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큰 일이라 송석석은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황제가 만약 승하한다면, 의심할 여지도 없이 대황자가 황위에 오를 것이고, 조만간 태자로 책봉될 것이다. 어린 황제가 즉위한다면, 반드시 보정 대신이 필요할 것이며, 그 수는 한 명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로 인해 조정은 여러 당파로 갈리게 될 것이고,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컸다. 만약 보정대신을 두지 않는다면, 태후나 제황후가 수렴청정할 것이다. 황후는 야망이 가득한 사람으로, 현재 금족 된 상태에서도 대황자를 위해 계략을 꾸미고 있었다. 제씨 가문의 세력이 너무나 강해져 최근 황제가 억누르고는 있으나, 만약 황제가 승하하고 대황자가 즉위하면 제씨 가문은 다시 힘을 얻게 될 것이었다. 누군들 권력을 탐하지 않겠는가? 목승상은 고령이라 퇴의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신황을 위해 나라를 돌보려 해도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나중에 벌어질 일들이고 현재 가장 우려되는 것은 황제에게 1년이란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면 그가 승하하기 전에 황후는 대황자를 위해 모든 장애물과 위협을 제거하려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명왕부가 가장 큰 위협이었다. 오대반도 이 점을 깨달았는지,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졌다. 그는 황제의 병세를 알게 되었을 때, 오직 북명왕만이 어린 황제를 도와 정국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하지만 송석석의 근심 어린 얼굴을 마주하게 되자 그 끔찍한 가능성을 깨닫게 되었다.아니, 이것은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었다. 현실이 될 가능성이 너무나도 컸다. “왕비마마, 차라리 떠나시는 것이…” 송석석이 서둘러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그만하시옵소서. 지금은 태의조차 확실히 진단 내리지 못하였으니, 어쩌면 단순한 두통이거나 종기일 수도 있사옵니다.” 그녀는 오대반이 조언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혹여 훗날 황제에 대한 자신의 불충함을 느끼고 괴로워할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먼지떨이를 꽉 쥔 오대반은 그녀의 뜻을 바
오늘 밤, 목 승상은 궁에 묵기로 하였다. 한편, 숙청제는 여전히 후궁에 들지 않았으며, 자신의 침전에 돌아가지도 않고 어서방 안의 침상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목 승상은 황제가 약을 다 마시는 것을 보고 사탕 하나를 건넸다.숙청제는 사탕을 받아 들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눈가에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어릴 적, 부황에게 호되게 꾸짖음을 당하고 나면 승상께서 꼭 사탕 하나를 건네며 격려의 말을 해주시곤 하였지요.” 목 승상도 그를 바라보았다.“그렇습니다. 저 역시 기억하고 있사옵니다. 황상께서 당시 말씀하셨지요. 훗날 현군이 되겠노라고 말입니다.” “혹 승상을 실망시킨 적이 있었는지요?” 숙청제는 사탕을 입에 넣었다. 그로 인해 목소리가 다소 흐릿해졌다. “없사옵니다. 소인에게 폐하는 이미 현군이시옵니다.” 숙청제는 고개를 저으며, 눈에 실망스러운 빛을 띠우고 말했다. “난 현군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이제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태의원에서 아직 진단을 내리지 않았으니, 폐하께서는 비관하시면 안되옵니다.” 목승상의 위로는 다소 건조하게 느껴졌다. “조금은 아쉽기는 하지만 더 많은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숙청제는 침상에 비스듬히 누운 채 무거운 눈빛으로 말했다. “우선, 태자를 정해야 할 텐데 승상께서는 대황자가 어떠신지요?” 목승상이 답했다. “대황자는 장남이자 중궁의 적자로서, 지금은 태부의 가르침 아래 점점 나아지고 있사옵고 예전의 제멋대로이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더욱 믿음직스러운 인물이 될 것입...” 그러자 숙청제가 그의 말을 끊었다. “저는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현재를 이야기하시지요. 그럼, 이황자는 어떻습니까?” 잠시 생각에 잠기던 목 승상이 답했다. “이황자는 영민하고 총명하지요. 비록 이제 막 학문을 시작하셨으나, 근면하고 배우려는 의지가 강한 점이 눈에 띕니다. 다만 이를 지속할 수 있을지는
