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저녁, 전 씨 노부인한테 환각이 발생했다. 하지만 몸 상태는 오히려 좋아 보였고 심지어 앉아서 공기를 가리키며 욕까지 퍼부울 정도였다. “너는 꺼지거라. 쓸모없는 것들, 모두 쓸모없는 쓰레기다.” “민 씨, 네가 감히 날 꼬집어? 정말 불효 막심하구나!” 의사가 진작에 노부인에게 있을 정상을 말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가 본 것이 귀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전북망은 그녀의 두 손을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어머니, 아무도 없습니다. 형수님도 오지 않았습니다.” “민 씨가 날 미워하니 분명 나에게 복수하러 올 것이다.” 노부인은 전북망의 소매를 잡고 얼굴의 흉악함도 놀라움으로 변했다. “민 씨에게 알려주거라. 나는 단지 그녀를 교육시키려고 했을 뿐 죽이려던 게 아니었다고.”“아, 저리 가, 민 씨, 저리 꺼지지 못하겠느냐?!” 노부인은 끊임없이 두 손을 흔들며 전북망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때렸지만, 전북망은 움직이지 않고 노부인이 때리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반 시진쯤 난동을 부리고 나서야 겨우 진정되었는데 노부인은 이미 숨을 내쉬기만 할 뿐 들어마시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곧이어 의식이 깨어난듯 눈을 뜨고 주위를 돌아보았는데, 전북경과 손자 손녀가 보이지 않자 천천히 입을 벌려 물었다. “북경이는……” 전북망은 침대 옆에서 노부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머니, 물 드시고 싶으신 겁니까?” “북경이…….” 노부인은 애타게 장자인 북경만을 찾았다. “큰 형님께서 잠깐 볼일 보러 가셔서 끝나고 바로 오실 것입니다.” 전북망이 위로했다. 전북삼은 눈물을 닦으며 화가 치밀어 오른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큰 형님께서 너무 양심 없는 것 아닙니까? 어머니가 그렇게 잘해줬는데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도 않다니!”노부인은 그 말을 듣고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임종? 내가 곧 죽는 건가? 우리 장자와 딸도 오지 않고 둘째 집에서도 아무도 오지 않다니, 내가 그렇게 미운 것인가?’ 노부인은 지금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시만자는 전북망을 동정하지 않았다. “홍현이 그러는데 전소환이 친정으로 돌아가 상례를 치르지 않아 오히려 이방이 노부인을 위해 상복을 입었다고 하더군.” 암살당할 뻔한 일이 있은 때부터 이방은 길상거에서 나오지 않았고, 명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전 씨 노부인이 죽을 때 눈길 한 번 주지 않더니 이제 와서 상복을 입다니, 너무 이상하지 않는가? 만약 누군가가 그녀를 다시 죽이려 한다면 장례를 치를 때, 기회를 틈타 들어가도 이상할 것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방도 똑똑한 편이기에 역모사건의 조사가 아직 종결되지 않은 지금 아무도 감히 경거망동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장례는 누가 치른 것이냐?” 송석석이 물었다. 왕청여는 조산한 후 몸이 좋지 않아 할 수 없을 것이고 이방은 더욱 나서서 장례를 치르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시만자가 대답했다. “둘째 노부인이 치렀다고 하더군. 동서지간이니 아무리 싸웠어도 할 일은 해야 하는 것이니까.” 송석석이 말했다. “둘째 노부인은 정이 많고 의리가 있는 분이니까.” 그러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둘째 노부인이 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다들 둘째 노부인을 진심으로 탄복하면서도 전 씨 노부인을 욕했는데 유독 사여묵만이 욕하지 않았다. 그도 당연히 전 씨 노부인을 미웠지만 그녀의 박정함 때문에 그가 석석과 결혼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의 부상은 거의 다 나았지만 걸음걸이는 여전히 부자연스러웠고, 이마의 혹은 약간의 멍만 남아 언뜻 보면 미간에 검은빛이 도는 것 같았다. 염 선생은 그의 미간에 검은빛이 도는 것 같아 불길해 보인다며 장대성을 시켜 그를 붙잡아 분을 발라주었다. 그래서 사여묵은 별다른 일이 없으면 외출하지 않으려 했다.혜 태비께서 궁에 들어갔기 다행이지, 그렇지 않으면 또 끝없이 잔소리했을 것이었다. 날씨가 추워서 태후는 수안궁 난각으로 거처를 옮겼다. 후궁들은 초하루와 보름에 태후에게 문안을 드리러 오고, 황제는 다음 날 아무리 근정해도 잊지 않고
