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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4화

작가: 유애
이제는 정말 마지막 남은 희망까지 사라져 버렸다.

지친 나날들, 숨이 막힐 듯한 시어머니와 동서, 그리고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남자들, 거기에 길상거에 틀어박혀 있다가 가끔 나와서 물건을 빼앗아 가는 악녀 이방까지.

이 집은 더는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마치 새장과도 같았다.

그녀는 노부인의 방으로 끌려가 침대 옆에 억지로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망연히 고개를 들어 시아버지와 전북망을 보았는데, 두 사람의 표정에는 그녀를 탓하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

다시 남편인 전북경을 보자 그의 눈에도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그녀의 따귀를 한 대 때리고는 김순희에게 사과했다.

“어머니, 부디 화를 푸십시오. 제가 이미 훈계했으니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아들의 진심 어린 사과에 그제야 김순희는 민소진을 용서했다.

“됐다. 어차피 저 아이는 귀족 출신이 아니라 손이 작고 궁상맞은 것도 어쩔 수 없지.”

민소진은 뺨의 통증보다 마음의 고통이 더 컸지만 결국 무뎌지는 자신을 느꼈다.

다음 날 새벽, 장을 보러 가는 하인이 일어나 고기를 사러 나가려는데 열린 뒷문으로 차가운 바람이 훅 들어왔다.

“아니, 대체 누가 뒷문을 잠그지 않은 것이야? 이렇게 덤벙대서야. 뭐라도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하인은 투덜거리며 외투를 여미고 뒷문을 닫더니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중얼거렸다.

“날이 점점 더 추워지네. 올해 겨울옷은 왜 아직도 안 나오는 거지?”

그는 낡은 뜰로 나가 수레를 밀고 골목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민소진이 보이지 않았지만 전북경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매일 일찍 일어나 어머니의 방으로 가곤 했으니 말이다.

어젯밤 한바탕 훈계했으니 더 부지런히 행동할 것이라 여겨 마음 한편이 편해진 것 이다.

그러면서 자기는 둘째와 다르게 아내에게 휘둘리기는커녕, 아내를 손안에 꽉 잡고 있다고 우쭐렁거렸다.

곧이어 남자들은 각자 관청이나 당직을 위해 떠났고, 얼마지나지 않아 김순희가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내 아침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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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손마마는 민소진이 여기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바로 돌아가서 보고했다. 김순희는 어제 일을 떠올리며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어제 일 때문에 마음이 언짢아서 그런 거겠지. 어미가 정말 버릇없이 키운 것 같구나. 그리고 그년이 어디 갈 수나 있겠어? 친정은 이제 진성에 없고 아버지는 타지에서 작은 관리로 지내며 진성엔 돌아오지 않아. 돌아온다고 해도 계모가 있으니, 그런 와중에 감히 소란이라도 피우겠어?”손마마는 조금 걱정스러워하며 말했다. “그럼... 사람을 보내서 찾아볼까요? 한 번도 이렇게 아무 말 없이 나간 적이 없으셨는데...”그러자 김순희는 더욱 분노가 가득 찬 말투로 말했다.“그년이 어디가 잘났다고 찾는다는 게야? 찾으면 자기가 아주 잘난 줄 알아. 잘못한 건 그년이야. 집안일도 제대로 못 하고 심지어 나에게 장신구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라고 하다니. 허나 그 많은 돈이 다 어디로 간 거지?”손마마는 그녀가 화가 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민씨를 위해 용기내서 한마디 했다.“부인은 정말 열심히 하셨습니다. 불평 없이 매일 노부인을 돌보며, 아이들까지 챙겼습니다…”“나를 돌보는 건 그년의 본분이야. 게다가 아이들을 돌보는 것 또한 그년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그리고 내가 어디 그년에게 야박하게 군적이 있었느냐? 장군부에 시집와서 그년이 어디 고생이라도 했느냐? 심지어 예전에 몸이 아프다고 해서 일도 하지 않았을 때 난 눈도 감아줬단 말이다! 오늘 밤 북경이가 돌아오면 다시 한번 제대로 혼쭐을 내줄 거다.” “우선… 기다려 봅시다.” 손마마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하지만 김순희는 여전히 확신에 찬 말투로 자신의 화를 풀 뿐이였다. “반드시 돌아올 거야. 휴서를 내려 내쫓겠다고 하니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너도 보지 않았느냐?!” 김순희는 어떤 사람은 날개를 숨긴 채 평소에는 순종적이지만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날아가 버린다고 생각한다. 바로 송석석처럼 말이다. 또 어떤 사람은 날개가 잘린 산닭 같다고 생각했다. 바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836화

