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비들 중에서 제 황후가 가장 꺼리는 사람은 덕비와 수빈이었다.덕비와 수빈은 각각 이황자와 삼황자의 어머니였다.사실 수빈의 삼황자는 친자가 아니고 나이도 어리기에 그녀가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수빈은 본래 성격이 거칠고 가문이 뛰어나며 권력을 휘두를 줄 아는 사람이었다.그러나 최근 일년 동안 수빈은 덕비와 함께 후궁의 일을 관리하며 성격도 많이 수그러들었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법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녀는 송석석의 공방과 여학을 지원하며 민간에서도 명성을 얻고 있었다.반면 덕비는 훨씬 더 조용히 지냈다. 수빈과 후궁의 일을 관리하며 간혹 그녀의 의견을 묻기도 했고, 정말로 그녀를 황후로서 존중하며 대해주었다.하지만 덕비의 이황자는 총명하고 예의가 발랐고, 심지어는 태후와 황제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만약 지금 태자를 책봉한다면 당연히 적장자가 되겠지만, 황자들이 다 자라나면 누군가가 그 중 뛰어난 자를 태자로 삼자는 제안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 대황자에게 강적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지금 덕비와 수빈 두 사람은 후궁의 일을 함께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아들들은 자연히 더 높은 대우를 받고 있었다.황후가 대황자를 데려와 키우기로 결심한 이유에는 단순히 앞서 말한 것뿐만이 아니라 하나의 이유가 더 있었다. 제씨 가문이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오히려 그녀의 발목을 잡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기면 황후의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는 것이었다.그러나 대황자가 황후의 곁에서 자라면 황제는 반드시 황후를 신경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그렇기에 황후는 이 말을 더더욱 감히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몹시 떨린 탓에, 밤새 뒤척이느라 한 숨도 자지못했다. 그렇게 다음 날, 황제가 혜의궁을 수빈에게 주어 살게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혜의궁은 당시 혜안태후가 황후가 되기 전에 살던 곳이었는데,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했다. 궁 앞에는 연못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안
수빈이 궁을 옮기자, 각 궁에서 선물을 보내왔고, 황족과 왕족들도 이 소식을 듣고 몇 번이고선물을 보냈다. 어떤 것을 보낼지에 대해서 다른 저택은 모두 주모가 결정을 내리는 반면, 북명황실에서는 염선생과 노 집사가 결정권을 가졌다.두 사람은 창고에서 선물로 줄만할 것을 이것저것 찾았지만, 적당한 것을 찾지 못했다. 값비싼 금은보화 같은 보석들을 주기에도 그렇고, 금과 옥으로 된 은병을 주기에도 너무 인색해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또한, 산호수나 병풍 같은 비교적 큰 물건들은 염선생이 잘 내놓지 않으려 했다. 산호수는 보기 드문 것이라, 황실에 있는 한 그루도 왕비의 혼례 때 만종문에서 선물한 것이었다.결국 그들은 창고에 가장 많은 물건을 눈여겨보았다. 그것은 바로 심청화 선생의 매화 그림이었다.이것은 내놓으면 매우 품격 있는 선물이 될 것이었고 값도 꽤 비쌌다. 그러나 황실에는 이런 그림이 많았다. 만약 부족하다면 곧 눈도 내리기 시작할 터이니, 매화도 피기 시작할 것이다. 심선생에게 다시 그려 달라고 부탁하면 되지만 그들은 심선생을 존중하여 먼저 허락을 구했고, 그는 아무런 이의 없이 허락하였다. 사실 이 매화 그림은 이미 너무 많이, 심지어는 여러 해동안 그려왔기 때문에 근육이 다 기억할정도였다. 종이를 펼치고 붓과 먹이 손에 있기만 하다면 한두 시간 내에 끝낼 수 있는 일이었다.송석석은 저녁에 돌아와 이 광경을 목격했다. 심선생의 그림을 보내야 한다니 마음이 조금 아쉬웠지만, 다행히도 그것이 수빈에게 보내는 것이었으니 괜찮았다. 어쨌든 궁 안에 남아 있을 것이므로 쉽게 팔려 나갈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수빈도 아마 묵보를 아끼는 사람일 터이니, 보내야 한다면 보내면 되었다.그녀는 선물을 가져다주러 직접 궁으로 갔다. 혜의궁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 기회를 이용해 궁에 들어가려는 내외의 명부들이 전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송석석도 잠시 기다렸다. 누군가 그녀가 왔다는 소식을 들어가서 알린 듯, 수빈은 송석석의 업무가
