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자는 덕비의 말에 얼굴이 창백해져 자기도 모르게 배를 가렸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모두 최근에 형제들과 함께 수업하고 무술을 익히며 힘든 순간에도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했던 기억들 뿐이었다. 그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어마마마, 혹시 오해가 아닐까요? 지금 황형은 저와 사이가 아주 좋습니다.” 그러자 덕비가 한숨을 쉬더니 안타까운 눈빛으로 말했다. “먼저 밥부터 먹거라. 식사 후에 내가 널 데리고 갈 곳이 있다.” 그러자 이황자가 물었다. “어디 가시는 겁니까?” “먼저 먹거라.” 덕비는 옆에 앉아 이황자가 식사하는 것을 보며 옆에 있는 청이에게 눈짓을 보냈다. 이황자는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듯 식사하는 속도도 훤히 느려졌다. 사실 그는 진작에 자신이 황형과 태자의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어마마마도 줄곧 그에게 황형을 적으로 생각하라고 했다. 그리고 태자의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항상 강조해 왔다. 게다가 황형이 예전엔 확실히 밉상이었기에 황형이 태자가 되면 더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꼭 태자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생활이 즐거워 그는 태자의 자리를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덕비는 아무 말없이 그가 식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아들의 성격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총명하고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 잘만 키우면 세상을 놀라게 할 만했다.하지만 아직 어려서 권력이 얼마나 좋은지를 깨닫지 못하고 현재의 작은 기쁨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게다가 그가 비록 보통 아이들보다 생각은 깊었지만 마음이 독하지 않아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을 시킨다면 성공할 수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태후가 너무 엄격히 지키고 있어서 다른 기회는 없었고 유일한 방법은 이황자에게 직접 하라고 하는 것 뿐이었다.왜냐하면 요즘 그들 사이가 좋아서 아무도 아이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황자가 이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태부께서 우리에게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저는 중개라는 이름을 선택했습니
그 마름쇠는 이황자의 손에 들어갔는데, 그가 떨면서 받아 보니 확실히 삼황자가 가지고 놀던 그 마름쇠였다. ‘그들이 너에게 어떻게 대했든 똑같은 방식으로 갚아주거라.’바로 그때, 어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고, 그는 놀라서 마름쇠를 밖으로 던졌다. 덕비는 직접 마름쇠를 주워 차가운 이황자의 손을 잡고 떠났다. “내가 후궁을 거느리지 않으니 너의 황형이 널 마음대로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본데, 각 궁엔 아직 나의 인맥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몰랐나 보군. 내가 바로 사람을 잡아와서 고문을 해본 결과 네가 본 그대로였다. 그 사람은 장춘궁의 사람이니 너도 잘 알 것이다.” 순간 이황자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는 당황스러우면서도 괴로웠다. ‘그럼… 황후마마와 황형이 날 모해하려고 했던 거야? 그럼 사이좋게 지낸 것도 모두 가짜였어?’ 그는 돌아가서 멍하니 덕비가 하는 말을 들었다. “내일 이렇게 하거라.” 어머니의 계획을 들은 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러자 덕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 죽는 건 너가 될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마름쇠를 멀리 던지고 덕비의 품에 안겨서 말했다. ‘어마마마, 전 죽기도 싫고 황형을 모해하기도 싫습니다. 전 지금 너무 두려울 뿐입니다.” 그러자 덕비가 그의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아이야, 난 네가 착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착한 건 네가 주동적으로 누군가를 해치지 않는다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널 해쳤을 때 반격해서 안된다는 게 아니란다.”이황자가 울면서 물었다. “그럼 저번처럼 황숙과 숙모에게 잘 보여서 보호해 달라고 하면 안 됩니까?” “소용없단다. 그들은 모두 너의 황형이 곧 태자가 될 것을 알고 있어서 태자를 보조할 것이란다.” 그러자 덕비가 부드러운 말투로 타일렀다. “그리고 나도 너의 황형이 정말로 죽길 바라는 건 아니다. 그가 낙마한 후에 단신의가 그의 목숨을 구해준다면 두 다
