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똑......물방울이 나상준의 머리카락을 타고 바닥에 떨어져 맑은 소리를 냈다.물줄기는 그의 몸을 따라 매끄러운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다시 하수구로 흘러가더니 가느다란 물 흐름소리가 들려왔다.모든 것이 이토록 정상적이고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었다.나상준은 아무런 기척도 없는 샤워기를 한참 바라보더니 가운을 입고 욕실을 나섰다.예전 같으면 이 시간에 바깥의 등불은 모두 밝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칠흑처럼 어두웠고 침실도 마찬가지다.나상준은 어두운 바깥을 보며 휴대폰을 들어 허영우에게 전화를 걸었다.“대표님.”“정전이야.”허영우는 멈칫하더니 모처럼 멍해졌다.정전?대체 무슨 말씀일까?허영우가 곰곰이 생각하는 사이, 나상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집안 전기요금은 누가 냈었지?”이 말에 허영우는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차우미와 나상준이 이혼하던 그날, 그녀는 허영우에게 메일 한 통을 보냈다. 차우미는 집안의 주의 사항과 해야 할 일, 그리고 세부 사항들을 꼼꼼히 메일로 작성해 보냈다.허영우는 메일을 확인했고 또 알고 있었지만 너무 바쁜 탓에 까맣게 잊고 있었다.메일 속의 여러 사항은 그녀가 이미 다 처리해 두었으니 허영우는 그저 기억만 하면 된다.그러다 보니 잊고 있었다.허영우가 다급히 말했다.“사모님이 냈었어요. 전에 사모님이 메일로 알려주셨는데, 제가 깜빡했어요.”“죄송합니다, 대표님. 지금 바로 처리할게요.”“그래.”통화가 종료되었다.나상준은 휴대폰을 던져두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날은 아직 완전히 어두워진 것은 아니다. 집안의 모든 것이 아직 마지막 빛에 비추어져 아주 희미하게 보였다.나상준은 바에 있는 냉장고를 열었다.그는 목이 말라서 물을 좀 마시려고 했다.하지만 열어보니 냉장고는 텅 비어있었다.그는 멍하니 먼지 하나 묻지 않은 깨끗한 냉장고를 바라보다가 한참 뒤 부엌으로 향했다.부엌에도 냉장고가 있었다. 차우미가 이 집에 있을 때, 그 냉장고는 항상 꽉 차 있었다.하지만 열어보니 역시나 텅
산의 기후는 일정치 않았다. 특히나 진달래 산은 더 그러하다. 차우미와 온이샘이 절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보슬비는 산과 나뭇잎에 떨어져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두 사람은 방을 예약한 뒤 간단히 씻고 절밥을 먹으러 갔다.이 계절은 진달래가 만개할 때라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 진달래를 감상했다.하지만 절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절밥을 먹는 사람도 아주 적었다.서서히 밀려오는 어둠과 함께 빗소리가 자욱하여 절 안은 더욱 적막해졌다.차우미와 온이샘은 그저 가끔 나지막한 목소리로 두 마디씩 나눌 뿐, 되도록 조용하게 식사를 마쳤다.하지만 두 사람이 식사를 끝내고 일어서려 할 때, 갑자기 쨍그랑 소리와 함께 그릇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부서졌고 남은 음식도 덩달아 바닥에 전부 엎질러졌다.차우미는 멈칫하더니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한 젊은 여자가 벌떡 일어나 맞은편에 앉은 남자에게 삿대질하며 소리를 질러댔다.“오기석, 너 그게 무슨 말이야? 여기까지 같이 온 게 억울해? 내가 똑똑히 말하는데, 억울해도 참아!”여자는 의자를 발로 걷어차고 뒤돌아섰다. 남자는 거기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더니 사람들의 시선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차우미는 시선을 거두고 휴지를 꺼내 온이샘에게 넘겨주었다.온이샘도 그 장면을 보았지만 차우미를 따라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가지런히 접힌 휴지를 바라보며 온이샘은 저도 몰래 미소를 지으며 건네받았다.“고마워.”두 사람은 곧 식당을 나섰다.밖은 아까보다 더 어두워졌고 절당 안의 등불만이 환히 빛나며 산을 밝게 비추었다.비는 여전히 세게 오지 않았다. 아까처럼 가늘고 촘촘하게 산에 뿌려져 흰 안개를 만들었다.“공기 좋다.”두 사람은 걸어 나와 절을 둘러보았다.도시의 소란스러움과 고층 건물을 벗어난 이곳은 고요함으로 사람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차우미는 절의 건물과 조각을 열심히 관찰했다.온이샘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응했다.“진달래 산 공기는 정말 좋아. 그래
