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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13화

작가: 유애
수빈이 궁을 옮기자, 각 궁에서 선물을 보내왔고, 황족과 왕족들도 이 소식을 듣고 몇 번이고

선물을 보냈다.

어떤 것을 보낼지에 대해서 다른 저택은 모두 주모가 결정을 내리는 반면, 북명황실에서는 염선생과 노 집사가 결정권을 가졌다.

두 사람은 창고에서 선물로 줄만할 것을 이것저것 찾았지만, 적당한 것을 찾지 못했다. 값비싼 금은보화 같은 보석들을 주기에도 그렇고, 금과 옥으로 된 은병을 주기에도 너무 인색해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한, 산호수나 병풍 같은 비교적 큰 물건들은 염선생이 잘 내놓지 않으려 했다. 산호수는 보기 드문 것이라, 황실에 있는 한 그루도 왕비의 혼례 때 만종문에서 선물한 것이었다.

결국 그들은 창고에 가장 많은 물건을 눈여겨보았다. 그것은 바로 심청화 선생의 매화 그림이었다.

이것은 내놓으면 매우 품격 있는 선물이 될 것이었고 값도 꽤 비쌌다. 그러나 황실에는 이런 그림이 많았다. 만약 부족하다면 곧 눈도 내리기 시작할 터이니, 매화도 피기 시작할 것이다.

심선생에게 다시 그려 달라고 부탁하면 되지만 그들은 심선생을 존중하여 먼저 허락을 구했고, 그는 아무런 이의 없이 허락하였다.

사실 이 매화 그림은 이미 너무 많이, 심지어는 여러 해동안 그려왔기 때문에 근육이 다 기억할

정도였다. 종이를 펼치고 붓과 먹이 손에 있기만 하다면 한두 시간 내에 끝낼 수 있는 일이었다.

송석석은 저녁에 돌아와 이 광경을 목격했다. 심선생의 그림을 보내야 한다니 마음이 조금 아쉬웠지만, 다행히도 그것이 수빈에게 보내는 것이었으니 괜찮았다. 어쨌든 궁 안에 남아 있을 것이므로 쉽게 팔려 나갈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수빈도 아마 묵보를 아끼는 사람일 터이니, 보내야 한다면 보내면 되었다.

그녀는 선물을 가져다주러 직접 궁으로 갔다. 혜의궁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 기회를 이용해 궁에 들어가려는 내외의 명부들이 전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송석석도 잠시 기다렸다. 누군가 그녀가 왔다는 소식을 들어가서 알린 듯, 수빈은 송석석의 업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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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혜의궁의 정원이 크지는 않았지만 어화원과 비교하면 결코 비교할 수 없는 크기였다.만약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꽃을 감상하거나, 잠시 잠깐 서서 꽃을 감상하려 한다면 반 시진 정도는 걸릴 것이었다. 하지만, 송석석은 빠르게 걷는 것이 익숙했기에 꽃들을 한 번 훑어보고는 바로 지나쳤다. 그녀에게는 큰 차이 없게 느껴졌다. 그녀는 이전에 온 산에 가득 피어 있는 갖가지의 꽃들을 본 적이 있었다. 서리를 맞은 차가운 매화꽃, 높은 산의 진달래, 3월에 피는 아름답고 화려한 복숭아꽃, 끝이 보이지 않는 각색의 동백꽃 등… 모두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만한 경이로운 장관이었다.그런데 지금 이곳에서 화분에 정성스럽게 키운 모란을 보고 있자니 그다지 큰 흥미가 생기지 않은 것이었다.한 바퀴 돌고 나니 몇몇은 차 한 잔도 다 마시지 못했고, 첩여 동씨가 막 공방 이야기를 꺼낼 때쯤 그들은 이미 혜의궁의 정전에 도착했다.첩여 동씨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그럼 들어가서 수빈 마마께 축하를 올립시다."그러자 송석석이 말했다."저는 일이 있어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아, 왕비님!" 첩여 동씨가 급하게 그녀를 불러 세우자, 송석석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소주께서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그러자 첩여 동씨가 웃으며 말했다."아무 일도 없어요. 다만, 세상 모든 여성을 대신해 왕비께 감사드리고 싶었어요. 왕비 마마는 넓은 마음을 가지시고,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어려운 백성들을 염려하시니, 비첩들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송석석은 그 말에 다소 당황스럽고 의아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백성들을 염려한다니? 자신은 그렇게까지 위대한 인물이 아니었다.게다가 부끄러우면 스스로만 부끄럽다 하면 됐지, 왜 굳이 비첩들이라고 말한 것일까? 이 말은 대체 누구를 의미하는 것이지? 그 자리에 있던 다른 후궁들한테 하는 말인가?그리고 정말로 세상의 여성을 대신해 감사하겠다는 뜻일까, 아니면 자신을 불쾌하게 만들려는 의도일까? 이는 칭찬하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13화