이튿날, 목 승상은 바로 태의원으로 향하였다. 태의원에서는 모든 태의와 원정이 대기 중이었다. 자리에 앉은 목 승상은 그들을 바라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딱 한 가지만 묻겠다. 폐하의 병을 치료할 자신이 있느냐?” 태의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오원정이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목 승상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없사옵니다.” “조금이라도 말이냐?” 목 승상은 쉽게 납득할 수 없어 다시 물었다. “단 한 가닥의 희망이라도, 혹 다른 방도라도 없단 말이냐?” 모두가 다시 침묵하자, 목 승상의 눈빛은 점차 어두워졌고 그러다 완전히 빛을 잃었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태의원의 명성을 걸고서라면, 이 기한을 2년으로 늘릴 수는 없겠느냐?” 오원정은 얼굴에 깊은 자책감이 서려 있었다. “승상, 폐적증은 발작하면 기세가 매우 심각하여 2년은커녕 1년조차도… 쉽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번에는 목 승상이 한참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고는 마침내 한 마디 내뱉었다.“입들 조심하거라.” 그는 천천히 태의원을 나서며 망토를 단단히 여몄다. 이렇게도 빨리 또 연말이 다가왔다. 날씨가 갈수록 추워져 뼛속까지 스며들었다.태후는 겉으로는 아무 일도 모르는 듯했지만, 태의원의 밤새 꺼지지 않는 불을 보고일이 터졌음을 짐작했다. 그녀는 두통을 핑계로 오원정을 불러 진맥을 청했다. 그러자 진맥을 마친 오원정이 말했다. “태후마마께서는 수면이 부족하신 듯하옵니다.” 꼿꼿이 서 있는 그는 태후가 이미 무엇인가를 눈치챘음을 알고 있었다. 궁에서 태후의 눈과 귀를 피해 갈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태후가 알고 싶어 하지 않을 때만 예외였다. 태후는 주변 사람들을 돌려 보내고, 오원정만 남게 했다. 문지방 위로 햇살이 드리웠지만 매서운 바람이 드리워, 그 햇살조차 싸늘하게 느껴졌다. “말해보거라.” 태후는 자리에 앉아, 오원정의 멍든 눈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폐하께서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기에
두 사람은 그렇게 어서방에서 거의 한 시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태후가 떠난 뒤, 숙청제는 황후의 금족령을 해제하라는 어명을 내릴 뿐,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은 돌려주지 않았다.오대반으로부터 어명을 전해 들은 제황후는 처음엔 믿을 수 없었다. 어째서 갑자기 금족령이 해제했단 말인가?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아마도 자신이 전에 퍼뜨리도록 지시했던 말들이 효과를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가 살아 있는데, 적자를 태후궁에서 보살피는 것은 규율에 어긋난다는 말이었다.금족령이 해제된 제황후는 감사의 인사는 뒤로하고 대신, 곧장 서대신, 곧장 대황자를 만나러 상서원으로 향했다. 대황자는 황후를 보자마자 봅시 기뻐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태부가 강의를 하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장 속에서 풀려난 새처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녀에게 달려갔다. “어머니, 아들은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사옵니다! 언제쯤 저를 다시 데려가시겠나이까!” 황후는 허리를 숙여 그의 어깨를 잡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들을 찬찬히 살폈다. 초구를 걸치지 않은 대황자는 많이 야워어 턱선이 뽀쪽하게 드러난 모습에 황후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어찌 이렇게 수척해졌느냐? 잘 먹지 못한 것이냐?” 대황자는 입을 삐죽이더니 금세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재에서 돌아가면 황조모께서는 또 글을 외우게 하십니다. 외우지 못하면 밥을 주지 않으시니 황조모궁에 더는 있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빨리 돌아가고 싶사옵니다!” 제황후는 태후가 엄격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방금 금족령이 풀린 상황에서 태후와 맞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다만 대황자를 달래며 말했다. “조금만 더 참거라. 어미가 네 부황을 설득할 것이다.” 대황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말하려다, 안만수 태부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말문을 닫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때 안만수가 제황후에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 “마마, 대황자께서는 수업 중이시옵니다.” 제황후는 안
