼 휘어지더니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두 사람을 곧바로 밀어냈다.시만자는 보검을 뽑아 꽃처럼 휘두르고는, 송석석의 채찍을 밟고 그대로 공중으로 뛰어올라 능숙하게 방어막을 형성하며 암살자들을 단숨에 밖으로 밀어냈다.검은 옷과 가면을 쓴 정영수도 긴 칼을 들고 있었다. 그는 팔도장인 모든 무
심지어 그는 송석석이 어떻게 피했는지조차 보지 못했다. 그저 긴 칼이 공중에서 빗나갔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그대로 서 있었다. 마치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마차의 풍등이 어두운 빛을 발산하며 송석석의 얼굴을 비췄는데, 차가운 바람 속에서 서리가 내린 듯 차가워 보였다. 송석석이 그를 향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는 순간적으로 그의 피부를 스쳐 지나가며 오싹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오싹함은 단지 기분 뿐만이 아니라 통증까지 전해지게 했다. 그가 반응하기도 전에 송석석의 채찍이 공중에서 그를 정확히 내려 찍어버렸다. 순간 채찍 끝이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며 얼굴을 가리고 있던 검은 천이 떨어져 나갔다. 그는 몸을 돌려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얼굴을 재빨리 가렸다.그는 벽 위로 올라가 몸을 돌렸는데, 그때 붉은 채찍은 마치 독사처럼 왼쪽 사사의 목을 감아 버렸다. 송석석은 힘을 주어 채찍을 당기며 그를 오른쪽으로 날려버리고는 몸을 한 바퀴 돌리며 그의 사사를 마차 앞으로 끌고갔다.곧 사사의 손에 들려 있던 무기는 손을 벗어났고 무기가 떨어지기 전 송석석은 발끝으로 그것을 날려 보냈다. 칼은 공중을 가르며 비행했고 그녀는 그 사사를 끌고 빠르게 공중으로 뛰어올라 칼을 향해 다리를 휘둘렀다. 그러자 그 칼은 또 다른 사사의 배꼽을 정확히 찔렀다.이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난 탓에 정영수는 가까운 거리에서 이 장면을 직접 목격했지만 그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었다.그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진정으로 강한 것은 송석석이지, 자신들이 아니라는 사실을.그는 이를 악물고 칼을 휘두르며 채찍을 끊으려 했다. 그렇지 않으면 사사는 정말 죽게 될 것이다. 송석석은 채찍을 휘두르며 사람을 공중으로 던졌는데 그 속도는 정영수를 다시금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는 방향을 급히 바꾸어 사사를 실수로라도 다치지 않게 하려고 했다.하지만 방향을 바꾼 순간 그의 큰 칼엔 피가 묻었고 사사의 머리는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송석
냉옥 장공주는 회동관에 돌아왔지만 수란석과 정영수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그녀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으며 무언가 일이 틀어졌음을 직감했다.수란석은 그녀의 작은 외삼촌으로, 수가에서 가장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이었다.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나치게 용감하고 호전적이며 성급하고 무모했다."양안을 불러라!" 그녀는 여관에게 명령했다. "당장!"양안은 내각 대학사이자 수란석의 처남이다. 두 사람은 상국에 오는 내내 함께 세밀히 논의했기에 양안은 그가 오늘 밤정영수와 함께 무엇을 하러 가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양안은 방으로 돌아가 소식을 기다렸다.그는 이번 작전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히 준비된 계획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가 떠날 때 수란석이 이미 계획을 반쯤 성공시킨 것을 보고는 북명왕을 데려갔다.북명왕을 속여 데려가기만 하면 송석석을 잡는 것은 매우 쉬웠다. 이번 외출에는 단지 마차 한 대와 하녀 두 명, 그리고 북명왕 부부만 있었으므로, 북명왕이 수란석에 의해 데려가졌다면 송석석이 아무리 강한 무공을 가지고 있어도 정영수와 회왕이 보낸 사사들 앞에선 불리할 수밖에 없다.따라서, 이 작전은 확실히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양학사, 장공주께서 부르십니다." 