    이전엔 황제가 사온의 역모사건을 중시했기 때문에 송석석은 조정에 나가지 않았었다. 하지만 오늘은 송석석이 바쁜 사건을 끝낸 후 처음으로 조정에 나가는 날이라 진복이 황실에 왔을 땐 송석석과 사여묵이 진작에 황궁으로 떠나고 저택에 있지 않았다. 진복은 아가씨를 만날 수 없게 되자 그 사실을 염 선생에게 알렸다. 염 선생은 장군부의 일이니 무시하지 않고 먼저 진복을 안으로 들여 차를 대접했다. 먼저양마마와 이야기를 나누게 한 후 시만자를 불러 물어보기로 했다. 그는 왕비가 시만자 아가씨에게 전북망이 연왕과 계속 왕래하는지 주시하라고 부탁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시만자 아가씨께서 장군부의 일을 조금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만자는 하품을 하며 대충 말했다. “나도 모릅니다. 장군부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몰래 연왕의 행방을 주시하라고 했습니다만. 그가 누구와 접촉했는지는 알고 있지만 장군부의 일은 정말 모릅니다.” 그러자 염 선생이 말했다. “거 참 이상한 일이군요.” “장군부의 일을 왜 상관하십니까?” 시만자는 사실 이 일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민 씨에게 적의는 없었지만 호감도 없었다. “장군부의 일은 우리가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민 씨가 국공부의 앞에서 오랫동안 앉아 있다가 갔다는데 만약 그녀에게 일이 생기면 괜히 국공부도 영향을 받을 것 아니겠습니까?” 시만자는 졸려서 여전히 연신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귀찮은 듯 싶었다. “그럼 내가 사람을 시켜 찾아보라고 하겠습니다. 내가 알기론 민 씨가 장군부에서 노부인의 천대를 많이 받고 있는 데다 이방과 왕청여 때문에 억울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네.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염 선생은 말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대체 국공부 앞에는 왜 앉아있었던 거지? 평상시에 왕비와 왕래도 없었는데 말이야..’ 장군부와 왕비가 물불 같은 사이는 아니였는데, 서로 왕래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837화

    홍작이 말했다. “사부님이 전 씨 가문의 노부인을 치료하러 가기 싫어하지만 단설환을 복용하고 계시기 때문에 민 씨가 약을 사러 올 때마다 직원에게 분부해서 사정을 물었습니다. 그래서 민 씨가 직원과 친해지며 억울함이나 괴로움을 토로하기도 했는데 어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울기만 하더랍니다. 예전에 그녀는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자기가 처리해야 하고, 노부인까지 보살펴야 한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장부는 왕청여가 관리하고 있어 돈도 마음대로 지출할 수 없어 때론 자신의 물건을 팔아가며 약을 산다 더군요. 아무튼 여러모로 억눌려서 사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양마마의 방에 들어가자 진복이 아직 있었다. 두 사람은 옛이야기를 나누었고 보주는 옆에 함께 앉았다. 양마마는 안색이 좋지 않은 데다 그들이 민 씨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자 답답한듯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너무 연약한 게 문제입니다. 친정이 실력이 없는 데다 아버지가 밖에서 작은 벼슬을 맡고 있다고는 하지만 듣기 좋게 말해서 벼슬을 맡고 있지 사실은 폄적된 것이었습니다. 장군부가 엉망진창이어도 친정에 의지할 사람이 없으니 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를 봐서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겠지요. 아버지는 친아버지이지만 어머니가 계모이니 아버지도 도와주는 게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시만자가 말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미 억울함에 습관 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양마마가 말했다. “억울함에 습관이 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억울함을 가만히 냅두다가는 언젠가는 폭발해버릴 것입니다. 장군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장군부에서 버틸 수 없다면 친정에도 기댈 수 없으니 죽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을 것입니다.” 양마마는 계속 말했다. “그래서 애초에 그녀가 아가씨께 단설환을 사가지 않으면 노부인에게 쫓겨날 것이라며 빌 때 아가씨께서도 그 처지가 딱해서 약왕당에 가서 무릎을 꿇고 빌라고 한 것입니다. 시어머니에게 효도를 다하는 며느리로 소문이 난다면 장군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838화