황후는 시간을 맞춰 다시 상서원으로 간 후, 대황자를 데리고 함께 지안궁으로 가서 태후에게 문안 인사를 올렸다. 앞뒤로 늘어선 수행원들의 위세는 대단했다.대황자마저 어린 환관의 등에 업혀 궁문에 이르러서야 그를 내려놓았다.황후는 의복을 단정히 하고 대황자의 손을 잡고 지안궁으로 들어갔다. 꿇어앉아 예를 올린 후, 태후의 안부를 여쭈어 보았다. 비록 예법은 완벽했으나, 태후는 한동안 그녀에게 일어나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다만 대황자를 불러 물었다. “오늘 태부께 칭찬을 들었느냐?” 그러자 대황자는 태후의 눈치를 살짝 살피더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 태부께서 칭찬을 잊으신 것 같사옵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황후가 서둘러 말을 보탰다. “태부께서는 엄격하시어 쉬이 칭찬을 하시지 않으십니다.” 황후는 태후가 이미 태부와 약속을 해둔 일을 모르고 있었다.대황자가 그날 착실하고 성실히 임하면 수업이 끝날 때 한마디 칭찬을 해 주기로, 그렇지 않으면 칭찬은 없기로 말이다. 이를 통해 태후는 대황자의 하루 태도를 알 수 있었다. 태후는 황후의 말을 무시한 채 담담히 대황자를 향해 말했다. “규율은 기억하고 있느냐?” 그러자 순간 대황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는 급히 변명하며 말했다. “태부께서는 어머니가 저를 찾으신 것을 못마땅히 여기셔서 칭찬하지 않으신 것 같사옵니다.” “그렇다면 벌을 받아야 하는 건 너냐, 아니면 네 어미냐?” 태후가 묻자, 대황자는 황후를 가리키며 재빨리 말했다. “어머니를 벌하옵소서! 어머니께서는 글을 베끼시는 것을 가장 즐기시옵니다!” “맞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저는 글을 베끼는 것을 좋고 자식을 가르치지 못한 죄도 있으니 응당 벌을 받아야 하옵니다.” 황후도 서둘러 맞장구를 치자, 태후는 그녀를 흘끗 보더니 금마마에게 명했다. “대황자를 저녁을 차려주고 작은 서재로 보내라. 해시 전까지 모두 베끼지 못하면 출입을 금하라.” 그러자
상서원과 지안궁에서 벌어진 일은 순식간에 숙청제의 귀에 들어갔다. 그는 마음이 나날로 초조해져갔다.게다가 연일 계략까지 모색하느라 두통이 심해져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플 정도였다.황후의 금족령을 해제한 것도, 대황자를 태자로 책봉하기 위한 준비였다. 태자가 될 인물에게 금족된 어머니가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숙청제는 금족된 황후가 자식을 방치하는 것이 곧 자식을 해치는 일임을 깨달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황후는 반성하긴 커녕, 오히려 황자가 자신의 곁에 있어야만 자신의 지위를 굳힐 수 있다고 확신할 뿐이었다. 한편, 숙청제는 입맛이 없는듯 저녁 식사를 대충 때운 뒤 약탕을 마셨다. 아무리 지쳐도 약은 반드시 복용해야 했다.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매번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누구나 겪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항상 죽음은 먼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이리도 갑자기, 예고도 없이 다가온 것이니 말이다. 그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국가의 중대사나 미래의 계획 같은 무거운 이야기가 아닌 단순히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숨을 돌리며, 마음을 편히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참을 머리를 굴린 끝에 떠오른 인물은 단 한 사람, 송석석뿐이었다. 송석석은 부상 치료로 며칠간 어서방에 오지 않았다. 숙청제는 임태의를 불러 침술로 두통을 진정시켰으나, 어지러운 증상과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어지러움 때문인지, 검은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가 싶더니 금방이라도 자신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그러다 문득 터무니없는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것은 단순한 충동이 아닌 의심할 여지조차 없는 확신이었다.한편, 북명왕부에서 노 집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급히 달려왔다.“무슨 일이오?” 염 선생이 서재에서 나오며 물었다. 노 집사는 빠르게 계단을 올라가서는 목소리를 낮췄다. “폐하께서 오셨습니다. 왕비마마를 뵙고 싶다 하시옵니
숙청제도 정신이 조금 맑아진 듯, 궁 안에서처럼 혼란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그가 웃으며 말했다."굳이 예의 차리지 말고 편하게 있어라. 짐은 그저 마음이 답답해서 황실에 와 심선생과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다."송석석이 대답했다."그럼 폐하와 사형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서두르지 마라. 이미 왔으니 함께 이야기하자." 숙청제는 송석석을 바라보며 다소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상처는 좀 나았느냐?"송석석은 손을 받쳐 일어나려 하다가 다시 내리며 대답했다."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처가 많이 낫긴 했지만 의관이 조언하길, 침상에 누워 며칠 더 안정을 취해야 한답니다.""음." 숙청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뼈와 근육을 다쳤으니 잘 쉬어야 한다."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송석석을 내보내지 않았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앉아 있거나 서서 함께 있었다.잠시 침묵이 흐른 후, 숙청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요기할 것이 있느냐? 배가 좀 고프구나."오 대반이 급히 대답했다."폐하께서 저녁을 드시지 않으셨다. 장혁, 빨리 가라!”사람들이 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폐하, 무얼 드시고 싶으십니까?”