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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9화

작가: 유애
회왕은 고개를 숙였다. 분노한 기색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팔걸이에 놓인 그의 손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누님 말씀이 옳습니다,"

"샤린이는 이제 신경 쓰지 마세요. 그 아이는 결국 송석석과 함께 있기를 택하지 않았습니까? 왕부로 돌아오는 걸 원치 않는 듯 보였어요." 장공주가 말했다.

회왕은 말이 없었지만, 그의 눈가에는 핏줄이 잔뜩 서려 있었다. 차가워진 분위기를 느낀 연왕이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됐습니다, 승은백부 가문의 일은 이미 끝났지 않았습니까? 이 나라는 더 이상 불효한 관리는 절대 중용하지 않으니, 그들의 좋은 시절도 이제는 다 끝났습니다. 제가 이번에 찾아온 이유는 이방의 일 때문입니다. 그쪽으로 암살자를 보냈는데, 송석석이 그를 도와주었더군요. 그 일로 인해 제 부하들을 잃었습니다."

"허나.. 셋째 형님, 지금 이방을 죽이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황제가 장군부에 경위를 보내 지키고 있거든요. 겉으로는 평복을 입었지만, 확인해 보니 확실하게 경위였습니다."

회왕도 가만히 듣고 있다가 덧붙였다. "게다가 이방은 매우 교활한 자예요. 장군부에서 한 발짝도 나서지 않더군요."

"장군부 사람을 매수해서 독살하는 건 어떻소?" 연왕이 물었다.

"이미 시도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그녀 곁에는 하인이 한 명뿐이고, 그 외의 사람은 절대 쓰지 않더군요. 게다가 방 안에 들이는 음식은 모두 은침으로 독이 들었는지 확인한다고 들었습니다. 방 안으로는 사람을 함부로 들이지 않더군요."

연왕은 웃는 얼굴로 회왕을 바라보며 말했다. "허나 이렇게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암살도 실패하고, 독살도 실패하다니… 보아 하니 형님께서는 이방을 처리할 마음이 없는 것 같군요?"

비록 웃으며 말했지만, 그 안에는 실망감이 섞여 있었다. 회왕은 그가 만족하지 않다는 걸 잘 알았다.

"다시 방법을 생각해 보겠네."