문밖에서 향병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양안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이번 일은 냉옥 장공주에게 숨기려 했지만, 이미 실행에 옮겨졌고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았으므로 이제는 알려야 했다. 장공주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고 그저 상국의 적절한 설명을 원했다. 또한, 전쟁이 있어야만 진짜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하며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면 어떻게 새 경계선을 정하고 사과와 배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그는 향병을 따라 장공주가 머무는 별실로 향했다. 등불 아래의 장공주의 얼굴은 굳어 있었는데 오늘 밤 궁중 연회 때의 온화한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수란석과 정영수는 어디 간 게요? 지금 무엇을 몰래 꾸미고 있는 것이오?" 그가 예의를 차리
숙청제는 눈을 들어 사여묵을 바라보았다. 용모가 준수했었던 그 남자는 남강의 바람과 눈보라에 의해 이제 세월의 흔적이 보였다.숙청제는 무언가에 의해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함과 불편함을 느꼈다.그는 그 전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추위와 굶주림이 사람의 의지를 얼마나 꺾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견뎌내며 아름다운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전선에서 적과 싸우는 동안 그는 송석석에게 다른 감정을 품었다.숙청제는 마음속에 자책이 있었지만, 그 자책과 함께 찾아온 것은 두려움이었다. 그 두려움은 마치 그의 마음에 단단히 새겨져 있는 듯, 어떻게 해도 눌러버릴 수 없었다.이 감정들은 그를 괴롭게 만들어 줄곧 이렇게 모순적인 감정을 느끼곤 했다.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을 정도였다."이번 전투를 통해 아마 모든 관리들이 네게 복종할 것이다. 민심이 너에게로 향하고 민족의 기대가 너에게 있지. 네가 몰래 전선에 나가서 마지막으로 힘을 다해 싸워 이겼으니 말이다."분명 마음 한 켠에서는 그를 걱정하고 있는데, 입에서는 조금 씁쓸한 말이 나왔다.숙청제는 웃으며 덧붙였다."물론 짐 역시 너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단다."사여묵은 숙청제의 말을 들으며 눈빛이 서서히 차가워졌다. 숙청제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또 일을 망쳐 버렸음을 깨닫고는 말을 돌렸다."짐에게 그 전투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 보거라."사여묵은 전투에 대해 다시 이야기했지만, 아까의 흥분과 기쁨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듯 했다. 그는 빠르게 말을 마친 후, 집에 있는 아내가 그리워 빨리 돌아가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숙청제는 그의 말을 들으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짐이 너를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말한 건 진심이다.""알고 있습니다."사여묵은 대답했다. 그 모든 말들이 진심이었다. 그를 괴롭히는 말도, 그를 탓하는 말도, 그를 칭찬하는 말도 전부 말이다.어떤 감정들은 마음속에 너무 오래 쌓여 있었다. 사여묵은 무언가를 말하려 했으나, 고개를 들어 바라본 숙
목 승상은 내뱉으려던 말이 목까지 올라왔으나 결국 삼켰다. 잠깐의 망설임이었지만, 그 순간만으로도 숙청제는 그의 속마음을 단번에 알아차렸다.숙청제가 웃으며 말했다. "북명왕은 이미 남강을 수복하는 공을 세웠고, 사국 병사를 몰아내어 우리 상국의 어려움을 해결한 큰 공을 세웠다. 이제 그 밑의 사람들도 나서야 할 때가 왔다. 동생도 그들에게 기회를 줄 거라 믿는다. 군을 다스리는 것에는 사람을 잘 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니 말이다."목 승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곰곰이 생각해보니 북명왕이 빨리 돌아오는 것이 오히려 좋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가 협상에 나서면 사국으로부터 더 많은 이익과 배상금을 끌어낼 수 있겠지만, 황제의 병세가 언제 악화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진성은 북명왕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안정될 것이기 때문이다.