“무엇이 있느냐?”심청화가 대답했다."폐하께서 드시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황실에서 만들 수 없다면 사람을 보내 왕경루에서 사오도록 하겠습니다."숙청제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렇게 번거롭게 하지 않아도 된다. 면 한 그릇만 끓여오거라."양 마마는 직접 부엌에 가서 고기와 고수, 파와 계란을 넣고 끓인 뜨끈한 면을 숙청제 앞에 내놓았다.숙청제는 원래 그저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싶었을 뿐,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러나 고수와 파의 향을 맡고 나자 입맛이 돌았다.면 한 그릇을 다 먹고 국물도 절반가량 마신 후, 그는 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정말 맛있구나. 상을 내리겠다."양 마마는 기쁜 표정으로 상을 받았다. 폐하께서 내리신 상이라니, 어떻게 기쁘지 않겠
심청화의 그림 솜씨는 실로 대단했고, 그림이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생동감 넘치게 느껴졌다.모두가 그림 속의 인물을 한번 보고, 다시 의자에 앉아 있는 피곤함 하나 없는 숙청제를 바라보았는데, 마치 숙청제가 그림 속으로 들어간 듯, 방금 전의 표정조차 그대로 묘사되어 있었다.눈과 눈가에 흐릿한 주름, 귀 밑으로 흩어진 몇 가닥의 흰 머리, 오른쪽 입술 아래 작은 검은 점, 그리고 입술의 주름까지 세밀한 부분마저 놓치지 않았다.옷에는 아직 색이 칠해지지 않았지만 문양은 이미 그려져 있었고, 실제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숙청제는 마치 처음으로 이렇게 자신을 마주한 것처럼, 한참 동안 멍하니 그림을 보고는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짐이 참 늙었구나."그는 평소에 구리거울조차 잘 보지 않으며, 보더라도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보지 않았었다."폐하는 늙지 않으셨습니다. 겨우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십니다." 오 대반이 아첨하며 말했다.숙청제가 미소를 지으며 그를 쓱 쳐다보고 다시 말했다. "짐과 아우는 확실히 비슷한 점이 있구나."그러면서 송석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송석석은 방금까지 계속 하품을 한 탓에 눈 주위가 붉어져 있었는데, 숙청제가 묻자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폐하와 왕야는 조금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그러자 숙청제는 다시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의 얼굴에서 어두운 기색이 사라진 듯했다.송석석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사제가 훨씬 더 잘생겼으며 골상도 더 빼어납니다.’그들의 용모는 실제로 닮아 있었다. 결국 같은 아버지 아래에서 태어났고, 어머니도 친자매였으니 말이다. 다만, 예전에는 그렇게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두 사람의 기운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황제는 웃음을 잘 지어 보이지 않았으며 차갑고 위엄 있었다. 그의 얼굴선은 더 각지다.사여묵은 혼인 후 훨씬 부드러워졌다. 만약 그가 스산한 기운을 가라앉힌다면 온화하고 우아한 군자가
송석석은 사여묵으로부터 복소의의 유산 소식을 전해 들었다.진왕비는 송석석에게 함께 입궁하여 문병을 가자고 제안했고, 송석석도 이를 받아들였다.본래 송석석과 진왕비는 별다른 왕래가 없었으나, 진왕이 그녀와 함께 서경을 다녀온 이후, 진왕비는 동서지간에 자주 왕래하는 것이 좋다며 송석석에게 더욱 살갑게 굴었다.하지만 진왕비는 제씨 가문의 여인으로, 황후의 종매이긴 했지만, 황후가 금족 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황후를 찾아가지 않았다.즉, 그녀가 말하는 동서지간에 자주 왕래하는 것이 좋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귀찮은 일이 없을 때는 교류할 수 있지만, 문제가 생기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뜻이었다.예전에 황제가 북명황실을 경계하던 시기에도 진왕비는 송석석을 철저히 피하며 혹여 화를 입을까 두려워했다.사실 이번에 진왕이 특별한 공을 세웠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저 황제의 가벼운 칭찬 한마디를 들은 정도였지만, 진왕에게는 그 한마디가 두 해나 자랑할 거리였다.그들은 함께 입궁하면서도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진왕비는 그저 몇 마디 가벼운 이야기만 했는데, 송석석은 그런 진왕비가 영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때때로 일부러 어리숙한 척 행동하며, 평온하고 안락한 삶만을 바랬기 때문이다.그렇기에 단둘이 있을 때에 그녀는 더욱 쓸데없는 말을 하지도, 남에게 꼬투리를 잡힐 행동도 하지 않았다.입궁하여 복소의를 만나게 되자, 진왕비는 이 아이와 그녀의 인연이 이미 닿아 있었다며, 결국 그 인연 덕분에 품계를 올리게 된 것이니 조만간 다시 태중으로 돌아와 전생의 모자 인연을 이어갈 것이라는 위로의 말을 한 가득 쏟아냈다.그녀가 나긋한 목소리로 덧붙였다."그러니 지금 해야 할 일은 그저 몸을 잘 돌보는 것 뿐이다. 괜히 이 일로 침울해 하면 안된다. 폐하께서 정무로 바쁘신데, 소의가 매일 울기만 하면 보시기에 번거롭지 않겠는가?"진왕비의 말은 빈틈이 없어 송석석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그녀가 한참 이야기하다가 문득 송석석을 향해 한 마디 던졌다.