"예, 알겠습니다. 허나 서둘러야 할 겁니다. 서경 황제는 아마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고, 이미 서경 태자가 황제의 곁을 지키고 있다 하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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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자 연왕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허나.. 어쨌든 이방이 죽는 것이 가장 좋고, 그 죄목은 소 씨 가문이 지어야 합니다. 이방은 생명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며, 심지어는 교활하기까지 해요. 게다가 많은 사람들의 원한을 샀으니 그녀의 말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소 씨 가문은 성릉관을 수년 동안 지켰지만, 평민을 죽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만약 누군가가 이를 이용해 그를 구하려 한다면, 오히려 이 사건에서 쉽게 빠져나가고 말 거예요.”회왕이 다시 반문했다. “허나 우리의 목표는 소 씨 가문을 멸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단지 성릉관의 장수를 교체하고 소 씨 가문을 밀어내려는 것 뿐입니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우리쪽 사람을 성릉관에 배치해야 해요. 지금 왕표가 아직 우리 편이 아니기 때문에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성릉관을 차지해야 해요. 두 곳의 중병을 통제하거나 그들을 전투에 휘말리게 만든다면, 문제는 원만하게 해결될 거예요. 그럼 그때 가서 우리는 원래 계획대로 농민 봉기를 일으켜 황제가 하늘의 분노를 샀다고 소문을 퍼뜨리는 거죠. 그때가 바로 우리가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최고의 시기가 될 거예요.”그가 말을 마치고 차를 들 때, 장공주의 얼굴을 슬쩍 살펴보앗는데 그녀의 얼굴에 순간 분노가 스쳐 지나갔다.역시 장공주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안 됩니다. 소 씨 가문 사람들은 반드시 죽어야 해요.”연왕은 답답한듯 이내 이마를 찌푸렸다. “공주,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마세요. 아우가 말한 대로, 우리의 목표는 소 씨 가문이 성릉관에서 철수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죽을지 말지는 우리가 선택할 문제가 아니닙니다!”회왕은 장공주가 반박할 것이라고 생각 했지만, 연왕은 달랐다. 그는 장공주가 자신의 말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게다가 연왕이 말한 대로, 자신이 증오하는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비참하게 죽는 것을 보는 것보다 더 통쾌한 것은 없으니 말이다.연왕은 그녀가 더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자 계속 말을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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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청화가 고개를 들었다."너희들은 먼저 나가거라. 우리 아직 끝나려면 멀었다. 아직도 많이 손봐야 하기에 아마 한두 십 폭은 그려야 할 수도 있으니라." 사여묵은 의자 위에 놓인 성숙한 여인의 초상화를 바라보며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 초상이 마치 장모님, 즉 송석석의 어머니를 닮은 듯했다. 남강 출정 전에 보았던 장모님의 모습이 아닌, 훨씬 이전의 자신이 반쯤 철이 들었을 때의 장모님 모습인 것 같았다. 그때의 장모님의 얼굴은 매우 둥글고, 웃을 때는 매우 부드러운 인상을 주었다. "가시죠."송석석이 그의 소매를 가볍게 당기자 사여묵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누구랑 많이 닮지 않았소?" "누구와 닮았다는 말씀이신지요?" 송석석은 다시 그림 속 인물을 바라보며 물었으나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사여묵은 그녀가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고 급히 말을 돌렸다. "내가 잘못 본 것 같소. 나가세. 그들을 방해하지 말아다오." 방을 나서던 사여묵은 순간 어렸을 적 황형과 진북후부에 방문하였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의 진북후부인은 젊었고, 그 시절 송석석도 매산으로 보내지기 전이었다. 여리여리한 그녀는 매우 예쁘고 귀여웠다. 위로 여섯 오라버니를 둔 송석석은 각별한 사랑을 받았고 더불어 성격도 매우 발랄하고 사랑스러웠다. 방금 본 어린 염희진의 초상은 그녀와는 닮지 않았다. 송석석이 훨씬 더 예뻤다. 그러나 의자 위에 놓인 성인 여자의 초상은 확실히 젊었을 적의 장모님을 많이 닮은 것 같았다. 물론 그때 장모님은 초상화 속 인물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분위기가 똑같았다. 하지만 사여묵은 송석석에게 이 말을 감히 꺼내지 못했다. 자칫하면 그녀가 가족을 떠올리며 슬퍼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사여묵은 시간이 아직 이르고, 비도 그쳤으니 만금산에 가자고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그때 그녀가 보주에게 명하였다. "나는 장방으로 갈 것이니, 몽동이를 불러오너라. 그에게 할 말이 있느니라." 사여묵은 하려던 말을 삼키고, 대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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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석석이 깜짝 놀랐다."염 선생께서 장군부에 사람을 심으신 거야?" "당연하지. 진성의 다른 가문에도 있어. 하지만 깊이 스며들지 못한 곳도 있지." "그럼 왜 염 선생께 바로 보고하지 않고 나에게 말하는 거야?" "사형이 와서 줄곧 서재에 계셔서. 난 그분이 왕야의 명을 받고 있으니, 네가 돌아가서 왕야에게 바로 알리면 된다고 생각했어." 송석석은 의아해했다.“근데 왜 너랑 접촉해? 네가 이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거야? 아니면 염 선생께서 정말 너를 이리도 신뢰하시는 거야?" 몽동이는 한껏 으시댔다."당연하지! 나를 그저 사번으로만 알고 있었던 거야? 염 선생께서는 내가 거칠어 보여도 아주 세심한 면이 있다고 하시며 나에게 이 일을 맡기셨어." 말이 끝나자마자 몽동이는 제자리에서 공중회전을 몇 번 하더니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송석석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녀는 늘 몽동이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야생 원숭이처럼 느껴졌다. 병사를 이끄는 교두로서는 충분하지만, 암선과 같은 중요한 임무를 맡기기엔 부족했다. 그런데 염 선생께서 정말로 그에게 이토록 신중한 일을 맡겼다니 놀라웠다. 만약 그가 실수라도 한다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텐데 말이다.방으로 돌아간 송석석은 사여묵에게 몽동이가 보고한 일을 얘기했다. "당신과 염 선생께서 여러 명문 세가에 암선을 심어두었습니까?" 의자에 기댄 사여묵은 손을 뻗어 그녀를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다."그렇소. 가능한 곳은 모두 심어두었지. 하지만 각 가문에 심을 수 있는 위치는 다르오. 어떤 곳은 하인이나 시녀로, 어떤 곳은 주인의 곁에서 일하게 했고, 또 어떤 곳은 호위로 있소." 그러자 송석석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나 빠르게 움직였단 말입니까? 요즘 조용한 것 같더니 그동안 이런 일을 준비하고 있었던 거군요?" 사여묵은 여전히 평온한 표정이였다. "우리에겐 뛰어난 이들이 많지만 드러내 놓고 감시하거나 첩보 활동을 할 수는 없소.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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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석석은 황제라는 위치가 얼마나 갑갑한 것인지 실감했다. 이 권력의 저울질과 계산 속에서 그조차도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지금 황제는 대황자를 태자로 세우려는 듯 보였다. 그렇다면 황후는 이 일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대황자는 본래 평범한 인물이니, 만약 황후가 황자를 해하려 한 죄목까지 더해진다면 그가 태자로 자리 잡는 것도 위태로워질 것이었다.그리고 직접 손을 쓴 수빈에 대해서도 황제는 그녀의 부친을 고려해야 하기에 함부로 처벌할 수 없었다.결국, 이 사건은 절대 표면적으로 드러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한 사람도 만만한 이가 없구나."태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절대적인 권력 앞에서는 누구라도 목숨을 걸고 한 번쯤 싸워보고 싶은 법이다."송석석이 왜 이런 이야기를 자신에게 하는지 물으려 할 때, 태후가 먼저 입을 열었다."너가 궁 안의 일들을 꼭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가장 다루기 어려운 것이다. 폐하께서 한때 북명황실을 경계하더니, 이제는 다시 너희를 신뢰하고 있지않느냐. 누군가 그 자리를 탐낸다면 네게서 빈틈을 찾으려 할 것이다. 후궁의 음흉한 계략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어떤 일이든 한 걸음 더 깊이 들여다보고,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송석석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습니다."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물었다."그럼 이 일은 그냥 이렇게 마무리 되는 겁니까?"태후가 고개를 저었다."저지른 죄를 어찌 그저 덮어둘 수 있겠느냐. 지금은 그대로 둔다 해도, 훗날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업보를 지고 가는 법이다."송석석이 다시 한 번 물었다."이미 모든 의도를 파악하셨는데, 후궁의 평온은 이미 깨진 것이 아닙니까? 이를 막을 수 있으시겠습니까?"태후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방금 말했듯이 사람의 마음이 가장 다루기 어려운 것이다. 한순간 천국을 꿈꾸다가도, 한순간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지. 그들의 마음먹기에 달린 일인데, 어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24화