그렇다. 휴대폰 화면에 뜬 발신자는 다름 아닌 나상준이다.주변은 고요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심지어 가느다란 빗소리마저 사라져 버린 듯했다.차우미는 휴대폰 화면에 표시된 발신자를 보고 잠시 머릿속이 하얘졌다.기억 속의 나상준은 한 번도 그녀에게 먼저 전화를 걸지 않았다.무슨 일이 있으면 허영우가 그녀를 알리면 알렸지 나상준이 직접 알린 적은 없었다.마치 그녀가 그에게 전화를 거의 하지 않는 것처럼.그런데 지금 나상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차우미에게 있어 이런 일은 마치 하늘에 핀 꽃을 보는 것처럼 몽환적이라 믿어지지 않았다.휴대폰은 아직도 윙윙거리며 손바닥에서 진동하고 있다.그 진동은 그녀에게 이것은 진실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그녀는 손끝을 움직여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그녀의 가랑비를 머금은 것 같은 잔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마치 비 오는 그날 밤, 이혼을 제기하던 그때처럼 말이다.바 앞에 서서 컵을 들고 물을 마시던 나상준은 그녀의 잔잔한 목소리에 동작을 멈추었다.“물 안 나와.”찬물이 나상준의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흘러 내려갔고, 나상준은 개운함을 느꼈다.그럴 줄 알았다. 나상준은 급한 일이 있기에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그는 워낙 쓸데없는 말을 하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중요한 말만 했었다.휴대폰 저편에서 들려오는 무거운 목소리에 차우미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수도 요금 안 낸 거 아니야?”“몰라.”나상준은 정말 모른다.나상준은 매일 회사 일로 바쁘다 보니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집안일은 하나도 몰랐다.그녀는 의미 없는 질문을 했다.“샤워하다가 단수된 거야?”그녀는 아마도 이런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응.”“기다려 봐. 내가 낼게.”말을 끝낸 차우미는 휴대폰 앱으로 수도 요금 10만 원을 냈다.별장에서는 수도 요금보다 전기 요금이 더 많이 들었다. 아무래도 면적이 크다 보니 전기가 많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별장에서 나오기 전, 그녀는 이미 모든 걸 확인
종료 버튼을 누르려던 손가락은 그대로 멈췄다.“선배.”차우미는 온이샘에게 다가갔다.온이샘은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통화 끝났어?”“응.”온이샘은 스님을 향해 합장하고 고개를 숙였다.“그럼 먼저 일 보십시오.”스님은 저녁 수업이 있어 지금 당장은 시간이 없다고 했다.스님도 합작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돌아 떠났다.차우미는 멀어져가는 스님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확실히 스님이 우리보다 이 진달래 산에 대해서 더 잘 아실 거야.”그 스님은 대략 예순, 일흔의 나이로 이 산에서 오래 산 것이 분명해 보였다.온이샘이 스님에게 진달래 산의 상황을 여쭈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맞아. 나중에 스님을 찾아뵈어야겠어.”차우미는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계속 앞으로 걸었다.날이 아까보다 더 어두워지니 절의 등불은 더욱 밝아졌다.다만 밤이 깊으니 안개가 짙어졌고, 등불이 안개 속을 가득 메워 주변이 몽환적으로 물들었다.두 사람은 한가롭게 걸었다. 이 고요한 밤, 그들의 발소리는 평화롭게 들려왔다.그런데 갑자기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차우미는 외투를 걸치지 않았고, 쌀쌀한 바람은 산의 서늘한 기운과 한데 섞여 그녀는 저도 몰래 추위에 몸을 떨었다.그 모습에 온이샘은 즉시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걸쳐주었다.차우미는 멈칫하더니 이내 사양했다.“괜찮아, 선배.”“나한테 뭘 사양해. 너 이러다 감기 들면 내가 어떻게 너희 부모님께 설명하겠어?오늘 아침에 분명 두 분에게 약속드렸단 말이야.”온이샘은 옷을 움켜쥐고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하지만 우연히 손끝이 그녀의 어깨에 닿았고, 그는 저도 몰래 손을 움츠렸다.다만 아주 미세한 이 터치로 그는 그녀의 피부와 체온을 느꼈고,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뛰기 시작했다.차우미는 이런 과분한 친절을 받아들일 수 없어 거절하려고 했다.하지만 온이샘의 말을 들은 그녀는 자기가 너무 예민하다고 생각했다.온이샘은 확실히 좋은 사람이다.그는 늘 차우미에게 신경 썼고, 그녀가 아플까 봐 걱정했다.
