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재는 안색이 차분했는데 다정을 보고 좀 놀랐다.다정은 아이를 데리고 준재를 향해 웃었다.“대표님, 왜 병원에 왔어요? 어디 불편해요?”다정은 마음속으로 궁금했다.‘설마 내 약이 효과가 좋지 않은 건가?’그러나 준재는 정신이 좋아 보였고, 안색도 별일 없어 보였는데 몸이 불편한 사람 같지가 않았다준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아니요, 단지 지인을 병문안하러 왔을 뿐이에요.”다정의 약은 효과가 놀라웠다.준재는 오랫동안 몸에 불편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다정은 한숨 돌리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이때 하윤은 쭈뼛쭈뼛 준재를 불렀다. “아저씨 안녕하세요.”하준도 준재에게 인사를 했다.준재는 예리하게 두 아이의 안색을 보았는데 분명히 좋지 않았다.말하는 소리도 아주 작았다.자신을 보자 그들은 예전처럼 흥분한 기색이 없었고 시든 가지처럼 우거지상을 하고 있었다.특히 하윤은 눈시울이 붉게 부어올라 턱에 눈물 자국이 은은하게 남아 있었다.하준은 분노에 찬 얼굴로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그리고 다정을 보니 비록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얼굴은 좀 초췌했다.준재는 의아해하며 바로 물었다.하준과 하윤은 말을 하지 않았고, 하윤은 또 입을 삐죽거리며 고개를 숙였다.준재는 눈살을 찌푸리며 다정을 바라보았다.다정은 한숨을 쉬었고, 이렇게 재수 없는 일은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다정은 기침을 한 번 하고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무일도 아니에요. 유치원에서 다른 사람과 충돌이 좀 생겼어요.”다정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고, 준재도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보아하니 작은 모순은 아닌 것 같았다.준재는 그들을 보고 말했다.“나도 할일 다 마쳐서 지금 별일 없으니, 데려다 줄게요.”준재는 하준의 다리에 거즈를 감은 것을 보았다.다정은 원래 준재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하준이 지금 부상을 입어 거동이 불편할 거 같아 승낙했다.“고마워요.”준재는 말을 하지 않았다. 준재는 이미 다정의 고마움에 익숙해지려고 했다.하준
그날 그 귀부인의 남편인 양해는 바로 해고되었다.상부의 명령인데, 그 이유는 ‘직권남용'이라는 네 글자밖에 없었다.그러나 다정은 이것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상부는 양해가 즉시 물건을 정리하고 교육청에서 꺼지라고 엄하게 요구했다.양해는 서류 더미를 안고 의기소침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갔다.양해는 문을 열자 아내가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양해의 아내는 바로 유치원에 갔던 그 귀부인이었다.귀부인은 남편이 이렇게 많은 물건을 안고 있는 것을 보고 얼른 올라와서 거들었다.“무슨 일이에요?”귀부인은 그 물건들을 책상 위에 놓고 호기심으로 물었다.양해는 얼굴을 찡그리고 대답했다.“말도 마, 나 잘렸어.”양해는 매우 우울했다.‘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해고됐을까?’그 귀부인은 놀라서 그대로 멍해졌다.그리고 긴장해 하며 말했다. “무슨 일이에요?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어요?”양해는 억울하게 답했다. “나도 알고 싶어! 직권남용이라고 하는데 난 아무 일도 안 했어. 보아하니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린 거 같아.”귀부인은 이 말을 듣고, 안색이 크게 변하여 무척 당황하였다.‘설마 오전의 일에 연루된 건 아니겠지?’‘그럴 리가!’양해는 단번에 수상함을 알아차리고 귀부인을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왜 그래, 당신 뭐 알고 있는 거야?”그 귀부인은 그 말을 듣고 소파에 앉아 고개를 푹 숙였다.그리고 귀부인은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는 모기처럼 가늘었다.“내가 호헌더러 그들 같은 반의 두 친구를 괴롭히라고 했어요. 그리고 호헌은 얻어맞았고, 나는 바로 유치원에 가서 그 아이를 모함했고요. 그리고 돈을 들여 선생님을 매수했는데 결국 학부모가 경찰에 신고해서 그 선생님도 잘렸어요.”귀부인은 입을 삐죽거렸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아마도, 그 두 아이의 뒤에 세력이 있겠죠.”양해는 안색이 변했다.“당신 이게 뭐하는 짓이야? 날 죽이려고 작정한 거야!”그 귀부인은 감히 양해를 쳐