설을 쇠는 것도 재미가 없었다. 궁연회에는 일 년에 한 번 보는 황실 종친들이 가족을 데리고 참석했는데 온통 남자와 여자들뿐이었다. 송석석은 여러 왕비와 공주들과 함께 황후와 궁비를 따라 태후를 뵈러 갔다. 태비들이 모두 함께 있어 당연히 혜 태비도 있었다. 연왕비인 시민주와 측비 김 씨는 영 태비 전에서 영 태비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오지 않았다. 모두들 허무한 말만 하고 아첨을 떨며 자기의 장신구를 자랑하느라 바빴다. 황제의 비들도 한자리에 모였는데 송석석은 눈이 휘둥그레져 황후, 숙비, 공비, 덕비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지위가 낮은 자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때로는 웃으며 때로는 고개를 들어 보곤 했다. 황후의 아들은 적장자로,매우 듬직해 보였다. 나이는 어렸지만 걸음걸이는 숙청제를 꼭 빼닮았다. 뒷짐을 진 채 턱을 살짝 들고 등을 곧게 펴고 있었는데 키가 작고 왜소하지만 않았다면 꼭 어른 같아 보였다. 숙비에게는 아들과 딸이 한 명 있었는데 아들은 그녀가 낳은 것이 아니였기에, 유모가 안고 와서 태후를 뵙고 바로 돌아갔다. 공주는 머리를 두 갈래하고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서너 살짜리 아이는 아직 철이 없었지만 평시에 잘 가르쳐 함부로 떠들지 않았다. 공비에게도 딸이 있었는데 큰 공주로,숙비의 딸보다 석 달이나 먼저 태어났다. 그리고 덕비에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이황자이고 겨우 두 살이었다. 숙청제는 자식이 풍족하지 않았는데 아마 근정으로 후궁에 적게 간 탓인 것 같았다. 이황자는 몸이 하도 통통해서 뛸 때 비틀거렸는데 태후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 품에 안고 잠시 뽀뽀를 한 후 송석석에게 말했다. “너도 안아보거라. 그리고 내년에 너도 통통한 아들을 낳아야지!” 송석석은 통통한 이황자를 바라보더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이황자, 숙모가 한 번 안아줄까요?” 이황자는 머뭇거리며 고개를 돌려 덕비를 보자 덕비는 웃으며 말했다. “숙모한테 가거라.” 그러자 이황자는 두 팔을 벌려 송석석에게
이어서 준비한 만찬에 연왕도 정비와 측비를 데리고 함께 참석했다. 그는 태후와 제후를 접견한 후 종친들과도 몇 마디 인사를 나누었다. 회 왕부 쪽에서는 회 왕비만 왔는데 회왕이 감기에 걸려 아직 낫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자 태후께서는 몇 마디 관심하더니 원기를 보충하는 귀중한 약재를 상으로 내려 주셨다. 만찬은 아주 풍성했다. 사여묵은 송석석과 함께 앉았는데, 사여묵은 송석석이 좋아하는 것은 골라주고 싫어하는 것은 모두 자기가 먹었다. 그 모습을 본 황후는 웃으며 말했다. “왕야와 왕비께서 참 금슬이 좋아 보이십니다.” 진왕과 진왕비는 자신들을 말하는 줄 알았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황후가 사여묵과 송석석을 보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눈길을 돌렸다. 숙청제는 담담하게 한 번 훑어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술을 들 때 황후를 차갑게 한 번 쳐다보았다. 송석석은 황후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말했다. “황제폐하와 황후께서 사랑이 깊으시니 우리도 당연히 본받아야지요.” 황후는 웃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 마음속의 고통은 자신만이 알고 있었다. 황제와 황후가 정이 깊은 건 모두 외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황제가 진정으로 총애하는 사람은 바로 숙비였다. 황제가 숙비에게 하는 것 반만큼만 황후한테 했어도 이렇게까지 자기의 아들을 강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원래는 아무런 문제 없이 장자와 적자를 태자로 세워야 마땅하지만, 하필이면 황제가 숙비를 가장 총해한 덕분에 언제든지 아들을 더 낳을 수 있었다. 친아들이 있는데 자신의 아들을 위해 계획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황후의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 궁녀가 약 한 그릇을 들고 숙비에게 오더니 말했다. “마마, 양태약을 드실 시간입니다.” 그 말을 들은 황후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숙비를 째려보더니 곧바로 웃는 얼굴로 말했다. “숙비가 임신했다는 것이오? 궁에 이렇게 큰 경사가 있는데 왜 나한테 알리지 않았소?” 숙비는 모란처럼 아리따운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지
