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약 열흘 동안 지속된 이러한 상황에 대해, 송석석은 염 선생과 큰 사형을 찾아가 의논하기도 해보았지만, 뚜렷한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처음에는 숙청제가 만종문에 대해 알아내려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왜냐하면 이번 전쟁에서 사부님이 육안통과 홍의대포를 개량한 것 외에도 무림의 많은 문파들로 하여금 경사를 보위하는 전투에 참여하게 했기 때문이다. 의심이 많은 숙청제였지만, 아주 가능성이 없는 일도 아니었다.매산의 그 일로 인해 사부님에 대한 이야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고 오히려 흥미를 돋울 만한 소소한 이야기에만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요 며칠은 그녀가 매산에서 말썽을 부려 사부님께 수도 없이 야단 맞았다는 일화에 배를 부여잡으며 무척 즐거워하기도 했다.송석석은 배꼽 빠져라 웃고 있는 숙청제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고를 치고 돌아오면 사부님께 꾸지람을 듣는 것은 기본, 심지어는 외출 금지령이 떨어지고, 물항아리 들고 온종일 서 있게 하고, 손바닥을 맞는가 하면, 철못 위에서 무릎 꿇거나, 게다가 엉덩이 아래에 향 자루를 놓고 한 시간 동안 말 자세를 유지하다 바지가 타서 구멍이 나는 일은 흔한 일이 다반사였다.전에 장난기가 심했던 대황자가 장난을 쳤을 때 그가 크게 화를 낸 적이 있었기에 송석석은 황제가 이런 이야기를 재미없어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의외로 점점 빠져들더니 심지어 매산에서는 소똥 폭발시키기 같은 것들은 하지 않았는지 묻기까지 했다. 그는 그게 가장 재밌지 않냐며 한술 더 떴다. 그 말에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송석석이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런 일도 있었습니다만, 폐하께서는 왜 그게 재미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설마 직접 해보신 건 아니겠지요?” 그러자 숙청제가 웃으며 말했다. “네 오라버니에게 끌려다니며 놀았었지. 그런데 네 오라버니는 달리기가 너무 느려서 항상 온몸이 엉망진창이 되곤 했느니라.” ‘오라버니가 느린 게 아니라 폐하께서 느리셨겠지요. 오라버니는 폐하를 보호하느라 그런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솔직한 속내를 드러낼 수 없어 감사만 표한 뒤 바로 자리를 떠났다. 그 뒤로도 숙청제는 매번 정사를 마치고 나서 그녀를 불러 한담을 나누곤 하였으며, 때로는 반 시진, 때로는 한 시진을 넘기곤 했다. 그렇게 결국 송석석도 천천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신하로서, 그녀에게 믿음직한 벗인 척이라도 하라 하신다면 그 역할 역시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허나, 황제에게 꼭 필요한 낮잠을 취해야 할 한 시진이 허투루 한담으로 소모되는 것은 분명 낭비였다. 이 기간 동안, 덕비는 몇 차례 탕약을 보내왔고, 수빈과 공비도 몇 번씩 다녀갔다. 심지어는 첩여 동씨까지도 몇 번 들렀다. 후비들은 어서방에 들 수 없기에, 탕약을 직접 들고 오더라도 오대반에게 맡겨야 했기에, 그를 안으로 들이는 식이였다. 다만 황자나 공주를 동반할 경우라면 어서방에 잠시 들 수 있었다. 그렇게 송석석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았던지라, 보내온 탕약에는 그녀의 몫도 늘 포함되었다. 송석석은 가끔 탕약을 마시며 속으로 생각했다. 만약 누군가 황제를 해하려고 탕약에 독을 탄다면, 자신 또한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말이다. 오늘은 덕비가 이황자와 함께 왔고 숙청제는 이들 모자를 어서방으로 들게 하였다. 송석석은 어서방에서 덕비와 자주 마주쳤다. 그녀에 대한 인상은 원래부터 나쁘지 않았다. 이황자는 어린 나이에도 예의 바르고 겸손하여, 이는 덕비의 훌륭한 가르침 덕분이었다. 숙청제 또한 이황자를 특히나 아끼는 듯 보였다. 그의 얼굴에 띤 진심 어린 웃음이 그 증거였다.덕비는 환하게 웃으며 궁인더러 탕약을 올리게 했다. 2인분으로 나뉘어진 탕약 중 하나는 송석석의 것이었다.덕비가 온화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틀 전 왕비님께서 기침을 하신다 들어 오늘 아침 일찍 주방에 천패, 비파, 설합을 달이게 하였습니다. 폐를 윤택하게 하여 건조함을 없애 기침을 멈추는 효능이 있사옵니다." 송석석이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을 표했다. "정말 고생하셨