비록 혜의궁의 정원이 크지는 않았지만 어화원과 비교하면 결코 비교할 수 없는 크기였다.만약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꽃을 감상하거나, 잠시 잠깐 서서 꽃을 감상하려 한다면 반 시진 정도는 걸릴 것이었다. 하지만, 송석석은 빠르게 걷는 것이 익숙했기에 꽃들을 한 번 훑어보고는 바로 지나쳤다. 그녀에게는 큰 차이 없게 느껴졌다. 그녀는 이전에 온 산에 가득 피어 있는 갖가지의 꽃들을 본 적이 있었다. 서리를 맞은 차가운 매화꽃, 높은 산의 진달래, 3월에 피는 아름답고 화려한 복숭아꽃, 끝이 보이지 않는 각색의 동백꽃 등… 모두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만한 경이로운 장관이었다.그런데 지금 이곳에서 화분에 정성스럽게 키운 모란을 보고 있자니 그다지 큰 흥미가 생기지 않은 것이었다.한 바퀴 돌고 나니 몇몇은 차 한 잔도 다 마시지 못했고, 첩여 동씨가 막 공방 이야기를 꺼낼 때쯤 그들은 이미 혜의궁의 정전에 도착했다.첩여 동씨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그럼 들어가서 수빈 마마께 축하를 올립시다."그러자 송석석이 말했다."저는 일이 있어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아, 왕비님!" 첩여 동씨가 급하게 그녀를 불러 세우자, 송석석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소주께서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그러자 첩여 동씨가 웃으며 말했다."아무 일도 없어요. 다만, 세상 모든 여성을 대신해 왕비께 감사드리고 싶었어요. 왕비 마마는 넓은 마음을 가지시고,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어려운 백성들을 염려하시니, 비첩들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송석석은 그 말에 다소 당황스럽고 의아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백성들을 염려한다니? 자신은 그렇게까지 위대한 인물이 아니었다.게다가 부끄러우면 스스로만 부끄럽다 하면 됐지, 왜 굳이 비첩들이라고 말한 것일까? 이 말은 대체 누구를 의미하는 것이지? 그 자리에 있던 다른 후궁들한테 하는 말인가?그리고 정말로 세상의 여성을 대신해 감사하겠다는 뜻일까, 아니면 자신을 불쾌하게 만들려는 의도일까? 이는 칭찬하
숙청제는 현재 군사 상황을 논의하고 있었으며, 송석석을 어서방으로 불러 전쟁 상황을 논의하는 자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이 어서방에서의 논의 자리는 그녀가 현갑군을 이끌고 반군을 물리친 대가로 얻은 자리로, 피와 땀을 쏟은 결과였기에 아무도 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군사 상황의 구성은 성릉관과 남강에서 전해온 군사 첩보고를 바탕으로 조정 대신들이 다시 상황 분석을 하고, 후방 지원을 준비하며 전략을 세우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하지만 아무리 전략이 있어도 숙청제는 직접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고, 항상 제안을 할 뿐이었다.이 점에서 그는 사여묵과 소씨 가문에 대해 신뢰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이 신뢰가 오직 군을 이끌고 전투를 벌이는 데만 국한되지만 말이다.겨울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장병들은 더 많은 겨울 옷과 무기가 필요했다. 그들이 주로 논했던 부분도 바로 보급 문제였다.성릉관의 수란석과 빅토르의 상황은 비슷해 보였지만 다소 차이가 있었다.빅토르는 이미 물러날 길이 없는 데에 반해, 수란석은 아직 서경 황제가 그의 방패로 남아 있기 때문에 물러날 길이 있었다. 다만 서경 황제는 현재 냉옥 장공주와 많은 의견 차이가 있었고, 조정 내에서도 분파가 나뉘어 아수라장이 된 상태였다. 그러니 실제로 수란석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그나마 물러날 길이 남아 있다는 점이 다행이었지만 그 퇴로조차 수란석에게는 큰 수치로 느껴졌다. 그는 본래 영군왕과 협력하여 상국인들을 물리치고 기세를 타 성릉관을 흡수하려 했다. 그렇게 되면 그와 서경 황제 모두 백성들의 칭찬을 받으며 민심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그는 언제나 형인 수란키보다 앞서 나가기를 원했으며, 그 욕망은 거의 집착에 가까웠다.그래서 그는 전장에서 매우 잔인하게 싸웠고, 전력을 다해 싸웠으며, 죽지 않으면 물러서지 않는다는 각오로 임했다.전북망과 그 몇몇은 원래 소 대장군에게 축수 선물을 전하기 위해 갔으나, 왕표가 그들을 싫어하여 남강으로
송석석은 셋째 외숙모가 편지에서 이 일을 언급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전북망이 셋째 외숙부를 구하려다 팔을 잃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일부러 말하려던 것은 아니었고, 소씨 가문의 상황과 전장에 대한 얘기를 하다 자연스럽게 다루게 된 것이다.송석석은 편지를 읽자마자 바로 답장을 보냈지만, 이 일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전쟁터에서는 서로 누가 누구를 구했는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녀 역시 출정한 장병들 모두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랐지만, 전쟁은 잔혹해서 피와 희생이 따른다.송석석은 이 일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숙청제는 성릉관에서 전해 온 승전보를 통해전북망이 팔을 잃으면서까지 몸을 사라지 않고 용맹히 적을 물리쳐 공을 세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해진 당보에는 군사 상황만이 보고되었을 뿐, 그것이 누구의 공로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공적에 대한 명단은 승전보에 부속된 형태로만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숙청제는 크게 기뻐하며 군사 문제를 논의하던 중 굳이 이 일을 언급하며 전북망을 칭찬했다. 