송석석까지 의아해하며 휘왕을 쳐다보았다. ‘이제야 효자라는 것을 알았다니? 그럼 그전엔 불효라는 것인가? 적어도 효도하지는 않았다는 뜻이잖아.’ 다만 여러 친종들도 그의 말을 듣고 모두 오리무중이었다. 사람들 눈엔 연왕은 줄곧 효성이 지극했다. 그는 매년 어머니를 문안한다는 명목으로 진경으로 돌아왔는데 때론 순조롭게 돌아왔고 때론 기각당했다. 선제가 있을 때도 효심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오늘 모두가 기뻐하는 자리라 사람들은 그 말에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숙청제가 연왕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자 연왕의 얼굴빛이 약간 변하더니 바로 회복하고 웃으며 말했다. “선조께서 인효로 나라를 다스렸는데 제가 어찌 감히 불효하겠습니까?” 사여묵은 휘왕을 한 눈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송석석과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여인들은 연극을 보러 갔는데, 설날에도 극단은 멈추지 않고 정월 초여드레날까지 계속 공연할 계획이라고 했다. 연극을 보면서 새해를 보내는 것은 꽤 좋은 것 같았다. 적어도 시간을 보내는 데는 최고였다. 숙비는 임신 중이라 먼저 돌아갔고 태후는 여전히 그들과 함께 버텼다. 송석석이 요즘 바빠서 자주 궁으로 들어와 인사를 드리지 못했기에 모처럼 그녀를 만났으니 태후는 그녀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덕 귀태비도 옆에 앉아서 결혼한 지 꽤 되었는데 왜 아직도 임신하지 않았냐며 묻기 바빴다. 송석석은 이런 문제를 대처하는 것이 가장 귀찮았다. 그녀는 아이를 낳을지 말지, 언제 낳을지는 모두 그녀와 사여묵 두 사람이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송석석이 대답하기도 전에 태후가 말했다. “이제 현갑군의 지휘사가 되었는데 임신은 무슨. 여자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사업 위주로 일해야 한다.” 송석석은 항상 태후의 생각이 새롭다고 생각했다. 태후는 항상 여자들에게 자강을 장려했다. 그래서 처음에 이방이 행군하여 비적을 토벌해서 공을 세웠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기뻐하며 이방을 아주 높이 평가했었다. 심지어 이방이 천하의 여자들에게
설을 쇠고 궁을 떠나는 마차에서 송석석은 사여묵에게 그 일을 말했다. 사여묵은 역모 사건 이후 회왕부가 조용하고 회왕도 거의 외출하지 않았다고 했던 염 선생의 보고가 떠올랐다. 염 선생은 줄곧 사람을 보내 연왕부와 회왕부를 감시했고 회왕은 두세 번 외출했지만 모두 술을 마시러 간 것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외출을 하지 않았다. “한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바로 회왕은 아픈 것이 아니라 진성을 떠났다는 것이오.” 사여묵은 눈살을 찌푸렸다. “북명황실의 사람들이 회왕부를 오랫동안 감시했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허술해질 수도 있으니 그 틈을 타 변장을 해서 나간다면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오.” 그러자 송석석이 물었다. “이맘때쯤 진성을 떠난다면 어디로 갈 수 있습니까?” “그건 돌아가서 얘기하오.” 사여묵은 지금까지의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리자 한 가지 짚이는 게 있었다. 오늘밤엔 국공부의 사람들도 함께 와서 설을 보내 황실에도 떠들썩했다. 하지만 공 씨 가문에서는 서우를 데려다주지 않았다. 말로는 그들이 궁에 들어가 연회를 참석할 것이니 황실에 보내는 것보다 공 씨 가문에서 설을 쇠는 게 낫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실로 돌아온 후 그들도 한바탕 떠들썩하게 놀았는데 온 집안의 사람들이 송석석에게 세뱃돈을 받아갔다. 송석석은 손이 커서 모두들 즐거워하고 만족해했다. 사여묵과 염 선생은 서재에 들어갔고 송석석은 따라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그들끼리 토론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황실의 종목은 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몽동이는 권법 한 세트와 검법 한 세트를 선보이고 은 20 냥이나 받아갔다. 노집사도 노래 한 곡을 불렀는데 모두들 웃으며 듣기 거북하다고 소리쳤지만 노 집사는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꾸준히 노래를 불렀다. 원래는 한 곡만 부르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듣기 싫다고 떠들자 그는 단숨에 세 곡이나 불렀다. 그의 음이탈에 시만자와 송석석은 배를 끌어안고 웃기 바빴다. 하인들도 저마다의 재주가 있었는데 투호, 다트, 나무 타기, 종이
서재에서 세 남자는 한 시진 넘도록 토론했다. 그들은 회왕이 정말 진성에 없다면 세 곳에 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첫째는 성릉관인데 그들이 성릉관에 못을 박았을 가능성이 제일 높았고, 두 번째는 옹현이었는데 그곳은 그들의 사병이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진성외주군위소였는데, 요 몇 년 동안 회왕이 암암리에 운영하면서 위소에도 못을 박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어느 곳을 가든 모두 그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은 회왕이 가장 침착하다고 생각했는데 왜 지금은 오히려 가장 먼저 움직였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때 염 선생이 말했다. “모든 것에 올인했을 수도 있습니다. 