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전북경은 약왕당으로 민 씨를 데리러 갔지만 약왕당 사람들이 그를 들여보내지 않아 그는 밖에서 한 시진 동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민 씨는 약왕당의 뒤뜰에서 식사를 마치고 조용히 차 한 잔을 마신 뒤 고개를 들어 홍작을 보며 말했다. “이렇게 느긋하게 식사를 하는 것도 참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그러자 홍작이 말했다. “당신만 원한다면 매일 오늘같이 느긋하게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잘 말해두었으니 약왕당에서 이제 당신을 내쫓지 않을 것입니다.” 민 씨는 찻잎 찌꺼기를 보다가 한참 뒤에야 일어나서 말했다. “나 그 사람과 돌아가야겠습니다.” 그러자 홍작이 말했다. “잘 생각하신 겁니까? 지금 돌아간다고 해도 그들이 당신에게 잘 대해주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언젠간은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민 씨는 눈시울을 붉히고 웃으며 말했다. “홍작 선생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별말씀을요. 그 사람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가 약을 좀 지어줄 테니 돌아가서 복용하십시오.” “아닙니다. 전 이제 괜찮아져 굳이 약 먹을 필요까진 없습니다.” 민 씨는 밖으로 나가 아치 쪽으로 가더니 홍작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제 이름은 민소진입니다.” 그러자 홍작은 잠깐 멍하더니 말했다. “민소진, 이름도 참 아름다우십니다.” “그렇지요. 아름다운 이름이지요.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제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없었답니다.” 그러자 홍작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그럴 리가요? 당신의 부군께서 당신의 이름을 불러주시지 않습니까?” 민 씨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처음엔 불러주었지요.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저 차갑게 ‘야’라고만 부르더군요.” “‘야’라니요…?” 홍작은 멍하니 생각하더니 그녀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그렇게 부른다는 말입니까?” “예.” 민 씨는 짧게 대답한 후 홍작을 향해 몸을 굽혀 인사를 하더니 말했다. “그럼 전 이만 가겠습니다. 대신 송석석에게도 정말 고
전 씨 노부인은 침대에 반쯤 기대 누워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매로 그녀를 째려보며 차가운 말투로 호통쳤다.“무릎 꿇어라!”민 씨가 무릎을 꿇자 노부인이 민 씨의 뺨을 때리며 악독한 저주를 퍼부었다.“죽을 거면 멀리 가서 죽지 왜 다시 돌아온 것이냐? 목숨으로 협박이나 하다니. 네가 간이 제대로 부었구나!”ㄱ러자 손마마가 옆에서 말렸다.“노부인 일단 화를 가라앉히십시오. 큰 부인께서도 잘못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노부인의 몸을 생각해서라도 화를 참으십시오.”전 씨 노부인은 옆에 있는 탁자의 찻잔을 집어 민 씨의 머리에 내리쳤다.“이제 와서 잘못을 알았다는 것이냐? 소란을 피울 땐 왜 알지 못했느냐? 우리 장군부의 체면을 모두 잃게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잘못했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꺼지거라. 마당에서 내일까지 무릎을 꿇고 있거라. 내 명령 없이는 절대로 일어나지 말거라.”찻잔이 덜커덕하고 바닥에 떨어지자 따뜻한 찻물이 피와 섞여 민 씨의 이마에서 흘러내렸다. 손마마는 눈앞의 상황을 보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큰 부인, 노부인의 눈앞에 계시지 마시고 어서 나가서 무릎을 꿇고 계십시오.”이건 손마마가 호의로 한 말이었다. 그녀가 빨리 나가야 더 이상 맞지 않기 때문이다.민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나 마당 입구로 걸어가 무릎을 꿇었다.전 씨 노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매우 흥분한 상태였다.“저 년, 저 태도 좀 봐!”손마마는 노부인을 위로하더니 담요를 가지고 나가 민 씨에게 주었다. 그녀는 날씨가 추우니 노부인께서도 나와 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녀들에게 분부했다. “뭘 멍하니 서 있어? 어서 와서 큰 부인의 상처를 싸매거라.” 민 씨는 내내 끄떡도 하지 않고 꼭두각시처럼 그들이 싸매도록 두었다. 민 씨는 고개를 숙여 아무런 표정이 없는 눈으로 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추위도 아픔도 느낄 수 없었다. 손마마가 말했다. “큰 부인께선 일단 무릎을 꿇고 계십시오. 저녁식사 후 제가 노부인께 사