꼭 마치 자신이 전북망을 중용한 것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려는 듯했다.그리고 나서는 혹시 송석석이 불쾌해할 것을 우려하여 회의가 끝난 뒤 그녀를 따로 불렀다.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법이니라. 계속 마음에 담아두면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밖에는 되지 않으니, 그자와의 앙금도 이제는 풀도록 하거라. ” 송석석은 그저 “예.”라고 짧게 답할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숙청제는 그녀가 아직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는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면, 그자의 공을 인정치 않을 것이고, 진성으로 돌아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며 성릉관에 팔 년이든 십 년이든 머물게 할 것이다. 이 또한 벌을 받는 셈이지 않겠느냐?” 송석석은 황제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송석석 또한 깜짝 놀랐다. 그녀와 전북망 사이의 개인적인 감정은 전공과 연결되어서는 안
최근 약 열흘 동안 지속된 이러한 상황에 대해, 송석석은 염 선생과 큰 사형을 찾아가 의논하기도 해보았지만, 뚜렷한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처음에는 숙청제가 만종문에 대해 알아내려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왜냐하면 이번 전쟁에서 사부님이 육안통과 홍의대포를 개량한 것 외에도 무림의 많은 문파들로 하여금 경사를 보위하는 전투에 참여하게 했기 때문이다. 의심이 많은 숙청제였지만, 아주 가능성이 없는 일도 아니었다.매산의 그 일로 인해 사부님에 대한 이야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고 오히려 흥미를 돋울 만한 소소한 이야기에만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요 며칠은 그녀가 매산에서 말썽을 부려 사부님께 수도 없이 야단 맞았다는 일화에 배를 부여잡으며 무척 즐거워하기도 했다.송석석은 배꼽 빠져라 웃고 있는 숙청제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고를 치고 돌아오면 사부님께 꾸지람을 듣는 것은 기본, 심지어는 외출 금지령이 떨어지고, 물항아리 들고 온종일 서 있게 하고, 손바닥을 맞는가 하면, 철못 위에서 무릎 꿇거나, 게다가 엉덩이 아래에 향 자루를 놓고 한 시간 동안 말 자세를 유지하다 바지가 타서 구멍이 나는 일은 흔한 일이 다반사였다.전에 장난기가 심했던 대황자가 장난을 쳤을 때 그가 크게 화를 낸 적이 있었기에 송석석은 황제가 이런 이야기를 재미없어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의외로 점점 빠져들더니 심지어 매산에서는 소똥 폭발시키기 같은 것들은 하지 않았는지 묻기까지 했다. 그는 그게 가장 재밌지 않냐며 한술 더 떴다. 그 말에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송석석이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런 일도 있었습니다만, 폐하께서는 왜 그게 재미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설마 직접 해보신 건 아니겠지요?” 그러자 숙청제가 웃으며 말했다. “네 오라버니에게 끌려다니며 놀았었지. 그런데 네 오라버니는 달리기가 너무 느려서 항상 온몸이 엉망진창이 되곤 했느니라.” ‘오라버니가 느린 게 아니라 폐하께서 느리셨겠지요. 오라버니는 폐하를 보호하느라 그런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솔직한 속내를 드러낼 수 없어 감사만 표한 뒤 바로 자리를 떠났다. 그 뒤로도 숙청제는 매번 정사를 마치고 나서 그녀를 불러 한담을 나누곤 하였으며, 때로는 반 시진, 때로는 한 시진을 넘기곤 했다. 그렇게 결국 송석석도 천천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신하로서, 그녀에게 믿음직한 벗인 척이라도 하라 하신다면 그 역할 역시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허나, 황제에게 꼭 필요한 낮잠을 취해야 할 한 시진이 허투루 한담으로 소모되는 것은 분명 낭비였다. 이 기간 동안, 덕비는 몇 차례 탕약을 보내왔고, 수빈과 공비도 몇 번씩 다녀갔다. 심지어는 첩여 동씨까지도 몇 번 들렀다. 후비들은 어서방에 들 수 없기에, 탕약을 직접 들고 오더라도 오대반에게 맡겨야 했기에, 그를 안으로 들이는 식이였다. 다만 황자나 공주를 동반할 경우라면 어서방에 잠시 들 수 있었다. 그렇게 송석석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았던지라, 보내온 탕약에는 그녀의 몫도 늘 포함되었다. 송석석은 가끔 탕약을 마시며 속으로 생각했다. 만약 누군가 황제를 해하려고 탕약에 독을 탄다면, 자신 또한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말이다. 오늘은 덕비가 이황자와 함께 왔고 숙청제는 이들 모자를 어서방으로 들게 하였다. 송석석은 어서방에서 덕비와 자주 마주쳤다. 그녀에 대한 인상은 원래부터 나쁘지 않았다. 이황자는 어린 나이에도 예의 바르고 겸손하여, 이는 덕비의 훌륭한 가르침 덕분이었다. 숙청제 또한 이황자를 특히나 아끼는 듯 보였다. 그의 얼굴에 띤 진심 어린 웃음이 그 증거였다.덕비는 환하게 웃으며 궁인더러 탕약을 올리게 했다. 2인분으로 나뉘어진 탕약 중 하나는 송석석의 것이었다.덕비가 온화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틀 전 왕비님께서 기침을 하신다 들어 오늘 아침 일찍 주방에 천패, 비파, 설합을 달이게 하였습니다. 폐를 윤택하게 하여 건조함을 없애 기침을 멈추는 효능이 있사옵니다." 송석석이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을 표했다. "정말 고생하셨