사온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그들이 겁을 먹고 손을 놓고 싸우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사여묵은 고개를 저었다. “내 생각은 그렇지 않네. 이 일은 그들이 오랫동안 계획해 온 일이지. 남강을 칠 때가 가장 좋은 기회였는데 그들은 그때마저 출병하지 않았지. 그러니 지금은 더더욱 충동적으로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야. 반드시 역모의 정당한 이유를 찾아야 한다. 나는 오히려 성릉관에 있는 소대장군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 되는 군.” “서경.” 염 선생은 눈을 붉히며 말했다. “성릉관의 가장 큰 변수는 서경입니다. 회왕도 서경의 황제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들의 목적이 정말로 서경이었다면 이미 그곳에 사람을 배치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새 태자의 곁에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릉관에 녹분성, 그리고 서경까지 합치면 바로 조만간 폭발할 폭탄이었다. 그들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지만 이 폭탄이 실제로 폭발한다면 잘 대응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왜냐하면 어떻게 하든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성릉관의 총병원수는 소대장군이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가장 우려되는 점이기도 했다. 석석에겐 남은 가족이 많지 않아 그녀의 외조부 일가는 반드시 지켜야 했다.심청화가 말했
최씨는 목적이 명확했다. 그녀는 자수공방과 여학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만약 북명황실이 여학을 창립한다면 그녀는 자기 여식을 위한 자리를 확보하고 싶었다.따라서 그녀는 처음에 여식을 데려올 계획이었지만 그렇게 되면 너무 노골적이기도 하고 또 왕비가 반드시 딸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으로 비쳐질까 걱정이 되어 차라리혼자 필요한 조건을 알아봐 나중에 준비할 수 있도록 했다. “괜찮으니 저흰 별실에서 얘기하시죠.” 송석석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이끌고 별실로 갔고 오직 사여묵과 연신 하품을 해대는 이덕회만 남겨두었다.“그게…” 이덕회는 피곤한듯 입을 가리고 하품하며 물었다. “혹시 누워서 담화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까?”송석석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나이에 아직도 광란의 밤을 즐기는 게냐? 아주 대단하군!”이씨 부인은 소주방의 중요성을 알기에 바로 송석석에게 물었다.“왜 시만자 아씨는 보이지 않습니까? 시만자 아씨와 함께 소주방에 대해 논의하고 싶은데요.”송석석은 안타까운 마음에 시만자가 좀 더 자기를 바랐지만 이씨 부인이 직접 물었으니 사람을 보내 그녀를 깨우기로 했다.이씨 부인도 꽤 정교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소주방은 작업장으로서 위치가 외진 만큼 수공예품을 판매하려면 점포가 필요했기에 그녀는 한 점포를 내놓아 이 물품을 판매하려고 했고 수익은 모두 소주방에 귀속시키기로 했다. 누가 무엇을 수놓았든, 수익은 모두 수놓은 여인에게 줄 생각이었다. 이씨 부인이 말했다. “나는 임대료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선행에 힘을 보태는 것이니까요. 점포에서 판매를 담당할 부리의 봉급은 수익이 발생하기 전까지 제가 지급할 생각입니다. 수익이 발생하면 그 부분에서 부리에게 지급하도록 하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시만자는 잠시 생각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해도 좋을 듯싶습니다. 지금은 누가 소주방에 갈지 모르니까요.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운영된다면 말솜씨가 좋은 사람을 앞에 내세워 판매하게 해도
최씨와 딸 왕지아는 마당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마당에는 나무와 꽃들이 많이 심어져 있었지만 그리 무성하게 자라지 못했으며 특히 올해 겨울엔 더더욱 일찍 시들었다.“지아야, 너 왜 고모부… 방시원 장군님 편을 든 거야?”최씨는 손수건으로 왕지아의 상처 주위를 조심스럽게 닦아주며 물었으며 아이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알고 싶었다.평서백부에 이런저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아이들에게 얘기해주지 않았으며 잘 숨겼다고 생각했지만 요즘 밖에 떠도는 유언비어가 너무 많았기에 아이들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왕지아는 벌겋게 부은 얼굴을 살짝 들었다. 분명 맑고 순진한 눈망울을 하고 있었지만 나이와 맞지 않는 성숙한 눈빛이 보였다.“엄마, 예전에 고모부가 고모와 함께 우리 집안에 처음 왔을 때 나에게 뭘 선물했는지 기억하세요?”