방에 돌아온 차우미는 깨끗이 씻고 잠자리에 누웠다. 시간은 이제 9시를 가리켰다.늦지 않은 시간이지만 오늘 아침에도 일찍 일어났고, 등산을 한 탓인지 잠이 몰려왔다.그녀는 눈을 감고 오늘 하루를 돌이켜 보았다. 그리고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을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잠이 들었다.“가겠다고?”“오기석, 내가 똑똑히 말하는 데 절대 안 돼!”“......”“하하, 좋아. 이리 와. 나 때려 봐!”“......”“퍽!”“......”“오기석, 너 가만히 안 둬!”“......”차우미는 멀리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를 들었지만 오랜만에 등산을 한 탓에 온몸이 쿡쿡 쑤셔 일어나지 않았다.이따금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몸싸움하는 소리도 들렸지만 점차 그 소리는 사라졌다.모든 것이 조용해졌고 그녀는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연기가 풍겨왔다.숨을 쉴 수 없었다.차우미는 무의식적으로 기침을 하며 눈을 떴다.방 안에는 언제 연기가 피어올랐는지, 그 연기는 방 안 가득 자욱이 퍼져있었다.차우미는 완전히 잠에서 깨어났고, 그 냄새는 그녀의 후각을 자극했다.정신을 차린 차우미는 입과 코를 막고 사방을 둘러보았다.방안에 불은 나지 않았지만......차우미는 벽 사이로 스며 나오는 연기를 보고 재빨리 옷을 걸치더니 문을 열고 나가 옆방으로 들어갔다.옆방은 이미 문이 활짝 열렸고, 그녀는 방 안의 상황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그녀의 방과 연결된 벽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저녁에 식당에서 밥을 먹고 그릇을 떨어뜨린 젊은 여자가 바닥에 누워있었는데 그녀의 이마는 피로 물들었다.차우미는 깜짝 놀라 안색이 확 변했지만 워낙 차분한 성격이라 우선 주위를 둘러보며 큰소리로 도움을 청했다.“누구 없어요? 여기 불 났어요, 사람이 다쳤어요!”그녀는 사람을 부르며 안으로 들어가 여자의 앞에 쪼그리고 앉더니 여자의 코에 손을 가져다 대고 숨결을 살펴보았다. 숨이 붙어있다.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갑작스러운 화재와, 여자의
그 상황을 발견한 차우미는 망설임 없이 달려가 엎어지려는 병풍을 옆으로 밀어냈다.쾅 하는 소리와 함께 병풍이 넘어졌다.온이샘은 안색이 하얗게 질려 그녀의 손을 바라보며 외쳤다.“차우미!”“선배 빨리 나가!”그녀는 손바닥에서 전해오는 고통도 잊은 채 온이샘을 잡고 밖으로 당겼다.시끄러운 소리에 다른 방에서 쉬던 사람들도 잠에서 깨어 분분히 밖으로 나와 상황을 확인하더니 황급히 달려갔다.어떤 사람은 신고 전화를 걸었고 어떤 사람은 손을 거들었으며 또 어떤 사람은 불을 끄려고 시도했다.소방차 경찰차 그리고 구급차가 올 때까지 모두 한마음으로 움직였다.차우미와 온이샘은 사고 현장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목격자였고 차우미는 병풍을 밀다가 다쳤기에 여자를 따라 구급차에 올라 병원으로 향했다. 물론 온이샘도 함께 구급차에 올랐다.병원에 도착하자 여자는 바로 응급실로 옮겨졌고 차우미도 손의 상처를 치료하러 갔다.하지만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경험있는 구급대원이 그녀의 상처를 간단히 처리해 주었기에 병원에 도착한 후 의사는 그녀의 화상을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다행히 화상이 심하지 않고 제때 처리도 잘했기에 흉터는 남지 않을 것 같네요. 아직 나이가 젊으니 흉터를 남기지 않는 게 좋죠.”차우미의 안색은 고통으로 인해 미세하게 창백해졌다. 급한 상황에서 그녀는 아픈 줄도 몰랐고 나중에야 통증이 전해졌다.특히 이 순간, 그녀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의사의 말을 들은 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다행이네요.”그 상황에서 그녀는 생각할 틈이 없었다. 심지어 생각도 안 하고 그녀는 그런 행동을 했다.후회는 없었다.흉터가 남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온이샘은 차우미 옆에서 거즈로 꽁꽁 싸맨 그녀의 손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안색은 그녀보다 더 창백했다.‘나 때문에 다쳤어. 내가 지켜주지 못했어.’두 사람은 주의 사항을 들은 뒤에 진료실에서 나갔다.온이샘은 차우미에게 말했다.“일단 앉아서 좀 쉬어. 내가 가서 약 받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온이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내가 책임질게.”“알았으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곧 돌아올게.”“그래.”온이샘이 떠난 뒤, 차우미는 그 자리에서 멀어지는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선배가 없었더라면 그녀와 그 여자는 더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잠시 후, 온이샘은 약을 가지고 돌아왔다. 두 사람은 함께 응급실로 향했다.응급실 밖에는 형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차우미는 그 젊은 여자의 상태가 무척 궁금했다.그들은 형사들에게 오늘 밤에 벌어진 상황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을 상세하게 진술했다.“알겠습니다. 이 정도면 될 것 같아요. 날이 밝았으니 두 분도 어서 돌아가서 쉬세요.”“나중에 궁금한 점이 있으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차우미와 온이샘은 형사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병원을 떠났다.