    송석석은 민 씨와 1년 동안 동서지간으로 지냈던 기억을 더듬었다. 사실 송석석은 기억을 떠올리지 않아도 민 씨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민 씨는 나약하고 겁이 많아서 장군부에서 가장 괴롭히기 쉬운 상대이다. 민 씨도 지금 장군부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다. 전 씨 노부인의 병은 줄곧 낫지 않지, 왕청여는 임신 중이라 시중을 들 수 없었다. 심지어 이방은 매일 길상거에 숨어서 나오질 않으니 지금 노부인을 시중들 수 있는 사람은 민 씨밖에 없었다. 예전에 송석석이 장군부에 있을 땐 주로 그녀가 노부인을 시중들었다. 하지만 그땐 노부인이 송석석을 귀찮게 굴었지만 혼수 때문에 그녀를 난처하게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민 씨는 달랐다. “아마도 억울해서 그랬겠지?” 송석석이 묻자 시만자가 동의했다. “하긴, 당연히 억울하겠지. 근데 얼마나 억울하면 한밤중에 뛰쳐나왔을까? 양마마의 말로는 장군부에서 버틸 수 없다면 다른 살길도 없다던데. 염 선생이 이미 찾으러 갔고, 나도 홍시에게 장군부에서 사람을 파견해 민 씨를 찾고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어. 장군 부인이 사라졌으니 그들도 매우 조급해 할 것이야.” 송석석이 말했다. “하긴, 그들이 민 씨를 중시하진 않지만 지금으로선 정말 그녀가 없으면 안 되니까.” 하지만 송석석은 내심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민 씨가 왜 국공부 앞에 앉아 있었을까? 나를 찾으려면 북명황실로 와야 한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을 텐데.’ 송석석은 입맛은 없지만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시만자와 함께 식사를 했는데, 그와 달리시만자는 아침도 먹지 못한 탓에 엄청 많이 먹었다. 저녁 식사 후 홍시가 와서 전했다. “장군부에서는 사람을 파견하지 않았고 둘째 노부인이 하인들을 보내 알아보라고 했답니다.” 송석석은 둘째 노부인은 이미 큰 집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하인을 보내 민 씨를 찾으라고 한 것을 보면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녀는 잠시 생각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839화

    둘째 노부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처음엔 나도 몰랐단다. 그리고 지금 난 큰 집 일을 상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진작에 살림을 따로 하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우리 전 씨 가문이 단합하지 않는다고 수군거릴까 봐 그만두었던 것이다. 요즘 장군부에 일이 많았는데 왕청여가 임신한 후 명목상으로만 안주인이지, 실제로는 민 씨가 모든 일을 관여하고 있다네. 다만 은자를 받을 때만 왕청여의 허락을 받아야 했는데 그동안 노부인의 병세가 심각해져 민 씨가 곁에서 시중을 들었단다. 하지만 노부인의 성질을 너도 잘 알지 않느냐? 그는 본래부터 민 씨를 얕잡아 보며 무슨 일을 해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단다.” 송석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민 씨의 처지를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민 씨가 사라진 후 장군부를 샅샅이 뒤져도 찾지 못하자 나한테 와서 민 씨를 숨겼다고 사람을 내놓으라고 하질 않던가? 내가 없다고 했는데도 믿지 않다가 내가 화를 내자 그제야 알겠다 하더군. 나중에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보니 민 씨와 왕청여가 돈 때문에 한바탕 싸웠다고 했다. 왕청여가 민 씨보고 가문을 관리하면 전북망의 봉록을 3성을 준다고 하자 싸움이 일어난 것이지. 왕청여는 울며불며 민 씨가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며 가위를 민 씨에게 쥐여주며 자신의 배를 찌르라고 협박까지 했다지!” 둘째 노부인은 민 씨가 큰 노부인과 전북경이 민 씨의 따귀를 때렸다며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송석석에게 알려주었다. “그걸 알고 나니 나도 좀 불안하긴 했지만 큰 노부인이 멀리 가지 못할 것이라며 찾지 않아도 된다고, 밖으로 뛰쳐나가 사람들에게 겁을 주려고 하는 것이라며 돌아오면 혼내겠다고 하더군. 민 씨가 아무리 억울해도 집을 뛰쳐나간 적은 없지 않았니? 그래서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사람을 보내 찾아보라고 했던 것이었단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장군부가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닙니까?!” 시만자는 탁자를 치며 화를 냈다.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840화