    송석석은 사여묵으로부터 복소의의 유산 소식을 전해 들었다.진왕비는 송석석에게 함께 입궁하여 문병을 가자고 제안했고, 송석석도 이를 받아들였다.본래 송석석과 진왕비는 별다른 왕래가 없었으나, 진왕이 그녀와 함께 서경을 다녀온 이후, 진왕비는 동서지간에 자주 왕래하는 것이 좋다며 송석석에게 더욱 살갑게 굴었다.하지만 진왕비는 제씨 가문의 여인으로, 황후의 종매이긴 했지만, 황후가 금족 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황후를 찾아가지 않았다.즉, 그녀가 말하는 동서지간에 자주 왕래하는 것이 좋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귀찮은 일이 없을 때는 교류할 수 있지만, 문제가 생기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뜻이었다.예전에 황제가 북명황실을 경계하던 시기에도 진왕비는 송석석을 철저히 피하며 혹여 화를 입을까 두려워했다.사실 이번에 진왕이 특별한 공을 세웠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저 황제의 가벼운 칭찬 한마디를 들은 정도였지만, 진왕에게는 그 한마디가 두 해나 자랑할 거리였다.그들은 함께 입궁하면서도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진왕비는 그저 몇 마디 가벼운 이야기만 했는데, 송석석은 그런 진왕비가 영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때때로 일부러 어리숙한 척 행동하며, 평온하고 안락한 삶만을 바랬기 때문이다.그렇기에 단둘이 있을 때에 그녀는 더욱 쓸데없는 말을 하지도, 남에게 꼬투리를 잡힐 행동도 하지 않았다.입궁하여 복소의를 만나게 되자, 진왕비는 이 아이와 그녀의 인연이 이미 닿아 있었다며, 결국 그 인연 덕분에 품계를 올리게 된 것이니 조만간 다시 태중으로 돌아와 전생의 모자 인연을 이어갈 것이라는 위로의 말을 한 가득 쏟아냈다.그녀가 나긋한 목소리로 덧붙였다."그러니 지금 해야 할 일은 그저 몸을 잘 돌보는 것 뿐이다. 괜히 이 일로 침울해 하면 안된다. 폐하께서 정무로 바쁘신데, 소의가 매일 울기만 하면 보시기에 번거롭지 않겠는가?"진왕비의 말은 빈틈이 없어 송석석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그녀가 한참 이야기하다가 문득 송석석을 향해 한 마디 던졌다.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23화