고다정은 이 말을 듣고 한숨을 쉬었다.다정은 입을 열었다.“원장님, 우리 아이가 학교에 도착하면 더 이상 어떤 학교폭력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정말 장담할 수 있나요? 그들은 이미 학교에 트라우마가 생겼고, 또 그런 일을 당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어요.”저쪽에서 원장은 엄숙한 말투로 장담했다.“절대로 그런 일 없을 거예요! 우리는 이미 소란을 일으킨 학생을 제명했고, 전체 교사를 찾아 회의를 열어 문제를 정돈했으니, 어머니과 아이들은 이제 안심해도 돼요!”원장은 거침없이 말하고 있었고, 다정은 원장의 태도가 좋은 것을 보고 더 이상 책망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요, 하지만 내 아들은 지금 정신적인 상처를 입었고, 내 아들도 몸을 다쳤거든요. 그들은 아마도 며칠 좀 지나야 학교에 갈 수 있을 거 같아요.”원장은 너그럽게 웃으며 말투는 온화했다.“괜찮아요, 오고 싶을 때 오면 돼요. 내가 선생님 쪽에 말하면 되니까요.”다정은 담담하게 웃었다.“알겠어요, 고마워요.”전화를 끊자, 다정은 이 원장이 뜻밖에도 이렇게 친절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정말 다정의 예상을 벗어났다.그리고 다정은 생각을 하다 다시 하윤과 하준의 방으로 들어갔다.하준은 침대에 앉아 많이 울적해 보였다.하윤은 누워 있었는데 이불로 머리를 가리고 두 눈만 드러냈고, 크고 반짝이는 두 눈은 수심으로 가득했다.다정은 입술을 오므리다 그들에게 말했다.“하준아, 하윤아, 방금 원장님에게 전화가 왔어.”하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하윤은 입을 삐죽거리며 다정에게 물었다.“엄마, 원장 아저씨, 우리에게 학교에 가라고 하셨죠?”다정은 사실대로 대답했다.“아니, 너희들이 가고 싶지 않으면 집에서 며칠 쉬라고 말했어. 언제 가고 싶으면 다시 가도 된다고 했고.”하윤은 고개를 숙이고 목소리가 답답했다.“원장 아저씨도 참 괜찮은 사람이군요.”다정은 마음이 아팠다. 침묵하는 하준을 보고 다정은 위로했다.“원장님은 이미 전체 교사를 소집하여 회의를 열었으니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고다정과 하윤은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들은 음식을 먹느라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하윤은 여전히 궁금해서 몰래 방안의 진열물을 관찰하고 있었다.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개가 짖는 소리가 나더니 하윤은 깜짝 놀랐다.다정은 이 상황을 보고 얼른 하윤을 위로했다.“괜찮아, 하윤아, 강아지일 뿐이야.”집사는 아이가 놀란 것을 보고 얼른 설명했다.“미안해요, 아가씨. 이는 도련님께서 키우시는 애완동물인데, 가끔 밤에 이렇게 짖거든요.”하윤은 놀라움에서 정신을 차리더니 두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하윤은 줄곧 귀여운 동물을 좋아했는데, 이 말을 듣고 즉시 물었다.“집사 할아버지, 나 가서 봐도 될까요?”집사의 상냥한 얼굴에 망설임이 나타났다.집사는 머뭇거리다 말했다.“그 개는 지금 묶여 있어서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너무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어요. 대형견이라 성질이 사나워 다치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하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에게 송곳니를 드러냈다.“그래도 가보고 싶어요!”집사는 이 상황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그럼 제가 데려다 줄게요.”하윤은 소파에서 뛰어내려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다정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그들을 따라갔다.그들은 후원까지 걸어갔는데, 거기엔 엄청 큰 개 한 마리가 있었다.개는 그들을 보자마자 더 심하게 짖었고 나름 기세가 있었다.개는 체형이 매우 크고, 온몸이 까맸으며 눈빛은 흉악한 빛을 띠며, 보기에 위풍당당하고 매우 사나워 보였다.그러나 하윤은 왠지 모르게 그 개가 두렵지 않았다.하윤은 커다란 개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환하게 웃었다.고개를 돌리자 하윤은 큰소리로 집사에게 물었다.“집사 할아버지, 얘 이름이 뭐예요?”집사는 사실대로 말했다.“마왕이라고 해요.”다정은 이 말을 듣자 웃음을 금치 못했다.이 이름은 오히려 여준재 다웠다.‘대마왕과 작은 마왕, 아주 잘 어울리네.’하윤은 매우 기뻐서 그곳에 쪼그리고 앉아 마왕에게 인사를 했다.“안녕, 나랑 친구할래?”아이의 목소