목 승상이 떠난 후, 숙청제는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오 대반을 향해 말했다. "짐도 그들 부부가 빨리 재회하길 바란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지 않느냐.” 오 대반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다 폐하의 덕이십니다."숙청제는 다시 침묵을 이어갔다. 어느새 승전의 기쁨은 그의 마음속 고민으로 인해 서서히 사라졌다. 그는 항상 선택의 여지 없이 진심이 아닌 말을 해야 하고 내키지 않는 일을 해야 했다. 한편, 북명황실에서는 설날에 긴 폭죽을 터뜨리지 못했다며 몽동이가 매우 아쉬워하고 있었다.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염선생이 직접 나가서 폭죽을 잔뜩 사온 덕분에,그가 원하는 대로 터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문과 옆문, 뒷문과 심지어 자신의 방에서도 터뜨릴 수 있게 했다.하지만 염선생은 단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폭죽을 어디서 터뜨리든 상관없지만 자신이 그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송석석은 급히 재단사를 불러들여 가장 최신 유행하는 양식으로 몇 벌의 옷을 만들게 했다.긴 겨울을 보내는 탓에 그녀의 피부도 많이 건조해졌기에, 시만자와 신신과
이 전투는 온 하늘과 땅이 캄캄해질 때까지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피와 시체, 잘린 팔다리와 비명소리가 백안산을 가득 채웠다.죽음의 신은 햇살과 함께 다가왔고, 백안산 전체는 얇고 따뜻한 금빛으로 물들었다.사여묵은 말을 타고 달려가며, 그들에게 항복을 촉구하고 빅토르를 넘기라고 외쳤다.빅토르도 큰 소리로 외쳤다. "상국 사람들은 교활하다! 무기를 내려놓으면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다. 싸워 나가면 한 줄기 생명의 희망이 있다!"하지만 어떻게 싸워 나갈 수 있겠는가? 상국의 무기는 정밀하며 육안통으로 멀리서도 사살할 수 있었으니 전혀 상대가 될 수 없었다.빅토르의 주변 사람들은 하나둘씩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다.빅토르는 다가오는 사여묵을 향해 칼을 겨누었다. 그의 눈에는 실패와 죽음, 그리고 절망의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북명왕이 남강에 도착하기 전, 그는 명예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가족은 그 덕분에 급격히 지위가 상승했으며, 그는 사국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영웅이었다.그의 모든 것은 남강에서 얻었고, 이제 모든 것을 남강에서 잃었다.그는 사여묵을 바라보았다. 칼을 든 손은 더 이상 힘을 내지 못했지만 힘없이 떨리는 손으로 여전히 숙적을 향해 칼을 겨누었다. 그에게는 너무 많은 억울함이 남았다.그의 칼은 결국 자신의 목을 향했다. 비록 이미 네 방향에서 들이민 긴 칼들이 목에 놓여 있었지만, 그는 그 칼로 턱을 막고 피를 흘렸다.그는 힘겹게 고개를 들고는, 사여묵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는 나를 죽일 수 없다. 나는 내 손으로 죽을 것이다."말을 마친 후, 그는 머리를 뒤로 젖혔다. 날카로운 칼날이 그의 목을 가르며 피가 쏟아졌다.제린은 칼을 거두며 말했다. "네가 죽는 방법은 선택할 수 있지만 뭐든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네 머리만 원할 뿐이다."무리 지어 날고 있는 까마귀와 독수리들이 백안산 상공을 맴돌았는데, 거의 하늘을 가릴 정도로 먹구름처럼 깔렸다.까마귀의 울음소리는 조종이 울리는 소리와도 같았다. 빅토르의
피수산은 본래 이름이 없는 산이었다. 사여묵이 그곳을 차지한 후, 그 산에 이름을 붙여 피수산이 된 것이다.이는 첫째로는 그 지형이 마치 피수라고 불리우던 맹수가 누워있는 듯한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이곳에 적이 들어올 수는 있어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군량을 운반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기에, 그들은 여전히 몸에 휴대하고 있던 마른 고기를 먹었고, 목이 마르면 눈을 파서 물을 끓여 마셨다.이 위치의 좋은 점이라 함은 세 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정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병력을 주둔시킨 위치에는 자연적인 장벽이 형성되어 있어, 불을 피워도 밖에서 보이지 않았다.