    자신의 궁으로 돌아오자, 숙청제는 비로소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 곧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었기 때문이다.후궁에서 벌어지는 수작들은 때로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법이다.단신의가 복소의의 태아를 보전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설령 무사히 태어난다 해도 선천적으로 허약하거나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을 아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숙청제는 한때 복소의에게 약을 직접 먹일까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이 아이가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자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끝내 결단을 내리지는 못했다.한 번쯤 걸어보고 싶긴 했다.이번 일은 누군가 개입한 것이 분명했다. 그가 최근 들어 복소의의 궁에 자주 드나들었으니, 누군가는 불만을 품었을 것이 틀림없었다.덕비는 분명 복소의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복소의는 황제의 총애를 믿고 오만하게 굴며, 심지어는 덕비를 원망하는 마음까지 품었다. 그날 그녀에게 경고를 주었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덕비는 후궁을 총괄하는 인물이었다. 때문에 그녀와 수빈이 배치한 사람들이 후궁 곳곳에 퍼져 있었으니, 복소의의 태아를 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덕비가 직접 손을 썼을 가능성은 낮았다. 만약 덕비가 아이를 해하려 했더라면 애초에 복소의를 보호해주지 않았을 것이었다. 게다가 덕비가 이황자를 데리고 자주 드나든 것도 반은 아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반은 복소의의 태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었다.복소의가 황제에게 덕비를 험담했던 것은 반드시 덕비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었다. 덕비가 이후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그녀가 복소의에게 손을 떼자, 마음 속에 꿍꿍이가 있던 자들이 움직이기 훨씬 쉬워졌다.그가 실망한 이유는 복소의의 태아를 잃은 것 때문이 아니었으며, 그가 바라지 않았던 후계 경쟁이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는 점이었다.그는 이 일을 벌인 자가 누구인지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황후이거나 수빈 둘 중 하나일 것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22화

    혜의궁에서는 삼황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삼공주는 그의 젖은 머리카락을 닦아주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어제 막 머리를 감았는데, 굳이 그 고양이랑 놀겠다고 해서 온 머리와 얼굴이 털투성이가 되었잖아. 다음번에도 이러면 엉덩이를 때려줄 거야."도자기처럼 매끄러운 분홍빛 살결의 귀여운 아이가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공주의 품에 기댔다."누이, 고양이는 재미있고 귀여워요. 작은 발로 내 몸을 밟고 지나갈 때면, 포근해서 기분이 좋아요. 안고 있으면 따뜻하기도 하고요."그러자 삼공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어마마마께서 그러셨잖아. 아바마마께서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그런데 넌 자꾸 아바마마께 고양이 이야기를 해서…… 그러니 요즘 아바마마께서 널 찾지 않으시는 거야."삼황자는 누이가 머리를 말려주는 대로 꼿꼿이 앉아 있으면서도 입을 다물지 않았다."아바마마와 나는 다른 사람이잖요. 당연히 각자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도 있는 거지요. 아바마마께서 싫어한다고 해서 나까지 싫어해야 해요? 내가 고양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니, 아바마마께서 아무리 싫어하셔도 나한테 버리라고 하시면 안 되는 거죠."삼공주는 그의 코끝을 톡 하고 건드리며 말했다."말은 참 잘하네."삼황자는 웃으며 말했다."누이가 나를 설득 수 없는 건 누이의 말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에요. 황숙께서 그러셨는데, 이치에 맞게 말을 한다면 그 누구도 이길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그래? 그런데 요즘 왜 황숙께 무예를 배우러 가지 않는 거야?"삼황자는 고개를 기울였다."무예라 해도 기본적인 것만 가르쳐 주시니까요. 그런 건 궁에서도 연습할 수 있어서 이미 다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말 타기는… 아직 말 위에 혼자 올라갈 수가 없으니까 좀 더 자라서 다리가 길어지면 그때 배울거에요.""다 할 수 있다고? 못 믿겠는데." 삼공주가 말했다."정말 할 수 있다니까요!"삼황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황숙께서 며칠 동안 같은 걸 반복해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21화