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마무리했으니 나머지는 형사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어느새 동이 트기 시작하고 시간은 다섯 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병원을 나온 차우미는 청량한 새벽 공기를 맡으며 피곤한 얼굴로 하품을 했다.이렇게 밤을 새운 적은 거의 처음이었다. 긴장감이 풀리자 피곤이 몰려왔다.다친 손은 소독하고 연고를 바르자 점점 통증이 옅어지고 있었다.온이샘은 새빨갛게 충혈된 그녀의 눈을 보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일단 호텔로 돌아가서 씻고 좀 쉬어야겠다. 남은 일은 쉬고 나서 다시 얘기하자.”차우미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두 사람은 전에 묵었던 호텔로 돌아갔다.그런데 문제가 조금 생겼다.씻고 싶은데 손의 부상 때문에 씻기가 불편했다.화재 현장에서 사람을 구하느라 진땀을 뺏더니 온몸에 매캐한 냄새가 진동하고 몸은 땀범벅이 되어 끈적거렸다.차우미는 난감한 표정으로 붕대를 칭칭 감은 손을 내려다보았다.그녀는 그제야 이 손으로는 간단한 일마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체감했다.온이샘은
커튼이 열려 있는 방 안에는 햇살이 비쳐들어 소파에서 자고 있는 여자의 얼굴을 밝게 비추었다.길게 늘어진 검은 생머리가 소파에 자연스럽게 펼쳐져 있고 그녀는 몸을 웅크린 채 자고 있었다.길게 드리워진 속눈썹이 자연스럽게 눈밑에 그림자를 만들었다.온이샘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자고 있는 차우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많이 피곤한 탓인지 사람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그녀는 계속 자고 있었다.그는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침대에서 이불을 챙겨 그녀의 몸에 덮어주었다.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녀의 하얀 얼굴에 부자연스러운 홍조가 드리운 게 보였다.호흡도 평소보다 거칠었다.온이샘은 화들짝 놀라며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불덩이 같았다.“우미야.”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은 듯, 그녀는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온이샘은 그대로 그녀를 품에 안고 호텔을 나왔다.그 시각 청주시.어젯밤 밤새 내린 비로 공기 중에는 짙은 안개가 드리웠다. 아침해가 뜨면서 안개는 조금 걷혔지만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다.나상준은 평소처럼 일어나서 트레이닝을 갈아입고 조깅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정장으로 갈아입고 출근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계단을 내려가던 그는 떨떠름한 얼굴로 걸음을 멈추었다.거실의 소파에 어머니 문하은이 앉아 있었다.옅은 자색 원피스에 하얀색 외투를 걸치고 목에는 같은 브랜드의 스카프를 걸친 그녀는 우아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소리를 들은 그녀는 천천히 커피잔을 내려놓고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지금 출근하는 거니?”나상준은 조용히 그녀에게로 다가갔다.“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소파로 다가가서 앉은 그는 미리 준비된 커피잔을 들었다.아직은 가정부가 출근할 시간이 아니었다. 차우미가 이 집에 있을 때 삼시 세끼는 전부 그녀가 담당했지만 그녀가 떠난 뒤로는 아무도 그의 아침을 챙겨주지 않았다.그 뒤로 나상준은 따로 가정부를 고용했지만 청소만 하고 밑반찬과 저녁을 챙기는 게 전부였다.문하은은 부드러
나상준은 차우미 뒤에서 두 모녀가 포옹하는 것을 지켜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자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느끼고는 흠칫하며 눈을 들었다.차동수는 하선주의 뒤를 따라 입구로 왔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차우미를 보았고, 이어서 딸의 뒤에 서 있는 나상준을 보았다.그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깜짝 놀랐다.사위였던 나상준은 나씨 가문의 후손으로서 언제나 예의가 바르고 사려가 깊었다.나상준의 성격은 보통 사람과 달랐는데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잘 웃지도 않으며 내성적이어서 사람들이 잘 접근하지 못한다.차우미와 나상준이 결혼한 3년 동안 차동수도 사위 나상준과 몇 마디 해본 적이 없어서 여전히 낯설었다.차동수에게 나상준은 아주 훌륭하고 교양이 있는 젊은이였고 동시에 따뜻함도 인간미도 없는 사위이기도 했다.이런 사윗감은 좋다고 하기도 나쁘다고 하기도 애매했는데 차우미만 좋으면 그들은 의견이 없었다.그런데 두 사람이 이혼한 이유가 제3자 때문이라는 것이 제일 의외였다.차동수의 마음속에 나상준은 절대 교양이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일이 발생하고 나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다만 나상준의 신분과 지위를 곰곰이 생각해 봤을 때 있을 법한 일이기도 했다.