왕지아의 말에 최씨가 기억을 떠올리며 대답했다.“엄마 기억으론 장군을 보필하는 마마가 너와 현이에게 금덩이 하나와 금열쇠 하나씩 선물했던 것 같은데?”왕지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똑 부러진 목소리로 말했다.“국태 부인의 산하지를 저에게 선물해 주셨어요. 그때 당시 고모부가 저에게 해준 말이 있었거든요. 지금 세상에 태어난 여인들은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기 어렵다고 했어요. 다른 지역으로 시집을 가지 않는 이상, 집 밖으로 나간다는 건 쉽지 않지만 넓은 바깥 세상을 직접 두 눈으로 보지 못한다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이라고 했어요. 우리 상국의 아름다운 풍경들도 보고 바깥 하늘이 얼마나 푸르고 높은지도 보아야 시야가 넓어지고 쓸데없는 일에 고집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자신을 힘들게 할 필요도 없다고 하셨죠.”최씨는 딸의 말에 흠칫 놀랐다. 그때 당시 방시원을 처음 봤을 때 최씨도 돈만 밝히는 사람이어서, 상대방이 무슨 선물을 들고 왔는지부터 따지기 바빴다.“고모부는 고모와 혼인을 하고 나서 지금까지 우리 집안에 찾아와서 따지거나 고모를 힘들게 한 적이 단 한번도 없어요. 엄마, 고모
제자예는 넷째 부인의 손을 뿌리치곤 최씨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절대 사과 안 할 거예요! 저를 뭐 어떡하실 건데요? 그렇게 억울하면 저도 한 대 치세요!”최씨를 향해 얼굴을 들이민 제자예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눈물을 글썽이며 세상 서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최씨는 그런 제자예를 보며 그저 어이없다는 듯이 차갑게 피식 웃었다.“그렇다면 지금 당장 제 제사한테 찾아가서 물어봐야겠네. 따님 교육을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버릇이 없는 건지, 참.”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송석석에게 말했다.“훈장님, 그때 제 증인이 되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제 제사를 만난다면 전 당연히 솔직하게 얘기드릴 겁니다.”송석석의 대답에 제씨 넷째 부인은 눈이 휘둥그레졌으며 이 일이 어르신에게 알려지면 넷째 부인은 크게 혼이 날 것이다.절대 어르신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넷째 부인은 이를 악문 채 제자예에게 말했다.“얼른 왕지아에게 사과해.”제자예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엄마, 전 사과할 수 없어요. 쟤들이 날 괴롭혔고 날 서원에서 쫓아내려고 했어요. 사과를 해야 할 사람은 쟤들이에요.”넷째 부인은 최씨와 송석석을 힐끗 흘겨보다가 굳은 표정으로 엄숙하게 말했다.“잘못을 저질렀으면 사과를 하는 게 당연한 일이야.”제자예는 자신이 며칠동안 서러운 일을 너무 많이 겪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어머니마저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자 더욱 서럽고 슬펐다.“싫어요. 절대 사과 못 해요!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세요! 전 절대 굴하지 않을 거예요!”말을 하던 제자예는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지만 이내 송석석에게 잡혀 다시 최씨 곁으로 돌아왔다. 송석석이 최씨를 보며 말했다.“이번 일이 저희 아군 서원에서 벌어졌으니 서원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제자예 학생이 왕지아 학생의 얼굴에 상처를 냈으니 관아로 보내는 건 어떠세요? 관아의 처리에 따라 저희 아군 서원에서 책임져야 할 부분은 반드시 책임지겠습니다.”송석석의 말에 최씨
제씨 넷째 부인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일을 이렇게까지 크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사과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퇴학은 너무 과한 처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끼리 말다툼하다가 벌어진 작은 소동인데 퇴학 처리까지 하면 아군 여학에서 괜한 문제를 만든다고 소문이 나지 않겠습니까? 부인께서도 아군 여학을 위해 고려하셔야죠. 제 딸이 퇴학을 당하고 나서 이상한 소문이라도 돌면 아군 여학 명성에 오점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조금 전에 최씨를 협박했던 넷째 부인은 이제 대놓고 아군 여학까지 협박했지만 듣고 있던 송석석은 그저 어이없다는 듯이 차갑게 웃을 뿐이었다.“사람을 때리고도 퇴학을 당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아군 여학의 명성에 오점을 남기는 거죠. 저희가 넷째 부인을 이곳으로 모신 건 다들 차분하게 이 일을 해결하고자 하는 겁니다. 사과할 건 하고 처벌을 받을 건 받아야죠. 