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312화

Author: 유애
한편, 황실로 돌아온 송석석은 평서백부 일가족 모두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는데, 사실 그녀는 방금 전 궁에 있을 때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혹은 조금 더 일찍, 왕표가 야반 도주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훗날 이런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황제가 평서백부 사람들을 감옥에 가둔 이유는 아마 두 가지일 것이다. 첫 번째는, 왕표의 죄가 이미 일가족 전부에게 연대 책임이 생길 정도로 크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왕표가 스스로 나타나 죄를 인정하고 벌을 받길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작위를 없애고 가문 전체를 몰수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높은 작위로 계속 부귀영화를 누리며 안일한 삶을 살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송석석도 황제가 앞으로 이 일을 어떻게 처치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한편, 왕이장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여기저기 돌아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모두 권위가 높은 세가들이 아닌 평민 백성들 뿐이었다.

선견지명이 있는 최씨는 큰돈을 들여 성 외에 죽을 파는 점포를 차려 상황이 어려운 백성들을 도와줬을 뿐만 아니라 중병에 걸린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 치료해주까지 했었다.

하지만 노부인과 왕청여는 최씨가 하는 일에 극성으로 반대했으며 최씨가 큰돈을 낭비해가면서 자신의 명예를 쌓고 있는 거라고 비판했다.

그렇기에 지금, 최씨를 도울 수 있는 건 딱 두 가지 방법 뿐이었다. 남강이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거나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나 최씨를 위해 황제에게 선처를 부탁하면 된다.

최씨와 왕표는 엄연히 다른 사람이기에 최씨를 위하는 것과 왕표를 위한 것도 엄연히 다른 것이다.

왕이장은 이내 사람을 시켜 왕표가 정실을 버리고 첩과 첩이 낳은 딸만 데리고 야반 도주한 사실을 널리 퍼트렸으며, 그가 나라를 버린 죄인으로 황제 폐하께 죄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부인과 아이들에게도 큰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백성들에게 최씨가 부군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여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13화

    다음날 조정에서 허 어사는 어제 자신이 조사한 사실을 황제 폐하에게 전달했고, 곁에 서있던 목 승상도 고개를 끄덕이며 최씨를 칭찬했다.“최씨가 성 외에 점포를 차려 선행을 하고 있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혼인을 한 여인이 저택 안에 갇혀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어 있지만 최씨는 초심을 잃지 않고 선행으로 덕을 쌓고 있었습니다. 이는 충분히 널리 선양할 일이고 백성들의 본보기가 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렇게 선하고 박애한 여인이 자신의 부군이 저지른 죄 때문에 감옥에서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제 상서도 말을 보탰다.“요 며칠동안 백성들도 전부 이 일에 대해서만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다들 최씨는 억울하다고 자발적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폐하, 조심스럽게 소인의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왕표 그자가 죽을 죄를 지은 건 사실이고 그 죄가 일가족에게 연대 책임이 생길만큼 중한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작위도 폐위했고 가문 전부를 몰수했으니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폐하께서 자비를 베풀어 그 가문 일가족들에게 약한 벌을 내리시길 부탁드립니다.”숙청제는 왕표의 가족들을 이용하여 왕표가 스스로 나타나 죄를 인정하길 바라기에 일가족들을 절대 풀어줄 수도, 약하게 처벌할 수도 없었다.“그건 짐이 알아서 할 것이오. 공문서를 보내 왕표를 체포하고, 만약 스스로 나타나 죄를 인정한다면 일가족들은 엄하게 벌하지 않겠다는 방문을 붙이게.”최씨의 선행은 백성들에게 본보기가 될만한 행동이었기에 숙청제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어명을 받들겠습니다!”공양이 나서서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한편, 송석석은 아직 관직을 회복하지 못했기에 여전히 휴가를 보내고 있는 상태였는데, 이는 되레 그녀에게 여기저기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편리를 주었다.그리고 황제의 어명은 이내 남강에 전해졌다. 남강군들이 이미 그에 대한 믿음이 강한 상태에 어명이 내려왔으니 더욱 자신감 있는 태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병부에서는 새로 양산한 육안통을 남강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14화