자신의 궁으로 돌아오자, 숙청제는 비로소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 곧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었기 때문이다.후궁에서 벌어지는 수작들은 때로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법이다.단신의가 복소의의 태아를 보전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설령 무사히 태어난다 해도 선천적으로 허약하거나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을 아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숙청제는 한때 복소의에게 약을 직접 먹일까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이 아이가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자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끝내 결단을 내리지는 못했다.한 번쯤 걸어보고 싶긴 했다.이번 일은 누군가 개입한 것이 분명했다. 그가 최근 들어 복소의의 궁에 자주 드나들었으니, 누군가는 불만을 품었을 것이 틀림없었다.덕비는 분명 복소의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복소의는 황제의 총애를 믿고 오만하게 굴며, 심지어는 덕비를 원망하는 마음까지 품었다. 그날 그녀에게 경고를 주었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덕비는 후궁을 총괄하는 인물이었다. 때문에 그녀와 수빈이 배치한 사람들이 후궁 곳곳에 퍼져 있었으니, 복소의의 태아를 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덕비가 직접 손을 썼을 가능성은 낮았다. 만약 덕비가 아이를 해하려 했더라면 애초에 복소의를 보호해주지 않았을 것이었다. 게다가 덕비가 이황자를 데리고 자주 드나든 것도 반은 아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반은 복소의의 태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었다.복소의가 황제에게 덕비를 험담했던 것은 반드시 덕비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었다. 덕비가 이후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그녀가 복소의에게 손을 떼자, 마음 속에 꿍꿍이가 있던 자들이 움직이기 훨씬 쉬워졌다.그가 실망한 이유는 복소의의 태아를 잃은 것 때문이 아니었으며, 그가 바라지 않았던 후계 경쟁이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는 점이었다.그는 이 일을 벌인 자가 누구인지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황후이거나 수빈 둘 중 하나일 것
혜의궁에서는 삼황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삼공주는 그의 젖은 머리카락을 닦아주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어제 막 머리를 감았는데, 굳이 그 고양이랑 놀겠다고 해서 온 머리와 얼굴이 털투성이가 되었잖아. 다음번에도 이러면 엉덩이를 때려줄 거야."도자기처럼 매끄러운 분홍빛 살결의 귀여운 아이가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공주의 품에 기댔다."누이, 고양이는 재미있고 귀여워요. 작은 발로 내 몸을 밟고 지나갈 때면, 포근해서 기분이 좋아요. 안고 있으면 따뜻하기도 하고요."그러자 삼공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어마마마께서 그러셨잖아. 아바마마께서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그런데 넌 자꾸 아바마마께 고양이 이야기를 해서…… 그러니 요즘 아바마마께서 널 찾지 않으시는 거야."삼황자는 누이가 머리를 말려주는 대로 꼿꼿이 앉아 있으면서도 입을 다물지 않았다."아바마마와 나는 다른 사람이잖요. 당연히 각자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도 있는 거지요. 아바마마께서 싫어한다고 해서 나까지 싫어해야 해요? 내가 고양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니, 아바마마께서 아무리 싫어하셔도 나한테 버리라고 하시면 안 되는 거죠."삼공주는 그의 코끝을 톡 하고 건드리며 말했다."말은 참 잘하네."삼황자는 웃으며 말했다."누이가 나를 설득 수 없는 건 누이의 말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에요. 황숙께서 그러셨는데, 이치에 맞게 말을 한다면 그 누구도 이길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그래? 그런데 요즘 왜 황숙께 무예를 배우러 가지 않는 거야?"삼황자는 고개를 기울였다."무예라 해도 기본적인 것만 가르쳐 주시니까요. 그런 건 궁에서도 연습할 수 있어서 이미 다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말 타기는… 아직 말 위에 혼자 올라갈 수가 없으니까 좀 더 자라서 다리가 길어지면 그때 배울거에요.""다 할 수 있다고? 못 믿겠는데." 삼공주가 말했다."정말 할 수 있다니까요!"삼황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황숙께서 며칠 동안 같은 걸 반복해