당사자들끼리 직접 만나서 확실하게 얘기를 털어놓아야 두 가문에서 아이들 때문에 앙금이 남지 않을 것 같아서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퇴학은 불가피합니다. 부인께서 자퇴를 거절하신다면 제가 나서서 제자예 학생을 퇴학 처리할 것입니다.”넷째 부인은 송석석과 대놓고 싸울 수는 없었기에 고개를 돌려 다른 선생님들에게 물었다.“다들 스승인데, 학생의 이런 작은 잘못조차 포용해주지 못 하시는 거예요?”안여옥의 태도도 강경했다.“전 제자예 학생을 아군 여학에서 강제로 퇴학 시켜 달라고 요구했지만 국태 부인과 훈장님꼐서 제자예의 마지막 체면을 지켜준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자퇴를 권하시는 거고요.”국태 부인도 말을 덧붙였다. “스스로 자퇴하세요. 더 얘기해봤자 서로 감정만 상할 겁니다.”제씨 넷째 부인은 안여옥을 날카롭게 흘겨보았다. 학생들의 증언에 의하면 안여옥이 제일 먼저 퇴학 얘기를 꺼냈고 다른 사람들은 그저 그 의견에 동의했을 뿐이다.안씨 가문과 방씨 가문 사이에 있었던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당사자들만 잘 숨기고 있다고 착각
최씨도 시녀 금숙을 데리고 왔다. 자신의 딸이 맞았다는 말에 제일 먼저 그녀의 상태부터 살폈는데 얼굴이 퉁퉁 부은 데다가 어딘가에 긁힌 흔적도 남아 있었다.국태 부인이 딸에게 약을 발라줬다는 말을 전해 들은 최씨는 딸의 마음을 위로해준 뒤 바로 서아원으로 돌아가 국태 부인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두 부인이 앉자마자 송석석이 나서서 일의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이내 사람을 시켜 제자예와 왕지아 그리고 증인이 되어줄 학생 몇 명까지 불러왔다.제씨 넷째 부인의 표정이 매우 좋지 않았다. 멍청한 딸이 이 일을 서원에서 얘기한 것도 화가 나는데 왕지아가 심지어 방시원이 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고 얘기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왕지아의 말이 소문이라도 나면 제씨 넷째 부인의 딸의 명예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하지만 어찌됐든 제자예가 사람을 때린 건 사실이고 이는 말다툼과 성질이 다르기에 일단 최씨에게 고개를 숙여 대충 사과부터 할 수밖에 없었다.“철없는 여자애들끼리 다툼이 조금 있었던 것일 뿐이지만 그래도 제 딸이 손찌검을 한 건 잘못된 행동이니 최씨 부인께서 제 딸을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최씨는 제자예를 힐끗 쳐다보았는데, 허리를 쫙 편 채 꼿꼿하게 서있는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고고하고 당당해 보였다.그러자 최씨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따님은 이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자신이 한 행동에 책임을 질 나이가 되었지요. 따님이 손찌검을 했으니 직접 사과하라고 하세요. 그 사과를 받고 나서 이해할지 말지는 제가 결정할 일이죠.”넷째 부인은 다시 최씨를 위 아래로 훑었다. 결국 평서백부는 제씨 가문의 체면을 고려해줘야 하고 송석석도 이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사적으로 합의를 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넷째 부인이 이미 고개를 숙였음에도 불구하고 최씨는 전혀 넷째 부인의 체면을 봐주지 않고 있다.넷째 부인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입장이 난처해졌고 심지어 학원 학생들까지 있는데 이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가면 이 일을 부모님에게
엄중히 처리한다는 말에 향회옥 일행은 두려워져, 제자예와 일정한 거리를 두기 위해 뒤로 물러섰다.억울한 제자예는 왕지아가 방시원을 도운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러게 왜 입을 함부로 놀려서는. 재네 고모가 추악한 일을 저질렀는데 방시원의 편을 들었어요. 부끄럽지도 않나 봐요.”그 말에 뺨을 맞았을 때도 울지 않던 왕지아가 닭 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더니 옆에 있는 여학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이 일을 처리하기 위해 선생님들은 물론 송석석까지 불렀다. 함께 싸움에 가담했던 학생들은 자신도 처벌을 받을까 봐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다.방금 기세 높게 싸우던 학생들도 잠자코 옆에 있었다.자초지종을 이해한 안여옥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했다. “제자예가 여러 번이나 소란을 피웠고, 심지어 오늘은 학생을 때렸어요. 글 공부하러 온 것은 아닌 것 같으니 서원의 풍기를 어지럽히지 않기 위해 쫓아낼 것을 제안합니다.”제자예는 원래부터 여학에 오기 싫었다.하지만 본인이 오기 싫은 것과 쫓겨나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게다가 황후가 그녀를 서원에 보냈고 해야 할 일도 완성하지 못했는데, 여기서 쫓겨날 수 없었다.마음이 초조해지자 그녀는 먼저 제안한 안여옥에게 욕설을 퍼부었다.