    복소의는 춘당의 입가에 스친 조소를 알아채지 못했다.춘당은 복소의가 첩여로 승급될 때부터 곁에서 그녀를 모셔왔다. 그녀는 영리하고 침착한 성품을 지녀 복소의에게 여러 차례 계책을 내주었고, 당시 황후가 그녀를 끌어들이려 했을 때도 춘당은 이렇게 말했었다.‘황후마마께서 여러 번 금족 처분을 당하신 것으로 보아, 폐하께서 이미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후궁을 다스릴 권한도 없으시니, 황후마마께는 겉으로만 응하는 척하고 실질적으로는 덕비 마마와 수빈 마마께 가까이 다가가시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그리고 춘당의 말은 역시나 옳았다. 덕비는 늘 그녀를 잘 대해주었고, 먹고 입는 것 모두 넉넉히 챙겨주었다. 그 덕분에 더 이상 감히 그녀를 깔보는 자도 없어졌다.예전의 덕비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이유로 폐하께 가까이 가려 하는 것 같아 못마땅했다."마마께서는 덕비 마마께서 오시는 것이 싫으십니까?"춘당이 그녀의 머리와 허리를 살짝 받쳐주며 말했다. 침상에 오래도록 누워만 있어 등이 아픈 그녀를 배려한 것이었다.그녀는 춘당을 신뢰했기에 자연스레 속내를 털어놓았다."내 태가 안정되었을 때는 덕비 마마께서 그리 열심히 오시지도 않으셨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자주 찾으시는 것이 진심이겠느냐? 분명 폐하를 의식해서 오는 것일 것이다. 게다가 폐하께서 날 아끼시기에 자주 찾아와 주시는 것인데, 매번 덕비 마마와 이황자가 끼어드는 바람에 폐하와 두세 마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지 않느냐."춘당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하며 말했다."마마께서는 그저 몸을 잘 돌보시면 됩니다. 그 외의 일은 신경 쓰지 마세요."복소의는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밤낮으로 누워만 있어야 하다니…… 폐하께서 오실 때만 겨우 앉을 수 있구나. 이 아이는 나를 참 힘들게 한다. 부디 황자가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지. 내가 이 고생을 한 보람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춘당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반드시 마마께서 바라시는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20화

    복소의의 태는 안정적이었기에, 태의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겨울이 지나면서 태가 점점 불안정해져, 두 번의 출혈을 경험했다. 금태의는 그녀의 태를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침상에 누워 있어야 했기에 바닥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태의는 신중히 식단과 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점검했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아마 황제가 장기간 약을 복용한 탓에 태아가 불안정해진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의 태에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가 침상에서 요양을 시작한 후 거의 이틀에 한 번씩 그녀를 보러 갔으며, 가끔은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는 수빈의 궁에 자주 가지 않았고, 삼황자를 어서방에 불러 들이지도 않았다.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이황자와 함께 복소의를 보러 갔고, 이로 인해 황제와 함께 몇 번의 식사를 함께했다.복소의는 첩여 시절 후궁에서 자신이 의지할 사람을 찾으려 했고, 비밀리에 수빈과 덕비에게 아첨하며 양쪽을 오갔다. 하지만 수빈은 늘 거만하게 행동했으며, 그녀가 한때 황제의 총애를 얻었기도 했기에, 복소의는 수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반면 덕비는 후궁에서 유명한 온화하고 자애로운 인물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며 위치가 낮은 여인들까지 보살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복소의는 점차 덕비에게 더 접근했지만 지금은 조금 고심했다. 황제가 그녀에게 올 때, 덕비가 여러 번 이황자를 데리고 왔고, 그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수빈의 성격에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오히려 수빈의 도도함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국 불만을 마음속으로에만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이 있기에 그녀를 적대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날들이 지속되자, 그녀는 덕비가 오지 않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19화