    약왕당의 점원은 민 씨와 잘 아는 사이라 어제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내 추측에 의하면 그녀는 전당포에서 장신구를 전당하고 온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들어올 때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내가 그녀 손에 쥐고 있던 종이조각을 보니 만보당의 전당표였습니다. 그녀는 심고환을 일곱여덟 알을 달라고 했지만 나는 두 알이면 충분하다고, 하나는 출산할 때 사용하면 되고 하나는 산후조리 때 사용하면 되니 많이 살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그녀가 울었던 건 맞소?” “예, 분명히 울었습니다. 그녀가 들어올 때 눈물이 마르지도 않았으니까요.” “알려줘서 고맙소.” 송석석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시만자를 데리고 만보당으로 갔다. 그녀가 관복을 입고 어제 장군부의 큰 부인이 전당포에 왔다 간 일을 묻자 조봉은 그녀가 전당 한 물건을 꺼냈다. 송석석은 물건을 보더니 자기가 예전에 민 씨에게 선물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조봉은 송석석에게 말했다. “그녀가 나중에 되찾아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그녀가 전당 할 때까지만 해도 장신구를 되찾을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었는데 나중에 돌아가서 꾸중을 듣고 뺨까지 맞으며 심지어 이혼이라는 말을 듣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집을 뛰쳐나왔던 것이다. 민 씨는 겁이 많고 어둠을 두려워하는 여자였기기에, 송석석은 그런 사람이 한밤중에 집을 나왔다는 건 엄청 큰 충격을 받았다는 뜻이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큰 진성에서 민 씨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장군부에서 신고를 하지 않았으니 경위와 순방영에게 찾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송석석은 사람을 파견해 민 씨의 친정에 가서 그녀가 돌아갔는지 확인하게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보냈던 사람이 돌아와서 민 씨의 친정에 자물쇠가 잠겨 있었는데 녹이 슨 것을 보아 오랫동안 사람이 오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성문 쪽에도 물어보았는데 오늘 아침 혼자 성을 나간 여자는 없었다고 했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841화

    그러자 송석석의 얼굴에 순식간에 화색이 돌았다. “정말 찾았다는 것이냐?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필명은 허리를 굽히고 두 손을 무릎에 괴더니 숨을 크게 쉬며 말했다. “예, 단혼교에서 찾았습니다. 근데 빨리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녀가 다리에서 뛰어내리려는데 저희가 도무지 설득할 수 없어서요. 그저 대인님을 만나겠다고만 해서 급히 왔습니다. 바람이 너무 세서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전북망이 놀라며 물었다. “뭣이오? 왜 다리에서 뛰어내리려는 것이오?!” 송석석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곧장 뛰어나가며 외쳤다. “어서 말을 준비하거라!” 단혼교는 진성의 서북쪽에 있었는데 아래에는 동림강이라 불리는 강물이 급하게 흘렀다. 동림강은 단혼교 일대에서 매우 세차게 흘렀는데 상류가 넓고 하류가 좁은 데다 가파르기까지 해서 물살이 매우 거칠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리에서 떨어지면 거의 살 수 없다고 보면 된다. 그 다리는 원래 동림이교라고 불렀었는데 이런 이유 때문에 백성들이 단혼교라고 불렀던 것이다. 전북망은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필명에게 사람을 시켜 장군부로 가서 형님에게 알리라고 부탁하고는 바로 말을 타고 단혼교로 향했다. 시만자는 이미 멀리 달려간 뒤였다. 그녀는 가는 길에서 필명을 만났는데, 민 씨가 단혼교에서 뛰어내리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 먼저 단혼교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만자가 단혼교에 막 도착했을 무렵에 해가 방금 져서 하늘에는 붉은 노을만이 남아있었다.해질 무렵의 단혼교는 바람이 차고 강물은 세차게 흘러 특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다리 위에 흔들리는 사람이 서 있다면 아름다운 게 아니라 무서운 풍경이었다. 시만자가 도착했을 땐 놀라서 혼비백산할 뻔했다. 왜냐하면 민 씨가 서 있는 곳이 다리 가운데 기둥이 있는 자리였는데 그 자리엔 그녀가 겨우 서있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좁았다. 게다가 바람이 너무 거세서 그녀는 정신이 혼미한 듯 덜덜 떨며 휘청거렸고, 덮은 망토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842화

