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후 고다정과 임은미는 각각 검사실에서 나왔다. 고다정의 부지런함에 임은미와 여준재 그리고 채성휘도 그녀의 페이스에 맞춰줬다.“다정아, 나 방금 아기 심장 소리 들었어. 너무 신기해!”임은미는 재빨리 고다정 곁으로 오더니 기쁜 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고다정도 그녀의 기뻐하는 모습에 결국 같이 웃고 말았다.이때 귓가에 채성휘의 감격스러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진짜 너무 신기했어요. 분명 엄청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 거기서 심장 소리가 둥둥거리면서 들리니 말이에요.”“생명은 정말 신비로워요.”여준재도 무뚝뚝한 평소의 태도와는 달리 그도 감격스러운지 고개를 끄덕였다.고다정은 예전에 듬직했던 두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다가 순간 웃기기도 했지만 또 이해가기도 했다.비록 여준재는 진작에 두 아이의 아빠라 할지라도 이번에야말로 처음으로 한 아이의 성장 과정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다.“그만해요. 두 사람의 감격 타임은 여기까지 하고 예비 아빠 수업이 곧 시작되니 저희도 그쪽으로 갑시다.”고다정은 두 남자의 대화를 끊었다. 그들도 그녀의 말에 마침내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강의실로 향했다.말하자면 이번이 첫 수업이 아니었다. 예전에 이미 이론 수업은 두 시간 마쳤고 오늘부터 실습 수업이 시작된다.임은미는 멀어져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더니 고다정의 팔을 끌며 말했다.“오늘부터 실습 수업이라고 하던데 우리도 구경하러 가자.”고다정도 마침 실습 수업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궁금했던 차라 거절하지 않았다.그렇게 네 사람이 나란히 강의실로 가게 되었다.강의실에는 이미 많은 예비 아빠가 도착해있었다.여준재와 채성휘는 창가 쪽에 서있었다.그들 앞의 책상 위에는 아기 실제 크기의 인형, 젖병과 기저귀 등 수많은 물품이 놓여있었다.여준재와 채성휘는 여느 아빠들과 같이 호기심에 가득 차 물건들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보아하니 오늘 수업은 어떻게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가는지에 대해 배우나 봐요.”채성휘가 신기한 듯 입을 열었다.여준재는 말없이 그저
그렇게 고요하고 행복한 날이 하루하루 흘러가고 있었다.이 평온함 때문에 고다정과 여준재네 식구들은 모두 자기도 모르게 경계심을 풀고 말았다.유라와 M 국에서 그들을 공격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한 달이 흘렀는데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으니 긴장이 풀릴 수 밖에.하지만 이 풀어진 긴장 때문에 일이 생겼다.M 국에서 움직임이 없었던 게 아니라 성시원이 진작에 소식을 듣고 고위층에 정보를 알려줘서 각 지역의 출입국 심사가 더욱 까다로워졌을 뿐이다.특히 국경을 넘을 수 있는 곳에는 매일 군인들이 순찰하고 있었다.M 국 사람들이 한 달 넘게 참다가 H 국에서 방심한 틈에 공격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입국에 성공한 사람들도 매우 조심스러웠고 모두 관광객 신분으로 신원 정보들이 매우 완벽했다.그들은 운산에서 며칠 돌아다니다가 다시 계획대로 움직이려고 했다.고다정은 당연히 이것에 대해 눈치채지 못하고 매일 병원에 가서 외할머니를 뵙고 다시 연구소에 가곤 했다.그리고 저녁에는 아이와 여준재와 함께 산책하고 가끔 가족끼리 쇼핑도 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이날 고다정은 연구소에서 업무를 마치고 돌아가려던 중 한 청소부와 부딪히면서 그녀의 옷에 그만 더러운 물을 쏟게 되었다.“죄송합니다. 원장님,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청소부는 매우 놀랐는지 고개를 들지 못했고 그저 당황한 얼굴로 연신 사과했다.고다정은 그의 모습을 보고 별로 개의치 않아 하더니 그에게 말했다.“괜찮아요. 가서 그만 일 보세요.”“감사합니다. 원장님. 역시 친절하십니다.”청소부는 감격해서 두어 번 더 허리를 굽혀 인사한 뒤 청소도구들을 주워서 다시 자리를 떴다.그녀가 떠나자마자 소담과 화영이 다가와서 걱정스레 말했다.“제가 옷 한 벌 살 수 있게 백화점으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괜찮아요. 제 사무실에도 여분의 옷이 있어요. 아래층에서 기다려요, 제가 금방 다녀올게요. ”고다정을 말을 마친 뒤 몸을 돌려 다시 연구소로 돌아갔다.하지만 그녀가 엘리베이터 쪽에 도착해보니 고장