송석석이 물러나자마자, 숙청제의 미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탕을 두어 모금 들이킨 후, 덕비와 이황자를 돌려보냈다. 덕비도 아무 말 없이 사람을 시켜 물건을 정리하게 한 후, 이황자의 손을 잡고 물러났다. 그러자 오대반이 문을 닫으며 말했다. "폐하, 의정까지 아직 시간이 있사오니, 반 시진만이라도 쉬시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숙청제는 평소라면 정오에 잠시 쉬곤 하였으나, 송석석을 불러들이기 시작한 후로는 낮잠을 잊고 지내고 있었다. 숙청제가 태양혈을 문지르며 말했다. "좋다, 나도 지금 머리가 좀 아프구나." "그럼, 태의를 불러 맥을 짚어보시는 것은 어떠하옵니까?" "그럴 필요 없다. 태의원 녀석들은 쓸모가 없다. 두통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서 약만 잔뜩 먹이더구나." 숙청제는 내실로 들어가 옷을 입은 채로 몸을 뉘었으나, 두통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 오대반이 이불을 덮어 드리자, 숙청제는 갑자기 눈을 뜨고 멍한 눈빛으로 말했다. "내가 요즘 왜 이런다고 생각하느냐?" 오대반이 위로했다. "폐하께서는 전쟁을 걱정하시어 심신이 피로하신 것이니 한동안 몸을 돌보시면 나아질 것이옵니다." 그러나 숙청제는 자신의 생각에 잠겨 있는 듯했다. "석석이 혹 너에게 매일 불러들이는 이유를 물었느냐?" "폐하께 아뢰옵건대, 왕비께서 이미 물으셨사옵니다." 오대반이 대답했다. "너는 어찌 대답하였느냐?" 숙청제가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자, 오 대반이 답했다."소인은 사실대로 말씀드렸사옵니다. 폐하께서 희두장군을 그리워하시어 그녀와 옛이야기를 나누려 하신다고 했사옵니다." 잠시 침묵하던 숙청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것은 사실이니라." 그는 눈을 감고 두 손으로 이마를 만졌다."혼자 있고 싶으니 나가 보거라." "예, 바로 밖에 있사오니, 필요하시면 들겠사옵니다." 오대반은 걱정 어린 눈빛으로 숙청제를 한 번 바라보고는 물러났다. 경위부로 돌아온 송석석은 어서방에서
아픈 척도 요령이 필요한 법이었다. 오늘 어서방에서 모두가 어색한 공기를 느꼈던 터라 곧바로 몸이 불편하다며 직무도 보기 어려울 정도라 집에서 요양하겠다고 하는 것은, 곧 황제와 신하 사이의 투명한 장막을 찢는 격이니, 군신 관계가 껄끄러워지며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기 십상이었다.황제와 같이 높은 자리에 있는 이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으나, 송석석 부부는 신하이기에 황제의 체면을 지나치게 무시해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결국 긴 논의 끝에 그들은 내일은 평소처럼 경위부로 복귀한 후, 병력을 이끌고 성 밖으로 나가 질서를 유지시키기로 하였다. 그리고 며칠 뒤 작은 사고를 만들기로 했다. 기승을 부리던 도적 떼로 인해 많은 백성들이 진성으로 몰려왔으나, 통과 문서가 없어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 밖에 머물러 있었다. 그 때문에 성 밖에서는 최숙심을 본받아 끼니를 배급하는 고위 문벌의 군자들과 부유한 가문도 점점 늘어났다.먹고 마실 것이 있고 병들면 약을 받을 수 있었으며 추위에는 솜이불까지 지원받았기에, 백성들은 굳이 떠날 생각까지 하지 않았다. 비록 고생스럽기는 했지만, 한겨울에 귀향길에 오르는 것보다는 더 나았다. 그리하여 성 밖은 날마다 소란이 끊이지 않았고, 에게 송석석은 특별히 순찰영의 병력을 파견해 질서를 유지하게 했다. 이 일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 후 이틀 동안 송석석은 병력을 이끌고 성 밖을 순찰하며 질서를 유지하기 시작했다.비록 난민이 많긴 했지만, 순찰영의 관리하에 질서정연하게 차례로 죽을 받아먹는 등 질서가 유지되었다. 송석석은 반나절 동안 성 밖에 머물렀고 나머지 시간에는 늘 그랬듯이 궁으로 돌아가 조정의 신하들과 군정을 논의했다. 그리고 논의가 끝난 뒤에는 모두와 함께 궁을 떠났다. 숙청제는 항상 정오에 그녀를 불러들였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돌려보내곤 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상소를 검토하며 밤늦게까지 바삐 돌아치다 내전에 돌아가 쉬었다.계획대로 송석석은 성 밖을 순찰하던 중 무언가에 놀란
아니나 다를까 얼마 안 되어, 혜태비는 분노에 찬듯 씩씩거리며 지안궁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복공공이 옆에 있음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며 말했다. "궁중에 사는 자들이 어찌 이리도 우물 안 개구리마냥 속 좁고, 가슴이 바늘구멍만 합니까! 우리 석석이는 공을 세웠기에 그 능력을 인정받아 황제께서 종종 불러들여 함께 정사를 의논하는 것인데 난데없이 남녀유별을 운운하며 어서방에 홀로 머무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둥 헛소리를 늘어놓더이다. 기가 막혀 하마터면 말문을 잃을 뻔하였습니다! 혹여 석석이 조정의 신하임을 잊은 것은 아닌지요? 석석이가 후궁의 자리를 노리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 그러자 태후가 천천히 차를 마시며 물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더냐?" 혜태비는 무섭게 눈을 부릅뜨며 화를 냈다. "처음엔 저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입을 모아 석석이를 한껏 칭찬하며, 이제는 예전과 확연히 다르다더니, 어서방에서 자주 황제를 모신다느니 하기에 한동안 기분이 좋았지요. 