마음속에 담아둔 일이 너무 많은 탓에 덕비는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옷을 걸치고 일어나 청이와 함께 이황자의 침실로 가서 밤시중을 드는 내시를 내보내고 침대 옆에 앉아 이황자의 앳된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황자는 악몽을 꾸었는지 눈을 감고 있는데도 그의 공포를 느낄 수가 있었다. 덕비는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마음속으로 노여움이 일었다. ‘종개? 태부가 이황자에게 그런 이름을 지어주다니. 그에게 인심을 품고 다투지도 빼앗지도 말라는 뜻이야 뭐야? 왜 그래야 되는데? 우리 아들이 적장자가 아닌 것 빼면 대황자보다 못한 게 뭐가 있어? 내가 빼앗으려는 게 아니라 빼앗지 않으면 살 길이 없어서 그런 거야. 황후가 마음이 좁고 극도로 이기적이어서 조금의 위협도 용납할 수 없지. 그런데 우리 아들이 어리석다면 그만인데 하필이면 천성이 총명해서 세 황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걸 어떡하냐고. 침대 옆까지 왔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줄 수가 있어? 대황자가 지금 예전처럼 교활하고 악랄하지 않다고 해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대체 누가 알겠어? 그들 모자는 다른 사람을 용납할 수 없어. 빼앗지 않으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될 거야. 그러니 내일 반드시 이겨야 해!’ 덕비는 자신의 계획이 치밀하니, 대황자와 수빈을 모두 제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녀는 그렇게 반 시진 동안 앉아 있다가 아무 기척 없이 떠났다. 그러자 청이는 밤시중을 드는 내시를 불러들인 후 덕비를 쫓아갔다. “마마, 시간이 늦었으니 일찍 주무십시오.” 덕비는 망토를 당겨 얼굴을 가리고는 싸늘한 눈동자를 드러냈다. “오늘 밤은 불면의 밤이 될 것이다. 아마 황후도 흥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할걸? 분명 내일 대황자가 우수한 모습을 보여서 대신들의 지지를 받을 생각에 잠이 오지 않을 거야.” 하지만 청이는 고개를 저었다. “황후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할 것 같습니다. 대황자가 예전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황후와 서먹서먹해졌으니까요. 황후가 자안궁으로 대황자를 만나러 갔는데 대황자가 상대해주
다음날 아침 일찍, 대황자와 서우는 기운과 자신감이 넘친 반면 이황자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눈빛도 흐리멍덩해져 있었다. 이황자는 어제 밤새 악몽을 꾸었는데 자신의 몸과 머리가 분리되거나 황형의 다리가 부러져 처절한 비명을 지르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어제 묶여 있던 내시가 한 말도 꿈속에서 반복되었다. 꿈에서든 깨어 있을 때든 그는 두려워서 온몸을 끊임없이 떨었다. 덕비는 청이를 데리고 와서 이황자에게 직접 옷을 갈아입힌 후, 그의 귀에 오늘 해야 할 일을 반복하고 대황자를 죽이는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작게 위로했다. 그의 표정이 조금 풀리자 덕비는 계속해서 권력의 좋은 점을 말하며 권력을 얻으면 상국을 맑고 평안하게 다스려 천고의 황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덕비는 자신의 아들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야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최근에 태후가 일부러 그들을 모아서 함께 놀고, 공부하고, 무술을 익히며 형재애를 키워서 그런 것이었다. 아이들은 감정을 중시하기에, 그런 계략에 창창한 미래를 저버린다면 영원히 후회할 것이 분명했다. 덕비와 청이가 함께 설득하자 이황자의 눈빛이 점점 굳어졌다. 그들은 옷차림을 단정히 한 후에 손을 맞잡고 문을 나섰다. 숙청제는 날이 밝기도 전에 조정의 문무들을 데리고 천단에 가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고, 궁비와 황자, 공주들의 행렬이 도착했을 때, 그들도 모두 도착했다. 황실의 정원은 도처에 붉게 물들어 있어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숙청제는 오늘 아주 기뻤다.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그는 아마도 몇 년 더 살 수 있도록 빌었을 것이다. 심지어 국사는 점을 치며 숙청제에게 원하는 것을 반드시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국사의 말과 단신의의 치료에 그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다.그는 황자와 공주들을 모두 불러들여 먼저 생신 축복을 받고 그들에게 상을 내렸다. 오늘 태후께서는 오지 않으셨기에, 날씨가 추워 감기에 걸릴 수 있으니 황제는 궁을 나가기 전에 태후에게 찾아가 절을 올렸다.