    감옥에 갇힌 지 6일이나 지날 동안 최씨는 눈물 한 방울도 보이지 않았는데, 송석석을 보자마자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져 있었다. 최씨는 얼른 고개를 돌려 몰래 눈물을 훔치고는 허리를 숙여 송석석에게 인사를 올렸다.“왕비님께서 이렇게 누추한 곳에 소인을 보러 오시게 만들어… 정말 죄송합니다.”송석석은 허름한 죄수복을 입고 있는 최씨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에 먼지가 잔뜩 묻은 얼굴까지, 평소에 단아하고 우아하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생이 많으십니다.”송석석이 조심스럽게 말하자 최씨가 초췌한 얼굴로 대답했다.“소인은 괜찮은데 아이들이 끝까지 버티지 못할까 봐 걱정입니다. 왕비님, 황제께서 저희를 어떻게 처치할 생각이신 겁니까? 전부 죽이라고 하셨습니까…?”송석석은 최씨를 부축하여 의자에 앉힌 뒤, 차분하게 말했다.“폐하께서 그대들을 죽여 분풀이할 생각이었으면 진작 그러셨겠지요. 지금 폐하께서는 그대들 가족들을 이용하여 왕표를 끌어내려고 하시는 겁니다. 하지만 왕표 그자가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벌을 받으면 그대들은 선처해주실 겁니다.”“그럴 리는 없을 겁니다. 그 사람은 절대 스스로 나타나 죄를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최씨가 연신 고개를 저었다.“그럴 사람이 아니긴 하지만… 저희가 최대한 자수하게 만들 겁니다.”말을 하던 송석석은 들고 온 보따리를 풀더니 안에서 약들을 꺼내 최씨 앞에 놓았다.“바깥 상황은 걱정하지 마시고 최대한 자신을 잘 지키고 있으셔야 합니다. 제 사저가 사람을 보내 왕표 그자를 찾고 있고 오사형도 암암리에 부인을 돕기 위해 여기저기 바삐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전에 부인께서 백성들에게 음식을 베풀고 병을 치료해준 게 꽤 효과가 있습니다. 지금 자발적으로 들고 일어나 부인을 위해 외치는 백성들이 많습니다.”조용하게 듣고 있던 최씨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다들 정말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감옥에 갇힌 동안 최씨는 왕표만 생각하면 치가 떨릴 정도로 분노가 차올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15화

    사제가 의심하는 사람은 휘왕과 영군왕 부자 두 사람이었으며 특히 영군왕을 제일 의심했다.휘왕은 평소에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기에 자주 왕래하는 사람도 없었고 굳이 왕래가 잦은 사람을 뽑자면 송석석과 북명왕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평소에 저택에서 고청영과 맛있는 것도 먹고 예쁜 경치를 구경하는 것에 진심이었으며 평생 먹고 노는 것이 삶의 목표기도 했다.그때문인지 저번에 그들을 보러 갔을 때 고청영과 휘왕은 살이 많이 쪄 있었다.송석석이 며칠 동안 조사했는데도 큰 진전이 없었기에 시만자를 데리고 휘왕 저택에 직접 방문하기로 했다. 휘왕은 두 사람을 보자마자 환한 미소로 반기며 고청영에게 말했다.“어제 내가 직접 낚시해서 잡은 잉어를 회로 떠서 가지고 오거라. 피를 확실하게 빼야 한다. 그래야 더 맛있고 살점도 더욱 싱싱할 테이니.”고청영은 이내 노비를 데리고 주방으로 들어갔고 시만자는 전보다 살이 더 찐 휘왕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요즘 너무 잘 드시는 것 아닌가요? 전보다 살이 더 찌신 것 같네요.”“만자야, 북명 황실에서 맛있는 거 안 해주면 바로 나한테 오거라. 네가 먹고 싶어하는 건 내가 다 해줄 수 있으니. 하하하!”휘왕이 환하게 웃으며 말하자 시만자도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어르신,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 진짜 이 집에 들어와서 살 수도 있습니다?”“얼른 오라니까. 내가 맛있는 거 잔뜩 해주마!”“그럼 나중에 황실이 지겨우면 바로 이리로 올게요. 살도 찌고 좋을 것 같네요.”시만자의 말에 곁에 있던 송석석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뭘 지겨울 때까지 기다려? 내일 바로 사람 시켜 네 물건을 이 저택으로 옮기면 되지.”시만자가 허리에 손을 올린 채 입을 삐죽 내밀었다.“너 설마 오래전부터 날 황실에서 쫓아내고 싶었던 거 아니야?”“네가 이리로 오고 싶다고 했잖아. 왜 내 탓을 해?”휘왕은 차 한 모금 마시며 티격태격하고 있는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이내 진수성찬이 차려졌고 평소에 날것을 먹지 않는 송석석과 시만자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16화