결국 두 사람은 다시 연구소 안으로 들어갔다.다만 고다정에게 먼저 전화해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말았다.너무 걱정되는 마음에 그럴 수도 있다.하지만 그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녀의 사무실까지 들어와 찾아봤지만 고다정은 보이지 않았다.“왜 보이지 않지? 아니면 스승님 쪽으로 갔을까요?”소담은 이상해서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화영은 그녀의 모습을 힐끔 보고는 한마디만 남긴 채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맞는지는 가보면 알겠죠.”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성시원의 사무실로 왔다.갑자기 나타난 그들을 보고 성시원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두 사람이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어요? 설마 다정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저희 아가씨랑 함께 계시지 않았나요?”소담은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화영의 얼굴도 아까와는 다르게 많이 굳어있었다.성시원은 그들의 모습을 보고 분명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직감하고 다시 그들에게 물었다.“대체 무슨 일이에요?”그의 물음에 소담과 화영은 숨김없이 방금 발생한 일을 그에게 말해줬다.“방금 아가씨 옷이 더러워져서 올라가서 갈아입겠다고 하셨어요. 근데 10분 넘게 기다려도 내려오지 않아서 혹시 어르신이 불러서 일이라도 시키는 줄 알고 찾아봤습니다.”“그렇다면 다정이에게 전화도 안 해봤나요?”성시원은 단번에 그들의 허점을 발견했다.소담과 화영은 그제야 그들이 무엇을 잊었는지를 알아채고 다급히 말했다.“그건 정말 생각지도 못했네요.”그러고는 멋쩍게 성시원을 바라보다가 소담은 고다정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시원은 가만히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고만 있었다.하지만 십여 초가 지나도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소담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그녀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성시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관리실로 가봐요.”관리실에 있던 직원은 세 사람이 들어온 모습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물었다.특히 성시원이 그중에 있었기 때문이다.“어르신이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나요?”담당자 정수일은 자기 자리에서 인
“그래서 이게 M 국 사람들이 벌인 일이라고요?”여준재는 걱정스레 바라보는 한편 화도 났다.이렇게 큰일을 고다정이 자신한테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여준재는 왜 말하지 않았는지 알고 있다.그때 마침 유라 쪽에도 상황이 생겨서 너무 자신을 걱정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성시원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하여 여준재의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아직은 확실하지 않지만 내가 이미 윗선에 보고했으니 그들이 특공대를 배치해서 조사할 거야.”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준재는 아직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우리 쪽의 사람들도 같이 추적할 거야.”말하다가 갑자기 성시원의 전화가 울렸는데 소담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어르신, 제가 10층에서 단서를 발견했는데 혹시 와서 확인해 보시겠어요?”“2분 정도 걸려요.”성시원은 말을 마친 뒤 바로 전화를 끊고 여준재에게 말했다.“소담 씨가 10층에서 단서를 발견했나 봐. 나랑 같이 가보자.”여준재도 당연히 같이 가겠다고 했고 심지어 그보다 더 급한 나머지 먼저 앞장서서 걸어 나갔다.그들은 10층 다용도실에서 소담을 발견했다.보아하니 안에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청소 아주머니 두 명의 시체가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었고 비닐봉투로 묶여있었다.소담의 예리한 촉이 아니었다면 놓쳤을 수도 있었다.쓰레기통 안의 시체를 본 성시원은 여태껏 볼 수 없었던 화난 얼굴로 소리쳤다.“당장 조사해 봐요!”이날 밤, 운산의 모든 출입이 통제되고 모든 호텔과 여관도 경찰의 단속을 받아야 했다.유라는 강한 멘탈로 침착하게 경찰의 심문에 대답했다.끝에 그녀는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더니 상냥하게 경찰에게 건넸다.“한 대 하실래요?”“괜찮습니다. 그리고 요즘 시내쪽이 안전하지 않으니 외출할 때 조심해요.”경찰은 유라의 유혹을 거절한 뒤 몇 마디 당부하고 다시 다음 방으로 넘어가 문을 두드렸다.유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담배를 넣더니 뒤돌아 방 안으로 들어가 문 뒤에 기댔다.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터진 게 분