송석석이 물러나자마자, 숙청제의 미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탕을 두어 모금 들이킨 후, 덕비와 이황자를 돌려보냈다. 덕비도 아무 말 없이 사람을 시켜 물건을 정리하게 한 후, 이황자의 손을 잡고 물러났다. 그러자 오대반이 문을 닫으며 말했다. "폐하, 의정까지 아직 시간이 있사오니, 반 시진만이라도 쉬시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숙청제는 평소라면 정오에 잠시 쉬곤 하였으나, 송석석을 불러들이기 시작한 후로는 낮잠을 잊고 지내고 있었다. 숙청제가 태양혈을 문지르며 말했다. "좋다, 나도 지금 머리가 좀 아프구나." "그럼, 태의를 불러 맥을 짚어보시는 것은 어떠하옵니까?" "그럴 필요 없다. 태의원 녀석들은 쓸모가 없다. 두통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서 약만 잔뜩 먹이더구나." 숙청제는 내실로 들어가 옷을 입은 채로 몸을 뉘었으나, 두통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 오대반이 이불을 덮어 드리자, 숙청제는 갑자기 눈을 뜨고 멍한 눈빛으로 말했다. "내가 요즘 왜 이런다고 생각하느냐?" 오대반이 위로했다. "폐하께서는 전쟁을 걱정하시어 심신이 피로하신 것이니 한동안 몸을 돌보시면 나아질 것이옵니다." 그러나 숙청제는 자신의 생각에 잠겨 있는 듯했다. "석석이 혹 너에게 매일 불러들이는 이유를 물었느냐?" "폐하께 아뢰옵건대, 왕비께서 이미 물으셨사옵니다." 오대반이 대답했다. "너는 어찌 대답하였느냐?" 숙청제가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자, 오 대반이 답했다."소인은 사실대로 말씀드렸사옵니다. 폐하께서 희두장군을 그리워하시어 그녀와 옛이야기를 나누려 하신다고 했사옵니다." 잠시 침묵하던 숙청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것은 사실이니라." 그는 눈을 감고 두 손으로 이마를 만졌다."혼자 있고 싶으니 나가 보거라." "예, 바로 밖에 있사오니, 필요하시면 들겠사옵니다." 오대반은 걱정 어린 눈빛으로 숙청제를 한 번 바라보고는 물러났다. 경위부로 돌아온 송석석은 어서방에서
송석석은 사여묵으로부터 복소의의 유산 소식을 전해 들었다.진왕비는 송석석에게 함께 입궁하여 문병을 가자고 제안했고, 송석석도 이를 받아들였다.본래 송석석과 진왕비는 별다른 왕래가 없었으나, 진왕이 그녀와 함께 서경을 다녀온 이후, 진왕비는 동서지간에 자주 왕래하는 것이 좋다며 송석석에게 더욱 살갑게 굴었다.하지만 진왕비는 제씨 가문의 여인으로, 황후의 종매이긴 했지만, 황후가 금족 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황후를 찾아가지 않았다.즉, 그녀가 말하는 동서지간에 자주 왕래하는 것이 좋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귀찮은 일이 없을 때는 교류할 수 있지만, 문제가 생기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뜻이었다.예전에 황제가 북명황실을 경계하던 시기에도 진왕비는 송석석을 철저히 피하며 혹여 화를 입을까 두려워했다.사실 이번에 진왕이 특별한 공을 세웠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저 황제의 가벼운 칭찬 한마디를 들은 정도였지만, 진왕에게는 그 한마디가 두 해나 자랑할 거리였다.그들은 함께 입궁하면서도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진왕비는 그저 몇 마디 가벼운 이야기만 했는데, 송석석은 그런 진왕비가 영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때때로 일부러 어리숙한 척 행동하며, 평온하고 안락한 삶만을 바랬기 때문이다.그렇기에 단둘이 있을 때에 그녀는 더욱 쓸데없는 말을 하지도, 남에게 꼬투리를 잡힐 행동도 하지 않았다.입궁하여 복소의를 만나게 되자, 진왕비는 이 아이와 그녀의 인연이 이미 닿아 있었다며, 결국 그 인연 덕분에 품계를 올리게 된 것이니 조만간 다시 태중으로 돌아와 전생의 모자 인연을 이어갈 것이라는 위로의 말을 한 가득 쏟아냈다.그녀가 나긋한 목소리로 덧붙였다."그러니 지금 해야 할 일은 그저 몸을 잘 돌보는 것 뿐이다. 괜히 이 일로 침울해 하면 안된다. 폐하께서 정무로 바쁘신데, 소의가 매일 울기만 하면 보시기에 번거롭지 않겠는가?"진왕비의 말은 빈틈이 없어 송석석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그녀가 한참 이야기하다가 문득 송석석을 향해 한 마디 던졌다.