복소의는 춘당의 입가에 스친 조소를 알아채지 못했다.춘당은 복소의가 첩여로 승급될 때부터 곁에서 그녀를 모셔왔다. 그녀는 영리하고 침착한 성품을 지녀 복소의에게 여러 차례 계책을 내주었고, 당시 황후가 그녀를 끌어들이려 했을 때도 춘당은 이렇게 말했었다.‘황후마마께서 여러 번 금족 처분을 당하신 것으로 보아, 폐하께서 이미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후궁을 다스릴 권한도 없으시니, 황후마마께는 겉으로만 응하는 척하고 실질적으로는 덕비 마마와 수빈 마마께 가까이 다가가시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그리고 춘당의 말은 역시나 옳았다. 덕비는 늘 그녀를 잘 대해주었고, 먹고 입는 것 모두 넉넉히 챙겨주었다. 그 덕분에 더 이상 감히 그녀를 깔보는 자도 없어졌다.예전의 덕비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이유로 폐하께 가까이 가려 하는 것 같아 못마땅했다."마마께서는 덕비 마마께서 오시는 것이 싫으십니까?"춘당이 그녀의 머리와 허리를 살짝 받쳐주며 말했다. 침상에 오래도록 누워만 있어 등이 아픈 그녀를 배려한 것이었다.그녀는 춘당을 신뢰했기에 자연스레 속내를 털어놓았다."내 태가 안정되었을 때는 덕비 마마께서 그리 열심히 오시지도 않으셨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자주 찾으시는 것이 진심이겠느냐? 분명 폐하를 의식해서 오는 것일 것이다. 게다가 폐하께서 날 아끼시기에 자주 찾아와 주시는 것인데, 매번 덕비 마마와 이황자가 끼어드는 바람에 폐하와 두세 마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지 않느냐."춘당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하며 말했다."마마께서는 그저 몸을 잘 돌보시면 됩니다. 그 외의 일은 신경 쓰지 마세요."복소의는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밤낮으로 누워만 있어야 하다니…… 폐하께서 오실 때만 겨우 앉을 수 있구나. 이 아이는 나를 참 힘들게 한다. 부디 황자가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지. 내가 이 고생을 한 보람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춘당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반드시 마마께서 바라시는
복소의의 태는 안정적이었기에, 태의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겨울이 지나면서 태가 점점 불안정해져, 두 번의 출혈을 경험했다. 금태의는 그녀의 태를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침상에 누워 있어야 했기에 바닥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태의는 신중히 식단과 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점검했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아마 황제가 장기간 약을 복용한 탓에 태아가 불안정해진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의 태에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가 침상에서 요양을 시작한 후 거의 이틀에 한 번씩 그녀를 보러 갔으며, 가끔은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는 수빈의 궁에 자주 가지 않았고, 삼황자를 어서방에 불러 들이지도 않았다.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이황자와 함께 복소의를 보러 갔고, 이로 인해 황제와 함께 몇 번의 식사를 함께했다.복소의는 첩여 시절 후궁에서 자신이 의지할 사람을 찾으려 했고, 비밀리에 수빈과 덕비에게 아첨하며 양쪽을 오갔다. 하지만 수빈은 늘 거만하게 행동했으며, 그녀가 한때 황제의 총애를 얻었기도 했기에, 복소의는 수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반면 덕비는 후궁에서 유명한 온화하고 자애로운 인물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며 위치가 낮은 여인들까지 보살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복소의는 점차 덕비에게 더 접근했지만 지금은 조금 고심했다. 황제가 그녀에게 올 때, 덕비가 여러 번 이황자를 데리고 왔고, 그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수빈의 성격에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오히려 수빈의 도도함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국 불만을 마음속으로에만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이 있기에 그녀를 적대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날들이 지속되자, 그녀는 덕비가 오지 않