전북경은 둘째 숙부의 말을 들어주긴 했지만 여전히 민 씨가 먼저 어머니의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는 어머니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죽음으로 가족을 협박하다니, 그런 생각은 애초에 꺾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북경은 모질게 마음먹고 그녀를 상관하지 않았다.오늘 밤에도 기온이 내려가 매우 추웠지만 민 씨는 여전히 조각상처럼 무릎을 꿇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손마마는 그녀에게 망토를 걸쳐주고는, 방으로 들어가 노부인을 설득했지만 노부인은 여전히 내일까지는 무릎을 꿇어서 잘못을 뉘우쳐야 한다고 했다. “엄하게 처벌하지 않으면 어떻게 잘못을 뉘우칠 수가 있겠느냐!”하지만 손마마는 계속 그녀를 설득했다.“하지만 큰 부인께서는 물에 빠졌다 나오지 않았습니까? 안 그래도 몸이 회복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추운 날 밖에서 밤새 무릎을 꿇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입니다.”그러자 노부인은 포악하고 위압감으로 가득 찬 말투로 말했다.“그만 말하거라. 한 번 더 사정한다면 내일도 계속 무릎을 꿇어야 할 것이다.”손마마는 결국 더 이상 나서지 못할 것 같아 몰래 나가서 민 씨에게 옷을 한 벌 더 입히고는 하녀들에게 돌아가라 명하고 혼자 노부인을 시중 들기 위해 다시 방에 들어갔다.노부인은 밤마다 두세 번은 일어나는데 예전엔 민 씨가 시중들었을 때 매일 잠을 잘 못 잔 탓이라고 했다. 밤이 되자 전 씨 노부인은 평소처럼 일어났고, 손마마 타구를 가지러 밖으로 나갔다.밖으로 나가자마자 마당에 비친 한 그림자를 보았는데 그 그림자는 나무에 걸려 노부인의 집 정문을 향하고 있었다. 손마마는 너무 놀란탓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비명을 질렀다. “여봐라! 큰 부인께서 자살하셨다…!” 손마마의 외침소리를 듣고 전부인이 급히 일어나 대추나무에 매달린 여인을 보았는데 눈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노부인 또한 놀라서 기절해 버렸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장군부의 등불이 모두 켜지더니 사람들이 달려나왔다. 민 씨의 몸은
노부인은 눈을 뜬 채 천장을 바라보았는데, 문 밖에서 목 매달린 민씨의 모습이 아직도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녀는 점점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그렇게 한참 후, 분노에 찬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천한 것! 자기 복도 모르는 천한 것!”손마마도 한바탕 울며 그때 민씨를 보러 나가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아…… 조금만 더 일찍 나갔더라면. 어쩌면 살릴 수도 있었을 텐데……' 이미 슬픔으로 가슴이 먹먹해진 그녀는 노부인이 민씨를 험담하자 참다못해 나지막이 변호하듯 말했다. “노부인, 대부인께서 부인을 정성껏 모신 것도 사실 아닙니까. 이제는 욕 좀 그만하십시오. 이미 떠나신 분이잖습니까……”그러자 노부인은 화가 잔뜩 난 채 소리쳤다."어찌 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죽으려면 저 멀리 가서 죽지, 왜 하필 내 문 앞에서 죽어서 나를 불쾌하게 하려는 것이냐?"노부인은 욕설을 내뱉고도 눈물을 참지 못했다. “저런 나쁜 계집을 진작에 알아보지 못했다니! 내 뜰 앞에서 목을 맨 건 내가 박한 사람이라고 소문이라도 내고 싶었던 겐가? 이제 큰놈이나 셋째가 장가를 들려고 해도 어렵겠구나. 어쩜 내 팔자가 이렇게 고달프냐, 다들 이 모양이니 원…”“우리 장군부의 명예가 전부 실추되어 버렸구나! 이러다가는 우리 둘째의 앞날에도 영향을 미칠지 몰라."노부인은 크게 상심했다. 하지만 단 한 방울의 눈물도 민씨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다음 날이 되자, 이 소식이 황실에 전해졌다. 사여묵과 송석석은 쉬는 날을 맞아 서원에 들러 서우를 데리고 식사를 함께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시만자가 들어와 민씨의 소식을 전해주면서 원래 외출 계획을 접어야 했다. 당연히 그 소식은 홍현이 알아낸 것이었다.송석석은 이야기를 들은 후 잠시 멍해져서 믿기지 않는 듯 시만자에게 물었다. “목을 맸다고? 살려내지 못한 거야?”“죽었어…” 시만자는 의자에 털썩 앉아 잠시동안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왜 인지 코끝이 시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비록 민씨가 스스로 목을 맸다고는 하지만, 경조부에서는 누군가에 의한 타살 여부를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전강은 경조부 소속이었으나 장군부와 관련된 사건인 만큼 이번 조사에 참여할 수 없었다.경조부윤 공양은 사람을 보내 여러 사람에게 민씨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각자의 입에서 나온 민씨의 모습은 모두 달랐다.왕청여는 그녀가 이기적이고 게으르다고 말했고, 전북망은 그녀가 제법 이해심이 깊다고 말했다.