    후궁에서는 황제의 병에 대해 추측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금 복소의가 임신을 했다고는 하지만,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은 황제의 몸이 단순히 요양을 하면 괜찮아질 상태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제의 편애가 계속될수록 몇몇 사람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특히 황후는 더욱 불안해했다. 그녀는 황제의 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지금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지만 치료의 효과는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녀는 황제가 심각한 상태라고 여겼다. 황후는 복소의의 임신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의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설령 황자가 태어난다고 해도 그에게 까지 순서가 올 리 없었다. 그러나 삼황자에게 집중된 황제의 편애는 그녀에게 위기의식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황제는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었을 때 그녀는 황후 자리를 선택하며 생명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며칠의 시간을 보내자, 황후는 황제가 대황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요즘 대황자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태부와 황숙도 그를 칭찬하고 있었다. 황제도 대황자의 그러한 모습에 매우 만족해 한다고 전해 들었다.이황자와 삼황자는 그녀에게 모두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황후는 황제가 이황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최근 몇 달 동안 그녀는 거의 이황자를 본 적이 없었고, 또한 이황자가 이제는 예전처럼 열정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는 강력한 뒷배경이 없는 덕비가 여전히 유력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수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빈의 아버지는 형부상서이며, 사여묵과 같은 공문이었다. 공무의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접촉이 분명 많았을 것이고, 수빈의 어머니인 이씨 부인은 송석석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방에 많은 돈을 기부했다. 어쩌면 이미 그녀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마마, 오늘 대황자께서 또 왕야의 칭찬을 받으셨습니다.”란주 상궁이 들어오며 웃으며 말했다.황후는 별다른 감정을 보이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18화

    숙청제는 신하들을 어서방에 불러들였고, 그들은 밤늦게까지 논의했다. 논의는 결국 단신의가 들어가서 시간이 많이 늦었음을 알리며 중단을 요청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숙청제는 팔을 뻗고 웃으면서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니. 그럼 궁문도 이제 잠가야겠으니 다들 돌아가시게.”그는 여전히 기운이 넘쳤고, 특히 지금은 얼굴에 혈색이 돌아 병든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송석석은 논의 중이던 사여묵을 기다렸다. 그들은 함께 궁을 떠나 황실로 돌아갔다. 매우 피곤했던 그녀는 사여묵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마차가 황실 문 앞에 도착하자 사여묵은 그녀를 안아 들었다. 송석석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내려오기 귀찮았기에 그대로 안겨 있었다. 그의 넓고 따뜻한 품은 정말 편안했다.그와 떨어져 있던 세 달 동안 그녀는 성릉관에서만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으며, 그 외의 곳에서는 늘 경계하며 지냈다. 이제 집에 돌아오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렸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안함을 느꼈다. 무언가 뜨겁고 큰 손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단 백부 말씀을 잊으셨나요?”귓가에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백부가 이제 괜찮다고 말씀하셨소.”송석석은 감고있던 눈을 떠, 뜨겁고 열정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정말인가요?”“틀림 없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술이 덮였다.불꽃이 강렬하게 타올왔다. 침실의 온도마저 높아진 듯 했다.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기에 마치 새롭게 결혼한 듯한 기분이었다!한 달 후, 상국은 시박사를 설립할 예정이었다. 이는 상국과 해외 북당과의 화물 교류를 담당할 기관이었다.원래의 시역업도 시박사의 운영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상국에서 다른 국가에 판매할 수 있는 화물 목록을 정리하여 서경으로 사신을 파견해 화물 교환 협정을 체결할 것이다.이 한 달 동안 단신의는 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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