물론 큰 불을 피워서 따뜻하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가장 힘든 점은 배고픔이 아니라 밤의 찬 바람이었다.다행히 낮에는 햇볕이 비쳤기에 하루 내내 추운 것은 아니었다."원수님, 밤이 되었으니 따뜻한 물 한 잔 드시고 잠시 쉬십시오." 부장 천위가 와서 갓 끓인 따뜻한 물을 건네며 말했다. 그 물은 따뜻해서 손에 닿는 순간 가슴까지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사여묵은 큰 나무에 기대어 장갑을 벗고는 따뜻한 물을 마시기 전에 먼저 손을 따뜻하게 했다. "돌은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내일 계속 파고 운반하자.""예!" 천위가 대답했다.사여묵은 그대로 앉아 물을 한 모금씩 마셨다. 그의 얼굴은 온갖 먼지로 덮여 있었으며 수염은 엉켜 있었다. 갑옷을 벗자 머리카락은 엉켜서 한 올 한 올 붙어 있었다. 몇 모금 마시고 나서, 그는 몸을 떨며 마지막 남은 마른 고기 한 조각을 꺼내어 힘겹게 씹었다. 이 남은 말린 고기는 거의 남지 않아 하루에 한두 조각 정도만 먹을 수 있었다. 배고프면 눈을 뭉쳐 먹거나 불을 피운 후 뜨거운 물을 마셔서 허기를 채웠다."원수님, 빅토르는 언제쯤 움직일 것 같습니까?" 천위가 옆에서 물었다.사여묵은 고개를 들어 말린 고기를 삼키고 있엇는데, 갑자기 위장이 아파오자 급히 물을 두 모금 마시고 난 후에 말했다.
이택은 송석석이 이렇게 말한 것에 다소 놀랐다. 잠시 멍하니 있던 그는 그녀의 침착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남편이 전선에서 실종되었는데도, 송석석은 여전히 차분하고도 이성적인 분석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지금 지원군을 추가하는 방법은 목종욱이 군을 이끌고 가거나, 성릉관 또는 방시원의 경군이 가는 것밖에 없었다.하지만 모두 거리가 너무 멀어서 가까운 불을 끌 수 없었다. 그들은 남강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아타목까지 갔기 때문에, 지원군의 의미는 남강을 지키는 데 불과했기 때문이다.숙청제는 모든 의견을 들은 후,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고 기다리자고 했다. 지원군을 추가로 파견하지 않을 생각이었다.그날 저녁, 방시원은 아내인 안여옥과 함께 송석석을 찾아갔다. 왕비가 여전히 걱정할 것 같아, 아내와 함께 다시 그녀에게 분석을 해주어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자 한 것이었다.방시원이 말했다. "이번 전투는 확실히 어려운 싸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적의 여러 주요 인물을 처치하고, 그들의 기력을 크게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원수님의 이번 전략은 적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것이며, 백안산을 잘 활용하면 큰 이점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송석석이 물었다. "방 장군은 아타목산맥을 잘 아십니까?""완전히 잘 알지는 못하지만, 예전에 탐색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지형이 복잡하지만 남강군은 이미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유리한 지형을 이미 파악했을 것입니다. 그 지형만 잘 활용한다면 승산이 큽니다."송석석은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말했다. "그가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방시원은 자신이 그린 지형도를 송석석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 지형도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남강군이 현재 있는 위치는 꽤 명확하게 나와 있습니다."송석석은 지형도를 펼쳐본 후, 방시원에게 물었다. "방 장군의 뜻은 제가 사람을 시켜 이것을 왕야에게 전달하라는 말씀인가요?"그러자 방시원은 고개를 저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왕야께서도 이미