    그러자 경위 한 명이 즉시 횃불을 찾으러 갔다. 시만자는 민 씨가 피곤함과 추위에 시달려 눈을 감으려는 것을 보고 온몸을 떨며 급히 소리쳤다. “잠들면 안 됩니다! 송석석을 만나고 싶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석석이가 지금 여기로 오고 있으니 절대로 눈을 감으시면 안 됩니다!” 민 씨는 눈을 떠 아래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는데, 비록 이곳에 서 있는게 무척이나 두려웠지만 장군부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뛰어내리기만 하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해 이 곳에 온 것인데 거센 바람과 추위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자신이 왜 이곳으로 왔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저 송석석에게 전당표를 건네고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전북망이 송석석과 이혼하려고 할 때 아무 말도 해주지 못했던 것이 미안했고, 송석석이 장군부에 있을 때 자신에게 진심으로 잘해줬던 것이 너무 고마워 이 마음을 전해주고 싶었다. 또한 전당포에 넘긴 장신구를 그녀는 되찾을 기회가 없으니 송석석에게 돌려받으라고 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건 송석석의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은자는 모두 써버려서 송석석이 자신을 탓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잠시 후 말발굽 소리가 바람소리를 가르며 곧장 단혼교로 달려갔다.송석석이 먼저 도착하자 시만자가 뛰쳐나와 막았고 송석석은 급히 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멈추고 뛰어내렸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두 명의 경위는 손에 횃불을 들고 있었지만 민 씨가 있는 곳을 비추지 못하니 사람들에게 횃불을 더 추가하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송석석은 희미하게 민 씨의 모습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모습은 더욱 가냘프게 보였고 찬바람에 펄럭이는 망토는 기둥에 걸린 깃발처럼 보였다. “민 언니, 저 송석석입니다!” 민 씨가 송석석의 형수였는데다 지금 자살까지 하려고 하니 송석석은 도저히 민 씨라고 부를 수 없었다. 민 씨는 휘날리는 망토를 당기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울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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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91화

    그러자 송석석이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왕씨 가문에서는 그녀를 아주 잘 대해줍니다. 조카딸의 혼담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집간 부군이 잘 대해준다 하더군요. 다만 그녀는 자신이 두 번 시집갔음에도 처가에 머무는 것이 조카들에게 미칠 영향이 걱정되어 그러는 모양입니다.”그 말에 전북망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순간 번개처럼 날렵하지만 마음씨 따뜻한 최씨 부인이 떠올랐다. 최씨 부인에게는 적자와 서자녀들이 있었고, 아직 혼담이 정해지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혼인 문제로 얼마나 많은 유언비어에 시달렸을지 생각하니, 전북망은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형수로서의 최씨 부인을 존중하며,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 없었다. 이때 송석석이 그의 생각을 끊었다. “그럼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전북망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물었다. “우리 단둘이 여기에 있으면, 섭정왕이 질투하지 않을까요?” 송석석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당황했으나, 곧 침착하게 답했다. “이 정도 신뢰도 없다면, 제가 어찌 현갑군 지휘사로 오래 근무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서로 숨김없이 모든 걸 공유합니다. 이번 만남 역시 그분께 이미 알려두었죠.”송석석이 떠나자 전북망도 따라나섰다. 그는 섭정왕이 어딘가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의심했지만, 정작 별청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앞마당에서야 섭정왕을 발견했는데, 그는 대장군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송석석을 보자 미소로 맞이하며 불러세우는 섭정왕의 모습에 전북망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진정한 부부란 저런 것일까.'그러나 성릉관이든 진성이든, 남녀의 단독 만남은 명예에 흠이 될 수 있음도 잘 알았다. 특히 높은 지위에 오른 이들은 더욱 조심해야 했다. ‘내가 무슨 권리로 그들을 걱정하는가.’자조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왕청여의 제안은 여전히 그의 가슴을 두드렸다. 5일의 고민 시간이 주어졌다. 사여묵과 송석석이 진성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최씨 부인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답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90화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 전북망은 송석석과 다시 만났다. 사실 그전에도 송석석이 성릉관으로 갔을 때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서먹해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이 매번 성릉관을 떠날 때마다 몰래 배웅하곤 했다. 전북망은 자신이 당시 어떤 마음으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늘 송석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방과 왕청여에게도 미안하긴 하지만, 그들과는 서로 감정을 소모하고 다투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장군부만 송석석에게 상처를 줬을 뿐, 송석석은 장군부에게 조금의 상처도 주지 않았다. 비록 이혼한 후에는 전북망 어머니의 병세에 대해 상관하지 않았지만 큰형수에게 어떻게 단설환을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기까지 했다.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는 이미 섭정 왕비가 되어있고 나서였다. 변방의 전사들에겐 양식과 무기가 풍부하고, 봉록까지 올라, 그들에겐 이득이기에 이제는 조정의 정세에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었다. 섭정왕은 한때 장수였기에 병사들이 배불리 먹어야만 국토를 지킬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북망과 송석석이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섭정왕과 함께 소 대장군에게 생신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그녀를 보는 소 대장군의 눈빛은 여전히 자애롭고 인자했다. 전북망은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그 광경을 보며, 그때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면 지금 송석석과 함께 노장군의 생신을 축하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일 것이라는 후회를 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같은 생각인 걸 보니, 자신만 제자리에서 멈춰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도 송석석과 대화를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생일잔치가 끝난 후에 송석석이 뜻밖에도 먼저 그를 찾았다. 그와 송석석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섭정왕은 이상한 소문이 날까 봐 걱정되지도 않는가?’전북망은 당황하고 불안해 보였고, 송석석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먼저 입을 열지도 못하고 송석석이 말하기만을 기다리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9화