그런데 들으면 들을수록 이상하더이다. 괜히 소문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석석이가 감히 봉황이 되려 한다고 비꼬더이다… 아아, 화가 나 죽겠사옵니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몰래 웃고 있는 모습들이 하나같이 장터의 천한 부인들과 다를 바 없더이다!" 복공공은 차를 올리며 위로했다. "태비마마, 노여움을 푸시옵소서. 그들은 마마께서 뛰어난 며느리를 두어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옵니다."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을 호되게 꾸짖었느니라." 차를 한 모금 들이키던 혜태비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듯 말했다. "그들을 꾸짖자, 오히려 저더러 돌아가 곰곰이 생각하라더이다. 그렇지 않으면 묵이가 낙동강 오리알이 될 것이라는 가당치않은 말들을 늘어놓더이다…" 태후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차갑게 변해 있었다."누가 그리 지껄이더냐?" "제귀태비가 그랬사옵니다." 혜태비가 고자질하듯 목소리를 높이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던 태후는 담담히 차를 다 마신
그렇게 궁을 떠난 혜태비는 왕부에 들어서자마자 서우와 함께 곧장 송석석에게로 향했다. 계속 입이 근질거렸던 그녀는 송석석과 대화를 마치자마자 돌아서서는 서우가 멀어지기 바쁘게 오늘 궁에서 들은 이야기와 태후가 내린 엄벌 조치를 모두 털어놓았다. 그러자 모든 것을 전해 들은 송석석은 오히려 혜태비를 위로했다. 후궁에 갇혀 있다 싶이 하는 자들이라 너무나 한가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그녀처럼 거리를 산책하거나 연극을 보러 갈 수도 없기에 자연스레 이야기를 꾸며내며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을거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길고 지루한 나날을 어떻게 보내겠냐며 말이다.하지만 혜태비는 여전히 화가 났다."그렇다 해도 함부로 입을 놀리면 안 되는 것이니라. 게다가 듣기 거북할 정도이니 용서할 수 없느니라. 우리 묵이가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도 있다니, 이게 사람이 할 소리냔 말이다! 나이만 먹었지. 기본 예의라곤 없는 사람이니라!" 송석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 이상함을 느꼈을 때 자신이 곧장 액션을 취하지 않았음이 후회되었다. 하지만 그 탕약을 마시기 전에는 이상하다고 느꼈어도 이렇게까지 심각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고, 도리어 황제가 만종문의 일을 알아내려는 줄로만 여겼다. 지금까지도 황제가 무슨 의도로 그러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원체 생각이 많은 그인지라 생각을 꿰뚫었다는 느낌이 왔어도 크게 어긋날 때가 더욱 많았다. 비록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군정 회의에 직접 참여할 수는 없으니, 전선의 소식은 오직 사매에게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가한 나날들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이들이 문병하러 찾아왔기 때문이다.아프지 않을 때는 알 수 없던 관계망이, 병환에 있게 되니 얼마나 넓은지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저마다 선물 꾸러미와 약재를 한가득 들고 찾아왔다.모두 오래 머물지는 않는다 하였으나 날마다 많은 이들이 찾아오니 일일이 응대해야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서야 비로소
안여옥이 몸을 굽히며 작별 인사를 했다.“그럼 더 이상 방해하지 않겠사옵니다.” “살펴 가세요.” 최숙심은 미소를 띈 얼굴로 그녀를 배웅했다. 안여옥이 떠난 후, 최숙심이 왕청여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는 또 다시 후회를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이미 지난 일을 되새긴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서 들어가시지요.” 왕청여가 송석석을 문병하러 온 것은 큰 용기를 낸 것이었다. 그녀는 송석석에게 사과와 감사를 동시에 전해야 했기에, 오늘은 그저 형수님들을 따라온 척했지만, 사실은 과거의 모든 일을 마주하기 위해 찾아왔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송석석을 마주할 용기는 냈지만, 안여옥을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쳤다. 마치 무언가로 세게 맞은 듯 머릿속이 하얘졌고, 그 미소조차 억지로 지어낸 것이었다. 심지어 자신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까 두려웠다. 