비록 부모 눈에 자신들의 자식이 제일이겠지만 차우미가 어느 정도인지는 그들도 똑똑히 알고 있었고 또 사람과 사람은 차이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나상준과 같은 훌륭한 아이가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가 아니었다면 절대 차우미와의 결혼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만약 나상준이 차우미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차동수는 절대 두 사람을 만나게 하지 않았을 건데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가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기에 운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얼마 전에 차우미가 나상준과 이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마음이 아팠는데 동시에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맞지 않으면 하루빨리 헤어지는 게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그래서 하선주가 나상준을 못마
차우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아니야. 시간도 늦었고 아빠와 엄마는 이제 주무실 거야. 그러니 상준 씨도 일찍 돌아가서 쉬어.”안평에 오기 전에 나상준은 차은평과 소명진을 보러 온다고 했지, 차동수와 하선주도 만나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기에 차우미는 조금 놀랐다.하지만 그녀는 금방 나상준의 뜻을 이해했다.후배로서 예의상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안 가면 오히려 말이 안 되는 것이다.하지만 차우미는 나상준이 자기 집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 왜 그러는지는 나상준도 잘 알고 있었다.“가자.”차우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나상준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나상준이 말을 마치자마자 차가 그와 차우미 앞에 멈춰 섰다.나상준은 몸을 옆으로 돌리고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차우미를 타라고 했다.차우미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다음에 가. 그리고 상준 씨는 일도 바쁠 텐데 얼른 가서 일해. 굳이 오늘 갈 필요 없으니 나중에 시간이 많을 때 가도 돼.”“지금 시간이 돼.”“...”차우미는 할 말을 잃었다.그녀가 싫어하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왜 굳이 가겠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순간 차우미는 나상준의 깊은 눈동자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차우미의 생각을 아예 모르는 듯 대답이 없는 차우미를 향해 말했다.“계속 이러고 있으면 시간이 더 늦어져.”차우미는 입술을 다시며 열려 있는 차 문을 보더니 잠깐 머뭇거리다가 올라탔다.나씨 가문에서 자란 나상준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차동수와 하선주가 나상준을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겠다고 하니 차우미는 포기했다.차우미가 차에 타자 나상준은 문을 닫고 다른 쪽으로 가서 차에 탔다.그들은 순식간에 청강 아파트를 떠났다.청강 아파트와 차동수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멀지 않았기에 십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게다가 지금 시간은 교통이 막히지 않은 시간이고 도
차우미는 걸음을 멈추고 소명진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할머니, 저는 괜찮아요. 상준 씨는 좋은 사람이고 아무 문제가 없어요. 저도 그렇고요. 저희는 그냥 맞지 않을 뿐이에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소명진은 밤하늘을 바라보더니 평소와 같은 단순하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얼굴이었지만 눈에는 걱정이 많았다.“알았어. 맞지 않으면 다시 찾으면 되지. 우리 손녀가 얼마나 훌륭한데, 꼭 잘 어울리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야.”차우미가 웃으며 소명진을 끌어안더니 소명진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할머니, 저 꼭 행복할 거예요. 저만 믿으세요.”소명진도 웃었다.“그럼, 우리 우미는 꼭 행복할 거야.”차우미와 소명진은 밖에서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고 30분 정도 있다고 신선한 과일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들어서자마자 차우미는 거실의 분위기가 나갈 때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차우미는 나상준과 차은평을 번갈아 보았는데 두 사람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지만, 표정은 모두 달라졌다.나상준의 표정은 여전히 기쁨과 분노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차우미가 예민한 탓인지 그녀는 나상준이 조금 전과 너무 달라진 것 같았다.반면에 차은평은 표정에 명백한 변화가 있었는데 전처럼 웃는 모습이 아니고 근엄하고 위엄이 느껴졌다.차우미와 소명진이 나가자마자 그다지 좋지 않은 대화를 한 모양이다.차우미는 과일을 테이블에 놓으며 말했다.“할아버지, 할머니,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이제 쉬셔야죠. 저희는 이만 갈게요. 나중에 시간이 되면 다시 또 뵈러 올게요.”현재의 시간은 노인들에게 있어서 늦은 시간이 확실하다.차운평은 찻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조금 전의 엄숙한 표정은 차우미 집에 들어오는 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시 인자한 얼굴로 변했다.“우리도 알아. 걱정하지 마. 너도 지금 금방 도착했으니 얼른 집에 가서 쉬어. 너의 부모도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잖아. 그런데 너 몇 달 못 본 사이에 야윈 것 같아.”매년 청주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차우