노부인은 민씨를 독한 계집이라고 부르면서, 교활하고 게으른데다 욕심 많고 방탕하여 장군부의 명성을 실추시켰다며 거칠게 욕했다.그리고 이방은 좀처럼 길상거를 나서지 않기에 이번에도 그저 한마디 할 뿐이었다.“내 알 바 아니야.”하인들은 그녀가 인자하면서도 남들에게 속기 쉬워서 쉽게 이용당할 수 있는 사람이라 평가했다.둘째 노부인은 그녀가 불쌍한 사람이라며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없는 처지였다고 울먹였다.유일하게 남편인 전북경만이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지 못했다.그는 오랫동안 생각했지만, 결국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늘 묵묵히 자신을 돌보며 말을 아끼던 민씨의 모습뿐이었다. 그녀는 항상 무미건조하고 마치 나무토막처럼 무덤덤하며 따분한 사람이었다.민씨는 스스로 강에 몸을 던진 적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 경조부는 그녀의 죽음을 냉혹한 대우로 인한 자결로 결론지었다.법에 따르면 사람을 자결에 이르게 할 만큼의 냉대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신체적인 손상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민씨가 실제로 두 차례 뺨을 맞고 무릎을 꿇는 벌을 받긴 했으나 법적 처벌을 받을 정도에는 이르지 못했다.법이 제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백성들의 비난은 장군부를 거의 삼킬 정도로 거세게 몰아쳤다. 사실 장군부는 이미 몇 차례나 이러한 비난에 휩싸였을 때마다 매번 꿋꿋하게 견뎌내곤 했다.민씨의 장례는 조용히 치러졌고, 양 마마는 송석석을 대신해 장군부에 들러 향을 올리며 조의를 표했다. 일년 동안 시누이로 지낸 인연을 기리는 마음에서였다.양 마마는 이곳이 불길하다고 느꼈지만 장군부에서는
민씨가 세상을 떠난 후, 왕청여는 어쩔 수 없이 집안 살림을 계속 맡아야 했는데, 장부를 살펴보니 역시 남은 은화가 거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재산으로 메우는 것은 아까워 결국 손을 떼기로 마음 먹었다. 책임을 피하고자 둘째 노부인을 찾아가 장부를 책상 위에 놓으며 대신 살림을 맡아달라고 했다.둘째 노부인은 민씨의 죽음에 애통해하고 있던 터라 왕청여의 이 행동에 기막혀 화가났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바로 장부를 던져버리고 곧장 노부인의 방으로 달려가 말했다. “전 그냥 나가서 살겠습니다!” 노부인은 울분을 참지 못하며 소리쳤다. "지금 밖에서 우리 장군부를 두고 떠드는 말이 아직 적다고 생각하오? 이 타이밍에 분가를 한다면 사람들이 또 뭐라 하겠소!" “형님네께서 불러온 화인데 왜 제가 함께 비난을 받아야 합니까?! 오늘 밤 남자들이 돌아오면 어떻게 나눌지 논의해서 곧바로 나가 살겠습니다!”"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지금 와서 무슨 분가를 한단 말이오? 은화도 다 떨어졌고 집이며 땅이며 남은 게 없소. 이 장군부 한 채로 도대체 어떻게 나누겠다는 것이오?"“벽을 쌓아 나눠 살게 해주십시오. 문은 제가 따로 만들겠습니다.” 둘째 노부인은 이번에는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단호히 나섰다. “정말 미쳤소! 자네 둘째 집안은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잘 지낼 수나 있을 것 같소?”"잘 못 살더라도 형님네처럼 남들한테 손가락질 받으며 사는 것보단 훨씬 더 낫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젠 저도 모르겠으니 따로 삽시다. 큰댁이 팔아버린 가게며 토지는 원래 모두 공공 재산이었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 둘째 집안 몫은 돌려주셔야 합니다!"둘째 노부인은 말을 마치자마자 씩씩거리며 자리를 떴다.노부인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분노에 찼다. "정말 화가 나서 못 살겠구나! 왕청여는 대체 왜 저러는 것이냐? 살림을 맡으라 했더니 둘째 집안에 가서 대체 무슨 소란을 벌인 거냔 말이다! 그리고 민씨 그 천한 계집은 죽어
“아야!”왕청여는 급히 몸을 돌려 노부인이 던진 약그릇을 피했고, 약그릇은 바닥에 퍽하고 떨어졌다. 하지만 며칠 동안 계속된 피로로 아랫배가 이미 아파왔던 왕청여는 넘어진 충격으로 태기가 심하게 흔들려 피가 비칠 정도였다.이 모습을 본 노부인이 소스라치게 놀랐고, 손마마는 급히 사람을 불렀다. "어서 왕청여를 문희거로 옮기고 의관과 산파를 불러오너라!"급히 소식을 들은 전북망이 집에 돌아왔는데, 이미 의관과 산파가 도착해 있었다. 태아는 아직 달이 차지 않았고 태위 또한 바르지 않은 상태였는데, 왕청여가 넘어지면서 피가 비친 데다 양수까지 터져 버렸다. 심각한 상황에 산파는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전북망 또한 분만실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첫아이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아버지가 되는 순간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찼었다. 