잠시 검사한 후, 고다정은 손을 거두었다.자세히 검사해 보니, 다정은 이미 약간의 실마리를 발견하였다.집사와 고하윤은 모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집중해서 다정을 바라보며 다정의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다.다정은 차분하게 품에서 은침 몇 개를 꺼냈는데, 그 중 하나를 꺼내 마왕의 다리에 찔렀다.마왕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지만 갑자기 심각한 경련을 일으켰다.다정은 이를 무시하고 여전히 담담하게 계속 침을 하나 꺼내 마왕의 다리에 찔렀다.마왕은 또 몸이 떨었고, 집사는 이미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집사는 초조한 얼굴로 말하려다 또 멈추었다.집사는 마왕이 다정에 의해 죽을까 봐 두려웠다.이 개는 보통 개가 아니었는데, 준재는 마왕을 매우 아꼈고, 심지어 마왕과 함께 생사를 넘나들었다.만약 마왕이 이대로 죽는다면, 집사도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다만, 지금 집사도 다정을 방해할 수 없었기에 그저 조급해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다정은 의술이 뛰어나서 준재를 치료할 수 있었다.게다가 다정도 마왕을 치료할 수 있다고 했으니 아마 별일이 없을 것이다.그래서 집사는 조용히 지켜보며 소리를 내지 않았다.하윤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마왕이 자신의 엄마에 의해 치료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하윤은 엄마를 믿었다.잠시 후 마왕의 다친 다리에는 이미 7, 8개의 침이 꽂혀 있었다.준재는 회의를 마치고 찾아왔을 때, 바로 이 장면을 보았다.자신의 마왕은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고 다리에는 은침이 가득했다.준재는 눈썹을 찌푸리며 다소 불만을 느낀 듯 집사에게 물었다.“지금 뭐하는 거지?”그리고 말투에는 마왕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다.집사는 준재를 보고 난처함을 느꼈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대답했다.“아가씨는 마왕의 뒷다리에 장애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마왕을 도와 치료하고 있습니다.”준재는 이 말을 듣고 다정을 바라보며 좀 궁금해졌다.‘마왕은 뜻밖에도 다정의 접근을 거부하지 않았다니.’이때 다정도 침을 다 꽂았다.다정은 일어나서 침착하게 준재에게
다정은 손을 흔들며 쑥스러워했다.“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나도 단지 살짝 도운 것뿐이니까요. 그리고 대표님도 나를 많이 도와줬잖아요.”준재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다정을 바라보았다.별처럼 깊은 준재의 검은 눈동자에 다정은 왠지 쑥스러웠다.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다정은 준재에게 말했다.“대표님, 이제 대표님이 치료 받을 차례예요.”준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위층으로 올라갔고 다정과 하윤은 준재를 뒤따랐다. 남준은 이미 안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준재의 침실에 들어서자 준재는 담담하게 다정을 등지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다정은 문득 문신한 일이 생각나서 얼른 준재를 불렀다.“대표님, 엎드려 있을 필요 없어요. 오늘은 가슴과 배에 침을 놓을 거예요.”치료를 할 때, 사실 준재가 엎드려 있으면 다정은 준재의 등에 있는 혈자리를 찌를 수 있었다.그러나 다정은 준재의 가슴에 그 문신이 있는지 보고 싶었다.“알았어요.”준재는 의견이 없었고 상의를 벗고 돌아섰다.튼튼한 식스팩과 매끄러운 인어선이 다정의 눈에 들어왔다.다정의 시선은 준재의 탄탄한 가슴 근육에 고정되었다.폭발적인 매력은 준재의 완벽한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다정은 멈칫했다. 비록 다정은 진작에 준재의 몸매가 아주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좋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러나 준재의 하얀 가슴에는 아무런 문신도 없었다.다정은 크게 실망했다. ‘설마 그때 잘못 보았단 말인가?’‘그럴 리가?’다정은 준재를 보는 눈빛이 복잡해지더니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준재는 다정이 자신을 멍하니 쳐다보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불렀다.“다정 씨?”옆에 있던 남준도 가볍게 목을 가다듬으며 농담을 했다.“아가씨, 우리 도련님 몸매가 좋으신 거 알겠지만 계속 이렇게 쳐다볼 순 없잖아요.”재준은 다정의 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금치 못했다.다정은 좀 어이가 없어서 눈을 부라렸다. ‘누가 몸매에 빠졌다는 거야?’다정은 머쓱하게 말했다.“나는 단지 잠시 후에 어느 혈자리를 찔러야 좋을지