    전북망은 성릉관에서 몇 년 동안 두 번이나 발탁되었고, 지금은 장군의 신분으로 수천 명의 병사를 관리하고 있다. 계속 성릉관에 주둔하고 있어 다시 진성으로 돌아간 적이 없었고, 진성의 부름 없이는 제멋대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는 재혼도 하지 않고 여전히 혼자 살아갔다. 성릉관의 모래바람은 해마다 그의 얼굴에 흔적을 남겨 또래들보다 몇 살이나 더 늙어 보였다. 심지어는 몇 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기에, 진정제를 먹어야만 잘 수 있었다. 그는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그때 이방과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송석석과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부부가 되었을까? 아마도 우린 귀여운 자녀도 낳았겠지. 그리고 나는 군대에서 열심히 일하고 석석은 가문의 내무를 책임지며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를 돌보고 있었겠지? 설령 내가 승진을 하지 못하고 평생 장군으로만 살아도 그는 날 떠나지 않았겠지.’ 이전의 전북망은 송석석이 하늘을 나는 독수리였는데 자신을 위해 날개를 부러뜨리고 병든 시어머니를 돌보며 군부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책임지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그가 알아차렸을 땐 이미 돌이킬 수도 없었다. 전북망에게는 이미 이방이 있었고 이방을 사랑한다고 했으니, 송석석이 이혼하자고 했을 때 그는 심한 말을 하고 후회하지 말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송석석 또한 후회할 게 없었다. 이혼을 하면서 전북망을 위해 부러뜨렸던 날개가 다시 자라나 전쟁터로 날아가 쉽게 공을 세웠으니까 말이다. 이방은 송석석이 큰 가문의 아가씨인 데다가 부친과 오라버니가 그를 위해 길을 닦아주었기에 이런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의 성공은 그의 능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문이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주된 원인은 아닐 것이다. 만종문에서 송석석의 무공은 거의 최고였는데, 그건 송석석이 그만큼 노력을 했고, 그만큼 땀을 흘렸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전북망은 송석석을 존경했지만 그는 자신이 송석석을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8화

    어머니께 간청해도 소용이 없자 신이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온 건 더 심한 꾸지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신이가 이 혼사를 반대하는 것은 양지춘과 접촉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양지춘에게 그녀를 데리고 나가서 놀며 감정을 쌓으라고 했다. 신이는 가기 싫었지만 어머니가 억지로 그녀를 마차에 태웠고, 심지어는 하녀에게 그녀가 부적절한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엄명했다. 양지춘의 얼굴은 그나마 멀쩡하게 생겼는데, 처음에는 신이를 조금이나마 존중하는 척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본성을 드러냈다. 그는 신이의 외모와 품평을 논하며 신이가 외모가 예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그를 부인으로 들이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그의 오만한 태도는 신이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단지 이것뿐이었다면 아마도 신이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양지춘은 일부러 신이를 마차에 태워주는 척하며 그녀의 엉덩이를 꼬집었다!그 순간 신이는 온몸의 피가 머리 위로 솟구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경박한 눈빛에 신이는 이내 눈물이 쏟아졌고, 모욕감에 온몸을 떨었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집에 돌왔는데, 하녀와 마부는 그의 동작을 보지 못한 탓에, 오히려 그가 세심하고 자상하다며 그녀의 어머니 앞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이는 억울해서 어머니에게 그 일을 말했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그녀가 일부러 꾸민 말이라고 생각해, 그녀를 꾸짖으며 사흘 동안이나 외출을 금지했다. 신이는 그렇게 방에 갇혔고, 매일매일을 눈물로 얼굴을 씻었다. 심지어 그날 선비의 말을 듣고 호수에 뛰어들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다. ‘내가 양지춘에게 시집가는 것이 물에 빠져 죽는 것과 대체 무엇이 다른가?’ 사흘 후, 외출 금지가 해제되자마자 신이는 다시 경산사로 가서 같은 핑계로 하녀를 내보냈다. 이번엔 정말 죽을 각오로 호숫가에 간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다시 그 선비를 만났다.그는 쓸쓸하게 호숫가에 앉아 작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7화