그간 아이를 위해 왕청여와 다투지 않으려 애써 참아왔는데, 이처럼 중요한 순간에 이런 불상사가 일어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의관은 진성에서 굉장히 유명한 명의였지만, 상황이 몹시 긴박한 탓에 그마저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는 맥을 짚은 후 병풍 뒤로 물러나 처방을 지시했지만 그 역시도 긴장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여섯 시간이 흘렀으나 여전히 자궁이 다 열리지 않았다. 분만 촉진제도 써 보았지만 왕청여의 통증은 점점 더 심해질 뿐이었다. 왕청여는 고통이 밀려오는 순간마다 목이 쉬도록 울부짖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힘을 주어 보았으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며 말했다.“부군……부군……! 제 친정 사람들 좀 불러… 주세요…!”왕청여가 힘들게 외치자 그 소리를 들은 전북망은 곧장 사람을 보내 평서백부로 달려가게 했다. 분만실 안에서 손마마도 돕고 있었다. 손마마는 비록 산파는 아니지만 과거에 노부인과 민씨의 출산을 보필했던 경험이 있어 나름 도움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점점 악화되는 것
결국 전북망은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자 사실대로 털어놓기로 했다."사실 낮에 청여와 제 어머니가 몇 마디 언쟁을 했사옵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약그릇을 던지셨고 그 바람에 청여가 넘어졌습니다......" 평서백부 노부인은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한참을 숨을 고른 뒤에야 겨우 몸을 가누며 물었다.“뭐라고 하셨습니까? 어머님께서 제 딸을 치셨단 말입니까?” 전북망은 미안한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이 일은 분명히 제 어머니께서 잘못하신 것이옵니다. 그러나 지금은 청여를 지키는 것이 급선무이지 않겠습니까. 의관님께서 말씀하시길 청여가 예전에 낙태를 하며 자궁이 손상되어 출혈이 많아질 수 있다고 하였사옵니다. 그리고 지금 출혈이 이미 심각한 상태라 아이를 꺼내고 지혈제를 써야 한다고 하옵니다."평서백부 노부인의 분노로 일그러졌던 얼굴이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순식간에 굳어졌다.‘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인가?’ 최씨가 나서며 말했다.“지금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옵니다. 일단 사람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이오니 의관님의 말씀을 따르도록 하시지요."그러자 전북망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의관께서 말하길 단신의를 모셔오거나 아이를 꺼내고 지혈제를 쓰는 방법 밖에 없다고 하셨사옵니다. 하지만 이미 날이 저물어 단신의께서 약왕당에 계실지 알 수 없으니, 그의 방법을 따르는 수밖에 없을 듯 하옵니다.” 의관은 지혈제 조제를 마쳤고, 최씨는 그 뒤를 따라 안으로 같이 들어갔다. 왕청여는 마치 물에 빠졌다가 나온 사람처럼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얼굴은 무척 창백했고 두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지독한 고통이 그녀를 눈에 띄게 수척하고 지쳐 보이게 만든 것이다. 언뜻 형수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어머니를 찾으며 중얼거렸다. "어머니……"이 순간,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어머니뿐이었다.최씨는 그녀의 볼을 살짝 잡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먼저 지혈제를 먹게. 어머니께서는 바로 밖에 계시니 이것만
최씨와 딸 왕지아는 마당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마당에는 나무와 꽃들이 많이 심어져 있었지만 그리 무성하게 자라지 못했으며 특히 올해 겨울엔 더더욱 일찍 시들었다.“지아야, 너 왜 고모부… 방시원 장군님 편을 든 거야?”최씨는 손수건으로 왕지아의 상처 주위를 조심스럽게 닦아주며 물었으며 아이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알고 싶었다.평서백부에 이런저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아이들에게 얘기해주지 않았으며 잘 숨겼다고 생각했지만 요즘 밖에 떠도는 유언비어가 너무 많았기에 아이들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왕지아는 벌겋게 부은 얼굴을 살짝 들었다. 분명 맑고 순진한 눈망울을 하고 있었지만 나이와 맞지 않는 성숙한 눈빛이 보였다.“엄마, 예전에 고모부가 고모와 함께 우리 집안에 처음 왔을 때 나에게 뭘 선물했는지 기억하세요?”왕지아의 말에 최씨가 기억을 떠올리며 대답했다.“엄마 기억으론 장군을 보필하는 마마가 너와 현이에게 금덩이 하나와 금열쇠 하나씩 선물했던 것 같은데?”