주변의 공기가 갑자기 응축되면서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 같았다.차은평은 주전자를 들고 나상준을 바라보았는데 조금 전까지 보이던 후배에 대한 사랑은 온데간데없이 엄숙했다.나상준은 허리를 약간 굽혀 주전자를 받으려던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차은평의 진지한 말에 그는 동작을 멈추고 차은평과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네, 사실입니다.”대답을 들은 차은평의 표정은 엄숙하고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낯설게 변했다.그와 동시에 나상준에게 차를 주려고 들었던 주전자를 거두고 테이블에 올려놓았다.나상준은 차은평의 행동에 놀라지 않고 다시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저와 우미가 이혼하게 된 건 제3자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제 문제입니다. 하지만 결혼 3년 동안 절대 혼인 생활을 배신하는 일은 하지 않았어요. 저희 사이에 오해가 좀 있어요. 제3자는 저도 생각을 못 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저의 실수입니다.”차은평은 찻주전자를 내려놓고 자기 찻잔을 들고 마셨다.나상준이 담담한 어조로 하는 말을 들으며 차은평은 잠깐 흠칫하고 눈빛이 흔들리더니 계속 차를 마셨다.그 모습은 나상준의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듣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나상준은 조금은 당황한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할아버지, 저는 우미와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보상하려는 것도 죄책감도 아니고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 때문도 아닙니다. 오로지 우미와 이번 생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차은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를 마시며 눈을 내리깔고 나상준의 말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말을 마치고 차은평을 바라보면서 무슨 말이라도 하기를 기다렸다.두 사람이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거실은 다시 조용해졌다.차은평은 그렇게 나상준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모르는 듯 고요함을 만끽하며 차를 천천히 마셨다.손에 들고 있던 차를 절반 넘게 마시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차은평은 찻잔을 내려놓고 나상준을 바라보았는데 화는 조금 풀리고 미소가 살짝 보였다.하지만 그 미소는
청강 아파트는 도시 중심이 아닌 외곽에 자리잡고 있으며 입주한 지 2년밖에 안 되는 아파트인데 그 옆에는 강이 있고 그 맞은편에는 작은 산이 있다.때문에 청산녹수가 한눈에 보이고 경치가 너무 좋아 어르신들이 살기에 매우 적합한 곳인데 차우미의 조부모님들도 바로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그들은 이제 백발노인이 되었지만, 아파트 앞에서 기분 좋게 오가는 차들을 보고 있었다.차가 멈추려 하자 노인들은 누구인지 궁금해서 차 쪽으로 보고 있었고 차 안에 있는 차우미도 밖에 있는 노인들을 바라보았다.차가 멈추자 차우미는 잽싸게 내려서 노인들에게로 다가가서 손을 잡고 말했다.“할머니, 여기까지 나와서 기다리지 않으셔도 되는데...”오늘 밤 차우미가 나상준과 함께 조부모님 뵈러 가는 것을 하선주는 싫어했지만, 그녀는 그래도 하선주와 통화를 마친 후 조부모님께 연락했었다.그리하여 그들이 아파트에 도착하기 전에 차우미는 할머니 소명진의 전화를 받고 도착 예정 시간을 얘기했다.그런데 이렇게 밖에 나와서 그들을 기다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소명진은 차우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조금 전까지 산책하다가 마침 네가 올 시간이 되는 것 같아서 기다린 거야.”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소명진은 차에서 내려 차우미 옆에 서 있는 키가 큰 사람을 보았다.나상준이 말했다.“할머니, 안녕하세요.”소명진은 나상준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우미를 보고 말했다.“들어가자. 할아버지는 기다리다가 먼저 집에 들어갔어.”“네.”차우미는 소명진의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계속 문질렀다.소명진은 차우미의 일과 생활에 관해 물었고 차우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하나하나 대답했다.