자신의 궁으로 돌아오자, 숙청제는 비로소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 곧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었기 때문이다.후궁에서 벌어지는 수작들은 때로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법이다.단신의가 복소의의 태아를 보전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설령 무사히 태어난다 해도 선천적으로 허약하거나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을 아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숙청제는 한때 복소의에게 약을 직접 먹일까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이 아이가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자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끝내 결단을 내리지는 못했다.한 번쯤 걸어보고 싶긴 했다.이번 일은 누군가 개입한 것이 분명했다. 그가 최근 들어 복소의의 궁에 자주 드나들었으니, 누군가는 불만을 품었을 것이 틀림없었다.덕비는 분명 복소의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복소의는 황제의 총애를 믿고 오만하게 굴며, 심지어는 덕비를 원망하는 마음까지 품었다. 그날 그녀에게 경고를 주었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덕비는 후궁을 총괄하는 인물이었다. 때문에 그녀와 수빈이 배치한 사람들이 후궁 곳곳에 퍼져 있었으니, 복소의의 태아를 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덕비가 직접 손을 썼을 가능성은 낮았다. 만약 덕비가 아이를 해하려 했더라면 애초에 복소의를 보호해주지 않았을 것이었다. 게다가 덕비가 이황자를 데리고 자주 드나든 것도 반은 아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반은 복소의의 태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었다.복소의가 황제에게 덕비를 험담했던 것은 반드시 덕비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었다. 덕비가 이후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그녀가 복소의에게 손을 떼자, 마음 속에 꿍꿍이가 있던 자들이 움직이기 훨씬 쉬워졌다.그가 실망한 이유는 복소의의 태아를 잃은 것 때문이 아니었으며, 그가 바라지 않았던 후계 경쟁이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는 점이었다.그는 이 일을 벌인 자가 누구인지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황후이거나 수빈 둘 중 하나일 것
혜의궁에서는 삼황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삼공주는 그의 젖은 머리카락을 닦아주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어제 막 머리를 감았는데, 굳이 그 고양이랑 놀겠다고 해서 온 머리와 얼굴이 털투성이가 되었잖아. 다음번에도 이러면 엉덩이를 때려줄 거야."도자기처럼 매끄러운 분홍빛 살결의 귀여운 아이가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공주의 품에 기댔다."누이, 고양이는 재미있고 귀여워요. 작은 발로 내 몸을 밟고 지나갈 때면, 포근해서 기분이 좋아요. 안고 있으면 따뜻하기도 하고요."그러자 삼공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어마마마께서 그러셨잖아. 아바마마께서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그런데 넌 자꾸 아바마마께 고양이 이야기를 해서…… 그러니 요즘 아바마마께서 널 찾지 않으시는 거야."삼황자는 누이가 머리를 말려주는 대로 꼿꼿이 앉아 있으면서도 입을 다물지 않았다."아바마마와 나는 다른 사람이잖요. 당연히 각자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도 있는 거지요. 아바마마께서 싫어한다고 해서 나까지 싫어해야 해요? 내가 고양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니, 아바마마께서 아무리 싫어하셔도 나한테 버리라고 하시면 안 되는 거죠."삼공주는 그의 코끝을 톡 하고 건드리며 말했다."말은 참 잘하네."삼황자는 웃으며 말했다."누이가 나를 설득 수 없는 건 누이의 말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에요. 황숙께서 그러셨는데, 이치에 맞게 말을 한다면 그 누구도 이길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그래? 그런데 요즘 왜 황숙께 무예를 배우러 가지 않는 거야?"삼황자는 고개를 기울였다."무예라 해도 기본적인 것만 가르쳐 주시니까요. 그런 건 궁에서도 연습할 수 있어서 이미 다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말 타기는… 아직 말 위에 혼자 올라갈 수가 없으니까 좀 더 자라서 다리가 길어지면 그때 배울거에요.""다 할 수 있다고? 못 믿겠는데." 삼공주가 말했다."정말 할 수 있다니까요!"삼황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황숙께서 며칠 동안 같은 걸 반복해