왕지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똑 부러진 목소리로 말했다.“국태 부인의 산하지를 저에게 선물해 주셨어요. 그때 당시 고모부가 저에게 해준 말이 있었거든요. 지금 세상에 태어난 여인들은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기 어렵다고 했어요. 다른 지역으로 시집을 가지 않는 이상, 집 밖으로 나간다는 건 쉽지 않지만 넓은 바깥 세상을 직접 두 눈으로 보지 못한다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이라고 했어요. 우리 상국의 아름다운 풍경들도 보고 바깥 하늘이 얼마나 푸르고 높은지도 보아야 시야가 넓어지고 쓸데없는 일에 고집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자신을 힘들게 할 필요도 없다고 하셨죠.”최씨는 딸의 말에 흠칫 놀랐다. 그때 당시 방시원을 처음 봤을 때 최씨도 돈만 밝히는 사람이어서, 상대방이 무슨 선물을 들고 왔는지부터 따지기 바빴다.“고모부는 고모와 혼인을 하고 나서 지금까지 우리 집안에 찾아와서 따지거나 고모를 힘들게 한 적이 단 한번도 없어요. 엄마, 고모
제자예는 넷째 부인의 손을 뿌리치곤 최씨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절대 사과 안 할 거예요! 저를 뭐 어떡하실 건데요? 그렇게 억울하면 저도 한 대 치세요!”최씨를 향해 얼굴을 들이민 제자예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눈물을 글썽이며 세상 서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최씨는 그런 제자예를 보며 그저 어이없다는 듯이 차갑게 피식 웃었다.“그렇다면 지금 당장 제 제사한테 찾아가서 물어봐야겠네. 따님 교육을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버릇이 없는 건지, 참.”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송석석에게 말했다.“훈장님, 그때 제 증인이 되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제 제사를 만난다면 전 당연히 솔직하게 얘기드릴 겁니다.”송석석의 대답에 제씨 넷째 부인은 눈이 휘둥그레졌으며 이 일이 어르신에게 알려지면 넷째 부인은 크게 혼이 날 것이다.절대 어르신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넷째 부인은 이를 악문 채 제자예에게 말했다.“얼른 왕지아에게 사과해.”제자예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엄마, 전 사과할 수 없어요. 쟤들이 날 괴롭혔고 날 서원에서 쫓아내려고 했어요. 사과를 해야 할 사람은 쟤들이에요.”넷째 부인은 최씨와 송석석을 힐끗 흘겨보다가 굳은 표정으로 엄숙하게 말했다.“잘못을 저질렀으면 사과를 하는 게 당연한 일이야.”제자예는 자신이 며칠동안 서러운 일을 너무 많이 겪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어머니마저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자 더욱 서럽고 슬펐다.“싫어요. 절대 사과 못 해요!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세요! 전 절대 굴하지 않을 거예요!”말을 하던 제자예는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지만 이내 송석석에게 잡혀 다시 최씨 곁으로 돌아왔다. 송석석이 최씨를 보며 말했다.“이번 일이 저희 아군 서원에서 벌어졌으니 서원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제자예 학생이 왕지아 학생의 얼굴에 상처를 냈으니 관아로 보내는 건 어떠세요? 관아의 처리에 따라 저희 아군 서원에서 책임져야 할 부분은 반드시 책임지겠습니다.”송석석의 말에 최씨
제씨 넷째 부인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일을 이렇게까지 크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사과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퇴학은 너무 과한 처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끼리 말다툼하다가 벌어진 작은 소동인데 퇴학 처리까지 하면 아군 여학에서 괜한 문제를 만든다고 소문이 나지 않겠습니까? 부인께서도 아군 여학을 위해 고려하셔야죠. 제 딸이 퇴학을 당하고 나서 이상한 소문이라도 돌면 아군 여학 명성에 오점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조금 전에 최씨를 협박했던 넷째 부인은 이제 대놓고 아군 여학까지 협박했지만 듣고 있던 송석석은 그저 어이없다는 듯이 차갑게 웃을 뿐이었다.“사람을 때리고도 퇴학을 당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아군 여학의 명성에 오점을 남기는 거죠. 저희가 넷째 부인을 이곳으로 모신 건 다들 차분하게 이 일을 해결하고자 하는 겁니다. 사과할 건 하고 처벌을 받을 건 받아야죠. 당사자들끼리 직접 만나서 확실하게 얘기를 털어놓아야 두 가문에서 아이들 때문에 앙금이 남지 않을 것 같아서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퇴학은 불가피합니다. 