마구간의 말들은 이미 검사를 마친 상태라, 먹이도 먹었다. 네 명의 아이들은 재잘재잘거리며, 각자 자신의 말을 어루만졌다. 삼황자는 어머니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은 듯 환하고 활기찬 미소를 지었다. 역시나 오늘 수빈도 따라왔다. 후궁에서 그녀를 어떻게 대하든지 대외적으로 그녀는 여전히 삼황자의 모비이고 존귀한 수빈마마였다. 오히려 복소의가 몸이 좋지 않아 이번 여행에 동참하지 못했다. 그들은 말을 끌고 나가서 산책하려고 했다. 삼황자는 원래 혼자 올라탈 수 없었는데 다시 시도해 보니 뜻밖에도 순조롭게 말 등에 올라탈 수 있었다. 그는 기뻐서 소리쳤다. “대황형, 이황형, 서우 형. 나 좀 봐, 나 혼자 올라탔다고!” 그러자 모두 그의 득의양양한 태도를 보고 웃으며 연신 그가 대단하다며 칭찬해주었다. 이황자는 소매를 움켜쥐고 웃으며 말했다. “그건 네 말이 작아서 그런 거잖아. 우리 말을 한 번씩 다 타봐야 능력이 있는 거라고 할 수 있지.” 그러자 삼황자는 자존심이 긁힌듯 말 위에서 내려와 서우의 말에게 다가갔다. 사실 네 필의 말이 비슷해 보였지만 대황자와 서우의 말이 조금 더 높았다. 다만 다른 말들은 삼황자와 익숙하지 않아 약간 저항했다. 삼황자는 지지 않고 몇 번 시도한 끝에 결국 서우의 말에 올라탔다. 그는 신나서 고삐를 잡고 소리쳤다. “이것 봐. 서우 형의 말도 나랑 친해서 올라탈 수 있어.”말은 달가닥 달가닥 거리며 제자리에서 돌아다녔다. 사실 말은 여전히 삼황자를 저항했다. 서우는 무슨 일이 생길까 봐 황급히 말했다.“그래, 너 대단하다. 그러니까 어서 내려와.”그가 앞으로 손을 뻗어 삼황자를 끌어안았다.삼황자는 다른 말들도 모두 시험해 보았는데 마지막으로 올라탄 게 대황자의 말이었다. 그는 기뻐서 이황자에게 소리쳤다.“이황형, 이제 날 인정해주는 거야?”이황자가 그에게로 다가가 손을 뻗어 그를 꽉 끌어안으며 말했다.“그래, 우리 삼황자가 참 대단하네.”그는 삼황자를 안고 내려올 때 힘이 모자라 두세 번
송석석은 오늘 특별히 바빴는데, 한동안 바삐 움직이더니 지금은 사람들을 데리고 마장에 나타나서 사방에 경계를 쳤다.승마 경기가 곧 시작될 예정이었기에, 많은 무장들과 명문가 자제들이 말을 끌고 경기장 밖에서 기다렸다.승마 경기는 복잡하지 않았다. 말을 타고 세 바퀴를 도는데 각 바퀴마다 두 자 높이의 난간이 있었다. 경주자는 난간을 뛰어넘기 위해 말을 세워야 하며 난간을 넘어뜨릴 수는 없었다. 가장 먼저 세 바퀴를 완주한 사람이 승리하는 것이었다.사실 이건 승마 경기라고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기마술이 뛰어난 사람들에게는 두 자 높이의 장애물을 넘는 건 식은 죽 먹기이기 때문이었다.하지만 난간을 두 자 높이로 설정한 건 세 황자를 위해서였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대황자와 이황자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삼황자는 반드시 경기에 참석할 필요가 없었기에, 설령 참가하더라도 송석석이 사람을 파견해 말을 끌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경기 일정에 따르면 세 황자는 모든 참가자가 경기를 마친 후에야 경기에 참석할 수 있었다.그건 숙청제가 그들을 위해 배치한 것이었는데, 그들이 대기 구역에서 기다리며 진정한 경마 선수들이 그들을 위해 앞장서는 것을 지켜보게 하기 위해서였다.그들은 말들이 뛰는 모습을 보며, 긴장되고 기대되며 흥분하기까지 해서 즉시 말을 타고 달리고 싶을 것이었다.긴장감과 자극도 그들의 경험 중 하나이니 그들은 이를 통해 무언가를 깨달을 것이었다.숙청제와 대신들은 이미 높은 관람석에 앉아 있었고 위치가 좋아서 마장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한편, 사여묵과 목 승상은 숙청제의 양 옆에 나란히 앉아 있었고, 후궁의 빈비는 황후가 이끌고 오른쪽에 앉아 숙청제와 대신들과 약간의 거리를 두었다.마당에는 큰 북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큰 북의 선반 위에는 붉은 비단이 묶여 있었다. 그리고 방시원과 주 장군도 각각 큰 북의 좌우에 서서 심사를 보았다. 송석석도 경기장 안에 서 있었는데 그녀가 서 있는 곳은 마침 숙청제와 마주한 위치였다. 자객
송석석은 먼지를 한 입 먹었다. 모래장은 풀밭과 달라서 하늘 가득 퍼지는 먼지 외에는 전혀 볼거리가 없었다. 심지어 경기장 내에 있어도 누가 1등인지 볼 수 없었지만, 진청 장군의 막내아들인 진소인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난간을 넘을 때 진소가 틀림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왜냐하면 그의 말은 다른 말들보다 빨리 달려 이미 격차를 벌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경마 대결은 정식적인 것이 아닌, 단지 황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 1등을 해도 의미가 없었지만 말이다. 게다가 너무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면 황자들이 긴장할 수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온 힘을 다해 쫓아가지 않았다. 세 번째 바퀴가 되었을 때 서우와 세 황자도 말을 끌고 앞으로 나가 대기를 했다. 경기장의 대결이 끝나면 그들이 말을 타고 뛰어들어갈 수 있었다. 삼황자는 재빨리 말에 올라탔는데 그의 얼굴엔 제법 위엄이 있었다. 그는 조금도 긴장하지 않고 고삐를 잡고 몸을 앞으로 숙여 말과 대화를 했다. 