    돌아가서 염 선생과 심 사형에게 말하자, 두 사람은 먼저 고청영을 포함한 휘황실의 사람들부터 다시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이 전에 휘황실의 사람을 조사했었는데 의심스러운 부분은 없었다. 몇몇 사람들은 노휘왕이 진성으로 데려온 후 줄곧 그를 따랐으니 심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가 진성에 돌아올 때 중매업을 통해서 구매한 사람들이었는데 염 선생이 직접 중매업에 가서 그 사람들의 신분을 조사했었다. 위로 조사해 보니 그들은 모두 집이 가난해서 팔린 것이었다. 송석석과 시만자는 오늘 정원을 돌아다녔지만 무공을 할 줄 아는 하인은 발견하지 못했다. 설령 있다고 해도 아마 그들을 피할 것이기에, 염 선생은 다시 한번 휘황실 사람들을 조사해서 황실 하인이 증감했는지 확인해 보라고 했다. 며칠 전 사여묵은 남강으로 갈 때 자신의 말을 타지 않고 황실에서 지구력이 가장 좋은 말을 골랐다. 그는 원래 남강으로 가서 제린을 찾은 다음, 졸병 신분으로 군대에 잠입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강 경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왕표가 첩을 데리고 도망갔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심지어는 도처에 떠돌았고, 사국에 80만 명의 병사가 있으니 남강군이 무조건 패배할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국인이 성을 도륙하여 남강을 피바다로 만들겠다고 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북명왕이 황제에 의해 죽었기 때문에 지휘봉을 잡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많은 백성들은 그 말을 믿고 차라리 짐을 싸서 도망가는 게 낫다고 했다. 이제 막 생기가 돌기 시작한 남강은 다시 산산조각이 되어 다가올 전쟁의 불길을 맞을 준비를 하게 되었다. 이런 소문들이 백성들 사이에서 퍼지게 되면 군대에서도 퍼지기 마련이었다.특히 숙청제가 북명왕을 죽였다는 소문이 돌자, 북명군은 분개하며 충성스럽고 훌륭한 장군이 이렇게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는데 왜 어리석은 황제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냐며 각자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저항했다. 제린과 방천허가 아무리 소문을 제지하고 병사들에게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17화

    오 교위가 와서 사망인수는 356명이고 부상인수는 1732명이라는 전투 사상의 상황을 보고했는데, 모두 그 소식을 듣자마자 기분이 다시 바닥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궁수들은 현재 성을 지키는 입장이라 모두 성벽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기에, 사국인들이 사닥다리를 치고 돌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 했다. 게다가 그들은 아직 대규모로 성을 공격하지 않았고, 그저 병력과 군심의 응집력을 시험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국인들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그들은 상대방의 심리를 잘 알아서 바로 대군이 쳐들어오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강군의 투지가 아무리 약해도 생사를 겨루게 되면 반드시 최강의 실력을 가지고 대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런 탐색을 몇 차례 반복해서 사상자 수가 계속 늘어나게 된다면 남강군의 의지와 심리적 방선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투지가 없는 상태라다시 싸워봐야 헛수고일 것이었기에 작전을 말해도 소용없었다. 군사는 담배 반 대를 다 피울정도로 고민했지만 다른 방법이 차마 생각나지 않았다. 조정에서 사람을 보낸다고 해도 누구를 보낼 지 모르니 지금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내일 군사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해서 사기를 북돋아줘야겠소.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소.” 방천허는 두 손으로 얼굴을 비비더니 먼지와 피딱지를 문질러냈는데 그건 그의 피가 아니라 오늘 그의 곁에 서 있던 병사들이 투석기에 머리를 맞아 그의 얼굴에 튄 피였다.그의 기분은 아주 나빠진 상태였다. “지금은 아무리 해도 소용없소. 원수도 사라진 마당에 아직 누구를 임시 원수자리에 앉힐 명령도 내려오지 않았지 않소? 게다가 모두가 왕야님께서 죽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으니 왕야께서 남강 전장에 나타나지 않는 한 전사들이 전투에 대한 사기는 계속 저조할 것이며 조정에 대한 원한은 날로 고조될 것입니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왕표가 탈출한 후 마음이 무너졌으니, 이길 수 없다고 믿어 전쟁터에 나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18화