부인께서 자퇴를 거절하신다면 제가 나서서 제자예 학생을 퇴학 처리할 것입니다.”넷째 부인은 송석석과 대놓고 싸울 수는 없었기에 고개를 돌려 다른 선생님들에게 물었다.“다들 스승인데, 학생의 이런 작은 잘못조차 포용해주지 못 하시는 거예요?”안여옥의 태도도 강경했다.“전 제자예 학생을 아군 여학에서 강제로 퇴학 시켜 달라고 요구했지만 국태 부인과 훈장님꼐서 제자예의 마지막 체면을 지켜준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자퇴를 권하시는 거고요.”국태 부인도 말을 덧붙였다. “스스로 자퇴하세요. 더 얘기해봤자 서로 감정만 상할 겁니다.”제씨 넷째 부인은 안여옥을 날카롭게 흘겨보았다. 학생들의 증언에 의하면 안여옥이 제일 먼저 퇴학 얘기를 꺼냈고 다른 사람들은 그저 그 의견에 동의했을 뿐이다.안씨 가문과 방씨 가문 사이에 있었던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당사자들만 잘 숨기고 있다고 착각
최씨도 시녀 금숙을 데리고 왔다. 자신의 딸이 맞았다는 말에 제일 먼저 그녀의 상태부터 살폈는데 얼굴이 퉁퉁 부은 데다가 어딘가에 긁힌 흔적도 남아 있었다.국태 부인이 딸에게 약을 발라줬다는 말을 전해 들은 최씨는 딸의 마음을 위로해준 뒤 바로 서아원으로 돌아가 국태 부인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두 부인이 앉자마자 송석석이 나서서 일의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이내 사람을 시켜 제자예와 왕지아 그리고 증인이 되어줄 학생 몇 명까지 불러왔다.제씨 넷째 부인의 표정이 매우 좋지 않았다. 멍청한 딸이 이 일을 서원에서 얘기한 것도 화가 나는데 왕지아가 심지어 방시원이 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고 얘기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왕지아의 말이 소문이라도 나면 제씨 넷째 부인의 딸의 명예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하지만 어찌됐든 제자예가 사람을 때린 건 사실이고 이는 말다툼과 성질이 다르기에 일단 최씨에게 고개를 숙여 대충 사과부터 할 수밖에 없었다.“철없는 여자애들끼리 다툼이 조금 있었던 것일 뿐이지만 그래도 제 딸이 손찌검을 한 건 잘못된 행동이니 최씨 부인께서 제 딸을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최씨는 제자예를 힐끗 쳐다보았는데, 허리를 쫙 편 채 꼿꼿하게 서있는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고고하고 당당해 보였다.그러자 최씨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따님은 이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자신이 한 행동에 책임을 질 나이가 되었지요. 따님이 손찌검을 했으니 직접 사과하라고 하세요. 그 사과를 받고 나서 이해할지 말지는 제가 결정할 일이죠.”넷째 부인은 다시 최씨를 위 아래로 훑었다. 결국 평서백부는 제씨 가문의 체면을 고려해줘야 하고 송석석도 이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사적으로 합의를 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넷째 부인이 이미 고개를 숙였음에도 불구하고 최씨는 전혀 넷째 부인의 체면을 봐주지 않고 있다.넷째 부인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입장이 난처해졌고 심지어 학원 학생들까지 있는데 이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가면 이 일을 부모님에게
엄중히 처리한다는 말에 향회옥 일행은 두려워져, 제자예와 일정한 거리를 두기 위해 뒤로 물러섰다.억울한 제자예는 왕지아가 방시원을 도운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러게 왜 입을 함부로 놀려서는. 재네 고모가 추악한 일을 저질렀는데 방시원의 편을 들었어요. 부끄럽지도 않나 봐요.”그 말에 뺨을 맞았을 때도 울지 않던 왕지아가 닭 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더니 옆에 있는 여학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이 일을 처리하기 위해 선생님들은 물론 송석석까지 불렀다. 함께 싸움에 가담했던 학생들은 자신도 처벌을 받을까 봐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다.방금 기세 높게 싸우던 학생들도 잠자코 옆에 있었다.자초지종을 이해한 안여옥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했다. “제자예가 여러 번이나 소란을 피웠고, 심지어 오늘은 학생을 때렸어요. 글 공부하러 온 것은 아닌 것 같으니 서원의 풍기를 어지럽히지 않기 위해 쫓아낼 것을 제안합니다.”제자예는 원래부터 여학에 오기 싫었다.하지만 본인이 오기 싫은 것과 쫓겨나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게다가 황후가 그녀를 서원에 보냈고 해야 할 일도 완성하지 못했는데, 여기서 쫓겨날 수 없었다.마음이 초조해지자 그녀는 먼저 제안한 안여옥에게 욕설을 퍼부었다.“날 왜 쫓아내는지 알아요. 