멍하니 형수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 왕청여는 송석석을 마주한 순간 이미 눈물은 시야를 가렸다. 그녀를 한 번 쳐다보던 송석석은 미소 지으며 자리에 앉으라 권하고 차를 내렸다. 그녀의 다리에 감긴 붕대를 바라보던 최숙심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심하게 다친 것은 아닌지요? 얼마나 많이 아프셨습니까?” 그녀의 진심 어린 염려에 송석석은 오히려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정도 작은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어찌 아프지 않을 수 있겠사옵니까? 듣자 하니 뼈까지 부러졌다던데, 얼마나 오래 요양해야 한답니까? 나중에 걷는 데 지장은 없겠사옵니까?” “이것 보세요. 아주 멀쩡하지 않습니까? 정말로 괜찮습니다. 전장에서의 부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송석석은 태연하게 다리를 살짝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녀의 의연한 모습에 최숙심의 눈이 더더욱 슬퍼졌다. “전장에서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늘 있는 일이지요. 이제 다 나았사옵니다.” 그때 옆에 있던 남희가
와야 할 사람들은 모두 만났기에, 이제 송석석은 마음 놓고 쉴 수 있을 것 같았다.간혹 임 태의가 상처 치료와 흉터 제거를 위한 약을 챙겨 찾아오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염 선생이 그를 환대해 주었고 황제께 대신 감사를 전해줄 것을 바랐다. 이날은 임 태의가 오대반과 함께 찾아왔다. 염 선생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는 임 태의에게 흉터 제거에 관련한 질문이 있다며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면서 송석석이 오대반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했다. “폐하께서 보내신 것이옵니까?” 송석석이 묻자, 오대반은 손에 든 먼지떨이를 팔꿈치 위에 걸친 채 문밖에 함께 온 친위병들을 힐끗 보며 답했다. “황상께서 보내신 것도 맞고, 내 스스로도 오고 싶었사옵니다. 왕비 마마는 좀 나으셨사옵니까?” 잠시 망설이던 송석석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어때 보이시나요?” 오대반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왕비 마마께서는 통찰력이 깊으시옵니다. 좀 나아진 듯하나, 아직은 거동이 어려우신 것 같습니다만.” 송석석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공공께서 말씀하신 대로, 좀 나아지긴 했으나 아직 걸을 수는 없사옵니다.” “왕비마마께서는 마음 졸이지 마시고, 우선 몸부터 잘 돌보셔야 하옵니다.” 오대반이 위로하자, 송석석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마음이 급하지만 어쩔 수 없지요. 단신의 말로는 골절은 백일이 걸린다 하였으니, 이 백일 동안 잘 요양해야 할 듯하옵니다.” 그때 시만자가 안쪽을 들여다보며 미소를 지었다.“멀리서 보고 척귀대인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와보니 내가 착각했군.” 그 말을 들은 친위병들은 그녀가 장기문 대감의 사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서둘러 예를 갖춰 인사했다. 시만자는 그들의 이름을 물은 뒤,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재미있군요. 내 제자들이 그대들 무예가 뛰어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던데, 오늘 잘 만났군. 내 그대들과 몇 수 겨루도록 하지.” 그 말에 친위병들의 눈이 반짝였
너무나도 큰 일이라 송석석은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황제가 만약 승하한다면, 의심할 여지도 없이 대황자가 황위에 오를 것이고, 조만간 태자로 책봉될 것이다. 어린 황제가 즉위한다면, 반드시 보정 대신이 필요할 것이며, 그 수는 한 명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로 인해 조정은 여러 당파로 갈리게 될 것이고,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컸다. 만약 보정대신을 두지 않는다면, 태후나 제황후가 수렴청정할 것이다. 황후는 야망이 가득한 사람으로, 현재 금족 된 상태에서도 대황자를 위해 계략을 꾸미고 있었다. 제씨 가문의 세력이 너무나 강해져 최근 황제가 억누르고는 있으나, 만약 황제가 승하하고 대황자가 즉위하면 제씨 가문은 다시 힘을 얻게 될 것이었다. 누군들 권력을 탐하지 않겠는가? 목승상은 고령이라 퇴의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신황을 위해 나라를 돌보려 해도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나중에 벌어질 일들이고 현재 가장 우려되는 것은 황제에게 1년이란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면 그가 승하하기 전에 황후는 대황자를 위해 모든 장애물과 위협을 제거하려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명왕부가 가장 큰 위협이었다. 