    사람들은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보니 말 한 마리가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 뒤에는 연기와 먼지가 자욱하게 나 있었는데 말을 탄 사람은 따스한 햇볕에 싸여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제린과 방천허는 고개를 돌려 보더니 순간 눈 밑이 붉어지고 울컥해서 소리를 낼 수 없었다.사여묵은 갑옷을 입지 않고 평범한 백성의 옷을 입고 있어 멀리서 보면 특별한 점은 없었다.그가 말을 멈추고 사람들 앞에 서자 군사들은 그제야 그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그렇게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현장에서 열광적이고 기쁜 외침소리가 터져 나왔다.“사 원수야, 사 원수께서 오셨어!”“사 원수께서 아직 죽지 않았다니!”“사 원수께서 계시니 우린 반드시 승리할 것이야.”“필승!군사들은 지난 전쟁의 억울함과 왕표에 대한 분노를 모두 외치려는 것 같았다.장군들은 눈 앞의 상황을 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왕표가 도망친 후로 그들도 이렇게 높은 사기를 본 적이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그저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큰 힘과 자신감을 줄 수 있었다.동시에 북명왕이 여기에 서 있다는 건 소문들에 대한 가장 좋은 비판이었다.하나의 소문이 헛소문으로 되자, 병사들은 다른 소문도 거짓일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여묵은 손에 있는 장검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고작 이십만의 적군일 뿐이고 우리에게 패배한 군대인데, 우리 남강군이 그들을 두려워하기라도 한다는 것이냐? 크게 외쳐보거라. 그들이 두렵느냐?” 그러자 병사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 “두렵지 않습니다.” “두렵지 않습니다.” 사여묵은 말을 타고 행렬 사이를 거닐며 목소리를 높였다. “큰 소리로 말해보거라. 사국을 이길 수 있겠느냐?” 그러자 병사들이 천지가 진동할 것 같은 소리로 외쳤다. “할 수 있습니다.” “어디 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 있느냐? 있으면 나와보거라!” “없습니다.” 사여묵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하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굳건함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햇빛이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19화

    이때 칼국수 한 그릇을 내왔는데 사여묵의 배를 채우기엔 부족해 보였다. 그러자 제린이 사람들에게 양고기를 구우라고 시켰다. 지금의 군영은 예전과 달리 식량이 많이 있어 백성들도 마음껏 고기를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사여묵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그릇을 들고 국물을 다 비워냈다. 국물이 짜고 맛이 강해서 그는 물 한 주전자를 마시고 나서야 체력이 서서히 돌아오는 것을 느끼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아직도 말 위에서 흔들리고 있어, 눈앞의 사람들이 다 뒤로 물러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그들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오군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왕야께서도 많이 지치셨지요?” 사여묵이 자신의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군의를 불러와 내 얼굴에 침을 놓으라고 하거라. 하도 바람을 맞아 얼굴이 돌아간 것 같아.” 눈을 똑바로 떠 보니 사여묵의 얼굴은 확실히 약간 삐뚤어져 있었다. 그때 제린이 물었다. “원수께서 여기까지 오는데 조금도 휴식하지 않으셨지요?” “어떻게 쉬겠어?” 이어서 사여묵이 중대한 소식을 전해주었다. “내가 꾀병을 부려서 몰래 전장으로 온 것이야.” 그는 허약한 손으로 한 무더기의 약을 꺼내더니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사실 꾀병을 부린 게 아니라 진짜 아팠지. 여기로 오는 길에 이 약들을 먹어야 하는데 가끔은 잊어서 먹지를 못했어. 지금이라도 먹지 않으면 송 장군이 날 때려죽일 것이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서로 마주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사람을 보내 군의를 불러와 왕야의 몸을 진단한 후에 다시 얘기하기로 했다. 군의가 먼저 맥을 짚더니 말했다. “어찌 이렇게… 허약하십니까?” 그러자 방천허가 다급하게 물었다. “심각합니까?”군의가 말을 하지 않자 사여묵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천천히 회복하면 되니까 다들 긴장하지 말거라.”그러자 군의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이미 원기를 상했으니 아마 단기간엔 회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20화