“유라 씨, 맞죠?”고다정이 침착한 얼굴로 그녀에게 바라보며 물었다.유라 외에 누가 이렇게까지 정성을 들여 그녀를 납치하겠냐만, 생각나는 건 한 여자뿐이다.하지만 그녀의 물음에 그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다.고다정은 그런 모습을 보고는 그녀가 묵인했다고 생각하고는 마음이 더욱 가라앉았다.바로 그때 옆에서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고다정은 경각심을 높이고 고개를 돌렸는데 그 사람도 연구소 청소복을 입고 있었다.그녀는 마침내 이 모든 게 어제 오후 그녀가 구정물에 옷이 더럽혀졌을 때부터 다 계획된 일이란 사실을 깨달았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고다정은 마음속으로부터 몇 가지 의구심이 들었다.그녀는 유라의 세력이 모두 와해되고 재산도 모두 동결되었고 심지어 사람을 붙여서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다고 했는데 그녀가 어떻게 운산에 왔으며 연구소까지 기어들어 오는 데 성공했단 말인가?의구심이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방금 들어왔던 사람이 입을 열었다.“운산이 지금 모두 봉쇄되어서 잠시 떠날 수 없게 되었어. 교위의 뜻은 우리더러 숨을 곳을 찾아보라고 했어. 그들은 이 시간을 빌려 성시원쪽과 담판을 지어서 만약 그 사람이 M 국으로 가겠다고 하면 그때 우리도 같이 철수하면 될 것 같아.”“알았어. 그럼 요 며칠 동안은 여기에 있어야겠네. 여준재쪽이랑 H 국에서는 절대로 우리가 여기에 숨어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할 테니까.”유라로 착각했던 여자가 입을 열었다.고다정은 목소리를 듣는 순간 자신이 오해했단 사실을 알아챘다.보아하니 방금 대화에서 두 사람은 유라도 아니고 유라의 부하직원도 아닌 M 국 고위층에서 파견한 사람들이었다.안돼. 이렇게 가만히 앉아 죽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다. 반드시 스승님과 여준재에게 소식을 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다만 어떤 방법을 쓰면 되는 지 생각나지 않아 그저 조용히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그녀가 기다리는 동안 여준재쪽은 거의 미쳐갈 것 같았다.고다정이 납치됐다는 소식은 결국 여씨 부부 내외의 귀
고다정은 M국 요원의 평가에 신경 쓰지 않았다.그녀는 다음 계획을 실시하기 위해 일부러 약한 척했다.그녀가 분석해 봤는데, M국에서는 그녀를 이용해 성시원을 그쪽 실험실에 데려가려 한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될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뭔가 일을 벌여 준재와 스승님의 주의를 끌려 했다.“안 되겠어요. 너무 힘들어요. 다른 곳에 숨으면 안 될까요?”고다정이 힘없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스승님을 당신들의 실험실에 모셔가려고 이런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어요? 저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저의 스승님이 당신들의 요구에 응할까요? 그리고 제가 지금 임신 중인데, 제 아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당신들이 원하는 것은 더욱 얻을 수 없을 거예요.”이 말을 들은 두 요원은 망설이기 시작했다.그들이 고다정을 납치한 목적은 단지 성시원의 타협을 끌어내기 위한 것인데 살인 사건으로 변하면 성질이 달라진다.결국 두 사람은 눈빛을 교환한 후 결단을 내렸다.“우리 목적을 알고 있다면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고생하는 건 당신과 당신 배 속의 아이니까.”두 사람은 고다정의 말에 동의했지만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고다정도 상황을 알기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히 자신과 아기의 안전이 우선이고, 탈출을 꾀하는 것은 그다음이다.그 후 두 요원은 고다정의 얼굴에 변장을 했다.변장이 끝나니 여준재가 봐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것 같았다.수면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고다정도 그들의 실력을 인정했다.변장이 이렇게 리얼하니 소담 등 직원들이 이상 상황을 발견하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지하수로에서 나온 고다정과 두 요원은 다정하게 팔짱을 낀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허리에 총을 겨누고 있었다.도시 전체에서 엄격한 검사가 진행되고 있어 그들은 감히 도시에 들어가지 못하고, 결국 시내 외곽의 산 아래에 있는 폐공장으로 갔다. 환경은 여전히 엉망이지만 악취는 없었다.고다정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생