“날 왜 쫓아내는지 알아요. 당신이 방시원과 혼인하려 했는데 그 자식이 당신을 좋아하지 않고 날 좋아하기 때문이죠. 나를 질투하고 얄미워서 쫓아내려는 거죠?”그 말에 태국부인이 얼굴을 찌푸렸다.“제씨 가문에서 이렇게 자식을 교육했느냐? 입만 벌리면 욕이고 손을 들었다 하면 사람을 때리다니, 헛소리를 지껄이지 말고 네 잘못을 뉘우쳐라. 나도 저 여학을 쫓아내는 것에 동의한다.”그러다가 갑자기 마음이 약해져서 말을 덧붙였다. “네 발로 나가. 혹 소문이라도 나면 네 혼삿길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저도 이 뜻에 동의합니다!”규율 담당인 무씨 아가씨도 그녀들이 글공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소란을 피우러 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지난
넷째 부인이 재빨리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조용히 하거라. 감히 그런 상스러운 말을 입에 담다니, 혹시나 네 백부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반드시 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제씨 가문은 워낙 엄격해서 자손들은 말과 행동에 각별히 조심해야 했다.제자예는 머리를 흔들며 어머니의 손을 뿌리쳤다.“백부도 언행이 바르지 않는데 감히 우리를 혼내다니요? 전 두렵지 않습니다!”“됐다. 그만 닥치거라.”넷째 부인이 꾸짖었다.“정말 어린애가 따로 없구나! 밖에서 네 백부의 일에 꼬투리 잡느라 우리는 숨기기도 바쁘다. 아무리 그래도 백부는 이부상서이고 그 사위는 당대 황제이니 수많은 자들의 미래를 손에 쥐고 있단 말이다.”계속 씩씩거리던 제자예는 그제서야 입을 삐죽 내밀며 더는 망언을 퍼붓지 않았다.“어쨌든 저는 방시원이 마음에 안 들어요. 얼마나 무능하면 아내가 나가서 사람을 훔치는 추태를 저질렀는데도 한마디 하지 않을까요?”“그건 황후마마의 뜻이다. 마마의 말씀을 들어.”넷째 부인은 딸에게 약을 발라주면서 향삼랑과 방기원의 차이를 자세히 분석해 주었다.어려서부터 제씨 황후를 숭배한 제자예였지만 이 일만은 동의하지 않았다.게다가 황후가 그날 공공연히 이 일을 언급한 것이 매우 의심스러웠다.“혹 방시원이 황후마마를 찾아가서 얘기했어요? 방씨 가문에서 감히 우리 가문과 혼사를 맺으려 하다니, 먼저 지들 신분부터 따져야 하지 않나요? 저는 군인들이 너무 싫어요. 특히 몸에서 나는 땀냄새 참을 수가 없어요.”넷째 부인은 딸이 고집이 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당장은 말이 통하지 않으니 더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혼사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태후도 허락하지 않았으니 나중에 얘기해도 늦지 않았다.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은 제자예는 아군여학에 돌아가 향회옥 일행에게 화풀이를 했다.방시원이 자기와 혼인을 하고 싶어 한다는 둥, 파렴치 하다는 둥 아무튼 그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까지 퍼부었다.향회옥은 이 일을 웃음거리로 삼아 다른 학생
송석석이 차가운 눈빛으로 훑어보자, 세 사람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감히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안여옥은 송석석이 들어오자마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아직도 안 가고 뭣하느냐! 매를 늘릴까 아니면 여학에서 쫓아내 버릴까? 글 공부하기 싫으면 자리를 차지하지 말고 떠나거라. 여기에 오고 싶어하는 학생은 얼마든지 있으니.”송석석의 언성에 향회옥과 주창우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두 사람은 재빨리 제자예의 옷자락을 잡으며 얼른 가자는 눈짓을 보냈다.본래 계척으로 20대를 치는데 지금은 30대로 늘어나고, 더 이상 가지 않으면 40대, 50대까지 늘릴 것이다.기세 높은 제자예는 가문에서도 귀하게 자란 몸이라 이런 대우를 받은 적이 없었다,그녀는 가까스로 독기 어린 눈빛을 거두고 송석석이 40대를 치겠다고 말하기 전에 두 사람을 데리고 물러섰다.입구를 나선 제자예는 화가 나서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황후가 분부하지 않았다면 이런 거지 같은 곳에 있지도 않았다.여인은 글만 알면 될 뿐, 많은 학식을 배워도 소용없지 않은가!차라리 가문과 하인을 관리하는 방법을 배운다면 앞으로 시집가도 손해보지 않을 것이다.이때 안여옥이 일어서서 인사를 올렸다.“왕비, 오셨소.”손석석은 자상한 미소를 지었다.“이런 학생들 때문에 머리가 아프지 않소?”“몇 명 뿐이니 괜찮소.”안여옥도 미소를 짓더니 송석석이 앉을 수 있게 책상 위의 교안을 정리했다.“다만, 말썽을 피우면 몰라도 누군가는 여학이 일을 크게 벌이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오.”그녀는 의아했다.“왕비는 누구라도 생각하시오?”송석석은 대략 알고 있었지만 확신할 수 없어서 대답 대신 그녀를 위로했다.“여학들이 큰일을 벌이는 걸 원치 않은 자들은 많소. 힘들게 추측하느니 우리의 본분만 잘 지키면 그만이오.”“맞는 말씀이시오.”안여옥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본래 저들의 일을 처리하려고 왕비를 청했는데 이제 잘못을 인정했으니 헛걸음을 하게 되었소.”“가끔은 나도 와서 살펴봐야 하지