    사여묵처럼 태어났을 때부터 전쟁 체질인 사람이 있다. 전장에서의 사여묵은 진성에서보다 훨씬 과감했는데, 심리적으로 속박을 받지 않으니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3일동안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 모두 체포했다. 그들을 연병장으로 끌고 가서 곤장으로 20대 때리자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묻는 대로 대답했다. 그들은 누가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고 단지 돈을 받고 소식을 퍼뜨리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이라고 했다. 그들은 명령에 따랐을 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까지는 상관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국의 80만 대군이 국경까지 쳐들어왔다는 소문과, 북명왕이 바로 이 자리에 있으니 숙청제가 북명왕을 죽였다는 소문도 역시 사실이 아니게 되었다. 왕 원수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도망갔다는 소문도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죽음이 두려워서 도망간 것이었다. 헛소문이 하나둘씩 밝혀지자 병사들은 격분해서 그들을 죽여야 한다고 소리쳤다. 헛소문을 퍼뜨려 군심을 흔들었으니 당연히 때려죽여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여묵은 차가운 눈빛으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보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애초에 헛소문을 믿었던 사람들은 모두 반성하거라. 반성한 후엔 남은 전투에 최선을 다하고.” 군심을 흔드는 자는 적군이니, 적군의 피는 첫 전투의 패배로 인한 좌절을 씻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큰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소문을 퍼뜨린 자를 곤장으로 때려죽인 후 사여묵은 제린에게 북명왕이 남강에 왔다는 급보를 진성으로 보내라고 했다. 그리고 황제의 지시가 없어도 자신의 명령에 따를 것인지 물었다. 하지만 급보를 보낸 지 사흘 만에 황제의 지시가 도착했다. 사여묵은 조금 의외였지만 송석석이 한 것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 왕표가 도망쳤다는 소식이 진성으로 전해지마자 송석석이 반드시 성지를 청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제린에게 진성으로 급보를 보내라고 한 이유는 황제에게 남강군은

Latest chapter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91화

    그러자 송석석이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왕씨 가문에서는 그녀를 아주 잘 대해줍니다. 조카딸의 혼담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집간 부군이 잘 대해준다 하더군요. 다만 그녀는 자신이 두 번 시집갔음에도 처가에 머무는 것이 조카들에게 미칠 영향이 걱정되어 그러는 모양입니다.”그 말에 전북망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순간 번개처럼 날렵하지만 마음씨 따뜻한 최씨 부인이 떠올랐다. 최씨 부인에게는 적자와 서자녀들이 있었고, 아직 혼담이 정해지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혼인 문제로 얼마나 많은 유언비어에 시달렸을지 생각하니, 전북망은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형수로서의 최씨 부인을 존중하며,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 없었다. 이때 송석석이 그의 생각을 끊었다. “그럼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전북망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물었다. “우리 단둘이 여기에 있으면, 섭정왕이 질투하지 않을까요?” 송석석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당황했으나, 곧 침착하게 답했다. “이 정도 신뢰도 없다면, 제가 어찌 현갑군 지휘사로 오래 근무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서로 숨김없이 모든 걸 공유합니다. 이번 만남 역시 그분께 이미 알려두었죠.”송석석이 떠나자 전북망도 따라나섰다. 그는 섭정왕이 어딘가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의심했지만, 정작 별청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앞마당에서야 섭정왕을 발견했는데, 그는 대장군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송석석을 보자 미소로 맞이하며 불러세우는 섭정왕의 모습에 전북망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진정한 부부란 저런 것일까.'그러나 성릉관이든 진성이든, 남녀의 단독 만남은 명예에 흠이 될 수 있음도 잘 알았다. 특히 높은 지위에 오른 이들은 더욱 조심해야 했다. ‘내가 무슨 권리로 그들을 걱정하는가.’자조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왕청여의 제안은 여전히 그의 가슴을 두드렸다. 5일의 고민 시간이 주어졌다. 사여묵과 송석석이 진성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최씨 부인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답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90화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 전북망은 송석석과 다시 만났다. 사실 그전에도 송석석이 성릉관으로 갔을 때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서먹해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이 매번 성릉관을 떠날 때마다 몰래 배웅하곤 했다. 전북망은 자신이 당시 어떤 마음으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늘 송석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방과 왕청여에게도 미안하긴 하지만, 그들과는 서로 감정을 소모하고 다투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장군부만 송석석에게 상처를 줬을 뿐, 송석석은 장군부에게 조금의 상처도 주지 않았다. 비록 이혼한 후에는 전북망 어머니의 병세에 대해 상관하지 않았지만 큰형수에게 어떻게 단설환을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기까지 했다.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는 이미 섭정 왕비가 되어있고 나서였다. 변방의 전사들에겐 양식과 무기가 풍부하고, 봉록까지 올라, 그들에겐 이득이기에 이제는 조정의 정세에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었다. 섭정왕은 한때 장수였기에 병사들이 배불리 먹어야만 국토를 지킬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북망과 송석석이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섭정왕과 함께 소 대장군에게 생신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그녀를 보는 소 대장군의 눈빛은 여전히 자애롭고 인자했다. 전북망은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그 광경을 보며, 그때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면 지금 송석석과 함께 노장군의 생신을 축하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일 것이라는 후회를 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같은 생각인 걸 보니, 자신만 제자리에서 멈춰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도 송석석과 대화를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생일잔치가 끝난 후에 송석석이 뜻밖에도 먼저 그를 찾았다. 그와 송석석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섭정왕은 이상한 소문이 날까 봐 걱정되지도 않는가?’전북망은 당황하고 불안해 보였고, 송석석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먼저 입을 열지도 못하고 송석석이 말하기만을 기다리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9화