    수빈이 궁을 옮기자, 각 궁에서 선물을 보내왔고, 황족과 왕족들도 이 소식을 듣고 몇 번이고선물을 보냈다. 어떤 것을 보낼지에 대해서 다른 저택은 모두 주모가 결정을 내리는 반면, 북명황실에서는 염선생과 노 집사가 결정권을 가졌다.두 사람은 창고에서 선물로 줄만할 것을 이것저것 찾았지만, 적당한 것을 찾지 못했다. 값비싼 금은보화 같은 보석들을 주기에도 그렇고, 금과 옥으로 된 은병을 주기에도 너무 인색해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또한, 산호수나 병풍 같은 비교적 큰 물건들은 염선생이 잘 내놓지 않으려 했다. 산호수는 보기 드문 것이라, 황실에 있는 한 그루도 왕비의 혼례 때 만종문에서 선물한 것이었다.결국 그들은 창고에 가장 많은 물건을 눈여겨보았다. 그것은 바로 심청화 선생의 매화 그림이었다.이것은 내놓으면 매우 품격 있는 선물이 될 것이었고 값도 꽤 비쌌다. 그러나 황실에는 이런 그림이 많았다. 만약 부족하다면 곧 눈도 내리기 시작할 터이니, 매화도 피기 시작할 것이다. 심선생에게 다시 그려 달라고 부탁하면 되지만 그들은 심선생을 존중하여 먼저 허락을 구했고, 그는 아무런 이의 없이 허락하였다. 사실 이 매화 그림은 이미 너무 많이, 심지어는 여러 해동안 그려왔기 때문에 근육이 다 기억할정도였다. 종이를 펼치고 붓과 먹이 손에 있기만 하다면 한두 시간 내에 끝낼 수 있는 일이었다.송석석은 저녁에 돌아와 이 광경을 목격했다. 심선생의 그림을 보내야 한다니 마음이 조금 아쉬웠지만, 다행히도 그것이 수빈에게 보내는 것이었으니 괜찮았다. 어쨌든 궁 안에 남아 있을 것이므로 쉽게 팔려 나갈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수빈도 아마 묵보를 아끼는 사람일 터이니, 보내야 한다면 보내면 되었다.그녀는 선물을 가져다주러 직접 궁으로 갔다. 혜의궁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 기회를 이용해 궁에 들어가려는 내외의 명부들이 전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송석석도 잠시 기다렸다. 누군가 그녀가 왔다는 소식을 들어가서 알린 듯, 수빈은 송석석의 업무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12화