복소의는 춘당의 입가에 스친 조소를 알아채지 못했다.춘당은 복소의가 첩여로 승급될 때부터 곁에서 그녀를 모셔왔다. 그녀는 영리하고 침착한 성품을 지녀 복소의에게 여러 차례 계책을 내주었고, 당시 황후가 그녀를 끌어들이려 했을 때도 춘당은 이렇게 말했었다.‘황후마마께서 여러 번 금족 처분을 당하신 것으로 보아, 폐하께서 이미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후궁을 다스릴 권한도 없으시니, 황후마마께는 겉으로만 응하는 척하고 실질적으로는 덕비 마마와 수빈 마마께 가까이 다가가시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그리고 춘당의 말은 역시나 옳았다. 덕비는 늘 그녀를 잘 대해주었고, 먹고 입는 것 모두 넉넉히 챙겨주었다. 그 덕분에 더 이상 감히 그녀를 깔보는 자도 없어졌다.예전의 덕비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이유로 폐하께 가까이 가려 하는 것 같아 못마땅했다."마마께서는 덕비 마마께서 오시는 것이 싫으십니까?"춘당이 그녀의 머리와 허리를 살짝 받쳐주며 말했다. 침상에 오래도록 누워만 있어 등이 아픈 그녀를 배려한 것이었다.그녀는 춘당을 신뢰했기에 자연스레 속내를 털어놓았다."내 태가 안정되었을 때는 덕비 마마께서 그리 열심히 오시지도 않으셨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자주 찾으시는 것이 진심이겠느냐? 분명 폐하를 의식해서 오는 것일 것이다. 게다가 폐하께서 날 아끼시기에 자주 찾아와 주시는 것인데, 매번 덕비 마마와 이황자가 끼어드는 바람에 폐하와 두세 마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지 않느냐."춘당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하며 말했다."마마께서는 그저 몸을 잘 돌보시면 됩니다. 그 외의 일은 신경 쓰지 마세요."복소의는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밤낮으로 누워만 있어야 하다니…… 폐하께서 오실 때만 겨우 앉을 수 있구나. 이 아이는 나를 참 힘들게 한다. 부디 황자가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지. 내가 이 고생을 한 보람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춘당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반드시 마마께서 바라시는
복소의의 태는 안정적이었기에, 태의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겨울이 지나면서 태가 점점 불안정해져, 두 번의 출혈을 경험했다. 금태의는 그녀의 태를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침상에 누워 있어야 했기에 바닥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태의는 신중히 식단과 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점검했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아마 황제가 장기간 약을 복용한 탓에 태아가 불안정해진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의 태에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가 침상에서 요양을 시작한 후 거의 이틀에 한 번씩 그녀를 보러 갔으며, 가끔은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는 수빈의 궁에 자주 가지 않았고, 삼황자를 어서방에 불러 들이지도 않았다.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이황자와 함께 복소의를 보러 갔고, 이로 인해 황제와 함께 몇 번의 식사를 함께했다.복소의는 첩여 시절 후궁에서 자신이 의지할 사람을 찾으려 했고, 비밀리에 수빈과 덕비에게 아첨하며 양쪽을 오갔다. 하지만 수빈은 늘 거만하게 행동했으며, 그녀가 한때 황제의 총애를 얻었기도 했기에, 복소의는 수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반면 덕비는 후궁에서 유명한 온화하고 자애로운 인물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며 위치가 낮은 여인들까지 보살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복소의는 점차 덕비에게 더 접근했지만 지금은 조금 고심했다. 황제가 그녀에게 올 때, 덕비가 여러 번 이황자를 데리고 왔고, 그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수빈의 성격에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오히려 수빈의 도도함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국 불만을 마음속으로에만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이 있기에 그녀를 적대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날들이 지속되자, 그녀는 덕비가 오지 않