구남준은 이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됐어, 도련님에게 위험이 없을 거야.’남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수고하셨어요.”다정은 옆에 서서 눈살을 찌푸리며 온몸에 은침을 꽂은 준재를 주시하며 준재에게 침을 뽑아주기를 기다렸다.이번 치료는 다정이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더 길었다.그렇게 치료를 마치자 시간은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다정은 너무 집중해서 침을 뽑고 나니 갑자기 무기력함을 느꼈다.이때, 다정은 머리가 어지러워서 비틀거리더니 하마터면 땅에 쓰러질 뻔했다.준재는 서서 단추를 채우고 있었는데 곁눈질로 다정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얼른 다정을 부축하여 자신에게 기대게 했다.다정은 현기증 속에서 자신이 따뜻한 품에 떨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넓고 힘이 있어서 안정감을 가져다 주었다.그런 사이, 다정은 맑고 깨끗한 목소리가 자신의 귓가에 떨어진 것을 느꼈다.“괜찮아요?”다정은 그것이 준재의 목소리라는 것을 판단할 수 있었다.다정은 마음을 가다듬더니 시야가 마침내 밝아졌고 담담하게 말했다. “네, 괜찮아요.”자신이 남자의 품에 있다는 것을 의식하자, 다정은 또 너무 선을 넘었다는 것을 깨닫고 억지로 버티며 일어나려 했다.현기증이 엄습하더니 다정은 괴로워서 머리를 흔들었다.준재는 눈살을 찌푸렸다.‘괜찮은 것 같지 않은데.’이렇게 늦었는데 다정을 이대로 떠나게 한다면 무슨 일 생길지도 모른다.준재는 즉시 말했다.“여기서 좀 쉬어요. 그러고 나서 가도 늦지 않아요.”이어서 준재는 다짜고짜 다정의 허리를 안고 들었다.순간, 준재는 미간을 찌푸렸다. ‘다정은 왜 이렇게 가벼울까?’발이 땅에서 떨어지자 다정은 놀라 소리를 질렀다.“대표님, 몸 아직 안 나았으니 함부로 움직이지 마요!”다정의 근심 어린 눈빛은 준재의 그윽한 눈동자와 마주쳤다.‘만약 또 대표님 상처에 영향을 끼쳤다면 어쩌면 좋아?’준재는 속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다정은 이미 이렇게 불편한데도 아직 날 걱정할 마음이 있다니?’ 준재는
다음 날 아침, 다정은 꿈에서 깨어났다.다정은 하품을 하고 시간을 한 번 보았는데, 이미 일어날 시간이었다.하윤은 여전히 옆에 누워 곤히 자고 있었다.하윤은 잠결에 입을 삐죽 내밀더니 무척 귀여웠다.딸의 잠자는 모습을 보며 다정의 미간에도 부드러운 기운이 깃들었다.“하윤아, 일어나.”하윤의 말랑말랑한 몸을 가볍게 밀자, 하윤은 끙끙 소리를 내며 깃털 같은 속눈썹을 가볍게 떨더니 초롱초롱한 큰 눈을 천천히 떴다.“엄마?”하윤은 눈을 비비며 이 낯선 환경을 어렴풋이 바라보았다.“우리 어디에요?”다정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우리 지금 잘생긴 아저씨 집에 있어. 너 어제 여기서 잠들었고.”그들이 세수를 다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준재는 식탁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다정은 목청을 가다듬고 준재와 인사를 했고 하윤도 마찬가지였다.준재는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보았다.고요한 눈빛에는 아무런 정서도 보이지 않았다.“하윤이 데리고 와서 같이 먹어요. 이따 출근하는 김에 데려다 줄게요.”하윤은 고개를 들어 다정을 바라보았고, 다정의 뜻을 물었다.다정은 좀 망설였다. 지금 이미 준재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그들도 이제 더는 준재를 귀찮게 하지 말아야 했다.“아니요, 대표님, 집에 일이 있어서 돌아가서 먹으면 돼요. 고마워요.”다정은 웃으며 완곡하게 거절했다.준재는 담담하게 식탁 가득한 요리를 보고 입을 열었다.“그러나, 나는 이미 사람 시켜 다정 씨와 하윤이의 몫까지 만들었는데.”말이 끝나자 준재는 눈을 들고 다정을 바라보았다.다정은 어쩔 수 없이 말을 바꿨다.“그래요 그럼, 고마워요, 대표님.”그렇게 세 사람은 앉아서 함께 밥을 먹었다.하윤은 배가 고팠고, 다정의 허락을 받고 바로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하윤은 입안에 음식을 가득 넣고 볼이 볼록 튀어나왔는대, 무척 귀여웠다.준재는 하윤이 먹는 것을 보고 미간에 약간의 부드러움을 더했다.이때 집사가 옆에서 입을 열었다.“아가씨, 마왕은 이미 깨어났고 다리도 움직일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