    후비들 중에서 제 황후가 가장 꺼리는 사람은 덕비와 수빈이었다.덕비와 수빈은 각각 이황자와 삼황자의 어머니였다.사실 수빈의 삼황자는 친자가 아니고 나이도 어리기에 그녀가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수빈은 본래 성격이 거칠고 가문이 뛰어나며 권력을 휘두를 줄 아는 사람이었다.그러나 최근 일년 동안 수빈은 덕비와 함께 후궁의 일을 관리하며 성격도 많이 수그러들었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법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녀는 송석석의 공방과 여학을 지원하며 민간에서도 명성을 얻고 있었다.반면 덕비는 훨씬 더 조용히 지냈다. 수빈과 후궁의 일을 관리하며 간혹 그녀의 의견을 묻기도 했고, 정말로 그녀를 황후로서 존중하며 대해주었다.하지만 덕비의 이황자는 총명하고 예의가 발랐고, 심지어는 태후와 황제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만약 지금 태자를 책봉한다면 당연히 적장자가 되겠지만, 황자들이 다 자라나면 누군가가 그 중 뛰어난 자를 태자로 삼자는 제안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 대황자에게 강적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지금 덕비와 수빈 두 사람은 후궁의 일을 함께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아들들은 자연히 더 높은 대우를 받고 있었다.황후가 대황자를 데려와 키우기로 결심한 이유에는 단순히 앞서 말한 것뿐만이 아니라 하나의 이유가 더 있었다. 제씨 가문이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오히려 그녀의 발목을 잡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기면 황후의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는 것이었다.그러나 대황자가 황후의 곁에서 자라면 황제는 반드시 황후를 신경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그렇기에 황후는 이 말을 더더욱 감히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몹시 떨린 탓에, 밤새 뒤척이느라 한 숨도 자지못했다. 그렇게 다음 날, 황제가 혜의궁을 수빈에게 주어 살게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혜의궁은 당시 혜안태후가 황후가 되기 전에 살던 곳이었는데,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했다. 궁 앞에는 연못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안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11화

    한편, 황후는 장춘궁에서 비녀와 귀걸이도 풀지 않고 얼굴의 화장도 지우지 않은 채,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오늘 어전에서 일찍부터 황제가 오늘 밤 후궁에 오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녀는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황제께서 아직 간택하지 않으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속으로 기뻐했다. 간택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이곳에 오시겠다는 의미였다."란주, 폐하가 오셨는지 한 번 확인해보거라." 그녀는 다시 한 번 재촉했다. 오늘 밤만 벌써 세 번째 재촉이었다.란주 상궁은 옆에서 시중을 들며 웃으며 말했다.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황제께서 오실 때는 반드시 사람을 먼저 보내 맞이할 준비를 하시라 알리실 겁니다.""그치, 그랬었지. 황제께서 너무 오랫동안 장춘궁에 오시지 않으셔서 벌써 다 잊어버렸지 뭐냐." 황후는 머리를 쓸어내며 어여쁜 미소를 지었다."본궁과 황제는 결국 부부인데, 부부 사이에 원한이 어찌 그리 오래 있을 수 있겠는가? 이제 대황자도 많이 성장했으니 황제도 마음이 부드러워지셨을 테지."“황제께서 오시면 잘 말씀드리십시오. 너무 급하게 대황자를 데려오겠다고 말하지 마시고요."란주 상궁이 당부하자, 황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다. 오늘 밤에는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겠지만, 어쨌든 그 아이를 하루빨리 돌아오게 해야 한다. 이제 대황자도 태부가 칭찬할 만큼 잘 하고 있으니, 더 이상 지안궁에 둘 필요가 없지. 대황자는 돌아와도 똑같이 잘 배울 수 있어. 만약 계속 지안궁에 둔다면 어쩌면 대황자가 어미인 나를 잊고 말 테야."란주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사실 대황자께서 이제 말을 더 잘 듣고, 더 좋아지셨습니다. 지안궁에서 계속 지내게 하면 어떨까요? 황제께서 황후의 금지령을 풀어주시기만 하면 언제든지 대황자를 보러 갈 수 있고, 대황자도 효심이 깊으니 결코 황후를 잊지 않을 겁니다."황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슬픔으로 가득찬 눈빛으로 말했다. "효심은 깊지만 아직 어리다. 그러니 누군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10화