오대반도 이 점을 깨달았는지,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졌다. 그는 황제의 병세를 알게 되었을 때, 오직 북명왕만이 어린 황제를 도와 정국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하지만 송석석의 근심 어린 얼굴을 마주하게 되자 그 끔찍한 가능성을 깨닫게 되었다.아니, 이것은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었다. 현실이 될 가능성이 너무나도 컸다. “왕비마마, 차라리 떠나시는 것이…” 송석석이 서둘러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그만하시옵소서. 지금은 태의조차 확실히 진단 내리지 못하였으니, 어쩌면 단순한 두통이거나 종기일 수도 있사옵니다.” 그녀는 오대반이 조언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혹여 훗날 황제에 대한 자신의 불충함을 느끼고 괴로워할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먼지떨이를 꽉 쥔 오대반은 그녀의 뜻을 바
와야 할 사람들은 모두 만났기에, 이제 송석석은 마음 놓고 쉴 수 있을 것 같았다.간혹 임 태의가 상처 치료와 흉터 제거를 위한 약을 챙겨 찾아오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염 선생이 그를 환대해 주었고 황제께 대신 감사를 전해줄 것을 바랐다. 이날은 임 태의가 오대반과 함께 찾아왔다. 염 선생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는 임 태의에게 흉터 제거에 관련한 질문이 있다며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면서 송석석이 오대반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했다. “폐하께서 보내신 것이옵니까?” 송석석이 묻자, 오대반은 손에 든 먼지떨이를 팔꿈치 위에 걸친 채 문밖에 함께 온 친위병들을 힐끗 보며 답했다. “황상께서 보내신 것도 맞고, 내 스스로도 오고 싶었사옵니다. 왕비 마마는 좀 나으셨사옵니까?” 잠시 망설이던 송석석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어때 보이시나요?” 오대반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왕비 마마께서는 통찰력이 깊으시옵니다. 좀 나아진 듯하나, 아직은 거동이 어려우신 것 같습니다만.” 송석석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공공께서 말씀하신 대로, 좀 나아지긴 했으나 아직 걸을 수는 없사옵니다.” “왕비마마께서는 마음 졸이지 마시고, 우선 몸부터 잘 돌보셔야 하옵니다.” 오대반이 위로하자, 송석석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마음이 급하지만 어쩔 수 없지요. 단신의 말로는 골절은 백일이 걸린다 하였으니, 이 백일 동안 잘 요양해야 할 듯하옵니다.” 그때 시만자가 안쪽을 들여다보며 미소를 지었다.“멀리서 보고 척귀대인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와보니 내가 착각했군.” 그 말을 들은 친위병들은 그녀가 장기문 대감의 사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서둘러 예를 갖춰 인사했다. 시만자는 그들의 이름을 물은 뒤,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재미있군요. 내 제자들이 그대들 무예가 뛰어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던데, 오늘 잘 만났군. 내 그대들과 몇 수 겨루도록 하지.” 그 말에 친위병들의 눈이 반짝였
안여옥이 몸을 굽히며 작별 인사를 했다.“그럼 더 이상 방해하지 않겠사옵니다.” “살펴 가세요.” 최숙심은 미소를 띈 얼굴로 그녀를 배웅했다. 안여옥이 떠난 후, 최숙심이 왕청여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는 또 다시 후회를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이미 지난 일을 되새긴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서 들어가시지요.” 왕청여가 송석석을 문병하러 온 것은 큰 용기를 낸 것이었다. 그녀는 송석석에게 사과와 감사를 동시에 전해야 했기에, 오늘은 그저 형수님들을 따라온 척했지만, 사실은 과거의 모든 일을 마주하기 위해 찾아왔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송석석을 마주할 용기는 냈지만, 안여옥을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쳤다. 마치 무언가로 세게 맞은 듯 머릿속이 하얘졌고, 그 미소조차 억지로 지어낸 것이었다. 심지어 자신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까 두려웠다. 멍하니 형수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 왕청여는 송석석을 마주한 순간 이미 눈물은 시야를 가렸다. 