    전북망은 성릉관에서 몇 년 동안 두 번이나 발탁되었고, 지금은 장군의 신분으로 수천 명의 병사를 관리하고 있다. 계속 성릉관에 주둔하고 있어 다시 진성으로 돌아간 적이 없었고, 진성의 부름 없이는 제멋대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는 재혼도 하지 않고 여전히 혼자 살아갔다. 성릉관의 모래바람은 해마다 그의 얼굴에 흔적을 남겨 또래들보다 몇 살이나 더 늙어 보였다. 심지어는 몇 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기에, 진정제를 먹어야만 잘 수 있었다. 그는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그때 이방과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송석석과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부부가 되었을까? 아마도 우린 귀여운 자녀도 낳았겠지. 그리고 나는 군대에서 열심히 일하고 석석은 가문의 내무를 책임지며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를 돌보고 있었겠지? 설령 내가 승진을 하지 못하고 평생 장군으로만 살아도 그는 날 떠나지 않았겠지.’ 이전의 전북망은 송석석이 하늘을 나는 독수리였는데 자신을 위해 날개를 부러뜨리고 병든 시어머니를 돌보며 군부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책임지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그가 알아차렸을 땐 이미 돌이킬 수도 없었다. 전북망에게는 이미 이방이 있었고 이방을 사랑한다고 했으니, 송석석이 이혼하자고 했을 때 그는 심한 말을 하고 후회하지 말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송석석 또한 후회할 게 없었다. 이혼을 하면서 전북망을 위해 부러뜨렸던 날개가 다시 자라나 전쟁터로 날아가 쉽게 공을 세웠으니까 말이다. 이방은 송석석이 큰 가문의 아가씨인 데다가 부친과 오라버니가 그를 위해 길을 닦아주었기에 이런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의 성공은 그의 능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문이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주된 원인은 아닐 것이다. 만종문에서 송석석의 무공은 거의 최고였는데, 그건 송석석이 그만큼 노력을 했고, 그만큼 땀을 흘렸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전북망은 송석석을 존경했지만 그는 자신이 송석석을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8화

    어머니께 간청해도 소용이 없자 신이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온 건 더 심한 꾸지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신이가 이 혼사를 반대하는 것은 양지춘과 접촉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양지춘에게 그녀를 데리고 나가서 놀며 감정을 쌓으라고 했다. 신이는 가기 싫었지만 어머니가 억지로 그녀를 마차에 태웠고, 심지어는 하녀에게 그녀가 부적절한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엄명했다. 양지춘의 얼굴은 그나마 멀쩡하게 생겼는데, 처음에는 신이를 조금이나마 존중하는 척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본성을 드러냈다. 그는 신이의 외모와 품평을 논하며 신이가 외모가 예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그를 부인으로 들이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그의 오만한 태도는 신이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단지 이것뿐이었다면 아마도 신이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양지춘은 일부러 신이를 마차에 태워주는 척하며 그녀의 엉덩이를 꼬집었다!그 순간 신이는 온몸의 피가 머리 위로 솟구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경박한 눈빛에 신이는 이내 눈물이 쏟아졌고, 모욕감에 온몸을 떨었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집에 돌왔는데, 하녀와 마부는 그의 동작을 보지 못한 탓에, 오히려 그가 세심하고 자상하다며 그녀의 어머니 앞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이는 억울해서 어머니에게 그 일을 말했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그녀가 일부러 꾸민 말이라고 생각해, 그녀를 꾸짖으며 사흘 동안이나 외출을 금지했다. 신이는 그렇게 방에 갇혔고, 매일매일을 눈물로 얼굴을 씻었다. 심지어 그날 선비의 말을 듣고 호수에 뛰어들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다. ‘내가 양지춘에게 시집가는 것이 물에 빠져 죽는 것과 대체 무엇이 다른가?’ 사흘 후, 외출 금지가 해제되자마자 신이는 다시 경산사로 가서 같은 핑계로 하녀를 내보냈다. 이번엔 정말 죽을 각오로 호숫가에 간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다시 그 선비를 만났다.그는 쓸쓸하게 호숫가에 앉아 작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7화