당신이 방시원과 혼인하려 했는데 그 자식이 당신을 좋아하지 않고 날 좋아하기 때문이죠. 나를 질투하고 얄미워서 쫓아내려는 거죠?”그 말에 태국부인이 얼굴을 찌푸렸다.“제씨 가문에서 이렇게 자식을 교육했느냐? 입만 벌리면 욕이고 손을 들었다 하면 사람을 때리다니, 헛소리를 지껄이지 말고 네 잘못을 뉘우쳐라. 나도 저 여학을 쫓아내는 것에 동의한다.”그러다가 갑자기 마음이 약해져서 말을 덧붙였다. “네 발로 나가. 혹 소문이라도 나면 네 혼삿길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저도 이 뜻에 동의합니다!”규율 담당인 무씨 아가씨도 그녀들이 글공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소란을 피우러 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지난
넷째 부인이 재빨리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조용히 하거라. 감히 그런 상스러운 말을 입에 담다니, 혹시나 네 백부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반드시 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제씨 가문은 워낙 엄격해서 자손들은 말과 행동에 각별히 조심해야 했다.제자예는 머리를 흔들며 어머니의 손을 뿌리쳤다.“백부도 언행이 바르지 않는데 감히 우리를 혼내다니요? 전 두렵지 않습니다!”“됐다. 그만 닥치거라.”넷째 부인이 꾸짖었다.“정말 어린애가 따로 없구나! 밖에서 네 백부의 일에 꼬투리 잡느라 우리는 숨기기도 바쁘다. 아무리 그래도 백부는 이부상서이고 그 사위는 당대 황제이니 수많은 자들의 미래를 손에 쥐고 있단 말이다.”계속 씩씩거리던 제자예는 그제서야 입을 삐죽 내밀며 더는 망언을 퍼붓지 않았다.“어쨌든 저는 방시원이 마음에 안 들어요. 얼마나 무능하면 아내가 나가서 사람을 훔치는 추태를 저질렀는데도 한마디 하지 않을까요?”“그건 황후마마의 뜻이다. 마마의 말씀을 들어.”넷째 부인은 딸에게 약을 발라주면서 향삼랑과 방기원의 차이를 자세히 분석해 주었다.어려서부터 제씨 황후를 숭배한 제자예였지만 이 일만은 동의하지 않았다.게다가 황후가 그날 공공연히 이 일을 언급한 것이 매우 의심스러웠다.“혹 방시원이 황후마마를 찾아가서 얘기했어요? 방씨 가문에서 감히 우리 가문과 혼사를 맺으려 하다니, 먼저 지들 신분부터 따져야 하지 않나요? 저는 군인들이 너무 싫어요. 특히 몸에서 나는 땀냄새 참을 수가 없어요.”넷째 부인은 딸이 고집이 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당장은 말이 통하지 않으니 더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혼사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태후도 허락하지 않았으니 나중에 얘기해도 늦지 않았다.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은 제자예는 아군여학에 돌아가 향회옥 일행에게 화풀이를 했다.방시원이 자기와 혼인을 하고 싶어 한다는 둥, 파렴치 하다는 둥 아무튼 그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까지 퍼부었다.향회옥은 이 일을 웃음거리로 삼아 다른 학생
송석석이 차가운 눈빛으로 훑어보자, 세 사람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감히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안여옥은 송석석이 들어오자마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아직도 안 가고 뭣하느냐! 매를 늘릴까 아니면 여학에서 쫓아내 버릴까? 글 공부하기 싫으면 자리를 차지하지 말고 떠나거라. 여기에 오고 싶어하는 학생은 얼마든지 있으니.”송석석의 언성에 향회옥과 주창우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두 사람은 재빨리 제자예의 옷자락을 잡으며 얼른 가자는 눈짓을 보냈다.본래 계척으로 20대를 치는데 지금은 30대로 늘어나고, 더 이상 가지 않으면 40대, 50대까지 늘릴 것이다.기세 높은 제자예는 가문에서도 귀하게 자란 몸이라 이런 대우를 받은 적이 없었다,그녀는 가까스로 독기 어린 눈빛을 거두고 송석석이 40대를 치겠다고 말하기 전에 두 사람을 데리고 물러섰다.입구를 나선 제자예는 화가 나서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황후가 분부하지 않았다면 이런 거지 같은 곳에 있지도 않았다.여인은 글만 알면 될 뿐, 많은 학식을 배워도 소용없지 않은가!차라리 가문과 하인을 관리하는 방법을 배운다면 앞으로 시집가도 손해보지 않을 것이다.이때 안여옥이 일어서서 인사를 올렸다.“왕비, 오셨소.”손석석은 자상한 미소를 지었다.“이런 학생들 때문에 머리가 아프지 않소?”“몇 명 뿐이니 괜찮소.”안여옥도 미소를 짓더니 송석석이 앉을 수 있게 책상 위의 교안을 정리했다.“다만, 말썽을 피우면 몰라도 누군가는 여학이 일을 크게 벌이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오.”그녀는 의아했다.“왕비는 누구라도 생각하시오?”송석석은 대략 알고 있었지만 확신할 수 없어서 대답 대신 그녀를 위로했다.“여학들이 큰일을 벌이는 걸 원치 않은 자들은 많소. 힘들게 추측하느니 우리의 본분만 잘 지키면 그만이오.”“맞는 말씀이시오.”안여옥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본래 저들의 일을 처리하려고 왕비를 청했는데 이제 잘못을 인정했으니 헛걸음을 하게 되었소.”“가끔은 나도 와서 살펴봐야 하지