그녀를 한 번 쳐다보던 송석석은 미소 지으며 자리에 앉으라 권하고 차를 내렸다. 그녀의 다리에 감긴 붕대를 바라보던 최숙심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심하게 다친 것은 아닌지요? 얼마나 많이 아프셨습니까?” 그녀의 진심 어린 염려에 송석석은 오히려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정도 작은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어찌 아프지 않을 수 있겠사옵니까? 듣자 하니 뼈까지 부러졌다던데, 얼마나 오래 요양해야 한답니까? 나중에 걷는 데 지장은 없겠사옵니까?” “이것 보세요. 아주 멀쩡하지 않습니까? 정말로 괜찮습니다. 전장에서의 부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송석석은 태연하게 다리를 살짝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녀의 의연한 모습에 최숙심의 눈이 더더욱 슬퍼졌다. “전장에서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늘 있는 일이지요. 이제 다 나았사옵니다.” 그때 옆에 있던 남희가
그렇게 궁을 떠난 혜태비는 왕부에 들어서자마자 서우와 함께 곧장 송석석에게로 향했다. 계속 입이 근질거렸던 그녀는 송석석과 대화를 마치자마자 돌아서서는 서우가 멀어지기 바쁘게 오늘 궁에서 들은 이야기와 태후가 내린 엄벌 조치를 모두 털어놓았다. 그러자 모든 것을 전해 들은 송석석은 오히려 혜태비를 위로했다. 후궁에 갇혀 있다 싶이 하는 자들이라 너무나 한가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그녀처럼 거리를 산책하거나 연극을 보러 갈 수도 없기에 자연스레 이야기를 꾸며내며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을거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길고 지루한 나날을 어떻게 보내겠냐며 말이다.하지만 혜태비는 여전히 화가 났다."그렇다 해도 함부로 입을 놀리면 안 되는 것이니라. 게다가 듣기 거북할 정도이니 용서할 수 없느니라. 우리 묵이가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도 있다니, 이게 사람이 할 소리냔 말이다! 나이만 먹었지. 기본 예의라곤 없는 사람이니라!" 송석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 이상함을 느꼈을 때 자신이 곧장 액션을 취하지 않았음이 후회되었다. 하지만 그 탕약을 마시기 전에는 이상하다고 느꼈어도 이렇게까지 심각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고, 도리어 황제가 만종문의 일을 알아내려는 줄로만 여겼다. 지금까지도 황제가 무슨 의도로 그러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원체 생각이 많은 그인지라 생각을 꿰뚫었다는 느낌이 왔어도 크게 어긋날 때가 더욱 많았다. 비록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군정 회의에 직접 참여할 수는 없으니, 전선의 소식은 오직 사매에게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가한 나날들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이들이 문병하러 찾아왔기 때문이다.아프지 않을 때는 알 수 없던 관계망이, 병환에 있게 되니 얼마나 넓은지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저마다 선물 꾸러미와 약재를 한가득 들고 찾아왔다.모두 오래 머물지는 않는다 하였으나 날마다 많은 이들이 찾아오니 일일이 응대해야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서야 비로소
아니나 다를까 얼마 안 되어, 혜태비는 분노에 찬듯 씩씩거리며 지안궁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복공공이 옆에 있음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며 말했다. "궁중에 사는 자들이 어찌 이리도 우물 안 개구리마냥 속 좁고, 가슴이 바늘구멍만 합니까! 우리 석석이는 공을 세웠기에 그 능력을 인정받아 황제께서 종종 불러들여 함께 정사를 의논하는 것인데 난데없이 남녀유별을 운운하며 어서방에 홀로 머무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둥 헛소리를 늘어놓더이다. 기가 막혀 하마터면 말문을 잃을 뻔하였습니다! 혹여 석석이 조정의 신하임을 잊은 것은 아닌지요? 석석이가 후궁의 자리를 노리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 그러자 태후가 천천히 차를 마시며 물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더냐?" 혜태비는 무섭게 눈을 부릅뜨며 화를 냈다. "처음엔 저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입을 모아 석석이를 한껏 칭찬하며, 이제는 예전과 확연히 다르다더니, 어서방에서 자주 황제를 모신다느니 하기에 한동안 기분이 좋았지요. 그런데 들으면 들을수록 이상하더이다. 