    신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한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고, 나무 그늘에 몸이 가려져 있었다.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초라해 보였고 눈 밑에는 검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바로 다리 앞에서 그림을 팔던 선비이자, 학정이 말하던 퇴학 해서 기녀를 키우는 학생이었다!“헛소리하지 마십시오.” 신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짜증을 냈지만, 그가 한 말을 떠올리자 내심 두려웠다. “나는 여기에 물귀신이 있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거짓말하는 것이겠지요.” 신이는 죽음은 두렵지 않았지만, 귀신은 두려웠고 진흙탕에 영원히 깔려 있는 건 더욱 두려웠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가 걸어 나오자 얼굴은 더욱 여위어 보였다. “호숫가의 주변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보러 오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그건 사람들이 이곳으로 예불하기 위해 오는 것이지, 경치를 보러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절을 하고 바로 돌아가니 당연히 보지 못하겠지요.” 신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순간 깊이가 보이지 않는 호수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그는 여전히 굳게 서서 말했다. “예불하는 사람은 천지와 자연을 경외하기 때문에 이런 좋은 경치가 있다면 반드시 한 번 보러 올 것입니다. 이런 곳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좋은 곳일 텐데 아무도 없다는 게 아기씨는 이상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것이 사실인지는 몰랐지만, 그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감히 그런 무서운 곳에서는 죽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그러자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 절대 쉽게 자신의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고 싶어도 살 지 못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의 말이 이상하게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눈 밑은 이내 붉어졌고 눈물이 고여 반짝이는 것 같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6화

    신이의 사촌 여동생과 하녀는 신이를 찾으러 돌아왔다. 신이가 하녀보고 이순에게 삼백문을 주라고 하자 이순은 웃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원래는 우연한 만남일 뿐이라 다시는 접점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 조모님의 생신 때 가문 연회에서 공학정이 데리고 온 제자들 중에 이순이 있었다. 강남의 예의 규율은 진성처럼 엄격하지 않아서 연회에 참석할 때 여인들도 앞마당에 갈 수 있었다. 이순은 신이를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신이는 그때 면사포를 쓰고 있었고 두 눈만 드러냈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순은 식사를 하지 않고, 신이의 조모에게 생신 축하 그림만 드린 후에 집에 일이 있다며 작별을 고했다. 그가 떠나자마자 학정이 그를 언급하며 안타까운 말투로 말했다. “총명하긴 한데 진취심이 없어서 계속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걸 여기로 데려와 진취성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사귀게 하려고 했는데… 이 정도로 사리분별을 할 줄 모르다니. 정말 실망이군. 학교를 그만두겠다면, 이젠 마음대로 하라고 해야겠어.” 그러자 신이의 부친이 위로했다. “화내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껜 학생이 많으니 그가 나간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건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학정은 마치 울화가 쌓인 것처럼 말했다. “그는 내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네. 그런데 진취성만 없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동창에게 돈을 빌리질 않나, 게다가 집에 기녀까지 키우고 있다더군.” 신이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을 가장 싫어하였다. “그런 사람은 얘기할 가치도 없습니다.” 신이는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서 왠지 마음속으로 실망감이 가득했다. 아마도 그날은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같다고 생각해 마음이 갔던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달 후, 신이의 혼사도 낙착되었다. 그녀의 약혼자는 회주 지부의 둘째 아들인 양지춘이고, 올해 22살이었다. 22살인데도 결혼하지 않았던 건 첩을 통해 서자를 낳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좋은 가문은 그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5화

    그의 이름은 신이었는데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 대해서 말할 때, 경멸하는 기색을 띠었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모르는 사람까지 모두 침을 뱉으며 뻔뻔하다고 할 정도였다. 알다시피 애인과 야반도주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것보다 더 욕먹을 일이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후회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녀는 시집간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죄책감을 느끼긴 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시 씨 가문의 명성이 손상되어 형제자매들과 조카들이 혼사에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신이는 시 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태어날 때부터 온갖 보살핌을 받아왔다. 먹는 것은 물론 모두 산해진미이고, 입는 것도 모두 능라 비단이었다. 게다가 보모님과 오라버니의 총애까지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한 가지 결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열네 살 때까지 월사가 오지 않은 것이었다. 많은 의사들을 불러 진찰을 받고 밤낮으로 약을 먹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몸이 차서 그러니 몸조리를 하면 나을 수 있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몰래 의사가 부모님께 하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그가 몸이 차서 그런 병이 생긴 것이 아닌, 아이를 키우는 곳이 어린아이와도 같아서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마치 작은 꽃병과 같아서 꽃을 꽂을 수는 있지만 나무를 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건 불가능하다고 비유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건 여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녀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서 부군에게 첩을 들인 후, 첩이 낳은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우라고 조언해주었다.시 씨 가문이라는 후원이 있으면 그녀가 아이를 낳을 수 없어도 아무도 그녀의 지위를 흔들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 씨 가문의 재물은 그녀가 평생 부귀하게 살기에 충분했다. 신이의 조모도 그녀에게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자세를 낮춰야 한다고 했다. 시 씨 가문의 딸이라고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4화