이때 서우와 이황자도 각각 말에 오른 후 대황자를 바라보았다. 서우의 눈빛은 격려로 가득 차 있었고, 이황자의 얼굴은 약간 창백해 보였는데 고삐를 잡은 손은 가늘게 떨고 있었다. 대황자는 그가 긴장한 줄 알고 웃으며 말했다. “이황자, 겁내지 마. 넌 나보다 훨씬 기술이 좋잖아. 나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네가 왜 긴장을 해?” 하지만 이황자의 손바닥에선 여전히 땀이 났고, 매서운 모래바람이 그의 눈시울까지 붉히게 했다. 그로 인해 결국 대황형이 어떻게 말에 오르는지 보지 못했고, 깔끔하게 말 위에 올라타 안장 위로 무겁게 앉는 그의 그림자만 볼 수 있었다.바로 그때, 대황자가 타고 있던 말이 처량하게 울부짖더니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대황자는 급히 고삐를 잡고 사람들이 와서 살펴보기만을 기다렸다.하지만 마부가 와서 말 머리에 손을 닿기도 전에 말이 울부짖더니 미친 듯이 경기장을 향해 돌진했다.너무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모두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대황자는 심하게 땅으로 내
황후는 자신을 잡고 있던 사람들을 뿌리치고 커튼 안으로 뛰어들었다.그렇게 피투성이인 아들을 본 순간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다행히 태의가 있어서 그녀를 급히 부축하여 치료해주어 바로 깨어날 수 있었다. 깨어난 황후는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사여묵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을 이끌고 미친 망아지를 가로 채 신속하게 조사를 펼쳤다.커튼 안에서 숙청제는 땅에 웅크리고 앉아 떨리는 손으로 피투성이인 대황자의 얼굴을 쓰다듬었다.단신의는 신속하게 침을 놓았다. 그리고 머리를 지혈해야 하니 황제에게 한쪽으로 옮기라고 했다.침을 놓는 것은 단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였고, 몸에 지니고 있던 약은 먹일 수 없어서 송석석에게 지혈산 한 병을 주며 대황자에게 먹이도록 했다. 가루약을 삼킬 수만 있다면 내장 출혈 속도를 잠시 늦출 수 있을 것이었다.단신의는 말발급이 그의 몸을 짓밟고 지나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속도가 빠른 데다 말에 사람의 무게를 더했으니 내장이 손상되고 출혈이 발생할 수 있었다. 만약 침을 놓지 않으면 생명의 위험이 있을 것이지만 목숨을 부지했다고 해서 치료하기 쉬운 건 아니었다.대황자의 의식이 아직 남아 있었던 덕분에 숙모의 초조한 목소리를 듣고 무언가를 삼켰다.그는 너무 아팠다. 너무 아파서 온몸이 다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다.‘나 죽는 건가…?’그는 순간 무서워졌다.그는 숙모의 말을 듣고 삼키려고 애썼지만 너무 힘들었다.힘이 없는 탓에, 입안의 쓴맛과 피비린내가 가득해서 토하고 싶었지만 토해낼 수도 없었다.그는 부황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부황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으로 보아 자신이 곧 죽겠다고 생각했다. ‘부황, 또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는 너무 피곤해서 눈꺼풀을 뜰 수가 없었다. “대황자, 정아, 자지 말고 일어나거라.” 송석석은 눈물을 흘리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어서 눈을 떠서 숙모를 보거라. 너의 부황과 모후도 여기 계시니 어서 눈을 떠보거라.” 숙청제
이황자의 출가하기 전의 이름은 사범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황자가 가장 많이 들었던 평가는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세 황자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진짜라고 믿으며,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이런 말로 인해 자랑스러워할 때마다 덕비는 매번 그를 바닥으로 밀쳤다. 그녀는 늘 연민과 복잡한 감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내 뱃속에서 태어나 평생 그 바보에게 밀리게 생겼구나. 바보 주제에 운은 또 얼마나 좋은 지.” 그는 어릴 때부터 그런 말을 귀에 익힐 정도로 들었다. 하지만 덕비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지 않고 매번 사적으로만 그에게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 어마마마가 대황형을 가장 싫어하면서 왜 매번 자애롭고 온화한 눈빛으로 대황형을 보며, 분명 바보라고 해놓고 총명하다고 칭찬하는지 몰랐다. 이해가 안 돼서 몰래 청이에게 물어보았더니 청이는 한숨을 쉬며 그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황자 님, 마마께서는 이황자 님을 위해서 계획을 세우고 계신 거예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가 말을 들을 때마다 어머니는 기뻐하셨고 그에게 한숨을 쉬거나 애처로운 눈빛을 보이지 않았다. 숙청제가 그를 보러 올 때마다 덕비는 그가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려주었다. 그러자 숙청제는 그에게 어떤 책을 읽는지, 그리고 어떤 내용을 기억했는지도 물었다.그는 매번 대답을 아주 잘해서 숙청제를 흡족하게 했다. 답은 모두 미리 외운 것이기 때문에 어려울 건 없었다.가끔은 숙청제가 그에게 대황형이 괴롭히거나 장난감을 빼앗지는 않는지 물어보기도 했다.하지만 그런 질문에도 정답이 있었는데, 그는 매번 자기가 동생이니 황형에게 양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황자가 매번 그렇게 대답할 때마다 숙청제의 눈빛은 몹시 복잡했는데, 이황자는 그 눈빛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숙청제가 잠시 침묵한 후에 그의 머리