유라는 줄곧 인터넷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기가 예상한 것보다 빨리 상황이 반전된 것을 보고 그녀는 움직일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았다.그녀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그날 저녁 행동하기로 했다.한편, 강말숙은 위험이 임박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자기 외손녀에게 또 일이 생긴 줄은 더더욱 몰랐다.원래는 여씨 집안과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녀에게 이 일을 숨기고 있었다. 그녀가 자극에 견디지 못해 병세가 악화될까 봐 걱정한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무의식중에 두 간호사가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고 외손녀가 납치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충격받아 큰일 날 뻔했지만 다행히 의사가 제때에 와서 그녀의 상황을 안정시켰다.여준재도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다.“외할머니, 괜찮으세요?”“나는 괜찮아. 다정이 어떤 상황인지 말해줘. M국 쪽의 실험실에서 납치했다며.”강말숙은 여준재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무언의 압력을 가했다.그녀의 마음을 이해하는 여준재가 겸연쩍게 말했다.“외할머니가 자극을 견디지 못할까 봐 이 일을 말씀드리지 말라고 했어요. 상황은 들으신 바와 거의 비슷해요. 하지만 이제 다 해결됐어요. 그쪽에서 3일 안에 다정 씨를 돌려보낼 거예요.”“3일이나 걸려? 다정이 밖에서 고생하지는 않는지 모르겠다.”강말숙이 걱정하며 미간을 찌푸렸다.여준재도 사실 걱정이 많았다. 그들이 내보낸 사람들은 아무도 고다정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하지만 이 말은 당연히 외할머니에게 할 수 없다. 더 걱정하실 거니까.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위로의 말을 건넸다.“지금 각계가 모두 압력을 가하고 있어 M국 쪽에서 감히 다정 씨를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해요.”“그렇다면 다행이고.”강말숙은 한숨을 짓더니 여준재를 빨리 돌려보내려 했다.“가서 일 봐. 내 곁을 지킬 필요 없어. 다정을 빨리 찾아내서 데려와. 나도 좀 걱정을 덜게.”이 말을 들은 여준재는 거절하지 못하고 떠나갔다.그런데 그가 떠나자마자 유라가 병원에 도착할 줄이야유라는 바로 행동하지 않고 밤이 어두워지기를
점차 의식을 잃어가는 침대 위의 여인을 바라보던 유라는 의기양양해서 주사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이건 시작에 불과해. 다음에는 고다정의 두 자식새끼를 손볼 거야. 이제 당신네 가족이 하늘에서 다시 만날 수도 있겠네. 다시 만나면 고다정에게 다음 생에는 조용히 살라고 전해줘.”그녀는 이 말을 남기고 떠나려 했다.그런데 돌아서자마자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는데, 병실 호출 벨이었다.“할망구가 의식을 잃지 않았어!”유라가 놀라서 돌아보니 강말숙이 백지장 같은 얼굴로 침대 머리에 앉아 있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그녀는 유라를 향해 비꼬듯 웃었다.“내가 힘으로는 너를 당하지 못하겠지만 속여넘기는 건 할 수 있어.”“지독한 할망구!”화가 치밀어오른 유라는 이 늙은 여인을 끝장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복도에서 벌써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결국 방법이 없는 그녀는 강말숙을 쏘아보고는 돌아서서 창문 쪽으로 갔고, 의사와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서는 순간 창문에서 뛰어내렸다.의사와 간호사는 강말숙에게 관심이 집중돼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다.그때 강말숙의 상황이 매우 안 좋았고 심지어 피까지 토했다.“빨리, 빨리 응급실로 옮기고 가족에게 연락해!”의사가 조급해서 소리 지르면서 응급조치를 취했다.한바탕 허둥대고 나서 일행은 응급실에 들어갔다.한편, 여준재도 병원의 전화를 받고 급히 달려왔다.그가 도착했을 때 간호사가 응급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강말숙 씨 가족분이세요?”“네, 무슨 일이 생겼어요?”여준재가 낮은 목소리로 따지자, 간호사가 급히 설명했다.“누군가가 어르신에게 독성이 강한 독약을 주사해서 장기가 파괴됐습니다. 지금 상황이 너무 안 좋아서 의사 선생님께서 최악의 상황을 각오하라고 하셨습니다.”최악의 상황! 여준재는 안 좋은 예감이 머릿속을 스쳤다.“무슨 최악의 상황이요?”그는 갑자기 눈을 치켜뜨며 간호사를 노려보았다. 확 달라진 기운에 간호사는 깜짝 놀랐다