황제가 토혈하고 난 이튿날, 남강에서 급보가 도착했다. 북명왕이 함정에 빠져 실종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 소식은 남강에서 군량을 운반하는 일을 담당한 감독군이 사람을 보내 800리의 거리를 급히 보내온 것이었다. 그들은 드디어 군량을 지원했지만, 돌아온 소식은 남강군이 함정에 빠졌고, 북명왕이 실종되었다는 것이었다.목 승상은 육부상서들과 내각 고위 관료, 군정 관리들과 송석석을 소집하여 논의하였다. 지도가 펼쳐진 후 전달된 보고에 따르면, 남강군은 아타목산맥의 백안산에서 매복을 당했다고 했다. 매복을 당한 후 대열이 분산되었고, 현재는 임시로 여섯 개의 군대로 나뉘었으나, 군의 사기가 불안정해져서 빅토르의 대군과 맞서 싸우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 또한 전해졌다.숙청제도 병약한 몸을 이끌고 왔다. 그의 얼굴은 창백할 정도로 심각했으며, 놀라고 두려워 심장이 튀어나올 듯했다.그는 먼저 본능적으로 송석석을 한 번 쳐다보았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고, 걱정하는 듯 보였지만 당황한 기색은 없었다.모든 신하들이 예를 갖추어 문안 인사를 드리자 숙청제는 목 승상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보았다. 아타목산맥은 마치 땅을 가로막고 드러누운 용처럼 지형을 가로질러 있었다. 지도에서는 그저 작은 선 하나로 보였지만, 실제로 그 선은 매우 크고 넓었다.그리고 함정에 빠졌다는 지점은 백안산이었다. 이곳은 지형이 험하고, 낮은 곳과 높은 곳의 고도가 50장 정도 차이가 나며, 심지어는 중간에 평지가 있어서 그야말로 매복하기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매복하기 좋은 곳이라면 남강군 또한 함정에 빠지지 말았어야 했다.숙청제는 다시한번 송석석을 바라보았다. 아까보다 더 차분해진 그녀를 보아하니 그녀도 문제를 깨달은 것 같았다.사여묵의 전투 능력에 대해서는 숙청제가 최고의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숙청제는 문신과 무장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 했다.걱정과 의문 속에서 다른 관리들이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놓을 때, 주 장군과 이덕회, 그리고 방시원은 지형이
왕이장은 말했다. "청혼은 좀 충동적으로 했다. 돌아보니 그 때를 이용한 것 같기도 해. 그 당시 그녀는 기분이 우울했으니, 승낙했어도 진심으로 혼인하고 싶었던 건 아닐 거야. 매산으로 돌아가서 사숙께 한바탕 혼나고 나니 나도 좀 진정이 됐다."송석석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미 사숙께 말했다고요?""돌아가자마자 말했지. 그때는 열정이 넘쳤거든."그러자 송석석이 궁금한듯 물었다. "그럼 사숙은 뭐라고 하며 혼내셨나요? 반대하셨나요?"왕이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반대한다 만다 할 단계도 아니었어. 그냥 혼냈지. 욕은 평소에 듣던 그런 말들이었고.""어떤 말들이요?"왕이장은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나를 두꺼비라고 부르시면서, 내 피부에 난 여드름을 보라고 하시더라."송석석이 낄낄대며 말했다."사숙이 사형에게 조금은 자비를 베풀었나 봅니다."그녀는 시만자가 말한 것을 전해줬다. 왕이장은 이를 들은 후,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웃었다. 그의 눈빛은 마치 꿀이 담긴 듯 달콤하게 빛났다."괜찮아, 나는 기다릴 수 있어. 천천히 기다릴 수 있고 말고. 인생은 길잖아. 안 그래?"송석석은 그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렇게 자유롭고 과감한 오사형이 시만자의 손안에 있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가 인생을 논하다니!매산에서 편안히 지낸 지 4일째, 매산의 문파들을 모두 방문하자 사숙은 그들을 쫓아내기 시작했다.당연히 송석석과 보주 두 사람끼리 돌아가지는 못하게 하였기에, 그는 또다시 평무종을 시켜 운익각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보호하게 했다. 그리고 왕이장의 상태가 괜찮아진 것을 확인하자, 그 역시 함께 쫓겨나 버렸다.진성으로 돌아온 후, 일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여러 가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송석석을 방문했고, 그녀는 그들을 매일 대면하며 이전보다 더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왕이장과 시만자의 상황에 대해서는 그녀가 개입하지 않았고, 그들이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송석석은 애써 눈물을 삼키며, 감정을 잡고 말했다."그럼 그들은 계속 아타목산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는 건가요? 