어릴 때부터 친했던 두 친구는 각자의 분야에서 항상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수철이 약을 접하게 되면서 약과 의리는 그가 신약산장을 의지하는 모든 것이 되었다. 산에 내려가 의관을 차리고 사람들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매번 참기만 했는데 서우가 왔다 간 후 보내온 편지를 본 그는 산에서 내려갈 희망이 생겨 마음이 부풀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예전에 부상에 시달린 적이 있어서 열심히 통증과 부상을 치료하는 약을 연구했는데, 의술이 전면적인 나머지 뒤처지지도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지난 몇 년동안 한 번도 타오르지 않았던 한 줄기의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신약산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그는 자신이 설령 살아갈 수 있다 하더라도 이번 생은 그곳에서 지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신분과 얼굴을 바꾸고, 배운 것을 가지고 산에서 내려갈 수 있다면, 그는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있고 더 이상 숨지 않고 떳떳하게 살 수 있었다. 그 생각에 그는 며칠 동안 흥분한 상태로 제약 공장에서 먹고 마셨다. 사부님은 그런 그의 모습이 조금 두렵게 느껴져 사공에게 편지를 써 알리려고 했다. 그는 사부에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환한 미소를 띠었다. 그 웃음에 놀란 사부님은 심지어 무당을 불러 귀신이 씐 건 아닌지 보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서우 형이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는 사부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비록 그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나중에 너무 실망하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항상 해야 했다. 날이 지나고 더위와 추위가 오가더니 벌써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추분, 날씨가 상쾌한 어느 가을, 하늘의 밝은 태양은 사람을 뜨겁게 하지 않았고 하얀 구름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어 들어오고 있었다. 서우는 다시 한번 신약산장에 발을 들였는데, 이번엔 그의 서동인 진소설을 데리고 왔다. 진소설은 몽동이를 따라 무술을 익혔다. 그런데 노력한 사람은 역시 보답을 받는다고, 비록
“사정언, 너 말 좀 그만해.” 송석석은 눈살을 찌푸리고 서우에게 매달려 쉴 새 없이 말하는 딸을 혼냈다. 새빨갛게 그을린 작은 얼굴에 닭장처럼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한 눈에 봐도 밖에서 뛰어놀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우가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쉬지도 않고 사촌 오빠에게 길에서 본 재미있는 일들을 물었다. “어머니.” 사정언은 눈을 크게 떴다.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니 왠지 억울해 보였다. 그녀의 외모는 부모님의 장점만 닮아 있었다. “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사촌 오라버니를 만나지 못했으니, 당연히 할 말이 많지요. 하루만 못 봐도 3년 못 본 것처럼 길게 느껴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대체 누가 그런 말을 가르쳐줬어?” 송석석이 눈살을 더욱 찌푸렸다. “왕사백이요. 그가 며칠 전에 매산으로 갔었는데, 돌아오자마자 시 고모를 안고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시만자는 고개를 숙여 송석석의 눈빛을 피했다. 그녀는 그때 정언이 나무 위에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알았다면 아이 앞에서 껴안고 그런 오글거리는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녀는 이 아이가 말을 따라 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 나이의 아이들이 왜 어른들의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는 이맘때쯤에 최대한 어른들과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말이다. 사정언은 대답한 후에도 계속 서우를 잡고 말했다. “오라버니, 혹시 상서에 갔어? 상서에서 시신 업는 것을 봤어? 정말 소국이 말한 것처럼 앞에서 종을 흔드는 도인이 있고, 뒤에 좀비들이 따라가는 거야? 그들은 걸어가 아님 뛰어가? 꼭 밤에만 볼 수 있는 거야? 낮에는 햇볕이 쨍쨍해서 볼 수 없는 거야? 그들은 말할 줄 알아? 뭘 먹어? 그리고 그곳엔 주술을 잘한다고 들었는데 혹시 미인을 본 적이 있어? 그런 미인은 오라버니가 마음에 드는지…….” “그만해!” 송석석도 이내 참지 못하고 호통을 쳤다. “보주, 서주, 어서