    궁 안의 어서방에서는 지열이 아직 따뜻해지지 않은 탓에 차가운 기운이 서서히 스며들었다.비록 조서 처리는 이미 끝났으나, 숙청제는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그는 그저 눈앞의 어두운 불빛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그는 방금 전, 사여묵이 송석석에게 보낸 편지를 읽었었다. 그 편지에는 다할 수 없는 그리움과 속마음이 담겨 있었는데, 마치 처음 혼인한 신혼처럼 달콤하고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사실 그들의 편지를 이번에 처음 본 것이 아니었다. 예전에도 그리움이 담긴 편지를 읽었었지만, 이번처럼 이렇게 자유롭고 거침없는 내용은 아니었다.이런 내용은 입으로도 말하기 민망한데, 글로 쓴다는 건 더 민망하지 않겠는가?그는 황제의 동생이 이런 짓을 하다니 실로 부적절하고 경솔하다고 생각했다.여자들 달래는 방법은 많은데 왜 하필 이렇게 해야 했을까?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 속에 작은 돌이 떨어진 듯,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그 물결은 점점 커져만 갔고, 아무리 애써도 가라앉히지 않았다. 그가 황제가 된 후,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남녀 간의 정은 감히 생각할 수조차 없다. 마음이 흔들린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는 그저 한순간일 뿐, 결국은 사라질 감정이라고 여겼다.그는 송석석에게도 마음이 흔들린 적이 있었다.당당하고 뛰어난 여성인데, 어느 누구나 마음이 뺏기지 않겠는가?하지만 흔들린 마음도 결국 정치적 도구가 되었다. 송석석을 자신의 동생에게 시집보내면 그의 병권을 해제할 수 있다는 마음에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다. 이처럼 숙청제의 감정은 언제나 희생되어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데 사용 되엇다.“폐하, 오늘 밤은 어느 궁녀의 궁에 가시겠습니까?”오대반이 그가 조서를 다 처리한 후 한참 말없이 앉아 있는 것을 보자,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러자 숙청제가 시선을 돌려 서서히 초점을 맞추며 물었다. “최근 황후의 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오대반이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09화

    소부는 입성할 때 열 명 남짓한 사람만을 데리고 왔다. 그들은 모두 강건하고 체격이 건장했으며, 허리에 굽은 칼을 차고 있어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술과 고기를 먹기 시작하자, 그들의 검은 얼굴에는 어느새 화려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비록 군주 소부는 쉰이 넘었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피부가 거무스름하며 광이 났고, 눈은 매우 총명하고 밝아 보였다. 또한, 그는 특별히 지혜롭고 치밀한 사람으로,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는 북명왕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았다.그의 요구는 단 하나 뿐이었다. 이번 한 번만 협력하고, 사국을 물리친 후에는 즉시 초원을 떠나야 하며 허락이 떨어지지 않으면 초원의 핵심 지역에 다시는 발을 들여놓지 말라는 것이다. 사여묵은 그의 요구를 수락하고 즉시 협정을 체결했다. 협정 체결이 되자마자, 그들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떠났다.초원 부락은 상국에 대해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해마다 전쟁이 일어나 초원이 피해를 입곤 했기 때문이다. 초원에는 여러 부락이 있지만 하나로 뭉치지 못했다. 그래서 이들은 상국이나 사국에 대항할 수 없었다.방천허는 그들을 성 밖으로 호송한 후, 곧바로 수부로 돌아가 이번 추격전을 어떻게 준비할지 논의했다.초원 부락이 땅을 빌려준다면 그들은 종심까지 추격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추격전은 성을 방어하는 전투와 달랐다. 후방 지원, 식량, 활과 무기, 그리고 군의와 치료약, 들것 등 하나도 빠짐없이 준비해야 했다. 군대가 나갔을 때 겨울의 혹독한 추위와 싸워야 하는 위험도 따랐다. 하지만 이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그 효과는 클 것이었다. 최소한 10년에서 8년간 사국은 다시는 함부로 침범하지 못할 터였다.모든 장수들이 밤새 논의한 끝에 기본 전략이 세워져, 군령을 내렸다. 당연히 황제에게도 급보를 보냈다. 급보에는 매번처럼 송석석에게 보낼 편지도 함께 끼워 넣었다. 외지에 있는 동안, 아무리 부부 사이라도 어전에서는 비밀이 없으니 불필요한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08화