송석석와 시만자는 궁을 나선 후, 시만자는 공방으로, 송석석는 여학으로 각자 향했다.이미 전에 제자예에게 더는 수작을 부리지 말라고 경고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국태부인은 송석석를 보자마자 그녀가 제자예의 문제를 해결하러 온 것을 알고 말했다.“그 아이는 학문에 뜻이 없는 듯하니, 차라리 퇴학을 권하는 게 어떻소? 스스로 떠난다면 보기 흉하지 않을 것이오. 어쨌든 곧 혼사를 준비해야 할 아가씨지 않소.”국태부인은 제자예의 집안을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녀를 생각하며 말한 것이다. 만약 아군여학에서 쫓겨난다면 그녀의 명성에 큰 타격이 갈 것이 분명했다.국태부인은 여자아이들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깊었다. 혼사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으면 평생 후회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송석석이 말했다.“국태부인,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선 그녀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부터 알아보고 이야기 해보겠습니다.”국태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크게 잘못한 일은 아니오. 그 아이와 벗들이 수업마다 소란을 피우며, 특히 여옥 선생 앞에서 더욱 심했소. 이에 따라 다른 학생들의 불만도 커졌고, 여옥 선생도 꽤 곤란해하고 있소. 선생도 나이가 젊으니, 이런 문제를 처리하는 데 익숙하지 않나 보오.”송석석이 잠시 생각했다. 여옥 선생은 문제를 처리할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녀 역시 단순한 학생들의 문제가 아니기에, 여학 자체를 흔들려는 의도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것은 그녀가 섣불리 나설 수 없는 문제였다.송석석는 먼저 여옥을 찾으려 했지만, 마침 제자예가 그녀의 두 친구와 향회옥과 주창우와 안에 있는 모습을 보았다.놀랍게도, 그들은 사과하러 왔다.제자예가 앞장서서 고개를 숙이고 진심으로 뉘우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철이 없어서 여옥 선생께 폐를 끼쳤습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선생이 처벌을 내려도 달게 받겠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벌을 내려주십시오
황후는 급격히 화가 치밀어 올라 잔을 내던지며 말했다.“정말 눈엣가시구나! 항상 나의 계획을 방해하기만 한다.”그러자 궁녀 란주가 옆에서 말했다.“마마. 북명왕비는 태후의 명으로 여학을 설립하고 아군여학을 도맡은 이후로, 경중의 부인들 사이에서 칭찬받고 있습니다. 지금쯤 경성의 반이 되는 명문가 부인들이 그녀를 존경하고 있으니, 정말 쉽지 않은 상대입니다.”제황후는 순간 지난 동짓날이 떠올랐다. 그날 명부들은 하나같이 송석석을 극찬하였다. 심지어는 북명왕 부부의 금실을 감탄하거나, 그녀의 능력과 역량을 치켜세우며 여인의 모범이라 말했다.‘송석석이 여인의 모범이라면, 나는 황후로서 뭐란 말인가?’이런저런 생각에 그녀의 마음속에는 질투와 분노가 더욱 치밀어 올랐다.“태후께서 한때 이방을 여인의 모범이라 하셨는데, 이제 그 명성을 송석석이 차지하고 있으니, 불쾌하지도 않은 것이냐?”궁녀가 말했다.“마마, 그녀는 지금 돋보이게 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어 한창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금 시기에 그녀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만사가 극에 달하면 화를 입을 테니, 언젠가 그 관심이 화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태후께서 그녀를 지키고 있으니, 그녀와 대립하지 않는 것이 현명합니다.”황후가 차갑게 말했다.“태후께서 그녀를 지키는 이유는, 그저 송석석 어머니와의 사소한 옛정 때문 아니겠느냐? 여학은 태후가 하자고 하신 일이지만, 폐하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으셨다. 그저 효도를 위해 마지못해 허락한 것뿐이지. 여학을 도맡아서 대단한 줄 아는 모양인데, 송석석이 글이나 알고 있느냐? 정말 우습지 않은가? 태후는 여학을 중시하신다. 여학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해도 태후께서 그녀를 계속 지킬지 두고 보자.”란주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제자예 아가씨를 여학에 들여보내 선생들을 곤란하게 했던 일이 태후의 귀에 들어가지 않아서 다행이긴 하지만, 더 심한 일이 벌어진다면 정말 태후를 노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폐하께서도 마마를 도와주시지 않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