송석석은 이번에 외출할 때 황제에게 유람하러 간다고 했다.하지만 그녀는 신약산장에 오래 머물지 않고 7일 만에 떠나 만종문으로 향했다.그녀는 원래 진성으로 돌아가 홍현 고모를 찾고 싶었지만 평무종 고모를 직접 찾아가서 분장술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분장술은 어렵지 않지만 능숙하게,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하려면 한두 달 만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간단한 분장술은 기존의 얼굴에도 할 수 있었지만 비가 오기만 해도 쉽게 흔적이 드러날 수 있었다.그러니 간단한 분장술만 배워서는 안 되었다.그리고 또 다른 미용술은 가면을 만드는 것인데 일반적인 가면은 일정한 두께가 있어 답답하고 오랫동안 착용하면 얼굴에 상처가 날 수 있다.게다가 가면을 착용할 때는 특수 물약을 묻혀야 했기에, 뜯을 때도 얼굴에 상처가 입을 수 있었다.운익각 사람들은 가면을 착용할 때 오래 착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정탐꾼들은 무공도 괜찮고 경공도 높아 임무를 수행할 때만 가면을 착용해서 물약을 묻힐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벗겨져도 얼굴에 검은 천으로 복면을 쓰고 있어서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일반인들이 변장해서 탐문할 때 사용하는 것은 변장의 첫 번째 방법이었다.평무종은 서우의 요구를 듣고 말했다.“얼굴에 오래 쓰고 있을 수 있으면서도 원래 피부를 해치지 않고 잘 벗겨지지 않는 가면이라, 그럼 상어가죽으로 만드는 것은 어떠냐.”“상어가죽이 무엇입니까?”서우는 매미의 날개처럼 얇고 물에 젖어도 흔들리지 않는 상어비단은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그건 엄청 귀중한 비단이었다.그러자 평무종이 설명했다.“상어가죽은 분장술에서 쓰이는 가장 좋은 소재이다. 통풍이 잘 되고, 얼굴에 단단히 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아 빗물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심지어 눈으로 보나 만지나 모두 진짜 피부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상어가죽으로 가면을 만들려면 상어 눈물을 사용해서 실을 짜내고 다시 밑감을 만들어야 해서 매우 번거롭다.”그러자 서우가 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촛불을 들고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조정의 일은 일절 말해주지 않은 탓에, 수철은 지금 나라가 안정적이라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미 대황자가 아니다. 따라서 지금 그가 지켜야 할 것은 자신의 목숨뿐이고, 다른 것은 이미 그와 상관이 없어졌다. 그는 조정에 관한 화제를 꺼내면 모두가 예민해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릴 때 그는 왜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 몰랐지만, 나중에 단 사공이 와서 조금씩 분석해 주었고, 그의 사부님도 이해관계에 대해 이야기해준 적이 있었다. 그와 셋째 동생 사이에 가족의 정으로 목숨을 걸고 불안정한 여생을 걸어야 한다면 결코 모두에게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받아들기로 한 것이었다. 삶은 계속될 텐데, 매일을 의미 있게 잘 보내야 목숨을 건진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서우가 그의 다리에 대해 물었다. “내가 오기 전에, 고모가 그러던데 넌 다리를 다쳐서 일어날 수 없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걸을 수 있게 된 거야?” 그러자 수철이 말했다. “부황께서 승하하신 해에 산장에서 몇 사람이 와서 진찰해 보더니 정말 심하게 다쳤다며 이대로 두었다가는 계속 아플 테니 반드시 극단적인 방법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하더군.” 그러자 서우는 호기심에 물었다. “어디서 온 신의야? 그럼 그때부터 치료한 거야?” 그 물음에 수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북당에서 왔는데 그 사람은 그 말만 하고 날 치료해주지 않고 당일에 떠났어. 그러다가 지난달에 와서 약주를 줘서 그걸 마셨는데, 난 하루 종일 혼수상태에 빠졌어. 심지어 깨어나니 다리가 아파 죽을 것 같았지.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점점 좋아지더니 누군가 부축하면 일어날 수 있게 되었어. 처음에는 잘 일어나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점점 똑바로 설 수 있게 되었지. 그리고 지금은 혼자 몇 걸음은 걸을 수 있게 됐어.” 그러자 서우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북당신의? 그분께서 아직 살아 계셔?” “아니, 돌아가셨어. 내가 일어나