송석석와 시만자는 궁을 나선 후, 시만자는 공방으로, 송석석는 여학으로 각자 향했다.이미 전에 제자예에게 더는 수작을 부리지 말라고 경고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국태부인은 송석석를 보자마자 그녀가 제자예의 문제를 해결하러 온 것을 알고 말했다.“그 아이는 학문에 뜻이 없는 듯하니, 차라리 퇴학을 권하는 게 어떻소? 스스로 떠난다면 보기 흉하지 않을 것이오. 어쨌든 곧 혼사를 준비해야 할 아가씨지 않소.”국태부인은 제자예의 집안을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녀를 생각하며 말한 것이다. 만약 아군여학에서 쫓겨난다면 그녀의 명성에 큰 타격이 갈 것이 분명했다.국태부인은 여자아이들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깊었다. 혼사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으면 평생 후회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송석석이 말했다.“국태부인,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선 그녀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부터 알아보고 이야기 해보겠습니다.”국태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크게 잘못한 일은 아니오. 그 아이와 벗들이 수업마다 소란을 피우며, 특히 여옥 선생 앞에서 더욱 심했소. 이에 따라 다른 학생들의 불만도 커졌고, 여옥 선생도 꽤 곤란해하고 있소. 선생도 나이가 젊으니, 이런 문제를 처리하는 데 익숙하지 않나 보오.”송석석이 잠시 생각했다. 여옥 선생은 문제를 처리할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녀 역시 단순한 학생들의 문제가 아니기에, 여학 자체를 흔들려는 의도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것은 그녀가 섣불리 나설 수 없는 문제였다.송석석는 먼저 여옥을 찾으려 했지만, 마침 제자예가 그녀의 두 친구와 향회옥과 주창우와 안에 있는 모습을 보았다.놀랍게도, 그들은 사과하러 왔다.제자예가 앞장서서 고개를 숙이고 진심으로 뉘우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철이 없어서 여옥 선생께 폐를 끼쳤습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선생이 처벌을 내려도 달게 받겠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벌을 내려주십시오
황후는 급격히 화가 치밀어 올라 잔을 내던지며 말했다.“정말 눈엣가시구나! 항상 나의 계획을 방해하기만 한다.”그러자 궁녀 란주가 옆에서 말했다.“마마. 북명왕비는 태후의 명으로 여학을 설립하고 아군여학을 도맡은 이후로, 경중의 부인들 사이에서 칭찬받고 있습니다. 지금쯤 경성의 반이 되는 명문가 부인들이 그녀를 존경하고 있으니, 정말 쉽지 않은 상대입니다.”제황후는 순간 지난 동짓날이 떠올랐다. 그날 명부들은 하나같이 송석석을 극찬하였다. 심지어는 북명왕 부부의 금실을 감탄하거나, 그녀의 능력과 역량을 치켜세우며 여인의 모범이라 말했다.‘송석석이 여인의 모범이라면, 나는 황후로서 뭐란 말인가?’이런저런 생각에 그녀의 마음속에는 질투와 분노가 더욱 치밀어 올랐다.“태후께서 한때 이방을 여인의 모범이라 하셨는데, 이제 그 명성을 송석석이 차지하고 있으니, 불쾌하지도 않은 것이냐?”궁녀가 말했다.“마마, 그녀는 지금 돋보이게 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어 한창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금 시기에 그녀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만사가 극에 달하면 화를 입을 테니, 언젠가 그 관심이 화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태후께서 그녀를 지키고 있으니, 그녀와 대립하지 않는 것이 현명합니다.”황후가 차갑게 말했다.“태후께서 그녀를 지키는 이유는, 그저 송석석 어머니와의 사소한 옛정 때문 아니겠느냐? 여학은 태후가 하자고 하신 일이지만, 폐하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으셨다. 그저 효도를 위해 마지못해 허락한 것뿐이지. 여학을 도맡아서 대단한 줄 아는 모양인데, 송석석이 글이나 알고 있느냐? 정말 우습지 않은가? 태후는 여학을 중시하신다. 여학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해도 태후께서 그녀를 계속 지킬지 두고 보자.”란주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제자예 아가씨를 여학에 들여보내 선생들을 곤란하게 했던 일이 태후의 귀에 들어가지 않아서 다행이긴 하지만, 더 심한 일이 벌어진다면 정말 태후를 노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폐하께서도 마마를 도와주시지 않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