후궁에서는 황제의 병에 대해 추측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금 복소의가 임신을 했다고는 하지만,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은 황제의 몸이 단순히 요양을 하면 괜찮아질 상태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제의 편애가 계속될수록 몇몇 사람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특히 황후는 더욱 불안해했다. 그녀는 황제의 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지금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지만 치료의 효과는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녀는 황제가 심각한 상태라고 여겼다. 황후는 복소의의 임신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의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설령 황자가 태어난다고 해도 그에게 까지 순서가 올 리 없었다. 그러나 삼황자에게 집중된 황제의 편애는 그녀에게 위기의식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황제는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었을 때 그녀는 황후 자리를 선택하며 생명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며칠의 시간을 보내자, 황후는 황제가 대황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요즘 대황자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태부와 황숙도 그를 칭찬하고 있었다. 황제도 대황자의 그러한 모습에 매우 만족해 한다고 전해 들었다.이황자와 삼황자는 그녀에게 모두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황후는 황제가 이황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최근 몇 달 동안 그녀는 거의 이황자를 본 적이 없었고, 또한 이황자가 이제는 예전처럼 열정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는 강력한 뒷배경이 없는 덕비가 여전히 유력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수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빈의 아버지는 형부상서이며, 사여묵과 같은 공문이었다. 공무의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접촉이 분명 많았을 것이고, 수빈의 어머니인 이씨 부인은 송석석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방에 많은 돈을 기부했다. 어쩌면 이미 그녀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마마, 오늘 대황자께서 또 왕야의 칭찬을 받으셨습니다.”란주 상궁이 들어오며 웃으며 말했다.황후는 별다른 감정을 보이
숙청제는 신하들을 어서방에 불러들였고, 그들은 밤늦게까지 논의했다. 논의는 결국 단신의가 들어가서 시간이 많이 늦었음을 알리며 중단을 요청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숙청제는 팔을 뻗고 웃으면서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니. 그럼 궁문도 이제 잠가야겠으니 다들 돌아가시게.”그는 여전히 기운이 넘쳤고, 특히 지금은 얼굴에 혈색이 돌아 병든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송석석은 논의 중이던 사여묵을 기다렸다. 그들은 함께 궁을 떠나 황실로 돌아갔다. 매우 피곤했던 그녀는 사여묵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마차가 황실 문 앞에 도착하자 사여묵은 그녀를 안아 들었다. 송석석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내려오기 귀찮았기에 그대로 안겨 있었다. 그의 넓고 따뜻한 품은 정말 편안했다.그와 떨어져 있던 세 달 동안 그녀는 성릉관에서만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으며, 그 외의 곳에서는 늘 경계하며 지냈다. 이제 집에 돌아오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렸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안함을 느꼈다. 무언가 뜨겁고 큰 손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단 백부 말씀을 잊으셨나요?”귓가에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백부가 이제 괜찮다고 말씀하셨소.”송석석은 감고있던 눈을 떠, 뜨겁고 열정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정말인가요?”“틀림 없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술이 덮였다.불꽃이 강렬하게 타올왔다. 침실의 온도마저 높아진 듯 했다.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기에 마치 새롭게 결혼한 듯한 기분이었다!한 달 후, 상국은 시박사를 설립할 예정이었다. 이는 상국과 해외 북당과의 화물 교류를 담당할 기관이었다.원래의 시역업도 시박사의 운영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상국에서 다른 국가에 판매할 수 있는 화물 목록을 정리하여 서경으로 사신을 파견해 화물 교환 협정을 체결할 것이다.이 한 달 동안 단신의는 약을