    추운 겨울이 되자 눈이 내려 성릉관은 하얗게 뒤덮였다. 세상이 마치 깨끗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황자는 몇 년 동안 너덜너덜한 승복을 입고 발우를 받쳐 들고는, 가는 길에 동냥을 하다가 절을 보면 이틀 묵으며 부처님께 참회하면서 살았다. 사실 그는 원래 있던 절에서 계속 지낼 수 있었다. 편안하진 않지만 풍찬노숙할 필요도 없고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런 안일한 곳에서는 평생 죄를 씻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계속 길을 걷고 계속 고생해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했다. 그가 성릉관에 도착했을 때 짚신은 이미 찢겨 있었고 발바닥에는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이제는 신발을 신지 않고도 자갈이 가득한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추운 날씨에는 모든 옷을 껴입어도 추위를 막을 수 없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뒤였다. 그는 눈보라를 맞으며 성릉관에 위치한 감은사로 향했는데, 몇 년 동안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는 탓에 고단함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심지어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 그는 눈이 가득 쌓인 길에서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그는 따뜻한 두꺼운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그가 있는 방에는 숯불이 피워져 있었고, 살짝 열린 창문으로 눈에 눌려 허리가 굽은 나뭇가지가 보였다. 그는 눈동자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순간 욕심이 생겨 조금만 더 누워있고 싶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이 활짝 열렸다. 그가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갑자기 눈앞이 핑핑 돌더니 다시 힘없이 침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거라.” 이때 누군가가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면서 약그릇을 그의 침대 옆에 놓았다. 그는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익숙해, 어지러움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돌려보니, 그 사람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서우 형?!’ 그는 자신이 잘못 보았을까 봐 다시 자세히 보려 했지만, 몸이 너무 어지러운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3화

    대황자는 봄 사냥 때 숙청제에게 꾸중을 듣고 돌아간 후 앓아누웠다. 당시 이황자와 서우가 모두가 걱정했는데 덕비는 오히려 기뻐했다. 그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황제폐하께서는 분명히 대황자를 싫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덕비는 이황자를 안고 반드시 부지런해야 하고, 태부와 황숙의 말을 잘 듣고 누구보다 잘 배워 황형을 제압해야 한다고 당부까지 했다. 그로 인해 이황자의 마음은 몹시 복잡했다. 덕비가 줄곧 그에게 태자와 황제가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지 말해주었을 때 비록 그도 마음이 설렜지만 자신과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그와 대황형, 서우 형, 그리고 셋째 동생이 사이가 좋아 도저히 대황형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매일 모순적으로 지내다 보니 오히려 학업이 나빠졌고 승마 연습을 할 때도 여러 번 실수를 했다. 하지만 덕비는 이상하게 그를 탓하지 않았고 며칠 동안 계속 게으르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덕비는 이황자를 데리고 복마마를 자주 뵈러 갔고, 복마마 궁전에서 숙청제를 만날 수도 있었다. 덕비는 며칠 동안 그곳을 드나들더니 어느 날 굳은 표정으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차가운 말투로 청이에게 자신의 보살핌이 없으면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지 보겠다고 했다. 황제폐하를 자주 뵈러 갈 수 없어 아쉬웠지만 이황자는 마음을 가다듬고 공부와 승마술에 전념했다. 이황자는 당시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몰랐고, 비록 매일 힘들긴했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웠기에, 계속 이렇게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숙청제의 천추세에 승마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니 세 황자와 서우도 가서 겨뤄 보기로 했다. 원래 그런 대회에서 황자들은 재미있게 참석만하면 되지만, 덕비는 그 경기를 몹시 중시했다. 덕비가 이황자에게 마름쇠를 건넬 때, 그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황자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황형의 목숨을 앗으려 하다니, 이황자는 처음으로 어마마마가 무서워졌다.하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