괜히 소문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석석이가 감히 봉황이 되려 한다고 비꼬더이다… 아아, 화가 나 죽겠사옵니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몰래 웃고 있는 모습들이 하나같이 장터의 천한 부인들과 다를 바 없더이다!" 복공공은 차를 올리며 위로했다. "태비마마, 노여움을 푸시옵소서. 그들은 마마께서 뛰어난 며느리를 두어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옵니다."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을 호되게 꾸짖었느니라." 차를 한 모금 들이키던 혜태비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듯 말했다. "그들을 꾸짖자, 오히려 저더러 돌아가 곰곰이 생각하라더이다. 그렇지 않으면 묵이가 낙동강 오리알이 될 것이라는 가당치않은 말들을 늘어놓더이다…" 태후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차갑게 변해 있었다."누가 그리 지껄이더냐?" "제귀태비가 그랬사옵니다." 혜태비가 고자질하듯 목소리를 높이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던 태후는 담담히 차를 다 마신
아픈 척도 요령이 필요한 법이었다. 오늘 어서방에서 모두가 어색한 공기를 느꼈던 터라 곧바로 몸이 불편하다며 직무도 보기 어려울 정도라 집에서 요양하겠다고 하는 것은, 곧 황제와 신하 사이의 투명한 장막을 찢는 격이니, 군신 관계가 껄끄러워지며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기 십상이었다.황제와 같이 높은 자리에 있는 이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으나, 송석석 부부는 신하이기에 황제의 체면을 지나치게 무시해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결국 긴 논의 끝에 그들은 내일은 평소처럼 경위부로 복귀한 후, 병력을 이끌고 성 밖으로 나가 질서를 유지시키기로 하였다. 그리고 며칠 뒤 작은 사고를 만들기로 했다. 기승을 부리던 도적 떼로 인해 많은 백성들이 진성으로 몰려왔으나, 통과 문서가 없어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 밖에 머물러 있었다. 그 때문에 성 밖에서는 최숙심을 본받아 끼니를 배급하는 고위 문벌의 군자들과 부유한 가문도 점점 늘어났다.먹고 마실 것이 있고 병들면 약을 받을 수 있었으며 추위에는 솜이불까지 지원받았기에, 백성들은 굳이 떠날 생각까지 하지 않았다. 비록 고생스럽기는 했지만, 한겨울에 귀향길에 오르는 것보다는 더 나았다. 그리하여 성 밖은 날마다 소란이 끊이지 않았고, 에게 송석석은 특별히 순찰영의 병력을 파견해 질서를 유지하게 했다. 이 일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 후 이틀 동안 송석석은 병력을 이끌고 성 밖을 순찰하며 질서를 유지하기 시작했다.비록 난민이 많긴 했지만, 순찰영의 관리하에 질서정연하게 차례로 죽을 받아먹는 등 질서가 유지되었다. 송석석은 반나절 동안 성 밖에 머물렀고 나머지 시간에는 늘 그랬듯이 궁으로 돌아가 조정의 신하들과 군정을 논의했다. 그리고 논의가 끝난 뒤에는 모두와 함께 궁을 떠났다. 숙청제는 항상 정오에 그녀를 불러들였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돌려보내곤 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상소를 검토하며 밤늦게까지 바삐 돌아치다 내전에 돌아가 쉬었다.계획대로 송석석은 성 밖을 순찰하던 중 무언가에 놀란
송석석이 물러나자마자, 숙청제의 미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탕을 두어 모금 들이킨 후, 덕비와 이황자를 돌려보냈다. 덕비도 아무 말 없이 사람을 시켜 물건을 정리하게 한 후, 이황자의 손을 잡고 물러났다. 그러자 오대반이 문을 닫으며 말했다. "폐하, 의정까지 아직 시간이 있사오니, 반 시진만이라도 쉬시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숙청제는 평소라면 정오에 잠시 쉬곤 하였으나, 송석석을 불러들이기 시작한 후로는 낮잠을 잊고 지내고 있었다. 숙청제가 태양혈을 문지르며 말했다. "좋다, 나도 지금 머리가 좀 아프구나." "그럼, 태의를 불러 맥을 짚어보시는 것은 어떠하옵니까?" "그럴 필요 없다. 태의원 녀석들은 쓸모가 없다. 두통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서 약만 잔뜩 먹이더구나." 숙청제는 내실로 들어가 옷을 입은 채로 몸을 뉘었으나, 두통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 오대반이 이불을 덮어 드리자, 숙청제는 갑자기 눈을 뜨고 멍한 눈빛으로 말했다. "내가 요즘 왜 이런다고 생각하느냐?" 오대반이 위로했다. "폐하께서는 전쟁을 걱정하시어 심신이 피로하신 것이니 한동안 몸을 돌보시면 나아질 것이옵니다." 그러나 숙청제는 자신의 생각에 잠겨 있는 듯했다. "석석이 혹 너에게 매일 불러들이는 이유를 물었느냐?" "폐하께 아뢰옵건대, 왕비께서 이미 물으셨사옵니다." 오대반이 대답했다. "너는 어찌 대답하였느냐?" 숙청제가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자, 오 대반이 답했다."소인은 사실대로 말씀드렸사옵니다. 폐하께서 희두장군을 그리워하시어 그녀와 옛이야기를 나누려 하신다고 했사옵니다." 잠시 침묵하던 숙청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것은 사실이니라." 그는 눈을 감고 두 손으로 이마를 만졌다."혼자 있고 싶으니 나가 보거라." "예, 바로 밖에 있사오니, 필요하시면 들겠사옵니다." 오대반은 걱정 어린 눈빛으로 숙청제를 한 번 바라보고는 물러났다. 경위부로 돌아온 송석석은 어서방에서