나상준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차우미 옆에서 두 사람이 걷는 속도와 비슷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걸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그렇게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고 두 분이 사는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띵. 존경하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비행기는 15분 후에 안평 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착륙 준비를 위해...”기내에서 항공 승무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차우미는 속눈썹을 움직이다가 멍한 표정으로 눈을 떴는데 기내의 희미한 조명과 윙윙거리는 비행기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제대로 한잠을 잤다.무의식적으로 창밖을 바라보니 안평시의 불빛들이 깜빡였는데 밤하늘의 가득 채운 것이 은하수의 별빛처럼 아름다웠다.차우미는 일어나 앉아서 눈을 비볐다.나상준은 옆에 있는 차우미가 일어나면서 담요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잽싸게 손을 뻗어 담요를 잡아 다시 덮어주었다.차우미는 무언가 느끼고 고개를 숙였는데 관절이 명확한 손이 자기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있었다.“고마워”그리고 직접 담요를 가져다가 덮었다.담요를 정리하고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하품하며 계속해서 창문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도시를 바라보았다.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비행기는 점차 하강했는데 익숙한 도시, 고향이 가까워지자,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드디어 돌아오게 되어 그녀는 행복했다.나상준은 미소를 짓고 있는 차우미의 옆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눈에 빛이 반짝거렸고 또 하품으로 인해 살짝 촉촉했다.눈빛에서 나상준은 차우미가 고향으로 돌아와서 너무 행복해하는 것을 느꼈다.어느덧 시간이 흘러 비행기는 유유히 안평 공항에 순조롭게 착륙했다.기내는 어느새 등이 전부 켜졌고 승무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차우미는 안전벨트를 풀고 가방을 챙겨 일어섰는데 도로 옆에 앉은 나상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의 가방을 들고 먼저 나갔다.차우미는 하는 수 없이 나상준의 뒤를 따라 기내에서 나갔다.두 사람은 여전히 VIP 통로로 아무 막힘없이 일사천리로 몇 분 만에 공항을 나왔다.차는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사는 차우미와 나상준이 나오는 것을 보고 즉시 짐을 받아 트렁크에 넣었다.나상준은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차우미에게 먼저 타라고 했다.차우미는 사양하지 않고 올라가서 안쪽으로 앉
진문숙은 마음이 어찌 조급했는지 가능하다면 올해에 결혼식까지 치르고 싶었다.파티에서 사람들은 서로 잘 아는 사람들과 모여 앉아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우아한 음악 선율에 맞춰 각자의 생각과 행복, 그리고 걱정들을 이야기했다....성북동 별장에서.주혜민은 운전해서 별장을 떠난 후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고 큰 도로로 빠르게 달렸다.그날 밤, 그녀는 나상준의 냉정한 눈빛이 너무 두려워서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당황했다.주혜민은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나상준과 가까이할 수 없었다.그래서 고민 끝에 문지영을 만나서 상황을 얘기하려고 했다.비록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문지영과 친해지면 그것 또한 자기에게 유리할 거라고 믿었다.그런데 주혜민이 문지영이 집에 있을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방문했는데 결국 집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가정부의 말에서 문지영이 자신을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왜 나를 안 만나려고 하는 거지?’주혜민은 설마 나상준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문지영을 만났고 또 문지영은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는지 궁금했다.그녀는 문지영의 성격을 잘 아는데 절대 아무에게나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그런데 이제 며칠도 되지 않았는데 문지영이 자기를 만나주지 않는다는 건 그 이유 외 다른 건 없다고 생각했다.이제 문지영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여자가 자신을 이겼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절대 안 돼!’주혜민은 지금 상황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상대가 자기보다 조건이 좋든 안 좋든 절대 나상준을 포기할 수 없었다.3년을 기다려서 겨우 기회가 왔는데 다시는 나상준을 다른 여자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핸들을 꽉 잡고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그러자 기다란 브레이크 소리가 깊은 밤에 울려 퍼졌다.차를 길옆에 주차하고 주혜민은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는데 눈빛에는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그녀는 더 이상 시간