    시끌벅적한 혼례를 마친 후 황실로 돌아온 송석석은 매화원이 유난히 고요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사제가 생각났지만, 사제는 저 멀리 남강에 있다. 비록 헤어진 날들을 세진 않았지만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예전처럼 왕경루에 나가 사부도 찾고 싶었으나, 그가 이미 매산으로 돌아갔음이 기억났다. 마음속에 서서히 허전함이 몰려왔다.그러다가 또 아까 봤던 안여옥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본래 여자가 혼인할 때 이렇게 기뻐하고 기대하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넘쳐나는구나. 그 행복감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니…...’송석석은 두번의 혼인 모두 평화롭게 진행했다. 그때, 보주가 송석석의 화장을 지워준 뒤 목욕물을 준비하려 하자, 송석석이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앉히고 말했다. "보주, 예전에 네 혼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지? 혹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는 것이냐?"보주는 송석석을 한 번 보더니 능청스럽게 말했다. "아씨, 혼례 때 먹었던 음식과 술이 입에 맞으셨나 봅니다. 또 드시고 싶으신가요?"송석석은 웃으며 답했다. "내가 그렇게 먹는 걸 좋아하는 것 같으냐? 다 너 좋으라고 하는 말이다. 계속 이렇게 있으면 나중에 늙은 처녀가 되고 말 테니깐. 만자에게 영향을 받아서 혼인을 안 하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그러자 보주가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요. 저는 혼인할 거예요. 그러나 혼인한 후에도 아씨 곁에 있을 거예요."송석석은 보주의 코끝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혼인하고 나서도 남편이 아닌 내 곁에 남겠다는 거야?"보주는 눈물이 글썽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씨, 저에게는 아씨 외에 아무도 없어요. 아씨가 어디에 있든지 저는 그곳에 있을 거예요. 괜찮은 하인이나 호위가 있다면, 다른 건 상관없어요. 인품이 좋고 황실에 충성하기만 하다면 혼인할 거예요."말을 마친 후 보주는 눈물을 흘렸다.송석석은 손을 내밀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다정하게 말했다. "아니야. 가장 중요한 건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해. 오늘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07화

    방시원과 안여옥의 혼사는 계속 미뤄지다가 결국 좋은 날을 잡아 혼례를 올렸다. 혼례가 비록 떠들썩하지는 않았지만, 태부의 손녀를 시집보내는 일이었으니 필요한 체면만큼은 갖추어져 있었다. 태후가 먼저 앞장서자, 후궁들도 차례차례 상을 내려 안여옥의 혼수품을 준비해주었다.아군여학의 학생들도 동참하여 안여옥에게 손수 만든 신혼 선물들을 보냈다. 여학의 학생들은 대부분 평민 가정의 아이들이었기에 비록 비싼 것은 없었지만, 손수 수놓고 만든 것들이라 특히 소중하게 느껴졌다.안여옥의 혼수는 일찍이 공방의 모 낭자에게 맡겼다. 그 혼례복은 공방의 자수점에서 전시된 적이 있었다. 그때 혼례를 앞둔 많은 처녀들이 그것을 보고 마음을 빼앗겼고, 자신도 그렇게 아름다운 혼례복을 입고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시집가기를 꿈꿨다.모 낭자는 본래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제 태부의 손녀도 그녀가 만든 혼례복을 입었으니, 그 누가 여전히 그녀의 과거를 떠올리며 재수없다고 생각하겠는가? 이때부터 공방의 자수점은 사람들로 가득찼다. 자수점에는 혼례복을 만드는 사람도, 일상복을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혼례 당일, 송석석은 시만자와 함께 방씨 가문에 가서 혼례 연회를 즐겼다.방씨 가문에는 형제가 많은 데다가 방시원이 무장이라 그런지,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신혼방을 어지럽히겠다고 말하며 놀려댔다. 그리고 다들 신부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고 싶어 하였는데, 예상과 달리 신부는 당당하고 여유롭게 나서서 말했다. "신혼방을 어지럽히는 것은 좋지만, 먼저 시를 지어야 합니다. 혼례를 통해 인연을 맺는 것을 주제로 시를 한 편 지으면 홍봉을 받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신혼방 정원에서 권법과 검술을 선보여야 합니다."그렇게 방시원과 안여옥은 처마에 앉아 여러 차례의 권법과 검술을 감상했고, 홍봉은 나가지 않았다.그렇게 신혼방을 어지럽히는 대신 신혼부부가 손님들에게 장난을 치기 시작했는데, 이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태부부에서 태부 손녀의 혼례를 축하하는 손님들 중 대부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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