하지만 그녀는 솔직한 속내를 드러낼 수 없어 감사만 표한 뒤 바로 자리를 떠났다. 그 뒤로도 숙청제는 매번 정사를 마치고 나서 그녀를 불러 한담을 나누곤 하였으며, 때로는 반 시진, 때로는 한 시진을 넘기곤 했다. 그렇게 결국 송석석도 천천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신하로서, 그녀에게 믿음직한 벗인 척이라도 하라 하신다면 그 역할 역시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허나, 황제에게 꼭 필요한 낮잠을 취해야 할 한 시진이 허투루 한담으로 소모되는 것은 분명 낭비였다. 이 기간 동안, 덕비는 몇 차례 탕약을 보내왔고, 수빈과 공비도 몇 번씩 다녀갔다. 심지어는 첩여 동씨까지도 몇 번 들렀다. 후비들은 어서방에 들 수 없기에, 탕약을 직접 들고 오더라도 오대반에게 맡겨야 했기에, 그를 안으로 들이는 식이였다. 다만 황자나 공주를 동반할 경우라면 어서방에 잠시 들 수 있었다. 그렇게 송석석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았던지라, 보내온 탕약에는 그녀의 몫도 늘 포함되었다. 송석석은 가끔 탕약을 마시며 속으로 생각했다. 만약 누군가 황제를 해하려고 탕약에 독을 탄다면, 자신 또한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말이다. 오늘은 덕비가 이황자와 함께 왔고 숙청제는 이들 모자를 어서방으로 들게 하였다. 송석석은 어서방에서 덕비와 자주 마주쳤다. 그녀에 대한 인상은 원래부터 나쁘지 않았다. 이황자는 어린 나이에도 예의 바르고 겸손하여, 이는 덕비의 훌륭한 가르침 덕분이었다. 숙청제 또한 이황자를 특히나 아끼는 듯 보였다. 그의 얼굴에 띤 진심 어린 웃음이 그 증거였다.덕비는 환하게 웃으며 궁인더러 탕약을 올리게 했다. 2인분으로 나뉘어진 탕약 중 하나는 송석석의 것이었다.덕비가 온화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틀 전 왕비님께서 기침을 하신다 들어 오늘 아침 일찍 주방에 천패, 비파, 설합을 달이게 하였습니다. 폐를 윤택하게 하여 건조함을 없애 기침을 멈추는 효능이 있사옵니다." 송석석이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을 표했다. "정말 고생하셨
최근 약 열흘 동안 지속된 이러한 상황에 대해, 송석석은 염 선생과 큰 사형을 찾아가 의논하기도 해보았지만, 뚜렷한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처음에는 숙청제가 만종문에 대해 알아내려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왜냐하면 이번 전쟁에서 사부님이 육안통과 홍의대포를 개량한 것 외에도 무림의 많은 문파들로 하여금 경사를 보위하는 전투에 참여하게 했기 때문이다. 의심이 많은 숙청제였지만, 아주 가능성이 없는 일도 아니었다.매산의 그 일로 인해 사부님에 대한 이야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고 오히려 흥미를 돋울 만한 소소한 이야기에만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요 며칠은 그녀가 매산에서 말썽을 부려 사부님께 수도 없이 야단 맞았다는 일화에 배를 부여잡으며 무척 즐거워하기도 했다.송석석은 배꼽 빠져라 웃고 있는 숙청제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고를 치고 돌아오면 사부님께 꾸지람을 듣는 것은 기본, 심지어는 외출 금지령이 떨어지고, 물항아리 들고 온종일 서 있게 하고, 손바닥을 맞는가 하면, 철못 위에서 무릎 꿇거나, 게다가 엉덩이 아래에 향 자루를 놓고 한 시간 동안 말 자세를 유지하다 바지가 타서 구멍이 나는 일은 흔한 일이 다반사였다.전에 장난기가 심했던 대황자가 장난을 쳤을 때 그가 크게 화를 낸 적이 있었기에 송석석은 황제가 이런 이야기를 재미없어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의외로 점점 빠져들더니 심지어 매산에서는 소똥 폭발시키기 같은 것들은 하지 않았는지 묻기까지 했다. 그는 그게 가장 재밌지 않냐며 한술 더 떴다. 그 말에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송석석이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런 일도 있었습니다만, 폐하께서는 왜 그게 재미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설마 직접 해보신 건 아니겠지요?” 그러자 숙청제가 웃으며 말했다. “네 오라버니에게 끌려다니며 놀았었지. 그런데 네 오라버니는 달리기가 너무 느려서 항상 온몸이 엉망진창이 되곤 했느니라.” ‘오라버니가 느린 게 아니라 폐하께서 느리셨겠지요. 오라버니는 폐하를 보호하느라 그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