문지영도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편안하고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시선을 돌렸는데 한 번에 몇몇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봤다.거의 모두 만나봤던 사람들인데 그중에 온씨 가문의 진문숙도 있었다.문지영은 친구 사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특별히 필요가 있을 때만이 그 필요한 사람과 가까워지려 한다. 예를 들어 지금의 서혜란처럼 말이다.예를 들어 온씨 가문의 진문숙과는 거의 왕래가 없었는데 평소에 가끔 만나면 간단하게 웃으면서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서혜란의 말에 문지영은 궁금해서 물었다.“결혼식이라니? 어느 가문에 결혼식이 있을 것 같아?”문지영 나이대의 사람들은 자식들의 나이가 모두 나상준과 비슷했는데 거의 모두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 어느 가문의 자식이 약혼하고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서혜란은 문지영을 보더니 턱으로 진문숙의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가운데 있는 온씨 가문의 며느리 진문숙 씨 알지?”문지영은 진문숙 방향으로 보았는데 거기에는 3~4명이 있었는데 진문숙에 가운데서 제일 기쁘게 웃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무슨 경사가 있는 듯싶었다.문지영이 잠깐 생각하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온씨 가문의 아들은 해외에서 무슨 연구를 하는데 괜찮다고 들었어.”예로부터 사람들은 훌륭한 아이와 나쁜 아이들에 대한 인상이 깊게 남는다.“맞아. 온씨 가문의 아들은 모두가 좋다고 해. 최근에 들었는데 그 아들이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고 해. 성격이 조용하고 가문도 좋으며 진문숙 씨도 보고 엄청 마음에 들었나 봐.”문지영이 그제야 이해했다.그들과 같은 가문에서는 며느리를 볼 때 아들만 좋아한다고 되는 거 아니고 가문 어른들의 동의도 받아야 하는데 만약 어른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했다.그런데 서혜란이 진문숙도 만나보고 만족한다고 하니 아마도 성사될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잘된 일이군.”말은 그렇게 했지만, 문지영은 마음속으로 조금 다급했다.주변의 많은 아이들은 모두 결혼
어떤 일은 당사자가 눈치채기 전에 잘못 말하면 미움을 사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 뒤에 주씨 가문에 일이 발생하고부터 문지영은 서혜란과 가까이 지냈는데 그녀를 통해서 더 많은 아기씨를 요해하고 직접 며느리를 고르고 싶었다.그때 서혜란은 마음속으로 기뻐했고 문지영이 장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혜란은 주혜민의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자기가 알고 있는 아가씨들에 대해서만 문지영에게 알려주고 문지영이 직접 만나보고, 조사하고 고려하게 했다.비록 주혜민은 좋아하지 않지만, 서혜란은 나상준을 높이 평가했다.서혜란이 봤을 때 나상준은 능력이 있고 대담하고 용감하며 신중하게 일 처리 하는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하지만 결혼은 서로 맞아야 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비록 자기 가문에 나이와 조건이 비슷한 소녀를 나상준에게 소개해 주려고 골라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포기했다.사람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려면 서로 맞아야 한다.서혜란은 모든 일을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본다.때문에 문지영이 며느리를 찾는 문제에서 그녀는 특별히 신경을 써서 모두 나상준과 잘 어울릴만한 아가씨들만 문지영에게 말했다.이제 남은 건 나상준의 마음에 달렸는데 그는 아무나 쉽게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문지영이 주혜민을 얘기하는 것을 듣더니 서혜란은 곧바로 문지영이 이제 주혜민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주혜민은 정말로 며느리로 적합하지 않았기에 서혜란도 그냥 준다고 해도 거부할 것이다.“그 아이가 상준이를 많이 좋아하나 봐요.”서혜란은 여전히 주혜민에 대한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주혜민과 나상준에 대한 소문은 서혜란도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나씨 가문의 나상준이 만약 정말로 주혜민을 좋아한다면 절대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게다가 주혜민이 어떤 사람인지 나상준이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때문에 나상준이 주혜민을 선택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