후궁에서는 황제의 병에 대해 추측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금 복소의가 임신을 했다고는 하지만,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은 황제의 몸이 단순히 요양을 하면 괜찮아질 상태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제의 편애가 계속될수록 몇몇 사람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특히 황후는 더욱 불안해했다. 그녀는 황제의 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지금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지만 치료의 효과는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녀는 황제가 심각한 상태라고 여겼다. 황후는 복소의의 임신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의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설령 황자가 태어난다고 해도 그에게 까지 순서가 올 리 없었다. 그러나 삼황자에게 집중된 황제의 편애는 그녀에게 위기의식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황제는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었을 때 그녀는 황후 자리를 선택하며 생명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며칠의 시간을 보내자, 황후는 황제가 대황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요즘 대황자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태부와 황숙도 그를 칭찬하고 있었다. 황제도 대황자의 그러한 모습에 매우 만족해 한다고 전해 들었다.이황자와 삼황자는 그녀에게 모두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황후는 황제가 이황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최근 몇 달 동안 그녀는 거의 이황자를 본 적이 없었고, 또한 이황자가 이제는 예전처럼 열정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는 강력한 뒷배경이 없는 덕비가 여전히 유력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수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빈의 아버지는 형부상서이며, 사여묵과 같은 공문이었다. 공무의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접촉이 분명 많았을 것이고, 수빈의 어머니인 이씨 부인은 송석석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방에 많은 돈을 기부했다. 어쩌면 이미 그녀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마마, 오늘 대황자께서 또 왕야의 칭찬을 받으셨습니다.”란주 상궁이 들어오며 웃으며 말했다.황후는 별다른 감정을 보이
숙청제는 신하들을 어서방에 불러들였고, 그들은 밤늦게까지 논의했다. 논의는 결국 단신의가 들어가서 시간이 많이 늦었음을 알리며 중단을 요청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숙청제는 팔을 뻗고 웃으면서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니. 그럼 궁문도 이제 잠가야겠으니 다들 돌아가시게.”그는 여전히 기운이 넘쳤고, 특히 지금은 얼굴에 혈색이 돌아 병든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송석석은 논의 중이던 사여묵을 기다렸다. 그들은 함께 궁을 떠나 황실로 돌아갔다. 매우 피곤했던 그녀는 사여묵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마차가 황실 문 앞에 도착하자 사여묵은 그녀를 안아 들었다. 송석석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내려오기 귀찮았기에 그대로 안겨 있었다. 그의 넓고 따뜻한 품은 정말 편안했다.그와 떨어져 있던 세 달 동안 그녀는 성릉관에서만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으며, 그 외의 곳에서는 늘 경계하며 지냈다. 이제 집에 돌아오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렸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안함을 느꼈다. 무언가 뜨겁고 큰 손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단 백부 말씀을 잊으셨나요?”귓가에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백부가 이제 괜찮다고 말씀하셨소.”송석석은 감고있던 눈을 떠, 뜨겁고 열정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정말인가요?”“틀림 없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술이 덮였다.불꽃이 강렬하게 타올왔다. 침실의 온도마저 높아진 듯 했다.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기에 마치 새롭게 결혼한 듯한 기분이었다!한 달 후, 상국은 시박사를 설립할 예정이었다. 이는 상국과 해외 북당과의 화물 교류를 담당할 기관이었다.원래의 시역업도 시박사의 운영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상국에서 다른 국가에 판매할 수 있는 화물 목록을 정리하여 서경으로 사신을 파견해 화물 교환 협정을 체결할 것이다.이 한 달 동안 단신의는 약을