10월 15일, 사절단은 드디어 진성에 도착했다.현갑군은 그 자리에서 먼저 해산했고, 이덕회와 홍려사경은 궁에 들어가 황제를 뵈러 갔다. 그동안 몸이 약해져 혼자서는 거동할 수 없었던 진왕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도 궁에 가겠다고 말했다.송석석은 이미 성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여묵에게 인도되어 황실로 돌아갔다.그동안 사여묵은 매일같이 성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고, 때로는 낮잠시간에 직접 가서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이 되어서야, 드디어 기다리던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이덕회와 그들이 궁에서 황제에게 보고할 때, 송석석은 이미 태비께 인사를 드린 후였다.혜 태비는 송석석이 피곤해 보이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했다.송석석은 사여묵과 함께 나와서 매화원으로 돌아갔다.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송석석의 입술이 어쩐지 조금 부풀어 있었다. 서주는 깜짝 놀라 왕야를 바라보았다. 왕비가 목욕하는데 왕야께서 꼭 직접 모셔야 한다며 들어가더니, 보아하니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서방에서는 염선생과 심청화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송석석은 그들에게 서경에서의 일들을 말해주었다. 협상 결과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었기에, 송석석은 길에서 일어난 암살 시도, 원신제의 곤경, 그리고 북당의 안풍친왕이 말한 3년과 5년의 기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사여묵은 두려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었는데, 서경이 그렇게 혼란스러웠음에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다행이라 여겼다.안풍친왕이 성릉관을 자유롭게 오고 간 것과 그가 말한 3년, 5년 기한에 대해서, 심청화는 사부에게 편지를 보내면 알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사부는 그들을 잘 알기 때문에 그 말의 숨은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이야기를 마친 후, 사여묵은 송석석이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 송석석에게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게 그들을 막았다. 그는 오후에 휴가를 내어 일을 쉬려고 했지만, 황제가 사람을 보내 궁에 오라고 일렀다.송석석
성릉관에서 다섯 날을 지낸 진왕은 어느 정도 몸이 회복이 되었다.그가 회복되었다는 것은 이제 다시 진성으로 향해야 함을 의미했다.이별은 너무나 아쉬웠지만, 송석석은 눈물을 삼키며 그저 작별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소 대장군 앞에서 여러 번 절을 했는데, 그로 인해 소 대장군도 눈물이 거의 터져 나올 뻔했다.이덕회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소 대장군이었다. 소 대장군은 상국을 위해 수십 년 동안 성릉관을 지킨 노장이었기 때문이다.송석석은 눈물을 삼켰지만, 그는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 평생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노령에 접어든 듯,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노쇠해 보였다. 설령 황제가 그를 진성으로 돌아가게 허락한다 할지라도, 긴 여정과 고된 일정을 고려했을 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를 돌아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다.소 대장군은 이덕회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그러자 이덕회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외숙모 남씨는 회 왕비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었다가 이별을 앞두고서야 송석석을 옆으로 데려와 그녀의 상황을 물었다.송석석은 회 왕비가 지금 감옥에 있다는 사실과 란이가 그녀를 위해 손을 써주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힘든 상황은 아닐 거라며, 혹시 태자가 세워지면 대사면이 내려져 그녀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남씨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외조부께서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엄청 신경 쓰고 계실 거다. 세상에 정말로 모진 부모는 드무니까. 네 외조부는 모진 분이 아니시다. 그때 그녀가 란이에게 그렇게 까지 모질게 대했던 게 안타깝다. 란이가 여전히 그녀를 돌보아야 하다니."송석석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란이는 지금 편안하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더 잘 지낼 거예요.""그렇지. 분명히 잘 지낼 거야." 남씨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송석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