    신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한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고, 나무 그늘에 몸이 가려져 있었다.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초라해 보였고 눈 밑에는 검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바로 다리 앞에서 그림을 팔던 선비이자, 학정이 말하던 퇴학 해서 기녀를 키우는 학생이었다!“헛소리하지 마십시오.” 신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짜증을 냈지만, 그가 한 말을 떠올리자 내심 두려웠다. “나는 여기에 물귀신이 있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거짓말하는 것이겠지요.” 신이는 죽음은 두렵지 않았지만, 귀신은 두려웠고 진흙탕에 영원히 깔려 있는 건 더욱 두려웠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가 걸어 나오자 얼굴은 더욱 여위어 보였다. “호숫가의 주변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보러 오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그건 사람들이 이곳으로 예불하기 위해 오는 것이지, 경치를 보러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절을 하고 바로 돌아가니 당연히 보지 못하겠지요.” 신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순간 깊이가 보이지 않는 호수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그는 여전히 굳게 서서 말했다. “예불하는 사람은 천지와 자연을 경외하기 때문에 이런 좋은 경치가 있다면 반드시 한 번 보러 올 것입니다. 이런 곳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좋은 곳일 텐데 아무도 없다는 게 아기씨는 이상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것이 사실인지는 몰랐지만, 그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감히 그런 무서운 곳에서는 죽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그러자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 절대 쉽게 자신의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고 싶어도 살 지 못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의 말이 이상하게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눈 밑은 이내 붉어졌고 눈물이 고여 반짝이는 것 같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6화

    신이의 사촌 여동생과 하녀는 신이를 찾으러 돌아왔다. 신이가 하녀보고 이순에게 삼백문을 주라고 하자 이순은 웃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원래는 우연한 만남일 뿐이라 다시는 접점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 조모님의 생신 때 가문 연회에서 공학정이 데리고 온 제자들 중에 이순이 있었다. 강남의 예의 규율은 진성처럼 엄격하지 않아서 연회에 참석할 때 여인들도 앞마당에 갈 수 있었다. 이순은 신이를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신이는 그때 면사포를 쓰고 있었고 두 눈만 드러냈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순은 식사를 하지 않고, 신이의 조모에게 생신 축하 그림만 드린 후에 집에 일이 있다며 작별을 고했다. 그가 떠나자마자 학정이 그를 언급하며 안타까운 말투로 말했다. “총명하긴 한데 진취심이 없어서 계속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걸 여기로 데려와 진취성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사귀게 하려고 했는데… 이 정도로 사리분별을 할 줄 모르다니. 정말 실망이군. 학교를 그만두겠다면, 이젠 마음대로 하라고 해야겠어.” 그러자 신이의 부친이 위로했다. “화내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껜 학생이 많으니 그가 나간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건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학정은 마치 울화가 쌓인 것처럼 말했다. “그는 내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네. 그런데 진취성만 없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동창에게 돈을 빌리질 않나, 게다가 집에 기녀까지 키우고 있다더군.” 신이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을 가장 싫어하였다. “그런 사람은 얘기할 가치도 없습니다.” 신이는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서 왠지 마음속으로 실망감이 가득했다. 아마도 그날은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같다고 생각해 마음이 갔던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달 후, 신이의 혼사도 낙착되었다. 그녀의 약혼자는 회주 지부의 둘째 아들인 양지춘이고, 올해 22살이었다. 22살인데도 결혼하지 않았던 건 첩을 통해 서자를 낳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좋은 가문은 그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5화

    그의 이름은 신이었는데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 대해서 말할 때, 경멸하는 기색을 띠었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모르는 사람까지 모두 침을 뱉으며 뻔뻔하다고 할 정도였다. 알다시피 애인과 야반도주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것보다 더 욕먹을 일이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후회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녀는 시집간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죄책감을 느끼긴 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시 씨 가문의 명성이 손상되어 형제자매들과 조카들이 혼사에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신이는 시 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태어날 때부터 온갖 보살핌을 받아왔다. 먹는 것은 물론 모두 산해진미이고, 입는 것도 모두 능라 비단이었다. 게다가 보모님과 오라버니의 총애까지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한 가지 결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열네 살 때까지 월사가 오지 않은 것이었다. 많은 의사들을 불러 진찰을 받고 밤낮으로 약을 먹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몸이 차서 그러니 몸조리를 하면 나을 수 있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몰래 의사가 부모님께 하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그가 몸이 차서 그런 병이 생긴 것이 아닌, 아이를 키우는 곳이 어린아이와도 같아서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마치 작은 꽃병과 같아서 꽃을 꽂을 수는 있지만 나무를 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건 불가능하다고 비유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건 여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녀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서 부군에게 첩을 들인 후, 첩이 낳은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우라고 조언해주었다.시 씨 가문이라는 후원이 있으면 그녀가 아이를 낳을 수 없어도 아무도 그녀의 지위를 흔들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 씨 가문의 재물은 그녀가 평생 부귀하게 살기에 충분했다. 신이의 조모도 그녀에게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자세를 낮춰야 한다고 했다. 시 씨 가문의 딸이라고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4화