[번외편]신약산장의 진달래가 온 산천지에 피었다. 다채로운 경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황홀하게 만들었다. 특히 신약산장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마저 그곳에 살고 싶어 할 정도였다. 하지만 예외인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는 말을 타고 산 아래에 도착해 말을 잘 배치한 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직 눈앞의 길만 보았고 찬란한 꽃들은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빠르게 걸으며, 가끔 경공을 사용하기도 했다. 신약산장이 비록 높지는 않았지만 은밀하게 숨겨져 있었고 많은 갈림길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도를 수도 없이 봐 온 덕분에 신약산장으로 향하는 길을 이미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있었다. 약관 때 그가 작위를 계승했을 당시, 작은 고모가 많은 선물을 주었는데 그중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지도였다. 그리고 그에게 온몸의 피가 끓게 하는 소식을 알려주었는데 바로 수철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그는 한숨도 자지 못했고 옛날의 모든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작위를 받은 후 입궁해서 사은하고 선조들에게 제사를 지낸 후 답방 인사를 드려야 했는데, 작은 고모의 말로는 인맥을 굳건히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래서 무려 보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신약산장으로 출발했다. 산 아래에 도착하자 그는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산문을 본 순간, 강한 슬픔에 휩싸여 발걸음을 멈추고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작은 고모는 그에게 수철이가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고, 불행 중 다행히 치료 후에 목숨은 건졌지만 약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그것은 평생 약을 달고 의자에 앉아 있거나 침대에 누워서 지낼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그의 기억 속의 수철의 모습은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제멋대로며 횡포한 모습이었고, 다른 하나는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하며 태후마마와 황제폐하를 실망시킬까 봐 무술이든 공부든 최선을 다 했던 모습이었다. 특히 무술은 고모부가 재미있게 가르쳐 준 덕분에 그들은 항상 활기차게 뛰어다닐 수
사여묵이 그 옷을 바라보며 말했다.“그거 내 옷이잖아. 그럼 내가 살이 쪘다는 말이오? 나 살 안 쪘는데.”“당신 것이었습니까? 그럼 나중에 길이를 고쳐야겠군요.”그러자 사여묵이 다시 투덜거렸다. “헐렁한 옷을 입고 싶으면 사람 시켜 만들어 입으면 되지, 왜 내 낡은 옷을 고쳐 입으려는 것이오?”“내가 매산으로 돌아가서 1년 동안 있을 텐데 당신 옷을 입어야 당신이 내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 아닙니까?”송석석은 마치 평생을 떠나는 사람처럼 말했다.“1년? 왜 매산에서 1년이나 있어야 하지?”“당연히 사부님이 날 보고 싶어하셔서지요.”송석석은 허리를 짚고 옆에서 웃고 있는 보주에게 옷을 건넸다.“하지만 당장 간다는 건 아닙니다. 서우가 국공부를 계승할 예정이니 그 일이 끝난 후에 매산으로 돌아갈 것입니다.”“왜 그렇게 오래 있어야 하는 것이오?”사여묵은 그녀의 자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에 대해 묻지는 않았다.송석석은 자리에 앉아 느릿느릿 말했다.“매산으로 돌아가 1년 살다가 아이를 하나 주워 와서 우리가 낳았다고 하려고요.”“뭐가 그렇게 번거롭소? 황족 중에 한 명을 양자로 삼으면 되지 않소?”사여묵은 잠시 생각하더니 계속 말을 이어갔다.“게다가 주워 와서 우리가 낳았다고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소?”송석석은 퉁명스럽게 그를 한 번 쏘아보았다.‘이렇게 분명하게 말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하다니.’그러자 보주가 웃으며 말했다.“왕야님. 왕비님께서 지금 임신 중이셔서 매산으로 돌아가서 아기를 낳을 때까지 휴양하시려고 하는 겁니다.”“뭐?”사여묵의 놀란 목소리는 지붕을 떠날 것 같이 컸다.그는 가능성이 그렇게 작은 인연이 그들에게 찾아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그는 이내 쪼그려 앉아 조심스럽게 손바닥으로 송석석의 배를 만졌다.‘이 안에 나와 송석석의 아이가 있다니, 말도 안 돼.’그러고는 약간 믿을 수 없다는듯 물었다.“정말이야? 당신도 낳고 싶어?”송석석은 눈을 내리깔고 그를 바라보며 웃으며 말했다.“물론