이쯤 되면 군량이 이미 바닥났을 텐데, 대군은 도대체 뭘 먹고 버티고 있는 거죠?""그 부분은 걱정 안 해도 된다. 초원 쪽에서 지원을 안 한다고 말은 했지만, 결국 말린 고기 전부를 내줬어. 게다가 그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군량과 밀전병도 있으니 당분간은 버틸 수 있을 거다. 게다가 아타목산의 깊고 긴 산맥과 빙호에서, 무기도 있으니 사냥을 해서라도 먹을 건 구할 수 있을 거고. 그러니 지금은 대충 배를 곯으면서 버티고 있겠지."그녀는 말을 마치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오래 버티기는 어려울 거다."송석석은 고개를 들고 단호하게 말했다."사국이야말로 더 버티지 못할 겁니다."두 나라의 상황은 거의 비슷했다. 남강군이 그나마 나았지만, 빅토르가 군량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결국 남강군과 정면으로 맞서려고 할 것이었다.어떻게든 승패가 갈릴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군대가 뿔뿔이 흩어져 있어, 사국의 주력 부대와 정면으로 맞붙는 것은 쉽지 않을 터였다.도대체 어쩌다 매복에 걸린 것일까? 사제는 그렇게 부주의한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자, 그녀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녀는 곧장 평무종에게 물었다."남강군이 매복당한 뒤, 사상자가 많았나요?"평무종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답했다. "그건 아니다. 사상자는 한명도 없었고, 그냥 뿔뿔이 흩어진 것 뿐이야."송석석은 곧바로 아타목 일대의 지형을 떠올리며, 현재 양측의 상황을 정리했다.사국 군대는 이미 오래전부터 버티기 어려운 상태였으며, 추격을 당해 도망친 끝에 결국 궁지에 몰렸다.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최후의 발악으로 매복을 설치한 것으로 봐도 무방했다.그렇다면 사제가 일부러 매복에 걸린 것은 아닐까? 사국군이 승리를 착각하고 방심하게 만든 뒤, 군대를 분산시켜 포위 작전을 펼치는 거라면?송석석이 자신의 추측을 평무종에게 말하
하지만 시만자는 바로 답을 내리지 못하고, 하룻밤을 고민했다.그리고 다음 날이 되자, 송석석에게 말했다."그가 정말로 청혼을 하고 집에서도 허락한다면…… 난 혼인할 거야. 하지만 내가 정말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아직 내 마음이 어떤지 모르겠어. 그때와 지금의 마음이 같지 않으니까."송석석은 그녀를 위로해 준 뒤, 그날 바로 보주를 데리고 매산으로 향했다. 첫째는 직접 오사형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오랜만에 매산에서 설날을 지내고 싶었기 때문이며, 셋째는 평 사저도 매산으로 돌아갔기에 그녀를 직접 만나 남강의 소식을 물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평 사저가 무언가 나쁜 소식을 들었지만 차마 자신에게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직접 만나 묻는다면 평 사저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그렇게 그녀가 보주를 데리고 매산에 도착하자, 임양운과 무소위는 깜짝 놀라 황급히 그녀를 안으로 데리고 갔다. 혹시라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부터 앞섰다.송석석은 사부와 사숙의 긴장된 표정을 보자 코끝이 시큰해졌다. 진성에서는 늘 강하게 버텨야 했지만, 만종문에 오면 그녀는 언제까지나 사부 앞에서 어린아이가 됐다.그녀는 눈가를 닦고는 일부러 애교 섞인 말투로 말했다."그냥 오랜만에 보고 싶어서 왔어요. 사부랑 사숙도 뵙고, 사형과 사저들이랑도 모처럼 함께 지내려고요."무소위는 꾸짖으며 말했다."우리가 진성에서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겨우 그걸 핑계로 돌아왔다는 거냐? 그런데 어째서 보주만 데리고 왔지? 다른 놈들은? 길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누가 널 보호한단 말이냐? 설마 네가 이제 제법 실력 좀 쌓았다고 생각하는 거냐? 아직 한참 멀었대도!""네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원한을 샀는지 생각해봤느냐? 남아있는 세력들이 다 정리된 것도 아닐 텐데, 하물며 네 남편이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와중에 널 잡아 위협하려는 놈들이 없을 거라고 생각……"임양운이 손을 들어 무소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