    추운 겨울이 되자 눈이 내려 성릉관은 하얗게 뒤덮였다. 세상이 마치 깨끗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황자는 몇 년 동안 너덜너덜한 승복을 입고 발우를 받쳐 들고는, 가는 길에 동냥을 하다가 절을 보면 이틀 묵으며 부처님께 참회하면서 살았다. 사실 그는 원래 있던 절에서 계속 지낼 수 있었다. 편안하진 않지만 풍찬노숙할 필요도 없고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런 안일한 곳에서는 평생 죄를 씻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계속 길을 걷고 계속 고생해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했다. 그가 성릉관에 도착했을 때 짚신은 이미 찢겨 있었고 발바닥에는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이제는 신발을 신지 않고도 자갈이 가득한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추운 날씨에는 모든 옷을 껴입어도 추위를 막을 수 없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뒤였다. 그는 눈보라를 맞으며 성릉관에 위치한 감은사로 향했는데, 몇 년 동안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는 탓에 고단함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심지어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 그는 눈이 가득 쌓인 길에서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그는 따뜻한 두꺼운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그가 있는 방에는 숯불이 피워져 있었고, 살짝 열린 창문으로 눈에 눌려 허리가 굽은 나뭇가지가 보였다. 그는 눈동자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순간 욕심이 생겨 조금만 더 누워있고 싶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이 활짝 열렸다. 그가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갑자기 눈앞이 핑핑 돌더니 다시 힘없이 침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거라.” 이때 누군가가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면서 약그릇을 그의 침대 옆에 놓았다. 그는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익숙해, 어지러움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돌려보니, 그 사람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서우 형?!’ 그는 자신이 잘못 보았을까 봐 다시 자세히 보려 했지만, 몸이 너무 어지러운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3화

    대황자는 봄 사냥 때 숙청제에게 꾸중을 듣고 돌아간 후 앓아누웠다. 당시 이황자와 서우가 모두가 걱정했는데 덕비는 오히려 기뻐했다. 그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황제폐하께서는 분명히 대황자를 싫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덕비는 이황자를 안고 반드시 부지런해야 하고, 태부와 황숙의 말을 잘 듣고 누구보다 잘 배워 황형을 제압해야 한다고 당부까지 했다. 그로 인해 이황자의 마음은 몹시 복잡했다. 덕비가 줄곧 그에게 태자와 황제가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지 말해주었을 때 비록 그도 마음이 설렜지만 자신과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그와 대황형, 서우 형, 그리고 셋째 동생이 사이가 좋아 도저히 대황형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매일 모순적으로 지내다 보니 오히려 학업이 나빠졌고 승마 연습을 할 때도 여러 번 실수를 했다. 하지만 덕비는 이상하게 그를 탓하지 않았고 며칠 동안 계속 게으르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덕비는 이황자를 데리고 복마마를 자주 뵈러 갔고, 복마마 궁전에서 숙청제를 만날 수도 있었다. 덕비는 며칠 동안 그곳을 드나들더니 어느 날 굳은 표정으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차가운 말투로 청이에게 자신의 보살핌이 없으면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지 보겠다고 했다. 황제폐하를 자주 뵈러 갈 수 없어 아쉬웠지만 이황자는 마음을 가다듬고 공부와 승마술에 전념했다. 이황자는 당시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몰랐고, 비록 매일 힘들긴했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웠기에, 계속 이렇게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숙청제의 천추세에 승마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니 세 황자와 서우도 가서 겨뤄 보기로 했다. 원래 그런 대회에서 황자들은 재미있게 참석만하면 되지만, 덕비는 그 경기를 몹시 중시했다. 덕비가 이황자에게 마름쇠를 건넬 때, 그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황자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황형의 목숨을 앗으려 하다니, 이황자는 처음으로 어마마마가 무서워졌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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