동월 13일이 되자, 그는 갑자기 정신이 맑아져 배가 고프다며 고기 죽과 크림과자를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오 대반은 급히 사람을 시켜 고기 죽과 크림과자를 준비하도록 했다. 진 황후는 평소처럼 침대 옆에 앉아 그에게 먹여주려고 했지만 그는 오히려 앉아서 먹겠다고 했다. 오 대반은 얼른 앞으로 나서서 일으켜 세우고 등 뒤에 두꺼운 쿠션을 깔아주었다. 숙청제는 여위어서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어 앉아있을 때도 몸이 계속 미끄러지는 탓에 오 대반은 어쩔 수 없이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그의 허리를 받쳤다. 그는 죽 한 그릇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모두 먹고는, 과자도 한 점 먹더니 느끼한 지 더 이상 손을 대지 않았다. 단신의는 태후를 모시고 몇 마디 하자 태후는 안색이 급히 변하더니 눈물이 쏟아졌다. 비록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막상 때가 되자 태후의 마음은 칼에 도려낸 듯 아파진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 후에야 사람을 시켜 섭정왕과 태자, 그리고 후궁의 공주와 마마들까지 모셔오라고 했다. 숙청제는 마치 자신의 병이 심각한지 전혀 모르는 듯 많은 사람들이 온 것을 보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는 이내 상냥하게 모든 사람에게 한 마디씩 한 후, 다시 주위를 둘러보며 오 대반에게 물었다. “왜 대황자와 이황자가 보이지 않느냐?” 그 말이 나오자마자 일부 후궁들이 눈물을 참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오 대반은 웃으면서 말했다.“황제폐하,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이미 사람을 보내 모시러 갔으니 곧 도착할 것입니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수업에 집중하라고 하거라. 태부에게 욕먹지 말고.” 숙청제는 두 손을 들어 올리려 애썼지만, 힘이 없었다. “좀 피곤하구나. 쉴 테니 눕혀다오. 한잠 자고 서재로 가도 늦지 않을 것이다.” 오 대반이 급히 그를 부축해 눕혀 주었다.이내 흐느끼는 소리가 나자 숙청제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누가 우는 것이냐? 무슨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이냐?”진 황후가 몸을 돌려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람들을
하지만, 궁으로 돌아온 후 그는 다신 일어나지 못했다. 단신의는 태후에게 몇 마디 말했는데 요 이틀에 돌아가실지 모르니 황제폐하께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빨리 만나게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황제가 가장 먼저 보고 싶은 사람은 태후였다. “그 아이가 날 보자마자 가장 먼저 황조모에 대해 물었습니다. 모후께서 그를 아끼셨던 보람이 있군요.” 그러자 태후가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불쌍한 녀석, 평생 산에 숨어 살 수밖에 없게 되었구나. 그나저나 그의 다리는 정말 가망이 없는 것이냐?” “예, 희망은 없는 것 같습니다.” 숙청제의 입술에는 핏기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제가 떠나기 전에 그가 말했습니다. 의술을 배워서 나중에 제 병을 고쳐주겠다고요.” 그의 말을 들은 태후는 가슴이 쓰리고 아파왔다. “참으로 착한 아이구나.” 숙청제는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렇지요. 참 착한 아이예요.” 그는 태후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사여묵에게 태자를 데리고 들어오라고 했다. 숙청제는 병세가 엄중하지 않았을 때, 태자를 데리고 조정에 가고 상주문을 수정하고 그를 데리고 대신들과 논의를 했다. 숙청제는 그가 강제로 성장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생모를 일찍 잃은 데다 모가는 세력이 약해 조금의 도움도 되지 못했다. 수빈은 그를 친자식처럼 여겼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다. 그러니 이 씨 가문만 남았는데 그들은 어떻게 해야 태자에게 좋은 건 지 모르는 것 같았다. 병상 앞에서 그는 태자를 사여묵에게 정중히 넘겼다. 하지만 이번엔 그에게 맹세하라고 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내가 태자를 너에게 맡길 테니 잘 가르쳐 줘. 말을 듣지 않으면 숙부로서 혼낼 때는 혼 내고 때릴 일이 있으면 때려도 된다. 너희는 군신 사이가 아니라, 숙부와 조카니까.”사여묵이 눈물을 참고 말했다. “황형, 걱정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황형의 부탁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태자.” 숙청제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