10월 15일, 사절단은 드디어 진성에 도착했다.현갑군은 그 자리에서 먼저 해산했고, 이덕회와 홍려사경은 궁에 들어가 황제를 뵈러 갔다. 그동안 몸이 약해져 혼자서는 거동할 수 없었던 진왕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도 궁에 가겠다고 말했다.송석석은 이미 성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여묵에게 인도되어 황실로 돌아갔다.그동안 사여묵은 매일같이 성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고, 때로는 낮잠시간에 직접 가서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이 되어서야, 드디어 기다리던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이덕회와 그들이 궁에서 황제에게 보고할 때, 송석석은 이미 태비께 인사를 드린 후였다.혜 태비는 송석석이 피곤해 보이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했다.송석석은 사여묵과 함께 나와서 매화원으로 돌아갔다.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송석석의 입술이 어쩐지 조금 부풀어 있었다. 서주는 깜짝 놀라 왕야를 바라보았다. 왕비가 목욕하는데 왕야께서 꼭 직접 모셔야 한다며 들어가더니, 보아하니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서방에서는 염선생과 심청화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송석석은 그들에게 서경에서의 일들을 말해주었다. 협상 결과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었기에, 송석석은 길에서 일어난 암살 시도, 원신제의 곤경, 그리고 북당의 안풍친왕이 말한 3년과 5년의 기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사여묵은 두려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었는데, 서경이 그렇게 혼란스러웠음에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다행이라 여겼다.안풍친왕이 성릉관을 자유롭게 오고 간 것과 그가 말한 3년, 5년 기한에 대해서, 심청화는 사부에게 편지를 보내면 알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사부는 그들을 잘 알기 때문에 그 말의 숨은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이야기를 마친 후, 사여묵은 송석석이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 송석석에게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게 그들을 막았다. 그는 오후에 휴가를 내어 일을 쉬려고 했지만, 황제가 사람을 보내 궁에 오라고 일렀다.송석석
성릉관에서 다섯 날을 지낸 진왕은 어느 정도 몸이 회복이 되었다.그가 회복되었다는 것은 이제 다시 진성으로 향해야 함을 의미했다.이별은 너무나 아쉬웠지만, 송석석은 눈물을 삼키며 그저 작별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소 대장군 앞에서 여러 번 절을 했는데, 그로 인해 소 대장군도 눈물이 거의 터져 나올 뻔했다.이덕회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소 대장군이었다. 소 대장군은 상국을 위해 수십 년 동안 성릉관을 지킨 노장이었기 때문이다.송석석은 눈물을 삼켰지만, 그는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 평생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노령에 접어든 듯,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노쇠해 보였다. 설령 황제가 그를 진성으로 돌아가게 허락한다 할지라도, 긴 여정과 고된 일정을 고려했을 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를 돌아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다.소 대장군은 이덕회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그러자 이덕회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외숙모 남씨는 회 왕비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었다가 이별을 앞두고서야 송석석을 옆으로 데려와 그녀의 상황을 물었다.송석석은 회 왕비가 지금 감옥에 있다는 사실과 란이가 그녀를 위해 손을 써주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힘든 상황은 아닐 거라며, 혹시 태자가 세워지면 대사면이 내려져 그녀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남씨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외조부께서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엄청 신경 쓰고 계실 거다. 세상에 정말로 모진 부모는 드무니까. 네 외조부는 모진 분이 아니시다. 그때 그녀가 란이에게 그렇게 까지 모질게 대했던 게 안타깝다. 란이가 여전히 그녀를 돌보아야 하다니."송석석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란이는 지금 편안하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더 잘 지낼 거예요.""그렇지. 분명히 잘 지낼 거야." 남씨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송석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